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 때리지 마세요 ㅠㅠ

1989년 5월 3일, 소위 말하는 '동의대 사태'가 있었다. 동의대 도서관으로 쫓겨들어간 시위대가 경찰 일부를 억류했고, 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경찰병력이 투입되었다. 시위대는 도서관 내부에 불을 질렀고, 이 과정에서 시위진압에 투입되었던 경찰 7명이 사망했다. 사건 관련자 다수가 대법원에서 유죄확정판결까지 받았고, 순직경찰들은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이후 민주화보상위원회가 동의대 사태 관련자들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하였고, 이 결정이 사회적인 논란이 된 일이 있다. 죽어간 경찰들은 그럼 반민주화 세력이었는가? 국립묘지에 안장된 이들은 그럼 국가체제를 지키려던 사람들이 아니라 반국가사범들이었단 말인가? 당연히 나올 수 있는 목소리들이었다. 순직경찰관들의 가족들은 민주화보상위원회의 이 결정에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당시 상황에 대해 조금만 더 검토를 해보자. 대법원의 결정문에도 나와 있듯이 사고 현장은 경찰들의 진입을 대비하여 학생들이 장애물을 설치하고 화염병을 준비하고 있었고, 진입로가 되었던 도서관 복도 중앙에 화염병상자와 석유 등 인화물질이 있었다. 진압작전을 수행하던 경찰들은 이 상황을 잘 알고 있었고, 무리한 작전 수행시 임무를 맡은 경찰들에게 치명적인 위험이 발생할 수도 있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경찰은 하다못해 화재진압을 위해 소방서에 협력을 의뢰하거나 하는 조치 없이 일방적으로 협상을 중단하고 무리한 진압작전을 진행하였다.

 

방화를 하고 결과적으로 여러 경찰관을 사망에 이르게 한 학생들의 행위를 궁지에 몰린 자들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변호하기에는 개운치 않은 부분이 많다. 그러나 그 학생들을 그곳까지 몰아넣고, 그들에게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았던 공권력의 행사, 더 정확히 말하면 지휘관의 책임은 어떻게 판단해야할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에 대해 설왕설래한 기억이 있다.

 

그런데 경찰의 진압행태에 관한 논의를 하다보면 근본적으로 그러한 사태들이 왜 발생했는가에 대한 논의가 사라진다. 죽창과 각목을 휘두르며 폭력적 집회시위를 한 농민들의 잘못이냐, 날을 세운 방패로 시위참가자들을 찍고 진압봉으로 두드려 팬 전경의 잘못이냐를 이야기하며, 철지난 무탄무석 무석무탄을 이야기하는 것은 본질을 가리는 일이 되버린다는 것이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근본적으로 '자식'같은 전의경과 노동자, 농민이 유혈낭자한 싸움을 벌일 이유가 없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만나 싸워야 하고 죽고 다친다. 노동자 농민의 삶을 벼랑끝으로 내모는 짓들을 정책이랍시고 내놓으면서 오직 권력의 안녕과 자본의 유지를 위해 '자식'같은 전의경들을 칼받이로 내모는 기득권들. 사고가 터지면 본질은 감춘채 집회시위과정의 '폭력'만을 부각하는 언론들.

 

집회시위에서 '물량'이 동원되는 일은 하루속히 사라져야한다. 그건 절대적으로 동감한다. 그러나 그 이전에 필요한 일들이 있다. 일차적으로 전의경제도는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 경찰기동대의 해체가 주요 이슈가 되고 있는데, 전의경제도 자체를 없애지 않는 한 집회시위과정의 폭력행위는 줄어들지 않는다. 월급 제대로 받고 공무원 자격을 갖춘 경찰들이 집회시위 대응해야 한다. 국방의 의무라는 '신성(?)'한 가치로 포장한 채 젊은이들을 끌고 가서 지들 칼받이로 만들어 써먹는 양아치같은 짓들은 이제 그만 두어야 한다.

 

근본적인 해결방법은 정치하는 사람들이 정신차리는 거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만든 정책 하나로 죽어가는지 잘 봐야한다. 차떼기, 채권떼기로 정치자금 지원해준 재벌들의 뒷바라지 해준답시고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벼랑으로 밀어버리는 정치권, 10년 넘도록 엉뚱한데 몇 조원을 처부어놓고도 제대로 관리조차 하지 못하면서 쌀까지 개방해 농업경제 자체를 해체시켜버리는 정치권. 이들은 자신들의 잘못된 정치행위로 인해 생존의 기로에 선 사람들의 절박함을 알아야 한다. 그 절박함을 해결하지 못하는 한, '폭력'은 계속될 것이고, 집회시위에서 죽어가는 사람, 자신의 몸에 불을 지르는 노동자, 농약 한 병으로 생을 마감해버리는 농민, 부모도 없는 비닐하우스에서 개에게 물려 죽은 어린이들이 속출할 것이다. 그거 막겠다고 전의경 방패들려 보내면 또 거기서 죽고 다치는 전의경은 몇 명이나 나오겠는가?

 

'평화시위문화정착 촉구대회'가 열렸다. 마침 같은 시간에 같이 일하는 동료의 결혼식이 있어 이 '촉구대회'를 가보지 못했다. 꼭 가보고 싶었는데...

 

참가자들이 무슨 소리를 했는지 궁금하여 뉴스검색을 했다. 그들의 요구, 많은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내 자식들 때리지 말아달라는 것 뿐이다. 매우 간단하면서 가장 원초적인 부모의 심정을 대변하는 이 요구는 그래서 더욱 갑갑한 심정을 가지게 한다.

 

"아들을 전쟁터에 보낸 심정"이라는 부모의 말은 절절하다. 피켓에는 "내 아들 때리지 마세요 ㅠㅠ"라는 글도 씌어있었다. 나라 지킨라는 '신성한' '조국'의 부름을 받고 달려간 아들이 시위대의 '죽창'과 '쇠파이프', '화염병' 앞에서 다치고 쓰러지는 모습들을 뉴스로 봐야하는 부모들의 심정, 다는 몰라도 그 심정이 결코 좋지 않으리라는 것만은 잘 안다.

 

그분들에게 자식들을 '전쟁터'로 몰아가고 있는 정치인들과 자본가들에 대해 비판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직 섣부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분들에게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죽어간 노동자 농민을 보는 것만큼이나 부상당해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전의경들을 보는 것 역시 안타깝고 가슴아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장면을 볼 때마다 그들을 힘들게 만들고 우리를 힘들게 만드는 이 땅의 기득권세력에 대해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분들의 아들들이 맞지 않는 세상이 오기를 빈다. 동시에 그분들의 아들들에 의해 사람이 죽어가는 세상이 빨리 끝나기를 함께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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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07 19:47 2006/01/07 19: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