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짜

* 이 글은 현근님의 [인생 뭐 별거있나...]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직장생활하다보면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몸도 지칠 때가 있다. 그래서 기분전환 할 겸 술도 마시고 놀러도 가고 잠도 자고, 뭐 그런다. 하루 24시간의 절반 이상을 회사에 매달려 있어야 하는 형편과 열악한 놀이문화의 한계로 인해 직장생활을 하면서 별다른 유흥방법을 개발해보지는 못했다. 어쩌다 큰 맘 먹고 등산을 한다거나, 기껏 가까운 월미도(공장이 인천이었으니까)나 함 가보는 것이 다였다. 그러다보니 가장 손 쉽게 접할 수 있는 유흥문화는 고/스/톱/이었다....

 

간혹 열성적 고스톱 매니아들도 발견할 수 있는데,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사이버머니 걸어놓고 맞고 때리는 정도가 아니라 집문서, 땅문서 다 들고 와 그야말로 올인하는 경지에 도달한 사람들도 있다. 패가망신의 지름길이 노름이라는데, 항상 조심할 지어다...

직장동료들과는 그런 정도는 아니었고, 다만 가끔가다가 점100짜리 밤새 치면서 우정을 돈독히 하는 그런 수준이었다. 당근, 손장난 하는 인간들도 없었고, 낯 붉힐 일이 거의 생기지 않는 그런 정도였다.

 

 



직속상사이던 실장이 집들이를 했다. 아파트를 새로 장만해서 이사를 했던 건데, 새로 들어간 집 바닥 다져준다는 의미에서 집들이가 끝나고 동양화 패대기치기 놀이를 시작했다. 술 더 마실 사람들은 따로 모여 놀고 있고, 집주인은 반드시 동참해야한다는 룰(이 없었어도 실장이 워낙 고스톱을 좋아해서 뺄 일이 없었다)에 따라 실장, 과장, 행인, 선배 둘, 이렇게 다섯이 한 조를 이루어 고스톱을 시작했다.

 

그런데 시작부터 좀 문제가 있었던 것이 판돈이었다. 간만에 치는 고스톱, 긴장과 스릴을 만끽하기 위해서는 일단 판돈이 좀 있어야 한다는 것 아니겠느냐는 선배의 제언에 따라, 원래 점 100을 생각하고 준비했던 판에 대해 설왕설래가 발생했다. 점 500은 쳐야되지 않겠느냐라는 말이 나오자, 술김에 이 사람들이 배가 불렀는지 좋다고 맞장구를 치게 되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고스톱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항상 물주의 역할로 전락당해야만 했던 실장이 그건 넘 많다고 제동을 걸었다.

 

타협안이 나온 것이 삼오칠을 치자는 거였다. 즉, 3점, 5점, 7점, 이런 식으로 홀수 점수가 나올 때만 500원씩을 부과하자는 것이다. 그러니까, 3점에 500원, 5점이면 1000원, 7점이면 1500원 뭐 이런 식이다. 점 500은 너무 부담스러우니까 그렇게 하자는 이를테면 절충안이었는데, 이게 또 반대의견이 개진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긴장과 스릴을 만끽하자던 애초 취지에서 벗어난다, 뭐 이런 내용이었다.

 

이 때, 눈빛만 번득거리며 눈치를 보고 있던 과장, 결정적으로 이 냥반은 타짜로 소문난 고스톱의 달인이었는데, 이냥반이 어차피 실력들도 어슷비슷하니 큰 점수 날리는 없고, 그럴바에 "삼오칠 다블"로 치자, 대신 100원 기준으로 시작하면 어떻겠느냐 하는 거다. 즉, 3점에 100원, 5점에 200원, 7점이면 400원, 9점이면 800원... 이런 식으로 하면 작은 점수 나면 별로지만 큰 점수 나면 스릴 이빠이 있지 않겠느냐 뭐 이런 얘기였다.

 

다들 그 짧은 시간에 머리 속에 계산기가 굴러가기 시작했고, 긴장과 스릴을 만끽하자던 애초 취지에도 부합하면서 그리 많은 부담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다들 그렇게 하자고 만장일치 합의보고 만세삼창을 외친 후 곧바로 고스톱 시연에 들어가게 되었다. "삼오칠 다블"...

 

한 시간, 두 시간 지나가면서 고스톱이 진행되었는데, 많아봐야 몇 천원 왔다갔다 할 정도의 점수를 내면서 박빙의 승부가 이어지고 있었다. 애초 긴장과 스릴 어쩌구 했던 선배는 기본 100원은 넘 적었던 것이 아니냐 하는 볼멘 소리를 했지만 이것도 괜찮다는 실장의 한 마디에 더 이상 불만을 제기하지 못한채 계속 고스톱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행인에게 고스톱 신이 옮겨오고야 말았다. 때리는 족족, 패를 넘기는 족족 모든 패들이 짝짝 달라붙기 시작하는 거다. 오광 나오지, 고도리 나오지, 순간 쓰리고 넘어가고 포고가 나오더니 기어이 광박, 피박, 멍박까지... 바닥에 깐 것만 43(39점에 고 부르면서 생긴 보너스 포함)점이 생겨버린 것이다.

 

주변에서 술마시고 있던 사람들까지 계산과정에 돌입하기 시작했고, 일단 도대체 총점이 얼마인가를 계산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우선 오광에 고1회

고도리에 고1회

피도리 해서 고2회

이렇게 해서 포고가 들어감에 따라 따따블

광박, 피박, 멍박이라 따따따블...

물경 1300점이 넘는 점수가 나왔다...

흔들기만 했어도 한 번 더 따블이 되는 건데... 아깝다....

 

문제는 과도한 점수의 발생으로 인하여 삼오칠 다블이라는 정산방식으로는 도저히 계산을 할 수 없는 금액이 나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아... 이럴 경우 어찌해야 하는가...

정확한 금액산정에 대한 기억은 없는데, 일단 같이 붙었던 실장의 경우 새로 이사한 아파트를 통채 팔아도 절대액수가 모자라고, 끝내 긴장과 스릴을 만끽하고자 했던 선배의 경우 쥐뿔 가진 것도 없는 거 잘 알기 때문에 채무변재를 받을 방법이 묘연했다.

 

광팔고 앉아 있던 과장과 다른 선배는 사태가 어떻게 진전될지 예의주시하고 있었고, 특히 삼오칠 따블을 치자고 했던 과장은 실장 눈치를 보느라 가재미눈이 될 판이었다. 어쨌든 주변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이고, 행인은 특히 수학이라고는 집합도 제대로 이해못하는 판국에 이 기하급수적 판돈의 계산이 불가능해서 싸모님께 계산기를 좀 빌려달라는 요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야야, 앉아봐. 이게 말이야 계산 한다고 될 일이 아니야. 이 판 무효로 하자고."

"아니, 그런 게 어딨어요? 여지껏 잃다가 이제 겨우 한 판 이겼는데..."

"아, 이 쨔샤, 이게 기껏 한판이야?"

"그래, 그래. 이건 뭐 계산도 안 되고 하니까, 없었던 걸로 하고 다시 치자고"

"아, 이거 뭐야, 이거. 남아일언 중천금이요 장부이언은 이부지자라고 했는데, 이거 이래도 되는 거에요?"

"이런 쓰벌, 그럼 니가 이 아파트 가져 가든가."

"가져가긴 뭘 가져가요? 아 쒸, 난 현찰이 좋아. 현찰로 줘요, 현찰로."

"이런 제기, 집팔아 주냐?"

"아,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집을 팔던 땅을 팔던 현찰로 줘야쥐, 현찰로."

 

긴장과 스릴을 이미 물 건너간 이야기가 되었고, 어이 없는 점수의 발생으로 인해 고스톱의 열기는 싸아 하게 가라앉아 버렸다. 어영부영 고스톱판은 철거되었고, 대신 술상이 들어 앉았다.

 

옆에서 구경하던 사람들, 싸움난 판은 나몰라라 하고 지들끼리 계산하고 자빠졌다. 도대체 얼마나 나왔는지 행인도 궁금한 판이었다.

 

암튼 도박으로 발생한 채무는 변제의 의무가 없는 것이어서 그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괜히 점수 많이 나와서 푼돈도 못건진 우라질 사례로만 남아 있는 기억이다. 아, 그런데 진짜 얼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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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06 21:58 2004/11/06 2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