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이 쓰더니, 손학규도 썼구나.

당췌, 집단적인 허언증은 치료될 가망이 없다.

이 손발이 오그라드는 반성문들을 어찌할꼬?

이러다 이명박도 쓰겠네.

 

정치는 경제에 조응한다.

위기는 위기인가 보다.

인민주의는 이런식으로 발로하는건가?

 

둘다 공통적으로 '역동적인 복지'니 '적극적 정부'니 라는 가당찮은 수사로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고자 한다. 민주노동당, 혹 진보신당과 바로 이곳에서 만나게 될텐데 반성문들은 연립정부를 갈수록 현실화시키고 있다. 새로운 축적체계 없이 복지는 가능하지 않다.(손학규는 중국을 언급하는데, 중국 자본주의와 미국 자본주의는 구체적인 동역학은 차치하고 추구하는 이념의 차원에서라도 대체 무엇이 다를까? 손학규 눈에는 팍스콘이 보일리 없다.) 정부는 어떠한 체계 안에서든, 언제나 적극적이었다.(당신들이 했던 일들은 모두 국가의 이름으로 했던 것임을 잊지 말아라.) 이들은 신자유주의를 '이념'으로 축소시키고 있고, 반성문 몇 장 쓰면, 당근과 오이 중 무엇을 먹을지 고르는 일처럼, 신자유주의를 케인즈주의로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몰역사적인 이들의 관념론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가 반영된 전형적인 몰골이다. 그래서 나중에도 반성문을 쓰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보수언론이 여론을 호도해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버릴 수 없었다고. 평생 반성문만 쓰며 세상을 바꾸겠지. 그들은 실제 역사를 바꿔온게 누구였는지는 알지도 못할 뿐더러 시선을 돌리지도 않는다.

자본주의를 낭만적으로 부정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많았다. 중요한 건 그 효과다. 신자유주의 비판이 생산관계의 적대적 모순에 대한 비판이여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