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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병만 고치면 한국 떠날께요.

 
"아이 병만 고치면 한국 떠날 게요"
난치병 아들 수술비 구하다 붙잡힌 불법체류노동자
텍스트만보기   이정희(hee8861) 기자   
 
 
▲ 난치병 수술을 위해 입국한 컨치벡과 빠리다 모자. 갑작 스럽게 발생한 남편의 단속 사실에 어쩔줄 몰라하며 불안해 하고 있었다.
ⓒ 이정희
 
"우리 아들 수술만 끝나면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했어요. 우리 어머니도 이제 83세입니다. 언제 돌아가실지 몰라요. 빨리 고향에 가고 싶어요. 제발 꼭 좀 도와주세요."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인 호리코프 우랄(37)의 전화 목소리는 절규에 가까웠습니다.

그에게 지난 몇 년간은 신변 불안과 박봉에 시달리던 고단한 세월이었지만, 지난 한달 남짓은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가슴 설레는 시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세 살배기 아들 컨치벡이 고국에서는 고칠 수 없다는 난치병 수술을 받기 위해 아내 빠리다(32)와 함께 지난달 20일 입국하여 입원 날짜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그렇게 고대하던 아들의 수술을 며칠 앞둔 지난 11일 오후, 우랄은 부족한 병원비를 마련을 위해 집 근처 아산시 둔포면에 나갔다가 불법체류 단속반에 걸려 외국인 보호소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아들의 수술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수술비 빌리러 나갔다가 보호소 수감

 
▲ 단속반에 검거되기 며칠전 가족의 다정했던 한 때.
ⓒ 아산외노지원센터
우랄은 아들 컨치벡이 태어나기 4개월 전인 지난 2003년 11월, 산업연수생 자격으로 한국에 입국하여 대구의 한 철근공장에서 1년 정도 근무했습니다.

그러나 허리통증이 악화되면서 도저히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습니다. 우랄은 수차례 회사 측에 근무지 변경을 호소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고 합니다. 몸이 더 악화돼 일을 못할 상황이 되면, 고국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처지에 놓인 것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우랄이 한국으로 온 이후 태어난 아들 컨치벡이 몸에 항문이 없는 상태라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컨치벡은 고국 우즈베키스탄에서 수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직장과 요로 사이에 생긴 구멍으로 인해 생명까지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더구나 우즈벡의 의료기술로는 더 이상의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참다못한 그는 아들의 수술비 마련을 위해 무단으로 근무지를 이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이후 충남 아산시 인근으로 들어와 몇몇 소규모 제조업체를 전전하다 단속반에 잡혀가기 전날까지 공사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며 월 80여만 원 정도를 벌었다고 합니다.

고향에 30만원을 부치고 방세 20만원과 공사장 식당 밥값 25만원을 제하고 나면 매월 10만원도 안되는 용돈으로 버틸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아들의 병원비를 마련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상황이 되었던 것입니다.

아들 수술비 마련 때문에 근무지 이탈했다가

 
 
  한국이주노동자건강협회 찾아가보세요  
 
 
한국이주노동자건강협회에서는 제도적인 의료혜택(건강보험)을 받지 못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일정액의 회비를 받고 이들에게 의료비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의료비 지원을 원하는 이주노동자는 가입비 5000원과 첫달 회비 6000원, 사진 2장, 여권 사본을 가지고 가까운 외국인 노동자 상담소를 찾아가 가입하면 된다.

공제회에 가입하면 개인병원의 경우 진료비의 30~40%만 본인이 부담하며, 종합병원 40~50% 할인된 금액으로 치료를 받으실 수 있다.(단 공제회와 협약을 맺은 의료기관에 한함)

사단법인 한국이주노동자건강협회
(02-3417-0516)
 
 
태어나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아들이 난치병에 걸려 죽을지도 모른다는 슬픔에 견디다 못한 그는 지난해 11월에 충남 아산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이영석 간사를 찾아와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이영석 간사는 백방으로 수소문 한 끝에 우즈베키스탄 대사관과 이 분야 국내 최고권위자인 서울대학병원 소아외과 박기원 교수, 불법 체류노동자들의 의료보험 적용을 도와주는 한국이주노동자건강협회에 도움을 요청하였으며 이들로부터 지원 약속을 이끌어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지난해 12월 20일 컨치백 모자는 아산외국인노동자센터의 신원보증으로 치료가 완료되면 출국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입국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수술의 병원비 상당액을 서울대학병원 측이 지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왕복항공료와 기타 병원비용을 포함하여 결국 200여만 원 정도를 우랄씨 개인이 부담해야 했습니다.

점점 수술 날짜는 다가오고 수중에 가진 돈이 한 푼도 없던 우랄씨는 고민 끝에 주변의 고향친구들에게 5만원, 10만씩 빌려줄 것을 부탁했으며 검거 당일에도 친구들에게 부탁했던 돈이 통장에 입금됐는지 확인하려고 집 근처 둔포농협에 들렀다가 단속반에 붙잡혔던 것입니다.

"불법체류 안 할 게요, 제발 우리 아들 좀 살려 주세요"

 
▲ 몸이 아픈 듯 칭얼대던 컨치벡이 자신이 찍힌 사진을 보여주자 활짝 웃으며 이영석 간사의 장난에 환하게 웃고 있다.
ⓒ 이정희
13일 오후 아산외국인노동자센터 이영석 간사의 안내를 받아 컨치벡 모자가 머물고 있는 충남 아산시 둔포면 관대리에 있는 우랄씨의 집을 찾았습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낮선 이국땅에 남편마저 없는 캄캄한 방에서 갇혀 지내고 있는 모자는 낮선 사람의 방문에 경계심을 보이며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몸이 아픈 컨치벡은 칭얼거리며 엄마 품에만 안기려고만 했습니다.

그러나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자 신기한 듯 금세 환하게 웃으며 우리 일행의 품에 안기기도 하였습니다. 아들의 행동에 다소 안심이 된 듯 부인 빠리다씨도 초코파이와 삶은 계란을 내오며 먹으라는 손짓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언어가 통하지 않아 인터뷰를 진행할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청주외국인 보호소 관계자의 협조를 얻어 우랄씨와 20여분을 통화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그동안의 상황을 설명하는 동안 울먹였습니다.

"이번에 우리 아들 얼굴 처음 봤어요. 우리 아들 좀 살려주세요. 아들 병 고치면 불법체류 안하고 고향으로 돌아갈게요. 고향의 어머니도 이제 83세입니다. 돌아가시면 못 보잖아요. 아들 고쳐서 빨리 가고 싶어요."

현재 우랄씨는 법무부 대전출입국 사무소 단속반에 의해 청주외국인보호소에 보호 조치되어 있습니다. 관련법에 따르면 그는 '300만 원 이상 1000만 원 이하의 보증금'을 내야 풀려 나올 수 있습니다.

예정대로라면 컨치벡은 서울대학교 소아외과에 15일에 입원하여 17일에 항문 수술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석방되지 않는다면 보호자가 없는 컨치벡의 수술도 장담할 수 없게 됩니다. 이영석 간사가 우랄씨의 빠른 석방과 보증금 경감을 위하여 백방으로 뛰고 있지만 안타까움은 더해만 갑니다.

우즈벡 소년 컨치벡이 건강한 모습을 되찾아 대한민국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한 채 고향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탈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 "'빠이 빠이' 컨치벡, 아저씨 다시올게" 이영석 간사가 모자와 작별인사를 하고 있다.
ⓒ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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