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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줄과 날줄같은 '가해' 와 '피해' 의 관계 - 11:14

 

마지막으로 극장에서 영화본것이 작년 늦가을무렵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라니, 극장표 구입 하는것이 연인이랑 시간때우기만을 목적으로 극장에 들어가는 커플부대원들 보다 훨씬 모자라는 횟수와 빈도를 자랑하고 있는 나쁜 짐승이다. 누구말대로 이제 더 이상 어디가서 영화광이라고 자랑하고 다니지 말아야 할지도 모른다 ㅠ.ㅠ


대한민국 영화광 클럽에서 제명될 위기를 피해보고자 하는 몸부림이 필요했다. 지성이면 여드름... 이 아니라 감천인지 뭔지 몰라도 때마침 간만에 찾아온 이틀 연휴가 내게 찾아온 마지막 기회라고 여기고, 경건한 현충일을 맞이하여 극장가를 찾았당.


에헤, 우째 이런일이. 최근 개봉작중 눈에 띄는 작품이 없던지라 처음 집을 나설때는 '혈의누' 나 보면 되겠지... 했건만, 막상 간판에 걸려있는 '11:14' 포스터를 보는순간 언젠가 봤던 '출발 비디오여행' 에서 소개된 영화의 내용이 생각나면서 심각한 갈등상태에 빠지도록 만들었다. 현충일이니 애국심을 발휘하여 혈의누 를 볼것이냐, 아니면 출비에서 해준 뽕빨날리는 트레일러를 믿고 11:14 를 보느냐, 결국 결정은 10여 차례의 공중제비 끝에 이순신 장군이 해주셨다. ㅡㅅㅡ


'미들톤' 은 미국 어느곳에나 있을법한 평범한 작은 마을이다. 그 평범한 마을의 평범할수 있었던 밤은 11:14 분 에 일어난 특정한 사건을 중심으로 이리 얽히고 저리 얽히며 여러명의 사람들을 사건 속으로 끌고 들어가게 된다. 11:14 분에 일어난 사건을 중심으로 복잡하게 동시적으로 진행되던 사건들은 그 밤이 지나가기도 전에 모든것이 연결되어 있음을 밝히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일반적인 예상이나,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달리 11:14 는 스릴러 영화는 아니다. 여러가지 상황증거와 복선을 제공하면서 플롯을 진행하다가 마지막의 '충격적' 인 반전을 노리는 스릴러 영화의 공식에서 11:14 는 상당부분 벗어나 있다. 굳이 이것과 비슷한 유형의 영화를 꼽는다면 98 년에 개봉한 미카엘하네케 감독의 '퍼니게임' 을 들수 있겠는데, 퍼니게임 이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도전을 선포한것과 달리 11:14 는 관객과 머리싸움 하기를 원치 않는다. 그냥 시나리오를 치밀하게 짰으니 보고 즐겨라. 하는 수준의 영화라고나 할까.


그렇다고 재미없는 영화냐 하면 결코 그렇지는 않다. 실제로 러닝타임이 짧기도 하지만 (80분) 보고 있노라면 시간 가는줄 모를 정도이니 재미라는 측면에서도 충분히 만점을 줄수 있겠다. 말 그대로 시나리오를 쭉 따라가다보면 아~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도록 만드는 영화로, '그레그 마크스' 라는 낮선 감독의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켜 준다.


이야기를 이루는 사건들은 얼핏보면 무질서하게 나열된듯 하지만, 영화관을 나서면서 드는 생각은 등장인물들이 가해자이면서 또 피해자의 위치에 놓이게 되는 하나의 대 원칙위에 씨줄과 날줄로 교묘하게 짜여진 구도라는 것이다. 여자친구의 아버지를 속이려는 남자, 반항심에 휩싸여 불특정다수에게 피해를 주며 폭주하는 젊은이들, 남자친구를 속이고 돈을 뜯어내려는 여자, 그 여자와 성적인 관계만을 추구하는 또 다른 남자친구 등은 '누군가' 에게는 가해자의 위치에 서지만 또 다른 '누군가' 혹은 자신이 가해를 끼친 그 대상에 의해서 다시 피해자의 입장에 서게 된다.


극단적인 묘사와 사건들이 짧은 시간속에 지나치게 축약되어서 쉽게 느껴지지는 않겠지만, 사실 이러한 모습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부딪치게 되는 상황이기도 하다. 인간이 사회생활을 유지하는 이상,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가해자로, 또 누군가에게는 피해자의 위치로 살아갈수 밖에 없다. 때때로 그러한 위치는 영화에서와 같이 완전히 역전 되기도 한다.


그러나 11:14 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에 대해 사회적인 구조의 문제로 진지하게 접근하는 '크라잉게임' 이나 '지구를지켜라' 등과는 다르다. 11:14 는 인간이 어떠한 이유로해서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되는지 라는 설명을, 단순히 우연 ( 혹은 운명 ) 으로만 치부해 버리며 가볍게 비껴가는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범작이 되고 만다. 상업영화의 틀거리 안에 속한다 하더라도, 충분히 성찰할수 있는 주제였음을 감안할때 아쉽지 않을수 없다.


아무튼 11:14 는 잘 짜여진 시나리오와 관객의 허를 찌르는 구성으로 무장한 재기발랄한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두뇌싸움을 거는 듯 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김 빠지게 하며 그야말로 '우롱' 당하는 기분을 느껴보는것도 재미있겠다고 생각한다면, 세월이 흐른뒤에도 찾아서 볼만한 영화로 손꼽힐만한 작품이다. 

 

( 이거는 퍼니게임 속의 한 장면 - "나랑 게임해볼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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