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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세계사회포럼 참가기 2 - 개막 행진

출처블로그 : 모여라! 꿈동산♣♧♣ - 김문성의 블로그

 

세계사회포럼 조직위원회는 개막 행진에 20만 명이 참가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저는 행진 대열이 지나가는 길목의 육교 위에 따로 있었기 때문에 행진 대열 전반을 거의 볼 수 있었습니다. 개막 행진은 많은 사람들, 다양한 요구들, 활력과 에너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 활력만큼 화려하고 천연색의 행진이었죠. 다양한 요구들은 다양한 언어와 격렬한 몸짓, 강렬한 천연색의 배너와 팻말, 옷차림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제가 서 있던 육교는 행진로가 내리막길로 접어드는 곳에서 몇 백 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꽤 크고 높은 위치였는데, 그 위에서 내리막길을 내려오는 행진 대열은 수천의 깃발을 새긴 거대한 용암이 세상의 모든 부정의와 악을 삼켜 버릴 듯한 기세로 성큼성큼 다가오는 느낌이었습니다.

 

개막 행진은 포르투 알레그레 시청 광장에서 6시에 출발해 포럼 행사장으로 진행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이미 3시부터 포럼 행사장에서 시청 광장으로 행진해 들어가는 대열들이 있었습니다.

 

각각의 행진 대열들은 전통 북, 악기 등 제대로 된 악기부터 플라스틱으로 된 드럼통(일명: 도라무통), 냄비 등 온갖 타악기 소재들을 가져와 말그대로 북치고 장구치며 행진을 하더군요. 특히, 브라질의 좌파 정당 젊은이들이 삼바 리듬을 연주하며 행진해 가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행진 대열 주변의 풍경도 볼만 했습니다. 제가 서 있던 육교 옆 아파트에서는 행진을 지지하는 주민들이 나와 신문지를 찢어 뿌리기도 했구요, 중년의 아저씨가 "Davos No Samba Yes"(No와 Yes는 포어로 적혔는데 포어의 no에 해당하는 단어 표기가 자판에서 불가능하기 때문에 영어로 옮겼습니다)라는 팻말을 만들어 자신의 아파트 베란다에서 삼바춤을 추기도 했습니다.

 

맞은 편 아파트에서는 건물 옥상과 창문마다 붉은 깃발들이 내걸렸는데, 육교 위에 함께 있던 세계사회포럼 참가자들에게 물어 보니, 빈 건물을 점거하는 무주택자들의 운동이 세계사회포럼을 축하하기 위해 행진 코스에 있는 빈 건물을 점거한 것이라고 하더군요. 이들이 이 건물을 계속 점거해서 사용할지 말지에 대해서는 아쉽게도 정확히 알아 듣지 못했습니다.

 

한편, 세계사회포럼 참가자들 중 일부가 육교 바로 앞에서 퍼포먼스를 벌였습니다. 이 때문에 행진이 잠시 지체되기도 했는데요. 등산 로프를 양쪽 벽에 연결해 행진자들 머리 위 공중에서 행진을 축하하는 퍼포먼스를 벌인거죠. 많은 인기를 끌었던 퍼포먼스였습니다.

 

PT당원들은 당 차원의 대열을 짓지 않고 개별적으로 흩어져 참가했습니다. 개인들이 PT 깃발을 들고 참석한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DS그룹이 자체 플래카드를 펼쳐 들고 행진한 것이 예외였죠.

PT와 룰라 정부의 우경화에 반발하는 브라질 급진 좌파 정당들의 행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젊고 활력있는 이 대열은 크게는 P-SoL과 PSTU가 주도했습니다.

 

특히, P-SoL은 연금법 개악 반대로 PT에서 제명된 국회의원들이 주도해 새롭게 만든 정당으로 이번 세계사회포럼 기간에 다른 나라 급진 좌파들에게도 상당히 주목을 받았고 이런 관심과 지지를 이용해 포럼 기간에 창당대회를 개최했습니다.  이날 P-SoL은 "룰라와 IMF의 신자유주의에 반대한다"는 커다란 배너를 들고 나와 인기를 끌었지요.

 

저는 트로츠키주의정당이지만 종파주의로 악명 높은 PSTU보다는 더 개방적이고 다양한 세력들이 참여하고 있는 P-SoL에 더 많은 관심이 간 것이 사실입니다. 이 둘은 룰라가 참석한 집회장 앞에서 또다시 만나게 됩니다.

 

한국의 아래로부터세계화 참가단도 급진 좌파들의 대열과 함께 행진해 왔습니다. 활력 면에서는 한국의 활동가들도 남미의 정열적인 젊은이들 못지 않았습니다.

 

한국 참가단이 브라질 급진 좌파 대열과 함께 행진 말미를 차지하게 된 사연이 매우 정치적입니다.

 

PT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세계사회포럼 브라질 조직위가 룰라와 PT에 비판적인 급진좌파 대열을 배제하기 위해 애초 출발 장소보다 앞선 곳에서 NGO 단체와 기타 참가자들을 출발시켰기 때문입니다. 세계사회포럼 운동의 탄생에 기여했던 PT로서는 세계사회포럼에서 자신들에 대한 비판이 부각되는 것이 부담스럽긴 했나 봅니다.

 

조직위원회의 이런 행동은 제가 목격한 것과 일치하는데, 별도 통보를 받지 못한 대열이 출발 장소로 공지된 시청 광장에서 출발 시간을 기다리고 있을 때, 제가 서 있던 육교 바로 앞에는 행진 시작 시간(오후6시) 2시간 전부터 여러 단체들과 참가자들이 행진 출발 장소인 시청 광장으로 가지 않고 행진 준비를 하고 있다가 예정 시간보다 2~30분 가량 먼저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이곳 행진의 흥겨운 분위기는 남미 정치문화의 반영이기도 하겠지만 세계사회포럼이라는 일종의 축제 성격이 반영된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참가자가 수십만에 달한다는 점도 일조했겠지요.

 

하지만, 참가자들의 분위기 뿐 아니라 시위자들이 인도에서 지켜보는 사람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거나 행진 참여를 즉석에서 조직하는 등 서로 호응하려고 노력하는 점들은 한국의 시위 문화에도 반영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구호나 노래들도 훨씬 쉽고 재밌고 대중적이어야겠죠.

 

남미의 시위 구호들은 하나같이 랩처럼 빠르면서도 리드미컬한 것이 흥겨우면서도 강렬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저도 몇 가지 배워서 써먹긴 했는데, 그들이 할 때처럼 리듬을 타는 느낌을 주진 못하더라구요.^^;

 

개막 행진 대열은 각국의 문화 운동가들이 준비한 개막 행사장으로 들어갔지만 행진 대열이 행사장으로 다 들어가지는 못했습니다.

 

다양한 음악들이 연주되고 있었는데, 행진 대열 후미에 있었던 관계로 무대가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하여튼, 이날의 개막 행진은 작년 뭄바이 세계사회포럼의 폐막 행진과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충격이 왜소하게 느껴지고 조금은 정치문화적으로 단조로운 느낌으로 기억되게 만들 만큼 올해 개막 행진은 강렬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수십 개의 나라에서 온 다양한 인종의 수십만 명이 다양한 언어와 목소리, 몸짓과 요구들을 하나의 대열로 아울러서 하나의 운동으로 목소리를 냈다는 점은 그 어느 운동의 목소리보다 위대한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진정한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전쟁과 빈곤, 환경 파괴, 민주주의의 후퇴가 우리의 세계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 모인 말끔하게 차려 입은 권력자들과 백만장자들이 아니라 이 행진에 참가한 수십만 명이야말로 진정으로 이 세계와 60억 민중을 대표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대표하는 이 지구적 운동이야말로 이 세계를 저들이 만들어 낸 위기로부터 구원해 낼 수 있습니다.

 

개막 행진은 전 세계의 양심있는 민중이 외치는 목소리였고 분노였으며, 지구적 정의를 다시 세울 수 있는 활력과 에너지를 세상에 얼핏 선보인 날이었습니다. 이 활력과 에너지와 낙관적 급진주의는 우리 미래에 대한 비관적 전망을 허용하지 않을 듯한 인상을 제게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행진이 보여준 힘만큼 앞으로 전진할 수 있을지는 우리 자신이 참여하고 개입하면서 계속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그 점에서 주요 워크샵들과 집회들에 평가도 중요할 겁니다. 다음에는 워크샵들, 그리고 룰라 집회와 차베스 집회에 대한 비교 등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 개막 행진 사진을 함께 올리면 극적일텐데요, 아쉽게도 카메라를 가져 가지 않았답니다.

개막 행진은 사진을 입수하는대로 포토로그에 올려 놓도록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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