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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함께] 노동운동 위기와 대안 논쟁

다함께 43 호

노동운동 위기와 대안 논쟁 - 전지윤

http://alltogether.or.kr/

 

요즘 박승옥(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원), 박태주(한국노동교육원 교수), 김형기(경북대 교수) 등이 노동운동을 비판하고 사회적 타협을 주장하면서 노동운동 노선 논쟁에 불을 지피려 하고 있다. 이들 사이에는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두드러진다.  


이들은 “왕자병 걸린 노동운동”이 “‘멸망으로 가는 완행열차’를 탄 채 졸고 있다”(박승옥)고 노동운동의 위기를 말한다. 낮은 노조 조직율도 위기의 증거로 제시된다.
그러나 12퍼센트의 노조 조직율 자체는 우파 노조인 한국노총 조합원 수는 줄었지만 좌파 노조인 민주노총 조합원은 9년 만에 20만 명이나 증가했다는 사실을 보여 주지 않는다. 또, 1998년부터 해마다 거의 갑절로 늘어나고 있는 파업건수는 사뭇 다른 그림을 보여 준다.


물론 한국 노동운동이 급속히 성장하면서, 그와 동시에 투쟁을 통제·회피하는 노조관료주의도 발전해 왔다. 이 때문에 IMF 이후 노동운동이 구조조정에 더 효과적으로 맞서지 못했고, 전투적 조합주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노동운동이 강력하지만, 그와 동시에 정치적 위기, 지도력의 위기를 겪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1998년 민주노총 지도부가 노사정위에서 정리해고를 합의한 것, IMF 이후 ‘총파업’이 몇 차례나 무산되며 민주노총이 “양치기 소년”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 올해 보건의료노조 지도부가 지부 투쟁을 가로막는 산별 합의를 한 것 등은 모두 이런 위기의 징후이다.


하지만 이들이 내세우는 위기의 주된 근거는 다른 곳에 있다. 이들은 중심부(대기업·정규직)와 주변부(중소기업·비정규직)로 “노동 내부의 양극화”(박태주)를 지적하고 노동운동이 “대기업 정규직 남성 노동자 중심”의 “또 다른 가진 소수”(박승옥)의 운동이 됐다며 “노동운동의 정당성과 도덕성을 근거지에서부터 허물어뜨릴 … 정당성의 위기”를 말한다.
중심부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의 향상이 1987년 이후 민주노조 건설과 투쟁의 성과라는 점, 주변부 노동자의 열악한 상황의 책임과 원인이 정부와 자본의 신자유주의 공격과 분열지배 정책에 있다는 점, 그나마 대기업의 조직된 노동자들의 선도적 투쟁이 전체 노동자들의 조건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는 점 등은 이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따라서 이들은 주변부 노동자들도 민주노조 건설과 투쟁에 나서도록 중심부 노동자가 적극 고무하고 연대해야 한다는 대안을 내놓지 않는다.


물론 박승옥은 “한국 노동운동이 … 비정규직 문제, 연소 여성노동자 문제, 이주노동자 문제를 자기의 문제로 끌어안고 나아가야[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로부터 나오는 실천적 대안은 연대 투쟁이 아니다. 이들은 다만 ‘노동 내부의 양극화’의 책임과 원인이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임금’과 ‘투쟁’에 있는 양 몰아붙이며 파업·투쟁 ‘자제’와 “연대 임금” 등 ‘양보’를 말한다.
“노동운동은 … 이제 폭력 행동도 그만두어야 한다. … 파업에 대해서도 신중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박승옥)
“소모적인 파업 투쟁은 … 노동계급의 힘을 약화시킨다.”(김형기)
“대기업 노동자들의 양보는 더 큰 단결을 위한 전술적 후퇴인 것이다.”(박태주) 
이런 대안이 일리가 있으려면 중심부 노동자들의 투쟁은 주변부 노동자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반면, 중심부 노동자들의 양보는 주변부 노동자들의 조건을 개선해야 한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모두 현실과 어긋난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소장에 따르면 대기업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과 비정규직 증가는 아무런 상관 관계가 없었다. 오히려 노조 조직률이 높아질수록 비정규직이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비정규직 고용에 관한 6가지 신화>).
실제로, 대기업 노조가 높은 수준으로 임단협을 타결하면 중소·하청업체도 그 수준에 맞춰야 하는 압력을 받는다. 그래서 보수 언론이 대기업 노조 파업에 게거품을 무는 것이다.    반면, “대공장 노조가 양보[하면] … 상대적 비교치가 낮아진 중소영세기업 비정규 미조직 노동자들의 임금은 더욱 정체되거나 삭감될 뿐이다.”(하부영, ‘대기업 노조의 자기 성찰과 모색’, ≪노동사회≫ 10월호.)
이들의 대체적 결론은 대기업 노조가 투쟁을 멈추고 “제도적 참여”(박승옥), “사회적 대타협”(박태주), “역사적인 대타협”(김형기)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박태주는 “노동운동이 공장의 담, 기업의 울타리를 벗어”나 “한국 경제의 어려움”을 돌아보라고 주문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거대한 물결을 애써 외면한 채 … 살 수는 없”(박태주)으니 “노동자들이 …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김형기)는 것이다.
하지만 1998년 민주노총이 ‘국민경제의 이익과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 노사정위에 들어가 정리해고와 근로자파견제를 합의한 결과는 사회적 양극화와 비정규직의 확대였다.
이러한 ‘양극화’와 ‘비정규직 문제’를 들어서 ‘노동운동의 위기’를 말하던 이들이 바로 그 문제들을 더욱 심화시킬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위한 ‘역사적 타협’을 말하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나아가 박태주는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파견법 철폐가 실현 가능한 이야기냐”고 말한다. 


올해 금호타이어 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조 건설을 고무하고 함께 싸워 정규직화를 쟁취했다. 서울대병원 노동자들은 산별노조관료들의 타협과 통제를 거슬러 투쟁해 승리했다. 노동운동이 “기업의 울타리를 벗어나” 계급적 연대로 나아가고 경제적 요구와 정치적 요구를 결합해서 강력히 투쟁한다는 대안은 이런 투쟁 속에서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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