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心會

요즘은 잘 보이지 않는 경향이 있는 거 같다. 예전엔 목욕탕에 가면 왠지 깍두기 스러워보이는 안면근육과 덩치를 하고 괜히 껄떡거리면서 돌아다니는 문신맨들을 꽤 볼 수 있었는데.

 

타투가 하나의 문화가 된 상황이라 이제 문신 그려진 거 보면서 뭐라고 하면 그게 되려 촌스러운 짓이 되버렸지만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몸에 뭐라도 그려져 있으면 "몸땡이가 도화지냐?"라는 비아냥을 받곤 했었다. 그러한 비아냥에도 불구하고 굳굳하게 자신의 신념을 몸에 그려 넣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흔히들 이런 사람들을 불량한 사람으로 취급하곤 했다.

 

그들이 몸에 그려 넣은 것은 행인이 본 것만 해도 수도 없이 많다. 그림은 물론이려니와 글씨도 새겨넣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구로동 살 때 목욕탕에서 본 어떤 중년 아저씨의 등판이었다. 용 한 마리가 구름을 타고 오르는데, 그 밑 여백에 한자로 줄과 행을 맞춰 수십글자가 씌어 있었다.

 

한시를 적어 놓은 것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한문을 제대로 모르는 상황에서 그냥 까만...이 아니라 푸르죽죽한 건 글씨고 허여멀건한 건 살이구나 할 정도였지만 그게 참 인상에 많이 남아 있다. 그 화려한 그림과 유려한 필체를 몸에 달고 사는 그 사람이 적어도 외관상으로는 그 내용에 대해 이해하고 있지 못하리라는 추측을 지금까지 하고 있으나 이거 역시 선입견일지도 모르겠고...

 

난감한 경우는 이런 거다. 언넘이  からおけ 라는 글자를 팔뚝에 써놓았는데, 철자가 맞는지는 둘째 치고 왜 이걸 써넣었느냐는 질문에 "멋있어서..."라고 답했다던가... 지가 멋있어서 넣었다는데 어쩔 것이냐 마는 이 독특한 미적 취향 앞에선 그저 숙연할 수밖에 없다.

 

많이 보던 그림 중 하나는 하트 가운데 화살이 꽂혀 있는 거... 유치뽕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거 한 때 유행이었던지 초삐리들조차 매직으로 손등에 팔뚝에 그리고 다니던 적이 있었다. 그 다음으로 가장 많이 본 글자가 바로 "一心"...

 

저 쉑덜은 도대체 뭔 심정으로 지 팔뚝에 저 일심이라는 말을 그려넣었을까? 보스에 대한 충성? 조직에 대한 일념? 뭐 그런 건가? 아니면 연인에 대한 한 마음?? 설마...

 

그런데 최근들어 이 팔뚝에 一心 그려넣고 다니던 사람들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들은 바로 대남공작원의 포섭에 말려들어 남한 사회의 적화를 위해 종사하던 "386 간첩단"의 일원이었던 거다. 그 조직의 이름은 듣기만 해도 섬뜩한 일심회... 결국 그들의 팔뚝에 그려져 있던 一心의 대상이 누군지 확인되는 순간이다. 그분은 국방위원장님이었던 거다. 남한 지하세계의 조직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받들어 모시던 전국구 형님이 다름 아닌 국방위원장님이었다는 말이다. 이 거대한 조직과 음모를 깨트리는 작업을 대한민국 최고 공안기관 안기부...가 아니라 국정원이 해냈다. 대~한민국, 만쉐이~~~!!

 

남한 지하세계의 족보를 한 손에 움켜쥐고 움직이는 사람이 조선 인민공화국의 국방위원장이라는 사실을 안 그 순간부터 행인은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깍두기들이 선량한 사람들을 대상을 삥을 뜯은 것은 공작자금 내지는 혁명활동자금을 긁어모으기 위한 것이었단 말인가? 그들이 중고등학교에 애들 풀어서 행동대원을 모집한 것은 남한 전복을 위한 전투원 양성과정이었다는 것인가? 그들이 떼지어 몰려 다니면서 연장들고 '전쟁'을 벌인 것은 무력강화를 위한 전술훈련이었단 말인가? 도대체 그렇다면 그들이 전국의 경찰, 검찰, 법원, 행정부, 지방자치단체, 국회 등에 떡값을 돌리고 내통을 했던 것은 요인 포섭활동을 포함한 공작이었단 말이냐...

 

우예 이런 일이... 이렇게 따지자면 결과적으로 이 땅 안에서 조폭 양아치들과 일면 일식이라도 있는 자들은 모두 일심회의 멤버가 되는 것 아닌가? 팔뚝에 일심이라고 그려넣지 않더라도 말이다. 경찰, 검찰, 법원, 행정부, 지방자치단체, 국회 등에 있는 왠만한 넘들은 죄다 일심회 조직원, 간부, 고정간첩 뭐 이런 것이 되는 거 아니냔 말이다.

 

지금 국정원이 하고 있는 코메디는 거의 이 수준이다. 일심회가 뭐냐, 일심회가... 이름 지어줄라면 그럴싸하게 좀 지어주지. 차라리 '장 아무개 파' 뭐 이런 식으로 가던가. 얘네들 작명실력은 경찰보다 훨씬 떨어진다. 경찰은 그래도 삼거리파니 오비파니 오작두파니 하면서 아주 그럴싸하게 이름을 붙여주는데, 일심회가 뭐냐 일심회가... 일진회도 아니고...

 

실제 내막은 아직 수사 중이다. 결과가 나와 봐야 이번 사태의 진상을 확인할 수 있겠다. 민주노동당은 아예 처음부터 조작사건이라고 규정하고 정면대응할 태세다. 하여튼 대응하는 거 보면 답답해 미치겠다. 나중에 조작 아니고 진짜 북한 공작원 만나고 했으면 어떻게 대응하려고 그러는지 원...

 

조작사건이고 쥐랄이고 간에 정면에서 치고 나가야할 이야기는 바로 아주 단순하게 "국가보안법 철폐"였어야 한다. 그 다음에 무슨 조작이니 나발이니 이야기를 했어야 한다. 공작원을 만났던 김정일을 만났던 그거 자체가 국가안보를 위협하고 국가질서를 붕괴시키는 일이 아니다. 공작원을 만나고 김정일을 만났다는 그 자체만으로 처벌이 가능한 이 시스템에 대해 공개적이고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해야했다. 그 이야길 뒤로 미루고 조작사건부터 뻥때림을 해버리면 우짜자는 이야긴가... 이래가지고서야 열우당 2중대 깃발 들고 국보폐지 올인하던 2004년 보다도 못한 짓 아닌가 말이다.

 

암튼 이 와중에 조사당 만난다고 당 방북단이 평양으로 향했다. 국정원의 생쑈와 민주노동당의 어리버리한 대응과 수구세력들의 전방위 십자포화와 그 가운데서 벌어지는 방북강행... 뭔가 그림이 그려질라고 하지 않는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6/10/30 15:43 2006/10/30 15: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