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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정치 강좌] 선거를 넘어 코뮤니스트 정치를 말한다!

[코뮤니스트 정치 강좌] 선거를 넘어 코뮤니스트 정치를 말한다!

 

부르주아 선거를 넘어서는 진정한 노동계급 정치! 

자본주의 체제에 맞선 코뮤니스트 정치에 관해 부르주아 총선일에 함께 이야기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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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자본주의는 역사상 가장 긴 불황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인류가 심각하게 경험한 감염병 대유행, 기후 위기, 생태파괴, 일반화된 세계 제국주의 전쟁의 가능성은 자본주의의 막다른 골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계 부르주아지의 온갖 처방에도 불구하고 위기는 더욱 심화하였고, 그 부담은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습니다. 대유행에 이어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은 자본주의 모순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냈습니다. 장기간 지속해 온 위기 속에서 격렬해지는 제국주의 대립과 이윤추구 경쟁은 일반화된 전쟁으로 향하는 길을 열었고, 세계 프롤레타리아트를 전쟁과 빈곤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이러한 전쟁으로의 질주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작동 결과이며. 이제 노동계급은 자본주의의 혁명적 전복 없이는 그 어떤 전망도 열어갈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따라서 세계 노동계급은 다시 한번 ‘코뮤니스트혁명이냐 아니면 제국주의 전쟁이냐’의 기로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노동계급은 자본주의 위기 속에서 경제적 고통에 짓눌리고 제국주의 전쟁의 위협에 직면해 있으면서도, 이에 맞서 대대적인 반격에 나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생산과 분배에 대한 자본의 실질적 지배는 전체 사회정치적 관계에 대한 총체적 지배를 더욱 넓혀가고 있습니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지배계급뿐 아니라 그들과 자본주의 국가를 함께 구성하고 있는, 이른바 진보-좌파 정당과 노동조합 기구를 통해서도 노동계급 내부에 이미 깊숙이 스며든 상태입니다. 그들은 자본의 좌파로서 자본주의에 비판적이지만, 부르주아지가 노동자 투쟁을 억누르는 데 실제로 도움을 주고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들은 부르주아 선거 서커스에 ‘노동자’의 이름을 팔아 참여해 선거 환상을 퍼트려 왔습니다. 하지만, ‘전쟁이냐 혁명이냐’의 시대에 의회와 선거에 참여하는 것은 그 어떤 혁명적 의도와 관계없이 단지 죽어가는 자본주의 껍데기인 의회에 한 줄기 생명을 불어넣는 일일 뿐입니다. 코뮤니스트혁명의 직접적 목표를 내걸어야 하는 지금 노동계급의 유일한 과제는 바로 낡은 사회질서인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하고 코뮤니스트 사회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계급투쟁의 미래는 노동계급이 노동조합과 자본의 좌파를 넘어 자신의 투쟁과 미래를 스스로 결정하고 조직하는 것에 달려있습니다. 비록 지금 소수이지만, 선거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다수가 사회를 통제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려는 노동자들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자신의 삶을 위선과 불평등의 부르주아 정치에 맡기지 않고, 투쟁을 통해 스스로 민주주의를 창조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평등하고 모두가 참여하는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노동계급의 미래입니다. 

위와 같은 문제의식에 동의하는 분들과 코뮤니스트 정치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코뮤니스트 정치'를 소개하고, 자본주의 쇠퇴와 전쟁의 시대! 코뮤니스트 혁명의 전망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강좌 신청>
https://forms.gle/Yk1fp4297LCd1z7U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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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 선거와 노동계급] 코뮤니스트좌파의 의회/선거 강령

르주아 선거와 의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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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 선거와 의회 제도는 부르주아 국가의 폭력적 통치를 은폐하여 상대적으로 덜 야만적인 폭력을 사용하고, 주기적으로 선거를 통해 지배계급의 분파 사이에서 정권을 교체할 수 있게 한다. 이제 그것은 노동계급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합법적인 지배를 보장해주는 장치가 되었다. 선거는 노동계급이 자신을 다스릴 사람을 직접 선출하고 자신이 정치권력에 참여하고 있다는 환상에 빠지게 한다. 하지만 노동계급의 권력 장악과 완전한 정치참여는, 자본주의와 그 국가기구의 파괴를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 부르주아지는 국가의 폭력을 통해 전 사회를 지배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이용해 노동계급을 착취하는 특권을 가졌기 때문에, 어떤 특권이나 착취도 필요가 없는 노동계급은 부르주아지의 국가를 그대로 이용할 수 없다. 따라서 노동계급은 자본의 국가기구나 그 제도, 장치 등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맞서 자신의 계급영역에서 투쟁해야 한다.

 

노동계급이 체제 내부에서 개혁을 얻어낼 수 있었던 시기에는, 선거 참여와 의회 진출을 통해 생활개선과 개혁을 위한 압력수단으로써 그것을 이용할 수 있었다. 유럽에서 19세기 동안, 그리고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정착하지 못한 독재정권 아래에서의 보통 선거권을 위한 투쟁은, 노동계급이 자신을 조직했던 가장 중요한 요구 중의 하나였다. 선거 캠페인을 하는 것도 노동계급 강령을 위한 선전 및 선동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었고, 마찬가지로 부르주아 정치의 실체와 위선의 폭로를 위한 연단을 의회에서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이 코뮤니스트혁명이라는 의제와 혁명의 가능성을 직접 내걸어야 하는 자본주의 쇠퇴기에는 선전 및 선동수단으로서 선거와 의회의 활용이 혁명에 결정적인 걸림돌이 되어버렸다. 그것은 의회와 선거 개입에 대한 전술이 부르주아 사회의 모든 정치적 장치를 유지하고, 노동자의 수동성을 조장하는 경향이 굳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르주아 선거와 의회에 대한 개입, 각종의 선거 연합은 그들이 내건 급진적이거나 혁명적 수사와 관계없이 노동계급의 자립성과 자기조직화를 저해하는 요소일 뿐이다.

 

노동계급은 노동자의 해방이 의회의 장악이나 다수파 선출을 통해 얻어질 수 있다는 환상을 가져서는 안 된다. 그것은 노동계급이 의회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뒤 사회주의를 입법화하는 동안 지배계급이 평화적으로 기다려 줄 것이라고 믿는 의회주의의 환상일 뿐이다. 의회 민주주의는 부르주아지의 독재를 위장하는 껍데기에 불과하며, 자본주의 사회인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실질적인 권력기관은 의회 밖의 군대, 사법기관, 국가 관료, 보안 세력, 생산수단의 통제자로 존재한다. 자본주의 쇠퇴기, 모든 부르주아 선거는 사기와 다름없다. 매일 세계 곳곳에서 수백 번 넘는 투쟁이 일어나고, 노동자들은 1년에만 수만 번의 투쟁을 벌인다. 하지만, 고작 몇 년에 한 번 치루는 선거만으로 노동계급은 자신이 누려야 할 권력을 빼앗기고, 대부분의 일상에 대한 지배를 받는다. 이것이 노동자가 선거를 통해 노예가 되는 이른바 민주적 권리의 실체다. 노동자가 이러한 부르주아의 정치와 선거제도에 복종하는 한, 자본주의를 결코 넘어설 수 없다. 따라서 오늘날 혁명의 과제는 노동계급이 자본주의 국가의 모든 기구와 제도(의회/선거제도 포함)를 파괴하는 것이다.

 

전쟁이냐 혁명이냐의 시대를 맞아 세계의 노동계급은 의회주의 보통 선거권의 잔해 위에 노동자평의회와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를 세우고, 부르주아 사회의 모든 다른 잔재 위에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세워야 하는 역사적으로 중대한 길에 서 있다. 이러한 시대에 의회와 선거에 참여하는 것은 그 어떤 혁명적 의도와 관계없이 단지 죽어가는 자본주의 껍데기인 의회에 한 줄기 생명을 불어넣는 일일 뿐이다. 코뮤니스트혁명의 직접적 목표를 내걸어야 하는 지금 노동계급의 유일한 과제는 바로 낡은 사회질서인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하고 코뮤니스트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비록 지금 소수이지만, 선거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다수가 사회를 통제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려는 노동자들이 우리의 희망이다. 자신의 삶을 위선과 불평등의 부르주아 정치에 맡기지 않고, 투쟁을 통해 스스로 민주주의를 창조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평등하고 모두가 참여하는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노동계급의 미래이다.

 

노동계급은 4, 5년마다 주기적으로 벌어지는 부르주아 선거 사기극에 맞서 선거 참여 방침이 아닌 계급적 입장에서 선거 거부를 전면적으로 제기하고 실행해야 한다. 이는 정치적 무관심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 현장과 거리에서 계급투쟁을 재개하고 노동자평의회와 혁명당 건설에 나서기 위해서이다. 진정한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계급의식을 갉아먹는 대의제와 수동성을 강요하는 부르주아 선거를 넘어 노동자 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노동계급 정치를 실현할 때 가능하다. 그것은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투쟁 확산과 계급적 연대를 통한 노동자 자기조직화에 달려있다.

 

현재와 같이 노동계급이 사회혁명을 주도할 유일한 계급으로 성장한 이상, 이제는 객체로서가 아닌 다른 계급에 대해 독립성을 획득해야 하며, 이것은 노동계급의 자립과 자기조직화로 나타나야 한다. 의회주의를 포함하여 모든 부르주아 정치 형식인 대리주의는 계급의 자립성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따라서 노동계급은 부르주아의 영역인 의회가 아닌 자신의 계급영역에서 부르주아 정치와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의회와 선거의 신비화

 

자본주의 상승기에 의회는 부르주아지 조직에 가장 적합한 형태였다. 특히 부르주아 기관으로서 의회는 노동계급의 활동을 위한 주요 무대가 결코 아니었으며, 프롤레타리아트의 의회 활동과 선거운동 참여는, 지난 세기의 혁명가들이 항상 계급에 경고했던 수많은 실제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러나 혁명이 아직 의제로 다뤄지지 않고 프롤레타리아트가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개량을 얻어낼 수 있었던 시기에는 노동계급이 의회 참여를 통해 개량을 촉구하고, 선거 운동을 프롤레타리아 강령을 위한 선전선동 수단으로써 활용할 수 있었다. 또한 부르주아 정치의 실체와 위선을 비난하는 호민관으로 의회를 이용할 수 있었다.

 

자본주의가 쇠퇴기에 접어들면서 의회는 더는 개량의 도구가 되지 못했다.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은 제2차 총회에서 정치적 삶의 무게 중심은 이제 의회의 경계를 넘어서 완전히 그리고 마침내 벗어났다."고 표현했다. 그 이후로 의회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역할, 즉 그것을 계속 유지하는 유일한 것은 신비화의 도구 역할이다. 이로써 프롤레타리아트가 어떤 방식으로든 의회를 활용할 가능성은 사라졌다. 노동계급은 실질적인 정치 기능을 상실한 기관으로부터 불가능한 개량을 얻을 수 없다. 부르주아 국가의 모든 제도와 의회를 파괴하는 것이 기본 과업인 시대에, 그리고 보통선거의 폐허와 부르주아 사회의 다른 잔해 위에 노동계급이 자신의 독재를 건설해야 할 때, 의회와 선거 제도에 참여하는 것은 선거 전술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죽어가는 몸에 생명을 불어넣는 역할을 할 뿐이다.

 

선거와 의회에 참여하는 것은 더는 지난 세기에 가졌던 장점을 갖지 못한다. 반대로, 그것은 특히 이른바 '노동자 정당'이 의회 다수를 장악함으로써 사회주의로 '평화적' 또는 '점진적' 이행의 가능성에 대한 환상을 유지하는 위험으로 가득 차 있다.

 

혁명적 의원단을 통해 내부에서 의회를 파괴하는 전략은 그러한 활동을 수행하는 정치 조직의 타락과 자본주의에 흡수되는 것 이외에 다른 결과가 없다는 것이 결정적으로 입증되었다.

 

마지막으로, 그런 활동이 본질적으로 전문가들의 관심사인 한, 의회는 대중의 자기 활동 공간이 아니라 부르주아 정당 간의 게임을 위한 경기장이다. 선거와 의회를 선전과 선동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부르주아 사회의 정치적 전제를 유지하고, 노동계급의 수동성을 조장하는 경향이 있다. 직접적인 혁명이 불가능했던 시기에 그러한 약점이 용인되었지만,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의제의 유일한 과업이 바로 낡은 사회질서의 전복과 코뮤니스트 사회의 건설인 시대에는 결정적인 걸림돌이 되었다. 이 과업은 계급 전체의 능동적이고 의식적인 참여를 요구한다.

 

처음에 혁명적 의회주의 전술이 주로 노동계급과 조직 내에서 과거의 무게를 표현하는 것이었다면, 그러한 전술의 비참한 결과는 그들이 근본적으로 부르주아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의회

 

코뮤니스트는 노동자의 자유가 의회에서 과반수 당선을 통해 얻어질 수 있다는 환상을 갖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것은 우리가 사회주의를 입법화하는 동안 지배계급이 평화적으로 기다릴 것이라고 믿는 의회주의 순진함의 환상이다. 의회 민주주의는 부르주아지의 독재를 위장하는 무화과 이파리일 뿐이다. 민주적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질적인 권력기관은 의회 밖에서 국가 관료, 그 보안 세력, 생산수단의 통제자로 존재한다. 의회는 노동자들에게 그들을 잘못 다스리는 사람을 선택한다는 환상을 준다는 점에서 부르주아지에 쓸모가 있다.

 

 

따라서 혁명가는 노동자들에게 자신의 계급영역에서 싸우라고 요구하면서 의회 선거에 반대한다. 자본주의와 그 국가기관의 파괴를 통해서만 노동계급이 완전한 표현과 조직의 자유를 확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은 혁명당에 달려있다. 이것은 대표자를 단순히 노동자가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소환할 수 있는 노동자평의회의 형태를 취할 것이다. 일단 그들이 자본주의 관계의 진압을 수행하면, 평의회는 계급을 폐지하고 국가에 대한 모든 필요성을 없앨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반()국가적 기능을 가진 기구에서 단순한 경제 관리자로 변모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프롤레타리아 독재국가의 소멸'에 관해 말할 때 의미하는 것이다.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ICT)

 

 

 

국제주의 코뮤니스트가 선거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부르주아지는 생산수단을 소유하기 때문에 사실상 모든 권력(경제정치군사적)을 갖는다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현재의 정치 체제를 부르주아 민주주의라고 부르는데그 뿌리는 '부르주아지의 독재'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선거는 단지 부르주아지의 손에 있는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정치의 꼭두각시 인형극에 불과하다그들은 부르주아 독재 체제를 주권자(국민)의 명령으로 포장하고동시에 그것을 민주적으로 보이게 만든다선거는 부르주아지의 (의회/대통령제민주주의가 착취당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주인을 선출할 자유를 양보하는 행위이다그들이 우파든 좌파든 기껏해야 부르주아지의 이해관계를 방어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해줄 세력/사람 중에서 선출하게 되어 있다따라서 선거에 참여하는 것은 이러한 민주적 신비화를 지지하고부르주아지가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독재를 돕는 것이다.

노동계급은 4, 5년마다 주기적으로 벌어지는 부르주아지 의회/대통령 선거의 사기극에 맞서 계급적 입장에서 '선거 거부'를 다시 제기해야 한다이것은 분명히 무관심과 정치적 개인주의를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노동 현장과 거리에서 계급투쟁을 재개하고 혁명당 건설에 참여하기 위해서이다.

 

대통령 선출/의회 다수파 장악을 통한 정권장악은 결코 임금노동의 착취를 폐지하지 못하며지속할 것으로 생각하는 권리마저 유지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오직 계급투쟁의 확산만이 자본이 조금이나마 노동자에게 일부를 양보할 수 있게 한다프롤레타리아혁명만이 착취 없는 사회를 실현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 수 있다.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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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 선거와 노동계급] 공동전선 비판과 혁명조직의 역할

공동전선 비판과 혁명조직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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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꺼내든 낡은 당 건설 노선 비판 -

 

노동자의 주변에는 항상 자신들이 노동계급을 대변하거나 지도하는 세력이라 자임하는 정파와 파벌이 득세하고 있다여기에는 소수이지만노동계급의 해방과 사회주의를 실천한다는 세력도 일부 포함된다그들은 항상 "노동계급이 역사와 혁명의 주체이고... 부르주아 국가를 전복하고 노동계급이 권력을 장악하여 사회 전체를 통제해야만 노동해방에 이를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하지만 그들이 권력 장악을 위한 투쟁과 권력 장악 이후까지 일관되게 노동계급을 권력과 투쟁의 주체로 세우는지아니면 반대로 계급을 대리하거나 이용하는 역할을 하는지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별히 한국에는 사회주의-혁명 세력을 자임하면서 반()자본주의사회변혁노동해방사회주의자 등을 내걸고 노동자 운동에서 이른바 좌파 블록을 형성한 세력이 존재한다이들이 좌파 블록으로 모인 것은 한국의 노동운동 내부에서 온갖 폐해를 끼치며 기득권을 누려온 다수파 운동(이른바 자민통으로 지칭되는 민족주의 세력)에 대한 반작용이기도 하지만엄밀히 보면 자기 운동의 최종 목표와 노선을 명확히 하지 못한 운동의 퇴보에 기인한다이들은 쇠퇴기 자본주의 위기 상황에서 자본주의 개혁을 넘어선 혁명적 이행 전략을 가진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그러나 현실 투쟁에서는 사회주의와 무관한 실천만을 하면서 대외적으로 급진적 구호와 기회주의적 전술을 섞어 자신들의 조합주의, 노동자주의, 선거주의 실천을 합리화하고 있다이렇듯 좌파의 정체성은 단지 다수파 운동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한 혁명적 기질과 줄서기로 드러낼 뿐이다.

 

이들 좌파 중 다수는 혁명적 이행 전략인 노동자평의회 권력 창출이라는 전략적 과제를 소수파 운동의 한계 속에서도 현실에서 혁명적 실천을 통해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자신의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전술을 바꾸면서 전략적 과제를 혼란에 빠트리는 운동을 하고 있다계급이 처해있는 현실에서 출발하면서도 장기적 전망에서 현실의 장벽을 넘기 위한 실천즉 노동계급이 혁명적 계급의식을 획득하고 자기 조직화로 나아가는 장기적 목표를 향해 꾸준히 실천하지 않고단기적이고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전술을 바꾸는 것이다공동전선의 일종인 좌파 블록이 정치노선과 전략적 목표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대부분 우파에 대한 상대적 반()정립으로 형성되는 경향은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더욱이 이들이 개량주의 세력을 대중적으로 폭로하기 위해 사용한다는 입당 전술과 노동자 공동전선은 오히려 개량주의 세력에게 노동자성을 부여하고 혁명 세력과 함께한다는 환상을 유포해 그들의 본질을 가려주고 입지를 강화해주는 역할을 해왔다이러한 동맹은 자신들이 다수파를 장악하지 않는 한 그들과 함께하는 내내 개량주의 노선을 묵인하게 된다결국개량주의 세력과의 동맹을 옹호하는 전술의 결말은 노동자들이 그것으로부터의 단절하는 시간을 지연할 뿐이다더욱이 이러한 전술의 남발로 인한 이합집산과 분열의 반복은 노동자에게 정치 운동의 신뢰를 잃게 할 뿐 아니라현장 투쟁에서 단결을 실질적으로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

 

 

이들은 자신이 계급의 전위 역할을 해야 한다는 착각과 대중을 지도해야 한다는 자만에 빠져온갖 현장 투쟁에 개입하면서 투쟁의 목표와 원칙을 훼손하거나 계급의식 발전과 자기조직화에 걸림돌이 되어 왔다노동계급 전체의 이해관계와 운동의 발전에 복무하지 않고자기 정파의 이해관계에 따라 당면 정세에 조급하게 개입하는 운동이장기적 전망이나 운동의 본질에 접근하는 투쟁을 실천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계급의 전위란 자임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전위는 계급투쟁 과정에서 계급의 가장 의식적이고 전투적인 부분을 조직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하여매우 길고 힘든 계급의식 발전 과정에서 (계급투쟁의 퇴조-상승의 모든 기간에운동의 최종목표를 명확히 하고 코뮤니스트 강령을 투쟁하는 노동계급이 받아들이고 스스로 방어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따라서 혁명적 소수의 신뢰와 영향력이 노동계급 안에 깊이 뿌리 내려 주요한 투쟁의 중심에 설 때 비로소 계급의 전위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 뿐이다하늘에서 떨어진 전위(혁명조직)가 노동계급을 혁명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계급 안에 혁명적 부분(의식)이 존재하기 때문에 전위가 존재하는 것이다따라서 혁명조직은 적대하는 계급과의 투쟁이 있는 곳에서만 존재할 수 있고계급 안에서 계급과 함께 투쟁하면서 혁명 강령을 방어하는 존재로 자리 잡아야 한다.

 

그런데 여전히 노동계급 주위에서 전위 역할을 한다는 세력들은계급투쟁 개입을 노동자 투쟁을 대리하거나 자신들이 투쟁의 배후 역할을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이들은 공동전선이라는 외피를 쓰고 상층 중심의 공동전선(투쟁), 입당 전술노동자 후보-선거연합계급연합노동자정부 등의 혼란스러운 전술을 남발하고 있다이러한 공동전선은 계급의식을 발전시키기는커녕 공동전선의 상대에 따라 강령의 수준을 낮추고 전술의 원칙을 바꿔가면서 계급의식을 혼란에 빠트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아직 노동자의 절대 다수가 부르주아의 책략에 눈을 감는 상태에서혁명조직의 책무는 혁명의 최종목표를 보다 명료하고 직접적으로 노동자들에게 알려 행동을 촉진하는 일이지자신의 정치를 부르주아 대중 정치의 수준으로 낮추는 것이 아니다.

 

당 건설 경로에서도 철저한 강령 원칙과 실천적 검증에 따른 혁명적 사회주의-코뮤니스트 세력의 재구성을 통해 당 건설의 기반을 마련하고동시에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새로운 주체와 코뮤니스트 노동자가 계급투쟁 속에서 직접 만나 혁명적 주체를 형성하고 자기 조직화를 이루는 것이 기본적인 전제조건이다.

 

그런데 이들은 강령적 실천과 혁명적 주체의 자기 조직화라는 본질을 망각한 채조급한 정세 대응에만 매달리거나자기 조직 유지와 양적 확산만을 위해 강령원칙을 폐기하면서 당 건설 운동을 지속해서 후퇴시켜왔다.

 

이제는 반성 대신 생존을 위해, ‘사회주의-좌파 대선후보를 통한 당 건설이라는 이름만 바뀐 낡은 전술을 들고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다그것은 정치 노선이 불분명한 의회주의 제도권 소수 정당과 (사회주의혁명 노선을 포기한()제도권 소수 정당이 결합한 사회주의 대중정당 건설로 표현되었다이들 중 한 축은 9년 전에 선거주의 세력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다른 한 축에서는 준비되지 않은 위로부터의 대선 투쟁(후보전술)을 통해 그리고 실패한 진보정당 운동과 야권연대에 대한 반()정립 운동을 통해 투쟁 동력과 당 건설 주체를 확보하여 당 건설을 할 수 있다는 거짓을 유포했다결국공동전선을 통한 단계론적 계급정당 건설 노선이 선거 전술과 혼합되어 타락하는 운동 세력의 유일한 생존전략이 되었었다그리고 9년이 지난 지금제대로 된 반성과 성찰도 없이 이들은 더욱 우경화하여 사회주의 좌파 후보’ 간판을 내걸고 부르주아 제도권 정당으로 향하는 최악의 생존 전략을 채택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안타깝게도 이 과정에서 실현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도 없다이제라도 사회주의당 건설 운동을 포기하고 부르주아 정치의 좌파로 전향했다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 노동자들에 대한 신의며운동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하다.

 

이들이 향하는 제도권 정당에 대한 비판은 아래 글로 대신한다.

 

"민주주의 공화국은 자본주의를 보호하는 가능한 최고의 정치적인 외피이다. ... 자본은 ... 그 권력을 매우 공고하게 확립하는데부르주아-민주주의 공화국에서 어떤 사람이나 제도또는 어떤 정당의 변화도 이를 흔들 수 없다." (레닌국가와 혁명)

 

"민주주의선거는 부르주아지 손에 있는 권력을 합법화하는 기만적인 정치 무대이다실제로 부르주아지는 이른바 "공공의 의견"을 매스미디어부터 시작하여 학교종교 제도로 모양 짓는 도구를 통제한다이 민주주의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아무것도 아니다모든 제도적 결정은 자본가들의 경제적 필요와 양립 가능한 것이어야만 한다따라서 국가의 관리자들은 지배계급의 대표들이다.

 

이러한 제도를 프롤레타리아트가 자본가들의 착취에서 자신을 해방할 수 있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완전히 환상이며이 제도들이 진실로 부르주아지가 경제적 권력을 휘두르기 위해 보유한 가장 훌륭한 정치적인 수단인 한 그러하다.

 

다양한 제도권 정당들은 지배하는 자와 그 반대에 있는 자들 사이에서 기만적인 게임을 수행한다. ‘끼리 대립 뒤에는 종종 부르주아지의 서로 다른 분파 간의 권력 투쟁이 있을 뿐이거나더 단순하게는 더 안락한 제도권 의석에 앉으려는 서로 다른 정치인 간의 무의미한 경쟁이 있을 뿐이다.

 

본질적으로어떤 제도권 정당도 이 체제의 경제적사회적 기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최선의 경우에도 정당은 관리에 있어서 환상에 불과한 차이를 제안할 뿐이다보다 인간적인공정한더욱 민주적인’ 얼굴의 자본주의 등의회에 의석을 차지하고 있거나 그러고 싶어 하는 자칭 코뮤니스트 정당들 또한 진정한 혁명적 강령을 보유하고 있지도 않을뿐더러그들은 노동자 투쟁을 위한 제도적인 경로라는 환상만을 확산시킬 뿐이며대부분 언제나 (이른바 급진 좌파’ 정당과 마찬가지라도지역 기관들에서 다른 부르주아 정당과 협력한다.

 

따라서 우리의 약속은 선거에서 대중 투표를 목표로제도권 내에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정당의 건설이 아니다우리가 건설하고자 하는 당은 국제적이고 국제주의적인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의 정치적 기준점 역할을 할 수 있는 계급정당이다.” (‘우리는 모든 제도권 정당에 반대한다’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

 

자본주의 착취체제가 지속하는 한 계급투쟁에 진공 상태는 없으며오히려 계급투쟁과 혁명적 계급의식을 담아낼 그릇이 부족할 뿐이다계급투쟁과 계급의식의 발전 없이 혁명당 건설은 불가능하다계급투쟁의 깊이는 당 건설의 주체를 담보해주고계급의식의 발전은 강령으로 표현된다당 건설의 주체와 강령을 포기한 당 건설이야말로 진공 상태에서의 당 건설과 같다더욱이 진공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진흙탕(부르주아 선거판)에 빠져버리는 것은그동안 진공 상태에서 운동을 해왔다고 고백하는 것과 다름없다.

 

혁명의 승리는 계급의식이 혁명 강령에 근접했을 때 현실화한다이때 당과 계급은 차이는 가장 가까워지며비로소 프롤레타리아 혁명정당프롤레타리아 대중정당으로 현실화한다따라서 계급의식이 정체되어 있거나 혼란스러운 일상시기에 대중정당을 건설하겠다는 것은 혁명과는 거리가 먼 개량주의 당을 만들겠다는 의미이다또한강령에 입각한 혁명적 실천에 기반을 두지 않고 (다수의 비활동 당원을 포함한 채노동조합시민사회 활동가들을 모아 활동가 당을 만들겠다는 발상은 계급의 일을 대신하거나 관료적으로 관리하는 대리주의 당으로 향하게 된다.

 

우리가 건설할 당은 선거가 아니라 계급전쟁을 준비하는 당제도권 내에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정당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 전복을 위해 부르주아 정치로부터 철저하게 독립한 계급 정당이다자본주의 쇠퇴기끝 모를 위기의 시기노동계급에 필요한 당은 국제적이고 국제주의적인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과 코뮤니스트혁명의 정치적 기준점 역할을 하는 세계혁명당임을 명심하자.

 

2020년 11

국제코뮤니스트전망 이형로

 

이 글은 코뮤니스트」 12호에 실린 글을 보완하여 재발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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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8호] 자본주의가 끓는점에 도달하다

자본주의가 끓는점에 도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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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 28)가 몇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이 회의는 의심할 것도 없이 공허한 약속과 막연한 변화의 구호만을 만들어 내며 이전 회의의 역사적 실패를 이어갈 것이다.

 

2023년 7월 6일은 지구의 평균 표면 온도가 섭씨 17.08도로 기록상으로 가장 무더운 7월의 날이었다그러나 이 기록은 단지 하루에 그치지 않았다. 2023년 7월은 이전의 최고 기록이었던 섭씨 16.8°C를 넘어서 기록상으로 가장 무더운 달이 되었다현재의 추세로 볼 때, 2027년까지 지구 온도는 섭씨 1.5도 넘게 오를 것이 예상되며이 수치를 넘어서면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치명적인 폭염과 기근의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자본주의의 유일한 원동력은 이윤을 가능한 한 빠르게 늘리는 것이며이러한 자본주의적 성장이 낳는 죽음과 고통은 단순히 사업을 위한 비용일 뿐이다기후변화협약 회의들에서 나타난 모호한 희망들은지금까지 반복해서 보여주었듯이우리의 작은 삶은 자본의 확장에 직면해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어떤 답도 보여주지 않는다.

 

이 기록적으로 무더운 여름에 더 무서운 것은 해수면 온도이다. 2023년 8월 4해수면 온도는 섭씨 20.96도를 기록하며 2016년부터 기록한 이전 기록을 깼다전례가 없었던 해수면 온도의 급작스러운 상승은 이전의 기록에서는 볼 수 없었지만자본주의 생산 방식이 지금과 같이 유지되는 한 내년에도 쉽게이전 기록을 넘어설 것이며앞으로도 매년 기록 경신은 계속될 것이다.

 

인류와 자연에 대한 대재앙

 

바다 온도가 1도 증가하면 해수면은 2.3m 상승하고수백만 명의 사람들은 이동해야 할 위험에 놓인다. 2050년까지 12억 명의 사람들이 기후 변화와 자연재해 때문에 강제적으로 이주해야 할 것이 예상된다지난 40년 동안 EU 내에서는 홍수 때문에 5,6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고해수면의 온도 상승은 강수량과 폭풍을 증가시키기 때문에 홍수는 더 자주 일어날 것이다그러나 이것은 인류가 마주한 재앙의 시작에 불과하다현재 전 세계적으로 18억 1천만 명의 사람들이 홍수 위험에 놓일 것이라 예상한다.

 

기후위기는 인류에게만 아니라우리가 의존하는 동시에 우리에게 의존하는 자연에도 엄청난 위험을 준다또 다른 연구 결과는 해수면 상승 때문에 생물 다양성이 풍부한 10,000개 이상의 섬이 늪으로 변할 수 있다고 했다이 섬들 가운데 많은 섬이 그 섬들의 면적에 비례해 세계의 식물과 야생 동물의 많은 부분을 포함하고 있다보기를 들어프랑스의 섬들은 지구 표면의 0.08%만을 차지하지만식물의 1.4%, 연체동물의 3%, 어류의 2%, 조류의 0.6% 등을 포함하고 있다그 어느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섬들 모두가 자본주의가 해결할 수 없는 기후위기의 위험에 놓여 있다이 섬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자연과 야생 동물들도 우리 인류처럼 심각한 위험에 빠져있다.

 

우리는 올해 이란에서 발생했던 2일간의 셧다운을 초래한 기록적 폭염지난 50년 동안 극단적인 기후로 인한 약 200만 명의 사망미국캐나다유럽과 아시아 일부 지역에서의 증가한 산불로 인한 인류와 자연에 대한 파괴그리고 앞으로 수십 년 안에 모두 멸종될 수도 있는 수백만 종에 관한 이야기 등을 소재로 몇 권의 책도 쓸 수 있다이러한 끝나지 않는 목록들은 지구가 위험 속에 있다는 명백한 증거이다그리고 만약 이러한 추세가 지속한다면그리고 자본주의에서 본질적인 이익을 무엇보다 우선시하려는 경향으로 인해서 이러한 추세가 지속한다면상황은 더욱 악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폭풍의 중심에 있는 노동계급

 

모든 사람이 이 상황 때문에 똑같이 고통받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지배계급은 이 위기 상황을 벗어날 수단을 갖고 있다생태학적 위기의 직격탄을 맞게 될 사람들은 다름 아닌 노동계급과 농촌의 빈곤층이다그러나 이러한 체제의 참을 수 없는 무게와 그로 인한 결과가 우리의 어깨 위에 무겁게 놓인다면이 체제를 변화시킬 힘도 우리에게 있다이제는 족쇄를 벗어 던지고이 체제를 역사의 길가로 던져 버리고인류가 자연과 인간들과의 관계를 진정으로 화해시킨 사회인 코뮤니스트 사회로 향하는 새로운 길을 시작할 때이다.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2023년 9월 4

 

<출처>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3-09-04/capitalism-reaches-its-boiling-po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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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7호]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한국 위원회를 제안하며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한국 위원회를 제안하며

 

 사용자 삽입 이미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년이 지났습니다과거 다른 제국주의 전쟁과 마찬가지로 이 전쟁도 세계 노동계급의 국제주의적 연대와 행동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노동계급의 혁명적 의식을 잠식시키며 노동자들을 제국주의 대학살에 참전시킨 거대한 쇼비니즘의 물결에 맞서 국제주의자들은 혁명적 패전주의를 방어하며 국제적으로 연대해서 싸웠습니다.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 전환하자!”라는 구호는 1917년 러시아의 노동계급이 차르 체제를 전복하고 유럽 전역에 혁명적 물결을 열어젖히면서 현실이 되었습니다그것은 1918년 11월 마침내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에서 제국주의 학살을 종식한 노동자 대중 봉기로 이어졌습니다.

 

제국주의의 대학살 동안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깃발을 굳건하게 지킨 것도러시아 프롤레타리아혁명을 수호하기 위해 다시 모인 것도전쟁 발발 시 수많은 나라에서 발생했던 파업과 봉기를 주도한 것도 모두 이러한 국제주의자 흐름이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건들은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우크라이나에서 제국주의 전쟁 참화가 벌어지고 있는 지금세계의 국제주의자들은 의견 차이가 있더라도 모두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원칙을 굳게 고수하고 있습니다이러한 국제주의자 흐름은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다!’라는 것을 전제로 성명을 발표하고 회의를 개최하고 공동 대응을 시작했습니다.

세계 지배계급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희생을 프롤레타리아트에 강요하고 있습니다그들이 강요하는 희생을 받아들이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이 전쟁에서 어느 쪽도 지지해서는 안 됩니다양쪽 모두는 노동자 착취를 통제하기 위해 싸우는 지배계급이기 때문입니다침략자든 방어자든 지배계급을 위한 싸움을 멈추어야 합니다우리의 생존과 생활 수준에 대한 일상적인 공격에 대한 전쟁즉 노동계급 자신을 위한 계급전쟁을 강화해야 합니다이것만이 싸울 가치가 있는 유일한 전쟁입니다.

 

우리는 싸울 가치가 있는 유일한 전쟁이 제국주의 전쟁 참화를 종식하기 위한 계급전쟁뿐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국제주의자들과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라는 기치 아래 국제 행동을 시작하려 합니다이 행동은 오늘날 흩어져 있는 국제주의자를 하나로 모아 더 넓은 노동계급에 반격의 필요성을 전달하고국제주의 원칙으로 함께 행동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국제 행동에 동의하거나 관심 있는 동지들의 참여를 호소합니다.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행동 호소문

 

1.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단발적인 행동이 아닙니다이것은 1945년 이후 볼 수 없었던 방식으로더욱 일반화된 전쟁 위기에 직면한 제국주의 경쟁의 새로운 시대 시작입니다.

 

2.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 밖에 있는 나라는 없습니다제국주의 경쟁 심화는 수십 년 된 자본주의의 미해결된 경제 위기 산물입니다그동안 자본주의는 이윤율 하락으로 인한 경제 위기를 관리하기 위해 많은 수단에 의존해야 했습니다이것이 세계 노동계급에 가져온 것은 더욱 강도 높은 착취더욱 큰 고용 불안정그리고 그들이 생산하는 부에서 노동자 몫의 지속적인 감소입니다이 체제는 전쟁을 부를 뿐만 아니라끝없는 이윤 추구는 지구 파괴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3. 그러나 세계화금융화그리고 이른바 신자유주의라고 불리는 이윤율 하락에 대한 모든 반응은 2008년 세계 투기 거품의 극적인 붕괴로 끝났습니다그들은 위기를 모면했을 뿐해결하지 못했습니다체제 모순은 증가하고 있고 어떤 국가도 그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4. 가장 두드러진 모순 중 하나는 1980년대에 서유럽이 저임금 경제로 투자를 이전한 것입니다가장 큰 수혜자는 중국이었습니다중국은 서유럽 노동자들의 소득 감소에 대한 압력 완화를 위해 저임금 노동력의 대규모 착취를 통해 값싼 상품 공급하면서 경제를 구축했습니다. 2008년 투기 거품 붕괴 이후 경제적 편의를 위한 결합이 파경에 이르고 더욱 명백해지면서 이미 존재하는 체제 모순은 깊어졌습니다.

 

5. 양적 완화는 전반적인 위기를 해결하지 못했고착취를 비인간적인 수준까지 강화하지 않았습니다자본주의가 요구하는 것은 기존 자산을 탕감하는 것을 넘어 자본의 대규모 평가절하이며이는 일반화된 전쟁이 필요합니다세계 지도자들에게 열려 있는 선택지가 점점 줄어들면서 '국익'이 무엇인지에 대한 타협의 여지가 점점 적어지고 있습니다그들이 더 절박해질수록 인류 미래를 위협하는 대량 파괴 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커집니다사실 세계전쟁 위협은 점점 더 위기에 처한 체제에 의한 자연 자원 고갈과 환경 파괴의 가속화로 인해 이미 발생하고 있는 환경 재앙과 관련이 있습니다.

 

6. 이 재앙과 전쟁 전반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은 세계 노동계급입니다노동계급의 집단적 힘은 먼저 전쟁을 마비시킨 다음 자본주의 질서를 전복할 수 있습니다전 세계 임금노동자는 착취자 손에 들어가는 세계 부의 창조자라는 공통의 물질적 위치를 공유하고 있습니다따라서 노동자에게는 지켜야 할 국가도국익도 없습니다노동계급만이 국가가 없고 생산이 협력적이며소수를 위한 이윤이 아닌 모두의 필요를 충족하도록 설계된 새로운 계급 없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따라서 사람들이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받는 자유롭게 연합한 생산자의 세계 공동체를 위한 조건이 존재합니다.

 

7. 이를 달성하기 위해 노동계급은 조직화하거나재조직화할 필요가 있습니다임금 삭감 등에 반대하는 일상적인 투쟁에서 노동자들은 투쟁을 통합하기 위해 모든 노동자가 선출하고 소환할 수 있는 파업위원회를 결성해야 합니다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자본가들의 공격을 막을 수 없습니다모든 파업위원회는 기존 국가를 정복하는 과정을 시작할 수 있는 더 넓은 계급 운동으로 단결해야 합니다.

 

8. 이 과정에서 일부 노동자가 자본주의 존재의 막다른 골목을 다른 이들보다 먼저 인식하는 것은 불가피합니다.

 

9. 인도주의적 재난의 현 상황에서 역사가 새로운 절박한 국면을 맞이하더라도 우리는 계급 운동이 당장 일어날 수 있다는 환상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우리는 착취와 전쟁에 맞선 운동을 함께 만들어야 합니다현재 우크라이나 위기가 어떤 미봉의 협상으로 끝나더라도 이것은 다음번 제국주의 충돌의 씨앗을 뿌릴 뿐입니다우크라이나 침공은 이미 러시아를 중국 품으로 끌어들이고나토와 EU를 미국과 그 목표 주위로 결집시켰습니다.

 

10. 자본주의는 전쟁을 의미하며 멈춰야 할 것은 자본주의입니다따라서 우리가 어디에 있든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위원회를 설립할 것을 제안합니다모든 민족주의에 반대하며 싸울 가치가 있는 유일한 전쟁은 자본주의와 피비린내 나는 제국주의 충돌을 끝장내기 위한 계급전쟁이라는 것을 인식한 개인과 그룹에 참여를 요청합니다이것은 오늘날 흩어져 있는 혁명적 소수가 힘을 모으고 더 넓은 노동계급에 우리의 메시지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할 것입니다.

 

11.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는 국제적인 계획이지만인터내셔널(세계혁명당)은 아닙니다그것은 계급전쟁이 세계 자본주의 질서를 전복할 수 있는 운동으로 발전할 때만 가능합니다그러나 이 운동은 제국주의 전쟁에서 어느 한쪽을 지지해야 할 '덜 나쁜 악'이라고 규정해 하나의 제국주의 또는 다른 제국주의를 노골적으로 편들거나제국주의 전쟁을 계급전쟁으로 전환할 필요성을 거부하는 평화주의를 지지해 노동계급이 스스로 투쟁하는 것을 교란하고 무장 해제시키는 모든 기회주의를 거부하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국제주의자들에게 정치적 나침반을 제공할 것입니다.

 

12. 마지막으로우리는 이것이 평화주의에 대한 요구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합니다평화주의는 기본적으로 '정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탄원일 뿐입니다문제는 정상에 관한 것입니다전쟁으로 이끄는 세력을 만들어내는 것은 자본주의 체제 자체입니다.

 

위 내용에 동의하는 동지들에게 의견을 제시하고 행동할 것을 호소합니다.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를 지지하는 한국의 국제주의자 일동

 

 

<참여 문의>

메일 communistleft@gmail.com

페북 메시지 https://www.facebook.com/communistle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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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7호] 우크라이나 전쟁 1년, 노동자 희생을 거부하고 계급전쟁으로!

우크라이나 전쟁 1,

노동자 희생을 거부하고 계급전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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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년이 되었다전쟁은 대규모 파괴와 학살의 확대라는 야만으로 고착되며 장기화하고 있다지난 1년 동안 양국의 사상자 수는 수십만 명에 이르고민간인 사상자도 2만 명에 육박했다이번 전쟁은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최대의 난민을 발생시켰다우크라이나 인구의 1/3인 1,300만 명이 피난길에 올랐고그중 800만 명이 해외로 떠났다전쟁은 막대한 인명피해만이 아니라 영토의 황폐화와 생태계 파괴 등 환경 피해도 일으켰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심각한 유럽 분쟁이며전쟁의 본질은 미국과 러시아 사이 전략적 입지를 위한 제국주의 전쟁이다그것은 전 세계에서 수십 년 동안 계속된 대리전쟁 끝에 나왔다이 전쟁을 더욱 심각하게 만드는 것은 핵무기 사용을 위협한 핵 강대국 러시아가 직접 참전하고 유럽의 중심부에 있다는 것이다따라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두 나라 국민의 재앙을 넘어 제국주의 긴장이 크게 고조되는 것을 의미하며그 결과 전 세계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푸틴은 미국의 경쟁자인 중국과 긴밀한 동맹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고한편으로 미국과 외교 군사적으로 오랜 적()인 이란과도 가까워졌다미국과 다른 나토 국가들은 젤렌스키 정부에 무기와 훈련을 공급하며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있다핀란드와 스웨덴은 나토 가입을 결정했고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발트 3국에는 서방의 군대가 전진 배치됐다미국은 독일과 같은 일부 동맹국을 자국의 외교 정책에 더 부합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독일은 시대 전환을 공표하며 전후 70여 년 동안 자제했던 군사력 강화의 길로 접어들며 미국중국에 이어 가장 많은 국방비를 쏟아 붓는 나라로 바뀌고 있다일본도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군비 지출을 늘리고 있고특히 중국의 군사 공격을 배제할 수 없는 대만에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 세기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대규모 파괴기존 자본의 평가절하수천만 명의 사망자를 낳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전쟁과 분쟁은 거의 끊임없이 일어났고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가난한 프롤레타리아트가 자본주의 이윤을 위한 제국주의 전쟁으로 황폐해지고전쟁 중인 군사 기구에 의해 위협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있다이 전쟁들은 몇몇 광적인 지도자들이 만든 결과도 아니라 자본주의의 정상적인 작동 결과였다이 체제는 이윤율 저하와 치열한 경쟁으로 이어지는 내부 모순으로 전쟁의 길로 내몰리고 있다.

 

오늘날에는 경제 위기기후 위기팬데믹에 이어 전쟁이라는 거대한 재앙이 유럽을 강타하면서 이미 전 세계를 휩쓴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군사비 지출 증가로 인한 경제 위기는 새로운 무역 전쟁으로 이어졌고세계 생산과 무역의 분열은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며 새로운 공급 부족을 일으켰다전 세계의 프롤레타리아트는 생활 수준이 급격하게 하락하거나 심각한 생계비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이 위기는 수십 년 동안 전체 자본주의 체제를 괴롭혀 왔고전쟁 파괴를 통한 자본 가치의 대규모 평가 절하 외에는 해결책이 없는 낮은 이윤율의 더 깊고 해결할 수 없는 위기이다물론지배계급은 그들의 자본을 평가절하하기 위해 전쟁에 나서지 않는다그들은 적의 자본을 파괴하고원자재에 접근하고이윤율을 높일 수 있는 전략적 위치와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전쟁에 나선다그러나 그 결과는 승전국에서도 자본의 일반적인 평가절하를 초래한다그래서 오늘날 노동계급의 진정한 선택은 "자본주의 생산체제의 전복이냐죽음과 폐허의 전쟁이냐"이다.

 

세계 지배계급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희생을 노동계급에 강요하고 있다그들이 부과하는 희생을 받아들이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이 전쟁에서 어느 쪽도 지지해서는 안 된다양쪽 모두는 노동자 착취를 통제하기 위해 경쟁하고 싸우는 지배계급이기 때문이다푸틴의 ()파시스트 십자군이나 젤렌스키의 민주주의 수호는 노동자가 피 흘리며 싸울 가치가 전혀 없는 지배계급을 위한 전쟁이다노동계급이 싸울 가치가 있는 유일한 전쟁은 착취자들에 대한 전쟁우리의 생존과 생활 수준에 대한 일상적인 공격에 맞선 전쟁인 계급전쟁뿐이다노동계급이 생활과 노동 조건을 방어하려는 시도는 사유재산임금노동화폐와 국가의 존재로 특징지어지는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가 문제의 근원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더 넓은 운동의 씨앗을 뿌릴 수 있다우리는 소수를 위한 이윤이 아닌 모두의 필요에 따라 생산이 이루어지는 사회를 만들 가능성을 제기해야 한다국가와 국경은 사라지고생산이 협력적이며노동계급이 만든 독립적인 기관이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집단으로 다룰 수 있는 세계 공동체를 건설해야 한다.

 

노동계급이 이 전쟁을 끝낼 방법은 전선과 국경을 넘어 계급적이고 우호적으로 연대하여 전쟁 기계를 전복시키는 것이다전쟁과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임금과 생활 수준 하락에 저항하고전선 양쪽에서 야만적 학살에 연루된 모든 자본가 정부에 대항하는 노동자들의 행동을 지지하고 방어하면서 국제적으로 계급투쟁을 확산해야 한다오늘날 노동계급은 전쟁의 원인인 자본주의를 전복하고 전쟁을 멈출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다하지만오랜 기간 국가와 지배 이데올로기에 묶여 분열되고 세력이 약해져 있다제국주의 전쟁에서 한쪽을 지지하거나전쟁을 계급전쟁으로 전환할 것을 거부하는 세력 또한노동계급을 자본주의 체제에 더욱 단단히 묶어두는 역할을 해왔다.

 

반면코뮤니스트좌파 진영은 서로 간에 의견 차이가 있어도 모두가 일관되게 이 전쟁이 제국주의적이며자본의 이익에만 봉사하는 전쟁이라며 반대했다코뮤니스트좌파와 지지자들은 모두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다.”라는 것을 전제로 성명을 발표하고 국제 행동을 벌여왔다이렇게 제국주의 분쟁에서 어느 편도 들지 않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는 코뮤니스트좌파가 20세기 초부터 방어해 온 입장의 초석이자 오늘날 그 혁명적 전통을 계승한 모든 단체의 기본이기도 하다.

 

지금은 비록 세계 노동계급의 투쟁이 방어적이고 국제적 계급투쟁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지만투쟁의 물결이 세계적 규모로 확장되고 있고생계비 투쟁 등 계급영역의 기본투쟁으로 진전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영국에서 계속되는 파업 물결프랑스의 대규모 시위미국과 유럽의 여러 부문에서 일어난 파업이란의 노동자 투쟁 등 모든 움직임은 노동계급이 자신감을 되찾고 장기적으로 잃어버린 계급 정체성을 회복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그동안 코뮤니스트좌파 진영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단기적인 대응이 아니라 장기적인 전망으로 노동계급 투쟁의 독립성을 촉진하고 옹호하며세계 노동계급의 근본적인 문제를 위해 대응해 왔다지배계급의 자본주의 위기 전가와 노동계급에 대한 공격에 직면하여 계급의 당면한 요구를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와 연결하고일회적인 반격이 아니라 체제에 맞서 싸우기 위한 계급전쟁을 호소하고 있다우리는 다음과 같은 원칙으로 투쟁한다.

 

● 우리는 우크라이나의 제국주의 전쟁에서 어느 편도 지지하지 않는다자본주의제국주의 국가의 어떠한 "덜 나쁜 악"도 지지하지 않는다.

● 지배계급 간의 평화협정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 전복을 향한 국제적인 계급투쟁만이 제국주의 전쟁을 끝장낼 수 있다.

● 현재의 전쟁과 앞으로의 전쟁이 노동계급에 가할 경제적정치적 공격에 맞서기 위해 계급전쟁을 전면화해야 한다.

● 계급전쟁은 노동계급의 자기 조직화한 투쟁즉 독립적인 파업위원회대중 집회노동자 평의회 건설을 통해 확장하고 발전할 수 있다.

● 우리는 모든 착취와 억압차별이 근본적으로 철폐된 사회생산수단이 더는 자본가나 국가의 손에 있지 않고 사회화된 사회생산과 분배가 인류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연합 세상을 위해 투쟁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1년을 맞이하여 우리는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하는 모든 노동자에게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위원회를 결성하여 제국주의 전쟁을 멈추게 할 국제적인 계급투쟁에 나설 것을 다시 한번 호소한다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는 오늘날 제국주의 전쟁과 모든 전쟁에 대한 노동계급의 대답이며우리의 목표는 쇠퇴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혁명적으로 전복하고 유혈 낭자한 제국주의 전쟁을 영원히 끝장내기 위한 세계 노동계급의 정치적 저항을 구축하는 것이다.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노동자 희생을 거부하고 계급전쟁으로!

 

2023년 2월 24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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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7호] 프롤레타리아 진영에 아나키즘 도입을 반대하는 투쟁

프롤레타리아 진영에 아나키즘 도입을 반대하는 투쟁

 

지난 몇 년 동안 코뮤니스트좌파의 일부라고 주장하는 그룹 내에서 맑스주의와 아나키즘의 흐름을 같은 선상에 놓으려는 경향이 있었다진정한 혁명적 흐름과 반()혁명적 흐름(종종 '개량주의자'로 표현됨)이 양쪽을 동등하게 관통하고 있다오늘날 기회주의적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은 아나키즘에 대한 이러한 접근 방식에서 특히 돋보인다주요 주장은 국제주의적 아나키즘과 비()국제주의 아나키즘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아나키스트 운동 또는 특히 "국제주의 아나키즘"은 프롤레타리아 진영의 일부이다: "구체적으로맑스주의자로 구성된 우리 조직은 국제주의 아나키즘 성원과 같은 편에서 프롤레타리아트를 위해 투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1] 더 나쁜 것은 맑스주의와 아나키즘의 흐름이 똑같은 모순과 정치적 오류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일관된 맑스주의코뮤니스트좌파 그리고 국제주의 아나키즘에 도발적인 제목의 2010년 기사우리가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것(세계혁명」 414)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ICC는 "같은 '맑스주의자'라는 이름 아래 실제로는 부르주아적이고 반동적인 조직을 숨기고 있다"라고 주장한다. '아나키스트'라는 꼬리표도 마찬가지다." 아나키즘에 대한 맑스주의 원칙과 정치의 역사적 투쟁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종파주의라는 이름으로(!) "그러므로 자신의 '예배당', 자신의 '가족'(아나키스트 또는 맑스주의자)을 방어하려는 여전히 너무 큰 경향과 상점주인 정신(인터내셔널 내 바쿠닌 세력과의 싸움 때문에 소작인으로 전락한 불쌍한 맑스와 엥겔스!)에 맞서 투쟁하는 것도 필요하다."라고 단언한다노동계급의 진영에서는 아무 관련이 없는 (...) 그리고 '맑스주의또는 '아나키즘'이라는 유일한 꼬리표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혁명가들을 (...) 반동과 구별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따라서 아나키스트 정치 흐름의 계급적 성격을 가능한 한 명확하게 정의하는 것은 오늘날의 신세대 혁명가를 비롯해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바로 이러한 목적을 위해 마흐노(Makhno)와 "마흐노비시나(Makhnovishina)"의 특정 사례에 대한 다음 글을 게재한다이 글은 현재 우리 그룹의 일원이 된 동지 중 한 명이 이러한 문제에 대한 북미 지역 내 토론과 논쟁을 거쳐 작성한 글이다.

 

마흐노 운동의 비()프롤레타리아적 계급의 성격

 

일반적으로 프롤레타리아 진영에서는 아나키스트 운동특히 마흐노비스트 운동의 성격에 대해 종종 혼란을 겪었다어떤 이들은 마흐노비스트 운동이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운동이었다고 주장을 하기도 했다그들이 실제로 마흐노의 통지하에서 프롤레타리아트와 경제적 상황을 어떻게 대했는지마흐노의 경험을 살펴보자.

 

아나키스트들은 마흐노비스트 운동이 노동자 운동이라고 주장하지만봉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마흐노 동지 중 한 명인 볼린은 "운동의 단점중 하나는 "농민 봉기를 지원할 수 있는 활발하게 조직된 노동자 운동이 없었던 것"이었다고 말했다. [2] 이로 따라 마흐노비스트 운동은 프롤레타리아트와 그 계급 정당의 정치적 지도력이 부족한 농민의 편을 공개적으로 들게 되었다이에 대해서는 마흐노비스트의 경험으로 돌아와서 자세히 설명하겠다.

 

또한우크라이나 아나키스트이며 마흐노 봉기의 기록자인 피터 아르시노프는 마흐노주의자들에 대한 그의 저서에서 노동자와 대중이 코뮤니스트(볼셰비키)의 배후에 있다고 말했다"(...) 코뮤니스트와 랑겔( Wrangel )의 차이점은 코뮤니스트는 혁명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는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는 것이다."[3]. 그러나 아나키스트 역사학자 알렉산드르 스키르다(Alexandre Skirda)에 따르면볼셰비키와 좌파사회주의노동자당[4]의 노동자 입장을 지켜본 마흐노는 "노동계급은 가난한 농민보다 덜 급진적이었다."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마흐노는 1919년 11월 9일부터 한 달 반 동안 예카테리노슬라브(Ekaterinoslav)를 점령했을 때 이를 충분히 파악하였다.[5].

 

그러한 언급은 스탈린주의자나 트로츠키주의자의 말이 아니라 네스토르 마흐노의 아나키스트 동지들과 아나키스트 역사가들이 주장한 것이다프롤레타리아 진영에서 마흐노주의 운동을 자본주의 관계를 폐지할 수 있는 프롤레타리아 운동으로 제시하려는 모든 그룹은 기회주의에 빠졌으므로 비판받아야 한다.

아나키즘의 연방주의 원칙과 맑스주의의 민주적 중앙집중제를 비교하거나 이러한 이론적 입장이 단지 용어상의 차이일 뿐이라고 주장하거나 "부르주아 진영과 프롤레타리아 진영을 구분하지 않는다"[6]고 주장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거짓이며이는 이론적으로 코뮤니즘과 일치하지 않는 반()맑스주의적 비교에 해당한다.

 

1926년 아나키스트 "마흐노비스트조직 강령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에게는 1926년 조직 강령[7](이하 강령)이 "러시아에서 반()혁명에 대한 저항이 분쇄된 이유 중 하나는 저항하는 사람들특히 아나키스트들이 조직적 그리고 강령의 일관성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올바르게 주장한 "점은 흥미롭다그것은 기본적으로 혁명의 퇴보에 반대하는 문제에 대한 올바른 계급적 반응이었다.“

 

스탈린주의 반혁명에 대한 바람직한 대응은 무엇인가이러한 대응은 정확히 무엇이었나그것은 모든 생산 단위를 조정하는 중앙 조직 없이 모든 생산 단위가 다른 생산 단위와 직접 거래하는 아나키스트 사회의 생산 시스템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한다실제로 그들은 지방 정부에 대해서만 언급한다상품 생산을 통한 상업주의 경제에서 규모가 변화한다고 해서 사회의 기본 구조가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중개 기능(상업 등)을 수행하는 중개 계급은 부르주아지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과 똑같은 입장에서 새로운 생산체제에서 자신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생산체제에서 조직 기능은 노동자평의회직장위원회 또는 공장과 공장의 노동자 행정과 같이 노동자 대중에 의해 특별히 만들어진 기구에 맡겨지게 될 것이다이러한 기구는 시국가 차원에서 서로 연계하여 생산 관리 및 운영을 위한 시그 이후 일반(연방)기구를 구성하게 된다." [8]

 

ICC는 강령의 계급사회에 대한 인식과 그 핵심에 뿌리를 내린 계급 적대감이 맑스와 엥겔스의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하며 그 강령에서 맑스주의 영향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맑스가 J. 바이데마이어(Weydemeyer)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 것처럼 이러한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 자신에 관해서 말하자면현대 사회에서 계급의 존재나 계급 간의 투쟁에 대해서 발견한 공로는 나에게 있지 않다나보다 훨씬 전에 부르주아 역사가들은 이러한 계급투쟁의 역사적 발전과 부르주아 경제계급의 경제를 설명했다내가 한 일은 새로운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계급의 존재는 생산 발전의 특정한 역사적 단계와 결부되어 있을 뿐이며계급투쟁은 필연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로 이어진다는 것이 독재 자체가 모든 계급의 철폐와 계급 없는 사회로의 이행에 불과하다." [9]

 

따라서 계급사회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은 맑스주의 이론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하고 독특한 것이 아니다그러나 계급 없는 사회로 이행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 독재는 맑스주의적 방법에 따라 진전된 것이다.

 

그 강령 자체에서 이행기"는 "낡은 것의 흔적을 가진 새롭게 태어난 사회"[10]라는 역사적 유물론(즉 맑스주의자)의 입장과 전혀 다르다이행기라는 개념 자체가 강령에서 말하는 것처럼 본질적으로 반()아나키스트적 일수 있다.

 

"사회혁명이 아나키스트 사회가 아니라 구()자본주의 체제의 요소와 유물을 간직한 다른 형태의 체제에서 마무리되어야 한다는 이행기 개념은 본질적으로 반()아나키스트적 발상이다.“

 

그 강령에는 관념적이고 반()맑스주의적 방법의 보기가 많이 있다이러한 접근 방식과 형식은 코뮤니스트 선언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자들과 소부르주아 아나키스트들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보기를 들어:

 

"동시에 현재의 사회 구조는 노동 대중을 자동으로 무지와 정신적 침체 상태로 유지하며교육받고 깨달음을 얻는 것을 못 하게 하여 통제가 더 쉬워지도록 만든다." "이러한 모든 그리고 다른 많은 문제에 대해서 대중은 아나키스트에게 명확하고 정확한 답변을 요구할 것이다그리고 아나키스트들이 아나키스트 혁명과 아나키스트 사회 구조의 개념에 대해서 대중이 관심을 두게 되면그들은 이러한 모든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을 제시하고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아나키즘의 일반적인 개념과 연결하여 효과적인 실현을 위해 모든 자원을 투입해야 할 것이다그래야만 전체 아나키스트 연합과 아나키스트 운동이 사회 혁명에서 사상을 주도하는 세력으로서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또는 "아나키스트는 사실 국가가 대중의 모든 권리와 사회 및 경제생활에서 모든 기능을 박탈하기 때문에 국가를 가장 큰 장애물로 간주한다국가는 미래사회에서 단 하루도 좋은 날이 없어서는 안 되도록 사라져야 한다그것은 승리의 첫날에 노동자들이 파괴해야 하며 다른 어떤 형태로도 복원해서는 안 된다그 자리는 생산자와 소비자로 구성된 자체 관리 노동자 조직의 연합으로 구성된 체제로 대체될 것이다이러한 구조는 국가 권력의 조직과 어떤 정당의 독재를 모두 배제한다." (원문우리가 강조 추가).

 

이러한 설명은 본질적으로 관념적이다맑스와 엥겔스가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말한 것처럼 "모든 시대에 지배계급의 사상이 지배적인 사상이 된다

 

"왜 반()권위주의자들은 정치적 권위국가에 대항하는 목소리를 내는 데만 머물러 있지는 않을까모든 사회주의자는 다가오는 사회 혁명의 결과로 정치적 국가 그리고 그것과 함께 정치적 권위가 사라지는즉 공적인 기능이 정치적 성격을 잃고 사회의 진정한 이익을 감시하는 단순한 행정 기능으로 변모할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그러나 반()권위주의자들은 정치 국가를 탄생시킨 사회적 조건이 파괴되기도 전에 정치 국가를 단번에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이들은 사회혁명의 첫 번째 행동은 권위가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이 신사들이 혁명을 경험해 본 적이 있을까혁명은 확실히 가장 권위주의적이다그것은 인구의 한 부분이 소총총검대포즉 권위주의적 수단을 통해 다른 부분에 자신의 의지를 강요하는 행위이다그리고 승리한 정당이 헛되이 싸우고 싶지 않다면자신의 무기로 반동 세력에 공포심을 불어넣어 이러한 지배를 유지해야 한다파리 코뮌이 부르주아지에 대항하는 무장한 민중의 권위를 활용하지 않았다면 단 하루라도 버틸 수 있었을까반대로 자유롭게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서 비난을 해서는 곤란하지 않을까따라서 두 가지 중 하나는 반()권위주의자들이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거나이 경우 혼란만 야기한다는 것또는 알고 있지만프롤레타리아트의 운동을 배신하고 있다는 것이다두 가지 경우 모두 반동에 도움이 된다." [11]

 

아나키스트 강령은 계급투쟁을 사상투쟁의 입장으로 축소하거나 이행기에 관한 입장과 미래사회 구조에 관한 입장으로 축소함으로써 아나키즘의 소부르주아적 성격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아나키스트 방법과 그들의 이론에 대해서는 유물론적이고 역사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계급의 개념은 이론적 입장의 중심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것은 단지 부수적인 개념으로 취급되었다.

 

이론과 실천의 아나키즘

 

아나키즘 흐름이 맑스주의 이론을 활용하는 것을 살펴보면그들은 맑스주의 이론의 내용 중 자신의 도덕적 입장에 맞는 부분은 받아들이고그렇지 않은 부분과 방법 전체는 거부하는 경향이 있음을 알 수 있다보기를 들어그들은 임금노동에 대해서 착취적인 것으로 간주하여 그들의 도덕 개념에 어긋나는 것으로 이해한다고 말하지만인터내셔널 이래 맑스주의 이론 일부이자 이론적 이바지해 온 자주적 생산 단위의 중앙집권화와 해체그리고 이들 사이의 상업과 무역의 필요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프롤레타리아 진영에서 이러한 기회주의적 글 및 코뮤니스트 운동과 아나키스트 운동 사이의 실제적이고 계급적인 차이를 무시하려는 시도는 비판받아야 한다노동계급 투쟁과 제인터내셔널 내부의 투쟁을 통해 아나키즘은 [12] 프롤레타리아트와 그 중도주의적 혁명당의 편을 직간접적으로 들었고그러한 비()정치주의와 경제주의적 실천을 통해 혁명적이고 국제주의적 정치적 흐름으로 간주할 수 없었다.

 

1936-1939년 스페인의 부르주아 국가에 대한 아나키스트의 지지, 1914년 제국주의 전쟁에서 아나키스트가 어느 한 편을 지지했거나[13], 현재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의 제국주의 전쟁에서 압도적 다수의 아나키스트가 어느 한 편을 지지하거나 군대에 합류한 상황 등근본적으로 반()노동계급적 성격을 가진 아나키즘의 역사적 사례는 오늘날까지 많이 존재한다노동자 운동의 발전 초기부터 아나키스트 조직원들은 아나키스트가 아닌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에 충실하게 남아있을 수 있었다러시아 혁명에 참여하여 볼셰비키 당원이 되거나 빅토르 세르주(Victor Serge), 안드레스 닌(Andres Nin)과 같은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의 옹호자가 된 많은 아나키스트가 정치적으로 아나키즘과 결별한 경우가 바로 이러한 경우이다.

 

마흐노와 그의 성원들이 코뮤니스트 지지자볼셰비키그들을 지지하는 노동자들을 직접 공격하고 처형한 다른 사례도 있다이를테면마이클 말레(이 책을 쓸 당시 아나키스트)는 검은 군대의 부대에 있던 폴론스키(Polonsky)라는 코뮤니스트에 관해 이야기한다불운하게도 폴론스키는 지방 볼셰비키 당 대회에 참석했고마흐노는 그의 첩보부대에 이들을 모두 사살하라고 명령했다.

 

"폴론스키의 니코필(Nykopil)에서의 활동과 카테리노슬라브(Katerynoslav)에 드나드는 모습은 비록 군대의 업무를 하는 중이기는 했지만 분명 눈에 띄었을 것이다지휘관 회의가 12월 4일 카테리노슬라브에서 열렸다폴론스키 외에도 다른 니코필 코뮤니스트들이 지방 당 위원회 회의에 참석했는데그는 자신의 활동에 관한 보고를 할 만큼 신중하지 못했다회의가 끝난 후 자정이 되자폴론스키는 마흐노와 다른 친한 친구들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한 시간 후 카레트니크(Karetnyk), 추벤코(Chubenko), 바실리프스키(Vasylivsky)가 폴론스키와 니코필(Nykopil), 카테리노슬라프(Katerynoslav) 등 볼셰비키 몇몇을 결박했다사형 선고를 받기는 하였지만이는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며콘트라즈베드카(방첩대)에 넘겨져 처리된다그들은 강으로 끌려가서 총살 당했다." [14]

 

같은 작품에서 말레는 마흐노의 농민 반란군이 점령한 지역에서 노동자들이 마흐노에게 강탈당하고 마흐노가 실천에 옮긴 경제에 대한 유토피아적 이해의 결과로 고통받는 노동자 사이의 갈등에 대해 언급한다마흐노의 목표는 농민 공동체와 도시의 노동자 사이에 일종의 물물교환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알렉산드리브스케의마흐노비스트들은 두 차례의 노동자 대회를 조직했고이 대회에서 노동자들은 자신의 통제 아래 생산을 재개하고 농민들과 직접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주장했다노동자들은 그다지 열성적이지 않았고 임금을 원했다... 전형적인 오해는 마흐노비스트들이 백군에게 획득한 총의 자물쇠를 수리하기 위해 큰 브랸스크 공사에 보냈을 때 발생했다작업이 완료되었으므로 노동자들은 대금을 지불해 달라고 요구했다그들은 적은 금액의 현물 지급 제안에 당연히 모욕감을 느꼈다이런 배은망덕한 태도에 분노한 마흐노는 아무런 대가도 지불하는 것 없이 총을 빼앗으라고 명령했다. (...) 그는 이어서 반란군 신문에 기사를 실어 브랸스크 노동자들을 '최전선 전사들의 피와 영웅주의를 희생해서라도 자신들의 풍요를 늘리려는 쓰레기이기주의자협박범'이라고 공격했다"[15].

 

마흐노비스트 운동은 노동자 운동이나 심지어 예외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그것은 아나키스트 방식과 그 소부르주아적 성격의 정확한 결과였다아나키스트의 이러한 경험을 정화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으며그렇게 함으로써 기회주의에 빠질 필요도 없다매우 다른 두 전통을 조화시키려 하기보다는 1873년 스페인 봉기에서의 활동과 제인터내셔널에서 그들의 모험주의를 통해 엥겔스가 아나키스트 운동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 주목해야 한다.

 

"아나키스트는 모든 것을 거꾸로 뒤집어 놓았다그들은 프롤레타리아혁명은 국가의 정치적 조직을 없애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선언한다그러나 그 승리 이후 프롤레타리아트가 이미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유일한 조직은 바로 국가다이러한 국가는 새로운 기능을 수행하기 전에 상당한 변화가 필요할 수 있다그러나 그러한 순간에 그것을 파괴하는 것은 승리한 프롤레타리아트가 새로 획득한 권력을 공고히 하고 자본주의 적들을 억누르며 사회의 경제혁명을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조직을 파괴하는 것이며그것이 없는 모든 승리는 새로운 패배와 파리 코뮌 이후와 유사한 노동자들의 대량 학살로 끝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16]

 

역사적으로 아나키스트는 전술뿐만 아니라 이론적 이해에서도 체계적이지 못하고 일관성이 없었다스페인 내전에서 부르주아 공화주의 국가를 지지하면서 처음에는 '국가의 죽음'을 외쳤지만나중에는 이렇게 말했다.

 

"국가가 더는 사회를 계급으로 나누는 조직을 대표하지 않는 것처럼이 시대의 정부(공화주의 국가)는 국가라는 조직을 규제하는 도구로써 노동계급에 대한 억압적 힘이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그리고 둘 다 CNT의 개입으로 인해 국민을 억압하는 경향이 더욱 줄어들 것이다"[17].

 

또는 러시아 내전에서 볼셰비키를 지지했다가 나중에 반대하고러시아혁명을 국제혁명으로 이해하고 코뮤니스트 사회 건설을 위한 국제혁명의 필요성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처음부터 볼셰비키 운동을 부르주아 운동이라고 이론화하기 시작했다아나키스트의 이러한 이론적 변화는 제1차 세계대전에 편승한 아나키스트들뿐만 아니라 '열여섯 가지 항목의 선언'을 거부하고 '국제주의자'의 입장을 취한 아나키스트도 받아들였다그들의 국제주의 혁명은 계급의 철폐를 달성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의 국제주의는 이름뿐이며 이론이나 행동이 아니었다.

 

이러한 비()정치주의 경향은 아나키스트 흐름이 혁명의 물질적 필요성을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프롤레타리아트가 후퇴했지만 필요한 한 걸음을 내디뎠을 때도 혁명을 포기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보여준다심지어 스페인 공화국 정부의 비호 아래 노동 수용소(당시에는 강제 수용소라고도 불렀다)의 설립을 요구하고 민족주의 선전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을 그들의 대의에 동참하도록 유도하기도 했다.[18] 이러한 관행은 권위와 위계라는 그들의 개념과 상충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부르주아 국가와 동맹 및 그들이 지배하는 지역의 노동자에 대한 억압이라는 맥락에서 볼 때 '필요한행위가 된다.

 

연방주의자본주의의 유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푸르동의 경제적 이상주의는 아나키즘에 내재해 있다연방주의 또는 분권화와 자기 관리의 경제 구조는 다양한 아나키스트의 이론 작업에서 지속해서 견지하고 있다.

 

스페인 내전[19]에 관한 연구에서도 알 수 있듯이아나키즘이 선호하는 사회 구조는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권력의 섬들이 서로 물물교환하고 재화를 직접 교환하는 방식으로 교환가치의 보존을 통해 상품생산과 임금노동으로 이어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물물교환 방식을 통해 화폐 제도는 교환할 수 있는 상품의 등가성을 더 쉽게 만들 수 있으며이러한 상품의 등가성은 상품의 소멸이 아니라 상품생산의 강화에 이바지한다따라서 자본주의와 노동력 착취는 철폐되지 않고 계속될 것이다.

 

"화폐는 교환의 매개체로써 생산과 소비 사이에 필요한 매개체 역할을 한다선진국 화폐 제도에서는 교환을 위해서만 생산하거나교환을 통해서만 그것을 생산하게 된다화폐를 없애면(보조적 물물교환에 해당하는낮은 생산 단계로 되돌아가거나교환가치가 더는 상품의 주요소가 되지 않는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게 되는데그 이유는 화폐를 대표하는 사회적 노동이 더는 사회적으로 매개된 사적 노동으로만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20]

 

이 모든 것은 실제로 아나키즘이 자유 교환과 자유 시장의 지속따라서 자본주의적 사회 및 경제 관계에 대한 소부르주아지의 꿈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얼마나 이상주의적이고 비역사적인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는 자본주의 관계의 구체적인 부분을 변화시키지 않는 행위와 개별 테러 행위에 의한 선전의 관행이다.

 

맑스와 엥겔스 당시에도 아나키스트는 프루동과 다른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자의 이론에서 얻은 연방주의를 지지하고 있었다그것은 엥겔스가 파리 코뮌 20주년을 맞아 코뮌의 경제 상황을 언급하며 구시대적이라고 표현한 말이다.

 

"1871년에 이르러 수공업의 중심지였던 파리에서도 대규모 산업은 이미 더는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어서 코뮌의 가장 중요한 법령은 각 공장 노동자들의 연합에 기초할 뿐만 아니라 이 모든 연합을 하나의 거대한 연합으로 통합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대규모 산업과 제조업의 조직즉 맑스가 내전에서 올바르게 말했듯이 결국에는 반드시 코뮤니즘즉 프루동 교리와 정반대되는 조직으로 나아가야만 했다따라서 코뮌은 프루동 사회주의 학파의 무덤이기도 했다오늘날이 학파는 프랑스 노동계급 사회에서 사라졌다지금 그들 중에서맑스주의 못지않게 가능성 있는 것 중에서맑스주의 이론은 도전받지 않고 지배적이다. "급진적인부르주아지들 사이에서만 여전히 프루동주의자들이 있다." [21]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마흐노비스트의 연방주의에 대한 지지는 스페인 내전 당시 아나키스트의 연방주의와 프루동 경제학의 연방주의와 비슷하다.

 

이것은 단순히 과거 혁명가들의 용어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아나키스트 운동에 대한 그들의 역사적 경험과 국제 프롤레타리아 투쟁과의 관계에 대한 유산이다이러한 경험은 아나키스트 운동의 좌파즉 부르주아적 성격이 스탈린주의자나 트로츠키주의자의 성격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입증한다아나키스트 운동을 좌파즉 자본의 좌파로 규정함으로써 우리는 그것을 프롤레타리아 진영의 혁명적이고 전투적인 흐름이 아니라 자본가계급의 완전한 세력으로 간주하는 방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노동자 단결'이나 '아나키스트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와 같은 변명으로 아나키스트 운동을 진정으로 혁명적이고 프롤레타리아적인 것으로 지지하거나 인정하는 프롤레타리아 진영 내 동지 그룹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밖에 없다.

 

"모든 비판을 억누르고 자신의 당에 성찰의 기회를 주지 않으려는 욕망을 분명히 가지고 있었다통일의 단순한 사실이 노동자에게 만족스럽지만이러한 순간적 성공은 너무 큰 희생을 치른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22]

 

2022년 10

다론(Daron)

코뮤니스트좌파 국제그룹(IGC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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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ttps://en.internationalism.org/wr/336/anarchism

[2] https://files.libcom.org/files/Volin%20The%20unknown%20revolution.pdf

[3] Peter Arshinov, History of the Makhnovist Movement (19181921)

[4] 사회주의혁명당(SR)은 "농업 사회주의자"이자 민주적 사회주의 러시아 공화국을 지지하였다나로드닉의 이념적 후계자인 SR은 차르의 전복과 농민에게 토지를 재분배하는 것을 지지함으로써 러시아 농민들 사이에서 많은 추종자를 확보했다이 조직의 좌익은 나머지 조직보다 볼셰비키 및 아나키스트들과 더 나은 관계를 유지했다.

[5] 알렉산드르 스키르다폴 샤키 네스토르 마흐노 아나키의 코사크 우크라이나 자유 소비에트를 위한 투쟁 (1917-1921)

[6] https://en.internationalism.org/wr/336/anarchism

[7] https://libcom.org/article/organisational-platform-general-union-anarchists-draft

[8] "1926년 프랑스에 망명한 러시아 아나키스트 그룹인 디엘로 트루다(노동자 대의)그룹은 1917년 러시아혁명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직에 관한 이러한 소책자('자유주의 코뮤니스트 조직 강령'으로도 알려져 있음)를 발간했다.“

(https://libcom.org/article/organisational-platform-general-union-anarchists-draft)

[9] Marx’s letter to J. Wydemeyer, March 5th 1852.

[10] Critique of the Gotha Programme by Marx

[11] https://www.marxists.org/archive/marx/works/1872/10/authority.htm

[12] 그것은 정치적 흐름을 말하는 것이다우리는 일부의 경우 그들이 프롤레타리아혁명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고 정직하게 확신할 수 있는 트로츠키주의자나 좌파를 위해서 우리가 하지 않는 것처럼 개인의 아나키스트 성원이 접근하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그러나 이러한 개인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책은 명확하고 직접적인 논증을 통해 역사적으로 아나키즘의 소부르주아 계급적 성격과 오늘날 좌파 또는 자본으로의 완전한 통합즉 정치적 기구로의 통합을 비판하는 것이다더욱이 아나키즘이나 트로츠키주의의 계급적 성격에 대한 환상을 정치적 흐름으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편집팀에 의해 추가됨).

[13] "16가지 항목의 성명(프랑스어: Manifeste des seize) 또는 16가지 항목의 선언은 1916년 저명한 아나키스트 피터 크로포트킨과 장 그레이브가 작성한 문서로, 1차 세계대전 중 독일과 주요 강대국에 대한 연합군의 승리를 옹호했다." (위키백과)

[14] .https://theanarchistlibrary.org/library/michael-malet-nestor-makhno-in-the-russian-civil-war

[15] .https://theanarchistlibrary.org/library/michael-malet-nestor-makhno-in-the-russian-civil-war

[16] Engels letter to Philipp Van Patten - 1883

[17] 솔리다리다 오브레라, CNT의 아나키스트 일간지, ICT 팸플릿 스페인 1934-39에서 인용노동계급 투쟁에서 제국주의 전쟁까지

[18] https://files.libcom.org/files/WorkersAgainstWork-Seidman_0.pdf

[19] http://igcl.org/Spain-1936-Can-There-be-a and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11-09-01/spain-1934-39-from-working-class-struggle-to-imperialist-war

[20] https://www.marxists.org/archive/marx/works/1857/grundrisse/ch04.htm#p213

[21] https://www.marxists.org/archive/marx/works/1871/civil-war-france/postscript.htm

[22] Marx to W. Bracke In Brunswick, 1875, https://www.marxists.org/archive/marx/works/1875/letters/75_05_05.htm

 

 

 

<출처혁명인가 전쟁인가」 23,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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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세계 여성노동자의 날 젠더 대결이 아닌 성평등, 여성해방을 위한 계급전쟁으로!

3.8 세계 여성노동자의 날

젠더 대결이 아닌 성평등여성해방을 위한 계급전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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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여성노동자의 날은 지배계급의 억압과 폭력에 맞선 노동계급의 투쟁에 뿌리를 두고 있다. 1857년 3월 8미국 여성 섬유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극심한 노동조건에 대한 항의 시위를 벌였고경찰은 여성 노동자들의 저항을 잔인하게 진압했다. 1908년 3월 8일 미국 여성 섬유 노동자들은 1일 10시간 노동을 요구하는 항의 시위를 벌였으나또다시 잔인한 진압을 당했다그 이후로 노동자들은 '여성참정권및 아동노동 금지를 요구하기 위해 저항하기 시작했다.

 

3월 8일은 서서히 노동조건 개선과 부르주아지에 대한 노동계급의 사회적 권리를 위한 투쟁의 날이 되었다. 1910년 제인터내셔널 총회에서 클라라 체트킨(Clara Zetkin)은 국제여성의 날을 제청하였고 총회의 승인을 받았다1차 제국주의 세계대전의 발발과 더불어수백만의 남성이 총알받이로 전쟁터에 보내졌고이는 여성 노동자들과 함께 반전운동의 형성으로 이어졌다여성노동자들은 제국주의 전쟁으로 남편과 아들이 전선에 나간 동안 홀로 가족의 생존을 감당해야 했다하루 13시간 이상 노동하며 빵을 구하기 위해 영하의 날씨에 몇 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리곤 했다. ‘아이에게 먹일 빵을 달라’, ‘참호에 있는 남편을 집으로 돌려보내라라는 요구와 파업은 2월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이에 따라 소련은 역사상 최초로 낙태를 합법화하는 등 여성들의 생활 여건을 크게 개선했다.

 

1913여성들은 선거권을 요구했고이 권리를 위해 투쟁했으며1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특히 독일영국미국 등과 같은 산업화된 국가의 부르주아지는 여성에게 선거권을 부여했다이러한 이유는 부르주아지의 호의가 아니라 제1차 세계대전으로 자본주의가 쇠퇴하는 체제즉 '전쟁과 혁명'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부르주아지 스스로 인식했기 때문이었다그래서 부르주아지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부르주아민주주의 환상을 강화하기 시작했고의회는 혁명의 내용을 상실하게 되었다이후 모든 부르주아 선거와 의회주의는 이러한 민주주의 환상을 강화해 왔다.

 

영국에서 여성참정권 운동가페미니스트로 알려진 실비아 팽크허스트(Sylvia Pankhurst)는 처음에는 전투적 여성참정권 운동가였지만다른 여성참정권 운동가들이 제국주의 전쟁을 지원하는 것을 보고 코뮤니스트좌파가 되어 영국 노동자전함(Dreadnought) 그룹의 지도자가 된다팽크허스트는 100년 전부터 이미 의회주의를 거부하고 노동자평의회 설립을 촉구했고사회애국주의 개혁주의 세력인 노동당에 반대하여 자본주의 전복과 임금제도의 폐지와 코뮤니즘을 향한 단계로 노동계급 독재를 주장했다.

 

"의회에서 제기되는 어떤 주제에 대해서도 새로운 정책을 찾을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그곳의 분위기는 메마르고삶은 생각하기 힘들게 만든다기껏해야 의회 의원들은 의회에 들어가기 전에 채택한 정치를 계속하거나외부에서 일어나는 약간의 진동이나 운동을 따라잡는다의회는 쇠퇴하는 기관이다그것은 자본주의 체제와 함께 사라질 것이다그것은 생산유통운송이 자본가의 손을 떠나면 산업 소비에트로 대체되어 전 인민의 공동 관심사가 될 것이며산업의 각 부문은 그것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관리할 것이다.

 

여성은 남성보다 쇠퇴하고 있는 의회라는 기관에 더는 미덕을 부여할 수 없다그것은 과거의 개혁이고 사라져야 한다.

 

정치권에서 여성의 특별한 법적 걸림돌이 완전히는 아니지만상당 부분 제거되자정치에서 여성과 남성 사이에 차이가 거의 없어야 한다는 것이 불가피해졌다그것은 마땅히 그래야 한다.

 

여성 전문 정치인은 남성 전문 정치인보다 더 바람직하지도 덜 바람직하지도 않다세상은 둘 모두를 덜 가질수록 더 좋아질 것이다기대해야 할 시간은 통치하는 것이 그들의 일이거나 통치자와 그 꼭두각시의 연설을 듣고 원내총무의 요청에 표결 로비에서 투표하기 위해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인 사람들이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되는 때이다.

 

코뮤니즘 아래에서 소비에트는경쟁에 기반을 두고 전쟁 계급의 투쟁으로 찢긴 오늘날 사회에 불가피한 당쟁을 계속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동체의 서비스 행정을 위해 모일 것이다.

 

여성에게도 남성에게도 미래의 희망은 의회 개혁이 아니라자유로운 생산자 연합코뮤니즘과 소비에트에 있다." (실비아 팽크허스트, '여성 의원', 노동자의 전함, 1923년 12월 15)

 

100년이 지난 오늘 부르주아 총선을 앞두고 세계 여성노동자의 날을 맞이했다이번 선거에서도 젠더 이슈가 등장했다이러한 젠더 이슈화는 자본주의 체제 유지를 위한 억압 도구와 이데올로기로 활용되고 있는데지난 대선과 이번 총선에서 성 대결성 혐오 조장이 대표적 사례이다자본주의에서 지배계급의 모든 분파는 노동계급을 다양한 집단으로 나누어 대립시키고 갈라치면서 분열을 획책한다문제의 근원이 자본주의 모순이 아니라 개인과 특정 집단으로 원인을 돌려 노동계급의 연대를 약화하기 위해서이다.

 

자본주의 쇠퇴기일반화된 제국주의 전쟁으로 향하는 시대노동자의 삶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특히 여성노동자는 전쟁난민기아정리해고라는 가혹한 자본주의 공격의 첫 번째 희생자이다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노동자는 이중으로 착취당하고 차별받기 때문에 고통은 배가 될 수밖에 없다자본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노동계급의 단결이다그래서 자본은 노동계급을 파편화개별화시킨다한국의 지배계급도 반()페미니즘과 공정 담론으로 노동계급을 분열시키고 자본주의 질서를 유지하려고 한다하지만 세계 여성노동자 날의 역사적 뿌리는 노동계급 여성과 남성에게 노동해방과 여성해방이 별개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지배계급은 부르주아 선거에서 젠더 대결노동계급 분열을 통해 표를 얻으려고 할 뿐착취당하는 여성 노동자의 삶과 진정한 성평등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그들은 단지 여성노동자를 목 졸라 죽이는 자본주의 체제를 관리하고젠더 문제를 이용하여 권력을 갖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

 

선거 국면에서 지배계급은 여성노동자와 모든 노동자의 분노를 선거 서커스를 통해 잠재우고 왜곡한다따라서 우리의 투쟁은 윤석열 정부나 부르주아 정치의 어느 한 세력에 반대해서는 안 된다우리의 투쟁은 지배계급의 모든 정당전 세계 프롤레타리아 여성을 착취하고그들에 대한 착취억압차별에 기대어 살아가는 성차별적 자본주의 체제를 지지하는 모든 정당에 대항해야 한다우리의 세계적인 계급인 남성여성모든 성별과 성적 정체성을 가진 프롤레타리아는 프롤레타리아 여성의 삶과 노동에 기생하는 계급에 대항하여 조직적이고 원칙적인 투쟁을 해야 한다.

 

성평등은 여성 억압의 근본 원인인 자본주의 생산관계 및 임금 노예 체제의 모든 물질적 측면을 제거한 코뮤니스트 사회에서만 실현할 수 있다이는 성평등 실현이 남녀 사이의 문제가 아니며계급투쟁과 코뮤니스트혁명의 과제임을 의미한다따라서 코뮤니즘은 여성해방 없이 실현할 수 없고코뮤니스트혁명 없이 여성해방은 불가능하다.

 

2024년 세계 여성노동자의 날!

부르주아 선거를 앞두고 투표소가 아닌 작업장과 거리에서 투쟁하자!

성차별적 자본주의 체제에 가장 큰 타격을 주는 곳지배계급의 이윤을 타격하자!

 

착취당하고 무급으로 일하는 여성들이 없다면이 체제는 중단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단순히 체제를 중단시키는 것 이상으로 그것을 전복해야 하며모든 노동자가 여성 노동자 억압의 악몽을 끝내기 위해 권력을 장악해야 한다오직 자본주의를 전복한 세계에서만 여성 노동자가 모든 것의 가장 기본적인 자유즉 자기 몸의 자유를 박탈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없이 살 수 있다모든 성별의 노동계급은 지배계급에 맞서 함께 투쟁해야 하며스스로 권력을 장악하고 자본주의 국가를 전 세계적으로 전복할 목적으로 투쟁에 나서야 한다.

 

젠더 대결이 아닌 성평등여성해방을 위한 계급전쟁으로!

부르주아 선거를 넘어 자본가계급에 맞선 계급전쟁으로!

자본주의 체제에 맞선 계급전쟁과 코뮤니스트혁명으로 성평등여성해방 쟁취하자!!!

전쟁과 야만의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하고자유롭고 평등하고 안전한 코뮤니즘을 인류의 미래로!!!

 

2024년 3월 8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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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7호] 전쟁 열기, 국제주의, 그리고 아나키즘의 한계

전쟁 열기국제주의그리고 아나키즘의 한계

 

리브컴(libcom.org)의 "최근 토론항목에 활발한 토론이 거의 없지만 요즘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글은 알바트로스(Albatross)가 작성한 "영국 아나키즘전쟁 열기에 굴복하다"[1]라는 글인데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제국주의 분쟁에 우크라이나 측의 참여를 촉구하는 아나키스트에게 대항하는 공격으로 포문을 열었다알바트로스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오늘날 영국과 다른 지역의 아나키스트 운동이 어떻게 한 국가의 군대를 다른 국가의 군대에 대항하도록 지원하고우크라이나 전쟁을 이념적으로 정당화하고 물질적으로 지원하는 것일까우리의 원칙에 의문을 제기하고 수정해야 할 정도로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것을 목격하고 있는가아니다우리는 이 지역 주민들이 겪은 비극이 매번 반복되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우리의 군국주의 반대국제주의 및 혁명적 관점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해졌다현 단계에서 해방을 위한 투쟁은 한편으로는 제국주의의 침략과 다른 한편으로는 (상대 제국주의의 지원을 받는국가 방어 사이에서 인간답지 못한 곳에 갇혀 있다어느 쪽 참호에서든 목적을 추구하는 것은 자본주의 전쟁의 용광로에 더 많은 연료를 넣는 것일 뿐만 아니라그것은 아나키에 맞서 국가에 대한 충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알바트로스는 이러한 아나키스트 전쟁 열기에 대한 여러 가지 사례를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우크라이나에서 스코틀랜드서부 사하라팔레스타인타타르스탄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사람들과 함께한다."라고 아나키스트연맹이 발행하는 '자유'지에서 다리야 루스타모바(Darya Rustamova)는 선언한다그는 또한 "아나키스트들이 조국을 지키기 위해 나섰다"라고 선언한 아나키스트연맹(AF)의 잡지 "조직 96"호의 사설을 인용한다알바트로스는 두 가지 언급에 반대하면서 "'국민'이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올바르게 제기한다그들은 어떤 방법으로 저항하고 있는가어떤 목적을 위해?"라는 질문과 함께 두 번째 인용문은 "아나키스트들은 대체 어떤 조국을 가지고 있는가?"라고 묻는다. '조국'은 한 개인이 태어난 민족국가에 대한 감상적인 개념"으로, '국가 방어'라는 정책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된다그는 또한 2009년 AF가 발표한 글에서 "'억압받는 국가'를 포함한 모든 민족주의에 대한 지지를 거부하는 입장을 훨씬 더 분명하게 밝힌 것과 비교한다."[2].

 

알바트로스는 우크라이나에서 침략자에 대한 일종의 자주적인 대중의 저항이 있다는 생각이 망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소위 독립적인 아나키스트 전투 부대는 모두 정규군에 완전히 통합되었으며어떤 경우에는 아조프 여단이 이끄는 파시스트 부대와 공개적으로 함께 활동하기도 했다그리고 더 나아가 우크라이나 국가에 대한 지원은 무기와 선전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제국주의 동맹즉 나토에 대한 지원도 포함된다: "우리 자신의 입장에서 볼 때영국의 아나키즘을 극복한 전쟁 열기는 실질적인 전투에 대한 개입은 아니라 할지라도 군사 원조와 기술 지원을 통한 영국의 군사 개입더 나아가 나토 제국주의에 대한 지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물리칠 수 있는 것은 그러한 방법을 통해서이다현재 나토 회원국들이 핵 강대국 사이의 직접적인 충돌로 확대되는 것을 주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부 아나키스트들은 자신의 지배계급보다 제국주의 전쟁의 전면화를 더 열망하는 어처구니없는 입장에 처해 있다"고 언급했다.

 

전쟁에 대한 아나키스트의 반응에 대한 우리의 초기 글과 마찬가지로 알바트로스는 아나키스트 운동의 일부가 러시아폴란드세르비아슬로바키아 러시아의 아나키스트-생디칼리스트 국제노동자협회(KRAS)의 다양한 그룹을 인용하면서 전쟁의 양 진영에 대해 명백한 국제주의적 입장을 취했음을 분명히 한다우크라이나 그룹뿐만 아니라 "영국의 일부 아나키스트들은 아나키스트코뮤니스트그룹리버풀연대연맹아나콤네트워크와 같은 노동계급 국제주의의 과정을 밟았지만그들은 소수다."라고 덧붙였다마지막으로알바트로스는 자유 그룹이 KRAS 동지들의 신상털기에 연루된 요소 중 한 명을 언론을 통해 발표를 했다는 점을 지적한다(이 경찰과 같은 행동에 대한 성명서는 우리 웹사이트에도 게시되어 있다[3]). 일부 친우크라이나 아나키스트들이 KRAS 동지들의 이름과 주소를 온라인에 공개하여 사실상 동지들을 국가의 탄압에 노출했다.

 

리브컴에 대한 분노

 

"그러므로 국가 사이의 전쟁은 공공연한 계급투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이는 노동자들이 '자신의국가 내부에서 사회적 휴전을 거부하고 매일 그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사람들에 맞서 계급으로 조직할 때 비로소 시작된다,"

 

알바트로스가 본문에 제시한 이러한 기본적인 국제주의적 입장에 대해 마흐네트(Machnette)라는 게시자는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

 

"나에게는 대량 학살 유화책과 매우 흡사하게 들린다완벽함이 오히려 선한 것의 적이 될 수 있는 사람의 완벽한 본보기다나는 지원 (서방 세력 - WR)이 폭탄을 쏘고 지뢰를 제거하고 점령 범죄를 최대한 빨리 끝내고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이것이 계급투쟁의 위대한 승리인가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누구인가그것은 바로 생명을 구하는 일이다!

 

목숨이 위태로울 때 이념적 순수성은 무고한 사람들의 피로 지불하는 사치다.... 말 그대로 대량 학살의 위협 아래에서 구명줄을 요청하는 동지들에게 당위만을 내세울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다!“

 

다른 게시 글에서 마흐네트는 다음과 같은 글을 작성했다.

 

아일랜드 공화국 또는 탈레반이 우리의 이념적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마음껏 욕을 할 수 있지만우리가 부정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이 각국의 점령에 반대할 권리가 있었다는 사실이다그리고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아나키스트 단체를 후원하기 위해 마흐넷은 "어제부터 조직화(Organise)! 잡지에 후원을 시작했다"고 발표했다이 일이 여러분을 그렇게 심하게 분노하게 했다면뭔가 정말로 제대로 하고 있다는 것이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이 게시 글에 올라온 대부분 게시물[ACG의 배틀스카레드(Battlescarred), 론 드론(Lone Drone), 셰르부크티어(Sherbu-kteer),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ICT)의 디지바스(Djybas) ]은 "()제국주의" IRA와 탈레반[4]에 대한 암묵적인 지지는 말할 것도 없고 우크라이나와 나토 동맹국을 지지하는 마흐네트의 모든 주장을 거부하고 있다또한 배틀스카레드는 러시아 아나키스트 에이브토놈(Avtonom)웹사이트에서 아나코-밀고자들의 무죄를 입증하려는 시도에 이어 KRAS의 신상털이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를 제공한다[5].

 

전쟁 열기에 굴복

 

정당한 이유로 공을 들인 우리는 알바트로스가 착용한 국제주의 갑옷에 다소 위험한 틈이 있다는 점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이는 리브컴의 오랜 회원 스티븐이 "이 글은 훌륭하고 중요한 언급을 많이 하고 있고 좋은 취지에서 작성된 글이지만...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글을 올리면서 분명해졌다그리고 이 문제는 우크라이나의 혁명가들이 군국주의 반대즉 우크라이나 전쟁 기계에 반대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생각이다스티븐은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크라이나는 부패한 사회민주주의 국가다그러나 아나키스트와 혁명가들은 (현재 친러시아 좌파 정당을 제외하고는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자유롭게 선동할 수 있다물론 러시아의 상황은 매우 다르다아나키스트()파시스트혁명가들은 보안군에 체포되어 고문당하고파시스트 및 기타 우익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살해되거나 장기간 투옥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그런 점을 고려할 때나는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 무장 투쟁에 참여하기로 선택한 우크라이나 아나키스트들을 비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이는 단순히 당신을 지배하고 있는 통치자의 국적 문제가 아니라 자유롭게 살 수 있거나고문을 당하고 감옥에 갇히거나 죽임을 당하는지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는 무장한 "저항"에 동참하는 것을 공개적으로 옹호하는 사람들에게 명백한 굴욕이다그 배후에는 반()파시스트 전선을 옹호하는 전형적인 좌파의 반박이 숨어 있다: "파시스트들이 거리를 행진하고 집을 부수고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은 정치적계급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개인의 생존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 문제이다물론 즉각적인 위협에 직면한 개인은 도망치거나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거나부르주아 군대에 징집되는 등 모든 종류의 행동을 강요당할 수 있다하지만 프롤레타리아 정치조직즉 노동계급 전체에 분명한 '행진 노선'을 제시하는 것이 존재 이유인 집단적 조직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는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 무장 투쟁에 동참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정치적 선택을 한 우크라이나 아나키스트의 주장을 단호하게 비난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행동하는 아나키즘의 본보기로써 선택을 하도록 공개적으로 촉구해야 한다.

 

이것에 대한 알바트로스의 답변은 완전히 모순된 것 같다:

 

"다시 원래의 요점으로 돌아가서나는 당신이 이야기하고 있는 요점에 동의하지만우크라이나가 침략당했다는 이유만으로 특정 의미의 군국주의 반대가 우크라이나 사람들과 무관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우크라이나 주민들은 폭격과 일부 지역에서는 잔혹한 점령으로 고통을 받고 있으며징병계엄령국경 폐쇄 등으로 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고 있다전쟁에서 승리하거나 죽을 때까지 완전히 통일된 우크라이나 국가의 선전 이미지가 있고국가를 위해 죽이고 죽고 싶지 않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많은 사람이 국경에서 제지당하고 길거리에서 징집되고 탈영으로 처벌받는 등의 현실이 존재한다... 나는 그러한 상황에서 개인의 선택을 판단하려는 것은 아니지만예컨대 저항 위원회와 연대 집단이 표현한 아나키스트 운동의 정치적 계획을 비판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생각한다나는 당신의 나머지 의견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동의한다.“

 

알바트로스는 스티븐이 작성한 글의 핵심이 우크라이나 아나키스트 애국자들과 그들의 입장을 지지하고 옹호하는 우크라이나 외부의 모든 사람에 대한 비판을 약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의견의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스티븐은 전쟁 중에 일어난 우크라이나 광산 노동자와 의료 노동자들의 와일드캣(비공인파업과 같은 계급 행동에 찬성한다고 말하면서 자신을 방어하고 있다동시에 알바트로스에 다시 질문한다"그러면 질문을 하나 더 하자면러시아의 반전 방해 행위를 예로 들어줘서 감사하다하지만 우크라이나 군대에 대해서도 그와 같은 종류의 방해 행위를 옹호하겠는가왜냐하면그것은 본질적으로 러시아의 침략을 돕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디지바스(Djybas)는 올바르게 답변한다"질문은 방향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계급투쟁에 관해 이야기할 때우리는 계산된 개인의 행동이 아니라 본질적인 사회적 힘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만약 전쟁 중인 국가의 노동자들이 계급투쟁을 벌이고그로 인해 어떤 식으로든 전쟁 노력을 약화하기 시작한다면스티븐과 다른 사람들은 정치적 권위로 '적을 돕고 있으니 그들에게 일터로 돌아가라'라고 말할 수 있을까그리고 기억해 두자 위기와 전쟁의 시기에 노동계급 조건에 대한 공격에 대한 반대는 지배계급에 의해 국가 통합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여러분이 긍정적인 사례로 제시한 파업권 제한에 대한 민간인 시위나 반대조차 전쟁 선전에 따르면 매우 빠르게 '전쟁 노력을 약화하는 것'이 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추가할 수 있다우크라이나에서 선동의 자유에 대한 스티븐의 환상에도 불구하고 공개적으로 국제주의 입장을 옹호하는 정치 단체도 "전쟁 노력을 약화시킨다"라는 비난을 받고 국가의 탄압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정말로 믿어야 하는가?

 

아나키즘과 함께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문제

 

게시 글에서 흥미로운 발언 중 하나는 아래의 셔부-크티어(Sherbu-kteer)의 글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코뮤니스트 좌파가 코뮤니스트 정치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국제주의를 그토록 강조한 이유를 이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그것은 지금 드러나고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이 밝혀졌다좌파 대부분의 관점은 덜 악한 자본가를 찾고 일단 그것을 찾았다고 생각하면 그들을 지지하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 않았다는 것이다다시."

 

이것은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아나키스트의 참여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물론 1914년 크로포트킨의 사례가 있는데그는 오늘날의 전쟁 옹호론자들과 매우 유사한 주장으로 독일 독재에 맞서 프랑스 민주주의를 지지함으로써 추종자들로부터 '아나코-참호주의자(anarcho-trenchists)'라는 칭호를 얻었다오늘날 대부분의 아나키스트는 아마도 크로포트킨의 입장을 거부한다고 주장할 것이다대부분의 아나키스트가 제국주의 전쟁으로 인한 다음 두 가지 주요 시험대라 할 수 있었던 1936-9년 스페인 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 실패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다시 한번 말하지만오늘날 대부분의 아나키스트는 전쟁을 지휘하기 위해 스페인의 지방 정부와 중앙 정부에 합류한 스페인 전국노동연맹(CNT)대표들을 비난할 것이다그러나 스페인에서 자본가 사이 분쟁과 함께 프롤레타리아혁명이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은 두루티의 친구들 같은 최고의 아나키스트 그룹조차도 전쟁 노력을 지원하는 문제에 대해 타협하게 했다알바트로스에 대한 답신에서 웨인 프라이스[6]도 친구들의 팸플릿 새로운 혁명을 향하여에서 인용한 내용을 사용한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자본주의와 협력을 해서는 안 된다........계급투쟁은 노동자들이 현재 전쟁터에서 싸우고 전쟁 산업에서 일하는 데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혁명적 노동자는 공식 직책을 맡지 말아야 하며정부의 부처에 자리를 잡아서도 안 된다전쟁이 지속되는 한 전쟁터에서참호에서병영에서그리고 후방에서 생산적인 노동을 하는 동안 협력을 하게 된다.”

 

이러한 중도주의적 입장에 맞서 이탈리아 코뮤니스트좌파는 "후위대"에서 가장 작은 파업이 스페인 노동자들에게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하고 제국주의 전쟁에 타격을 줄 것이라고 주장했으며이는 1937년 5월 바르셀로나 봉기[두루티의 친구들은 공화당 정부와 스탈린주의자 및 전국노동연맹(CNT) 요원들에 맞서 방어벽의 노동자 편에서 참여했다]에 의해서 입증된 입장이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 코뮤니스트좌파 그룹은 반()파시스트 저항에 참여하는 것을 옹호하고 심지어 파리의 "해방"을 이끈 장갑차에 검은색과 빨간색 깃발을 달았던 아나키스트에 대해 다시 한번 전면적으로 반대했다이 무렵에는 전쟁에 대해 어느 정도 명확한 국제주의적 입장을 취했던 아나키스트는 소수(프랑스의 볼리네를 중심으로 한 그룹영국의 마리-루이즈 베르네리를 중심으로 한 전쟁 비평 그룹 등)로 줄어든 상태였다알바트로스는 글의 서두에서 전쟁은 끔찍한 일이라고 한탄하는 지배계급 일부의 거짓 선언에 반대하여 "아나키즘은 그러한 신비화를 바로 꿰뚫는다"라고 말한다우리는 우리가 보고 있는 대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다른 나라의 노동자들은 지배자의 이익을 위해 서로를 학살하도록 보내진다군국주의 반대는 아나키즘의 핵심적 원칙이다.“

 

하지만 아나키즘이라는 존재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아나키즘의 원칙이 분명한 강령적 입장으로 구현된 곳은 어디에 있을까사실 아나키즘은 코뮤니스트와 개인주의자민족해방 투쟁에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과 지지하는 사람을 모두 아우르는 극도로 이질적인 정치 현상이었다예컨대 아나키스트연맹(AF)과 아나키스트코뮤니스트그룹(ACG)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듯이 오늘날에도 같은 문제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또는 ACG가 서명한 전쟁에 반대하는 국제 성명서와 웨인 프라이스(Wayne Price)의 전쟁 찬성 기사가 포함된 아나키스모(Anarkismo) 웹사이트를 참조하라배틀스카레드(Battlescarred)는 또한 AF가 양측의 전쟁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한 국제아나키스트연맹 일부라고 지적한다보편적 원칙을 공유하는 일반적인 아나키즘 계열에 대한 생각과는 달리, "일반적으로아나키즘은 부르주아소부르주아프롤레타리아적 요소를 포함하는 일종의 소용돌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맑스주의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없을까또한모든 제국주의 전쟁에서 스탈린주의자와 트로츠키주의 응원단도 포함되며코뮤니스트좌파는 그러한 모든 전쟁에 반대하지 않는가그 차이점은 코뮤니스트좌파는 맑스주의 '진영'에 대한 정의를 항상 역사적 경험과 그것을 고수하는 데에 기반을 두거나 분명하게 공식화된 강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사실에 있다스탈린주의자와 트로츠키주의자를 맑스주의자로 규정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이러한 표지를 스스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그들의 실제 실천특히 전쟁과 혁명 같은 주요 문제에 직면했을 때 그들이 자본주의 정치기구의 일부임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아나키스트 세계관의 핵심적인 문제는 엄격한 계급 분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고 유물론적 역사관에 기반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원칙'이 모든 권위에 대한 반대와 같은 추상적인 개념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보기를 들어만일 우리가 민족해방에 관한 아나키스트의 '원칙'을 고려한다면이러한 방법의 결핍이 우리를 어디로 안내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따라서 웨인 프라이스는 우크라이나의 "민족해방"을 위한 투쟁을 옹호하면서 바쿠닌의 말을 기꺼이 인용한다.

 

"국적은... 개인단체협회 및 지역이 자신 삶의 방식에 대한 양도할 수 없는 권리다그리고 이러한 삶의 방식은 오래되어 온 역사적 발전의 산물이다그렇기 때문에 나는 국가의 억압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억압받는 민족의 대의를 항상 옹호할 것이다." (아나키즘에 관한 바쿠닌, S. 돌고프, 1980; 블랙 로즈).

 

따라서 바쿠닌에게 아나키즘의 원칙은 개인지역 또는 국적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에 기초하고 있다이러한 접근 방식과는 다르게 맑스와 엥겔스는 항상 계급적 이해관계라는 기준을 적용했다민족해방을 위한 투쟁은 부르주아 투쟁이지만그중 일부는 여전히 진보적인 자본주의 체제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노동계급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그러나 이러한 조건은 자본주의의 쇠퇴가 시작되면서 근본적으로 바뀌었고이 시대에 모든 민족 투쟁은 반동적이고 근본적으로 노동계급에 반대하게 되었다.

 

아나코-생디칼리스트와 같은 다른 아나키즘 흐름은 노동계급의 이해관계에 따라 일관된 입장을 견지하는 경향이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이는 '진정한 아나키즘'의 '보편적 원칙'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할 뿐이다.

 

개인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에 관한 생각은 소부르주아지의 가장 급진적 파벌인 아나키즘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이는 자신을 코뮤니스트이자 노동자 운동의 일부로 여기는 흐름조차도 일반적으로 파업과 같은 집단적 계급 운동과 개별적인 자포자기 행위를 구별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는 이유 중 하나이다따라서 스티븐은 러시아(우크라이나는 아니지만)에서의 "전쟁반대 태업 행동"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며리브컴은 이러저러한 러시아의 신병 징집 센터를 폭파하는 등의 행동에 대한 수많은 글을 게시한다[이러한 대부분 글은 원래 집회(Assembly) 그룹에서 게시한 것으로다른 우크라이나 아나키스트의 전쟁 참여에는 반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쟁에 대한 계급적 저항을 구성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밝히고 있지 않은 것 같다].

 

19세기 후반 일부 아나키스트의 '모범적인 행동'이 더 광범위한 계급 운동을 촉발하는 데 기여했던 것처럼우리는 개인이 그러한 행동을 취하게 된 분노와 좌절은 이해할 수 있지만노동계급에는 그 어떠한 전망도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에서 셰르부크티어가 말한 것처럼 "일관된 국제주의자들은 소수에 속하며민족주의와 전쟁 열기에 사로잡혀 사기가 저하된 노동계급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이 전쟁에 대한 직접적인 계급 저항이 러시아에서 거의 또는 전혀 없다는 사실또는 노동자들이 실제로 민족주의와 전쟁 열기에 의해 지배되는 우크라이나에서 이러한 부분이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해서 국제주의자들이 할 말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우리는 국제주의적 메시지를 전파하기 위해 그리고 오늘날 우리의 목소리를 낼 뿐만 아니라국제 노동계급이 훨씬 더 공개적이고 결정적으로 전쟁의 문제를 제기할 미래에 대한 이정표를 세우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할 것이다.

 

2023년 3월 22

아모스(Amos)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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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국 아나키즘이 전쟁 열기에 굴복하다이 글은 아나키스트코뮤니스트그룹 웹사이트에도 게시되었지만, ACG는 이 글의 작성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2] 아나키스트연맹은 민족주의에 반대한다세계혁명(WR) 344호 및 345호에서 우리는 아나키스트연맹(AF)이 국제주의 아나키스트 전통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두 부분으로 구성된 글을 작성했다이러한 전통은 2017년 AF에서 분리된 아나키스트코뮤니스트그룹이 계승하고 있다분열의 주요 원인은 정체성의 정치로 보였지만당시 작성한 글 <아나키스트-연맹 분열에 대한 성찰>에서 우리는 국제주의라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는 것 같다고 지적하였다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러한 부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AF의 궤적은 정체성 정치에서 계급적 입장과 국제주의를 완전히 배신하는 것으로 순조롭게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영국의 국제주의 아나키즘에 대한 주석을 참조하라. 1영국의 국제주의 아나키즘에 대한 메모: (2)

[3] 원칙을 잊은 '아나키스트'. KRAS-IWA의 성명서

[4] 그러나 다른 곳에서 로자바와 아나키스트 공동체를 가장한 다른 준 국가 기업을 지지해온 유명한 아나키스트 좌파 웨인 프라이스가 알바트로스의 글에 "아나키스트는 전쟁 열기에 굴복하고 있는가"라는 답변의 글을 남겼다는 점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5] 우크라이나 아나키스트 아나톨리 두보빅에 대한 거짓말이 퍼지고 있다이 글은 이후 아브토놈에 의해 그 이유는 분명하지 않지만 삭제되었다.

[6] 각주 4를 참조

 

<출처>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7322/war-fever-internationalism-and-limitations-anarc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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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7호] 참가자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이끄는 위원회

참가자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이끄는 위원회

 

 

12월 2일 금요일프랑스에서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위원회의 첫 회의가 파리에서 열렸다.

 

전 세계에 걸쳐 이런 위원회가 존재하는 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30년 이상 된 것이다.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CW)’ 그룹을 만들려고 하는 생각은 1991년 제1차 걸프전에 대한 대응으로 영국의 아나키스트들 사이에서 처음으로 제기되었다이는 전쟁에 대한 반대를 평화주의의 막다른 골목으로 전환하는 것이 본질적인 기능이었던 자본의 좌파가 조직한 "전쟁을 멈추라"라는 동원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는 대응이었다실제로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라는 구호는 켄 로치의 1975년 시리즈 "희망의 날들"의 첫 번째 일화에서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군대에서 탈영한 사회주의 군인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평화주의자가 아니다나는 전쟁에서 싸우겠지만단지 중요한 전쟁에서 싸울 것이며그것이 계급전쟁이고이 모든 것이 끝날 때 일어날 것이다.“

 

새로운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TCW)’ 그룹은 1993년 유고슬라비아 전쟁과 1999년 코소보 전쟁, 2001년과 2003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공에 대응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할 수 있는 한우리는 부르주아 좌파에서 국제주의자에 이르기까지 매우 이질적인 진영을 함께 모으는 이러한 위원회에 개입했다.

 

코뮤니스트좌파의 또 다른 그룹인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도 2001년부터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TCW)’에 개입했다. CWO는 처음부터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보기를 들어 셰필드에서 그랬던 것처럼 새로운 그룹을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우리는 소방관철도 노동자그리고 스트라스클라이드의 운송 및 병원에서 노조 외부의 행동을 포함한 파업 행동이 상당히 많이 증가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는 우리에게 둘 사이의 연결고리를 보고 계급투쟁을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저항과 연결하고자 하는 세력들과 국제적으로 활동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을 제공한다[1].

 

관련하여, 2002년에 우리 ICC는 다음과 같은 글을 작성한 바가 있다.

 

"이것이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TCW)’가 계급투쟁의 부활이나 우리가 '가입'해야 하는 계급의 확실한 정치 운동의 전조라고 우리가 절대 생각하지 않는 이유이다기껏해야 자본주의 군국주의와 그에 수반되는 평화주의 적이며 이념적인 거짓말에 대해 질문하던 극소수의 기준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노동자의 힘'과 같은 좌파들의 반동적 공격에 대항하여 비록 제한적이지만 계급적 입장을 옹호하고(세계혁명」 250호 참조), 토론의 장으로서 집단의 중요성을 처음부터 주장하며, '직접 행동'과 이 그룹을 혁명 조직들과 일치시키는 두 가지 경향에 대해 경고한 이유였다."[2]

 

이러한 그룹에 대한 ICC의 개입 목적은 다음과 같았다.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원칙과 자본주의와 평화주의의 좌파로부터의 명확한 구분의 필요성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그리고 정치적 논쟁에 초점을 맞추고 실제로는 "전쟁을 멈추라"라는 시위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는 행동주의 경향에 대해 경고하기 위해서. 20년이 지난 지금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발발하면서이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그룹은 처음에는 글래스고에서그다음에는 영국의 여러 도시에서그리고 전 세계에서 때로는 아나키스트 조직의 주도로 다시 등장했다일부 다른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그룹은 ICT가 직접 출범시켰다.

 

국제주의 방어의 약화

 

12월 초에 우리는 파리에서 열린 첫 번째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회의에 참석했다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진정한 국제주의적 호소를 시작했다: "제국주의 전쟁에 맞서혁명가들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를 한쪽으로나토와 미국을 다른 한쪽으로 배치함으로써 세계정세를 변화시켰다두 번의 세계대전과 마찬가지로 국제주의 혁명가들은 제국주의 전쟁과 그 전선은 어떤 식으로든 가능한 한 포기해야 한다고 말한다전쟁과 민족주의에서 노동계급은 잃을 것이 없고 얻을 것도 없다그것이 직면한 진정으로 유일한 선택은 오로지 자신의 즉각적이고 장기적인 이익에 기초한 대안을 구축하려는 관점에서 제국주의 전쟁을 계급전쟁으로 바꾸는 것이다이 대안은 이미 전쟁 경제와 우리가 그것을 위해 해야 할 모든 희생에 대한 거부를 의미한다.“

 

우리는 이를 바탕으로 연락이 가능한 사람들이 이 회의에 참여하도록 독려했다.

 

회의 서두에서 의장단은 토론을 제국주의 상황에 대해서 분석하고 그 다음에 위원회가 채택할 행동 수단의 두 부분으로 나눌 것을 제안했다.

 

토론을 시작하기 위한 의장단의 소개는 모호함 없이 국제주의적 입장을 분명하게 유지했다또한현재의 제국주의 야만의 현실을 묘사했다.

 

그러나그것은 또한 우리가 공유하지 않는 관점인 세계대전에서 블록의 대립으로 이끄는 동력과 함께 일반화된 전쟁의 관점을 옹호했다.

 

전체 토론의 첫 번째 부분이 다소 혼란스러웠다일부 사람들은 제국주의 상황에 대한 논의를 단호히 거부했고그들은 제국주의 상황 분석에 대한 어떠한 노력도 시간 낭비로 거부했으며즉각적인 행동을 요구했다그들은 "이론적"이라고 간주하는 개입을 조롱하고말하는 사람들의 나이를 조롱했으며지난 세기의 역사적 언급에 대해 웃음을 터뜨리고다른 참가자들을 방해하는 말을 하기도 했다의장단은 반복적으로 토론에서 서로를 존중할 것을 요구했지만이는 실현되지 못하였다그 후 회의 참가자 중 일부는 토론이 한창일 때 떠나기로 했다.

 

"이론"에 반대하고 "즉각적 행동"에 찬성하는 이러한 분위기는 이 회의의 구성과 초대에 응한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분명하게 말해준다초대는 "함께 상황에 대해서 논의하고함께 할 수 있는 공동 행동에 대해 생각해 보자!"라는 말로 끝이 났다모든 국제주의적 계획은 고려하고 홍보할 만한 가치가 있다." 가능한 계획은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시위하고 우크라이나에서 싸우는 사람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러시아 탈영병들을 위한 숙소를 제공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공격하기 위한제안이 있었다. (어떻게설명할 수 없는...)

 

이는 우리가 첫 번째 개입에서 다음과 같은 것을 보여주어야 했던 이유이다.

 

■ 우크라이나 전쟁의 본질은 완전히 제국주의적이다노동계급은 자신이 주요 희생자인 이러한 대학살에 어느 한쪽의 편을 들지 말아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현실화한 자본주의 제국주의 전쟁의 현 단계는 인류의 멸종으로 이어지고 있다.

 자본주의를 전복하는 것을 통해서만 제국주의 전쟁을 끝낼 수 있다.

 전반적인 상황이 소규모 개인 그룹에 의해 수행되는 극적인 행동에 따라 바뀔 수 있다고 믿는 망상에 빠져 행동주의에 빠지는 것은 위험하다.

 이는 노동 대중의 의식적이고 조직적인 행동만이 자본주의의 야만을 종식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그것은 혁명가들이 역사의 중요한 교훈을 끌어낼 수 있게 됨에 따라 계급의식의 일반적인 발전에 기여하는 이러한 지속적인 과정에 참여하는 것에 관한 질문이다.

 

국제주의와 혁명가의 역할에 대한 이러한 타협 없는 방어는 확실히 충분하지 않았다반대로무엇보다도 이러한 논의의 첫 부분에서 나타난 것은 혼란국제주의 방어의 약화였다왜냐하면행동주의와 함께 노동자들이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위해 투쟁할 가능성을 지지하는 개입도 있었기 때문이다트로츠키주의 그룹인 마티에르 혁명의 대변인은 극좌파의 고전적인 테제를 옹호했다의장단은 강력한 반응을 자극하기는커녕 전혀 반응이 없었다이러한 민족주의적 입장을 비난하고 위원회가 왜 트로츠키주의 그룹을 특별히 초대했는지 묻는 일이 그 방의 누군가에게 일어났다이에 대한 답변으로 초대장을 보낸 ICT 성원 중 한 명이 머뭇거리면서 마티에르 혁명이 트로츠키주의라고 엄밀하게 말하지 않았다고 주장했고이는 그들의 성원들이 "그래나는 트로츠키주의자야!"라고 외치도록 만들었다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정말로 코믹한 상황이 아닐 수가 없다.

 

이러한 새로운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TCW)’ 위원회 출현의 원천인 ICT 성명은 11항에서 이 "국제적 계획"은 사회민주주의트로츠키주의스탈린주의 정치를 모두 거부하는 다양한 배경의 혁명가들에게 정치적 나침반을 제공한다고 명시하고 있음을 기억하자트로츠키주의 및 스탈린주의 정치는 어떤 것이 '악의 근원'인지 결정하는 기초 위에하나의 제국주의 또는 다른 제국주의를 노골적으로 편들고 제국주의 전쟁을 계급전쟁으로 전환할 필요성을 거부하는 평화주의를 지지함으로써 노동계급이 스스로 투쟁을 시작하는 것을 혼란스럽게 하고 무장 해제시킨다.“

 

우리는 이러한 "국제적 계획과 관련하여 그것을 더 좋게 말할 수 없었다실제로그것은 "노동계급을 혼란스럽게 하고 무장해제시킨다!

 

빈껍데기

 

우리의 첫 번째 개입에서우리는 또한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TCW)’ 계획에 대해서 우리가 주요하게 동의하지 않는 부분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1991, 1993, 1999, 2001, 2003년과 마찬가지로 노동계급이 전쟁에 대해서 많은 대응을 할 수 있거나이러한 위원회가 어떤 식으로든 표현하는 반응 또는 첫 번째 단계를 이미 제공하고 있다는 환상이 있다이 테제를 뒷받침하기 위해현재 일어나고 있는 모든 파업에 큰 중요성이 부여된다하지만 이것은 그들의 머리를 갸우뚱하게 한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에는 노동계급의 전투성이 약했다반면 민주주의 강대국들이 모두 직접 참여한 제국주의 야만성에 대한 진정한 반향이 있었다자본의 좌파 정당들이 유럽과 미국 전역에서 대규모 평화주의 시위를 조직하는 데 협력한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전쟁을 멈추라"는 슬로건으로 표현된 이러한 함정과 막다른 골목에 반대함으로써그들의 모든 혼란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TCW)’ 위원회는 적어도 좌파와 평화주의의 국제주의적 대안을 찾는 요소들로부터 오는 특정한 운동을 대표했다그리고 ICC가 이러한 위원회에 개입함으로써 가능한 한 멀리까지 추진하려고 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노력이었다한편, CWO는 계급과 이 위원회들의 잠재력에 대해서 환상을 갖고서 이들 그룹의 활동을 매개로 프롤레타리아트 내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늘날사회적 분노가 증가하고 계급의 전투성이 발전하고 있다영국에서 2022년 6월부터 계속되고 있는 파업은 국제적 차원에서 현재 우리 계급의 역동성을 가장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다그러나 이러한 투쟁의 원인은 전쟁에 대한 노동계급의 반응이 아니다이러한 파업을 유발하는 것은 경제 위기생활 조건의 악화물가상승 및 낮은 임금이다이러한 투쟁을 통해 노동계급이 "우크라이나와 우크라이나 국민을 지원한다"라는 명목으로 부르주아지가 요구하는 희생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그리고 이 거부는 우리 계급이 그들의 함정에 빨려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며우리가 아직 일반화된 전쟁을 향한 행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우리는 노동자가 아직 의식적으로 이 모든 연결고리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구체적으로 이러한 동력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번 파리의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회의 과정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단지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

 

이는 명목상의 "위원회"일 뿐이다실제로 이 그룹은 코뮤니스트좌파 국제그룹(IGCL)이라고 불리는 기생주의 그룹의 지원을 받은 ICT가 만들었다그 방에는거의 전적으로 그들의 대표자들과 이 두 그룹에 끌리는 몇몇 정치화된 개인들이 있었다. CNT-AIT 파리로빈 굿펠로(Robin Goodfellow), 마티에르 혁명, Asap, 그리고 몇 명의 개인일부 자율주의 성향, CGT 출신 또는 혁명적 생디칼리즘 출신이 있었다특정한 순서가 아닌트로츠키주의자아나키스트자율주의자스탈린주의자코뮤니스트좌파 성원. IGCL 스스로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ICT 성명이 시작되자마자프랑스에 있는 성원들과 우리 자신은 사실 지난 6월 파리와 다른 도시에서 있었던 시위 동안 전단을 통해 첫 번째 개입이 일어난 위원회를 구성했다."[3]. 그러므로 그것은 모두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완전히 인위적으로 설립된 것이다위원회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1989년에 우리는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시기는 노동계급 내 여기저기에서 투쟁위원회가 출현하는 것을 보게 된다는 글을 썼다이 현상은 1988년 초 프랑스 국유철도(SNCF)의 거대한 투쟁의 여파로 프랑스에서 발전하기 시작했다그 이후로 프랑스의 여러 부문(PTT, EDF, 교육보건사회보장 등)에서 전투적인 노동자들을 한데 모으는 여러 위원회가심지어 부문을 기반으로 점점 더 많이 구성되었다.

 

계급투쟁의 일반적인 발전과 그것이 창출하는 인식이 성숙하게 되는 징후로이 위원회들은 노동자들 사이에서 점점 더 넓게 느껴지고그들 자신의 계급 지형그리고 이것은 부르주아지(좌파정당좌파그룹그리고 무엇보다도 노조)에 의해 부과된 틀 밖의 것을 반영(과거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교훈을 끌어냄)하고 함께 행동하기 위해 (발생하는 모든 투쟁에 참여하기 위해재편성할 필요성에 봉착하게 된다.

 

그것은 1988년 가을의 투쟁 운동에 여러 차례 개입한 적이 있는 바로 그러한 위원회(다른 부문으로부터 공공 부문의 노동자들을 모아놓고 ICC가 정기적으로 개입한 '확대된 투쟁위원회')였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계급에 대한 삶과 구체적인 경험이 있었다분명히 혁명적인 조직은 이러한 위원회의 창설을 장려하고스스로 투자하고계급의 조직과 의식을 발전시키도록 그들을 밀어붙여야 하지만계급적 동력의 현실과 연계하지 않고 인위적으로 그것을 만들 수는 없다.

 

오늘날우리는 사회적 상황에 밀접하게 따라야 한다전쟁의 문제는 노동계급이 움직이는 출발점이 아니고 어떠한 투쟁위원회도 아니다반면에경제 위기의 악화와 생활 조건에 대한 지속적인 공격에 직면하여 노동계급의 전투력이 계속 발전하고 있는 것을 고려할 때토론회나 투쟁위원회의 구성은 정말로 가능하다그리고 혁명가들은 국제주의를 옹호함으로써 전쟁과의 연관성을 보여주기 위해 개입해야 할 책임이 있다게다가이는 코뮤니스트좌파의 모든 그룹이 이미 그들의 언론과 전단 배포로 하는 것이다만약 이 모든 집단이 합창하고 하나의 같은 국제주의 메시지를 함께 보낸다면이 목소리는 더 멀리 전달되고 훨씬 더 심오한 역사적 의미를 가질 것이다.

 

오노라토 데이먼 조직국제주의자 목소리, ICC가 의견 차이를 넘어 동일한 국제주의 유산을 옹호하고 전파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때, ICT는 코뮤니스트좌파 내에서 그러한 접근을 거부했다대신 기생주의 IGCL과 함께 토론토몬트리올파리에서 빈 껍질로 일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들을 위원회라고 부른다이 그룹은 트로츠키주의자자율주의자 및 아나키스트 그룹들과 함께 어떤 종류의 저항도 옹호하고 이것이 계급 내 국제주의적 기반의 확대라고 믿고 싶어한다.

 

1991년 이래로 같은 실수가 반복되고 있다맑스는 역사가 "첫 번째는 비극으로두 번째는 희극으로반복된다고 썼다실제로 회의장에서 누군가가 1991년 이후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경험에 대한 위원회의 평가가 어떠한지 세 번이나 물었다. ICT 성원인 의장단의 반응은 "그런 검토는 필요 없다고 밝히고 있다그것은 파업과 같으며그들은 그것이 다시 일어나는 것을 막는 데에 실패하게 된다계급 전체와 마찬가지로 혁명가들은 분명히 정반대의 행동을 해야 한다항상 과거의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기 위해서 토론해야 한다. 1915년 로자 룩셈부르크[4]는 "무자비하고 가혹한 자기비판사물의 근원에 도달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 운동이 그것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공기이자 빛이다."라고 말했다따라서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의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음으로써 ICT가 실수를 직접 바라보는 것을 시작하게 할 것이다.

 

이는 우리의 두 번째 개입이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고 방에 있는 한 사람이 코뮤니스트좌파의 국제주의 깃발을 더럽힐 뿐만 아니라 혼란을 확산시킬 뿐인 명목상의 위원회는 이러한 재편성에서 원칙의 부재를 강조할 때 그것을 종파주의의 형태로 보고 오해를 한 것이다.

 

재난을 초래하는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책략

 

이 회의에서 의장단의 ICT 성원은 코뮤니스트좌파 세력이 고립되어 "우리끼리 대화"하는 것으로 전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위원회가 홀로 있지 않게 만들고 계급 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기 위하여 실질적인 원칙이나 근거 없이 재편성을 요구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여러 차례 반복했다.

 

이것이 가장 순수한 기회주의의 인정이라는 사실을 넘어 - "저는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누구나 그리고 모든 사람과 친구가 될 것이다" - 그리고 이 "영향력"이 환상적이라는 사실을 넘어이 단어들은 무엇보다도 ICT가 이러한 위원회를 만들고자기 자신과 계급 사이에서 "중개자"로 그들을 도구로 활용하려는 실제 동기를 드러낸다.

 

2001년 영국의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TCW)’ 위원회에 가입했을 때 이미 그러한 일이 있었다이미 2001년 12월에 우리는 계급의 지지를 얻고 심지어 투쟁을 "조직"하기 위하여[6] "당의 기구"로 규정된 "공장 그룹들"의 국제코뮤니스트당(현재 ICT에 소속된 이탈리아 그룹)이 개발하고 나중에 CWO가 채택한 생각에 반대하기 위해 "토론 그룹의 방어"[5]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우리는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계획이 1920년대 "볼셰비키화단계에서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이 옹호하고 이탈리아 코뮤니스트좌파가 강하게 반대했던 정치조직의 기반으로서의 공장 그룹의 개념에 대한 퇴행이라고 믿는다최근 공장 그룹이라는 개념이 영토 그룹그다음에 전쟁 반대 그룹의 형성을 요구하는 것으로 변형되면서 실제로 내용이 아니라 그 형태가 바뀌었다.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가 전쟁에 대항하는 계급 저항의 조직적 중심이 될 수 있다는 CWO의 생각은 자본주의 쇠퇴기에 계급의식이 어떻게 발전하는지에 대한 특정한 오해를 담고 있다물론정치조직 자체와 함께직장 투쟁과 자본주의 전쟁에 반대하여 더 많은 비공식 그룹이 형성되는 경향이 있지만코뮤니스트 정치조직에 속하지 않는 그러한 그룹은 자신을 명확히 하고 계급에서 이러한 명확성을 전파하고자 하는 소수의 표현으로 남아 있으며자신을 대체하거나 더 넓은 계급 운동의 조직가인 척할 수 없으며우리는 ICT의 입장이 모호한 채로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위원회를 인위적으로 만드는 ICT의 현재 관행은 재앙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그것은 코뮤니스트좌파가 옹호하는 국제주의에 대한 혼란을 일으키고코뮤니스트좌파와 자본의 좌파 그룹 사이의 계급 경계를 흐리게 하며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소수의 연구하고 성찰하는 활동가들의 에너지를 막다른 골목으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10년이 지난 후에도 ICT에 의해 행해진 이 모든 모험은 항상 재앙으로 이어졌고계급적 입장을 찾기 위해 소수를 분비하는 현재 프롤레타리아트의 엄청나게 어렵고 가치 있는 노력을 좌절시키거나 낭비했다.

 

따라서우리는 ICT에 다시 한번 공개적으로 코뮤니스트좌파의 다른 모든 그룹과 협력하고프롤레타리아 깃발을 올리기 위해 함께하고코뮤니스트좌파의 전통을 옹호하고 유지할 것을 촉구한다.

 

2023년 1월 11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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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쟁 운동에 반대하는 코뮤니즘

[2] "혁명적 개입과 이라크 전쟁", 세계혁명」 264

[3] 파리에서 열린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위원회의 공개회의

[4] 1915유니우스 팸플릿

[5] 세계혁명」 250

[6] ICT가 몬트리올에서 IGCL과 함께 만든 위원회의 행동에 대해 발표한 보고서는 이 주제에 대해서 발표하고 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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