독재의 방지책으로서 지역정당
반지성주의는 곧잘 반민주주의로 이어진다. 반지성주의는 파시즘으로 쉽게 이어진다. 어떤 파시스트는 자신이 매우 지성적인냥 하기도 한다. "내가 누구보다 많이 안다"는 식의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안다고 자부하는 지식은 구체적 실천으로 전환되지 않는다. 정반대로 그가 안다고 하는 지식은 그의 파시스트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한다.
반지성주의에 기반한 반민주주의의 최종 도착지는 독재다. 독재는 무제한한 권력을 욕망한다. 독재는 권력을 향한 욕망의 한계를 설정하지 못한다. 당연히 사회적 한계가 그 욕망을 제어하는 것을 참지 못한다. 결국 독재는 폭주하게 되고 스스로는 물론 그를 둘러싼 모든 것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긴다. 그 사회적 상처가 얼마나 크고 위중한 것인지에 대해 독재는 고려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의 권력이 욕망대로 행사되지 않는 것을 상처로 여길 뿐이다.
반지성주의와 반민주주의의 결착, 이 결착이 만들어내는 후과의 극명한 사례가 오늘날 한국사회를 혼란의 소용돌이로 몰아넣고 있다. 윤석열의 내란, 내란에 동조하는 정치세력의 준동, 이들에게 포섭된 극우의 현현과 테러가 바로 그것이다. 2024년 연말의 12.3. 내란은 아직 종결되지 않고 있으며 바야흐로 내전의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내란 우두머리와 그 추종세력은 자신들의 무지와 독선을 감출 생각이 없다. 이 무지성적이고 반민주적인 자들의 망동으로 이성적 사고를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이 물적, 심적으로 고통받는 중이다.
사태의 시작과 그 의미에 대해 여러가지 분석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 분석들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권력의 집중과 그 폐해이다. 그리고 이 심난한 시간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대안을 고민할 때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 권력의 분산 및 권력 간의 견제와 균형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이다.
알렉시스 토크빌의 통찰은 이러한 분석과 대안마련에 일정한 방향을 제시해줄 수 있다. 미국의 민주주의를 들여다본 토크빌은 미국식 민주주의의 장단점을 예리하게 파악했다. 그 가운데에서도 오늘 한국의 사태와 관련하여 주목할 부분은 권력의 중앙집중과 그 폐단을 막을 방법으로서 지방분권이다.
토크빌은 중앙권력이 국가의 모든 부분을 다 꿸 수 없음을 직시한다. 중앙으로 권력이 집중될 수록 지방의 정신은 축소되고, 이것은 국가의 힘을 약화시키는 원인이 된다. 권력이 집중됨에 따라 발생하는 최악의 상황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 즉, 다수의 평온한 지배가 흔들리는 것이며, 그 결과는 독재다.
한국의 정치는 권력의 중앙집중을 전제로 구조화되어 있다. 보수양당이 정치자원을 분점하고 있는 상태에서 승자독식이 보장되는 대의구조가 보수양당 간 끊임 없는 집권경쟁을 조장하면서 권력의 집중현상을 더욱 강화시켜왔다. 이러한 상태에서 무지성의 반민주적 인사가 정권을 장악함에 따라 그렇지 않아도 집중된 권력을 사적으로 전유하게 되었고, 이를 공고화하기 위해 내란을 일이키기까지 하였다.
만일 권력의 중앙집중을 견제하고 정치의 다양성이 보장되는 분권이 충실히 이루어지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근본적으로 지방정부의 분권은 중앙정부의 폭주를 견제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된다. 풀뿌리에서부터 건강하게 확립된 민주적 정치구조는 독재와 대립할 수밖에 없다.
민의가 국회를 장악한 보수양당에 의해 포획되고, 행정부는 집권자의 수족으로 전락했을 때, 이를 제어하고 흠결을 치유할 수 있는 유력한 힘은 변방에 있어야 한다. 지금 한국은 그 변방이 중앙을 견제할 수 있는 변변한 권한도 없는 상태에서 물적 기반마저 형해화된 상태다. 당장 맞부닥친 윤석열의 내란은 어떻게든 수습을 하고 넘어갈지라도, 정치자원과 권력의 중앙집중적 행태가 해소되지 않는다면 내란이 잠복된 민주주의의 위기는 영원히 상존하게 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개헌 기조 중 하나는 연방제에 준하는 분권자치였다. 비록 말로만 떠들다 흐지부지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방향성을 버려서는 안 된다. 강력한 지방분권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지방분권의 핵심은 지방정치의 활성화이다. 분권자치의 현상은 행정으로 나타나지만, 그 행정은 결국 정치의 결과물이다. 따라서 지방의 정치가 제 자리를 찾고 건강하고 활발하게 역할을 할 때 비로소 지방분권은 실체를 형성할 수 있다.
지방정치를 살리기 위한 최우선의 과제는 보수양당체제를 해체하는 것이다. 보수양당의 식민지로 전락한 지방의 정치적 독립이야말로 지방분권으로 다가가는 첫걸음이다. 지역정당이 창당되고, 지역정당의 활동을 통해 지역정치인을 주민이 스스로 발굴, 육성하며, 중앙정치에 얽매이지 않고 지역의 의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새로운 사회로의 전환은 이로써 그 가능성을 확장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사회에서야 무지성의 반민주주의자가 권력을 장악하고 독재를 꿈꿀 수 있는 여지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다. 지역정당은 "민주주의의 학교"인 풀뿌리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가장 큰 장점은 책임감과 수치심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책임감과 수치심은 독재자가 가질 수 없는 민주적 시민의 덕목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