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권위와 민주적 개혁을 착각 말라
category 朱鷄  2017/06/18 19:19

우리 사회가 탈권위와 수평적 리더십에 목말라 있기에 새 대통령 취임 후 한 달간 쏟아져 나온 각종 가십성 기사들과 그에 환호하는 많은 국민들이 충분히 이해됩니다. 그러나 탈권위와 수평적 리더십을 결코 민주주의나 역사의 질곡을 바로 잡는 개혁과 혼동해서는 안됩니다. 소탈하게 트위터로 소통하고 보좌진과 함께 다리 꼬는 거야 트럼프도 하고 있고, 푸틴도 웃통 벗고 사진 찍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결코 민주적 지도자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국민들은 권위적이지 않으면 그게 곧 민주주의인 줄 알고 세상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소탈하고 민주적이었지만, 그게 전부였던 노무현이 친재벌,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폈던 것도 대부분의 국민들은 잘 모릅니다. 그나마 그런 말을 들어라도 본 적 있는 사람들도 거개가 개혁이 실패한 것은 보수 정당 때문이라고 간단하게 생각해 버립니다. 그렇게 단순한 이분법에 갇혀 있다보니 대통령이 보좌진들과 커피를 들고 다니는 사진만 봐도 가슴이 먹먹해지나 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참여정부 시즌2라고 생각하며 좋아하는 모양이지만, 바로 그렇기에 안타깝습니다. 이쪽도, 저쪽도 국민 현혹하는 것에 불과한데 얼마나 더 당해야 세상을 제대로 볼 것인지.

 

2017/06/18 19:19 2017/06/18 19:19

생활 공예(?)에 눈뜨다
category 朱鷄  2017/06/05 18:04

어릴 적 해보던 스케일 모델(일본식 영어로는 프라모델)을 다시 만들어 보고 싶어서 탱크 모델을 하나 사다 놓은 지 만 2년만에 엉성하지만 조립을 끝냈습니다. 어릴 적 솜씨보다 크게 나아진 게 없어서 실망하던 중, 좀 더 멋지게 만들기 위한 방법을 검색하다 보니, 남들 다 아는 세계를 뒤늦게 알아버린 늦바람난 뒷북쟁이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한 2주, 흠뻑 빠져있다 보니 여러 가지 용어들부터 도구와 기법, 그리고 나름의 생태계에 이르기까지 스케일 모델링이라는 취미 생활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말이 취미 생활이지 고수들의 경우는 공방 수준으로 작업실을 꾸리고 창작 생활을 하더군요. 흔히들 나이 먹은 사람들은 아이들 장난감으로 많이들 알고 있지만 스케일 모델링은 사회의 여러 분야에 응용 가능한 분야로서 우습게 볼 게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장난감 가지고 논다는 아내의 핀잔에 대비한 설득 논리는 따로 준비 안 해도 될 겁니다. 작게는 취미이고, 나아가 생활 속의 ‘공예’이지만, 크게는 각종 전시 산업의 한 분야이기도 하니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비루한 솜씨의 알몸 탱크, 그러나 도색부터는 품이 많이 듭니다.

 

취미 수준을 뛰어넘어, 디오라마 작품을 만드는 모델러들의 경우에는 각종 컨테스트 경력을 활용하여 작품을 주문 제작하거나, 제작한 작품을 eBay 같은 경매 사이트에 올리기도 하고, 또는 아예 관련 업체를 차리기도 하는 등 나름의 생태계가 존재한다는 것도 역시 알게 됐습니다. 글도 쓰고 강좌를 열거나 유튜버로 나서는 등등 아직은 가능성 뿐이지만, 수익 창출의 방법도 여러 모로 엿보이더군요.

스케일 모델링의 단계는 단순 조립급에서 도색, 워싱과 웨더링, 그리고 역사를 재현하는 디오라마급 단계로 크게 나눌 수 있습니다. 솜씨의 급이 아니라, 각각의 과정이 분화하여 다른 분야와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가령 조립의 경우는 3D 퍼즐인 셈인데, 치매 예방와 손가락의 감각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부품을 너무 잘게 ‘회지기’하지 않으면 노인들에게도 좋은 취미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아마 지금의 모델러들이 더 나이를 먹는 10년 정도 후면 언론이 그런 기사 많이 내보내리라 봅니다. 또 도색만 하더라도, 최근 몇 년간 인기를 모은 컬러링 북이나 앱이 무색할 지경으로 복잡합니다. 특히 도료와 재질에 대한 이해나 도색 기법 등은 3D 프린팅의 결과물이나 그밖의 생활용품들에도 얼마든지 활용 가능할 것 같군요.

한국의 스케일 모델링은 크게는 밀리터리 아니면 건담류가 주를 이루지만 외국의 경우는 기차나 도시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한 분야로 나뉘어 있습니다. 우리도 스케일 모델들이 더 다양화하고 그에 따라 동호인 모임도 더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꼭 상황의 재현만이 아니라 상상력이 많이 가미된 창의적인 모델링, 나름의 가치관이 담긴 모델링도 시도되었으면 합니다. 예컨대, 반 세기도 넘게 히틀러의 독일군 모형을 계속 재탕할 것이 아니라 5ㆍ18 당시 광주의 시민군들을 소재로 하는, 정치 의식과 사회적 의미가 담긴 모델링을 해야 단순한 손재주 이상의 진정한 작품들이 탄생할 거라 봅니다. 지금처럼 2차 대전 당시의 독일군 탱크 정보나 찾는 밀덕질보다 현대사의 아픔을 전시하고 교육하는 데에도 모델링 취미가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 분야에서도 인터넷의 수많은 아마추어 사진 애호가들 사이에서 벌어진 것과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결국 ‘솜씨 자랑’의 장에 그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돈과 시간적 여유, 그리고 그것을 가진 사람들끼리의 교류, 몸에 쌓인 솜씨와 관련 지식정보의 습득, 나름의 심미안 등등이 모여 누가 봐도 사회자본(social capital)과 문화자본(cultural capital)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것을 서로 드러내 보일 뿐입니다. 사진이 됐든, 스케일 모델링이 됐든, 아니면 또 다른 것이든 결국 철학과 세계관을 담느냐의 여부로 딜레탕트와 아티스트가 나뉘는 것이겠죠. 아마추어가 아무리 덕질을 해도, 설사 덕업일체를 이루더라도 도를 이루지 못하면 그저 부지불식간에 하게 되는 자기 과시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우리 부부가 살고 있는 곳이 나름 공예 전통이 있는 곳인데, 지역 특성을 살릴 생각은 안 하고 그저 땅값 올려서 팔아먹고 튈 생각만 하는 원주민들 때문에 도시가 망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그 공예 전통을 어떻게 하면 살려낼 수 있을까 지역의 뜻있는 분들과 함께 고민하는 있는 중입니다. 우연히 다시 만지게 된 스케일 모델링, 혹은 도색 관련 직종이 이 지역 아이들의 취미가 되고, 지역 특성화 산업이나 관광이나 축제의 소재가 되면 어떨까 생각하다 보니 글이 길어진 감이 있군요.

 

2017/06/05 18:04 2017/06/05 18:04

겹짜증의 날
category 朱鷄  2017/06/03 18:45

살다보면 헉 소리 나게 만드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랜 만에 만난 동창 모임, 거기서 누군가가 그러더군요. “어이구, 얼마만이야, 전화 좀 하지~”

그냥 넘어가도 무방한 말이지만, 같이 앉아 있는 동안 내내 뭔가 찝찝합니다. 딱히 살갑게 친하지도 않았고, 먹고 살다 보면 딱히 전화할 일도 없는 게 동창들이라는 존재이니, 먹고 살 만한 사람들끼리 모여 은근히 누구누구는 인생이 안 좋게 풀렸다더라는 식의 얘기나 하러 모이는 그런 자리가 아닌 것만으로도 훌륭한 자리일 텐데 꼭 저렇게 연락 두절의 상황을 상대방 탓으로 돌리는 말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들이 있습니다. “네가 좀 연락하지, 너는 왜 안 했냐”라고 대꾸를 하기에도 좀 그렇고, 아무래도 “연락 좀 하지 그랬어~”라는 말은 먼저 하는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말인 것 같습니다.

더 웃기는 건, 설거지를 해주느냐로 화제가 옮겨가서 그게 마치 성평등한 가정을 꾸리는 데 성공했다는 증표인 양 서로 돌아가면서 설거지를 누가 하는지 캐묻기 시작한 데서 이 나라 속물들과 언제까지 부대껴야 하는지 암담함을 느끼게 된 자리였다는 겁니다. 남편이 설거지 안 하면 집안일도 같이 안 해주는 사람으로 그냥 단정을 해버리고 핀잔들을 늘어놓습니다. 남편이나 시댁 흉볼 계기를 누군가 쏟아놓길 간절히 바라는 거죠. 설거지만 안 하고 요리부터 모든 가사를 남편이 전담하는 우리 부부를 보고도 어째 그런 사람이랑 사냐는 식으로 은근 빈정댑니다. 각 가정마다 상황이 다른데, 사유의 깊이가 천박하기 그지없습니다. 결국 적당한 핑계와 함께 기분 좋아질 말 몇 마디 던지고 일어났지만, 정말 그 시간에 설거지나 하고 있을 걸 그랬습니다. 그렇게 모이면 뭐합니까, 모임 끝나고 저마다 가장 친한 친구와 다시 전화하면서 뒷담화하기에 바쁜 게 우리네 모임의 속내인 것을.

 

2017/06/03 18:45 2017/06/03 18: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