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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영화제 - '점거하라, 저항하라, 생산하라!' (the take)

* 이 글은 진보네님의 [트랙 팩 03 : 노동영화제] 에 관련된 글입니다.

이번 노동영화제의 폐막작인 '점거하라, 저항하라, 생산하라' (the take) 는 이번 노동영화제의 모토이기도 하다. 자본주의적 세계화에 맞서서 새로운 대안을 창출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경기악화로 인해 자본가들이 임금을 체불한채 폐쇄하고 떠나버린 버려진 공장을 노동자들이 '점거' 하고 경영진없이 노동자들의 합의와 원칙에 따라 생산을 시작하는 모습들에 대한 다큐멘터리 이다.


'노 로고' 의 저자이며 반세계화 운동 진영의 주요 이론가이기도 한 나오미 클라인은 신자유주의적 생산양식을 대체할 대안을 찾기위해서 캐나다의 미디어 운동가인 아비 루이스와 함께 아르헨티나로 향한다. 아르헨티나는 신자유주의 경제질서가 망쳐버린 대표적 국가가운데 하나이며, 동시에 버려진 공장을 점거하고 생산하는 공장점거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아르헨티나는 원래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가운데 하나였다. 그러한 나라가 오늘날의 피폐한 경제위기를 맞이한것을 두고 주류 언론에서는 '지나친 노동자투쟁과 포퓰리즘의 결과' 라며 왜곡 선전해왔다. 그러나 진실은 그렇지않다. 1940년대말까지 아르헨티나 경제는 육류·식료품 수출로 호황을 누리고 있었지만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유럽의 농업이 되살아나고 미국의 농산품이 유럽으로 수출되면서 주된 타격을 받았다. 더불어 산업의 성장도 지지부진했다. 친노동정당 이라는 일반적인 평가와는 달리, 페론주의 정당(정의당)은 경제 위기에 직면하자 노동자들의 임금을 동결하고 외국 투자자들에게 시장을 개방했지만 그 성과는 일시적이었다. 페론은 노동자들을 공격하면서 저항에 부딪혔고, 권위주의적 정책으로 대중의 미움을 받았다. 결국 위기 관리 능력 부재로 지배 계급의 불신과 불만을 받아 가다가 1955년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다.


영화속에서 전 대통령 카를로스 메넴은 매우 우스꽝스러운, 자본가계급을 대변하는 독재자의 이미지로 등장한다. 그러나 그 역시 페론주의자 출신으로, 89년 집권당시 국영기업들을 대부분 사기업화했을 뿐 아니라 일자리를 대폭 줄였고, 파업 노동자들을 잔혹하게 탄압했다. 이 당시 아르헨티나는 IMF가 권고한 정책들인 규제 완화·민영화·노동 유연화를 적극 도입했고, 그래서 세계 지배자들로부터 '아르헨티나가 IMF의 모범생' 이라는 찬사를 받도록 만들었다.


모범생의 신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1991년 아르헨티나는 페소화를 달러화에 연동시키는 페그제를 실시해 아르헨티나 경제를 국제 금융시장의 리듬에 더 종속시켰다. 파국은 1997년 동아시아 위기 때 찾아왔다. 동아시아에서 금융 공황이 발생하자 아르헨티나에 들어온 해외 자본들이 서둘러 빠져나갔다.
당시 대통령 데 라 루아는 경제위기가 찾아오자 모든 은행계좌를 동결함으로써 중간계급과 노동계급의 예금을 사실상 몰수했지만, 그런 와중에 국제투기자본은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하룻밤에 몇억달러씩을 빼내갔다. 페소화가 달러화와 연동돼 있어서 아르헨티나가 입은 타격은 남미 경제에서 더욱 심각했다. 소위 경제 기적을 일구었다는 바로 그 신자유주의 정책이 경제 기적을 하룻밤 사이에 신기루로 만들고 아르헨티나 경제를 심각하고도 장기적인 불황에 빠뜨렸다. 여기에 물 사유화를 비롯한 신자유주의 정책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고통속으로 밀어넣었다.


당연히 저항이 뒤따랐다. 화이트칼라 노동자들과 부에노스아이레스 인근의 하층 중간계급 사람들이 도심으로 몰려나와 실직한 육체 노동자들과 함께 대통령궁을 포위했다. 이틀 동안 경찰과 유혈낭자한 충돌이 벌어져 약 30명이 사망한끝에 결국 데 라 루아는 헬기를 타고 도망쳤다. 아르헨티나는 그 뒤로도 4주 동안 대통령이 네번이나 바뀌는 혼란끝에 두알데가 겨우 집권에 성공했다. 그러나 2003년 2월 1일 두알데 정권이 예금 인출 제한 조치를 계속 유지하려고 하자 아르헨티나 주요 도시들에서는 다시 대규모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생필품을 살 돈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은 예금 인출 제한 조치가 위헌이라는 대법원의 결정을 반겼지만, 정부는 대법원의 결정을 무시했다. 그러자 시위대는 '다 꺼져버려라', '우리 돈을 돌려 달라' 고 외치면서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에 절망만 있는것은 아니다. 아르헨티나는 신자유주의 파산의 결정판이면서 또한 신자유주의의 대안을 보여 주는 뚜렷한 사례이기도 하다. 1990년대에 아르헨티나 정부가 전면적인 사기업화를 추진하자 실업자들이 폭증했는데, 그러면서도 사회보장 혜택을 전혀 받지 못했다. 실업 노동자들은 대량해고에 맞서 전투적 대중운동인 피케테로스 운동을 건설했다. 경제 위기 때문에 지금 실업자 수는 네 명 가운데 한 명 이상의 수준이다. 영화속에 등장한 공장점거운동 역시 실업자운동중 하나이다.


공장점거운동은 폐쇄된 공장을 노동자들이 점거하고 자체적으로 생산에 돌입하는 운동이다. 브룩만 양복공장에서 일하던 몇십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처음으로 시도한 이 운동은 자논 세라믹등 몇몇 모범적인 사례들을 선보이면서 아르헨티나 민중들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역민들은 '전 경영진보다 더 근면해지고 높은 품질에 가격도 낮아졌다' 며 공장점거운동에 돌입한 노동자들에 대해 높은 지지를 보내고 있다. 점거한 공장에 대해 경찰의 공격이 임박해지면 많은 사람들이 연대하러 오기도 한다. 공장점거운동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맞서는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공장점거운동은 한계도 가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경제적인 상황개선을 우선시하는 운동이다보니 권력에 도전하지 못하고 있으며, 때문에 법원으로 국회로, 자신들이 공장을 운영할수 있도록 해달라고 '애원' 하러 다녀야 한다. 당연히 법관이나 국회의 권력자들은 대부분 그런 요구를 묵살하며, 오히려 사유재산을 침해하지 말고 공장에서 퇴거하라고 명령한다. 그들은 자본가의 편이지 노동자의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점거된 공장은 해당 노동자들이 합의한 원칙에 따라 운영되는데, 대부분 전 경영진을 배격하고 동일임금을 적용하지만 어떤곳은 전 경영진과 협력하며 동일하지 못한 임금을 배분하면서 운영되는곳도 있다. 이러한 한계점들은 전체사회적인 변화를 추구하지 못하는 운동방식들 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모습들이 아닌가 한다.


영화의 주요한축 가운데 또다른 하나는 노동운동을 하는 여성과 그 어머니로 대변되는 아르헨티나 대통령선거를 바라보는 민중들의 입장이다.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아르헨티나에 끌어들인 전대통령 카를로스 메넴의 재출마와 페론주의당 대통령 후보인 키르츠네르, 양자에 대해서 마티 라는 이름의 노동운동가 여성은 둘다 똑같은 놈들이고 그 어떤 '구세주' 도 우리에게는 필요하지 않으며 스스로의 힘을 믿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직 많은 민중들은 그녀의 어머니처럼 페론주의에 대해서 완전히 기대를 접고 있지는 않은것처럼 보인다. 메넴은 거리를 경찰로 채워 치안과 질서를 회복하고 사유재산을 보호하겠다고 큰 소리치며 결선투표까지 진출하지만, 결국 경제상황의 악화를 견디지 못한 대중들의 분노의 목소리에 밀려 기권하게 된다.


지금 키르츠네르는 아르헨티나를 정치적으로 안정시키기 위해서 IMF와 더 좋은 조건으로 협상해야 하고, 노조 관료들에게 잘 보여야 하며, 좌파들에게 어떤 상징적 제스처를 취해야 하고, 실업자들의 불만을 조금이나마 들어주어야 한다는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가 실제로 한 일이라고는 '고용 창출 계획' 을 통해 실업수당을 제공하고, 이를 페론주의 조직과 피케테로 조직들이 분배하게 하는 정도의 것이 전부다. 그런 태도 덕분에 그는 지난해 선거 이후 잠시나마 안정을 누릴 수 있었고 좀 유약한 일부 좌파들한테서 약간의 지지를 끌어낼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의 개혁도 립서비스에 지나지 않을것이다.


키르츠네르나 페론주의당 따위에게 자신의 미래를 맡겨서는 제대로 된 어떤 대안도 나올수 없다. 나오미 클라인은 마치 '대안찾기' 에 너무 골몰한 나머지 저항하는 모습들을 의도적으로 배재하고 점거 생산 이라는 양식에 촛점을 맞춘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저항하지 않고 무슨 대안이 나온단 말인가? '점거하라-저항하라-생산하라' 가 아니라, '저항하라-점거하라-생산하라' 가 되어야 할것이다. 법관이나 국회에 애원하는 모습이 아니라, 아르헨티나 노동자들 자신의 조직된 힘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전체사회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저항하고 점거하고 생산하는' 운동이 될때 그것이 진정한 우리의 대안이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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