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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2] FTA의 게임과 미디어-시청각 분야 개방, 연대의 운동전략 - 전규찬

 

[발제문 2]


FTA의 게임과

미디어-시청각 분야 개방, 연대의 운동전략


전규찬 (한예종 교수, 문화연대 시청각미디어센터 소장)



바다를 넘어

오만은 점점 거칠어만 오는데

그 밑구멍에서 쏟아지는

찌꺼기로 코리아는 더러워만 가는데.


나만이 아닌데

쭉지 잽히고

아사의 깊은 대사관 앞

걸어가는 행렬은

나만이 아닌데.1)



1. 시청각․미디어 공대위의 태동


문화연대의 제안으로 시작해, 지난 3월 8일 국내 언론․미디어․문화운동을 주도해 온 언론노조, 언개련, 민언련, 피디연합회 등 20여개 단체들이 한미FTA 저지 시청각․미디어 공동대책위원회 출범을 선언한 바 있다. 이 자리에서 참석 단체들은 ‘한미FTA 협상의 어떠한 속임수도 방송을 포함한 시청각․미디어의 귀중한 문화적, 공공적 가치를 빼앗을 수 없다!’고 못 박았다. 한미FTA를 가히 무모하다고 할 정도로 졸속․일방 추진하는 정부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를 비판하면서, ‘21세기형 한미경제안보합병협약’이라고 부를 수 있는 한미FTA에 대한 전면적인 거부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한미FTA가 보통사람들, 노동자․농민, 중산층, 중소기업을 위한 게 아닌, 국내외 소수 재벌, 다국적 기업을 위한 ‘서비스’에 불과한 협약임을 정확하게 폭로했다. 미국이 협상 개시 조건으로 내세운 스크린쿼터 축소를 받아들인 정부와 이를 강요한 미국을 규탄하면서, 민주적 공적영역이면서 자주적 삶, 문화다양성의 보루라고 할 수 있는 시청각․미디어 분야는 반드시 지켜낼 것임을 약속했다. 사실 미국은 시청각․미디어 분야의 개방과 관련해서, 지금까지 ‘드러내면서 동시에 숨기는 이중 전략(revealing yet concealing dual strategies’을 구사해 왔다.

우선 미국은 스크린쿼터 축소 및 궁극적 폐지를 확실하게 관철시켰다. 또한 통신 분야에 대해서도 매우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다. FTA 협상 과정에서 가장 집중할 분야라면서, 개방의 욕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처럼 한 쪽에서 확실하게 자신의 의지를 드러내면서도, 방송과 관련해서는 아직까지 공식적인 차원에서는 침묵으로 일관해 왔다. 이러한 강온전략은 미국 측의 입장에서 매우 합리적이라 할 수 있다. 방송을 공개적으로 언급함으로써 괜히 협상 초기부터 한국 사회 내에 논란과 반대 여론을 촉발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한편 국내에서도 한미FTA와 관련해 방송은 개방에서 제외될 것이라는 이야기들이 흘러 다니기 시작했다. 한미FTA에서 방송이 빠질 것이라는 일종의 낙관론이다. 정확한 출처를 파악하기 힘든, 어떠한 근거에 기초한 것인지 확인하기 어려운 이런 낙관론은 대중의 무관심과 무지 속에 한미FTA를 밀어붙이고자 하는 신자유주의 정권의 선택, 이를 지지하기에 바쁜 수구신문 동맹들의 일방주의적 의도, 그리고 진지한 의제 대신에 표피적인 것에 집중해 시청률을 끌어올리고자 싸우기 바쁜 방송사들의 구조적 무지와 의도적 무관심과 맞물리면서 사회적 의제화 가능성을 봉쇄하는 부정적 효과를 가져왔다.

우리가 시청각․미디어 분야 공대위를 긴급하게 구성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스크린쿼터 문제와 쌀을 비롯한 농업 문제 사이(in/between)의 시청각 미디어 문제가 결정적으로 간과될 수 있음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침묵의 고리를 깨고, 정확히 문제 현실을 드러내며, 그 혁파의 출구를 찾기 위한 운동 네트워크 형성의 제안이었다. 이는 미국이 시청각미디어를 한미FTA 협상의 주요 의제로 틀림없이 제기할 것이며, 따라서 이에 대해 미리 대응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정세분석에서 출발했다. 이를 위해 운동세력들이 결집하고, 사회적 공론화 노력을 서둘러야 한다는 판단에 기초했다. 스크린쿼터처럼 뒤통수를 맞지 않기 위해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그 토대였다. 이 글에서는 한미FTA 저지를 위한 시청각․미디어 운동의 철학과 방향에 대해 다룬다. 우선 2장에서는 낙관론의 내용과 그 근거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고, 3장에서는 이를 비판적으로 평가해 볼 것이다. 4장에서는 FTA 및 시청각․미디어의 개방, 그리고 대항 운동의 방식과 관련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는 호주의 사례를 집중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그 후 5장과 결론에서는 전반적인 대응 방향, 운동 원칙을 짚어볼 것이다. 우선 방송이 한미FTA를 비켜갈 수 있다는 낙관적 전망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2. 낙관론에 대항한 현실론의 개진


역량 집중의 미묘한 균열을 가져오고, 방송개방 문제의 사회적 의제화라는 시급한 과업을 방해하는 낙관론의 내용과 출처, 근거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말해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방송정책을 책임진 정부나 방송위원회, 방송영상산업진흥원과 같은 문광부 소속 연구소에서 FTA 및 시청각미디어 개방 문제와 관련해 어떤 심층적 연구를 수행했거나 그 결과 보고서를 공식적으로 발간했다는 이야기는 아직 없다. 한미FTA 주무 부처인 외교통상부의 공식 발표도 마찬가지로 없다. 최근 한국언론재단이 통상교섭본부장을 불러 개최한 ‘한미 FTA와 협상전략’이라는 포럼을 제외하고,2) 어떤 중장기 대 위원회나 전문가 토론회, 공개적 공청회가 진행되지 않았다. 학계에서조차 이와 관련된 연구나 토론의 기회가 전무 한 상태이며, 방송과 신문에서도 심층적인 탐사 보도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단적으로 말해서, 한미FTA가 방송을 포함한 시청각미디어 분야에 미칠 파장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체계적이고 공개적인 토론, 지적이고 사회적인 논의가 완전히 결여되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관론이 시중에 유통되고 있다. ‘전문가’ 의견이라는 이름을 달고 다니기도 한다.3) 쉽게 주체 파악하기 힘든, 구체적 실체를 정리하기 어려운, 사적이고 파편적인 담론의 유통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다.4)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단편적인 낙관론의 내용을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 정부가 문화주권과 관련된 방송에 대해서는 문화보호 차원에서 보수적인 입장”이라는 것이다. 정부가 잘 협상에 대처해 나가서 방송은 반드시 지켜낼 것이기 때문에 신뢰를 갖고 지켜보자는 신중론이다. 두 번째는, 미국도 방송의 대해서는 개방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한국에서 스크린쿼터를 양보하고 미국이 방송을 포기하는 식으로 일종의 교환(barter)가 이루어졌다는 해석이다. 이와 관련해 <디지털 타임즈>는 다음과 같이 보도하고 있다.


양국의 요구조건이 명확히 제시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이미 우리 정부가 미국 측에서 보호무역주의라고 줄기차게 주장해 온 스크린쿼터 일수를 축소하기로 공식화한데다, 지난해 말 유네스크에서 문화다양성 협약이 채택된 점 등 미국의 방송 시장 개방 요구는 높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5)


이를 조합해 보면, 한국 측의 비 개방 입장이 분명하고 미국이 스크린쿼터의 소득 및 문화다양성 협약 등을 고려하여 방송은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방송과 통신에서 우리보다 훨씬 엄격한 외국인 소유 제한 비율을 엄격하게 정해 놓고 있는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이 분야의 개방을 강요하지는 않으리라는 전망과도 연결된다. 결국 한미FTA는 방송을 비껴갈 것이며, 또한 방송에 끼칠 영향은 별로 크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디지털 타임즈>도 “방송 외에 광고의 경우 어느 정도 시장 개방이 이뤄져 있어 FTA로 인한 파급 효과는 크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며 시청각․미디어야 분야에 대한 짧은 전망을 낙관적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동 기사가 “방송위원회에 따르면 한미FTA에서 방송과 관련된 공식 아젠다는 오는 4-5월 쯤 도출될 것으로 예상 된다”는 식으로 모순된 전망을 내놓고 있다는 사실이다. 방송위원회가 내부적으로 이러한 판단을 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 매우 충격적이며 문제가 크다. 우선 방송이 공식 의제가 될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고 판단하고 있으면서도, 이를 제대로 외부에 알리고 소통하지 않은 점이 문제가 된다. 지금까지는 방송이 협상에서 “제외”될 것이라는 이야기만 외부로 간간히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방송이 조만간 공식 아젠다할 수 있다는 인식이 내부적으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있다면,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개방을 요구할 수도 있지만 요구하지 않을지도 있고, 따라서 기다려보자는 식의 위험스런 생각은 통하지 않는다. 개방 요구의 가능성이 단 1%라도 있다면 이에 대해 철저히 준비하는 게 제대로 된 방송위원회의 책무다. 지금이라도 이와 관련해 방송위는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하며, 만약 대책이 있다면 이를 당장 학계와 시민사회, 언론매체에게 공개해서 철저하게 검증을 받아야 한다. 안이한 인식은 광고공사의 경우에도 똑같이 발견된다. “미국이 FTA협상에서 한국의 방송광고 시장 개방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 된다”고 한국 측 수석대표가 라디오 인터뷰에서 밝혔음에도 불구하고,6) 광고공사 측은 계속해 침묵으로 일관할 따름이다.

이처럼 정부와 방송위로부터 간헐적으로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이 파편적이고 또한 내용이 일관되지 않고 충돌한다는 명백한 한계점에 덧붙여, 낙관론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측면에서도 취약하다. 쉽게 공박될 수 있다. 우선 첫 번째 경험론적으로, 미국이 방송을 한미FTA 의제에서 제외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근거가 부족해 보인다. 마치 전장에서 적에게 발각된 군인이 선의를 기대해 알면서도 눈 감고 피해 가 주기를 기대하는 유치한 발상에 다름 아니다. 미국은 지금까지 외국과 FTA를 추진함에 있어 시청각 미디어 분야의 개방을 포기한 적이 없다. 결과와 무관하게, 방송 등 시청각 미디어를 반드시 협상의 아젠다에 포함시켰던 것이다.7) 그런데도 미국이 한미FTA에서만 유독 방송을 제외할 것이라고 바라는 것은 조소를 자초할 비현실적 발상이다. 그런 소박한 ‘예외주의’의 기대는 100% 완전개방과 100% 시장 ‘자유화’를 꿈꾸는 제국/자본의 질서에 어울리지 않는다. 낭만적이라 할 수 있는 판단의 후진성은 ‘문화다양성 협약’과 관련된 대목에서도 그대로 되풀이된다. 미국은 이스라엘과 더불어 유네스코(UNESCO) 협약에 반대한 두 나라 중 하나다. 자신이 반대한 협약을 미국이 지킬 리 만무한 것이며, 우리 국회도 아직까지 ‘문화다양성 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상태다. 30개국에서 비준해야 국제 협약으로 자격을 갖추게 될 이 협약은 비준하지 않은 나라에 대해서는 구속력이 없다.

두 번째로, 미국이 시청각 미디어 분야의 개방 요구를 포기할 것이라는 기대는 이론적으로도 맞지 않다. 시청각 미디어가 후기자본(주의) 축적 전략에서 핵심 분야가 될 것이라는 전망은 이미 상식으로 통한 지 오래다. 국내에서도 ‘한류’ 등의 경험을 거치면서 ‘영상산업’의 경제적 가치를 정부와 관변단체, ‘전문가’들이 한 목소리로 강조한 바 있다.8) 공업의 지배에서 서비스와 정보의 지배로의 이행, 즉 ‘경제의 탈 근대화 과정’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전망은 좌파 진영에서도 공감하는 바다. 바로 그 ‘정보화’의 주축이 시청각 미디어 분야다. 지식과 정보, 연예오락, 광고 등 방대한 범위의 ‘서비스’들을 중심으로 한 탈산업화 경제, ‘정보경제’의 시대란 다름 아닌 시청각미디어 경제의 시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9) 미국을 연결 고리로 한 제국/자본이 잠재력 높은 동북아시아 한국에서 황금의 땅 엘도라도를 지나칠 리 만무하다. 경제적인 이유와 더불어 시청각미디어는 자본의 양식을 재생산하고 사회적 관계를 구성하며 주체(성)를 생산하는, 비물질적 생산의 순환을 책임질 결정적 포인트이기도 하다. 제국의 하드파워는 의사소통(communication)의 ‘소프트파워’와 병행하며, 자본의 팽창은 이념의 뉴 테크놀로지 확산과 공진한다. 요컨대 제국/자본은 텔레비전을 포함한 ‘표현기계(machine of expression)’ 없이 한 마디로 작동이 불가능하다. 미국이 그런 전략적 장치를 포기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제국의 시대에 한참 뒤처진 난센스다.



3. 방송 개방 요구의 잠재/실재 현실


세 번째 현실적으로도, 미국은 이미 시청각 미디어 분야의 개방을 사실상 요구했다.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그러하다. 우선 스크린쿼터 축소를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관철시킨 점, 그리고 통신을 개방의 핵심 분야로 이미 강조한 점이 이를 확인시켜 준다. 영화와 통신은 방송과 더불어 시청각 미디어의 영토를 구성하는 세 개의 꼭짓점이다. 통신과 관련해서, 미 무역대표부(USTR)는 의회에 통보한 소위 ‘협상 통보 문’을 통해 최대 관심 분야로 제시하는 등 노골적이고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했다. 이는 단순히 통신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탈규제와 신자유주의, 방․통융합의 목소리가 높은 상황에서, 기간통산사업자의 외국인 지분제한 율(49.9%)을 풀고, 그리하여 국내 통신회사를 소유할 수 있게 된다면,10)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방송사까지도 소유할 수 있게 됨을 뜻하는 것이다. 요컨대 미국은 통신이라는 한국의 고도성장 시장 그 자체를 장악하는 동시에, 그와 연계된 방송까지도 진출하는 일종의 ‘우회 전술(de tour strategy)’를 택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통신시장 개방을 통한 방송 빗장풀기, ‘쓰리 쿠션의 묘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통신-방송으로 이어지는 시청각 미디어의 삼각 영토에서 이미 한 쪽 지점(영화)을 사실상 무력화시켰고, 통신을 다음 타격 지점으로 획정해 놓은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방송은 잠재적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 자동적으로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통신을 개방해도 방송은 안전할 것이라는 안일한 인식 대신에, 통신 자체를 시청각․미디어의 결정적 접점으로 간주해 반드시 지켜낼 것이라는 합의와 공약이 중요하다.

영화와 통신은 이미 개방(요구)의 실재 현실에 직면해 있다. 마지막 방송만 아직 잠재적 개방의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방송 개방의 요구가 일종의 ‘잠재적 현실(potential reality)’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잠재적 현실’은 이루어질리 만무한 비-현실이 결코 아니다. 가능성을 지닌 또 하나의 현실이다. 표면 아래 잠복해 있지만, 계기가 주어지고 조건이 갖추어지면 지금 당장이라도 ‘실재적 현실(actual reality)’로 변이할 수 있다. 따라서 잠재적인 상태에 있다고 해서, 가시화되지 않았다고 해서 현실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지적으로 순진할 뿐만 아니라 현실적 감각이 매우 떨어진 태도다. 방송과 관련해서도, 미국정부가 아직까지 개방을 직접 요구하고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협상에서 제외되었다고 기정사실화하는 것은 인식적 오류에 해당한다. 미국은 언제든지 방송을 직접 언급할 수 있으며, 비판적 현실주의의 운동은 그렇게 가시화되었을 때뿐만 아니라, 그 이전의 비가시적 상태에서도 잠재태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미 매우 의미심장한 사건이 발생했다. 잠재해 있던 미국 측의 방송 개방 요구가 점차 구체적인 모습을 갖추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방송 개방, 시청각 미디어 분야의 총체적 개방 요구를 향한 빠른 행보는 ‘미국 측’이라는 범주에 전위에 나설 미 행정부뿐 아니라 배후 제국/자본의 진짜 주인인 다국적 기업을 정확하게 위치시킬 때 더욱 명료해 진다. FTA의 진짜 주체인 다국적 자본은 영화와 통신을 통해 이미 방송, 더욱 나아가 시청각미디어 전 분야의 개방 요구를 선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 지난 주 미 무역대표부가 워싱턴에서 가진 한미FTA에 관련 공청회가 이를 잘 보여준다. <조선일보>의 워싱턴 특파원은 자신이 “이런 공청회를 보고 싶다”고 제목을 붙인 공청회의 모습을 “마치 공부하는 세미나 같았다”라고 묘사했다. “얼마 전 우리 외교통상부가 주최한 공청회가 일부 과격 단체들의 단상 점거로 무산된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폭력과 고성 대신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미국 정부와 이익단체들이 부러웠다. 우리가 먼저 개방해야 할 부분은 다름 아닌 ‘공청회 문화’인 것 같다”라고 자신의 인상을 피력했다.11) 공청회가 미 정부와 이익단체들이 한미FTA와 관련, 한국 측에 요구할 내용에 관해 매우 진지하게 의견을 교환하고 정리하는 전략적 소통의 장이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주미 한국대사관 경제공사까지 참석해 ‘FTA는 전체적으로는 한국경제에 긍정적 효과를 줄 것’이라고 진술했다는 공청회 논의의 내용이다. 이에 대해, <연합뉴스>는 이날 공청회에서 “미한재계위원회와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를 대표한 리처트 홀윌 알티코 부회장은 미디어와 방송을 포함해 통신, 법률, 금융, 회계, 컴퓨터, 시청각, 속달 등 서비스전반에 걸친 철폐를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윤동영 특파원은 기사에서 “특히 방송 분야의 경우 외국물 방영을 제한하는 쿼터제와 더빙 및 외국방송 광고의 재 송출에 대한 제한을 요구했다”고 덧붙였다.12) 한마디로 방송의 소유와 편성, 광고13)의 완전한 개방, 시청각 미디어 전 분야의 총체적 개방을 요구한 것이다.

FTA는 민족/국가(nation/state) 사이의 협약이라는 형식을 띄지만, 실제로는 거대 다국적 자본간 협정이다. 자본의 네트워크 형성 운동, 즉 제국(empire) 구축의 운동이다. 제국의 시대에 국가는 분명 법적, 군사적 질서 유지 및 재편의 전통적이고 중대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렇지만 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다국적 자본을 중심으로 출현하는 전지구적 권력 구조다. 민족/국가는 이 재편되는 체제 속에서 주도적/지배적인 역할보다는 점차 부수적/봉사적(serving)인 역할을 떠맡게 된다.14) 한미FTA에 있어서도 우리가 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미 행정부의 공개적 발언과 공식적 행보가 아니라, 그 배후에서 조용하게 움직이고 사적으로 요구하는 자본의 운동이다. 미 무역대표부가 행한 공청회라는 게 바로 자본의 목소리를 청취하고, 이해관계를 조율하며, 국가의 정책을 정리할 자리인 것이다. 이런 점을 간과한 채, 방송 개방을 요구하는 자본과 그 협회의 목소리를 미 행정부의 입장과 무관한 ‘업계의 주장’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은 현실을 제대로 읽는 태도가 아니다. 미국 정치의 운영 규칙에 대한 초보적인 지식만 있다면, 이러한 공청회를 통해 표현되는 담론과 그것이 지니는 정치/정책적 효과성을 정확히 간파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극소수를 제외하고 대다수신문과 방송은 이 중대한 사건을 무시해버렸다. 그래서 개방요구가 실재 현실로 등장했음에 불구하고, 여전히 방송은 한미FTA와 무관한 영역으로 남는다.

다행인 것은 <언론노조>가 개최한 지난 2월 말 토론회와 3월 8일자 <한미FTA 저지 시청각 미디어 공동대책위원회>의 출범선언문, 그리고 이후 구성된 정책위원회의 내부 정세분석 작업에서 이러한 전개 과정이 정확하게 예견되었다는 사실이다. 미국 측의 전략을 정부나 방송위, 학계와 연구소가 무지와 무관심의 탓 혹은 그 외 알 수 없는 이유로 쉬쉬하고 있을 때, 바로 보통사람들의 평등․평화․평온한 삶을 위한 시민사회운동진영에서 미리 예리하게 꿰뚫어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미국 측은 시청각․미디어 분야의 ‘자유화’를 이미 카드로 꺼낸 셈이며, 그래서 ‘전면적 교전(total engagement)’의 상태에 자연스럽게 들어섰다. 자본/제국의 네트워크에 대응하는 인민 다중의 네트워크가 긴급하게 형성되었다. 이제는 정확한 정세 분석에 기초한 운동 전략의 구상과 그 집합적 실천만이 남았다. FTA 자체의 저지 운동이다. FTA가 인민 다중이 택해야 할 미래의 유일한 비전이 아니듯이, 시청각 서비스 분야의 개방에도 ‘반드시’라는 말은 절대 통하지 않는다. 개방은 강요/강제의 문제가 아닌, 주체적 판단/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개방 압력에 맞설 만한 충분한 정책수단이 우리에게 있음을 알아야 한다.”15) 호주와 싱가포르 사이에 있은 FTA(ASFTA)의 경우, 시청각 서비스와 문화적 목표 지원 대책들이 따로 도려내 이른바 ‘배제(carve-out)’된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우리에 앞서 미국과 FTA를 체결한 호주의 사례도 시청각 미디어 분야에서의 대항 운동의 방법 및 방향과 관련해서 매우 유익하다.



4. AUSFTA의 중요한 전례


호주는 지난 2004년 2월 8일에 미국과 FTA를 체결했다. 그런데 이 호주와 미국 사이의 FTA(AUSFTA)는 시청각 미디어, 특히 방송과 관련해 중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협성 결과에 대해, 호주 내부의 광고 및 마케팅, 미디어 전문가들은 이 협정이 지상파 방송의 편성 및 광고에 있어 미국 미디어 자본에 의해 장악되지 않도록 호주 텔레비전을 잘 보호해 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호주 수상도 방송과 시청각 미디어 서비스 분야에 있어서는 FTA와 상관없이 지금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호주의 목소리와 이야기가 계속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AUSFTA의 서비스 관련 챕터에 상업 지상파 텔레비전과 라디오뿐만 아니라, 디지털과 쌍방향 TV를 포함하는 유료 뉴미디어 분야에 대해 호주 정부의 일정한 ‘통제 능력(capacity to regulate)’ 보유를 인정하는 유보 조항을 두었다는 것이다.16) 현재 호주의 지상파 상업 방송사들은 80퍼센트의 ‘지역 프로그램(local content)’을 송출하도록 되어 있는데, FTA 협상 과정에서 호주 정부가 이 쿼터 부분에 있어서는 어떠한 양보의 태도도 보이지 않았다고 정부는 자신 있게 설명한다. 특히 공영방송의 경우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다고 주장했다. 문화적 목적을 위한 정부 보조금(subsidy)과 세제 인센티브 프로그램도 그대로 두기로 했다고 덧붙였다.17) 사실상 방송 분야를 미국과의 FTA 협상 과정에서 지켜냈다는 설명이 되는 셈이다.

이러한 호주 정부의 자신감 넘치는 설명에 대해, 호주의 미디어 비평가들은 견해는 엇갈린다. 우선 긍정적인 평가가 있다. 신종 방송시장에 대한 접근권에 있어 일정한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게 분명하지만, 그래도 호주 정부의 설명처럼 지상파 상업 네트워크의 80퍼센트 자국 프로그램 편성 쿼터를 존속시키기로 했다면, 이는 그래도 절반 이상의 성공이라는 평가인 것이다. 호주 영화 제작자협회 대표인 브라운(Geoff Brown)도 영화와 지상파 텔레비전을 협상에서 제외시키는 게 분명하다는 조건을 단서로, AUSTFA의 결과를 받아들이겠다고 응답했다.18) 중요한 것은 방송을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는 호주 사회 내부의 호의적 평가가 전적으로 호주 정부의 발표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중요한 것은, 이 부문에 대한 호주와 미국 정부의 진술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는 점이다. 미 정부 보고서는 방송과 관련해 호주-미국 간 FTA의 결과를 매우 다른 뉘앙스로 정리하고 있다. “이번 FTA는 방송과 시청각 서비스 분야에 있어, 케이블과 위성, 인터넷을 포함하는 다양한 분야에 걸쳐 미국 영화 및 방송 프로그램의 시장 접근을 향상시킬 중대하고 전례 없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고 시청각 미디어 분야의 협상 내용을 정리하고 있기 때문이다.19) 호주 정부의 낙관적 해석과 크게 대조적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호주의 모든 미디어, 시청각과 오락, 광고 서비스 전 시장을 사실상 미국 산 영화, 프로그램에 개방하기로 했다는 것이 미국 측의 주장이다.

결국 호주 정부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방송 개방과 관련된 논란은 AUSFTA 체결 이후에도 고스란히 남는다. 지상파 방송을 지켜냈다는 호주 정부의 입장은 방송 분야의 전례없는 소득을 얻었다는 미국의 입장과 크게 어긋난다. 호주 내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만만찮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우선 AWG(호주 작가 길드)는 호주 정부의 결과 발표에 대해 조목조목 의문을 표시한다.20) 현재로서는 쿼터의 유지를 명시하고 있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그 비율을 점차 줄여나가기로 하는 이른바 ‘래치트 조항(ratchet provisions)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보다 정확히 말해, 만약 일방이 쿼터의 ‘자유화’ 조처를 취했다면 다시 보다 규제적으로 만들 수 없다(If a Party liberalise a measure, it cannot then became more restrictive)고 못 박고 있다. 우선 어린이, 다큐멘터리, 교육 및 예술, 드라마 등 유료 케이블TV에서 10% 내외로 설정된 국산 프로그램 쿼터 비율을 앞으로 늘일 수 없고, 거꾸로 ‘자유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제는 케이블 TV의 이러한 탈규제화가 훨씬 높은 로컬 컨텐츠 쿼터 비율을 적용 받는 지상파 상업 방송사들에게 불공정 경쟁의 시비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적절하고’ ‘합리적인’ 수준으로의 국산 콘텐츠 비율 감소를 요구해 온 지상파 방송사들에게 유료 케이블TV가 일종의 벤치마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크게 악화된 조건 속에서 경쟁해야 하는 국내 방송사들의 입장을 고려할 때, 우리가 쉽게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뉴미디어 분야에 있어서도, 호주 정부가 규제할 수 있는 뉴미디어를 오디오와 쌍방향 비디오 서비스로만 한정함으로써 E-시네마와 같은 나머지 분야는 미국에 활짝 길을 열어 놓았다는 지적이 많다. ‘뉴미디어’의 개념 자체가 불명확하고 끊임없이 확장되는 상황에서, 호주 정부의 규제력은 앞으로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다. 한편 AWG는 자국 프로그램 제작비 지원의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는 영화 및 텔레비전 분야의 국가 보조금 문제에 있어서도 상당한 절충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사실 FTA에서는 ‘공영방송(public service)’이 전혀 새롭게 정의된다. 상업적 기반으로 이루어지거나 여타 상업 방송사들과의 경쟁을 통해 이루어지는 서비스는 ‘공영방송’의 범주에서 배제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호주 내 SBS(Special Broadcasting Service)21)의 광고나 ABC(Australian Broadcasting Company) 제작물의 시장 내 마케팅은 ‘공영적’이지 않은 것으로 읽힐 수 있고, 그래서 보조금 문제가 시비될 수 있다는 우려다. 이는 공영방송체제 자체에 심대한 결과를 가져온다. AUSTA가 공영방송에 대해서는 전혀 건드리지 않는다는 호주 정부당국의 설명에 대해, 실제로는 매우 심각한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는 것이다. ABC측도 공영방송 범주를 ‘상업적 기반에도, 하나 혹은 복수의 서비스 제공자들과의 경쟁을 통하지도 않은 서비스(a service which is supplied neither on a commercial basis, nor in competition with one or more service suppliers)’로 정의하고 있는 FTA 협상 내용에 주의할 것을 지적하면서, 개념의 재수정을 요구했다.22)

호주 미국 FTA의 시청각미디어 분야 협상과 관련해 우리가 주목할 또 다른 측면은, 정부와 호흡을 맞춰 대비한 호주 방송위원회(ABA: the Australian Broadcasting Authority)의 발 빠른 행보다. ABA는 2003월 1월에 호주 외교통상부에 ‘호주-미국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호주의 접근법(Australia's Approach to Australia-United States Free Trade Negotiations)’이라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외교통상부가 제안한 협상 전략에 대한 일종의 공개적 코멘트였다. 이 공개적인 보고서에서 ABA는 FTA가 호주 텔레비전의 탈규제를 부추길 것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예측했다. 전지구적 시청각 시장을 지배하는 자본의 경제학과 국제 무역 흐름의 성격 고려할 때, 그리고 저비용 고효율의 관점에서 자체/자국 제작물 대신에 값싼 수입물 편성 전략을 취할 방송사들의 이기주의에 비춰볼 때, FTA에 따른 탈규제화는 방송의 상업화 및 편성의 다양성 후퇴와 프로그램 질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따라서 ABA는 미국과의 협상 과정에서 호주가 자국의 시청각 산업을 지원할 수 있는 권리를 분명히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지역 프로그램 규제, 좀더 정확하게 말해서 국산 프로그램 쿼터가 바로 그 지원책에 해당했다. 경제적, 산업적 이익의 창출 효과에 덧붙여, 민족 정체성 및 공동체의 응집력 제고의 필요성, 그리고 호주 문화 및 관점 표현의 공간으로서 중요성을 보다 중요한 이유로 강조했다. 이런 판단이 얼마나 협상 과정 및 결과에 반영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앞서 지적했듯이 호주와 미국 정부, 호주 정부와 시민사회의 평가가 현저하게 차이가 난다.


5. ‘시청각(the audiovisual)’과 문화 다양성의 정확한 문제설정


AUSFTA의 사례는 FTA가 결코 영화뿐만 아니라 방송까지도 핵심 내용에 포함시키고 있다는 점, 따라서 이에 대한 정확한 정보 파악/분석 및 구체적 대책/전략의 마련이 당장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아울러 영화와 방송을 ‘시청각 서비스’로 통일해 FTA 협상의 일 핵으로서 이해할 필요가 있으며, 영화와 방송, 나아가 예술 전 분야의 통합된 응대가 필수적임을 알 수 있다. 농업과 의료 서비스 등 여타 분야의 세력과 적극 연대해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너무나 당연하지만, 그 내부적 전략 마련은 ‘시청각’이라는 특수한 성격에 대한 충분한 고려, 정확하고 깊이 있는 사태 분석 및 예측 노력에 기초해 이루어질 필요가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이러한 꼼꼼한 준비 내용을 중심으로 거대/독점 자본의 대리자 역할을 수행하는 미국에 맞서고, 인․민의 주권․다중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국내 정부의 효과적 응대를 촉구하고 무능한 대책을 지적하며, 방송계와 영화계, 예술계 구성원들의 적극적이고 책임 있는 참여를 촉구해 나가야 한다. FTA는 일회적 타격의 대상이 아닌, 지속적 교전(engagement)의 과정이다. 요컨대 시청각(the audiovisual)의 문제설정에 새롭게 천착하는 문화정치, 미디어 운동의 구상 및 실현이 매우 시급하다.

물론 시청각 분야에 에 있어 급속한 뉴미디어화, 디지털화의 함의는 대단히 크다. 아울러 정치와 경제, 문화, 미디어 등 다양한 층위에서, 그리고 자본과 다중의 동시적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전지구화는 위성, 인터넷 등 뉴미디어 출현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면서 시청각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 통신, 영화를 아우르는 ‘시청각’이라는 정확한 영토의 지정은 자칫 방송과 통신, 영화를 파편적으로 접근하는 방법론에 대한 시정으로서 대단히 중요하다. 사실 시청각 문제는 그 출발부터 뉴미디어적이었고 또한 국제적(international)이었다. 캐나다나 유럽 등 논란이 부각된 지역 및 국가에서 시청각은 위성 등 국경을 가로지르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프로그램/콘텐츠 유통 질서에 대한 문제의식이 기저에 깔려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디지털화는 기존 문화제국주의, 미디어 제국주의적 문제설정을 한참 뛰어 넘는다. 뉴미디어의 빠른 성장 속도는 시청각 문제를 국제적인 수준을 훨씬 넘어, 전지구적인 것으로 새롭게 격상시켰다. 전지구화의 가속화과 뉴미디어 기술 발전, 시청각의 논쟁 심화는 이제 절대로 따로 떼어놓을 수 없는 유착의 관계에 있다. 미디어 기술 변화에 따른 시청각 분야에서의 보다 복잡한 대응 사고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지켜야 할 게 있다. 시청각의 논의, 보호, 구성을 위한 원칙이다.

‘문화다양성’이라는 이론적 근거, 이념적 입장이 바로 그것이다. 너무나 많이 이야기되어 관습화된 측면에도 불구하고, 급진적 의미를 상실했다는 일부의 냉소에도 불구하고, 문화다양성의 개념은 FTA의 네트워크적 조직화 시대에, 전지구적 자본에 의한 빠른 제국 실현의 욕망 시대에 문화정치적으로, 이론․이념적으로 더욱 긴요해졌다. 문화다양성은 정책과 운동․ 교육을 포괄하는 바로 이 시청각 미디어 문화정치의 목표가 된다. 제작자와 창작자, 공급자의 입장에서는 공급(supply)의 다원성을, 그리고 시민과 수용자의 입장에서는 접근(access)의 다양성을 실현시키는 모델이다. 사회의 문화적․교육적․민주적 필요에 부응하는 다양하고 복수적(plural)이며 폭넓은 범위의 시청각 콘텐츠를 공급하는 일인 동시에 이에 대한 접근을 보장하는 것이 바로 문화다양성이다. 즉, 표현의 자유와 정보의 자유는 문화다양성을 구성하는 두 가지 중대한 조건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 제작의 차원에서는 시청각 창조의 자유, PD를 포함한 작자의 다양성, 생존 가능한 시청각 산업을, 그리고 수용의 차원에서는 모든 정보에 대한 제한 없는 접근, 확장된 선택, 접근 ‘능력(affordability)’을 조건으로 삼는다. 요컨대 문화다양성은 추상적 구호나 이론적 개념이 아닌, 프로그램/텍스트의 표현․배치의 문제이자, 산업적 조건을 요구하고 생산․제작의 책임을 전제하며 수용․소비의 자유를 지향하는 매우 다면적인 말이다. 다원주의라는 이념의 실현 과정이자 목표가 바로 문화다양성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청각 분야의 문화다양성 문제는 학문적 관심이나 사회적 운동으로 지켜질 수 있는 게 아니다. 국가 제도의 마련, 그리고 무엇보다 적절한 규제 장치의 작동을 통해 가능하다. 다음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은 권리, 제작과 편성, 송신과 배급, 접근 등 시청각의 사회적 소통 전 과정을 총괄하는 규제책의 마련이다.



 

생산 및 제작

편성 및 방송

배급 및 유통

규제

지원책

-개발․교육․제작 지원체계

-재정적 인센티브

-투자 의무조항

-독립 제작 쿼터

-(스포츠, 문화 등) 주요  행사에 대한 접근권

-공적기금/공익자금

-공영방송 서비스

-(쿼터 등) 편성 의무조항

-미디어 소유지분 제한 지역 서비스

-지원 체계

-공영방송 보편적 이용권

-‘의무송신(must carry)'조항

<표 1> 문화다양성 증진을 위한 사회적 소통 과정별 시청각 규제․지원책>

* 2001년 11월 21-22일 제네바에서개최된 WTO 회의에서 유럽방송연맹(EBU)의 선임 법률 자문 Michael A. Wagner이 발표한 중 일부 내용을 재구성한 것임.



이러한 시청각 규제책들은 ‘시장 실패’를 보완하기 위한 것으로서, 다수적인 것을 위해 희생될 수 있는 소수적인 것, 오락적인 것을 위해 포기할 문화적인 것, 사적인 것에 의해 억압될 공적인 것, 산업적인 것에 의해 약화될 사회적인 것, 그리고 무엇보다 힘 있는 것에 희생되어서는 안 될 힘없는 것의 보호에 초점을 맞춘다. 단일한 것으로의 집중체계를 문화적, 언어적, 정치적 다수의 것들로의 분산 네트워크로 재배치하는 사회적 간섭이다. 결국 문화다양성은 시장을 보완한다. 일방 선전의 체계를 상호 소통 즉 언론의 체계로 해방시키기는 것이며, 이를 위해 문화다양성은 미디어 집중의 문제에 맞선다. 국내에서의 수직/수평적 통합의 문제, 전지구적 층위에서의 다국적 미디어 그룹 집중의 문제, 그리고 이로 인한 국내․외 여론 형성력 집중의 문제와 교전하는 것이다.

사실 시청각의 문제는 베텔스만(Bertelsmann), AOL 타임워너, 비벤디 유니버설(Vivendi Universal), 뉴스 코퍼레이션, 디즈니, 비아콤(Viacom)이라는 소위 ‘빅 식스(Big Six)'에 의한 진지구적 미디어․문화 흐름의 독점을 막는 문제에 다름 아니다. 즉, 시청각 문제는 전지구적 층위와 지역 층위, 양국 및 일국 층위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되는 문화다양성이라는 보편적 가치와 소수 거대 미디어기업들이 독점적 이익 사이의 충돌이 그 본질이다. 미디어 집중을 제한하고 속도를 늦추도록 하는 게 문화다양성 실천의 핵심인 것이다. 이러한 문화다양성의 의미는 궁극적으로 자본의 전지구화에 대한 대항적 균형의 노력으로 이어진다. 제국화하는 자본에 대한 저항이다. 네그리(A. Negre)는 정보와 오락, 서비스 등 비물질적 노동이 제국이 구성에 핵심임을 주장한다. 자본의 네트워크로서 제국은 따라서 영화와 텔레비전, 인터넷, 광고 등 (뉴)미디어의 전지구적 확장을 필수적으로 요구한다. 제국의 신경망/이데올로기 정보망으로서 뿐만 아니라, 바로 제국의 결정적 축적 부문으로서 미디어․오락산업은 중요하다. 제국을 욕망하는 거대/독점/다국적 자본에게 시청각은 망이자 이념․선전의 표현 채널이며, 무엇보다 돈이다.

문화다양성은 자본의 전지구화, 제국의 설치 욕망과 기본적으로 충돌한다. 이윤이라는 단일 욕망에 대한 차이 나는 복수 욕망들의 반 흐름(counter-flow)으로서, 제국의 설치법에 대한 다중의 생체 정치적 고소다. 비록 정부를 통해 드러나고 국가간 혹은 국제기구를 통해 협상되기는 하지만, 본질에 있어 갈등의 당사자는 삶 즉 문화의 주체로서 인․민과 국경을 계의치 않는 거대 미디어․오락 독점자본의 갈등이다. 전지구적인 것과 국가적․지역적인 것의 이중 시각, 그 통합의 적절한 태도가 절실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시청각’과 문화다양성이라는 문제설정에 정확히 천착할 때, FTA는 결코 민족/국가의 문제만이 아닌, 한․미 양자간(bilateral) 문제가 아닌, 전지구적 문제가 된다. 복수적인 것, 차이 나는 것, 다양․다기한 것에 대한 시장․경제․자본이라는 단일원리의 억지 ‘들이댐’으로서, FTA는 반드시 거부되어야 한다. 문화는 기본적으로 지역적인 것이다. 국제적 차원에서 논의․결정될 성질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만약 문화에 대한 ‘글로벌거버넌스(global goverance)’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개방이나 경쟁이 아닌 문화와 미디어의 다양성이라는 원칙에 의한 세계 규모의 협약관리, 공통통치가 될 것이다. 한미FTA에 대한 대응의 실천이 결코 국내에 한정되지 않고, 국경을 넘어 지역과 전지구적 차원으로 확장/접속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6. 총체적 대응, 적극적 교전의 수칙


바깥과의 적극적인 소통, 연대가 필요하다. 사실 호주와 미국 간 FTA의 방송을 포함한 시청각 미디어 서비스 분야 협상 과정 및 결과 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많다. 보다 정확한 정보를 구해서 분석하고, 그럼으로써 지혜를 얻는 일이 정부와 방송위, 학계와 운동진영 상관없이 매우 시급하다. 양 국이 얻은 득실을 정확히 비교 계산해야 하며, 호주측이 취한 전략의 성패 또한 제대로 읽어낼 필요가 있다. 분명한 것은, 우선 첫 번째로 호주와 미국 간 FTA에 있어, 방송을 비롯한 시청각 미디어 분야가 매우 중요한 논쟁점 중 하나였다는 사실이다. 물론 미국이 호주 정부에 대해 자국 프로그램의 쿼터의 철폐, 방송시장의 개방 등을 강력하게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 분야에서 “모든 조항의 완전 철폐를 고집했다(the US wanted to get rid of the rules altogether)"는 호주 측 설명이 이를 잘 드러낸다. 시청각 미디어 분야의 완전 개방을 앞세워 압박한 후, 일정하게 타협하는 게 미국 측의 협상 전략인 셈이다. 문화적 예외를 내세워 방송을 협상에서 애당초 배제시키는 전략은 쉽게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두 번째로는, 미국과 협상을 벌인 정부의 발표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해석의 차이가 잔존하기 때문이다. 한편, 세 번째로 AUSFTA를 전후로 한 호주 시민사회 내부의 강력한 저항 움직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호주의 경우, 방송 프로듀서뿐만 아니라 영화 제작자, 예술가들이 방송의 개방에 대해 한 목소리로 반대를 표시했다. 방송이 영화 제작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영역이고, 방송을 잃는 것은 많은 호주 창작자, 예술가의 재능을 잃는 것과 같다는 데 의식을 공유했다. 방송과 영화의 상호 교차적 관계를 시청각 미디어라는 보다 큰 범주 내에서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협상 결과에 적시된 소위 ‘보상효과(ratchet effect) (톱니바퀴의 역회전을 막는) 비늘 장치(ratchet mechanism)’라는 것에도 크게 주의할 필요가 있다. ‘자유화’, 탈규제화의 바퀴를 거꾸로 돌릴 수 없도록 만드는 이 장치는, 73일로 줄인 국내 스크린쿼터에 바로 적용될 수 있다. ‘공영방송’의 재개념화 작업과 더불어 미국 측의 준비가 얼마나 이론적, 논리적, 전략적으로 치밀한 지를 여실히 증명하는 대목이다. 유아적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한국 측의 졸속 대응으로 쉽게 막아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AUSFTA의 사례는 FTA가 방송을 포함한 시청각 미디어를 핵심 내용에 포함시키고 있다는 점, 따라서 이에 대한 정확한 정보 파악/분석 및 구체적 대책/전략의 노력을 서둘러야 한다는 점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또한 영화와 방송, 통신을 ‘시청각 미디어’로 통합하여 FTA 협상의 핵심 분야로 이해할 필요가 있으며, 영화와 방송, 나아가 예술 전 분야의 통합된 응대가 필수적임을 말해준다. 농업과 의료 서비스 등 여타 분야의 세력과 적극 연대해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게 당연하지만, 그 내부 전략 마련은 ‘시청각 미디어’라는 특수한 성격에 대한 충분한 고려, 정확하고 깊이 있는 사태 분석 및 예측 노력에 기초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이런 준비를 통해 거대/독점 자본의 대리자 역할을 수행하는 미국에 맞서고, 인․민의 주권과 다중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정부의 효과적인 대응을 촉구하고 무능한 대책을 지적하며, 방송계와 영화계, 예술계 구성원들의 적극적이고 책임 있는 참여를 촉구해 나가는 지속적인 교전을 서둘러야 한다.

교전의 수칙과 관련해서는, 무엇보다 원칙과 이념의 재발견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미디어 및 문화 다양성을 보호의 필요성, 이를 실행하기 위한 공영방송 체제의 존립 필요성, 미디어 다양성과 공익성을 실현하기 위한 사회 규제적 개입의 필요성이라는 세 가지 정도의 원칙으로 정리될 수 있겠다. 이러한 것들은 결코 ‘민족문화’의 보존이라는 국수적 관점에서의 출발이 아닌, ‘차이와 공통된 것의 교집합으로서 문화’라는 문화사회, 문화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지켜져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문화 다양성에 대한 유네스코의 보편 선언뿐만 아니라, 유럽연합(EU)의 다양성에 대한 조약들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유럽연합의 ‘근원적 자유 헌장(Charter of Fundamental Rights) 제 11조는 ‘미디어의 자유와 다원주의 보장’을 명시하고 있다. 유럽평의회(Council of Europe)도 1999년 1월 각료 위원회를 통해 미디어 다원주의를 증진시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권고안(Recommendation No. R(99) 1 of the Committee of Ministers to Member States on Measures to Promote Media Pluralism)을 채택했다. 문화다양성에 대한 선언(2000년 12월 7일)과 연결되는 이 권고사항은 신문을 포함한 모든 미디어가 언어적,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정치적 소수자들을 포함하여 사회 내 차이 나는 집단과 이해 당사자들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매우 적극적인 이념, 원칙을 밝히고 있다. 또한 회원국들에게 미디어 다원주의를 증진시킬 구체적인 장치의 마련 및 정기적 평가를 강력하게 권고하고 있다.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미디어 및 문화 다양성 실현의 구체적 제도로서 공영방송 부문에 대한 의지다. 권고안은 "회원국들이 공익 서비스 방송을 유지해야 한다(Member States should maintain public service broadcasting)"고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방송의 주인인 시청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편성 자문 위원회(advisory programming committees)’를 설치하는 것 등의 방안을 검토하는 것, 수신료와 광고를 포함해서 적절하고 안정적인 재원을 보장한다는 점 등이 포함되어 있다. 94년 프라하에서 채택된 공영 서비스 방송의 미래에 대한 정책 결의로부터 이어지는 대목이다. 이와 함께 규제의 필요성과 의미에 대한 강조점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내용물의 표준화를 피하기 위해 ‘쿼터’제를 실시할 수 있다는 내용이 여기에 포함된다. 문화다양성과 인권, 공영방송의 밀접 연관성을 검토할 때, 공영방송의 위상에 대한 끊임없는 자본의 이념 공세를 검토할 때, 이에 대항할 수 있는 공영방송 규제 철학의 구체적 표방 노력이 부진함을 고려할 때, 우리가 크게 관심을 기울어야 할 내용이다. 현재 구상중인 문화헌장과 관련하여, 그리고 무엇보다 특히 FTA 및 방․통융합의 상황에서 공공적 가치로써 재구성되어야 할 문광부, 방송위원회의 정책과 관련하여, 우리도 이를 보다 적극적인 공통감각, 즉 상식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문화다양성 협약의 국회 비준을 시급히 이루어 내야 할 것이다. 물론 그렇더라도 FTA협상에서 방송의 ‘문화적 예외’ 주장을 관철시키거나, 그래서 방송을 협상에서 제외시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확고한 원칙과 전략을 갖고, 캐나다 등의 구체적 사례를 갖고, 다중의 튼튼한 합의 및 지지에 기초해 협상에 나서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

이를 위해, 두 번째로 정부와 방송위를 견제․감시하는 동시에 이성적이고 체계적인 대응 전략을 강력하게 촉구해야 한다. 특히 방송위에 대해서는, FTA에 대한 대비책을 비판적으로 점검하는 것과 동시에, 사태 분석 및 대응 계획 마련 등과 관련해 공개적으로 소통하는 이중 전략을 취하는 게 옳다. 현재 방송위원회는 공식적인 입장 발표 없이, 방송이 제외될 것이라는 낙관론과 통신의 개방 압력 및 미국 재계의 목소리 등을 고려할 때 방송의 협상 의제화가 멀지 않았다는 현실론을 오락가락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FTA의 총체적 의미에 대한 지도 그리기, 그에 따른 방송 분야의 전략 및 논리 개발의 노력을 제대로 기울이지 않고 있다. 현재와 같은 소수 인원의 팀 수준으로는 당연한 결과다. 방송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위원회의 안목을 ‘시청각․미디어’ 분야 전체, 나아가 FTA 정국 자체로 끌어올리는 것은 결국 외부 역능의 투입을 통해서다. 스크린쿼터 축소라는 외통부의 입장 정리 과정에서 영화진흥위원회가 사후약방문식으로 반대 입장을 표시하는 오류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학계 및 운동단체들이 참여할 수 있는 가칭 <한미FTA 시청각 미디어 분야 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이를 통해 정확한 대응책이 다각도로 정립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공개된 논의와 사회적 합의에 기초한 정확하고 효과적인 대응 전략 없이 안이하게 사태를 방관하거나 사후약방문식으로 나서는 일은 결코 없도록 해야 한다.



7. 대응 네트워크의 활력적 조직


마지막 세 번째는, 방송과 영화, 통신, 광고를 포함한 미디어․시청각 분야 운동 역량의 포괄적인 제휴 및 연대 조직화다.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네트워크 운동의 활성화다. 한미 간 FTA를 포함해 미국이 체결을 시도하는 모든 FTA는 방송을 포함한 시청각․미디어 분야를 ‘자유화’하는 것, 공익성 및 문화다양성 실현을 위한 사회 규제책과 정부 지원책들을 무효화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시장 내 경쟁과 소비자의 자유로운 선택을 그럴듯한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다국적 거대 미디어․오락 자본, 독점적 문화산업에 의한 전지구적 지배를 목표로 한다. 자본의 네트워크, 즉 제국의 구축 의지다. 지금과 같이 제어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미FTA가 추진된다면, 미국의 요구에 앞서 (혹은 그에 응답하여) 한국사회 내부의 상업 미디어 자본과 조․중․동 등 수구매체가 적극 시장 ‘개방’과 탈규제화, 상업화의 신자유주의 공세로 조응할 공산이 높다. KBS를 포함한 공영방송의 위기론, 겸업 금지 등 방송 부문 규제의 ‘완화’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이렇게 내․외부 자본의 연합이 이루어질 경우, 공영방송체제는 자동적으로 와해될 수밖에 없으며, 그렇게 될 경우 그 효과는 단순히 방송의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사회적 소통을 책임지는 공적영역(public sphere)의 붕괴를 초래하는 것이고, 민주주의의 위기를 자초하는 일이며, 사회 그 자체의 해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가 방송을 결코 산업적인 시각이 아닌 정치경제적이고 사회문화적인 각도에서 이해해야 하는 이유, 그리고 한미FTA에서 방송을 절대 양보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문화적 다양성과 대화적 합리성을 근간으로 하는 민주주의는 한미FTA의 절대 체제와 결코 양립할 수 없다. 전자의 주인인 다중의 선택은 후자의 주인인 자본의 명령, 그리고 이를 중간에서 전달하기 바쁜 정부의 설명에 결코 희생될 수 없다. 이에 동의하는 모든 단체, 인․민의 역능이 더욱 조직적으로 규합되어야 한다. 학계와 운동진영, 언론개혁 운동진영과 진보적 미디어운동단체 사이의 연대가 더욱 튼튼하고 폭 넓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럼으로써 사회적 역능(puissance)으로서 자본의 권력(power), 그 일방주의 통행에 ‘중지!’ 선언을 하고 적극 교전해야 한다. 자본의 네트워크에 대해, 민주적으로 구성된 ‘다중의 네트워크’로서 맞서야 한다. 필요하다면, (내부적으로) 방송위를 포함한 공적 기관과 (외부적으로) 외국의 선진적 운동세력과의 전략적 제휴도 적극 모색할 수 있다. 물론 이때의 제휴란 한미FTA에 대한 반대, 한미FTA에서의 방송을 포함한 미디어․시청각 분야 협상에 대한 반대라는 분명하고 확고한 원칙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제국/자본의 질서와 인․민/다중의 문화 사이에서, 선택해야 할 중요한 시점이다.

한미FTA와 관련해, 국내 신문과 방송은 놀라울 정도로 침묵을 지키고 있다. 무지와 무관심 차원을 넘어, 의도적 은폐며 명백한 사보타주다.23) <미디어 오늘>의 분석에 따르더라도, 기껏해야 정부의 낙관적 발표를 일방적으로 옮기는 이른바 ‘발표 저널리즘’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어떤 심층적인 탐사 보도나 토론 프로그램은 부재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24) 한마디로 한미FTA에 대해 국내 미디어는 일종의 ‘침묵의 카르텔’에 빠져 있는 것이다.25)

나라에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들춰내고 대중의 관심을 유도해 내는 일, 곧 의제 설정은 언론의 몫이다. 그러나 지금 대부분의 신문, 방송들은 의제 설정은커녕, 사실보도조차 소홀하다. 인터넷을 구석구석 헤집고 다니기 전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관련 소식을 만나기조차 어려울 정도다. 정부의 의지만을 보도할 뿐, 분석보도는 찾아 볼 수가 없다. 자유무역협정을 자연현상처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듯한 언론의 태도다.26)

이러한 상황에서 한미FTA에 대해, 시청각․미디어 분야의 쟁점에 대해, 방송의 개방 가능성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항 담론을 생산․매개하는 것은 공대위가 수행할 운동의 중요한 일부가 된다. 인터넷 등 대안매체뿐만 아니라, 방송과 신문 등 제도매체를 적극 담론 유포, 지식 형성, 여론 표현의 채널로 활용할 수 있는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미디어의 장(champ)을 구성하는 피디, 기자, 연기자 등 인자들의 새로운 주체 구성이 시급하다. 한미FTA는 현재와 같은 안정된 계급 신분을 더 이상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사회 양극화란 중간계급의 와해에 다른 말이 아니다. 한미FTA와 방송 개방은 피디와 기자들의 삶을 치명적으로 위기에 빠트릴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삶 즉 문화를 지키고자 한다면, 노동자로서 스스로를 재주체화해내야 한다. 지식과 담론, 언론의 노동자로서 자기 삶의 소박한 보호 욕망에서 출발해, 시청각 미디어라는 공적영역의 보호, 문화다양성의 가치 보호, 민주적 사회의 보호에 나서야 한다. 운동은 전략과 담론으로 시작되나, 결국은 다중과 다중의 네트워크를 통한 움직임이다. 쓰나미가 다가오고 있다!


오늘 누가 안방 열쇠를 내놓으라 하는가?

안방까지 빼앗긴 흥부 내외

오늘은 어디로 쫓겨나 물러나 앉는가?

마누라, 며느리, 자식까지 모조리 내놓으라는가?


오, 팬티마저 벗으라는 개방의 시대여.

경재의 시대여.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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