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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량특집-2] 가장 무서운 vs 가장 같잖은

기억에 남는 공포영화 어쩌고 하면서 떠들다보니, 이것도 탄력 받는군요. 받은김에 달려보자는 의미에서, 이제까지 봐왔던 호러물중 제일 무서웠던것과 가장 같잖았던 영화를 한편씩 디벼보고 자는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그런데 막상 '제일 무서운' 걸 뽑으려고 하니 갈등이 때리더군요. 앞서 이야기했던 '공포의 묘지' 나 '매드니스' 도 후보작이고, '프린스 오브 다크니스' (존 카펜터 감독의 또 하나의 역작, 역시 으시시한 분위기라는...), '이블데드 1' (1 편은 고어틱한 화면도 화면이지만, 스토리 플롯도 좋았습니다), '아미티빌의 저주' (어릴때 이거보는 바람에 하우스 호러물에 약한거 같다는 ;;) 등등 명작들이 꽤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뭐니뭐니 해도 이것만큼 무섭게 본게 없는거 같습니다. >.<


소름 - 2001 년작. 윤종찬. 한국.

 


택시기사로 일하는 주인공은 거의 입주민들이 떠나버린, 철거직전의 낡고 싼 아파트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느날 일을 마치고 돌아오다가 편의점에서 일하는 여자와 마주치게 되고, 남편에게 심한 폭력을 당하며 힘든 삶을 유지하는 그녀에게 같은 밑바닥 인생으로서의 연민을 느끼며 점점 빠져들게 되죠. 한편 그 아파트에는 30 년전 바람난 남편이 부인을 죽이고 갓난아기를 버려둔채 도망갔던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떠도는데, 이야기가 진행되면 될수록 그 사건이 일어났던 장소가 현재 주인공이 살고 있는 장소와 같을것이라는 심증이 강해집니다. 


프랑스 소설가 모파상은 '목걸이','비계덩어리'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사람이지만, 말년에는 '산장' 이나 '물위', '광인' 같은 단편환상소설 (괴기소설과 비슷하게 취급되지만 그것과는 구분되는 쟝르로, 몽환적이고 신비스러운 분위기의 작품들이 많습니다) 들을 많이 집필한바 있습니다. 결국에는 정신질환에 걸리고 말았는데, 정신질환에 걸렸었기 때문에 저와같은 작품들을 썼는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그건 확실하지 않죠 ^^;


좌우지당간 그가 집필한 작품중 '공포' 라는 제목의 단편중에 공포에 대해 정의를 내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두 신사가 야간기차를 타고 가는데, 창밖으로 숲속에서 불을 피우고 있는 노파가 보입니다. 작품속의 주인공들은 인간은 강도와 같은 눈앞의 위협에 대해서도 공포심을 느끼지만 미지의 것, 이해할수 없는것에 공포심을 느낀다며 그 노파역시 야심한 시간에 혼자 무언가 은밀한 행위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공포의 대상이 된다는 내용의 대화를 나누지요. 개인적으로 우리가 초자연적인 것에대해 느끼는 공포심에 대한 가장 명확한 정의가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still #7


'소름' 이 우리에게 주는 공포는 그와 같은 종류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듯이, 소름에는 직접적인 유령이나 괴물, 참혹한 시체나 살인귀에 대한 모습은 보여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싸구려의 낡은 아파트는 그 자체로 이미 불안감을 안겨주는 대상이며, 무엇인지 알수 없는 종류의 불안한 분위기는 시간이 갈수록 보는 사람들의 심리를 압박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과연 주인공이 살고 있는 집이 과거의 끔찍한 살인이 일어났던 바로 그 집인지, 주인공과 그 사건과는 무슨 관계가 있는것인지, 영화는 무엇하나도 직접적으로 이야기 해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관객들은 더 영화에 몰입해야 하고, 더 적극적으로 생각하며 이해할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서 정체를 알수 없는 공포, 발끝부터 스물스물 올라오는 '소름' 을 느끼게 되는거죠. 이 영화에서 귀신이 있는지 없는지, 마지막에 주인공을 불러세운것이 과연 누구인지 하는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스토리 전개 자체로 이미 충분히 무서우니까요.


이런 종류의 호러영화는 매우 드문 것입니다. 때문에 많은 관객들이 결말을 확실히 보여주지 않는것에 대해서 불만을 표시하며 심지어는 '무슨 영화가 이러냐' 하는 불만도 내뱉지만, 모파상의 말을 빌자면 이것은 '눈앞의 위협이 주는 공포' 가 아니라, 무엇인지 알수 없는것. 뚜렷하게 정체가 파악되지 않는것에 대한 공포라고 정의하고 싶네요. 아무튼 '소름' 이야말로 이제껏 봤던 모든 공포영화를 통틀어 가장 무서웠던 영화임에 틀림 없습니다. 최소한 저에게는요 ^^;

 


가장 무서운것을 선정하는것과 달리 가장 같잖은것을 뽑는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더군요. 아무리 호러에 약한 분이라 하더라도 부담없이 보고 즐길수 있는 '껍데기만 호러' 인 작품을 최근에 보고 말았습니다. 그건 바로 바로 요놈.


하우스 오브 데드 - 2003 년작, 미국/독일/캐나다 합작. 우웨 볼 감독.

 


얼마전에 봤음에도 불구하고 줄거리조차 기억나지 않는 작품이라서, 아니 대체 그런게 있기나 한가 싶은 작품이라서, 줄거리는 엠파스에 게시된 그것을 퍼와서 대충 자릅니다. >.<


버려진 외딴 섬에서 젊은이들의 파티가 벌어지는데, 배를 놓치고 뒤늦게 커크 선장의 배를 대여해 섬으로 향한 사이먼, 그렉, 알리시아, 신시아, 카르마는 섬에 도착한 뒤 파티장에 도착하지만 엉망이된 파티장과 친구들의 모습이 아무도 보이지 않자 이상한 느낌에 휩싸입니다. 근처를 헤메다가 폐허가 된 낡은 집을 발견하곤 안으로 들어가자 그 안엔 파티장에서 살아남은 루디와 휴, 리버티가 숨어있었고, 휴는 알리시아 일행에게 자신이 찍은 비디오를 보여주는데. 그 영상은 좀비들이 나타나 파티장을 습격해 일순간에 모두를 살해하는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한때 오락실만 갔다하면 무조건 찾았던 게임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하우스 오브 데드' 였죠. 세가 (SEGA) 사의 명작 건 슈팅 게임인데, 총을 들고 다양한 좀비들과 사투를 벌이는 내용으로 '바이오 해저드' 의 건 슈팅판 이라 할만한 스토리성을 가진 멋진 게임이었습니다. 가장 최근에 본건 무기가 권총에서 샷건으로 바뀐 3 탄 이로군요. 개인적으론 속사가 가능한 권총이 더 맘에 듭니다만 ^^;


영화 '레지던트 이블' 이 '바이오 해저드' 의 영화판이듯이, 이 영화는 그 게임을 원작으로 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문제는 너무 게임에 충실했다는 거죠. 어느 정도냐 하면 오프닝 크레딧부터 아무 거리낌없이 게임의 화면을 그대로 가져다 쓰고, 그것도 모자라 영화 중간중간에 게임 플레이 화면을 집어넣으면서 컷을 나누는 형태입니다. 이쯤되면 감독의 대담성(?) 에 혀를 내두를수 밖에요 -,-;;


그것도 모자라서, 좀비들과 인간의 대규모 액션신에는 '매트릭스'의 유명한 총알 피하기 장면을 마구잡이로 가져다 붙입니다. 게다가 스토리라인은 그야말로 엉망, 마지막 보스와의 대결도 코미디... 무엇하나 이쁘게 봐줄만한 구석이 없죠. 분장이나 특수효과도 싸구려티가 그대로 나는 바람에 전혀 무섭지 않습니다. 덕분에 호러팬들에게 무지하게 욕 들어먹은 영화가 바로 이놈이죠.


still #1

 

그런데 너무 엉망이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드는지도 모르겠지만, 가만보면 감독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게임을 영화화 한다는 기획 자체가 이미 철저하게 상업적인 자세인거고, 기왕 그렇다면 철저하게 망가져 보자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어차피 게임기반 영화들은 스토리는 포기하기 마련입니다. '레지던트 이블' 처럼 어중간한 완성도를 추구하느니 철저하게 못만든 영화가 되어보자 하는 생각도 있었을거란 말이죠. 사람들이 그토록 욕해 마지않는 총격전 와중의 캐릭터들에 대한 360 도 회전샷을 보자 그런 생각이 더 짙어졌습니다. 그건 전형적인 게임화면에서의 등장 인물의 프로필을 보여주는 연출 방법이거든요. 혹평을 예상하면서 굳이 그와 같은 연출을 집어넣은데에는 뭔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좌우지당간 비교체험 극과 극 식으로 허접하게 디벼보고나니 할 말은 다 한거 같아서 후련합니다. 두 영화 다 구하기 어렵지 않은 작품이니 한번쯤 구해보시면 좋을거 같네요. 둘다 공포물을 싫어하시는 분들도 별 부담없이 보실수 있을겁니다. '소름' 이 무섭기는 하지만 형식이야 호러 보다는 일반 드라마에 가까운 것이고, '하우스 오브 데드' 는 그져 싸구려 액션물을 보는 느낌이 나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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