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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1] 봉기의 기술 - 에반 헨쇼 플라쓰(글 : 과메이안)

* 영문 발제문은 아래 주소로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PDF 파일)

http://docs.indymedia.org/pub/Global/ImcEssayCollection/Technologies_of_Insurrection_v1-0.pdf

* IMC 참고자료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교수 도로시 키드의 글입니다. 

http://docs.indymedia.org/pub/Global/ImcEssayCollection/IMC_a_New_Model.pdf 

 

 

[발제문 1]


봉기의 기술

: 1960년대 운동에서의 언더그라운드 언론

그리고 1990년대와 2000대 지구적 정의 운동에서의 인터넷


과메니안 (IMC)


서론: 실패한 혁명가를 위한 꽃


혁명을 일반화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각각의 혁명의 국면은 독특함을 가지고 있다. 투쟁의 도화선이 되는 특정한 사회 정치적 순환은 (무정부적이고) 반복되지 않는 것이다. 혁명은 '일회적'(one-off nature)이기 때문에, 소위 “역사의 교훈들”(Lessons of History)은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관련된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기서 관련된 사람들이란 여러 혁명가들과 역사가들을 일컬으며, 이들은 혁명을 통일적이며, 통제가능하고, 반복 가능한 공식으로 변형시키려 시도하였다.

체게바라와 같은 모범적 실행자들조차 혁명을 전파하는 데 실패했다. 즉, 쿠바 혁명의 성공모형을 볼리비아에 적용하려 한 '체 게바라'(Che Guevara)의 시도는 가장 널리 알려진 실패작이다. 이러한 실패는 혁명을 누군가의 의지대로 꾸며지고 실행되는 비책으로 간주하는 것으로부터 기인한다.

혁명에 하나의 '양식'(pattern)이 있다면, 그것은 ‘반-양식적’(anti-pattern)이라는 데 있다. 혁명은 뜻밖의 공간과 시간에, 의외의 사람들에 의해서 이상한 이유로 발생한다. 이러한 혁명의 변덕성은 혁명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를 제공한다. 본 글이 취하는 관점은 혁명은 일반적 권력 시스템의 의도되지 않은 ‘틈새들’(cracks)에서 발생하여 자란다는 것이다. 반-혁명(Counter-revolution)이나 새로운 혁명적 권력구조는 구래의 틈새들(cracks)을 메우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지만, 기술적이며 문화적인 변화는 새로운 저항의 세대가 기반으로 삼는 새로운 운동공간을 창출한다.


본 에세이는 ‘새로운 미디어’가 20세기 두개의 봉기(insurrections)를 지지하여 발생하도록 여지를 준 소통의 기본구조에 있는 틈새들(cracks)을 고찰한다. 특정하여 말하면, 1960년대 운동이 기능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한 ‘언더그라운드 신문들’(underground newspapers)과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의 ‘지구적 정의 운동’(Global Justice Movement)의 중심인 ‘인디미디어 웹사이트들’(Indymidia Web sites)이다. 

여기서 두개의 봉기들에 대한 비교의 초점은 봉기에의 참여자들을 교육/조직하는 소통매체에 둔다. 어떤 요인들이 봉기에 동참하는 독특한 매체의 발생을 이끌었는가? 매체의 실질적 역할은 무엇인가? 어떻게 매체의 독특한 특징들이 봉기의 성공과 실패에 영향을 주었는가?



거리에서 발생하는 것을 본다...


이하에서는 20세기에 발생한 두개의 봉기에 연합한 매체가 더둔 작은 성과들과 의제를 간략히 소개한다.


운동(The movement)


1960년대의 운동은 전쟁반대 행동주의, 인종적 자유, 생태적 활동, 그리고 성적 사회적 억압에 대한 문화적 자유의제를 포함하고 있다. 1965년부터 1974년까지 대략 10년 동안 다양한 운동들은 지배적 가치와 기존의 권력 구조가 취한 조치들에 대해 도전하는 정치적 사회적 의제를 나타낸다.

당시 운동(the movement)은 절정의 시기에- 지하 군사적 저항의 형태로 내전을 준비한- 수 천 명의 장교들부터, 북미 사람들의 사회적 양식으로 변형된 ‘섹스와 마약, 그리고 락앤롤’을 줄이는 데 뛰어든 수백만의 사람들에 이르기 까지 북미 사람들의 중요한 정치적 생활양식적 부분을 받아 안았다. 이들의 운동은 생활 양식차원에서 새로운 세대의 선택권을 넓이는 데 성공하여, 이후 10년의 여성과 동성애자 자유운동에 기초를 마련해주었다.

그 운동에는 여러 미디어 형식들이 혁신적으로 활용되었는데, 비디오와 게릴라 라디오가 특히 부각된 활동을 수행하였다(Downing: 25). 그러나 가장 광범위하고 영향력 있는 매체는 언더그라운드 신문들이었고, 그 수는 1968년경 절정에 이르러 무려 500여개가 달했다(Streitmatter: 270).


지구적 정의 운동(Global Justice Movement)


비록 북미자유협정(NAFTA)와 다자간 투자협정(MAI)에 반대한 투쟁에 시애틀 투쟁에 앞서 진행되었고, 그 시기의 집중된 투쟁준비가 시애틀에서의 대중동원을 가능하게 했지만, 지구적 정의운동은 1999년 시애틀 WTO 정상회담에 대항한 거리투쟁 당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본다. 그리고 퀘벡(2001년 4월)과 제노바(2001년 7월) 등 국제 무역 정상회담들의 확대와 동시에 반 세계화 운동은-9.11사태에 뒤이은 전쟁위기에 따라 활력을 되찾은-전쟁반대운동 및 빈곤퇴치운동과 융합되었다. 지구적 정의운동은 1972-73년의 도시게릴라전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반전운동에 수백만을 대중 동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지구적 정의운동의 대중동원은 2003년 칸쿤으로 결집한 남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 국가 등 22개 개발도상국에서 발생한 조직된 저항을 통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추진력을 좌절시켜, 자본 세계화 의제의 확산을 막는데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

매체 차원에서 보면, 인터넷은 지구적 정의운동의 조직과 문화에 지배적 역할을 하여, 비디오와 오디오는 기본적으로 웹사이트에 내용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였다. 본 필자는 지구적 정의운동에서 인터넷의 역할을 검토하는 데 있어, 활동가 뉴스 웹사이트들의 인디미디어 네트워크에 초점을 둘 것이다.


  

왜 혁명은 텔레비젼으로 방송되지 않는가?


두 봉기들은 새로운 매체를 만들거나, 보다 적절한 기존 매체를 새로운 방식으로 적용하였다. 그러나 두 경우에 있어 기존에 매우 발달된 소통 기본구조가 있는 상황에서는 변혁적 매체가 왜 필요한지를 생각할 만하다. 왜 기존 전달구조가 충분치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요인들은 독립된 봉기적 매체의 필요를 설명한다.

선별(Filtering)와 문맥화(Contextualization): 기업과 국가소유의 매체는 사실관계와 표현될 문맥, 그리고 해석에서 편집상의 여과장치를 작동시킨다(Herman and Chomsky, in Shumway, 2.0). 두가지 봉기에서 주류 언론들은 운동에의 참여자들을 ‘마약에 찌든 히피들’(dirty drug-crazed hippies), ‘전달내용없는 무정부적 펑크들’(anarchist punks with no message)로 묘사하여 대중들에게 방송하였다. 이는 운동 참여자들의 실제 경험을 대중들에게 알릴 소통의 필요를 말해준다.

구조적 순응(Structural Orientation): 명백한 편집과정의 여과작업보다 내부적 순응은 주류 매체에 적합한 것을 결정하는 보이지 않은 뼈대이다. 급진적 정치 운동의 담화구조는 이슈(논쟁대상) 중심적이지만, 주류 매체는 기본적으로 이벤트 순응적(event-oriented)이다. 주류 언론의 관점에서 보면, 활동가들의 이슈들은 글자 뜻대로 뉴스가 아니다. 주류 언론은 뉴스를 ‘사고’(thought)보다는 ‘행동’(action)으로 정의한다(Kessler: 155).

접근(Access): 재정과 자원의 제약들은 변혁가들이 관습적인 방식으로 기존 매체를 활용하지 못하게 한다. 텔레비젼과 (TV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지만) 라디오는 상당한 자본투자를 필요로 하고, 전문화된 방식으로 일의 흐름을 구획하기 때문에 자발적 제작을 어렵게 한다. 따라서 변혁적 운동이 관습적 형태로 이러한 매체를 재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돈은 그 곳(변혁 운동이 있는 곳)에 없으며, 사람들은 뉴스사무실(news room)이 아닌 바리케이트가 쳐진 곳에 있어야 한다.

운동의 응집(Movement Cohesion): 하위문화에 공유된 신념과 가치를 심어주는 ‘의미의 지도’(map of meaning)는 분별력 있는 매체를 통해 창출되고 강화된다. 주류언론의 비례적이고 균형적인 태도는- 비록 그것이 유용하다 할지라도- 운동의 응집력을 키우는데 기여하지 못한다. 



우연한 자유: 파괴적 기술1)들과 의도되지 않은 효과들


기술적 변화는 위계화된 매체구조에서 일시적이고 의도되지 않은 공간을 창출한다. 새롭게 창출된 공간에서 두 봉기들은 기존의 소통 매체를 활용하여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이를 적용했고, 이를 통해 시스템의 틈새를 뚫고 들어갔다. 그 과정은 1990년대 ‘닷컴’(dot.com) 호황이 보여준 바와 같이, 파괴적(혁신적) 기술이 자본주의 발전에 기여하는 역할과 유사하다. 

1990년대 연속된 IT 호황 속에 새로운 닷컴 백만장자들이 등장했을 때, 전통적 산업과 시스템들은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작업 앞에, 굴복하지 않았다. 이들은 새로운 발전 형태에 대한 통제력을 키우려 노력했으며, 그러한 사물의 질서에 스스로를 배치시켰다.

위와 유사한 방식으로, 변혁가들이 새로운 매체를 창출하는데 있어서도- 파괴적 혁신들이 자본과 정부의 통제 하에 들어가는 질서의 복구시점까지라는- 시간적 제한이 있었다.



언더그라운드 언론: cold type2) turns up the heat


1800년대 말부터 1940년대까지 거의 모든 신문들은 '뜨거운 금속기술'(hot metal technology)을 사용하여 제작되었다. 복잡한 '리노타이프'(linotype)기계들은 뜨거운 납을 녹였고, 그것을 텍스트의 각 행을 구성하는 ‘슬러그’(slugs)를 형성시켰다. 숙련되고 노조로 조직되어있는 기술사들은 제작 공정의 '문지기'(gate-keeper)였고, 전문화된 기술이 요구되었으며, 제작에 필요한 기술을 획득하는 데 드는 비용은 언론에 대한 기업의 통제를 가능케 했다. 출판자 라이블링(A. J. Leibling)이 말했듯이, “언론의 자유는 그것을 소유한 자의 것이다”. 실제로 언론을 소유하는 것은 매우 값비싼 지위이다.


1950년대의 새로운 기술은 조용히 무대에 다가섰다. ‘사진’ 기반의 리쏘(litho) 언론들은  비싼 핫메탈을 사용할 필요를 없앴고, 텍스트나 그림을 붙여넣는 페이스트업(paste-up)으로 대체했다. 이 기술은 매우 천천히 주류 언론제작에 통합되었으나, 독립 소유의 '잡종인쇄소'(job shops)로 급속히 침투했다.


변혁가들은 미개척된 콜드타이프의 혁명적 잠재성을 다음과 같은 사실에 두고 있다.


“1960년대 초 콜드타이프 인쇄는 신문을 빠르고 쉽게, 그리고 값싸게 제작할 수 있게 해주었다. 타이프라이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카피를 준비하고, 이를 사진화하여 복사할 수 있는 평면종이에 부쳐넣을 수 있었다(Streitmatter: 201).”


당시 모든 언더그라운드 신문은 이러한 방법으로 제작되었고, 그것이 담고 있는 이데올로기적 내용에 신경을 쓰지 않는 '잡종인쇄소'(job shops)을 통해 인쇄되었다.



언론의 자유로서 인터넷


아마 산업혁명 이래 지배적 시스템에서 나타난 가장 극적인 틈새는 기본적으로 무료로 접근되는 다자간 정보 분배 통신네트워크로써 인터넷의 창조일 것이다. 초기 ARPANET 연구자들은 미군이 소비에트 연방에 대한 성공적 공격 이후 약화된 핵반응으로부터 살아남도록 고안된 자기 치료적 통신시스템인 로버스트(a robust)에 대한 사용대가를 지불할 것으로 의도하였다. 그러나 미군이 보호했던 권력에게는 불행하게도 그들이 고안한 시스템은 아무런 비용과 중앙의 통제 없이 기능적으로 작동하였다. “Free”의 언어적 의미 그대로 ‘자유’와 ‘무료’로 말이다.

인터넷은 성장했고, 자본주의의 방어적 공간인 대학과 연구공간으로부터 자양분을 받아 1990년대초까지 기업과 정부의 통제없이 캠퍼스에서 캠퍼스로 확산되었다.

퍼스널 컴퓨터와 다이얼 호출식 모뎀의 예외적 성공과 함께 인터넷에 접근하는 기술은 모든 캠퍼스로 연결된 북미 전화시스템의 수백만 마일의 연결선에 내장되었다.

1990년대 퍼스널 컴퓨터 가격의 폭락과 함께 수익성 있는 네트워크 연결선은 상업화되었고, 자본가들은 시스템으로부터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요충부문을 앞다투어 확보하려했다.  그리고 민영 ISPs가 사용자를 직접 연결하도록 하는 인터넷을 탈규제하는 조치가 취해짐에 따라 해결책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이는 사영화된 인터넷이 초국적 기업의 통제하에 남도록하는 잠재적 조치가 아니였기에 지배시스템에게는 실패로 판명되었다. 지역 ISPs는 사용자들을 연결하는 중심이 되었고, 초국적 기업은 비수익적인 광케이블의 거대한 설비과잉 상태로 남겨졌다.

1993년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의 창출과 함께 인터넷의 새로운 대중적 잠재적은 실현되었다. 웹은 전 세계 인터넷에 접근가능한 사용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능력을 가져왔다. 텍스트와 이미지를 생산하는 능력은 유비쿼터스였다. 모든 컴퓨터 수신기는 전달장치가 되었고, 변환에 드는 비용은 제로였으며, 웹브라우저와 웹서버를 위해 중요한 소프트웨어는 "오픈소스"(Open Source) 라이센스 하에서 무료였다.

문서의 잠금장치와 분배에 드는 비용은 무료였기에, 변혁의 새로운 세대들은 인터넷으로 인해 가능해진 자유를 부여잡을 준비가 되어있었다. 물론 통신 네트워크는 초국적 자본의 세계화를 창출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수단, 매체, 메세지: 봉기들의 비교


수단 : 언더그라운드


운동의 문화적 가치는 언더그라운드 언론 출판물의 공동제작을 촉진하였다. 대부분의 언더그라운드 신문은 운동가들의 생활공간이자 사무실인 공동체적 집단을 통해 생산되었다. 이 집단은 철저히 민주적이며 자기조직적 운동목표로 무장되었다.

콜드 타이프 기술은 공동 제작을 지지했다. 다중의 개인들은 종이에 콜라주 타입과 이미지를 페이스팅하여 완성된 신문을 만드는 작업을 함께 했다. 이러한 공정은 신문 제작 일정에 맞춰, 텍스트를 작성하는 기자식의 업무와 일루스트레이션을 하는 예술적 업무를 결합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언더그라운드 신문 제작 작업은 일반적으로 주간, 혹은 월간 사이클로 이루어졌다.

자유지원제(volunteerism)는 언더그라운드 운동의 기본적 구성요건이다. 독자공동체는 필자(writer)로서 그리고 신문 배포자로서 역할을 하였다(Streitmatter: 233).

또한, 1960년대의 언더그라운드 신문은 밤새 부엌 테이블에서 제작되어, 가까운 이웃지역 언론사에서 인쇄되었으며, 거리의 시민들에게 배포되었다.


수단 : 인디미디어


인디미디어(독립 미디어센터: IMC)는 세계 도처 80개가 넘는 활동가 뉴스 웹사이트들의 네트워크를 움직이는 지역공동체이다. 인디미디어 사이트들은 활동가들의 웹 제작에 대해 급진 민주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CommonDreams(http://www.commondreams.org)와 Rabble(http://www.rabble.ca)과 같은 진보적 뉴스 사이트와 구별된다.


․ 각각의 IMC는 활동가들의 자발적 지원 공동체에 의해 지역적으로 통제된다. IMC에는 보수를 받는 스탭과 전문적 저널리스트가 없다.


․ 모든 IMCs는 모든 대중들이 웹사이트의 뉴스와이어라 불리는 홈페이지의 칼럼에 검열되지 않는 뉴스를 올릴 수 있도록 "오픈퍼블리싱"(Open Publishing) 소프트웨어를 사용한다.


․ 모든 IMCs는 지역단위의 다양한 언어 사용의 허브로 기능하는 지구적 IMC 웹사이트 (http:www.indymedia.org)에 특집기사를 올리고 있다.


인디미디어 프로젝트의 철학적 기반은 다음과 같은 주장으로 요약된다.


“IMC는 사회 경제적 정의를 활성화하는 도구로서 매체를 생산하고 배포하는 풀뿌리 조직이다. IMC의 목적은 불충분히 표현된 민중의 자기결정권을 확장하고, 생태계와 공동체, 그리고 개인들에게 영향을 주는 지역적, 지구적 이슈를 분석하는 데 있다. 우리는 수익성 논리에 의해 통제된 기업 미디어의 천성적 편향에 맞서 대안을 창출하고자 하며, 지속가능하고 평등한 사회 모델을 창출하고 분석하고자 한다.”- Original IMC Statement(In Shumway, 3.0)


인디미디어 네트워크는 1999년 시애틀 WTO 정상회담을 둘러싼 대중투쟁을 알리기 위해 웹사이트를 제작하고, 뉴스-모음(news gathering) 사무실을 마련한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당시 이들의 의도는 회담장 안팎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편향적으로 보도한 주류 언론의 입장에 반대하여, 활동가들의 입과 눈으로 보도되고 수집된 정보를 웹사이트에 제공하고자 한 것이다(Uzelman, 4 and docs.indymedia.org).

특히 기술적이고 문화적인 웹출판의 본성은 기존 언더그라운드 신문의 그것과 구별된다.

문화적으로, 인디미디어 네트워크는 1980년대 활성화된 (지극히 개인적이고 표현적인 매체인) 펑크 음악과 개인출판 잡지 등 하위문화에 의해 출발한 철학적 파생물이다. 인디미디어 운동은 지역적 차원에서는 인디미디어 공동체들의 의사결정 합의기술을 사용하고 있으며, 국제적 차원에서는 월드와이드 네트워크와 관련된 각 지역그룹이 메일링리스트와 IRC-chat 세션에 참여하여 ‘실질적 합의’(virtual consensus)를 이루어내고 있다.  

그러나 웹을 제작하는 과정은 언더그라운드 시대의 대면방식(face to face)의 공동체주의와 기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컴퓨터를 사용하는 방식은 본질적으로 개인화된 과정이다. 컴퓨터는 기본적으로 개인적 도구이며, 드물게 실질적 공동체성을 갖는다.

컴퓨터로 매개된 소통의 결합은 '공동체적'(collective)이라기보다는 '협력적'(collaborative)이다. 인디미디어 자원활동가들은 특집기사와 인디미디어 웹사이트의 ‘Newswire' 파트를 공동으로 작성하지만, 단지 컴퓨터를 매개한 도구(공동 글쓰기를 위한 위키(Wiki)시스템, IRC chat, 메일링리스트, 인디미디어 웹사이트 등)를 통해 이루어진다.

기술적으로 인디미디어 웹사이트는 데이타베이스 주도의 ‘오픈 퍼블리싱’(Open Publishing)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여 웹에 접근하는 사람들이 글을 쓰고 올릴 수 있도록 한다. 이것은 사용자의 관점에서 간단한 공정이지만, 그 기술은 설계와 운영에 있어 비전문가에게는 어려운 것이다. 그것은 인디미디어 네트워크에서 ‘Geek Prometheus'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인디미디어 웹사이트는 숙련된 사이트 운영자와 이를 성공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프로그래머들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기술전문가들은 인디미디어 조직의 합의구조 내에서 폐쇄적인 엘리트 집단을 구성한다. 인터넷 운동에 대해 한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시민 사회 조직과 기술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 사이에는 문화적으로 구별되는 질문이 있다. 서로 다른 언어의 사용과 정치적 입장의 차이는 촉진된다.(Surman,: 68)”


활동가에게 중요한 기술의 또 다른 측면은 인터넷의 일반화된 사용이며, 웹의 지구적 본질이다. 글로벌 ‘싸우스’(South)는 인디미디어 네트워크를 잘 대표하며, 국제적 차원의 의사결정에서 엄청난 힘을 행사한다. 실제로 발생한 ‘싸우스’ 파워의 대표적 예는 2001년에 있었다. 당시 인디미디어 아르헨티나는 5만 달러를 (1970년대 아르헨티나에서 발생한 더러운 전쟁을 일으킨 CIA와 역사적으로 널리 연계된) 포드재단으로부터 받아, 인디미디어 네트워크에 기부하려 했으나 이는 거부됐다.

지구적 의사결정 과정은 문화와 언어를 넘어 평등하게 지구적 공동체에 참여하려는 북미 인디미디어 활동가들에게 교육적이다.


매체 : 언더그라운드


언더그라운드 언론은 매체 그 자체의 특성을 보여주었다.


․ 언더그라운드 신문들은 칼라 일루스트레이션과 만화, 그리고 창조적인 텍스트를 넣어 자유롭게 만들어진 매체이다. 이 신문들은 환상적 예술과 혁신적 활판 인쇄술, 매력적인 핸드 레터링(hand lettering)과 언더그라운드식 코믹들이 결합된 최초의 분배수단이 되었다.


․ (거리에서 이윤을 위해 판매를 시도한 적이 없는)비경제적인 언더그라운드 신문은 종종 값비싼 그래픽과 디자인 컨셉을 사용하였다. 이러한 기술은 다른 주류 신문들이 수익을 위해 꺼리는 것들이다. 색을 사용한 텍스트 등 다양한 색의 신문 재생은 오늘날 연예 잡지들이 사용할 정도로 비주얼한 기술을 사용한 개척자가 되었다.


매체: 인디미디어


웹은 언더그라운드 언론들이 직면했던 것들 보다 다양한 제약들과 기회의 집합을 보여준다.


․ 웹 출판은 매우 구조화되어있고 엄격히 규격화되어있다. 구성에 대한 결정은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소프트웨어에 규격화된다. 필자들의 글은 웹사이트의 단순한 골격구조 안에서 표현된다. 온라인 출판 시스템에서의 글쓰기는 기본적으로 온라인상의 빈 공간을 채우는 과정이다. 인디미디어와 다른 데이타베이스 기반 웹사이트에서 포맷을 바꾸는 것은 필자의 통제권을 벗어나는 복잡한 기술적 절차이다.


․ 웹 출판은 즉각적이다. 이것은 공개출판(Open Publishing) 접근법을 사용하는 인디미디어 사이트에게 해당되는 것으로, 긴급 뉴스는 거리로부터 실시간으로 작성되고 부착되며, 라디오나 다른 인쇄물보다 즉각적이다.


․ 웹 출판은 링크에 강하지만, 기억에 약하다. 교차된 링크는 웹을 다른 매체와 구별하는 핵심이며 독특한 힘이다. 인쇄물로 공유되지 않는 약점은 웹의 휘발성이다. 사이트가 변화되고, 새로운 내용이 오래된 내용을 대체하기 때문에, 불과 2년전의 내용조차 현재는 접근할 수 없다.


․ 인디미디어 웹사이트에서는 멀티미디어를 사용할 수 있다. 종종 오디오와 비디오 내용물들이 업로드 되고, 디지털 사진들과 문자들이 등록된다. 언더그라운드 신문들과는 다르게 일루스트레이션과 만화는 인디미디어 사이트에서 드물게 사용된다.


․ 기술적 의존성은 웹 출판 과정의 주요 요소이다. 서버와 ISP 연결, 그리고 인터넷 하부구조 등이 웹 출판에 요구된다. 반면에 언더그라운드 언론은 출판이 거부되거나 법적으로 제한될 때 다른 인쇄기를 통해 제작할 수 있지만, 인디미디어와 다른 웹 프로젝트의 경우, 이러한 취사선택이 불가능하다.


메세지: 언더그라운드


언더그라운드 언론은 운동적으로 반전, 반권위적 가치가 공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내용이 다양하게 표출되었다. 전부는 아닐지라도 언더그라운드 신문들은 마약과 성적 자유를 강하게 찬성했다.


․ 언더그라운드를 지배하는 내용. 언더그라운드 신문 제작에 커다란 기술적 장애는 없었고, 인디미디어 출판과 같은 전문화된 기술을 요구하지 않았다. 따라서 제작의 결정권은 편집자와 필진, 자원활동가들에게 주어졌다. 강력하고 모순적인 편집 규제 정책(editorial policy)이 있었기 때문에, 언더그라운드 신문은 논적으로 뛰어난 글쓰기를 할 수 있었다.


․ 논쟁과 반대의견표명은 정치적-문화적으로 운동의 기본적인 부분이었다. 거의 예외없이 언더그라운드 신문들은 성적, 마약 및 문화적 장벽을 깨뜨리려는 견해를 제시했으며, 기존 문화를 고수하려는 자들을 자극하는데 성공했다. 언더그라운드 운동에는 페미니스트 이론이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성적 착취와 남성과시욕은 평등과 자유를 목적으로 한 운동으로부터 배척되었다.  


․ 다양한 목소리와 견해는 언더그라운드 운동에서 환영받았다. 수많은 언더그라운드 신문은 가능한 많은 논쟁을 담은 ‘레터 포럼’(letter forum)을 출판하였다.


․ 언더그라운드 운동은 제3세계와 적국들, 각 서신들로부터 국제적 논쟁 범위를 가졌고, 이는 신문의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였다. 특히 ‘자유뉴스 서비스’(LNS)가 배포한 내용들은 주류 언론은 사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 언더그라운드 운동에서 흥미로운 측면은 혁명적 정치 정당의 공식 기관이었던 몇몇 신문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신문에서 제한없는 이데올로기가 넘쳐흘렀다는 것이다.   


메시지 : 인디미디어

 

인디미디어 편집 정책과 내용은 스스로 공유한 기본 가치 내에서 언더그라운드 신문보다 훨씬 다양성을 가졌다. 반전과 반권위주의 가치는 언더그라운드 운동과 유사했지만, 보다 폭넓게 공유된 페미니즘과 환경주의, 반자본주의 가치는 이전시기보다 광범위하게 일어났다.  섹슈얼리티와 마약사용 등의 라이프스타일 관련 이슈는 지구적 정의 운동에서 이슈가 되지 않았고, 인디미디어 사이트에서 관련 내용을 거의 찾을 수 없다.


․ 사설과 뉴스 항목은 주류언론과 큰 차이가 없이, 뉴스와 견해의 혼합사용은 인디미디어 출판에 일반화되었다.


․ 논평과 토론 스레드는 뉴스 항목을 올리는 모두가 사용가능하고, 교차 링크와 뉴스 아이템의 저자와 논평자들에 대한 논쟁도 활성화된다. 이러한 시스템은 유용하게도 비판적 대화가 깊이를 갖도록 이끌었다. 그러나 안 좋은 측면을 보면, 상호비방과 욕설이 올라온다는 것이다. 지역 인디미디어 작업은 발언의 자유와 비방에 대한 합리적인 제한을 두어 사이트가 활동가들에게 유용하도록 하였다.



비교의 결과들


이 두 가지 변혁적 미디어의 수단, 매체, 메시지들을 비교할 때, 두 미디어의 차이들 중 대부분은 각자가 기반하고 있는 기술적 가능성과 한계들에서 연원함이 명백하다. 두 변혁적 과제들을 둘러싼 문화적 환경, 그리고 의제들은 매우 흡사하며, 미디어가 전달하는 메시지 역시 두 시대를 바꾸어놓는다고 해도 크게 서로의 범위를 벗어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메시지를 창조하고 전달하는 과정에서 사용된 기술은 다음 표에서 보다시피 상당히 차이를 드러낸다.


기술적 요소

언더그라운드 미디어

인터넷(인디미디어)

미디어 생산 도구

수집 방법: 종이들과 풀로 붙인 콜라주 정도가 공유할 수 있는 공간에서 공공적이고 상호작용적인 생산에 적합했다.

물리적 소외/고립: 컴퓨터 워크스테이션은 일반적으로 따로 떨어져 있고, 개인들이 한꺼번에 사용한다.

광학적 생산

vs 디지털적 생산

유연성: 광학적인 차가운 유형의 재생산 과정에서는 임의적으로 배치되거나 내용물이 삐뚤어지기도 하고, 손으로 그려 추가하는 등의 경우가 발생한다. 있는 그대로 배치하는 것이 어렵다. 박스에서 빠져 나오기도 쉽다.

선형성: 모든 작품과 내용은 데이터이며, 고정된 템플레이트로 유입된다. 무언가를 변형시키는 것이나, 디지털 생산 시스템에서 독창적인 페이지를 만드는 것이 주된 어려움이다.

배포 과정

곤란한 점: 배포를 위해서는 인쇄와 운송 또는 길거리 판매 등의 방법을 이용했다. 이 방법들은 비용과 노동이 수반된다.

단순화된 과정: 배포에 웹 서버 이용 등 비용이 들긴 한다. 그러나 추가비용은 거의 들지 않으며, 노동력이 필요없다.

신속성

뒤늦은 보도 : 사건이 있은 후 뒤늦게 보도된다.

신속한 보도: 거의 실시간으로 사건이 일어난 시간에 보도된다.

쌍방향성

불가능: 현재의 사건에 관련된 이미 보도된 뉴스에 대해 반응을 전할 수가 없다. 이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보통 의견을 받기 위해 마련된 독자의견란에서 “지난 호에서 본 것은 매우 충격적이었습니다...”는 식의 피드백이 가능할 뿐이다.

높은 수준의 쌍방향성: 하이퍼 링크, 삽입, repurposing of content 'chunks'(기존 콘텐츠의 재구성), 검색능력 등으로 강한 피드백이 가능하고, 다양한 소스에서 콘텐츠를 가져온 편집자의 메타 스토리를 만들 수도 있다.

기술적으로 결정되는 독자 참여

어려운 참여: 참여를 위해서는 편지나 기사를 쓴다든지, 생산 시스템 내에서 어떤 다른 자격으로 행동해야 한다.

쉬운 참여: 온라인 형식이나 이메일로 빠르게 코멘트를 달 수 있다.

전문적 기술

낮은 수준의 능력: 전문적이지 않은 자발적인 편집자도 모든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높은 수준의 능력: 프로그래머와 시스템 관리자가 필요함.

구역

국한된 지역: 배포를 위해서는 인쇄매체를 우편으로 보내거나 운송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든다.

제한없는 배포: 즉각적으로 전세계 어디든 추가 비용없이 배포가 가능하다.



향후 운동의 소통과 운동 전략의 진로에 있어서, 이러한 기술적인 차이들은 두 변혁적 운동들 사이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필자는 믿는바, 이전 운동보다 네트워크화 되고(특히 어떤 특정한 사건으로 촉발된 활동들에 있어서) 지역 공동체와 생활방식에 지지기반을 덜 두고 있는 세계 정의 운동이 이러한 차이를 잘 보여준다.



여기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다.3)


혁명은 반혁명을 부른다. 권력구조는 기존 체계의 빈틈에서 솟아난 사회, 기술적 힘들을 막고, 자신이 다시 장악하려고 한다.

앞에서 살펴본 두 가지 변혁운동 모두 구조적으로 이러한 반동적 권력들의 목표가 되었고, 따라서 반동권력들은 변혁운동이 이끌어낸 변화의 효과들을 축소시키고, 파괴하려고 시도했다. 특히, 그 중에서도 변혁적 미디어는 요주의 대상이었다.

대안적 미디어가 오래 지속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이를 저지하고 방해하기 위한 엄청난 감시였다. 우편 장애, 전화 도청, 경찰의 노점상 폭행이 바로 이러한 이유로 설명될 수 있으며, 먼저 파일과 서명목록을 탈취한 경찰 특공대들이 존재하지도 않는 마약을 이유로 활동가들을 급습했고, 외설 시비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리고 국세청은 정치적인 목적의 세무조사를 자행했고, FBI는 대안 미디어 그룹들을 쫒아내도록 집주인들에게 압력을 가했다. (다우닝, 39)

그 이유는 아마도 무한히 증식하는 미디어의 성격, 즉 보다 더 넓은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퍼트리고 복제할 수 있는 능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종종 인용되는 “선례의 위험”이라는 원칙은 변혁에 맞서는 정세의 불안정화 속에서 미디어가 가져야 했던 특별한 위치를 잘 설명해준다.



반혁명 : 지하 출판 그룹


지하 출판 그룹을 없애기 위한 활동들은, 최고위선에서 보자면, 보다 넓은 범위의 사회 변혁운동과 결합된 것으로 간주되었던 혁명적 조직들과 운동단위들(예-흑표범당, 미국 인디언 운동, 웨더 언더그라운드Weather Underground)을 제거하기 위한 FBI의 대파괴자첩보활동(COINTERPRO : CO[UNTER] INTEL[LIGENCE]+PRO[GRAM])의 일환으로 조직되었다. 1968년 대파괴자첩보활동을 시작하면서 J. 에드가 후버가 기록한 메모4)는 이후 많은 작전들의 원형이 되었기에 살펴볼 필요가 있으므로 아래에 인용한다.



뉴욕 알바니 미전략공군사령부, 68년 7월 5일


FBI 국장 귀하 (문서번호 100-449698)


대파괴자첩보활동 - 국내 보안 - 신좌파 분쇄

(대파괴자첩보활동 - 신좌파)


수사국측(bulet)은 68년 5월 10일 신좌파들을 진압하기 위해 대 파괴자 행동에 나설 것을 제안하였음. 수사국의 요구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들이 검토되었고, 대파괴자 행동에 대한 다음의 제안들은 모든 관공서에서 활용 가능할 것으로 사료됨 : ...


2. 신좌파 지도자들 사이의 적개심이나 개인적인 갈등을 이용하거나 선동할 것

3. 특정 신좌파 지도자들이 수사국이나 여타 법 집행 기관에 밀고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만들 것.

4. 신좌파 지도자들과 구성원들의 부패를 드러내는 “지하 출판 그룹” 혹은 학생 신문에서 나온 기사들을 사용할 것. 특히 이들이 마약을 복용하고 프리섹스를 일삼는나고 주장하는 기사들은 대학 당국, 부유한 기부자들, 국회의원들, 신좌파문제에 열성적인 부모들에게 보내는 것이 바람직함.

5. 신좌파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마리화나를 포함한 다른 마약류들을 복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이들이 마약 복용 혐의로 지방당국에 (먼저) 체포되지 않도록 유의할 것.



지하 출판 그룹들을 분쇄하기 위한 이러한 전략들은 FBI의 ‘우호적인 방문’에서부터 출판자들이 그들의 신문을 찍지 못하도록 부추기는 것(스트라이트매터, 215), 출판 사무실에 마약 단속을 빌미로 수시로 급습하는 것(볼츠, 7), 정치적으로 선동된 끝없는 음란 시비, 장비와 문서들을 파괴하는 침입과 강도질, 주요 활동가들 암살5)(스트라이트매터, 232)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적용되었다.

조지아 스트레이트(Georgia Strait) 편집국원은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 “범죄행위로 처벌당하고, 법원에 끌려가고, 감옥에 갇히는 일은, 그 당시 지하 신문에 기사를 기고하거나, 출판을 담당하던 사람들 누구에게나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반혁명 : 인디미디어


상당히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진 대파괴자첩보활동 시대의 많은 전략들이 다시 살아나고, 갱신되어, 세계 정의 변혁운동을 잠재우기 위해 활용되었다. 이에 대한 몇 가지 사례들을 살펴보자면, 시위대를 보호하던 인디미디어 자원 봉사자들을 물리적으로 공격하고, 카메라, 컴퓨터, 녹음 장비들을 압수하고, 증거 수집 명목으로 침입하고, IMC 미디어 센터를 습격하고(슈메이,C-5) 최근 아리엘 샤론 총리가 아돌프 히틀러와 열정적으로 키스하는 그림을 공공 뉴스 서비스에 올렸다는 이유로 이스라엘 인디미디어 센터를 “공인에 대한 모욕”을 명목으로 폐쇄한 것과 같은 법적 제재 등이 있다. 이 모든 전략들은 지하 출판 그룹의 베테랑들에게는 낯설지 않은 것들일 것이다.

덧붙여, 인터넷이라는 환경, 고유의 취약성으로 인해 활동가들의 의사소통을 음해하는데 이용당할 수도 있으며, 실제로 보안 경찰 기관에서는 네트워(Netwar : 한 유력한 보고서에서 랜드연구소6)의 연구원들이 사이버 공간의 이의(異議)에 대한 전쟁을 네트워로 명명했음)에 대비하기 위해서 엄청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인터넷에 대한 전략들은 다음과 같다.


- 하부구조 공격. 회선, 접속서비스와 인터넷 기반 서비스 제공자들은 사이버 범죄와 다른 조사를 명목으로 정기적으로 경찰 기관과 협조하고 있으며, 이들의 공조는 대규모시위동안 인디미디어와 다른 서버의 IP를 차단하는 데에 이르렀다.


- 감시의 확대. 9.11 사건 이후 광범위한 도청 및 감시가 허용되었다. 반-테러 법은 개인적인 웹 사용과 타겟이 된 활동가들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하여 매우 엄중한 감시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세계적 범위의 에셀론 시스템과 FBI의 CARNIVORE와 같이 오랜 기간 정비되어온 도청 프로그램들은 다른 의견을 가진 활동들을 매우 효과적으로 추적할 수 있는데, 새로운 법체계 내에서는 자료를 사용함에 있어서 어떤 사적인 제한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감시에 대해서는 법적인 것이 아닌 오직 기술적인 부분에서의 제한이 있을 뿐이다.


- 엄격한 지적재산권법. 저작권 법 조항, 특히 뉴스 아이템을 바로 연결하는(deep-linking)행위에 재출판에 대한 엄격한 조항은 기존의 관례들을 뒤집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의 면허가 법인에 속하게 되면서 온라인 활동이 일어나는 디지털 공유지를 폐쇄하도록 위협당하는 결과가 나타난 바, 이것은 인터넷환경에 매우 특수한 변화였다.


- 해킹, 스피닝(spinning), 그리고 사회적 관리. 자동화된 분산서비스거부(DDoS: 여러 대의 컴퓨터를 일제히 동작하게 하여 특정 사이트를 공격하는 방식-역주) 공격에서부터 ‘컨텐트 주입’ 홍보, 정치적인 해커들, 보안 경찰 기관들, 개인단위의 홍보회사와 정보관리 회사들은모두 온라인에 있는 정보들에 대하여 조작하고, 막고, 보급시키는 기술들을 완성시키고 적용하기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미디어 활동에 대한 오래된 진압의 기술과 새로운 기술들이 결합되어도 매일 사이버 공간에서 그 유효성을 소진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사이버 공간은 시민사회운동가들과 권력을 침해당한 원력구조의 훨씬 더 격렬한 격전장이 되었다.7)



긴 시간이 지나고8)


모든 변혁운동은 자신의 목표를 향해 전진하고, 성공과 실패가 뒤섞인 채로 결말을 맞는다. 이는 이전의 운동과 지하출판그룹의 활동들에도 적용되었고, 최근 활기찬 세계 정의 운동의 물결에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유산/남긴 것 : 지하그룹


1970년대 초반, 북미에는 약 500개 정도의 지하 신문출판 그룹들이 있었다. 오늘날에는 산발적인 몇 개의 조직들만 있으며, 그마저도 좌파정당의 기관지를 제외하면, 과거 지하출판그룹의 전성기 때부터 이어져온 조직은 하나도 없다.


운동의 분산과 지하그룹의 활동정지는 몇 가지 요인에서 기인한다.


- 베트남전의 종전. 당시 지하 그룹들을 이끌었던 상당부분의 정치적인 에너지와 분석들은 베트남 전쟁과 그에 따른 징병제에 반대하면서 집결되었다. 이 운동의 가장 큰 승리는 종전에 기여했다는 것이었지만, 바로 이 승리가 운동의 하락세에 큰 역할을 했다.


- 대파괴자첩보활동(COINTELPRO)의 성공. 위에서 살펴보았던 진압작전은 이견들을 조작하고, 파벌화를 부추기고, 그들의 적은 자금으로 법적 공방 중 막대한 돈을 지불하게 만드는 등의 방식으로 지하 운동을 분쇄하고 무력화시키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 내부적 취약. 운동 전체의 관점에서 보자면 지하조직들은 상당한 흠결들과 맹점들에 노출되어 있었다. 특히 그 중 두 가지는 1970년대에 지하 조직들이 생존할 수 있는 역량을 급감시켰다고 할 수 있다.


- 남성중심적인 운동 속에 자리 잡은 성차별주의와 마초문화가 자유주의라는 가치의 설특력와 실천 모두의 지반을 흔들었고, 1970년대 초반, 페미니즘이 창조적인 역량으로 운동에 개입함에 따라서, 이 문제는 보다 극명화되었다.


- 팽배했던 마약문화는 지하조직들이 법적 폭력에 취약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대부분의 경찰들은 언제 들이닥쳐도 불법 증거물들을 찾아낼 수 있었고, 이런 마약에 관련된 문제들과 경찰특공대의 정보취득은 지하 신문 출판으로 이미 당면한 법적 문제들의 해결을 악화시켰다.


- 현금유통과 선택(co-option) 가장 정치적인 지하신문들은 특정한 광고 기반 없이 출판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거리 판매와 기금 모금으로 매 부수를 힘겹게 찍어내야 했는데, 이러한 접근방법은 장기적인 안정을 확보하는 데는 힘들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지하조직들이 활용했던 대안은, 음악 산업의 광고에 완전히 의존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이는 지하조직들이 컬럼비아 레코드나 여타 거대 음악 기업들에 종속되는 아이러니를 낳았는데, 조지아 스트레이트(Georgia Strait)의 경우 그들의 신문을 ‘예술, 연예’ 주간지로 변형시켰다. (이 과정에서 오직 하나의 지하신문만이 보통을 넘어서는 수준의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대부분의 지하신문들은 1970년대에 음반회사들이 새로운 도시 라이프스타일 출판물들로 광고를 옮기자 빠르게 자신을 변화시켰는데, 심지어 당시 지하 신문계의 뉴욕 타임즈라고 할 수 있었던 버클리 바브(Berkeley Barb)마저 1980년대에는 같은 길을 걸었다.(스트레이트매터, 196, 212)


지금까지를 돌이켜보면 지하 그룹들의 운동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놀랄 만큼 적지만, 정치적이진 않다 하더라도, 생활방식이나 사회적인 측면에서 전체 운동이 사회에 끼친 막대한 영향력을 끼쳤다.

시각예술분야에서 지하그룹은 구텐베르크 이후 출판물에 당연하게 여겨졌던 단 배열과 사각형 모양의 배열들을 과감히 넘어서서, 업계에 다양한 색채와 시각적인 풍요로움의 신선함을 던졌다.

편집면에서 보자면, 극도로 개인적인 스타일은 때때로 ‘독단에 찬 저널리즘’이라고 비판받았지만, 지하그룹에 의해서 처음으로 독자들에게 소개된 이런 방식은 여전히 기자들을 훈련하는데 유용하고, 운동진영의 신문들의 오랜 경험에서부터 여전히 효과적인 많은 기술들을 찾을 수 있다.

아마도 이렇게 남아있는 유산이 없다는 사실은 전혀 놀랍지 않을 수도 있다. 지하그룹들은 운동진영의 목소리로부터 나온 확대된 메아리였고, 운동의 목소리가 잠잠해짐에 따라-혹은 죽었거나, 해체되었거나, 분산되었거나, 아니면 단순히 잠시 동안 잠잠해진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 메아리 역시 잠잠해 지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불확실한 미래 : 인디미디어


세계정의 운동은 21세기 초반의 변화된 세계에 대하여 재빠르게 개입하고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세계정의 활동가들이 기업중심의 세계화 의제들을 지연시키고, 대중적인 반전의식을 조직화시키면서 활동적인 성과를 더 거둘 수 있는 가능성들이 매우 많다.

기업과 국가가 힘을 합쳐 운동의 발목을 잡음에 따라, 세계정의 운동에 대한 많은 수의 명백한 의협들이 보다 분명해지고 있다. 이러한 위협들은 반혁명적 기반을 형성하는 바, 바로 그 곳에서 변혁의 반대자들이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의제들에 대한 지배력을 다시 탈취할 행동을 개시해왔다.


- 저작권과 부당행위. 위에 언급되었듯이, 저작권법과 지적재산권법은 기업중심의 세계화 전략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새로운 입법과 고소의 방식으로 ‘정보공유물’들을 ‘사유화’시키는 목표를 향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가 투자한 SCO가 리눅스 운영체제를 고소한 사건 역시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의 합법성 자체를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기업전략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완전히 오픈소스 체제인 인디미디어 네트워크의 기술적 기반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것이기도 하다.


- 공개출판의 위험성들. 지하출판 그룹들이 자신의 문화와 실천에 기반 한 취약성을 드러냈듯이, 인디미디어는 ‘공개 출판’의 철학과 원칙에 따른 위험성들로 쉽게 이용당해왔다. 웹 사이트 포럼들에서 제 3자 (혹은 외부인)에 의해 출판된 정보 때문에 출판 활동가들이 체포당하고 구금되었고,9) 이러한 취약점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미리 심어놓은 정보를 추적하는 대파괴자첩보활동의 전략들을 막을 만한 방어의 방법들이 근본적으로 인디미디어에는 없다.


- 정치적 공간의 폐쇄. 세계정의운동은 9.11사건과 그에 따른 ‘테러에 대한 전쟁’보다 먼저 있어왔으며, 급진적 이슬람주의자들과 최근 전 세계를 활보하는 급진적 신-보수파들간의 전쟁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관심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세계정의운동가들과 인디미디어 네트워크가 이들의 전쟁으로부터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지금 북미의 모든 다양한 의견과 차이들은 오직 극도로 제한된 법적, 정치적 공간에서만 가능하며, ‘애국법’의 테두리에서 벗어날 수 없고, 점점 증가하는 강도 높은 감시를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제한된 공간마저 일시적으로 존재할 뿐이다. -과연 9.11 규모의 사건이 다시 일어날 경우 미국의 시민법이 존재할 수나 있을지 의심스러운데10), 많은 사람들은 그런 경우에, 인디미디어나 다른 많은 반체제 미디어들이 ‘전쟁이 끝날 때 까지’ 폐쇄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리고 테러에 대한 전쟁이 조만간 끝나지 않을 것이므로, 그 기간은 물론 훨씬 길어질 수 있는 것이다.


10년을 넘기기 힘들었던 다른 변혁 운동의 전형적인 주기들에 비추어볼 때, 대중적인 세계정의 운동은 실질적으로 이후 2~3년 안에 끝날 것으로 보이며, 그 때 우리는 이 운동이 남겨준 것들-실패의 원인과 함께-를 자세하게 살펴봐야 할 것이다.



저물어가는 제국(Evening's Empire)11)


과거의 운동들과 세계정의 운동이 기술력을 활용하는 방식을 비교함으로써 우리는 몇가지 일반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리고 과거와 미래의 혁명적 사회변화 운동을 사고함에 있어서 이러한 일반화가 도움을 줄 것이다.


- 체계의 빈틈. 기술적으로 선결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변혁운동들은 당대의 기술들과 문화적 환경들을 기존 체계에 대항하는 도구로서 창조적으로, 그리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활용한다.


- 변혁은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 한 변혁운동이 일어난 후에 권력들은 다시 힘을 모아, 체계의 빈틈을 매우고, 손질한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힘을 모은다 하여도, 눈치채지 못한 다른 구석을 통해서 다음 변혁의 씨앗이 솟아날 준비를 한다.


- 변혁운동과 그와 결부된 미디어 그리고 공멸. 종종 다가올 운동에 대해서 예고하는 성공적인 미디어에 의해서 변혁운동의 ‘기억’이 보존된다고는 해도, 어떤 변혁운동에 결합된 특정한 미디어는 어떤 경우에도, 변혁운동이 실패한 이후에 혼자서 살아남을 수는 없다.


“정치적 격변의 시기 이전뿐만 아니라, 그 기간 동안에 계속해서 활동해왔던 National Guardian과 KPFA 버클리의 중요성에 대해서 생각해보라. 그러나 그 시기 이후에는 살아남을수가 없었다.... 만약 진보적 미디어가 이러한 격변 이전에도 이후에도 존속할 수 없다면, 기존의 정치조직에 균열을 만드는 것은 매우 힘들 것이다. (다우닝, 357)


지하조직과 비교할 때, 세계정의운동에 있어서 컴퓨터의 역할로부터 도출할 수 있는 몇가지 결론들이 있다. 여러 가지 방식의 이러한 결론들은 컴퓨터화가 사회전체에 끼친 영향들을 반영한다.


특히, 본고에서는 다음 사항들을 지적한다:


- 컴퓨터는 미디어 제작과 보급, 특히 ‘지역’에서 ‘세계’로 영향력을 확대하는데 있어서 비용을 엄청나게 절감시켰다.


- 컴퓨터는 미디어분야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를 다른 활동가들로부터 물리적으로 고립시킨다. 협동이 어떤 면에서는 훨씬 쉬워졌다고 할 수 있지만, 미디어 제작의 특성은 점점 더 소외되고 개인화된 과정이 되어가는 경향이 있다.


- 컴퓨터와 인터넷은 기술적 의존의 심화시킨다. 이 사실이 매우 명백하다 하여도, 이에 따른 효과들이 항상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매일 인디미디어 네트워크를 운영하는 ‘기술들‘의 특정한 중요성은 기술기반의 현실에 대한 사회적인 표현의 하나이다.


두 변혁운동을 살펴보고, 각자 창조적인 방식의 기술사용을 분석함으로써, 우리는 30년 이후를 내다보고, 다음 운동의 전망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완벽한 나노기술, 유전공학, 엄청난 VR의 미래에 있어서 어떤 기술로서 다음 세상의 불을 지필 것인가? 그리고 그것이 VR세계 일부에 속한 완벽한 유토피아를 건설하는 것인가? 복제인간과 키메라들의 인권에 대한 싸움은 어떻게 될 것인가? 군사무기 수준의 강철을 미뢰를 가진 나노기술 세포를 이용한 생체해킹 전염이 벌어지지 않을까?

그러나 우리가 안심할 수 있는 이유는, 어떤 식으로 상상하던 간에, 중요한 점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러했듯이, 자유를 향한 외침은 터져 나올 것이다. 그 누군가가 지금 미래를 구상하고, 자유의 씨앗을 제거하기 위해 아무리 애쓴다 하여도, 그가 간과한 어떤 한 구석에서 자유의 씨앗은 자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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