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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영화제 - 볼리바리안 혁명 : 베네주엘라 민중의 삶과 투쟁

* 이 글은 진보네님의 [트랙 팩 03 : 노동영화제] 에 관련된 글입니다.

서울 올라온뒤 노동영화제는 빠지지 않고 챙기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만 매년 1회씩 열리는 영화제에서 보는 영화의 편수는 고작 하루참가, 1~2 편이 전부다 보니 도저히 갔다왔다는 실감이 안 났었다. 올해 11월은 예년보다 더 바쁜 달이었다. 온라인에서 주절거리기를 주로하고 집회가 있으면 참여보다는 구경을 주로하면서도 '이정도도 어디야' 하며 자기 합리화에 능숙했던 예년과는 달리 올해는 나름대로 이런저런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에, 영화제 같은거 쫓아다닐 시간은 더 없을거라고 지례짐작을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하루 참여에 1~2 편을 보는것이 고작이었던 예년에 비해 올해는 날짜수로 3일에, 7편을 보는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아무래도 내게 있어서는 '시간없다' 라는 말이 핑계에 지나지 않는것이다. 시간이 없는게 아니라 열정과 노력이 없는것이다. 관심이 있으면 인터넷 돌아다니며 뒹굴거리는 행위대신에 적극적으로 끼여들게 되는거다. 지방에서 올라와서 하루이틀 보고 가는 사람들도 있는걸보면 '시간없다.' 그거, 거짓말이다. 아무튼 이제껏 영화제라고 쫓아다닌거 중에 이번 노동영화제 만큼 개,폐막작을 비롯해서 작품들의 양이나 질에서 풍성했던적도 없는거 같다. 지난번에 올린 '계속 된다 - 미등록이주노동자 기록되다' 를 비롯해서 모든 작품에 감상후기를 다 남겨야 하겠지만 그러지는 못할거같고 아쉬운대로 개,폐막작에 대한 인상만 좀 끄적여 봐야겠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개막작은 '볼리바리안 혁명 : 베네주엘라 민중의 삶과 투쟁' 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물이다. 이 작품은 폐막작및 몇개 작품과함께 노동영화제 섹션중 '혁명은 진행중' 이라는 섹션에 속하는 것으로, 국제 미디어 활동가의 연대체 '깔리 이 미디어' 의 일원인 '마르셀로 안드라데'씨 가 연출한 작품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도전적이다. 이 작품은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시기를 제4차 세계대전의 시기로 규정한다. 1,2차 세계대전은 잘 알려져 있는 그것이고, 3차 세계대전은 흔히들 냉전 이라고 부르는 시기를 말하는 것으로 이 시기에 일어난 미.소 양국의 침략전쟁, 내전 및 쿠테타의 배후조종, 지역분쟁들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약 2600만의 인구가 희생되었다 하니 3차 세계대전이란 말도 틀린말이 아니다. 그러면 4차 세계대전은? 그것은 IMF 나 WTO 같은 신자유주의 기관들을 앞세운 국제적 자본이 전세계의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가하는 살인적인 억압과 이에 맞서는 민중들의 투쟁이다. 영화의 무대인 베네수엘라는 세계 3위의 산유국이라 한다. 세계 석유의 약 13퍼센트가 베네수엘라에서 생산된다. 1930년대까지 베네수엘라 석유는 대부분 미국 기업들이 소유하고 있었으나, 76년에 국유화 되었고 베네수엘라 국영석유회사(PDVSA)가 석유를 통제했다. 그러나 석유때문에 이득을 본것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80년대 중반에 베네수엘라 인구의 36% 에 달하는 사람들이 극빈층이었다. 1989년에 대통령 카를로스 안드레스 페레스는 그가 '대전환' 이라고 부른 조처들을 도입했다. 그것은 시장 지향적 전환이었고 국제통화기금(IMF)이 요구한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도입한다는 결정이었다. 그것은 베네수엘라 노동자 대다수의 생활수준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페레스의 결정에 반발하는 격렬한 시위가 여러 날동안 계속됐고, 정권은 경찰과 군대를 동원해 이를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거리에서 총에 맞아 사망한 사람만도 수백에 이른다. 잔인한 탄압때문에 투쟁은 성공하지 못했으나, 민중들의 마음에는 아직 분노가 남아 있었다. 1992년 당시 육군 중령이던 우고 차베스는 일군의 젊은 장교들과 함께 '강력한 사회 변혁 의지를 가진 진보적 군인 집단이 위로부터 경제·사회 개혁을 추진할 수 있다' 는 사상으로 반정부 쿠테타를 기도하지만 실패한다. 대중은 주기적으로 거리로 쏟아져 나와 변화를 요구했지만 부패한 정권은 무자비한 탄압으로 일관했다. 좌파라고 불릴만한 사람들이 싸우는 민중들에게 전망도 제시하지 못하고, 투쟁을 지도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우고 차베스는 답답한 민중들의 가슴을 뚫어주는 희망처럼 보일수 밖에 없었다. 쿠테타에 패배한 차베스는 감옥에 갇혔지만 사람들은 연일 그를 지지하고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으며 결국 차베스는 94년에 석방된다. 베네수엘라의 경제는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도입하여 번영한것이 아니라 급속히 붕괴되어 갔다. 공공부문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회사들이 매각, 민영화되었고, 실업율은 증가하는데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이 서민들의 목줄을 졸랐다. 영화속에 등장한 어떤 시민은 버스가격이 200% 나 올랐는데 분노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었겠느냐고 말한다. 36%에 달했던 베네수엘라 빈민층은 몇년 지나지않아 65%로 늘어났으며, 사람들은 더 이상 참을수 없었다. 그럴때 차베스는 대중들의 저항에 자신이 볼리바르주의 라고 이름붙인 이데올로기를 제공했다. 19세기의 라틴아메리카 해방 투사 시몬 볼리바르의 이름을 딴 그 이데올로기는 민족주의적이고 포퓰리즘적인 경향이 강했다. 차베스는 더이상 길거리에 버려지는 아이들이 없도록 하겠다며 다수의 희생을 바탕으로 부를 축적한 소수를 격렬하게 비난했으며 이는 민중의 마음을 대변한 것이었다. 결국 그는 98년에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되었으며 사람들은 이를 볼리바르 혁명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지금 베네수엘라의 공식 명칭은 베네수엘라 '볼리바리안' 공화국이다. 차베스는 헌법을 개정하여 보다 많은 사람들의 권리가 보장되는 새로운 헌법을 만들었다. 대기업의 횡포로부터 소규모 자영농이나 어민들의 권익을 보호할수 있도록 했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교육의 접근권을 보장해주기도 했으며, 여러가지 국책 사업들을 전개하기도 했다. 민중들은 차베스의 개혁이 자신들을 빈곤으로부터 구해줄것이라고 믿고 있으며, 2002년의 우파 쿠테타나 2004년 보수층들이 조직한 소환투표로부터 그를 지키고 구해내었다. 일부는 베네수엘라가 차베스의 위로부터의 혁명과 민중들의 아래로부터의 저항이 잘 조화된 이상적인 케이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차베스는 말로는 신자유주의를 비판하지만, 그의 정부 재정은 정부 서비스 삭감이라는 신자유주의 원칙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 그 결과 가난한 사람들은 계속 가난해졌다. 또,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삭감되고, 그들이 당연히 받아야 할 보너스 지급이 취소됐다. 보수우파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경제적,정치적 권리를 누리고 있다. 심지어 차베스에 맞서는 가장 강경한 보수파 신문의 편집장도 '차베스로 인해 구체적으로 침해당한 권리가 뭐냐' 라는 질문에 '그런건 없다' 고 답할 정도이다. 때문에 그들은 지속적으로 차베스에 맞서는 이런저런 행동들을 조직할수 있는 것이다. 차베스는 2000년 국영석유회사(Petroleos de Venezuela)에 대한 개혁 조치를 결정했을 때 기득권층과 결정적인 갈등구도에 돌입했지만, 사실 이때조차 기득권세력을 무력화 시키는 조치는 아니었다. 베네수엘라 경제의 대부분은 아직 이들 보수우파들의 수중에 남아있으며, 아직도 길거리에 버려지는 아이들이 있다. 그리고 우파들의 공격이 있을때마다, 차베스는 민중의 힘 보다는 주로 군부의 힘에 의존하여 권좌를 지키려 하고 있다. '볼리바리안 혁명 : 베네주엘라 민중의 삶과 투쟁' 은 차베스가 등장한 배경과 그를 가능하게했던 사람들의 역동적인 투쟁모습이 잘 담겨진 영화다. 이 영화를 보는것만으로 투쟁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고무받을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차베스 정권의 한계에 대해서 거의 언급하지 않은것은 큰 단점이다. 차베스의 개혁은 여기저기서 지지부진하며, 진정으로 민중을 위한 것인가 하는 부분에 의문점이 많다. 그것은 베네수엘라의 혁명이 아래로부터의 거대한 대중적 저항을 통해서 수립된것이 아니라, 쿠테타와 국민투표라는 위로부터의 혁명방식에 의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위로부터의 혁명, 또는 위로부터의 개혁을 주장하는 다른 모든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차베스는 기존의 보수세력들과 타협할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그 때문에 진정한 사회변혁은 자꾸만 연기될수밖에 없으며, 결국 이루어지지 못한채 미완의 것으로 남게 되는것이다. 베네수엘라 혁명은 '진행중' 이며,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차베스의 개혁성과가 그 혁명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된다. 진행중인 혁명은 노동계급 자신의 것이어야 한다. 다행히 영화를 제작한 '마르셀로 안드라데'씨 는 상영후 있었던 토론회에서 자신역시 노동자들의 투쟁이 핵심적이라고 생각하며, 남한 노동자들의 운동에 대해서 많이 배우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조직들을 이용해 독자적으로 행동할수 있는가, 차베스와 같은 위로부터의 혁명이 아니라 진정한 아래로부터의 권력을 수립하고 보수우파들로부터 민중의 것을 되찿아올수 있는가 하는 여부가 베네수엘라 혁명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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