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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산의 기술記述

<단편영화산책>

강 지 혜

파산의 기술記述

 

내용-1날조된 희망들에 대해

재건축 아파트를 부수고 있다. 분명 저 조밀한 평수 대 아파트에는 가난한 누군가 들이 살았을 텐데. 여명처럼 들리는 어느 아이들의 웃음 혹은 울음소리가 들린다. 그들은 일찍이 간소한 짐을 챙겨 그곳을 떠났을 터. 청약이다 분양이다 이미 몇 채의 집을 소유한 자들이 재산을 더 불리기 위해 이곳에 달라붙을 것이다. 재건축은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기 위한 자들에게만 희망적이다. 희망이 보입니다 라는 채용공고를 보는 남자. 그는 희망을 보았을까? 비정규직인 인터뷰어들은 행복하다고 한다. 막연한 희망.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광고와는 엄연히 다른 삶들. 나는 내내 영화 앞에 나온 지하철 선로에 뛰어든 남자를 지울 수가 없다. 한 달에 85만원씩 96개월간 갚아야 된다는 블라인드의 남자. 정말 열심히 일해서 갚겠다는 말을 한다. 그의 미래를 점쳐본다면 선로에 뛰어 든 후 암전이 된 그 것이 아닐까. 이미 그는 블라인드 뒤에서 그림자로 된 모습이다. 이제 불만 꺼지면 될 듯. 이 희망은 집행자들, 승리를 선포한 자들의 사기극이다.

 

내용-2파산, 숫자들에 대해 혹 시간.

수학선생님이 다녀가셨다. 아니 자본주의가 오셨다. 하물며 시간은 12시가 넘으면 다시 1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그 시간마다 생산되어 정리된 미친 숫자들. 자본의 숫자 그 숫자를 불리기 위해 다른 곳에서 빼앗아온 파산의 숫자들이 미친 듯이 성장한다. 사망의 원인조차 숫자로 개조된다. 말도 안 되는 숫자들이 넘쳐난다. 숫자로 정의되는 삶. 강제 집행 중인 암전된 화면에서 200만원 205만원 220만원 이라고 부르는 숫자는 너무나 과학적이고 견고하고 폭력적이라서 감히 딴죽 걸지 못한다. 내 삶이 숫자로 분해되어 파산되어 빠져나가는 광경들.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영화가 시작한지 44분 50여초가 지났다 우리가 보아온 풍경들에 관해 주석을 달고 맺음말을 달아주어야 할 시간이라고 한다. 하물며 영화조차도 어떤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는 강박에 있는데 40여 년간 집행자들에 의해 휘둘러진 우리의 역사에 대한 거짓된 결론과 숫자들은 어떻게 정의되어야 하는가. 그들은 시간을 인질삼아 카멜레온처럼 변하며 알리바이를 늘리고 있다.

 

 

방식

밥상 위에 차려진 반찬이 넘친다. 지하철CCTV 화면에서부터 라디오, 인터뷰들, 시시각각 치고 들어오는 난쏘공의 대사들. 엔딩에 나온 빠르게 스케치를 하는 남자의 손길처럼 숨 가쁘다. ‘소재에서 최대한 멀어지는 것이 목표였다.’ (감독의 말) 과연 그럴까? 멀어지는 것은 이미 불가능 한 것은 아닐까? 만약 그러하다면 감독은 이미 내성을 가져버린 우리들의 유약한 선한 얼굴을 질타할지도 모른다.

 

방식-1 파산자(여)들, 대비 교차

왜 하필 파산된 인터뷰어들은 셋 다 여성이었을까? 월드 이코노믹 포럼 장면과 교차 된다. 그 포럼에 참석한 양복쟁이들은 모두 남성들이다. 그리고 대부업 과장이라는 자도 남자다. 그는 자기자본 적정성에 대해 떠들며 대기업보단 가계대출이 남는 장사라는 식으로 말하며 이 시장을 누가 먼저 선점할 것인가에 대해 말한다. 안타깝게도 이 시장에서 처참하게 망가진 세 여성은 그 희생물이다. 산 입에 거미줄 치랴 하는 식으로 붉은 립스틱을 칠한 여성은 처음엔 입부분만 클로즈업 되어 있다. 이러한 남/여 대비 구조는 더 극적인 효과를 준다. 더구나 애 아빠가 3개월을 못 넘겨 혹은 애기 아빠가 놀기 시작 등등의 인터뷰로 이 바닥에는 먼저 침몰하고만 가장들의 그림자도 보인다. 점차 여성들의 얼굴이 넓게 클로즈업 된다. 하지만 잔해물을 꽉 비틀어 쥐는 중장비기계의 몸짓아래 그녀들은 무방비상태로 공개된 기분이 든다.

 

뒤에서 가장 강하게 대비되었던 부분은 서울시청 앞 민주화운동 콘서트 장면과 죽창을 든 민주노총 시위장면이다. 감독은 따뜻한 기념식의 밤, 얼음 같이 차가운 대낮의 딱딱함이라고 표현한다. 이러한 표현자체도 우리가 흔히 알던 밤과 낮의 느낌을 전복시킨다.

 

방식-2 낯설게 하기?

선로에 뛰어든 남자. 암전이 된다. 강제집행을 온 집안은 암전처리 된다. 마치 누군가가 눈을 질끈 감아버린 듯한 느낌이 든다. 강제집행원의 사무적인 말투가 관객의 귀를 후벼 판다. 그는 눈을 질끈 감은 게 아니다. 어두운 화면에 진열한 난쏘공의 문장들처럼 우리를 더 불편하게 할 심사인 거 같다. 호기심조차 갖는 것을 부끄러워 할 만큼 그는 단호하다. 이건 눈물까지 쏙 빠지게 만들만큼의 냉정함이다.

인터뷰어들의 모습이 (이런 영화기술방식에 대해 모르겠음.) 저화질의 화면으로 처리되기도 한다. 처음에 나는 그들이 웃음을 짓거나 행복 희망에 대해 서술할 때 더더욱 그 장면이 더 자주 잡히는 것 같은 느낌도 받았다. 마치 매스미디어가 던져주는 날조된 희망을 말하는 느낌도 든다. 비정규직 그들은 잠재적인 파산을 안고 있다. 하지만 잘될 거야 희망적이다 라고 말한다. 중간에 삽입된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광고에서 나온 문구는 인터뷰어의 삶과는 현저히 차이가 있다.

 

마치며

식약청에서 발표한 황색포도산구균의 내성이 높아지는 것만치로 영문도 모른 채 미세먼지에 당하는 것처럼 우리도 집행자들에 의해 철저하게 세뇌되는 이 메커니즘에 깊은 내성을 지닌 채, 영문도 모른 채 파산되어 가고 있다.

영화가 끝나고 든 바보 같은 생각은 이 영화 무척 세련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감독이 넘치도록 말하고 싶은 세상의 기록들에 숨이 차기도 했다. 더구나 속이 다 후련해야 하는데 왜 이리 갑갑해지기만 할까. 어쩌면 감독이 말하는 집행자들의 정체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똑바로 소리 내어 그들을 세세히 다 잡아내는 그의 모습에 질리기도 했다. 하지만 차가우면서도 무언가 넘쳐나는 어휘로 포장된 내레이션을 들으면 그의 분노가 얼마나 오랫동안 깊게 정리되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켜켜이 쌓여 우리에게 다가온 전단지의 벽처럼 우리는 또 오랜 시간동안 그 전단지 지층을 벗겨내며 진정한 나의 적을 보아야 한다. 양치기 소년들이 양산되는 그 곳을 박멸하길 바라며.

 

나의 목숨을 달라하면 너의 가슴에 칼을 꽂겟다. 라는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하고 싶었던 가장 중요한 말이 이 것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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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산의 기술 질문!

김현지

 

1. 이제것 봤던 영상들과는 다르게 영상 편집과 텍스트의 조합이 두드러지는 영화였습니다. 이런 형식을 뭐라고 부르는지 궁금하고 다른 예들도 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 이런 형식을 선택한 감독의 의도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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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의파다(리뷰)

우리는 정의파다 <발제 리뷰> 

영상이론과 3학년 박소영

 

 

우리는 정의파다 (We Are Not Defeated 2005, 이혜란)


개인적 질문들

독재정권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의해 희생자로 전락해 버린 ‘언니들’

‘그녀들의 투쟁은 젠더의 차별에 의한 것일까?

가부장적 정치 이데올로기를 침범한 단죄인 것인가?’

가부장적인 이데올로기로 똘똘 뭉친 한국 사회에서 여성노동자들의 위치는?

그리고 그녀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어떠한가?

무시되고 짓밟혀 버린 그녀들의 ‘아름다워야 했을 그 시절’은 어떻게 찾을 수 있는가?

‘언니들’은 여성도 노동자도 아닌 사회에서 소외된 타자로 존재할 수 밖에 없었는가?

수십 년이 지난 지금의 여성노동자들의 위치는 과연 나아졌는가?

 사회 정치적 시선

 이혜란 감독이 만든 〈우리들은 정의파다>는 '다큐멘터리 옥랑상' 수상작이며

제8회 여성영화제 상영 당시 가장 큰 화제를 몰고 온 작품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1978년 동일방직에서 해고당해 현재까지 28년 동안 복직투쟁을 벌이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인천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공장 중 하나였던 동일방직은 1972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여성 노조지부장을 선출했고 여성 중심의 노조 집행부를 탄생시켰다. 남성 관리자 중심의 어용노조가 득세하던 당시 분위기에서 15세~18세 정도의 어린 나이의 '공순이'들이 노조를 장악했다는 것은 매우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당시 동일방직에는 1,300여 명의 노동자가 근무하고 있었고 그중 1,000명이 여성이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것은 당연한 일이었는데도 당시 분위기는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여성 중심의 민주적인 노조가 결성되자 노조의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고 '공순이'로 불리던 여성 노동자들은 그야말로 노동자로서 정체성을 획득해 나가기 시작했으며, 동일방직의 근로조건은 비약적으로 개선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주변의 노동자들이 동일방직 노동자들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동일방직 노조가 다른 사업장의 노조원들을 교육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사업주와 전국 단위 노조 상부조직, 그리고 박정희 정권은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노조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부당한 탄압에 맞서 싸우는 조합원 124명을 해고시켰으며,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전국의 사업장에 배포해 이들의 재취업을 막았다.

갈 곳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잘 곳도 없던 이들은 재취업도 힘든 상황에서 부당한 해고에 맞서 싸우며 긴 고난의 세월을 견뎌야 했다.

2001년에는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에서 이들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했고, 2004년에는 이들 중 37명을 동일방직에 복직시키도록 권고 조치했다. 하지만 동일방직 측은 아직도 권고조치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며, 그녀들은 현재까지도 124명 전원 복직을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고 있다.


바라보고 싶은 시선


나이 어린 노동자에게 언니 노동자가 말한다. “넌 오지 않아도 돼, 겁이 날 거야” 후배가 답한다. “언니들을 따라갈래, 언니들은 해야할 말을 했을 뿐이잖아” 언니는 웃는다, “간들이 부었구나”

 영화는 이 길고 긴 투쟁의 세월을 살아 온 여성 노동자들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거의 인터뷰만으로 스토리가 전개되면서 중간 중간에 사실 중심의 정보가 끼어들어 가는 방식이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객관적' 이 아니라 '주관적'이다.

시나리오는 '언니'(감독의 표현)들의 말투로, 언니들의 기억대로, 언니들의 판단대로, 언니들의 감정대로 만들어진다. '지부장님'이 아닌 '언니'이고, 어용노조와 사주와 유신정권은 '그놈들'이다.

똥물을 퍼서 숨겨 놓았다가 힘없는 어린 여성들에게 뿌려 대는 그놈들에게 화가 난다기보다는 '인생 왜 그렇게 사는지 불쌍'하게 보이는 것이고, 대의명분이 아니라 '언니 따라 간다'이며, 해고를 당했을 때 '이제 누가 우리 동생 공부시키나'가 걱정이고, '그놈들'이 원칙을 내세우며 복직이 불가능하다고 할 때 '내가 거기서 얼마나 뼈빠지게 일했는데…'이며, 복직되면 보란 듯이 내 손으로 사표 써서 사장 코앞에 내던지고 나오는 게 바람이고, '이것이 옳다'라고 강요하기보다는 '난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다'가 그녀들의 이야기다. 또한 영화는 특정 사건을 부각시키지 않는다. 동일방직 하면 떠오르는 '똥물사건'이나 '반나체시위사건'은 그 투쟁의 맥락에서 중요하긴 하지만 그녀들의 입장에서 볼 때 가장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더 이상 잃을 것도 없고 다른 방법도 몰랐던 그녀들에게 똥물사건은 어이가 없는 일이며, 반나체시위는 잡혀가지 않기 위해 그 자리에서 생각해 낸 아이디어였다. '설마 옷을 벗어도 잡아갈까?' 했지만 '그놈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너희들 여기서 다 죽여도 내가 감방 갈 것 같냐?'는 것이 '그놈들'의 반응이었다. 반나체시위사건이 어린 여공들의 반나체 때문에 사회적으로 떠벌려졌지만, 이렇듯 그녀들에겐 '그놈들'의 거대한 벽을 확고하게 느끼게 한 계기였을 뿐이다. 또한 영화는 특정 인물을 부각시키지도 않는다. 인터뷰를 한 이 중에는 노조 지부장을 지낸 사람도 있고 평조합원이었던 사람도 있지만 지부장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도 않고 그가 지부장이었던 아니던 별로 관계없이, 누가 지부장이었는지 관객들이 기억하지 않아도 문제될 것 없이 이야기는 전개된다. 누가 어떤 지위에 있었는지, 누가 어떤 일을 했는지가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언니들’의 이야기 방식에 익숙해지고 각 인물의 감성과 인생사들이 친근하게 전이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당시 시위를 주도했던 여성들이 어떻게 자신을 노동자로 자각하고 권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남성 노동자와 다른 여성적인 모습들, 예를 들면 ‘사철나무’나 ‘차돌’ 같이 여성 취향이 반영된 모임 이름들, 세익스피어 전집을 할부로 사면서 뿌듯해 했다는 고백들, ‘같은 여자이고 언니기 때문에 조합원들을 믿을 수 있었고 힘든 일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는 증언처럼 여성적인 모습이 많이 드러난다. 이런 모습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단순히 ‘여자들이 뭉쳐서 싸웠다’는 사실의 증명이 아니라, 이 투쟁이 다른 남성 위주의 투쟁과 어떻게 달랐으며 흔히 약점으로 지적되던 여성성이 어떻게 강점으로 작용됐는가에 대한 실질적인 증언을 영화에 담고 있다. 회사와 경찰 폭력에 대항하는 투쟁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많은 사진 속에서 이들은 웃고 있다. 회사에서 쫓겨나 합숙을 하며 공동체 투쟁을 하면서조차도 예쁘게 화장하는 친구가 있었고 그 친구가 화장하는 모습이 재밌어서 신기한 눈으로 구경했다는 말이나, 속옷과 칫솔을 같이 쓰고 같은 이불을 덮고 자면서 간지럼을 태우고 싸우고 면서 정이 들고 공동체 의식이 생겼다는 말은 ‘동지의식’처럼 남성적이거나 무성적으로 느껴지던 단어에 전혀 다른 감성을 부여한다. 이런 동지의식은 ‘순종하며 살아야 할 여자가 노조를 하는 건 말도 안 된다’며 가족이 반대하는 순간에도 사라지지 않고, 경찰에 잡혀가 욕을 먹고 얻어맞고 구치소에서 구류를 사는 순간에도 사라지지 않을 만큼 강했으며, 30년 가깝게 세월이 흐른 현재에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처럼 ‘언니들’의 이야기는 어떤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아닌 그녀들 인생 그 자체이며, 노동자라는 계급에 앞서서 여성들만의 유대감과 정서가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돌아와서

 1970년대의 여성 공장노동자들을 우리는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가?

 십대 소녀들이 하루 14~15시간의 노동을 각성제 타이밍과 왕소금으로 버티며 남자들 임금의 반도 안 되는 급여를 받던 그때 그 시절에 대해 들어 본적은 있는가?

누구나 알다시피 당시는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로 1972년은 유신체제가 시작된 해이기도 하다. 유교적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이 정권 하에서 민주노조를 만들고, 여성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집행부를 구성하자고 들고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대부분 노동의 역사를 이야기 할 때 주로 이야기되는 것은 남성 노동자의 역사이다. 여성 노동자들은 타자로 밀려나 있어야 했던 시간들이 분명 존재하고 있다. <우리는 정의파다>는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이었던 70년대 여성 노동운동의 한 순간을 담고 있으며 앞으로의 우리 모습이 어떠해야 할지에 대한 과제 또한 던져주고 있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

여공1)과 ‘정치적인 것’

 여성 노동자들은 가족 및 공장, 그리고 교육체계 등 각종 제도와 담론에 의해 사고와 행동에 있어서 제약을 받고 있었다. 그만큼 여성 노동자들은 공적 영역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어려웠다. 특히 유신 정권하에서 주창되던 유교 이데올로기에 있어서는 여성이 남성과 같은 일을 하면 여성다움을 상실하고, 남성은 무기력해진다는 담론이 우세했었다. 이는 여공이 노조라는 ‘의식적인 활동’을 한다면 남성에게 위협이 된다는 사유방식이 전제된 것이다. 그러나 여공의 익명적인 지식들에 대한 탐색은 여성 노동자들이 ‘정치적인 것’과 무관하다는 관습적인 지식체계와 담론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게 만들었다. 많은 남성 노동사가들은 ‘정치적인 것’, ‘의식적인 것’ 그리고 ‘정치 투쟁’은 거칠고 전투적이며 공적이며 국가와 정부에 격렬하게 반항하는 무엇으로 규정했다. 대부분 노동사 서술에서 정치적 계급의식의 소유자는 그 주체가 남성이든 여성이든 ‘남성적인 경험’ 혹은 ‘무성화된 경험’으로 통일된 주체였다. 따라서 여성 노동자들의 전투적인 투쟁 역시 중성화된 주체로 묘사되었으며, 내러티브의 구성도 남성적 표상에 의해 독점되어 왔다. 그 결과 노동자 혹은 노동운동을 다룬 서술에서 여성 노동자의 존재는 간과되었고, 가족, 젠더와 욕망 등 역사적 중요성은 무시되었다. 또한 여성 노동자들이 노동자로서 권리위식을 획득하더라도 이것은 여성으로서 경험에 입각한 것이 아닌, 중성적인 ‘투사’란 담론의 형태였다. 여성 노동자들은 점차 의식화 과정에서 노동자로서 ‘계급 정체성’과 자신의 ‘인격’에 대해 자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안에 ‘여성’으로서 문제의식은 여전히 빠져 있었다. 의식, 조직화 과정에서 여성 노동자들은 자신이 여성이라는 것에 앞서 ‘노동자’임을 인식해야 했으며, 중성적 투사 - 동지라는 담론들에 의해 주체화되었다.


남성지배 노조

 1970년대 한국 남성 노동자의 세계 안에는 ‘남성-친자본-폭력-권위적’이라는 의미의 계열이 자리 잡고 있었다. 1970년대 노조 운동사는 이러한 내부 균열 구조 아래 진행된 것이었으며, 특히 남성지배 노조의 위계질서는 전형적으로 작업현장의 그것과 ‘일치’했다. 다시 말해 거의 대부분 남성 작업반장들이 직장 대표위원 내지 대위원이 되었으며, 작업장의 성별 위계질서는 그대로 노조의 질서로 이어졌다. 이런 점에서 동일방직에서 여성 조합원들이 기존의 작업장 질서, 권위를 대표하던 남성들 대신 대의원이 된다는 일은 작업장과 노조 질서, 대표 체계를 뒤흔드는 사건이 되었다.

  남성 중심의 위계질서는 노조 운영에서 여성을 배제하고 남성 간부노조를 만들려는 남성 노동자들의 ‘무의식적 습성’에서 비롯되었다. 남성 노동자들은 여성 노동자가 간부를 하면 노조와 남성 노동자들이 무기력해진다는 담론을 생산해냈고 이를 통해 여성 노동자들을 노조와 작업장 내부에서 ‘부차적인 존재’로 만들고자 했다. 이것은 한국 사회 내부에 존재하는 성별 분업 담론과 깊은 연관을 지닌다.


잃어버린 ‘이름’ 찾기

 산업화 시기 노동체제의 수준에서 노동자들은 정치사회와 시민사회로부터 배제되어 있었다. 하지만 여성 노동자들의 경우 또 하나의 ‘배제의 메커니즘’을 지니고 있었다. 바로 노조 및 작업장에서의 ‘성별 위계질서’가 그것이었다. 산업화 시기 여성 노동자들은 ‘산업전사’이자 ‘승공의 역군’등 군사주의적 남성 주체로 호명되었다. 작업장 위계질서역시 군사주의적으로 조직된 성별 위계질서의 또 다른 변형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주목해야할 점은 여성 노동자들의 잠재력이었다.

 1970년대 여성 노동자들에게 노조 그리고 노조의 조직적 기반이었던 소모임은 그녀들의 ‘잃어버린 이름’을 돌려주었다. 공장으로 오기 전 여성 노동자들은 사적 가부장제의 젠더 불평등 아래 교육과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박탈당했다. 또한 작업장에서는 성별위계질서 하에서 ‘소모품’으로 전락했으며, 이런 과정은 그녀들이 ‘시민’으로서 권리를 여성이란 ‘차이’로 인해 박탈당하는 과정이었다. 이러한 빼앗긴 권리를 되찾아 오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최초의 여성 노조 지부장을 선출하게 된 1972년 동일방직 노조 선거였다.

 하지만 여성 노동자가 노조 지부장을 맡는다는 것은 ‘여성답지 못한’것으로 의미화 되었고, 이는 공사 영역의 남녀분리와 연관이 있었다. 유교담론에 기초한 가부장제도 아래에서 국가조직과 가정은 질서유지를 위한 위계적 관계로서 특징을 지녔다. 특히 남성과 여성은 신체적 특징과 능력이 다른 것이 당연시되었으며 맡아야만 하는 직분도 달라야 한다고 규정되었다. 이른바 ‘분리 원리’는 남녀 역할과 활동 공간 분할의 원리로서 공적영역과 사적 영역을 성별에 따라 나누고 여성의 공적 영역 진입을 차단했다. 이처럼 공사영역의 분리 관념이 여전히 지배적이던 시기에 여성 노동자가 노조의 지부장이 되었다는 사실은 ‘경악’이자 ‘충격’이었을 것이다.

 IMF위기 이후 한국 사회의 계급구조는 급격히 ‘양극화’되었다. 특히 계급구조 변화 과정에서 주목을 받는 집단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다. 비정규노동자들은 고용주와 정부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같은 노동자인 ‘정규직 노동자’들로부터 주변화 되었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 가운데 다수를 차지하는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자로서 인정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정규직 노동조합으로부터 차별을 받는 ‘주변 계급’(under class)이 되었다. 현재 한국 사회 곳곳에는 ‘여성’이자 ‘비정규직’이란 이름으로 새로운 ‘주홍 글씨’가 그녀들의 이마에 새겨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마치 산업화 시기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정부, 고용주 그리고 남성 노동자들의 시각이 다시 재림하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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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의파다>에 대한 질문 - 김현선

<우리는 정의파다>에서는

 

인물들과 관련된 객관적인 자료에 '우리는'이라는 주어를 사용하는 주관적인 나레이션이 덧입혀진 화면과 이와 관련된 인물들의 '증언'을 담고 있는 화면이 나란히 연결되어 있다. 또한 인물들의 증언을 담는 과정에서 카메라는 실내를 벗어나지 않고, 정지되어 있으며, 고정된 프레임 안에서 인물들을 담아내고 있다. 이 영화에서 카메라가 밖으로 나가는 경우는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는 그녀들의 투쟁을 담을 때 뿐이다.

 

첫 번째 질문.

앞서 지적했듯 객관적인 자료에 주관적인 나레이션이 덧입혀지고 뒤이어 이와 관련된 인물들의 증언을 연결한 방식은 과거에 있었던 사건들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고 객관적인 자료로는 파악할 수 없었던 현실 혹은 진실과 관련된 이야기를 알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유효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와 반대로 같은 화면에 객관적인 나레이션을 사용할 경우 영화는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얻어낼 수 있는가?

 

두 번째 질문.

<우리는 정의파다>의 투쟁의 과정에 있어서 '과거'에 해당되는 부분은 실내, '현재'에 해당되는 부분은 실외로 카메라의 위치를 구분지을 수 있다. 또한 '과거'에 대한 증언에 있어서는 집단적으로 인물들을 다루지 않고, 같은 상황에 대한 개개인의 이야기를 개별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현재'에 있어서는 집단적인 행동을 보여주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과거'와 '현재'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은 감독의 어떠한 의도가 반영되었다고 보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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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의파다 - 질문지

김현지

 

 

1. 저번 시간에 독립영화가 갖는 영화적 요소에 대한 발표 비중이 적다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우리는 정의파다는 어떤 영화적 요소들을 갖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주제에 맞게 잘 연출 되었는지? 저는 영화적 요소라는게 정확히 뭔지 몰라서 이런 보도와 기록으로 이뤄지는 영화에 영화적 요소가 있다는 것을 놓치고 지나갔던 거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우리가 이 독립영화를 볼 때, 영화라고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요소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래서 제가 영화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을 깰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2. 우리는 정의파다에서는 좀 더 진지하고 오랜 시간 동안 온 몸과 마음으로 집중력 있게 투쟁해온 여성 노동자들이 나옵니다. 투쟁한다는 것에 대해 저번 시간에 제가 회의적인 발언을 했는데, 이 영상을 보며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발제자 분 께서는 투쟁에 관해 어떤 의사를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투쟁의 장점과 단점, 필요 유무 같은 것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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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의파다 질문지

우리는 정의파다 를 보고.

 

강지혜

 

 실은 앞서 본 <얼굴들>에서의 여성(중첩된 가정 내의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하며 제대로 몰입해서 싸워지지 못하는 모습들을 보았다. 싸우면서도 드는 회의(모든 운동이 그러겠냐만은)는 여성이라는 한계에서 파생되는 듯해서, 나는 무언가 좀 더 가열차게 싸워주길 바랐다.

 

 하지만 <우리는 정의파다>를 보며 <얼굴들>에서 느꼈던 아쉬움이 싹 씻겨 내려갔다. 더구나 박통 시절, 중앙정보부를 통한 탄압이었다니. 그녀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진보적이고 허를 찔렀으면 그들이 직접 나섰겠는가.

 

 35(정확한 년도가 기억나지 않는다..)년의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그녀들은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어느 곳에서도 일할 수 없었고, 폭력전과자의 전과를 갖게 되었고, 남편에게 빨갱이라고 폭력을 당했다.

 

 <얼굴들>의 주인공들에게 <우리는 정의파다> 다큐를 보여주면 그녀들은 좀 더 힘을 내지 않을까? 그녀들에게 힘을 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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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사는 집>에 대한 질문

<더불어 사는 집>에 대한 질문들                              영상이론과 박소영

 

 

'더불어 사는 이들'의 아이러니....

   먼저 드는 의구심은 '노숙자들의 공동체가 과연 성립될 수 있는가?' 라는 점이다.

그들은 <더불어 사는 집>이라는 타이틀로 그들만의 공간을 꾸려나간다. 

노숙자라 하면 -타의에 의해서든 자의에 의해서든- 정상적인 사회체제의 부적응자로 낙 인 찍힌 이들로  익히 알고 있다. 이러한 그들이 그들만의 질서와 규칙을 만들어 작은 사회를 만들어 가는 과정은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목표는 잃어버린 생존권을 찾는  '투쟁' 이라 말하고 있지만  과연 그들의 의도에 타당성이 있는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비약해서 말하자면 차라리 사회에 정상적으로 복귀하는게 더 나은 선택이지 않을까 싶다. 아니 자신들의 권리를 소중히 생각했다면 애초부터 노숙자가 되지 말았어야 했다.

사회에 민폐를 끼치게 된 그들의 선택에 시비를 가리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처한 상황에서 그들의 주장과 논리가 다소 억지스러워 보여서 이와 같은 생각이 든 것이다. 노숙자들이 꿈꾸는 -그들이 인간답게 살고싶다는- 세상은 어찌되었든지 현실과 심한 괴리감을 느끼게 한다. 먼저 사회와 가정으로부터 무책임했던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고, 그들에게 닥쳤던 불우한 상황을 좀 더 현명하게 대처할려고 했던 자세가 우선시 되었더라면 그들의 입장에 우리가 한발 더 가깝게 다가갈수 있지 않을까?

사회와 떨어져 노숙자가 되어버린 그들이 또 다른 사회에 편입하여 현실과 맞서는 장면을 과연 우리는 어떠한 기준과 자세로 판단내지는 이해를 해야 하는 것일까?

분명한 것은 그들을 진정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써 이해하고자 한다면 가벼운 동정심만으로는 안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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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사는 집' 발표을 위한 유인물

 

<192-339: 더불어 사는 집이야기>

‘집이 없다’는 것과 ‘갈 곳이 없다’는 것의 차이                        

 

                                                                               김봉재



1. 집이 없다는 것의 의미


 홈리스(homeless)란 일정한 주거가 없는 모든 사람으로, 거리 노숙자부터 주거불안 계층까지를 포함한 매우 광범위한 의미를 갖는다. 구체적으로 구분하면 다음의 네 집단으로 나눌 수 있다.


1)아직 주거를 상실하지 않았지만, 주거 불안상태에 놓인 계층(퇴거의 위험에 몰린 계층 등)

2)이미 주거를 상실했으나, 가족적 지지망이 해체되지 않아 형제나 친척집에 거주하는 주거취약계층

3)이미 주거를 상실하였고, 가족적 지지망 마저 해체되어 비닐하우스나 쪽방과 같은 불안정한 임시주거 시설에서 생활하는 계층

4)끝으로 비닐하우스나 쪽방에도 머무르지 못하고, 거리로 나와 숙식을 해결하려는 계층을 포괄하고 있다.                <이태진, 한국 홈리스의 주거지원 실태와 정책방안 (2004)>


 위의 정리에 따르면, 우리가 흔히 ‘노숙자’ 혹은 ‘노숙인’들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하는 정의는 3번과 4번에 가깝다. 한국사회에서 그들의 이미지는 고약한 냄새와 잠재적 범죄자로서의 낙인으로 얼룩진 것이 사실이다. ‘더불어 사는 집 이야기’를 보았던 5월 3일 각 포털사이트의 인터넷 기사에는, 또 한명의 노숙자가 ‘무고한 시민’을 지하철 선로로 밀쳤고 ‘용감한 시민’들이 그녀를 구했다는 내용이 실렸다. 이것은 ‘노숙인’이라는 의미가, 인간이 살아가는데 기본이 되는 의식주(衣食住) 중 ‘주(住)’를 해결하지 못한 것을 뜻하는 'homeless'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노숙을 하는 한 인간 자체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각 지하철 역사에는 ‘노숙인’을 만났을 때 ‘일반인’의 대처 방안이 나붙을지도 모를 일이다.


2.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의미


 우리나라의 경우 노숙자 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된 것은 IMF구제금융 시기에 실직노숙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부터이다. 이러다 보니 우리나라의 노숙자 문제는 사회구조의 결함으로 부터 비롯되었다는 인식이 강하다. 결과적으로 노숙자 문제가 발생하자, 노숙자 운동이 정착되기 이전에 초기부터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되었다. 그래서 전국 곳곳에 쉼터가 만들어 졌고, 공공부조나 의료지원체계와의 연계망이 일찍이 형성될 수 있었다. <중략> 반면 일본의 경우 노숙자 문제는 사회구조적인 측면에서 이해되기 보다는 개인의 게으름과 무능력으로부터 인식되는 것이 더 일반적이다. 노숙자 문제에 대한 일본정부의 입장역시 정책적으로 관여하기 보다는 개개인의 자조를 강조하며 체계적인 접근방법을 취하지 못했다. <중략> 일본에서는 쉼터가 거의 없다. 쉼터가 등장한 것도 최근의 일이다. 따라서 노숙자들은 공원이나 강변에 텐트를 치고 집단 거주하는 경향을 띠기도 한다. 노숙자들이 젊은이들의 습격을 받아 사망하는 사건이 일본에서 발생하는 것도, 이처럼 노숙의 문제를 정부의 책임이라기보다는 개인의 무능력으로 환원해 버리는 사회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 도시 연구소, 일본 노숙자 운동의 시사점 (2003)>

 2003년에 발간된 참고자료에서처럼, 우리는 IMF체제 하에서 수많은 실직자와 그에 따른 노숙자들을 양산했다. 당시만 해도 그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최소한의 생존권을 박탈당한 희생자로서의 의미가 강했다. 그들은 블루컬러부터 화이트 컬러까지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고 각종 언론매체에서는 일순간에 노숙자로 전락해버린 각 개인의 기구한 사연과 더불어, 그렇게 전락해 버린 개인들의 재기를 심도있게 다루었다. 이것은 그들을 ‘주(住)’를 해결하지 못한 ‘homeless’로써 정의하려는 사회적 분위기와도 맞아 떨어졌던 것이다. 어쩌면 차가운 IMF체제 종료 후엔, 머지않아 따뜻한 봄이 오리라는 당시의 희망에 기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노숙인에 대한 우리의 시각이 변하기 시작했다.


 故손창호 퉁퉁한 얼굴에 특이한 목소리. 전영록과 함께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을 풍미한 청춘 배우. '동경 아리랑'이라는 영화로 감독으로 데뷰. 한동안 사라졌다 병원 24시라는 TV프로를 통해 행려병자로 발견. 마흔 일곱의 나이에 온통 망가진 몸과 정신마저 흐릿해져 도무지 손창호라 믿을 수 없는 상태로 그는 우리에게 돌아왔다. 그의 존재가 알려지자 그를 잊었던, 그를 버렸던, 그를 멀리했던 사람들이 그를 찾아왔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그는 참으로 기구한 삶을 마감했다.           <네이버 개인 블로그에서 무단 발췌(2004.1)>


 건교부는 행정사범의 경우 최근 주요 역의 노숙인이 늘어나면서 철도 시설 및 열차 안에서 소란을 피우는 등 기초질서를 저해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열차 내 고성방가 늘었다. 연합뉴스 2007-05-02>


철도공사 부산지사는 오후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4시까지 부산역 1층 출입구를 폐쇄하는 노숙인 야간 출입제한 2단계 조치에 들어갔다고 2일 밝혔다. 부산역 1·3층 맞이방(대합실)일부를 폐쇄하는 1단계 조치에 이어 시행되는 이번 조치를 통해 부산역은 3층 출입구와 일부 공간을 제외하고는 야간에 모두 폐쇄된다.
철도공사는 부산진역에 노숙인 무료급식을 위한 간이천막을 설치해 부산역에 남아 있는 노숙인들을 유도할 예정이다. 박태우기자
 

               <“노숙인 야간출입 통제" 부산역 2단계 조치 시행 부산일보 2007-05-02>


지금의 관점에서 한국의 노숙인 들은 더 이상 'homeless'가 아니다. 그들은 단순히 기거할 집 없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합법적인 승인아래 이동의 제한까지 받게 되었다. 이들은 잠재적 범법자로 규정되어 어디에도 발붙일 수가 없으며, 우리는 그들에게서 실직한 아버지의 모습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국가경제 회생’이라는 엄청난 불을 끄기 위해 희생된 그들은 결국 그 국가로부터 버림받고 마는 것이다. 참고자료에서 보듯 초기단계부터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했던 것은, 노숙인 운동을 정착 시키고 자립심을 길러, 노숙인의 권익을 보호해 주기 위한 장기적 계획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당장의 여론을 무마시키려는 것에서 비롯되었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정부의 부실한 정책은 노숙인들의 자활을 효과적으로 지원하지 못했고,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쉼터와 명목뿐인 사회사업을 양산했다. 그러나 이것은 노숙인들을 위한 공공정책의 실패로만 끝날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쉼터와 수많은 사회단체가 난립할수록 그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 졌는데, 쉼터에서의 부적응을 개개인의 탓으로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위에 예로든 ‘故 손창호’ 역시 노숙인을 위한 무료병원에서의 통제된 생활을 참지 못해 뛰쳐나와 곧 사망했다. 얼핏 이것은 충분히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데도, 개인의 어떤 이유 때문에 죽음을 맞은 듯 보이는 사건이다. 하지만 왜 그들이 쉼터를 뛰쳐나오고, 무료병원을 퇴원해 다시금 노숙 하거나, 죽음 맞으려 했는지에 대한 문제제기는 뒤로 물러나 있다. 오히려 충분한 공적지원이 되는 상황에서, 그러한 ‘도움의 손길’로 부터의 이탈은 앞서 언급한 일본의 사례처럼 ‘노숙인’의 삶을 개인적인 문제로 축소시킬 좋은 구실을 가져다 준 것이다.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정부당국과 일반이 가지는 차별의식이 단단하게 뿌리 내리고 있다. 노숙인 들을 우리와 같은 ‘동등한 인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교육되어져야 할 인간’으로 보고 있다. 어쩌면 우리 사회는 집이 없다는 이유만으로(엄밀하게 돈이 없는) 그들에게 갱생을 강요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3. 자활 의지 vs 불신


 주정수는 크게 만족했다. 그러나 원생들은 물론 만족할 수 없었다. (...) 섬 안의 시설이 한 가지씩 늘어날 때마다 그 만큼 섬전체가 천국에 가까워지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더 지옥으로만 변해가고 있었듯이, 이번에도 이 섬에는 공원이 하나 더 늘고 그곳에 바쳐진 자신들의 노력과 희생이 크면 클수록 그 노력이나 희생의 크기만큼 섬은 점점 더 낙원과는 인연이 멀어져갔다.                                                     <이청준, 당신들의 천국>


 ‘전국노점상연합회’ 전 회장이자 ‘더불어 사는 집 고문’인 양연수씨는, ‘최초’로 노숙인 스스로가 주체가 되는 자활단체를 조직했다며, 자화자찬을 늘어놓고 노숙인들을 선동한다. 각을 세우고 ‘역사를 세로쓴다는 사명감’을 가진 그는 스스로를 ‘빈민 운동가’라고 부르기도 하고, ‘혁명가’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사실, 영화 속 양연수는 악역이다. 그의 이력이 말해주듯, 여러 사회적 문제에 관여해 그것을 쟁점화하고 여론의 주목을 받고자 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자 직업인 셈이다. 개량 한복을 입거나 무스탕을 걸치고, 단 3일 밤을 ‘더불어 사는 집’에서 보냈던 그가 부르짖는 노숙인의 유토피아는 마치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에 등장하는 소록도 병원장들의 행위처럼 스스로의 ‘동상’을 세우기 위한 과정일지 모른다.

 그런데 앞서 설명한 것처럼 양연수씨가 내세운 ‘노숙인 스스로의 자활’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그 성공여부가 불투명하다. 우선 빈집을 점거한다는 행위자체가 불법이며, 그렇기 때문에 공적지원을 받을 가능성마저 스스로 줄여버린 꼴이 되었다. 거기다 양현수씨가 개인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사업장이나 소득원도 존재하지도 않는 상황에서, 더 많은 노숙인들을 불러들이기 위해 ‘무료급식’을 한다는 것 자체가, ‘더불어 사는 집’의 목적이 노숙인 자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선전에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더불어 사는 집’ 사람들이 점점 지배자가 되어가는 그의 독선 앞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채, 그곳을 떠나거나 무기력하게 끌려 다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현실에서 주거를 박탈당하고 ‘노숙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인적-사회적 관계들과 단절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 재진입 기회마저 박탈당했다는 것과 동일하다. 흔히 노숙 생활을 ‘한계상황’ 이라고 표현하는데, 그럼에도 노숙인들의 거리 생활이 길어지고 만성화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제약들 때문이다. 첫째, 노숙인들의 건강상태나 근로능력에 대한 문제를 차치해두더라도, ‘주민등록 문제’는 노숙인들이 노동을 통해 사회진입을 하는데 가장 큰 장벽이 되고 있다. <중략> 둘째, 노숙인들은 각종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되어있다. 범죄조직은 노숙인의 특성을 너무도 잘 알고 있으며, 이를 이용하여 주 노숙지인 공공역사를 중심으로 인신매매가 이루어지거나 신분도용을 통한 경제사기에 노숙인을 이용한다. <중략> 셋째 노숙인들이 지불하는 것이 가능한 수준의, 노숙탈출을 가능하게 하는 주거자원이 우리사회에 없다. 우리나라의 공공임대주택 재고율은 2.3%(그 중 최저주거기준 미달가구가 23%)에 불과하며, 그나마 있는 공공임대주택에서조차 노숙인은 입주자 선정대상에서 배제되고 있다.        <이동현, 주거정책 빠진 노숙자 대책은 ‘포장지’일 뿐, (2005.1)>


 거리 노숙인들의 50%이상이 쉼터를 경험하였지만 거리노숙인의 증가는 점차 두드러지고 있으며, 그곳은 통한 사회복귀는 역시 16% 정도로 낮다. 쉼터 입소를 중심으로 한 지원정책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것은 노숙인들이 양현수씨에게 끌러다는 요인 중 하나는 될 수 있어도 근본적인 문제는 아닌듯하다. 영화 말미에, ‘노숙인 스스로’의 자활을 외쳤던 양현수씨는 공적 지원을 받고자 관계기관을 찾아 서류를 꾸민다. ‘더불어 사는 집’의 정체성이 처음의 취지와 다르게 그가 대표가 되는 일종의 ‘쉼터’로 바뀐 셈이다. 결국, 영화의 도입부에 등장했던 많은 이들은 ‘더불어 사는 집’을 떠나게 되었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이들도 있다. 그리고 거리급식을 통해 모집한 더 많은 노숙인들이 그곳을 거처 갈 것이다. 노숙인들이 양현수씨를 떠나지 않는 이유가, 쉼터로의 입소를 꺼리기 때문이라면, 점점 쉼터로 변해가는 ‘더불어 사는 집’을 떠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다시말해, ‘더불어 사는 집’의 정체성이 쉼터와 유사하게 변해가고, 그것이 결국 양현수씨 개인의 입신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는 와중에도 떠나지 못하는 노숙인들이 존재하는 것은, 그곳이 쉼터와는 다른 무언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동생활을 기본으로 하는 쉼터는 개인의 사생활을 전혀 보장해 주지 못할뿐더러, 물리적 공간 역시 협소하다. 쉼터별 입소정원은 쉼터 개소당시 시설의 규모에 따라 ‘몇 명이나 들어갈 수 있는가’라는 작위적인 기준으로 책정된 것이다. 실제 이 인원에 맞춰 입소를 받게 되면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 된다. <중략> 그럼에도 정부는 정원기분에 따른 공실률을 운운하며, 상담활동을 강화하여 쉼터에 입소시키겠다고 한다. 그것을 ‘동절기 대책’이라고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중략> ‘자활의 집’이라는 일부 주거지원제도가 존재하나 프로그램식 임시사업으로 물량이 적고, 조건이 까다로워 극소수의 노숙인만이 이용할 수 있을 뿐이다. 게다가 현재 상태로는 기본 입소기간 6개월이 지나면 자력으로 주거지를 확보해야한다. <중략> 노숙인들이 거리를 선택하는 것은 거리생활에 강한 내성을 가지고 있어서도, 집을 마다하는 별종이기 때문도 아니다. 거리 외엔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이동현, 주거정책 빠진 노숙자 대책은 ‘포장지’일 뿐, (2005.1)>


 노숙인들은 ‘더불어 사는 집’을 쉼터나 ‘자활의 집’과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분명하다. 영화에 반복적으로 등장했던 식사장면과, 술자리가 말해주듯 ‘더불어 사는 집’은 불법 점유된 빈집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들의 소유인 것처럼 느껴진다. 노숙인들은 잔치를 하듯 모여 밥을 짓고, 청소를 하고, 술잔을 부딪치며 ‘더불어 사는 집’이 정말 그들의 유토피아가 되길 바라는 작은 희망을 품고 있었는지 모른다. 생각해보면, 양현수씨의 선동에 이끌린 이유가, 그곳이 다른 곳보다 더 나은 물질적 혜택을 제공하기 때문이 아닌, 그들이 원하는 것을,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 스스로가 실천토록 돕겠다는, ‘더불어 사는 집’의 취지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수많은 사회복지관련 연구자들이 외국의 사례를 분석해하며 나름의 방법을 찾고 있다. 그리고 그것들이 반영된 정부의 대책이나, 개인 활동가들의 노력이 무의미 하다고만 불수도 없다. 그러나 노숙인들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인간적 존중을 무시한 채, 그들을 배제시키고 정부당국이나 사회활동가가 꿈꾸는 유토피아를 건설하려한다면 어떠한 방법으로도 노숙인의 확산을 막을 수 없을 뿐 아니라, 노숙인 운동과 노숙인 사이에 불신과 배반이라는 넘기 힘든 골을 파게 된다. 그것은 곧 노숙인들의 자활의지를 상실 시킬 뿐 아니라, 그들을 ‘천성’부터 게으른 ‘잠재적 법죄자’로 낙인찍게 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4. 나오며 하는 말


그것은 한마디로 원장님과 섬사람들의 길이 다르기 때문이었습니다. 원장님이 아무리 섬사람들을 생각하고 섬을 위해 노고를 바치고 계셨다 해도 원장님은 결국 섬사람들과 같은 운명을 사실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원장님께서 꾸미고자 하신 섬사람들의 낙토가 원장님과 섬사람들의 공동의 천국이 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청준, 당신들의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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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년>, <얼굴들>에 대한 리뷰 - 김현선

 


여성 앞에 놓여진 이름-어머니, ‘어머니’라는 가능성

-<흡년,2004>, <얼굴들,2006>-

1. 차이와 차별


인간을 이해하는 기초적인 범주 중에서 가장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은 여전히 ‘성차’이다. 우리는 현실적으로 혹은 경험적으로 성차적 인식을 흔히 접하게 되고, 이러한 성차가 차이를 넘어서 차별에까지 이르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성차는 객관성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지니고 있는 과학적 설명으로 인해 공고화되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갖는 과학에 대한 견해와 달리 과학 이론은 그 시대의 사회적 요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과학은 한시대의 과학 공동체의 사회적 합의와 패러다임에 부합할 때만 객관적인 것이 될 수 있다. 특히 자연을 다루는 어느 분과보다도 성차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사회의 요구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즉 가부장제 내에서 과학적 가설로부터 평가에 이르는 전과정은 남성의 시각에서 ‘객관적’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성차적 인식은 생물학적 이론과 가부장적 가치관에 기반하여 성차별을 공고히 하고 남녀 불평등의 현실적 조건들을 재생산해내는 기제로 작용해왔다. 물론 남성과 여성은 기본적으로 신체와 생식 능력에 있어서 뚜렷한 차이를 지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시 말해, 여성은 남성과 달리 임신과 출산의 가능성을 갖고, 이는 생식 기술의 발달이나 생물학적 조건의 변화로는 달라지지 않는 원천적인 차이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이외의 대부분의 성차적 구분은 뚜렷한 명분을 갖지 못하거나 생식에 있어서의 구별된 역할이 그것의 명분을 대신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생물학적 차이는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그 본래의 의미를 벗어나 그 이상의 지위를 갖기도 하고, 불필요한 영역에까지 이용되는 경우가 흔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현실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자연적인 성차가 여성과 남성을 이해하는 본질적인 요소가 될 수는 없다. 그리고 이와 마찬가지로 자연적인 성차인식 이후에 생겨난 ‘사회적 성차’ 또한 차이에 대한 인식만으로 끝나지 않고 차별에 대한 인식으로까지 이어지거나 그 내부에 이미 이전의 인식이 갖는 한계를 포함하게 되었다. 따라서 ‘여자라서 또는 남자니까’라는 이분법의 출처는 여성과 남성의 몸이 아닌 여성과 남성의 권력 관계를 나타내는 지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맥락에서 성차는 인간을 설명하는 기본적인 지표를 넘어서 사회적 억압으로 기능하고 있으며, 남녀간의 차이를 밝히는 것을 넘어 차별을 정당화하고 강화하는 기제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무엇보다 이처럼 견고한 성차 인식은 엄격한 역할 분담을 낳고 그것으로부터 개체의 자유를 빼앗는 데 작용하기도 한다.


2. 차이가 낳은 고정적인 역할, 그것의 차별적 이름-어머니


<흡년>은 여성들의 흡연과 그와 관련된 사회적인 시선에 대해서 ‘발언’하고 있는 영화이다. 영화는 흡연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끊임없이 보여주면서 그들이 받아야 했던 수많은 비난과 질책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 중에 가장 흥미로운 점은 담배를 피우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비난의 많은 부분이 ‘어머니’라는 가능성의 이름 하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비난은 남성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같은 여성에 의해서도 이루어진다. 아기를 낳아야 하는 여성으로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아이에 대한 무책임한 행동으로 평가된다. 누군가는 일반적인 여성의 흡연에 대해서는 찬성(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무관심)하지만 유독 자신의 아내가 될 여자 또는 자신의 아이의 어머니가 될 여성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비흡연을 주장한다. 또는 담배를 피우는 것은 곧 결혼을 포기하는 것이며, 이와 동시에 어머니가 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기도 하며, 이처럼 결혼과 관련된 사회적 관계를 포기하는 여자는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아무렇게나 사는 여자로 평가된다. 그리고 ‘갈보년’, ‘쉬운 여자’와 같은 비난은 그 이면에 ‘어머니’라는 자리를 포기하고 자신의 욕구(성적인 욕구)를 실현하는 데에만 급급한 여성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시각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임신과 출산’이라는 생물학적 조건으로써의 여성의 몸을 사회적인 관계 내에서만 규정하는 차별적인 시선에 불과하다. 이처럼 가부장적 가치관 하에서 여성으로서 흡연을 하는 것은 기호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로 취급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어머니’라는 사회적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여성에게 그러한 자리 이외에 어떠한 욕구도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현실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현실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기혼 여성의 투쟁 기록인 <얼굴들>이다. <얼굴들>은 엄마, 아내, 며느리라는 역할과 함께 노동자로서 살아가야 하는 기혼 여성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 영화는 노동자가 처해 있는 현실을 보여주는 동시에 여성에게 부여된 사회적인 역할과 이로 인해 강요되고 있는 의무들에 주목한다. 다시 말해, 엄마, 아내, 며느리라는 자리는 결혼이라는 제도로 인해 부여된 여성의 사회적 자리이며, 이러한 여성들에게 노동을 통한 자기의 실현은 가정 내에서 부여된 자신의 역할을 다한 후에만 가능한 것이 된다. 그녀들은 자신의 복직을 위해 투쟁하는 동시에 가정에 있는 남편과 아이들을 챙겨야 하는 이중의 임무을 수행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이러한 역할 수행에 대한 의무감과 책임이 뒤따른다. 이처럼 앞서 언급한 <흡년>과 같이 <얼굴들>이라는 영화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여성에게 부여된 ‘어머니’라는 이름은 절대적인 지위를 확보하고 이와 동시에 여성이 지닐 수 있는 또 다른 다양한 욕구들은 ‘어머니’라는 이름 앞에 부정당한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의 어머니는 담배를 피워서도 안 되고, 성적 욕구를 추구해도 안 되며, 노동이나 사회적인 행동들을 통해 자신의 의미를 찾아나가는 것 또한 금지된다. 따라서 이로 인해 후자의 욕구를 선택하고자 하는 여성에게는 언제나 ‘어머니’라는 자리는 멀고 먼 이름이 되고 만다. 반면에 <얼굴들>에서 이야기된 것처럼 남성들이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하고 투쟁할 때에 그들은 ‘아버지’라는 이름을 부담스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그들, 아버지의 가정에는 여전히 이를 지켜나갈 ‘어머니’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아버지’들의 투쟁에 힘을 실어주는 가족대책위원회에서의 여성들의 역할은 ‘아버지’를 위해서만 존재할 뿐 여성 자신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사회적인 참여나 발언이 아니다. 오직 남성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데 그들을 보완하는 객체로서의 역할만이 주어질 뿐이다. 이와 달리 <얼굴들>에서 노동자로서 살아가는 여성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가운데 꾸려지는 가족대책위원회는 그녀들이 노동자이기 때문에 그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동참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의 테두리 안에 있는 ‘어머니’ 혹은 나의 ‘아내’이기 때문에 허락하고 승인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어머니’의 자리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여성 앞에 놓을 수 있는 다양한 이름 중의 하나일 뿐이다. 여성은 ‘어머니’의 자리와 또 다른 자신의 자리 사이에서 언제나 선택을 강요당하지만 그들에게는 ‘어머니’인 동시에 노동자일 수 있는 권리가 있으며, ‘어머니’라는 가능성인 동시에 흡연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따라서 자연적인 성차는 차이에 대한 인식으로 기능하는 것 이외에 그것을 뛰어넘는 차별에까지 이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며, 더욱이 그것이 강요와 억압으로 작용하고 있는 현실은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문제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참고문헌 - 철학의 눈으로 읽는 여성, 연효숙 외, 철학과 현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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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사는 집 이야기>에 대한 질문-김현선

하나의 집단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는 하나의 공통된 생각이 전제되어야 한다.

따라서 집단 내에 존재하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취합하여 공동의 입장을 세우고 공통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그 집단을 대표하고 관리하는 인물의 필요성이 제기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러한 맥락에서 어떠한 집단이나 그것을 대표하는 인물이 그 집단의 구성과 함께 자연스럽게 생겨나곤 한다.

 

여기에서 질문 1. <더불어 사는 집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집단을 대표하는 인물이 지니고 있는 생각과 가치관은 그 집단의 존패나 흥망에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따라서 집단을 대표하는 인물, 혹은 지도자에게 필요한 덕목(요소)는 무엇일까?

 

질문 2. 다수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현실 안에서 '투쟁을 위한 연대'의 가능성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집을 얻기 위해서는 너무난 당연하게 개인의 돈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돈 역시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벌어들어야 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현재 사회의 기본적인 체제 안에서 '집이 없는 사람'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이해관계와 반드시 부딪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때 그들과 반대의 자리에 서 있는 다수의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적인 근거는 무엇인가? <더불어 사는 집 이야기>에서 그들이 외치는 '생존의 권리'는 '당위성' 이외에 아무런 힘도 지니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그들의 투쟁이 힘을 얻기 위해서 '노숙인'이라는 같은 조건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의 연대가 필요하다면 그들은 무엇으로 이것을 가능케 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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