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미 대선 - 이라크 사람들의 판단이 정확한 것이다.

미 대선결과를 두고 실망스러워하는 목소리들이 높다. 미국 민중들의 의식은 아직 성장하지 못했느니, 미국 민주주의는 죽었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이 많다. 동시에 부시의 재선이 한반도 안보문제에 악영향을 끼칠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들도 높아지고 있다. 4일 MBC 100분토론의 미 대선결과에 대한 토론은 주로 이라크 점령정책의 유지와 한반도 안보문제에 주안점을 두고 진행되었다.


부시가 탈락하고 캐리가 당선 되었으면 '그래도' 대 이라크 정책이 조금은 개선되었을거라고 생각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지만, 정작 이라크 민중들은 부시의 재선에 대해서 우리처럼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미국이 왜 자신들을 침략하고 점령정책을 지속시키려 하는지에 대해서 분명하게 파악하고 있는것이다. 우리가 종종 망각하고 있는것은 조지 부시와 이른바 그 '네오콘' 들이 특별한 제국주의적 마인드를 가졌기 때문에 이라크를 침략한것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나라, 더 정확하게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세계 자본주의체제의 필요에 의해서 이라크가 침략당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조지 부시가 당선이 되었건, 존 케리가 당선이 되었건 관계없이 이라크에 대한 점령정책은 지속되었을 것이다.


민주당은 부시를 반대했지만, 이라크 철군을 제안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케리는 미군 점령군의 규모를 늘리고 싶다고 공언했다. 7월 31일 '파이낸셜 타임스' 는 '내용 변화가 아니라 색조 변화가 케리 외교 정책의 특징이 될 것이다.' 라고 주장하며 '그럴듯한 미사여구를 앞세우지만, 사실 케리의 선거 운동은 미국의 군사력 사용 문제에 대해 [조지 W 부시와] 마찬가지로 완강한 태도를 보이는 듯하다.' 라고 보도했다. 케리와 민주당은 미 제국주의를 결코 해체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안 그래도 군색했던 미국의 복지국가[사회보장제도]를 1996년 복지’개혁’법(Welfare ‘Reform’ Act)으로 파괴해 버린 자가 바로 민주당 출신 대통령 이었던 클린턴이었다. 그는 연방 재정 적자를 감축하기 위해 공공지출을 삭감하는 데서 공화당 소속 전임자들이나 후임자보다 훨씬 더 가혹했다. 케리의 경제자문들은 이런 긴축 정책들로 복귀하겠다고 약속했다. ( 다함께 37호 '케리가 의심스런 이유 - 알렉스 캘리니코스' 에서 인용 )


부시의 재선이 특별히 한반도 안보에 더 위협적이지는 않다. 이라크와 마찬가지로 북한역시, 미국의 '시스템' 이 원할때 적대적인 행위를 취하게 될것이다. 평화네트워크의 정욱식씨는 그래도 민주당은 북한과 대화를 원한다며 '대북정책은 민주당과 공화당이 가장 첨예하게 맞서온 분야 가운데 하나' 라고 말하지만 미국이 북한과 대화한다고 해서 안전이 보장되는것은 아니다. 지난 10년 동안 한반도안보 에서 가장 큰 위기는 민주당 클린턴 정권하에서 벌어졌던 1994년 전쟁 일보직전까지 치달았던 상황이었는데, 이것은 1993년부터 시작된 북미간 핵 협상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난 일이다.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미국이 동북아에서 패권을 유지하기를 바라고 있으며, 그 본보기로 북한에 대한 경제적.군사적 압박은 지속되었고 앞으로도 지속시킬것이다. 대북정책을 두고 공화당과 민주당이 첨예하게 맞섰다는 정욱식씨의 말은 사실이 아닌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지금 북한에대해 섣불리 손을 쓰지 못하고 있는 까닭은 다름아닌 그들의 대 이라크 점령정책이 실패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그들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두 개의 전선에서 싸울 여력이 없다. 북한 핵 폐기에 '보상은 없다' 며 강경입장을 고수하던 미국이 다시 대화테이블을 마련하려고 하는 이유는 북한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이라크 점령 상황의 악화로 말미암아 미국이 거기에 발목이 묶인 것에 따른 것이다. 그래서 급하게 주한미군 중 일부를 이라크로 파병하기도 했다. 이라크 민중들의 저항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으며 오히려 미군의 통제권 밖에 놓인 도시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으며, 이라크는 미국의 가장 '약한고리' 에 틀림없다. 반전, 파병반대운동의 촛점을 한반도로 돌리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미국이 이라크에서 패배한다면 한반도를 포함한 전세계에서 미국의 개입 능력은 현저하게 약화될 것이라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부시의 재선은 미국 민중들의 낮은 의식을 반영하는것이 아니다. 미국 민중들은 지난 8월 29일 뉴욕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 반대해 무려 50만명이 모여서 부시정권의 이라크 점령정책, 동성애자 권리박탈, 후퇴한 환경관련 법률, 애국자법 등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라크에서 돌아온 미군 병사가 반전운동에 참여하기도 한다. 이러한 분위기들에 힘입어 많은 언론들이 부시의 낙선과 케리의 당선을 예측했던 것이다.


그러나 케리는 '주어진 밥상을 스스로 엎어'버렸다. 케리는 전쟁문제에 대해서도 복지에 대해서도 전혀 부시의 대항마다운 자세를 보여주지 못했으며 오히려 같은 내용의 정책들을 펼쳐가겠노라고 선언했다. 케리가 대안이 아닌이상, 굳이 그를 찍어줄 필요는 없는 것이었다. 어차피 이놈이나 저놈이나 마찬가지라면, 기존 정권을 지지해서 안전하게 가겠다는 선택은 충분히 나옴직한것 아닌가? 어설픈 '차악론' 따위는 애초에 존재할 자리도 없었던 것이다.


현재 자본주의적 세계질서를 주도하는 국가는 미국이다. 아프리카의 작은 국가에서 대통령 선거가 벌어져도 별 관심없어 하는것은 그것이 미국의 경우처럼 전 세계적인 파급력을 끼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 대선결과를 아쉬워 하는것은 충분히 이해할만도 하다. 그렇지만 당장 한반도 위기가 심화될거라느니 하면서 '오버' 하는것도 금물이다.


부시가 재선에 성공했다고 의기소침해 하거나 침울해질 필요는 전혀 없다. 이라크 민중들처럼 부시와 케리가 다르지않다는것을 올바르게 인식한다면, 여전히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것은 미국의 아킬레스건이 되어가는 이라크 민중들의 저항이라는것이 점점 더 분명하게 보일것이다. 반전운동은 여전히 건재하다. 이라크 침략전쟁에 반대하는 전 세계적인 운동에 함께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강력한 대안과 힘이 될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