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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독립영화>에 대한 단상

 

영상이론과 김현선

 

뜨거운 게 좋아.

-복잡한 심경을 뚫고 지나가는 단순한 정신의 행로-


일단 ‘독립영화에 대한 독립영화’를 보고 난 나의 소감은 역시 ‘뜨거운 게 좋다’이다. 과거 어느 순간에 나를 사로잡았던 생각은 인간은 뜨거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때는 지금과 다른 상황에서 다른 것을 보면서 그 뜨거움을 간절하게 바랐었지만 지금 이 시점에 ‘변방에서 중심으로’라는 영화를 보면서, 그러는 내내 울컥하고 목까지 차오르던 그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때 그렇게 나를 간절하게 했던 ‘뜨거움’이다. 그래서 이렇게 나는, 다시 한번, ‘인간에게는 너무도 당연하게 일정 정도의 따뜻함을 유지하는 피가 흐르고 있으며, 그것이 바로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되고, 또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 치열해질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영화 안에서 ‘독립영화’는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독립영화가 태생부터 정의되어진 것들에 포섭되지 않는 정의되지 않은 것들의 이름이었던 것처럼. 그래서 ‘독립영화가 무엇이냐?’라고 묻는다면 독립영화는 ‘(     )에 반하는 영화’라는 정의되지 않는 정의 혹은 부정형의 정의밖에 내릴 수 없다. 그리고 이렇게 비어있는 그 무엇은 무한하게 새로 생겨나고 빠르게 크기을 갖춰 나가며 그와 동시에 그에 걸맞는 힘을 행사하는 모든 유형의 권력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래서 결국 독립영화는 변방에서 중심으로 몇 번이고 자신의 존재를 부르짖지만 그 메아리는 다시 변방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숙명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독립영화가 (     )에 반하면서 찾아나가는 또 다른 무엇은 무엇인가? 나는 이 질문 앞에 지극히 개인적이고 잠정적인 결론을 가져다 놓았다. 그렇게 내가 다다르게 한 독립영화의 목적지는 결국 ‘사람’이다. 그 사람은 이제껏 이 시대의 공간을 겸손하게 점유해 온 하나의 사람이며, 외진 구석이 본래 자신의 자리였으리라 묵묵히 받아들이고 순간을 견뎌온 우직한 사람이며,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사람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살아있는 사람이며, 이렇게 저렇게 부딪치게 되는 차가운 발길질에 투쟁해 온 뜨거운 사람이다. 그래, 그 사람들은 그 자체가 ‘뜨거움’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런 저런 수식이 필요없는 그냥 사람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람과 영화와 이들을 바라보는 나는 무엇으로 만날 수 있는가?

그래, 그건 또 ‘뜨거움’이다.

그래도 나는 아직 차가운 걸 차갑다고 느낄 줄 아는 사람이니까.


이렇게 하여 드디어 다다르게 된 나의 목적지.

또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잠정적인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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