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예크주의자 노무현?

케인즈가 "논리기계"라고 평했던 하이예크는 신자유주의 이론의 거두다. 시장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였던 하이예크는 정부의 힘에 이루어지는 일체의 개입을 악으로 묘사했다. 그런데, 경제학, 철학, 사회학, 정치학, 행정학은 물론 법학에까지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하이예크를 읽으면 읽을 수록 이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이 "논리기계"라기보다는 논리집적장치쪽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른 분야는 워낙 문외한인 터라 언급하기가 그렇지만, 하이예크의 저서 중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되는 저서인 "법, 입법, 그리고 자유"를 보면 하이예크가 가지고 있는 법학지식의 깊이가 상당히 일천하거나 내지는 그의 인식수준이 근대 영미 판례법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치기 힘들다.

 

예컨대, 하이예크는 저서인 "지식의 오만"에서 일시적 수요가 창출된다는 사실만으로 가격이 지속상승할 것임을 전제하여 추가자금을 계속 투입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위험성에 대해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는 것이 하이예크의 논리이다. "법, 입법, 그리고 자유"는 바로 이러한 점에 대해 구구절절하게 거론한다.

 

전자의 행위가 한 개인의 문제로 그치게 되면 하이예크가 가지고 있는 국가조정에 관한 관점은 시비거리가 되지 않는다. 개인의 선택적 경제행위에 대해 국가가 일일이 개입할 필요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자의 행위가 범 사회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문제라거나 또는 국가적 차원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문제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대로 놔두었다가 국가라는 공동체가 공중분해할 수도 있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구체적인 공적 개입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하이예크는 그것 역시도 감수해야할 문제이지 국가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국가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자생적 질서"를 형성하는데 도움이 되는 정도에서 제도정비 수준정도로 족해야만 한다. 국가가 직접 개입해서는 이루어지는 "인위적"인 조작은 문제를 해결하거나 개선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하이예크의 인식이다.

 

이러한 논리전개는 하이예크로서는 당연한 것인데, 자연법질서에 대한 숭고한 이상을 가지고 있는 하이예크는 이로써 성문법체계의 한계를 지적하게 되며 궁극에는 헌정질서 자체를 회의한다. 헌법을 단순히 기존에 존재하던 본래 의미의 법을 유지하기 위한 상부구조 정도로 파악하는 하이예크는 "현대문명이 바탕을 두고 있는 전체적인 행위질서의 발전은 재산제도에 의해서만 가능"했다는 그의 관점에 비추어 그러한 행위질서의 보장에 필요한 한도 내에서 헌법과 법률의 기능을 부여한다.

 

하이예크의 이러한 사상은 일관되게 유지되는 것같지만 앞서 제기했던 문제, 즉 잘못된 전제를 근거로 투자가 계속 이루어지게 됨에 따라 나타나는 사회적 문제에 대해 국가가 개입하여야 하는지 여부에 대해선 주춤하게 된다. 문제에 대해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시장의 전능함에 대한 도전이므로 불가하다. 반대로 국가가 이 현상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사회시스템은 중대한 파괴국면에 직면할 수 있다. 어째야 하나?

 

물론 국가가 개입한다고 해서 적절한 해결이 이루어진다고 믿을 순진한 사람은 없다. 일본의 부동산 거품이 빠지면서 공중으로 날라갔던 돈이 우리 돈으로 약 "2경"에 이르는데, 원래부터 그 돈은 존재하지 않는 돈이었다. 일본정부라고 이거 그냥 놔둔 것도 아닐 터이고 조정하려 했겠지만 썩 좋은 결과를 거두지는 못했던 것이리라. 한국은 뭐 상황설명 하지 않아도 다들 잘 아시는 것일 게고.

 

하이예크의 논리대로라면 그냥 놔두는 것이 상책이다. 어차피 시장이 제공하는 쓴 약을 먹게 되면 앞으로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게 되리라는 믿음을 가질 필요가 있을 뿐이다. 하이예크는 조물주를 시장으로 대체한 일종의 신흥종교세력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확신을 가지고 있다. 이 믿음 안에서 시장질서에 적응하지 못한 상품이나 사람은 도태될 수밖에 없고 더 나가 도태되어야 한다.

 

한미 FTA때문에 당장 일손을 놓아야 할 처지가 된 어민이 700명이라는 관계부처장의 보고에 고작 그걸 가지고 전체 어업이 다 망하는 것처럼 이야기하느며 역정을 냈다는 노무현의 모습을 보면 그 머리 속이 하이예크의 교리로 꽉 차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바로 그 자세, 전체에서 보면 700명은 매우 의미 없는 숫자이며 시장의 질서 안에서 도태되어도 되는 숫자라는 그 자세는 하이예크가 그토록 도래하기를 갈망했던 신자유주의 파라다이스에서 각광받는 자세다.

 

거기엔 인간다운 삶이나 행복추구권이나 기타 등등 기본적 인권사항을 규정한 헌법의 조문들은 단지 지배이데올로기가 장악하고 있는 그 사회의 법을 유지하기 위한 상부구조의 포장으로 전락한다. 멋지지 않은가? 말 한 마디로 한국의 헌법을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리는 이 놀라운 개헌의 비법. 노무현은 이미 개헌에 성공하고 있는 거다. 한미 FTA로, 민중생존권 압살로... 정치구조에 대한 개헌발의 운운은 헌법의 모든 조문 중 단지 그것만이 말로 개헌의 효과를 가져올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정치한다는 인간들은 경쟁관계일 뿐 동종업계 종사자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므로.

 

하이예크 주의자로 놀라운 변신을 거듭하고 있는 노무현. 남은 임기 중 또 얼마나 극단의 변신쑈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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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10 12:17 2007/04/10 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