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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세계사회포럼 참가기 1 - 전반적인 감상

출처블로그 : 모여라! 꿈동산♣♧♣ - 김문성의 블로그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열린 제5차 세계사회포럼에 다녀왔습니다.

세계사회포럼 기간이 6일인데도 왕복 비행시간이 각각 2박 3일씩 걸리니 배보다 배꼽이 큰 일정이기도 했습니다.

브라질에 모여든 10만여 명의 활동가들은 말그대로
매우 정치적이고 열정적이었습니다.

특히, 남미의 활기찬 젊은이들이 많았던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새로운 세대의 급진화는 늘 운동에 희망과 낙관을 부여하기 마련이죠.

첫날 개막 행진은 조직위 발표로는 20만이 넘었다고도 하는데,
하여튼 그처럼 많은 이들이 온갖 타악기(?)들과 원색의 배너, 선전물을 들고 '랩' 같은 강렬하고 리드미컬한 구호들을 외치며 행진하는 모습 그 자체로 정치적, 문화적으로 충격이었습니다.

전반적으로 워크샵 조직은 느슨했습니다. 공지도 없이 취소되는 워크샵들이 적지 않았고
저도 아딱(금융거래과세를 위한 국제 네트워크)의 워크샵 2개가 공지 없이 펑크 나는 바람에 귀중한 시간을 날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개최된 워크샵들에서 논의된 내용들은 매우 급진적이었고 논쟁적이었습니다. 따라서 매우 정치적이었습니다. 이 점은 작년 뭄바이 세계사회포럼 때보다도 더 진전된 모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남미의 정치지형을 반영해,
자율주의 세력(국가권력 도전과 정당 형태의 조직을 거부하는 경향, 무정부주의와 친화적)의 강세가 두드러졌고 룰라를 비판하는 남미 급진좌파들의 성장도 눈에 띄는 현상이었습니다.

이는 IMF 계획을 수용한 브라질 룰라 정부에 대한 평가와 대응 문제가 매우 민감한 관심사로 떠올랐던 현상과 연관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좌파개혁주의 정당의 집권 프로젝트에 대한 비판적 흐름이 정당 모델의 거부(자율주의) 또는 더 급진적 정당의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 것이라고 봅니다.

 

이러한 점은 룰라가 참석한 집회와 차베스가 참석한 집회의 차이에서도 확연히 드러났습니다.

 

두 집회 모두 2만여 명인나 운집한 가운데 행사장 근처 체육관에서 열렸는데, 두 집회 모두 열정적인 지지자들로 채워졌으나 참가자들의 연령대, 지지 정도에서 차베스 집회가 훨씬 더 열광적이고 확신에 찬 분위기였습니다.

 

저는 다행히 두 집회 모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이 두 집회를 비교하는 것은 정말 흥미로운 일입니다.

이런 점들은 이후 우리 민주노동당의 부침을 전망하면서 좋은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폐막 행진은 규모는 작았지만 조직된 좌파들 주도로 이뤄졌고 세계사회운동총회에서 결정한 3월 20일 미국의 이라크 점령 종식을 위한 국제공동반전행동에 대한 강조가 두드러졌습니다.

이번 세계사회운동총회는 이외에도 홍콩 WTO각료회의 반대투쟁을 강조했고 현재 필리핀 정부에 군사 저항 중인 필리핀 공산당이 저명한 반세계화 운동가인 월든 벨로 교수를 처형 대상자로 지목한 것에 대한 비난과 방어 호소문을 발표했습니다. 자신과 노선이 다르다는 이유로 물리적 생명을 제거하려는 필리핀 공산당의 극단적 종파주의, 극단적 군사주의는 당연히 비판받아야 합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는 시간이 10시간이나 남아서 잠시 시내에 나갔습니다.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 박물관에 갔는데요, 1800년대 백인 침략사 시절부터 만델라의 당선 시절까지 시간대별로 현장 사료들을 중심으로 꾸며 놓은 박물관이었습니다.

화장실, 공중전화, 걸어다니는 인도까지 백인과 흑인 사용 여부를 구별해 놓은 사진들도 충격이었고
그런 억압 속에서도 신나는 아프리카 토속 음악을 연주하며 백인 군대와 용병들을 향해 걸어가던 수만 명 소웨토 지역 흑인들의 용기도 충격이었습니다.

진정으로 세상을 바꾸는 힘은 이처럼 수많은 무명의 대중들이 직접 보여주는 용기와 헌신, 행동이라는 점, 변혁 활동가, 정치 활동가가 이런 행동을 발전시키는데 기여할 수는 있지만 이 자체를 대체할 수는 없다는 점 새삼 배울 수 있었습니다.

동물처럼 채찍에 맞고 집과 행진 대열에 기관총과 장갑차 포격이 난무해도 봉기를 멈추지 않았던 그들 덕분에 만델라는 석방되었고 아파르트헤이트(차별적인 흑백분리 정책)은 공식 폐지되었고 이후 몇 년 후에 만델라가 집권하기에 이릅니다.

남아공 외출로 졸지에 2개 대륙, 2개 국가를 여행하게 된 감격을 뒤로 하고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 중구지구당 게시판에 올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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