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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5호] 로자 룩셈부르크는 사회민주주의자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 혁명가이다!

  • 로자 룩셈부르크는 사회민주주의자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 혁명가이다!

     

     

     

    “위대한 혁명가들은 살아생전에는 억압계급의 끊임없는 탄압을 받았고, 그들의 이론은 허위와 중상모략에 가득 찬 가장 야만적인 적의와 가장 표독스러운 증오 그리고 가장 파렴치한 구호로 대접을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이 죽은 이후에는 천진스러운 우상으로 변질되어 신성시되거나 결국에는 대부분 그들의 명성이 피억압계급을 회유하는 데 쓰이는 "위안"으로, 또는 후세에 기만하는 수단으로 숭배되는 등, 음모의 대상이 된다. 그와 동시에 그들의 혁명적 이론은 그 혁명적 본질을 빼앗기고, 혁명적 이론이 지니는 무기로서의 예리함은 무디어지고 통속화되고 만다. 오늘날 부르주아지와 노동운동 내의 기회주의자들은 위와 같은 마르크스주의의 변조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 (레닌, 국가와 혁명, 1917)

     

    1919년 1월 15일, 로자 룩셈부르크는 자유 군단(Freikorps)에 의해, 투쟁의 동지 칼 리프크네히트와 함께 암살되었다. 이 병사들은 "사냥개가 필요하다면 내가 될 것이다"! 라고 선언했던 독일 사회민주당(SPD) 당원 노스케 장관의 명령을 받고 있었다. 베를린에서 봉기한 노동자들의 유혈진압을 진두지휘했던 것도, 국제 노동자 운동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을 암살한 것도 권력을 잡은 그 사회주의자 당(독일 사회민주당)이었다.

     

    이 끔찍한 살인은 로자 룩셈부르크에 대한 일련의 중상모략을 통해 오랫동안 준비되었다. "붉은 로자", "선동자 로자", "피의 로자", "차리즘의 첩자 로자"... 로자 룩셈부르크에 대한 거짓 비난이 그치지 않았고, 베를린에서 "피의 주간" 이었던 1918년 말 / 1919년 초에는 학살에 대한 요구가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로자 룩셈부르크를 살해하고 나서 불과 몇 달 후, 부르주아지와 노동자 운동의 기회주의자들은 그를 신성시하고, 그의 혁명적인 내용을 제거하고, 비하하고, 그리고 이 날카로운 혁명가를 무디게 하려고 그를 천진스러운 우상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그들을 위해서 로자 룩셈부르크는 원래 모습이었던 전투적이고 모범적인 혁명가로 남아있어서는 안 되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일종의 평화주의자 그리고 페미니스트 민주주의자로 잘못 전해져, 두 번 살해되어야만 했다. 이것이 혁명을 위해 이 위대한 투사를 “명예 회복시키는”(즉, 다시 회복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최근 몇 십 년간의 “기억”이라는 작업의 진정한 목적이다.

     

    룩셈부르크와 레닌의 투쟁을 왜곡시키기 위한 꾸준한 캠페인

     

    1930년대 프랑스의 예를 들면, 루시앙 라우렛(Lucien Laurat) 주변에서 발전한 모든 흐름은 민주주의의 유혹에 점점 더 양보했고, 이윽고 “볼셰비키 혁명” 처음부터 혁명 계획의 “과실” 안에 “벌레” 레닌이 있었다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이 주장은 논리적으로 1936-39년의 스페인 전쟁에서 공화군을 위한 변명이 되었고, 파시즘에 대항하는 싸움이라는 구실로 제2차 세계 학살에 노동 계급을 용기병으로 참가하게 하는 변명이 되었다. 그것은 스페인의 POUM(스페인의 맑스주의 통합 노동자당 : 역주)과 그들, 민족 저항세력의 “영웅주의” 안 트로츠키주의자들을 지지했다. 이 구역질이 나는 민주주의 선전은 스파르타쿠스 기관지 설립자인 르네 르페브레(Rene Lefeuvre)와 같은 인물들을 거치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발작을 한다. 나중에 그는 로자 룩셈부르크 저작집[1]에서 완전히 이데올로기적인 머리말을 썼는데, 그것의 1946년 제목인 ‘독재에 반대하는 맑시즘’(로자 룩셈부르크는 절대 그 제목을 쓰지 않았다!)은 이 혁명을 위한 투사를 볼셰비즘에 근본적으로 적대적이라고 묘사했는데, 이는 역겨운 거짓말에 불과하다. 저작집 서문에서 르페브르는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 “모든 위대한 맑스주의의 저명한 이론가들: 칼 카우츠키, 에밀 반데벨드, 루돌프 힐퍼딩, 칼 레너, 조지 플레하노프는 – 그리고 말하는 김에 우리 또한 – 로자 룩셈부르크처럼 레닌의 전체주의적 교조가 맑스주의의 원칙에 완전히 반대된다고 비판했다.”

     

    스탈린은 레닌을 박제화했으며 그의 사상을 끔찍한 교리로 왜곡했다. "피의" 로자 룩셈부르크는 일종의 민주주의의 성인이 되었다. 스탈린주의 반혁명은 빠르게 두 개의 새로운 타락하고 상호 보완적인 이데올로기를 형성시켰다 : 한쪽은 매력적인 “룩셈부르크주의” 그리고 다른 쪽은 혐오스러운 "맑스-레닌주의". 정말 동전의 양면 또는 오히려 같은 결과를 가져올 함정으로 향하는 두 입구 : "피에 굶주린" 볼셰비키를 거부하고 "평화주의자" 로자로 묘사되는 인물을 존경하는 것은 철창 안의 사자를 존경하는 것과 같다.

     

    1974년 서독(FRG)에서, 그들은 심지어 로자 룩셈부르크의 이미지를 담은 우표를 발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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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레타리아트와 혁명 조직에 반대하는 새로운 캠페인

     

    동유럽의 붕괴와 소련이 사라진 후, 이 광대한 이데올로기적 캠페인은 다시 발굴되었고,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함께 부르주아지가 열광적으로 선언한 이른바 “공산주의의 죽음”을 부양하기 위해 확대되었다. 여기에서 공식 이데올로기는 역사의 가장 큰 거짓말로, 공산주의와 스탈린주의를 같은 것으로 여기는 사기를 목표로 했다. 그것은 지배 계급의 손에 있을 때 특히 효과적인 이데올로기적 무기이다. 왜냐하면, 1990년대 이후 프롤레타리아트가 자신을 하나의 사회적 세력으로 여기고 그 의식과 조직을 발전시키는데 수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는데, 이제 그 자신의 과거로부터 단절되어 정체성을 잃고, 스스로 어디서부터 왔는지 또는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공산주의가 스탈린주의라면, 결국 실패한 공포였다면, 왜 그것을 위해 투쟁할까? 결국, 스탈린주의의 재앙으로 귀결될 뿐이라면 왜 노동자 운동의 역사를 공부하는가? 부르주아지가 우리의 머릿속에 집어넣고 싶어 하는 것이 바로 이 논리이며 독이다!

    그리고 로자 룩셈부르크를 평화주의자,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독재", "스탈린의 정신적 아버지"인 레닌의 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이 비열한 선전에서 가장 악질적인 부분 중 하나이다. 그들이 그것을 의식하든 안하든, 이 가짜 싸움에 참여하는 사람은 노동계급에 반대하여 싸우는 것이다.

     

    오늘날 유럽 전역과 세계 도처에 걸쳐 서점 및 가판대와 블로그, 포럼에서는 전투적인 로자 룩셈부르크의 이미지를 다시 왜곡시키기 위해 새로운 구역질이 나는 선전이 다시 떠오르고 있다. 그리하여, TV 프로그램에서부터 로자 룩셈부르크는 다시 "여성"과 "평화"의 특성만을 가진 사람으로 등장한다. 아주 유명하고 명성 있는 신문 르몽드는 2013년 9월, ESCP 유럽의 교수인 장-마크 다니엘(Jean-Marc Daniel)이 쓴 글을 다음과 같이 잘 연상되는 제목으로 게재했다 : “로자 룩셈부르크, 맑스주의자-평화주의자” “맑스주의자”와 “평화주의자”라는 단어의 결합은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 지배 계급에 대항한 “진짜 맑스주의자”가 봉기와 자본주의의 전복을 포기하고 계급 전쟁으로부터 이탈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동문학을 포함하여 수많은 책이 지금 로자 룩셈부르크를 다시 볼셰비키와 “독재자” 레닌의 완고한 적으로 묘사하면서 출판되고 있다. 사회비판그룹의 “룩셈부르크주의자”인 민주적 역사학자들의 후원 아래 파리에서 있었던 것처럼, 회의와 토론들이 여기저기서 조직되었다. 예술계에서조차 2014 MAIF 상은 "로자 룩셈부르크"를 기획한 조각가 니콜라스 밀헤(Nicolas Milhe)가 수상했다! 이것은 간단히 말해 그녀가 혁명의 반대자로서 러시아 혁명, 볼셰비키에 대한 투쟁에서 그녀의 동지에게 반대했다는 조건으로 로자 룩셈부르크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천진스러운 우상"으로 그녀를 변환시키기 위한 로자 룩셈부르크의 재조명은 거대한 이데올로기 중독 사업이다. 그것은 프롤레타리아트는 세계적인 공산주의 사회가 아니라 더욱더 "민주적인"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는 생각을 주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공산주의 흑서(Black Book of Communism)의 가증스러운 선전 후에는 매우 진지하고 공식적으로 학교 프로그램에서 배운 볼셰비키의 적으로서 여기는 것이 이제부터는  룩셈부르크의 생각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부르주아지를 위한 이해관계는 민주적인 부르주아지를 방어하는 것 외에 다른 미래가 없다는 것으로 가장 비판적이고 반항적인 구성원을 설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왜곡 배후에 불신과 혁명 조직을 악마화하는 또 하나의 말 하지 않는 목적과 함께 모든 종류의 민주주의자들이 로자 룩셈부르크를 재조명하는 캠페인이 있다.

     

    2014년11월 7일

    국제코뮤니스트흐름 (International Communist Current)

     

     

    [1] “사회주의 조직의 문제”(1904), “대중과 지도자”(1903), “비판의 자유와 과학의 자유”(1899).

     

    <원문 출처>

    http://en.internationalism.org/icconline/201505/13055/rosa-luxemburg-belongs-proletarian-revolution-not-social-democra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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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5호] 로자 룩셈부르크의 복원을 위하여

  • 로자 룩셈부르크의 복원을 위하여

     

     

     

    올해는 러시아에서 최초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이고, 2년 뒤에는 로자 룩셈부르크가 내부의 적들에게 살해된 지 100년이 된다.

     

    우리는 100년이 지난 지금 로자 룩셈부르크를 '평화주의자', '페미니스트 민주주의자'로 왜곡시켜 다시 한 번 살해한 세력에 맞서 싸워야 한다. 그들은 바로 부르주아와 노동자 운동 내의 기회주의자들이다. 그들은 모든 종류의 (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과 함께 로자 룩셈부르크를 '민주주의의 성인'으로 둔갑시키는 더러운 선전과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우리는 이 모든 시도에 맞서 로자 룩셈부르크가 그 시대에 싸웠던 것보다 더 본질적이고 단호하게 싸워야 한다. 그것은 로자 룩셈부르크를 프롤레타리아 혁명가 원래의 모습으로 돌려놓는 일이며, 이 시대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위한 일이다.

     

    우리는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작업을 지지하며, 이 위대한 투사를 한국의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소개하는 작업에 동참할 것이다. 그 일환으로 국제코뮤니스트흐름에서 작성한 '로자 룩셈부르크의 독일사회민주당의 위기 “유니우스 팸플릿” 한국어판 서문'을 소개한다. "유니우스 팸플릿”은 사회실천연구소의 '실천'에 처음 한국어 번역본을 실었고, 국제코뮤니스트흐름에서 독일어 원본을 번역하여 웹사이트에 게시했다. 원래는 출판을 통해 이 팸플릿을 한국에 소개하려고 했으나 우리의 문제로 계속 미루어졌고, 결국 온라인에 먼저 공개하기로 했다. 이 번역본이 독자들의 참여와 교정 제안을 통해 원본의 느낌에 가깝게 개선되기를 바라며, 한국의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소개될 수 있도록 출판 작업을 서두를 것이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1차 세계대전 발발 이듬해인 1915년 4월 옥중에서 쓴 이 글을 썼다. 그 후 이글은 국제사회민주당의 임무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부록으로 하여 1916년 1월 유니우스라는 가명으로 스위스 취리히에서 처음 출판되었다. 이 번역의 원본은 베를린 디이츠 출판사가 1974년 펴낸 로자 룩셈부르크 저작선집 제4권(1914년 8월부터 1919년 1월까지), 51쪽부터 164쪽이다. 역자의 번역 의도는 되도록 많은 이들이 로자 룩셈부르크의 통찰이 빛나는 이 글을 한국어로 접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미흡한 점이 많은 상태지만 지금 이렇게 공개하게 되었다. 로자 룩셈부르크의 독일어 원본의 맛이 완전히 전달되기는 불가능하더라도, 앞으로 독자들의 많은 충고와 교정제안을 통해 이 한국어 번역본이 차츰 더 다듬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메일: http://ko.internationalism.org/contact)

     

    이 글은 모두에게 열려 있으며, 단지 퍼갈 때는 가능하면 출처를 밝혀, 원한다면 모든 읽는 이들이 번역본의 개선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또 개선된 번역본을 접할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사회민주당의 위기(유니우스팜플렛) - 로자 룩셈부르크, 역자 노트, 국제코뮤니스트흐름,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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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5호] 코뮤니스트의 운명

  • 코뮤니스트의 운명

     

    고 남궁원 동지의 3주기를 기억함

     

     

    詩 조성웅

     

     

    이름 없이

    한 명의 코뮤니스트가 사라지는 것이

    유독 슬픈 것만은 아니다

    그의 생이 온통 프롤레타리아트의 곁이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도록 눅진한 날이었으나

    그는 좀처럼 비 개인 맑은 하늘을 포기 하지 않았다

     

    곁을 내어주고 난 그의 빈 몸에

    비 개인 맑은 하늘처럼 채워지는 코뮤니즘의 길

     

    남궁원 동지의 몸은 이미 저승으로 저물었으나

    그가 남긴 웃음은

    혁명정당 강령의 첫 번째 문장 같았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곁이 되고 그 웃음에 베어드는 일,

    낮은 곳에서 솟구치는 외침은 죄다 그의 문장이었다

    조용조용 들어주는 그의 문장, 문장들

    토닥토닥 토닥여 주는 그의 문장, 문장들을 거치면

     

    아물지 않는 것이 없고

    견디지 못할 것이 없고

    해내지 못할 일이 없다

     

    이름 없이 계급투쟁을 살고

    이름 없이 혁명을 살고

    이름 없이 사멸하는 국가와 함께 사라지는 것은

    코뮤니스트의 운명,

    가장 빛나는 전망이다

     

    가장 빛나는 전망

    남궁원 동지여!

    더 할 수 없는 명예여!

     

     

     

     

    남궁원 동지와 함께 걸어온 길을 회고하면서

     

     

    지금까지 맑스주의 운동과 코뮤니스트 운동을 함께 걸어온 그 어떤 동지들보다 남궁원 동지는 나와 가장 가까운 동지였다. 나는 그가 의식불명으로 투병하는 동안, 그리고 마침내 우리 곁을 떠난 후 거의 몇 개월 동안 밖에 나가지 않고 멍하니 앉아 있거나 술잔을 비웠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할 일을 너무 많이 남겨두고 먼저 간 동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그의 운동이 나의 운동이고 우리의 운동이었음을 더듬어보자. 1991년 내가 젊은 동지들과 민중당을 탈당하고 민중회의를 만들었을 때 남궁 동지는 은평 지부에서 활동했는데, 항상 그의 손에는 책이 들려있었다. 그는 현장에서는 몸을 사리지 않는 저돌적 투사였지만 늘 폭넓게 책을 읽고 교조적이지 않게 운동의 미래를 새롭게 모색하는 이론가이기도 했다. 그 후 그는 2013년까지 22년 동안 쉬지 않고 흔들림 없이 혁명적 맑스주의자, 코뮤니스트의 길을 걸어왔다.

     

    우리 운동에서 획기적인 결절점은 2002년 「노동자의 힘」에서의 탈퇴였다. 민중당 탈당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선거에 대한 입장이 문제였다. 노동자의 힘의 다수안은 민중 진영 경선을 통한 선거 참여이었고, 우리의 소수안은 선거불참 그리고 대중투쟁을 통한 사회주의(혁명)당 건설 계획안이었다. 노동자의 힘을 포함한 공개 중도주의 세력, 반합•비합 혁명적 사회주의 세력과 대선 이후 함께 당을 건설하자는 안이었는데, 총회에서 열 몇 표 차로 부결되었고, 남궁동지와 나를 비롯한 몇 명 동지들은 노동자의 힘을 탈퇴하고 「사회주의정치연합」을 만든다.

     

    그 이후의 우리의 활동은 지금까지 일관되게 혁명적 맑스주의 운동, 그리고 코뮤니스트 운동으로 이어졌고, 활동도 그 운동을 위한 구체적인 내용으로 채워졌다. 2004년 사회이론 연구소 「빛나는 전망」, 「빛나는 전망 출판사」, 노동자평의회를 향한 전국모임 참여, 2005년 「혁명적 맑스주의자 모임」 제안, 2006년 「혁명적 맑스주의자 국제대회」 개최, 2008년 「사회주의 노동자 연합」, 그리고 그 후 「사노위」, 「노혁추」, 「국제코뮤니스트전망」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늘 함께 했다.

     

    같은 방향과 원칙을 가지고 같은 길을 걸어오면서도 남궁 동지와 나는 노선을 둘러싼 토론과 논쟁을 자연스럽게 이어갔다. 「사정연」에서는 당에 대한 세미나를, 「노동자평의회 모임」에서는 노동자 평의회와 유럽 코뮤니스트 운동 역사에 대한 세미나를 하면서, 그리고 안톤 판네쿡의 「노동자평의회」와 여러 관련 책을 출간하면서 당과 평의회의 관계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남궁 동지는 좌익공산주의계열 가운데 독일, 네덜란드 등의 평의회주의자의 입장을 강하게 가졌던 것으로 보였다. 그의 눈으로 보면 나는 당주의자 또는 레닌주의자로 보였을 것이다.

     

    논쟁은 뒤풀이로 이어지고 계속되었는데, 그 시기 그는 몇 번 나에게 운동을 그만두겠다고 했고, 며칠 동안 연락이 끊긴 적도 있다. 그러나 이 논쟁도 오래가지 않았다. 당과 평의회가 대립하지 않고 혁명의 총체적 과정에서 변증법적으로 결합되고 그 이후 결국 당이 소멸되는 것이라는 좌익공산주의의 입장으로 진전되면서 해소되었다.

     

    그 후 남궁 동지는 좌익공산주의의 원칙과 입장을 알리고 설명하는데 앞장섰다. 앞으로 출간될 그의 「글 모음집」을 보면 그의 입장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진정한 코뮤니스트 남궁 동지를 먼저 보낸 것도 안타깝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술 마시며 논쟁하는 진정한 술동무를 잃은 것도 슬프다. 같이 술잔을 기울이지 못하지만 남궁동지를 늘 안주상에 올리고 이야깃거리를 삼을 테니 섭섭해 하지 말기를!

    투쟁, 여기가 로두스다.

     

     

    사회실천연구소오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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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5호] 남궁원이 부른다 '청계천 8가'에서 '인터내셔널'까지

남궁원이 부른다

'청계천 8가'에서 '인터내셔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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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여름 남궁원 동지가 떠난 지 3년이 되었고, 그의 코뮤니스트 정신을 계승하는 동지들은 3년간의 추모를 마무리하고 제대로 된 계승과 실천을 위해 추모집을 발행했다.

 

올해는 그와 함께했던 운동을 평가하는 토론회('남궁원과 사회주의' 토론회)를 개최하여 코뮤니스트 운동의 전망과 실천을 모색하기로 했고, 그 결과를 담은 유고집을 발행할 계획이다.

 

지난 3년간 남궁원 동지를 추모했던 모든 과정은 단순한 연례행사가 아니라 코뮤니스트의 삶을 살고자 했던 남궁원 동지를 기억하고 그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코뮤니스트 정치 운동이자 추모 문화였다. 그러나 아직 코뮤니스트 문화라 하기에는 많이 부족하기에, 앞으로 더욱 원칙적으로 코뮤니스트 추모문화를 정립해 나갈 것이다.

 

'코뮤니스트의 삶과 죽음이란 무엇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우리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기를 바라며 이 추모집을 소개한다. 또한 <코뮤니스트>의 창간에 가장 크게 기여한 남궁원 동지를 기리며 추모집 글 몇 편을 여기에 싣는다.

 

 

 

코뮤니스트 남궁원 동지 추모집을 발간하며

 

 

남궁원 동지가 우리 곁을 떠난 지 3년이 지났습니다. 아직 그를 잊지 못하는 사람, 그가 필요한 사람, 그를 편히 보내지 못한 사람, 그를 계승하겠다는 사람, 아직도 3년 전에 머무른 사람...

 

동지를 추모하고 계승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충분히 흘렀지만, 우리는 아직 어느 것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동지를 편하게 보내주려 합니다. 남궁원 동지를 그리워하며 실컷 울고, 그에게 못다 한 말도 모두 전하고, 그와 함께했던 모든 시간을 이제 아프기만 한 기억이 아니라 그립고 아련한 기억으로 남기려 합니다.

 

이제 그를 기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동지가 남겨준 과제와 이루어나갈 세상을 위해 제대로 계승하며 실천하겠습니다.

 

코뮤니스트 남궁원 동지 계승사업회에서는 남궁원 동지의 3주기를 기하여 유고집을 발간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추모집은 남궁원 동지의 인간적인 삶과 그와 함께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추모의 마무리입니다. 가을에 발간될 다음 유고집은 남궁원 동지가 펼쳐 온 운동을 재구성하고 평가하여 현실에서 실천하기 위한 계승의 시작입니다.

 

이 추모집을 통해 함께 하는 동지의 소중함을 느끼기를 원합니다. 운동하는 사람이 운동만큼 가족에도 충실하기를 원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를 갖기를 원합니다. 자신의 운동과 신념에 대한 진심을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이 작은 책이 코뮤니스트로서 험난한 길을 걸어갔던 남궁원 동지에게, 누구보다도 따뜻하고 정이 많았던 사랑하는 가족 남궁원에게, 혁명을 꿈꾸고 예술을 사랑하고 고독마저 즐겼던 남궁원 자신에게 온전히 전해져서 이제라도 환하게 웃으며 우리에게 손짓하길 원합니다.

 

남궁원 동지가 못다 부른 노래는 우리가 언제까지나 함께 부르겠습니다.

 

2016년 7월

 

코뮤니스트 남궁원 동지 계승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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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5호] 대대적 촛불 투쟁, 주체 그리고 자극(inspiration)

대대적 촛불 투쟁, 주체 그리고 자극(inspiration)
 
 
1. 대대적 촛불 투쟁의 배경과 전개
 
1) 언론의 박근혜 게이트 보도와 촛불 투쟁의 점화
 
- 박근혜를 파면시키는 데까지 나아간 촛불 투쟁에서 언론의 역할은 특별했다. 촛불 투쟁 이전에도 자유주의-진보 언론으로 지칭되는 한겨레, 경향, 뉴스타파, 미디어오늘, 오마이뉴스, 고발 뉴스 등의 매체는 박근혜 정부의 여러 문제를 꾸준히 파헤치고 비판해왔다. 하지만 이들의 영향력은 크지 않았고, 정치적으로도 분명한 한계를 갖고 있었다.
박근혜 게이트는 오히려 보수-반동 언론의 상징인 조선일보가 먼저 최순실 문제를 언급하면서 수면에 떠올랐고, 종편인 JTBC의 보도로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다. 조선일보는 청와대의 역습에 잠시 주춤했다. 하지만 10월 24일 JTBC의 최순실 태블릿 PC 보도 이후 최순실의 국정개입 사태가 이슈화되자 다시 공격을 시작한다. 이때부터 점화되기 시작한 촛불 투쟁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거대하게 퍼져간다.

- 이러한 대폭발과 분노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었던 보수언론과 종편들은 서로 경쟁하듯이 촛불 집회를 중계했고, 박근혜 게이트 폭로에 전 방위적으로 나선다. 박근혜 정권의 추락과 촛불 투쟁이라는 예상치 못한 정세에 맞닥뜨린 언론은 재빠르게 촛불 민심에 맞춰 박근혜 게이트 폭로에 앞장섰다. 하지만 그들은 촛불 투쟁이 사회혁명으로까지 발전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대중의식과 행동이 급진화하지 않도록 촛불 집회를 질서와 평화 집회라는 틀에 가두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여기에는 자유주의-진보 언론과 보수-반동 언론이 따로 없이 한목소리를 냈다.
국회의 탄핵 가결 이후에는 비판과 지지의 수위는 다르지만, 박근혜 정부의 정책을 유지하는 황교안 체제의 안착과 대선 국면으로의 전환을 자연스럽게 유도했다.
 
- 10월 29일 첫 집회를 시작으로 촛불의 행렬은 (주최 측 추산) 한 달 만에 200만을 넘어섰고, 작년 연말엔 연인원 1,000만을 넘기며 폭발하여,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파면 결정까지 1,500만 명을 넘는 인원이 참가하는 역사를 만든다. 언론보도 때문에 점화된 촛불 투쟁은 기성 언론에만 의존하지 않고 거리와 광장에서 직접 소통했다. 온라인에서도 다양하고 풍부하게 소통하면서 스스로 진화했다.
촛불 투쟁에서 나타나고 있는 열린 정보 공유, 쌍방향 소통, 수평적 토론, 독립적 판단과 행동 등 새로운 ‘대중적 소통’이야말로 1,500만 촛불이 (보수반동) 언론권력을 넘어설 힘이자 가능성이다.
 
 
2) ‘퇴진행동’이 주최했지만,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확산된 촛불 투쟁
 
“대다수 언론이 의도적으로 10월 29일부터 퇴진행동이 집회를 시작한 것처럼 보도하지만, 실제 이날 집회는 민중총궐기투쟁본부가 발의하고 주최한 집회였다. 좀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당일 집회를 민중총궐기투쟁본부가 주최할 것인지를 두고 자발적 시민참가를 방해할 수 있다며 주최 없이 가자는 제기에 맞서 논쟁한 결과였다. 이날 이후 첫 1백만 명이 넘어선 11월 12일 집회까지 민중총궐기투쟁본부는 퇴진운동의 커다란 밑거름이 됐다.”1)
 
“흐름과 주체역량을 살펴보면 약 일 년 이상의 기간을 통해 500여 개의 단체로 구성된 ‘민중총궐기 투쟁본부’가 결성되어 퇴진을 내걸고 ‘민중총궐기’를 준비하였고, 최순실 게이트 이후 제 시민사회단체 약 1,500개가 모여 ‘박근혜 정권 퇴진 국민 행동’이 결성되었으며 이후 민주당을 비롯하여 범야권도 뒤늦게 위와 같은 분위기에 편승하고 있다.”2)
 
- 2016년 10월 29일 ‘민중총궐기투쟁본부’가 주최했던 첫 번째 촛불 집회를 시작으로 박근혜 게이트에 분노한 대중들은 집회의 주최가 누군지 굳이 따지지 않고 거리로 광장으로 끊임없이 몰려들었다. 집회의 명칭도 시민촛불, 민중총궐기, 범국민행동, 부문별, 지역별, 주최 별로 다양했지만, 대중들은 개의치 않았다. ‘박근혜 퇴진’을 위한 ‘촛불 집회’라는 것에 동의해 자발적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 이에 고무된 약 1,500개의 시민사회단체는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하 퇴진행동)’을 결성한다. 2016년 11월 12일 개최된 ‘민중총궐기-범국민행동’ 이후 ‘퇴진행동’은 지난 2017년 3월 11일 ‘20차 범국민 행동의 날’ 촛불 집회까지 4개월 넘게 ‘서울 집중 집회’와 ‘전국 집회’ 등 수십 번의 촛불 집회를 개최했다.
이번 촛불 집회는 ‘퇴진행동’이 기획하고 주최했지만, 수십만 명을 넘는 인원이 지속해서 참가한 것은 단체의 조직력보다 개별(가족, 친구, 혼자) 단위의 자발적인 참가가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이다. 개별 참가자들이 많다는 것은 대규모 집회 참가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언론보도를 보고 스스로 판단해 참가한 사람들이 많아 시차를 두고 분노한 사람들이 꾸준히 모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 집회 참가자 중 상당수가 처음 참가한 집회였지만, 이들의 분노는 ‘박근혜 (즉각) 퇴진’을 외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구체적인 방법과 대안까지는 모르지만 ‘박근혜가 물러날 때까지 촛불 집회가 지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촛불 투쟁의 확산은 바로 이러한 ‘분노’와 분노를 표출할 ‘광장’과 광장에서 주장해야 할 ‘목표’가 누구에게나 명료하게 보였고, 그것을 ‘촛불 집회’가 실현해 줄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촛불 투쟁의 유지와 확산에 '퇴진행동'이 기여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집회 주최 측은 촛불 투쟁의 발전 가능성인 ‘분노’와 ‘광장’과 ‘목표’를 제한 없이 열어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통제하고 가두는 역할도 했다. 촛불 투쟁을 통해 광장의 직접민주주의를 확장하고 나아가 촛불을 넘어선 다수의 혁명으로 발전시키는 갈림길에서 퇴진행동이 그 계기를 막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3) 대대적 촛불 투쟁의 배경
 
- 촛불 투쟁이 사상 초유의 규모로 분출한 계기는 박근혜 정권의 추악한 민낯이 밝혀지면서이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늘 감춰져 있었다. 바로 박근혜 정권 이전부터 곪아 터진 자본주의 위기(공황)가 문제의 본질이다. 위기를 해결할 능력이 없는 자본가 권력이 근본적인 처방보다는 자신들의 연명을 위해 모든 희생과 고통을 노동자민중에게 떠넘겼다. 이 때문에 분노는 언제든 계기만 주어지면 터져 나올 수 있었다. 1,000만 비정규직, 사상 최대의 가계부채, 급증하는 실업, 몰락하는 자영업, 생존권 위기에 몰린 빈민과 노인, 철저한 계급사회임을 증명하는 구조화된 빈부 격차, 그리고 이러한 불평등하고 불안정한 사회에서 희망을 품을 수 없는 수많은 사람의 분노가 촛불 투쟁의 배경이다.

- 정치적으로 박근혜 정권은 콘크리트 지지층이라는 강력한 지지 기반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국정원 동원 부정선거 문제와 세월호 참사 책임이라는 치명적인 약점과 최순실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특정 세력의 권력 독점-남용 문제로 내부 균열 위험성을 항상 안고 있었다.
이에 박근혜는 자신의 약점을 덮기 위해 반대세력에 대한 무차별 공격과 지지층 결집만을 위한 독선적 통치로 일관해왔다.
집권 초기부터 공안탄압으로 시작하여,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투쟁을 온갖 추악한 방법을 동원해 막았다. 다음에는 노동자민중의 생존권 투쟁인 민중총궐기를 국가폭력으로 막고 물대포로 백남기 농민을 사경에 빠뜨려 끝내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으로 대표되는 지도부를 구속하며 탄압의 고삐를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거칠 것 없이 공격에 매진하던 박근혜 정권은 내부 균열과 함께 무너지기 시작해 박근혜 게이트를 정점으로 급격하게 추락했다.
- 박근혜 정권 내내 밀리기만 하던 저항 세력에게 촛불 투쟁의 힘은 새로운 공간과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요구가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재벌의 정경유착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성과연봉제 반대, 사드 배치 반대 투쟁, 국정교과서 추진 중단 등의 투쟁도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가장 절박한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의 현안은 차가운 농성장과 한편에 묻혀있다. 문화예술계의 블랙리스트 사태로 ‘표현의 자유’가 사회적 이슈가 되었음에도 <노동자의 책> 사건과 같이 국가보안법 탄압은 멈추지 않고 있다. 이것은 아직 적대적인 방해세력과 시스템이 건재함을 방증한다. 더욱 근본적이고 강력한 투쟁 없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루어낼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2. 촛불 투쟁의 주체와 의식
 
1) 조직노동자
 
“조직노동자운동은 촛불항쟁 초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파업 중이던 철도노동자들이 초기 동력을 형성했고, 평일 촛불의 경우 철도노동자와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오롯이 끌고 갔다. 그래서 광화문 광장의 중심을 차지할 수 있었고, 촛불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민중총궐기투쟁본부는 11월 12일 백만 촛불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누구도 대놓고 민주노총의 권위를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미조직 대중들 수백만이 거리에 모이는 동안에도 민주노총은 총파업을 통해 운동의 조직적, 정치적 주도권을 쥐는데 주저했고, 거대한 사회적 압력에 떠밀려 결정하고 실행한 11월 30일 파업이 사실상 초라하게 끝나버렸다. 그러는 사이 ‘즉각 퇴진’을 외친 수백만의 촛불항쟁의 정치적 주도권은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의 탄핵으로 넘어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퇴진행동’내에서 시민단체와 야권연대 세력들이 야당과의 공조를 중요하게 부각하고, ‘즉각 퇴진’ 요구가 국회 탄핵과 특검, 헌재를 압박하는 것으로 제한되었다.”3)
 
- 민주노총으로 상징되는 ‘조직노동자 운동’은 촛불 투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대규모 집회에서 중심이 되어 왔다. 그만큼 조직력과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촛불집회 초기에도 조직노동자들은 집회의 중심을 유지했고 거리행진에서도 버팀목 역할을 했다.
하지만 오랜 기간 후퇴를 거듭한 조직노동자 운동은 촛불 투쟁에서도 ‘조직적으로 참가하는 단체 참가자’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동안 유력한 대공장 정규직 노동조합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외면하거나 방해했다. 박근혜 정권의 노동개악에 맞선 총파업 투쟁은 회피하거나 무력화시켰다. 또한, 크고 작은 노조를 가리지 않고 관성처럼 자리 잡은 어용세력과 조합주의자들은 민주노조 원칙을 훼손하고 수많은 투쟁을 교란했다.
 
- 이러한 현실에서 예상치 않게 맞닥뜨린 촛불 집회의 위세에 조직노동자들은 자극받고 고무되기도 했지만, 노동조합 투쟁에서 그래왔듯이 자신의 이해관계와 직접 관련이 없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투쟁 물결에 자신들이 가진 노동자 고유의 무기로 투쟁에 힘을 싣기보다는 형식적으로 대응했다. 책임과 희생이 따르는 ‘계급적 투쟁’보다는 편하고 이익이 되는 ‘조직적 집회 참가자’의 길을 택했다.
 
조직노동자들은 대대적인 촛불 투쟁을 만나 박근혜 정권의 공범인 ‘재벌(대자본)에 맞선 투쟁’에 전면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촛불이 100배로 커지는 동안 자신들의 동료인 ‘투쟁사업장 현안 해결을 위한 연대 투쟁’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조직노동자 운동은 촛불 집회에서 유의미한 동력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노동자 고유의 투쟁으로 촛불 투쟁과 결합할 때 자본가 정권과 지배체제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 그동안 거대한 촛불 뒤에 숨어 형식적으로만 박근혜 퇴진을 외치고, 그것에 만족했던 조직노동자 운동은 이제 탄핵 인용 결정 이후 대선 국면을 맞고 있다. 선거만큼 조직노동자들이 긴밀하게 움직이고 동원되는 운동은 없다. 그래서 노동조합은 투쟁보다 선거를 위한 조직이 되어가고 있다.
촛불 투쟁이 만들어 준 반전의 기회를 자신들의 투쟁을 강화하고 확산시켜 현안을 해결하는 무기로 삼기보다는, 적당한 정치세력과 손을 잡고 선거를 통해 무언가를 얻어내려는 것에 관심이 쏠려있다. 하지만 노동자 투쟁의 역사는 자신의 위치에서 사소한 경제적 투쟁도 제대로 못 하는 세력은 사회적(혁명적) 투쟁에서도 발목을 잡는 역할만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 투쟁하지 않으면 내일은 저들에게 구걸하게 될 것이다.”
 
 
 
2) 자발적 참여자
 
- 연인원 1,000만 명의 촛불 집회 참가가 다수는 노동조합, 정당, 시민단체 등의 조직적 참가자가 아닌 개별 단위(가족, 친구, 혼자)로 자발적으로 참가한 사람들이다. 개별 참가자들의 직업과 정치성향을 구체적으로 분석할 수는 없지만, 경제 위기와 사회적 안전에 대한 위협 상황이 계속되면서 (자기방어적인) 보수적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늘었다고 한다. 또한, 비정규직-실업 문제에 직면한 20~30대의 참여가 광우병 촛불보다 줄어든 반면, 50세 이상의 참가가 늘었다고 한다. 이는 촛불 행동에 나선 사람들이 정치 성향을 넘어 현실에 대한 분노가 크고 절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 자발적 참가자들은 조직화 된 세력에 거리를 두기도 하고, 조직되기를 바라기도 하고, 스스로 조직하기도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거대한 촛불 대중이 어느 정당이나 단체에 대규모로 가입하는 차원이 아니라 촛불 대중의 가장 명료한 부분이 자신을 정치(의식)적으로 조직하는 일이다.
자발적 참가자들은 10여 차례 이상의 촛불 집회를 거치면서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촛불 투쟁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 촛불 대중의 분노가 ‘급진적 투쟁’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시도되지도 못하고 막혔지만, 촛불 집회에서 나타난 ‘저항 문화의 정서적 충격과 창조력’은 또 다른 투쟁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하지만, 촛불 대중 다수가 여전히 미조직-개별 참가자로 남아 있는 이유는 촛불 집회의 대형 무대와 긴장감 없는? 행진에서 집회 참가자들은 주체가 아닌 관객이 되기 때문이다.
 
- 이제 촛불 투쟁이 열어 놓은 광장을 제한 없이 넓혀야 한다. 거리, 일상, 지역, 공동체에서 다양한 형식과 열정적인 내용으로 수백, 수천, 수만 개의 광장토론-대중총회(집회, 회합)를 만들어야 한다. 그곳에서 토론하고 결정된 것을 함께 실천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바로 광장을 정치적으로 ‘조직화’하는 것이다.
조직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자발적 참여자들도 아직은 촛불 광장에서의 열린 정치와 직접 민주주의 요구를 일터, 생활공간, 지역 사회로 확산하지 못하고 있다. 자신들의 삶의 공간에서 토론과 투쟁을 통해, 크고 작은 권리를 찾고, 공동체에서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는 촛불 투쟁이 아직 집회 참가자들의 삶과 현실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작은 의미에서도 촛불 투쟁을 ‘혁명’이라고 부를 수 없는 이유이다.
 

3. 촛불 투쟁과 자극(inspiration)
 
1) 역사적 투쟁과 자극
 
- 1871년 ‘파리코뮨’은 노동자 스스로 사회조직을 건설하려는 최초의 시도였다. 도시구역에 따라 구성된 무장한 노동자들이 지키는 위원회가 지도자를 선출하였으며 노동자 민병대를 창설하였다. 이것이 최초의 ‘평의회’4)이다.
그리고 1905년 러시아에서 홍수처럼 터져 나온 ‘대대적 파업’의 물결은 전대미문의 폭발이었다.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상상할 수 있었던 모든 것을 깨고 나온 것이었다. 서로 다른 직업군들 사이의 구별이 무너졌다. 정치투쟁과 경제투쟁 사이의 구별이 무너졌다. 즉각적인 요구들과 혁명투쟁 사이의 구분도 낡은 것이었다. 이에 (창조적) 자극을 받은 노동자 대중들은 파리코뮨에 이어 스스로 ‘소비에트(노동자평의회)’를 탄생시킨다.
 
“대대적 파업의 비밀은 프롤레타리아가 다시 전인적인 인간으로 되려는 노력이다. 대대적 파업에서는 직업, 산업 부분, 국가 등의 구분들이 없어진다. 경쟁을 부추기는 -또 사고와 감정 사이에서의- 이러한 분리들이 의문시될 것이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러시아에서 투쟁하는 이들이 어떻게 웃고 노래했는지를 묘사하며 기쁨을 표현했다.
그들은 서로 얼싸안았고, 밤이 되어도 각자 자기 집으로 들어가서 개별화될 필요가 없도록 거리에 남아있었다. 이전까지 알지 못했던 깊은 집단적인 이상주의가 준비되었다. 그러나 혁명 시기의 폭풍 속에서 바로 노동자는 (노동조합의) 도움을 청하는 신중한 가장에서, 혁명의 낭만주의자'로 변하고, 그에게 있어서 물질적인 행복은 말할 것도 없고 가장 최고의 재산 즉, 자신의 목숨마저도 투쟁의 이상에 비해서는 하찮게 보인다."5)
 
소비에트(노동자평의회는 1905년에 소비에트는 갑자기 자발적으로 출현한다. 소비에트의 본질은 노동자계급의 집단적 노력의 결과물이다. 다양한 계획들, 토론들, 여기저기에서 쏟아져 나온 제안들, 모든 사건의 발전, 그리고 혁명가들의 적극적인 개입이 소비에트를 탄생시켰다. 이 과정을 세밀히 관찰하면, "대규모 토론과 투쟁의 급격한 급진화"라는 두 가지 결정적 요인을 확인할 수 있다.
1905년 9월부터 대중 내부에 생겨난 주목할 만한 '의식의 성숙'은 토론에 대한 엄청난 욕구의 발전을 나타냈다. 공장, 대학, 지방으로 퍼진 격론은 9월 한 달 동안 발전했던 ‘새로운’ 현상이었다.
"트레포프의 무한한 테러가 거리를 지배하고 있었음에도 대학 담장에서 생겨나고 있는 완전히 자유로운 대중들의 모임은 1905년 가을의 가장 놀라운 정치적 역설 가운데 하나였다. 사람들은 복도, 강당 그리고 홀을 가득 채웠다. 노동자들은 공장에서 곧장 대학으로 갔다. 블라디미르대학 강당에 모인 청중을 보고 깜짝 놀란 공식 전신기관은 다음과 같이 전했다. 대학생들 외에도 군중은 ‘다수의 관련 없는 모든 남녀, 중․고등학교 학생들, 도시 사립학교 학생들, 노동자들, 그리고 잡다한 무리’로 구성되었다."6)
 
하지만 이 모임은 잡다한 무리가 아니라 '엄격한 규율과 성숙함을 유지하면서 질서 있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토론하고 심사숙고하는 집단적 그룹이었다.
 
소비에트 회의는 부르주아 의회 또는 탁상공론적인 학자들 내의 논쟁과는 정반대였다.
 
"소비에트 회의에는 대의제도의 궤양인 어떠한 과장과 허풍도 존재하지 않았다! 논의 중인 문제 - 파업의 확산 및 두마 앞으로 보낼 요구 - 는 전적으로 현실적이었고 토론은 간결하고, 활기차며, 효율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누군가는 쥐꼬리만 한 매시간이 설명된다고 생각했다. 전체 회의에 엄격한 승인을 가진 의장은 미사여구로 흐르는 최소한의 흐름도 꼼꼼히 살폈다."7)
 
활기 넘치고 현실적이며 동시에 심오하고 구체적인 토론은 노동자들의 의식과 사회 심리학에 변화를 나타냈고, 이 두 가지의 발전에 있어서 강력한 요인이었다. 의식은 사회 정세와 그 전망에 대한, 대중 행동에서 생겨나는 진정한 힘에 대한, 그리고 동지와 적을 구분하고, 미래 세계의 목표를 정교히 하는 경로 설정의 필요성에 대한 집단적인 이해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사회 심리학은 의식과 다르지만, 그것과 함께 실재하는 요인이다. 그리고 이 심리학은 노동자들의 도덕과 생활태도를, 그들의 확산하는 연대를, 그들의 다른 노동자들과의 공감을, 그들의 열린 마음 및 학습을 그리고 공동의 목적에 대한 그들의 이타적인 헌신을 나타내는 요인이다.
 
- 그리고 1905년의 ‘기억과 자극’은 1917년 소비에트가 모든 권력을 가지면서 러시아에서 재탄생한다.
러시아 혁명의 자극과 1920년대 혁명적 물결은 독일과 헝가리에서 노동자계급에 생동하는 힘과 넘치는 생각들을 강하게 분출하게 했다. 투쟁이 발전함과 동시에, 모든 장소에서 ‘노동자 평의회’와 ‘총회’가 나타났다.
 
"1920년대 혁명적 물결 속에서 계급의식의 뛰어나고, 실천적이고, 생동하는 특질이 확인되었다.
모든 곳에서 즉흥적 화합과 진실한 토론, 생각과 제안들의 무수한 교류가 발생했다. 어제의 노동자들은 자본주의가 그들에게 부과한 심각한 무지 속에 침체하여 있었지만, 오늘의 노동자들은 실천적인 지성과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대담함을 보여주는 연설자가 된다. 자본의 지배에 침묵하며 속박되어 있던 수백만의 노동자들이 별안간 연설하기 시작하여, 모든 곳에서 수많은 생각과 사상들을 교환하고 정보를 모으며, 함께 정치 토론을 함으로써 자신들의 주도성과 창의력을 생생하게 증명한다(…) 정치적인 환경은 열정적인 음조를 띠고, 교류와 성찰을 위한 수많은 통로가 창조된다(…) 계급의식이 집단적이고 실천적으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8)
 
- 그리고 암흑과도 같았던 기나긴 반혁명의 시기가 지나가고, 1960년대 말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1968년 5월 프랑스에서의 총파업과 그에 이은 전 세계에 걸친 노동자 투쟁의 폭발과 함께 역사의 무대 위에 재등장한다. 이러한 역사적 부활은 ‘상상력’의 해방과 함께 더 큰 자극이 되어 ‘급진적인 행동’과 ‘혁명적인 운동’에 새로운 세대를 낳았다. 1968년 프랑스와 1969년 이탈리아 노동자 집회의 특징인 ‘폭넓고 심도 있는 토론’ 문화를 만들었다.
 
- 1987년 한국의 6월 항쟁은 그해 여름 노동자대투쟁에 영향을 주었다. 2011년 국제적인 차원의 ‘분노’ 물결은 ‘광장을 점거하자!’는 공통의 구호로 전 세계를 휩쓸었다. ‘광장’의 정치는 앞선 모든 ‘역사적 자극들’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진정한 연대’, ‘대중총회’, ‘토론문화’로 재현되었다.
 
“2011년 폭발적인 '진정한 연대'가 있었는데, 이는 지배계급이 설교하는 위선적이고 이기적인 '연대'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보기를 들어, 마드리드에서는 체포된 사람들의 방면을 위하거나 경찰이 난민들을 체포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한 시위들이 있었다. 또한, 스페인과 그리스 그리고 미국에서는 주거지로부터의 강제이주를 막기 위한 대대적인 집회들이 있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오클랜드에서는, 파업집회에서 다른 작업장들로 '파업파괴 저지단' 파견을 결정했고, 11월 2일 총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직원이나 학생을 처벌한 작업장이나 대학을 점거할 것을 결정했다. 이것은 비록 아주 간헐적이고 짧게 지속하였지만,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는 동지들에 의해 지지가 되고 보호된다는 느낌을 함께 느끼게 했다. 이는 불안감과 무방비 상태와 가망 없음이 지배적인 이 사회의 '정상적인 상태'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9)
 
- 위와 같은 역사적(혁명적) 사건이 준 자극과 촛불 투쟁이 준 영향은 분명히 다르다. 우리가 토론해야 할 것은 눈앞의 정세를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촛불 투쟁에서 근본적으로 부족한 것을 찾아내고 실현 가능한 것을 당장 실천하는 일이다.
 
2) 촛불 투쟁’의 자극과 토론할 주제들
 
- 촛불 투쟁의 주체(자발적 참가자, 조직노동자, 퇴진행동)들은 박근혜 탄핵 인용 이후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촛불 투쟁을 통해 누가 무엇을 얻을 것인가?
 
- 계급(대중)의 의식을 바꾸는 것은 ‘대대적 파업’, ‘민중 봉기’와 같이 혁명적 사건-상황에서 가능하다. 하지만 일상적인 저항 속에서도 ‘진정한(계급적) 연대’와 ‘대대적인 토론’이 가능하다.
촛불 광장의 ‘열린 정치’와 ‘직접 민주주의’에서 부족한 것은 무엇이었나?
일상적 저항에서 대대적인 토론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 촛불 투쟁은 ‘박근혜 탄핵 인용 결정’으로 막을 내렸고, 대선을 통해 ‘정권교체’를 이루는 것으로 마무리하려는 세력이 노동자 운동 내의 다수이다. 한편 촛불 정세를 무사히? 넘긴 부르주아 정치세력들은 촛불에 자극받아 보다 세련된 통치 체제를 만드는 것으로 계급투쟁을 잠재울 것이다.
촛불 투쟁 다음의 투쟁은 무엇이어야 하고,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글을 마치며
 
- 2017년 봄, 우리가 맞고 있는 ‘자본주의 위기’의 결과는 생각보다 훨씬 혹독해서 아직 한겨울이다. 박근혜 게이트가 터지기 전부터 노동자민중의 생활조건은 악화하였다. 실업은 점점 더 커져 일상이 되었고, 비정규직 확대는 이 사회를 점점 더 깊이 잠식하고 있다. 최소한의 생활 조건도 기대할 수 없는 가난과 굶주림마저 만연하다. 촛불 투쟁은 이렇게 비참한 현실과 박근혜에 대한 분노가 결합한 결과이다.
이에 수십, 수백만의 분노한 사람들이 ‘박근혜 퇴진’과 함께 마음속으로 ‘안정적이고 정상적인’ 삶을 염원하며 거리에 나섰다. 이러한 분노와 염원은 그동안의 수동성을 넘어 광장과 거리를 ‘거대한 인파’라는 물리력으로 점거했다. 광장에서는 지난 수년 동안 막혀있던 분노와 현재의 위기에 대한 문제들을 주장하고 토론하기 시작했다.
 
- 수백만의 대중들이 이 사회를 바꾸기 위해 가져야 할 ‘필수적인 의식’은 단상에 선 지도자의 말을 귀 기울여 듣거나 그의 지침을 따른다고 얻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대대적인 토론을 통해 스스로 판단하고, 그러한 토론을 이끌어내는 투쟁을 경험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 촛불 투쟁의 미래는 여기에 있다.
역사적인 투쟁들의 자극은 계급의식을 발전시켰다. 특히 '다수계급을 위한 다수의 의식적이고 독자적인 운동'이 그러했다. 의식적인 토론과 결정, 그리고 노동자 대중이 선출하고 대중에게 책임지는 독자적 운동은 역사적으로 노동자평의회를 통해 실현되었다. 이러한 노동자평의회는 현실 투쟁에서는 대중총회, 파업위원회 등으로 나타났다. 우리가 촛불 투쟁을 통해 자극해야 할 일을 바로 여기서 찾아야 한다.
 
- 이 체제는 박근혜와 같은 대표자를 언제든 갈아치울 수 있다. 이 체제의 실질적인 지배자인 ‘자본가 계급’의 이윤추구를 보장하고 이 사회의 크고 작은 권력을 가진 ‘지배계급’을 지키기 위해 그들은 새로운 정부를 세울 것이다. 그 배후에 ‘국가’라는 폭력기구가 환상(국민의 재산과 안전을 지켜주는 곳)으로 자리 잡고 있다. ‘실질적인 지배자들’이 기대는 곳이 바로 국가기구이다. 그들은 한 몸이다. 그래서 우리가 자본가 계급의 국가를 지키고 강화할수록 그들도 강해지는 것이다.
우리가 촛불 투쟁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자 한다면, 한 줌 안 되는 지배계급의 착취와 불평등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국가(통치)기구의 일부인 정부를 야당으로 교체하는 것으로는 불가능하다. 지배계급의 특권을 그대로 유지해주고 노동자민중에게는 불리한 ‘선거제도’로는 더욱 불가능하다. 그것은 오로지 이 체제의 실질적인 지배 권력을 무너뜨리고, 다수 계급이 직접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세상을 건설해야 가능하다.
 
- 그 희망은 비록 지금 소수이긴 하지만, 선거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생산과 일상을 직접민주주의로 조직해, 자신의 삶을 조절하고 다수가 사회를 통제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려는 사람들이다. 자신들의 삶을 위선과 불평등의 부르주아 민주주의-법 제도에 맡기지 않고 투쟁으로 돌파하면서 스스로 조직하고 민주주의를 창조하는 사람들이다. 모두에게 평등하고 모두가 참여하는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 즉 ‘자기 권력’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이제야 박근혜 파면이라는 작은 승리를 이루어냈다. 하지만 탄핵당하고 감옥에 간 몇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그대로이다. 특히 노동자 민중의 생존현장과 일상에서는 아무것도 바꾸어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박근혜 퇴진을 위한 촛불 투쟁에서 멈추지 않고 노동자민중의 삶과 투쟁이 있는 모든 곳으로 투쟁을 확산시킨다면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다.
1,500만 명이 참여한 대대적인 촛불 투쟁의 경험과 자극으로 우리의 일터와 모든 일상을 혁명적으로 바꾸어나가기 시작한다면 비로소 세상에 바뀌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가 '자기 권력'을 위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그것이 첫 번째 승리를 가져다줄 것이다.
 
- 우리는 촛불 투쟁을 너무 과도하게 평가하거나 기대해도 안 되지만, 촛불 투쟁이 가져다준 긍정적인 자극을 축소해도 안 된다. 우리는 촛불을 주도하지도 넘어서지도 못했지만, 냉철하고 끈질기게 촛불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최대한 한 넓고 깊게 토론해야 한다. 토론의 결과는 반드시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 근본적이고 새로운 투쟁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조직해야 한다.
오직 이러한 시도와 실천만이 야만의 사회, 자본주의와 다른 세상을 만드는 기초가 될 수 있다. 그 길은 험난하고 길어서 꾸준히 가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다.

<주>

1) 최영준, <박근혜 정권 퇴진 투쟁과 노동자 운동의 과제> 토론회 자료집, 2016.12.29
2) 최인기,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 1차 워크숍> 자료집, 2016.11.18
3) 이청우, <박근혜 정권 퇴진 투쟁과 노동자 운동의 과제> 토론회 자료집, 2016.12.29
4) 마르크스가 파리코뮌을 "최종적으로 발견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형태로 인식했다는 사실과 코뮌이 차후 소비에트의 전조가 되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파리코뮌은 프랑스 혁명기 도시 대중에게 특별한 급진 민주주의의 조직 형태와 더 관련이 있다." - 안바일러, <소비에트 : 러시아 노동자, 농민 및 병사소비에트, 1905-1921>, 1974
5) 로자 룩셈부르크 저작집 (Rosa Luxemburg Gesammelte Werke), 133p
6) 트로츠키, <1905년 "10월 파업>
7) 같은 책
8) 국제코뮤니스트흐름, <Communist Organisations and Class Consciousness>, http://en.internationalism.org/pamphlets/classconc
9) 국제코뮤니스트흐름, <2011년: 분노에서 희망으로>, 2012.3.12

2017년 3월
국제코뮤니스트전망│이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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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5호] 코뮤니스트 정치원칙 소개 1 : 반의회주의 혁명전략

코뮤니스트 정치원칙 소개 1

반의회주의 혁명전략

 

 

 

  2017년 3월 10일, 우리는 선거로 선출된 최고 권력자를 직접 끌어내리지 못하고, 국회와 헌법재판소의 탄핵이라는 절차를 통해 대통령 파면을 얻어냈다. 연인원 1,500만 명이 넘게 참여한 대대적인 촛불 투쟁은 박근혜를 물러나게는 했지만, 권력(주권)의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 박근혜 일당이 유린한 헌법에는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쓰여 있지만, 그 헌법으로는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을 직접 통제할 수도, 끌어내릴 수도 없다.

탄핵이 마무리되자 한국 사회는 또다시 유권자가 직접 통제할 수 없는 절대 권력자를 선출하는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7개월이나 앞당겨진 대선을 맞이하여 이른바 노동자-진보 정치 세력들은 ‘야권연대-정권교체론’에서 이름만 바꾼 ‘정권교체-대세론’에 무기력하다. 한편에서는 여전히 투쟁 없는 ‘대선 투쟁’이라는 허상을 잡고 부르주아 정치(헌법질서)를 강화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들은 그동안에도 꾸준히 선거를 통해 대중투쟁을 강화한다고 했지만 그렇지 못했고, 노동자(민중) 후보를 내세웠지만, 후보를 선출한 노동자에 어떻게 통제할지, 노동자강령(공약이 아닌)을 어떻게 준수할지, 선거기간 대중투쟁/현안투쟁에 어떻게 복무할지 아무런 보장도 강제도 없이 부르주아 정치와 뒤섞여 표를 구하기에 바빴다.

 

국제코뮤니스트전망은 박근혜를 당선시킨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선거주의’와 ‘노동자 후보 전술’을 반대하면서 ‘계급적 대중행동 투쟁 촉구’를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부르주아 선거판에 ‘진보정당’ ‘노동자 후보’의 이름으로 끼어들어 노동계급을 배신하고 부르주아의 한 분파로 행세하는 세력들이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다. 이보다 왼편에는 노동자정치를 주장하면서도 부르주아 정치를 흉내 내는 세력들이 소수로 존재하고 있다. 이들은 노동자정치를 노동자계급 고유의 영역인 투쟁의 장에서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 선거공간에서 할 수 있다면서 그 속에서 선전선동과 조직화를 꿈꾸며 선거운동을 선거투쟁으로 미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 계급을 위한 어떠한 성과도 선거나 그 과정을 통해 얻을 수 없다.

 

현 시기 대선 정국을 둘러싼 사민주의와 동거, 의회 선거정치 몰입은 계급적 대중행동을 저해할 뿐이다. 대중에게 선거는 자신의 삶과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여러 선택지(후보) 중 하나를 고르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또한, 선거 결과가 마치 계급 대중 의지가 실제 실현되는 것 같은 환상을 만든다. 이것이 부르주아 선거제도의 핵심 기제가 아니었던가!

 

그동안 선거에 개입했던 노동자정당, 진보정당들은 완전한 의회주의 정당으로 자리 잡았고, 이들을 지지했던 민주노총의 정치는 파산상태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계급에 대한 수많은 배신과 운동권 출세주의를 양산했다. 통진당, 진보정의당류와 진보신당의 차이는 백지 한 장 차이다. 또한, 이들과의 정치적 공동전선이나 입당전술을 사용하는 자칭 사회주의 세력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아무도 반성하지 않는다.

 

말로는 선거주의를 비판하면서 자신들이 참여하는 선거는 훌륭한 전술로 둔갑한다. 선거에 휩쓸리지 않고 대중투쟁을 중심으로 선거 이후를 준비하는 운동의 흐름은 아직도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선거주의자들이 선거에 참여하지 않는 건강한 노동자와 혁명세력을 대기주의, 기권주의로 몰아가면서 모든 운동을 대선 블랙홀에 밀어 넣으려 하고 있다. 이것이 운동마저 삼키는 부르주아 선거다. 부르주아 선거의 본질은 지배계급의 위기를 평화롭게 넘기는 것이며, 격화되는 대중 투쟁을 잠재우고 대중의 불만 표출을 잠시 멈추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선거에 휩쓸리지 말고 투쟁의 동력을 유지해 선거 이후 더욱 강력한 투쟁으로 지배계급에 맞서야 한다.

 

선거는 짧다. 두 개의 노선은 대립하고 있다. 사민주의와 동거, 선거정치 몰입이냐, 계급적 대중행동 투쟁 촉구냐?

 

이제라도 부르주아 잔치판에서 뛰쳐나와 노동자계급의 자리에서 자본주의가 인류 참상의 원인이고, 이를 넘어서는 공산주의 사회만이 대안이라고 대중적으로 공개적으로 말하고 싸워야 한다. 고통당하고 억압받는 노동계급과 함께 투쟁하고 그들을 정치의 주체로 내세워야 한다.

 

선거유세용 집회나 이벤트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대중총회를 개최하자. 대중총회, 대중집회를 통해 노동자들이 정치적 의사표현과 투쟁의지를 제한 없이 표출하는 ‘수평적 노동자 직접행동’, ‘노동자 직접정치’를 실현하자!“

 

대대적인 촛불 투쟁이 만들어 낸 조기 대선을 앞두고 노동자-진보 정치 세력의 대응방식은 4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일부는 이번 대선 참여가 내년 지방선거를 위한 포석이라고 한다. 하지만 촛불 투쟁이 노동자들에게 던져준 과제는 선거(대의) 민주주의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민주주의 제도’ 자체였고, 노동 중심 정치가 아니라 ‘국가와 권력’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지배(통제) 문제였다.

 

우리는 지난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부르주아 선거의 본질을 밝히면서 ‘선거환상’을 넘어서자고 주장했다. 우리의 능력이 그들에 미치지 못하지만, 3년 전 비판의 칼날은 여전히 유효하다.

 

“1987년 대통령직선제, 그리고 1991년 부활하여 1995년부터 본격적으로 치러진 지방선거 이래 19년에서 27년이라는 기간, 여러 차례 정권이 바뀌고 정치인이 바뀌고 노동자 출신이 정치무대에 등장하기도 했지만, 노동자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후퇴하거나 안정적인 삶을 누구도 보장받을 수 없는 매우 위험한 사회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여전히 생존권 위협과 각종 차별에 직면해 투쟁하는 것 말고는 어떠한 해결책도 없으며, 투쟁할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정치인들의 약속은 이제 지키지 못할 약속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그것은 선거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이른바 진보-노동정당들이 자신들에게 투표하고 집권할 때까지 기다려달라는 약속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우리는 부르주아 선거를 ‘서커스’나 ‘환상’이라 부른다. 왜냐하면, 선거에 참여하는 순간 사람들은 자신들이 선출한 정치인에게 권력을 위임했다고 생각하며, 투표행위로 자신들도 권력 일부로 참여한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선출된 정치인들은 유권자들의 직접 통제를 받지 않으며 선거기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유권자와 분리되어 행동한다. 즉, 이 나라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조항은 몇 년에 한 번 돌아오는 선거라는 이벤트에서만 적용된다는 이야기다.

 

또한, 부르주아 선거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지배질서를 강화하거나 재편하기 위한 목적이 있기 때문에, 이를 넘어서 자본주의 지배질서 자체를 바꾸거나 착취와 억압제도를 폐지하는 것을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 부르주아 선거라는 무대에서는 원래 무대의 주인인 ‘대중’이 아니라 무대의 설치 관리자인 ‘국가권력’이 이를 주도하기 때문에, 그들이 정한 시간과 장소, 그들이 정한 순서와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으며, 대중들도 무대를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자본주의를 넘어서겠다는 정치세력이 선거에 참여하는 것은 지배계급이 차려놓은 서커스 공연에 곡예사로 참여하는 것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이들이 선거에 참여하면서 선거를 통해 투쟁을 확산시킨다거나 후보를 내세워 투쟁의 구심을 세우겠다는 발상 역시 또 다른 ‘환상’에 불과하다.

 

유권자의 측면에서도 부르주아 선거판에서 투표하는 행위는 노동자계급을 자신의 주장이나 목소리 없이 정해진 규칙과 객관식 선택지 안에서의 수동적인 개인들로 축소한다. 개별의 투표함과 투표소 안에서 노동자계급은 작업장, 회사의 동료들과도 투쟁현장의 동지들과도 차단된 채, 자본가를 포함한 얼굴도 모르는 지역주민들과 섞여 분간하기도 힘든 1개 정당이나 정치인을 자신들의 대표로 뽑아주어야 한다. 즉, 이러한 부르주아 선거판의 투표 속에서는 그 어떠한 계급연대도 찾을 수 없다. 그리고 이런 투표행위를 두고 지배계급은 ‘우리 국민(주민)’들이 이 정부를 위해 투표했으니 따르라’는 것을 임기 내내 홍보하고 협박해 댈 것이다.”

 

 

부르주아 야당 세력의 의도이든, 노동자 독자정치의 무능이든, 이번 촛불 투쟁의 열망은 ‘정권교체’로 표현되었다. 이것은 촛불 투쟁의 다양한 요구가 반(反) 박근혜 전선으로 모이고 가장 넓게 형성된 결과이다. 반 박근혜 전선에 노동자계급과 민중은 시민이 되어 참여했고, 부르주아계급과 중간 계층은 민주주의자가 되어 참여했다. 이러한 현상은 박근혜 정권에 대한 분노와 지배계급에 대한 뿌리 깊은 불만이 국가권력과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로 나아가지 못한 결과이다. 촛불 투쟁의 광장은 넓었지만, 광장의 요구는 (부르주아) 국가를 넘어서지 못했고, 국가를 구성하는 시민사회(헌법질서) 안에서 작동하는 민주주의 문제로 제한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민사회 안의 민주주의로는 노동자계급과 자본가 계급의 적대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더욱이 노동자 시민과 자본가 민주주의자가 힘을 합쳐 만들어 낸 정권교체로는 위기에 처한 노동자 계급의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 노동자 계급의 생존과 생활수준은 노동자 자신의 투쟁으로 쟁취해야만 후퇴 없이 유지할 수 있고, 정권과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인 자기조직화를 통해 독자적인 힘을 키워야 거대한 자본가 권력과 맞설 수 있다.

 

노동자 운동이 후퇴하고 투쟁의 힘이 지속해서 약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계급은 자신의 고유한 방식으로 투쟁해야만, 자본가 계급에 밀려있는 교착상태를 깨고 정세의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다. 그것의 첫걸음은 선거가 아닌 대중의 직접행동으로, 대리인과 우상을 내세우지 말고 투쟁하는 노동자가 주체가 되어, 부르주아 정치를 거부하고 노동자 계급의 방식으로 직접정치를 실현하는 것이다.

 

이에 우리는 선거와 의회주의에 대한 코뮤니스트 정치입장을 제시하며, 열린 토론과 근본적이고 실천적 대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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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회주의 혁명전략

 

의회 제도는 자본주의 국가의 폭력적 통치를 은폐하여 상대적으로 덜 야만적인 폭력을 사용하고, 주기적인 선거제도를 통해 지배계급의 분파들 사이에서 정권을 교체할 수 있게 한다. 선거와 의회제도는 노동자계급에 대한 자본가계급의 합법적인 지배를 보장해주는 장치가 되었다. 이것은 노동자계급에 자신들을 다스릴 사람을 직접 선출하고 자신들이 정치권력에 참여하고 있다는 환상에 빠지게 한다. 하지만 노동자계급의 권력 장악과 완전한 정치참여는, 자본주의와 그 국가기관의 파괴를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 자본가계급은 국가의 폭력을 통해 전 사회를 지배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이용해 노동자계급을 착취하는 특권을 갖고 있으므로, 어떤 특권이나 착취도 필요가 없는 노동자계급은 자본가계급의 국가를 그대로 이용할 수 없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은 자본의 국가기구나 그것의 장치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맞서 자신들의 계급영역에서 투쟁해야 한다.

 

 

노동자계급이 체제의 내부에서 개혁들을 얻어낼 수 있었던 시기에는, 의회주의 제도에 노동자계급의 참여를 통해, 생활개선과 개혁들을 위한 압력수단으로서 의회가 이용될 수 있었다. 유럽에서의 19세기 동안, 그리고 1970·80년대에도 독재정권과 같은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정착하지 못한 사회에서의 보통 선거권을 위한 투쟁은, 프롤레타리아계급이 그것을 위해 자신을 조직했던 가장 중요한 요구들 중의 하나였다. 선거 시기 선거 캠페인을 하는 것도 노동자계급의 강령을 위한 선전 및 선동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었고, 마찬가지로 부르주아적 정치의 실체와 위선의 폭로를 위한 연단을 의회로부터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코뮤니스트 혁명의 의제와 혁명의 가능성을 직접 내걸어야 하는 자본주의 쇠퇴기인 현재에서는 선전 및 선동수단으로서 선거와 의회의 활용이 결정적인 걸림돌이 되어버렸다. 그것은 의회와 선거개입에 대한 전술들이 부르주아 사회의 모든 정치적 장치들을 유지하고, 노동자들의 수동성을 조장하는 경향이 굳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르주아 선거와 의회에 대한 개입, 그것과 관련된 각종의 선거 연합들은 그들이 내거는 급진적이거나 혁명적인 강령들, 연합의 명칭과 관계없이 노동계급의 자립성과 자기조직화를 저해하는 요소일 뿐이다.

 

노동자계급은 노동자의 해방이 의회의 장악이나 다수파 선출을 통해 얻어질 수 있다는 환상을 가져서는 안 된다. 그것은 우리가 의회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뒤 사회주의를 입법화하는 동안 지배계급이 평화적으로 우리를 기다려 줄 것이라고 믿는 의회주의의 환상일 뿐이다. 의회 민주주의는 자본가계급의 독재를 위장하는 껍데기에 불과하며, 자본주의 사회인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실질적인 권력기관은 의회 밖의 군대, 사법기관, 국가관료, 보안세력, 생산수단의 통제자로 존재한다. 따라서 현재는 노동자계급이 부르주아 국가의 모든 기구와 제도(의회제도 포함)들을 파괴하는 것이 혁명의 과제이다. 또한, 노동자계급은 의회주의 보통선거권의 잔해 위에 노동자평의회의 계급기구와 노동자 민주주의를, 부르주아 사회의 다른 잔재들 위에 노동자계급의 독재를 세워야하는 역사적 장도에 올라있다. 이때 의회와 선거에 참여하는 것은 그 어떠한 혁명적 의도들과는 무관하게 단지 죽어 가는 자본주의 껍데기인 의회에 한 줄기 생명을 불어넣는 일일 뿐이다.

 

 

코뮤니스트 혁명의 직접적인 가능성이 열리고 있는 지금 노동자계급의 유일한 과제는 바로 낡은 사회질서인 자본주의를 타도하고 코뮤니스트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현재와 같이 노동자계급이 사회혁명을 주도할 유일한 계급으로 성장한 이상, 노동자계급은 이제는 객체로서가 아닌 다른 계급들에 대해 독립성을 획득해야 하며, 이것은 노동자계급의 자립성, 자기조직화로 나타나야 한다. 의회주의를 포함한 모든 대리주의는 계급의 자립성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은 부르주아의 영역인 의회가 아닌 자신의 계급영역에서 자본주의와 그 국가기관을 파괴하기 위해 싸워야 하며, 대리주의가 아닌 계급 전체의 능동적이고 직접적인 대중투쟁만이 승리를 보장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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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5호] 코뮤니스트 정치원칙을 제안하며

코뮤니스트 정치원칙을 제안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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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1921년 세계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투쟁이 패배한 이후 노동자계급은 오랜기간 암흑의 침체와 반혁명 시대를 거쳐 1968년 역사의 무대에 다시 등장하였다. 노동자계급은 1970년대 초 제국주의적 긴장과 격렬함이 세계전쟁으로 확산하는 것을 멈추게 할 만큼 세계 곳곳을 휩쓸며 광범위하고 강력하게 부활하였다. 하지만 수십 년간 볼 수 없었던 전투적 투쟁에도 불구하고, 노동자계급은 자기해방의 전망인 코뮤니스트(공산주의) 혁명으로까지 나아갈 수는 없었다.

 

1차 세계대전으로 자본주의는 진보적인 생산양식이기를 멈추고, 인류에게 두 차례에 걸친 위기와 세계전쟁 그리고 파괴와 재건, 다시 새로운 위기를 반복하면서 이제는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자본주의는 전 세계적으로 1차 대전까지 계속 확장되었고, 그 이후 파괴의 시기(1914-1945)를 지나 더 높은 생산 수준으로의 재건의 시기가 있었으나, 다시 새로운 위기가 발생했고 세계적 축적조건을 재구축하려는 시기를 거쳐 왔다. 세계 자본주의는 영국이 주도하던 축적국면을 지나, 미국이 세계자본주의를 주도하면서 80년대 이후 30년 넘게 쇠퇴의 국면을 지속하고 있다.

 

2007~2008년의 금융위기로 촉발된 최대의 자본의 위기는 단순한 ‘주기적’, ‘순환적’ 의미의 경기침체를 넘어서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모순으로부터 생겨난 피할 수 없는 ‘위기와 파국’을 맞이했음을 보여주었다. 한편으로 자본가계급의 무능과 끝 모를 혼란을 보여주는 현재의 위기는, 아프리카의 프롤레타리아 투쟁에서 유럽과 남미의 노동자투쟁, 북미와 아시아의 노동자투쟁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를 강타하며, 노동자계급에 1차 대전 이후 가장 거대한 계급투쟁의 장을 열어놓고 있다.

 

오늘날 세계자본주의를 뒤흔들고 있는 이 위기는, 2007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시작과 더불어 우연히 출현한 것이 아니다. 이미 쇠퇴에 빠진 자본주의 경기침체가 30여 년 전부터 1974, 1981, 1991, 2001년에 차례로 있었다. 수십 년간 실업은 사회의 지속적인 현상의 하나가 되었고, 그동안 노동자계급은 생활 수준과 생존 자체에 대한 공격이 점점 더 심해지는 것을 경험해왔다. 이는 자본주의가 인간사회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장과 이윤을 위해서 생산하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만일 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해 수많은 사람들이 견딜 수 없는 빈곤에 빠지고 기아에 직면하게 된다면, 그것은 자본주의 체제가 충분히 생산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판매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물품들은 넘쳐나지만, 세계인구의 절대다수는 생산된 상품을 살 구매력이 없다. 그동안 자본은 이러한 위기 상황을 인위적인 시장의 창출을 통해 잠시 비껴 나가곤 했으나, 부채에 의지한 위기의 탈출은 신용의 대대적인 상환의 시기가 오자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리고 있다.

 

현재의 자본주의 세계 경제의 위기상황은 자본가 정부의 잘못된 정책과 관리, 또는 금융자본의 투기, 은행의 무책임한 행동 때문이 아니다. 자본주의 수호자인 이들 모두는 단지 자본주의의 법칙에 충실해 왔을 뿐이다. 문제는 이러한 자본주의 법칙이 바로 체제의 재앙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모든 국가와 중앙은행들이 쏟아부은 천문학적 자금들은 위기상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빚더미만 키워 놓았다. 더욱이 자본은 이러한 구제계획들의 실패를 오히려 노동자계급에 전가하며 더욱 깊은 공황의 나락으로 향하고 있다. 이는 자본주의 체제가 치명적인 불치의 병에 걸려 진정한 회복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의 노동자 계급은 쇠퇴하는 자본주의 아래에서 심각한 경제적 고통에 짓눌리고 제국주의 전쟁의 위협에 직면해 있으면서도, 아직 이에 맞서 적극적 투쟁으로 나서지 못하는 계급 역관계의 커다란 불균형 상태에 머물러 있다. 생산과 분배에 대한 자본의 실질적 지배는 전체 사회정치적 관계에 대한 총체적 지배를 더욱 넓혀가고 있다.

 

불행하게도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는 자본가계급뿐 아니라 그들과 자본주의 국가를 함께 구성하고 있는 사민주의(진보, 좌파, 노동) 정당과 노동조합 기구들을 통해서도 노동자계급에 이미 깊숙이 스며든 상태이다. 이들은 그동안 자본주의에 비판적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자본가계급이 노동자들의 투쟁을 억누르는데 실질적 도움을 주었고, 결과적으로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역할을 해왔다.

 

이제 자본은 자신들이 만든 위기를 노동자계급에 전가하는 것에만 머물지 않고, 그에 맞서 저항하는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싹부터 잘라내려 하고 있다. 하지만 쇠퇴기에 접어든 자본주의 절체절명의 위기는 노동자계급에게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깨고, 자본주의를 혁명적으로 타도할 가능성을 다시 한 번 열어주고 있다. 이것은 대대적인 계급투쟁의 파고가 갑작스럽게 일어날 가능성이 커졌다는 의미이며, 혁명조직(당)은 이에 대해 준비를 해야 한다. 노동자계급이 다시 계급투쟁의 주도권을 잡고 자본가계급에 맞서 전면전을 시작할 때, 혁명조직은 모든 자본주의 수호 세력에 맞서 정치적, 조직적 전투를 벌일 위치에 서 있어야 한다.

 

자본주의 모순은 코뮤니스트 혁명 이전에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또한, 자본주의 모순이 사라지지 않은 한 억압받는 계급의 저항과 투쟁의 물결은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다만 자본에 맞선 모든 투쟁은 오직 혁명(코뮤니스트) 강령이 계급 속으로 깊이 뿌리내릴 때만 비로소 혁명을 향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자본주의 아래서 노동자들이 일상적 투쟁의 과정에서 얻게 된 계급의식은 혁명적 의식으로 진전될 수도 있지만, 투쟁의 시기가 지나면 다시 되돌아가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노동자계급에게는 계급의 모든 역사적·이론적인 성과들을 온전히 담아내는 강령을 가진 혁명조직이 필요하다.

 

혁명 강령과 혁명조직은 계급투쟁으로부터 창출된 경험과 성과물이 실천적으로 강화되어야만 건설될 수 있으며, 계급투쟁의 역사적 경험은 이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에게 과거의 경험들로부터 교훈들을 얻어낼 수 있게 하고, 미래의 혁명적 투쟁을 준비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혁명(코뮤니스트)조직의 과업이다. 혁명가(코뮤니스트)는 계급의식을 발전시키고 일반화하는 일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또한, 혁명가들의 개입은 노동자계급이 자신들의 정치적 전망을 설정하고 혁명적 무장을 준비하는 데 필수적이다.

 

코뮤니스트 혁명이 모든 투쟁의 순간에 구체적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 투쟁하는 노동자계급이 계급적으로 부활하고, 세계적으로 새로운 계급투쟁의 장이 열리고 있는 것은, 코뮤니스트 혁명의 실재적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혁명가들은 전 세계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통일을 위해 반드시 혁명조직을 건설해야 한다. 이것은 세계혁명을 위해 세계적 수준에서 개입하여 전 세계의 혁명진영을 재규합하는 혁명적 인터내셔널의 건설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이에 코뮤니스트들은 새로운 인터내셔널(세계혁명당) 건설을 위해 투쟁하며,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을 위한 혁명조직을 건설하고자 한다. 우리는 모든 혁명적 사회주의자/코뮤니스트들과 전투적 노동자 동지들에게 코뮤니스트 정치원칙을 제안하고, 코뮤니스트 혁명의 길에 함께 할 것을 호소한다.

 

 

국제코뮤니스트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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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5호] 트럼프: 여전히 문제는 자본주의

트럼프: 여전히 문제는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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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주의 우파의 출현

 

도널드 트럼프의 45대 미국 대통령 계층에 대한 저항의 쇄도는 현대에서 유례없는 것이다. 그는 증오와 혐오를 팔고 다니는 반동적이며, 인종주의적, 성차별주의적 불량배이다. 그는 모든 비판에 대해 이를 전하는 이들을 공격하는 반응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한때 변호사를 하면서, 그리고 “폭도”, 로이 콘(Roy Cohn)에 대한 상담역을 하면서 배운 “기술”이다. 그는 이미 미국의 일부, 그 사법부, 비밀 정보국, 그리고 주류 언론, “인민의 적들”에게 그의 결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그는 세계에서 외톨이가 아니다. 전 세계에서 명목상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정권의 권위주의적 지도자들이 증가해 왔다. 푸틴, 두테르테, 에르도안, 오르반, 그리고 카진스키는 모두 다원주의에 대한 합의나 소수자의 권리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권위주의 정권을 통제한다. 무엇이 모든 권위주의자들(그리고 르 펜에서 독일의 독일을 위한 대안(AfD), 네덜란드의 빌더르스(Wilders) 등 권력을 갖길 희망하는 이들까지)로 하여금 지금 이 시점에 권력을 잡도록 하였는가?

 

자본주의의 오랜 침체

 

그 뿌리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0년대 초, 전후 호황이 끝났다. 그 후 세계의 자본주의의 지도자들은 엎치락뒤치락 과거의 성장률을 회복시키는 방법을 찾으려 해 왔다. 1970년대 케인즈주의의 실패 이후, 그들은 “신자유주의”, 탈규제, 그리고 세계화로 돌아섰다. 자본은 이제 노동력이 가장 저렴한 곳으로 이동했다. 이는 보다 부유한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제조업을 황폐화시켰다. 주로 값싼 서비스 직종이 제조업 일자리를 대체하면서, 자본이 부유한 국가에서 노동자들의 수입은 오늘날 1979년에 비해 실질적으로 감소했다. 노동자들의 연대는 공동체가 파괴되어 감에 따라 침식되었다. 국가들은 보다 더 큰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매력적인 투자처가 되기 위해(예를 들어 면세 기간 등) 바닥으로의 경쟁을 심화시켜왔다. 그러나 경제 위기는 없어지지 않았고, 자본주의 체제는 금융 영역의 탈규제에 눈을 돌려, 투기로 가는 길을 열었다. 빚이 갑자기 “자산”이 되었다. 금융자본가들은 그들의 빚의 네트워크에 편입되기 위해 이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와 같은 방법들을 통해 끌어냈다. 결과는 2008년과 2008년에 터진 대규모의 어마어마한 버블(거품)이었다.

 

어디서든 국가는 은행들을 보석으로 보내고 노동계급에는 긴축재정을 부과했다. 영국의 작은 마을, 미국의 러스트 벨트에서는 세계화의 의심스런 이득을 공유하지 못했던 노동자층은 이제 더한 비참함에 만족하며 살아야 했다. 그러므로 다수는 오직 “세계화”가 저지른 피해에 반대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투표할 준비가 되어 있었을 뿐이다.

 

우리는 반세계화가 좌파의 운동, “세계화 반대(no-global)”, 점거 운동(Occupy Movements)으로 시작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처음에는 TTIP와 같은 무역 블록에 반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2011년에 경고한 것처럼, 진짜 문제는 자본주의 내에서의 반대할 필요가 있는 하나의 유행(세계화)이 아니라, 전체 착취의 시스템이다. 만약 당신이 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세계화의 반대는 민족의 방어가 된다. 급진적 우파는 오늘날의 독성 혼합물로 만들기 위해 반세계화에 민족주의와 인종주의를 더하기만 하면 됐다. 만약 있다면 이민자들 가운데서는 고립된 곳에 있는 소수와, 대다수의 사람들은 만약 일자리를 훔쳐간 것이 이민자가 아니라면, 일자리는 해외의 외국인들에게 간 것이 틀림없다고 믿을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위기(1)의 사회적인 결과는 트럼프로 하여금 티파티(Tea Party)와 같은 반거대 정부 유형, 선교적 기독교인들부터 네오나치의 대안우익(Alt-Right of neo-Nazis)에 이르는 공화당을 둘러싼 모든 우익 그룹들을 연합하는 것이 가능토록 했다. 이에 노동자들의 투표가 더해졌는데, 이들은 세계화에 뒤떨어진 주요 주에서 “그들”(외국인들, 이민자들, 그리고 “워싱턴의 기득권자들”)에 반대하는 트럼프의 공격적인 발언을 믿었다.

 

악어에게 “늪”을 넘기다

 

트럼프가 “대안적 사실”에 강한 편벽이 있음은 잘 알려졌지만, 그의 가장 속 보이는 거짓말은 그가 워싱턴에 가서 “늪을 제거”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대신, 그는 게리 콘(Garry Cohn, 국가 경제 위원회의 수장)과 스티븐 므누신(Steven Mnuchin, 클린턴이 그들과 가까웠다는 이유로 비난한 직후에!(2))과 같은 골드만삭스 은행가들을 가득 임명했다. 그의 내각은 적어도 세 명의 백만장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본인은 그중에서 가장 부자이다. 이들은 많은 사업과 연관되어 있는데, 그것은 미국 역사상 어떤 행정부보다 더한 것이다. 그렇다면 의회가 회사들이 해외의 권력자들(국무장관 틸러슨(Tilerson)의 이전 회사인 엑손 모빌(Exxon Mobil)과 같은)에게 제공한 자금을 공개하도록 강요하는 법을 이미 철폐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도 아니다. 또는 트럼프가 다우케미칼(주)(Dow Chemical Co.), 록히드마틴, US 스틸(US Steel)을 포함한 미국의 주요 기업들의 최고경영자들 앞에서 사업에 부과된 “규제들”을 제거하는 “규제 개혁” 태스크포스팀을 연방에 만드는 행정명령에 사인하더라도 말이다. 환경보호에 관한 규제에서부터 투기를 금지하는 법에 이르기까지 모든 국가 규제가 산산조각날 것이다. 파이낸셜 타임지(2월 22일 자)의 데이비드 필링(David Pilling)이 지적하였듯이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은 늪을 제거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보다 악어에게 늪을 넘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트럼프에게 투표한 노동자들은 일자리가 돌아올 것이라는 쓸쓸한 희망으로 살고 있다. 비록 몇몇의 일자리는 돌아올지 몰라도, 노동자들은 예전에 그들이 받았던 것만큼 받지 못하거나, 예전에 그들이 고용된 만큼 고용되지 않을 것이다. 멕시코 공장에 투자를 포기한다는 포드의 명백한 입장은 그들의 기운을 북돋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멕시코 공장이 3,000개의 일자리를 제공한다면, 대신 지어지는 로봇화된 미국의 공장은 오직 몇백 개의 일자리만을 제공할 것이다(3). 만약 트럼프가 중국 수입에 대해 45%의 관세를 부과한다는 위협을 실행한다면, 이것은 대규모 수입 대체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노동 계급이 높은 비용을 지불하며 사는 것으로 이어질 것이다. 노동자들은 지난 40년 동안 그랬던 것과 똑같이 위기의 대가를 치를 것이다.

 

트럼프에 반대할 것인가, 그를 키워주는 시스템에 반대할 것인가?

 

트럼프의 첫 번째 목표가 이민 노동자들이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벽을 쌓고 이민자들을 내쫓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빌 클린턴은 벽 건설을 시작했다. 오바마는 이를 지속했다. 그리고 오바마는 작년, 25만의 이민자들을 조용히 쫓아냈다. 새로운 것은 트럼프가 큰 목소리로 멕시코인들과 무슬림을 겨냥한다는 것이다. 그들을 희생양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그는 광범위한 공포와 극도의 혐오를 이용할 뿐만 아니라 이를 교묘히 조장하고 있다. 미국에는 현재 4천만이 넘는 이민자들이 있으며 이 중 오직 1/4만이 불법 이민자들이다. 백인이 아닌 이민자들은 이제 공무원들과 인종주의자들 모두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것 외에 기대할 것이 없다. 트럼프는 미국의 민족주의를 이러한 “타인”과 적대하여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트럼프는 에르도안이나 푸틴과 닮았다. 오직 국내 소비만을 위해 기획되었다는 해외 문제에 대한 그들의 선언과 그들이 실제로 하는 짓은 그들의 무가치한 허풍과는 종종 차이를 보인다. 지금의 자본주의의 위기가 이전에 비해 새로운 대재앙에 우리 모두를 포함해 몰아넣은 것 같다고 이야기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트럼프의 수사는 보다 공격적인 것처럼 들리지만, 그의 정책은 이전에 해 왔던 것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라크의 대량파괴 무기의 존재와 같은 “가짜 뉴스”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트럼프는 이라크를 존재하지도 않는 증거를 근거로 침략하지도 않았고, 관타나모를 지음으로써 인권을 유린하지도 않았다. 그는 지저분한 드론 전쟁을 시작하지도 않았으며, 미국의 핵무기 개량을 위해 3조를 기부하지도 않았다. 이 모든 것들은 부시와 오바마에 의해서 이뤄진 것이다. 오바마의 사무실에서의 마지막 행동은 관타나모만을 영구적인 강제수용소로 만들고 이미 거대한 국방부의 권력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트럼프는 같은 점이 많지만, 점점 더 위험한 세계에 있다는 점이 다르다(4).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으로 가는 추동을 막는 것은 노동계급이 너무 수동적이라는 사실이다. 생활수준에 대한 공격과 싸우지 않음으로써, 지배 계급의 압력의 일부는 그들의 제국주의적 정책을 훨씬 더 공격적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최근의 사건들이 보여주듯이, 역사는 머물러 있지 않다.

 

세계 노동계급은 너무 오랫동안 체제가 내던진 모든 것의 수동적인 피해자였다. 이제 우리가 맞서 싸울 때가 되었다. 문제는 어떻게? 트럼프가 너무 싫기 때문에 그에 반대하여 자본주의 좌파(모든 종류의 사회 민주주의자들을 의미하지만, 특히 민주당)의 즉자주의적 선전을 지지하려는 유혹이 있을 수 있다. 지난 30년 동안 이 좌파는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의 논리를 수용하였으며, 생활 수준의 하락에 연루되어있다. 그들의 응급처방은 사회적 평화를 사기 위해 보다 많은 복지를 제공하는 것이었는데, 이는 투기적 거품의 끝과 함께 무너졌다. 그들은 “파시즘”이라는 이야기로 주의를 돌리고 오도하는데, 그들은 대안이 더 나쁘다는 근거로, 노동 계급이 체제를 지지하게 함으로써만 존재할 수 있다. 그들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제공하지 않는다.

 

분열과 재건의 시대 이후, 풀뿌리 수준, 작업장과 공동체에서 노동자 저항이 다시 부활하고 있다는 작은 징조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길고 오랜 과정이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조직해야 한다. 혁명가들은 체제 안에 투쟁을 가두려는 이들의 통제를 넘어서는 모든 투쟁을 독려함으로써 이러한 부활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노동자에 의해 통제되는, 체제가 용인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그에 순응하게 하는 자본주의 좌파에 의해 조종될 수 없는 자율적인 단체들을 위한 선동을 해야 한다. 이에 더해 혁명가들은 자본주의 착취, 환경 파괴, 소수자에 대한 억압과 제국주의 전쟁에 대안을 향한 “행렬”을 안내하기 위해 통일된 정치 조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구해야 할, 그리고 쟁취해야 할 세계가 있다.

 

<주>

 

(1) 이 주제에 대한 보다 확장된 논의는 leftcom.org를 보라. 트럼프(레이건식으로)는 감세를 통해 노동자들의 지지를 사고자 시도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상위 0.1%가 (1년에 3백7십만 달러 이상을 버는 이들) 1백1십만 달러 감세 혜택을 받는 동안 최하 5분위 계층에서 1년에 110달러 또는 수입의 0.8%의 감세 혜택을 보는 것을 의미한다. (FTWealth, 42호, 2017년 3월, 8페이지)

 

(2) 사실 지난 수십 년간 모든 미국 행정부에는 골드만삭스의 대표자들이 있었다. 조지 부시 대통령하에서 그들은 “가버만삭스(Government Sachs)”라고 알려졌으며 빌 클린턴의 경제 자문은 민주당 아젠다에 영향을 주는 부르킹스 연구소(Brookings Institute)에 기반을 둔 소위 해밀턴 프로젝트(Hamilton Project)라는 우익 씽크탱크를 세운 로버트 루빈(Robert Rubin)이었다. 오바마 아래에서는 11명의 골드만삭스 인물들이 정부의 여러 수준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똑같이 오래된 늪이다. 이에 대해 prof77.wordpress.com을 보라. 트럼프와 클린턴의 지난 수십 년 간의 사회적, 정치적 거래는 잘 알려져 있다(지금 미국 민주당은 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것을 선호한다고 해도!)

 

(3) 이는 멕시코로 이전하기보다 1,000개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인디애나 주에 머물기로 결정했던, 그러나 결국 수백 명의 외주화와 로봇으로의 대체로 이어졌던 과거 트럼프와 Carrier 회사와의 유명한 거래와 똑같다.

 

(4) 트럼프의 당선 전후 제국주의적 관계에 대해서는 더하다. leftcom.org를 보라.

 

Friday, March 10, 2017

국제코뮤니스트경향 (Internationalist Communist Tendency)

 

 

<원문 출처>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17-03-10/trump-the-problem-is-still-capit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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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5호] 대통령 트럼프 : 사멸해가는 사회체제의 상징

대통령 트럼프 : 사멸해가는 사회체제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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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 시대가 기울어갈 무렵 로마 황제들의 광기는 예외적이 아니라 흔한 현상이었다. 그것이 로마가 노쇠해지고 있다는 징후였음을 역사가들은 의심하지 않는다. 지금 무시무시한 광대 하나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에서 왕(대통령)이 되었다. 하지만 이 사실은 일반적으로 자본주의 사회가 쇠퇴에서 더 진전된 단계(새로운 사회)에 도달했다는 징후로 이해될 수 없다. 그 체제의 진원지에서 포퓰리즘의 쇄도는 단기간에 연이어 브렉시트와 도날드 트럼프의 승리를 초래했는데, 이 사실은 지배계급이 지금까지 몇십 년 동안 자본주의의 내재적 붕괴 경향을 억제하는 데 활용해 온 정치기구에 대한 장악력을 잃고 있음을 상징한다. 우리는 지금 사회질서의 급속한 해체로 인해 지배계급이 인류에게 어떠한 미래의 전망도 제시할 수 없는 완전한 무능함과 그로 인한 거대한 정치적 위기를 목격하고 있다. 그러나 포퓰리즘은 또한 피착취계급인 프롤레타리아트가 혁명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함으로써 초래한 산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무기력한 분노와 공포, 소수자들에 대한 희생양 만들기, 그리고 실제로 결코 실존한 적이 없는 과거에 대한 허상에 바탕을 둔 반동에 말려 들어갈 심각한 위험이 있다.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서의 포퓰리즘의 근원들에 대한 이러한 분석은 '포퓰리즘의 문제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더 깊이 전개되어 있다. 우리는 독자들이 그 글이 제공하는 일반적인 틀을 브렉시트 결과와 대통령 후보로 떠오른 트럼프에 대한 초기 우리의 좀 더 구체적인 대응, '브렉시트, 트럼프 : 프롤레타리아에게 좋을 것 전혀 없는 지배계급을 위한 후퇴'와 함께 검토할 것을 권한다. 이 두 글은 우리의 국제평론(International Review) 157호에 실려 있다.

 

우리는 또한 '트럼프 대 클린턴: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에 나쁜 선택일 뿐'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10월 초에 작성된 이 기사는 트럼프가 백악관에 입성하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 부르주아지의 좀 더 '책임감 있는' 분파들이 민주당과 공화당을 막론하고 거의 미친 듯이 노력하는 것을 살펴보았다.1) 이러한 노력은 명백히 실패했는데 이 실패를 초래한 더 즉각적인 요소 중의 하나로는, 클린턴이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바로 그 순간에 연방수사국의 국장, 제임스 코메이(Comey)가 어이없게 개입한 것을 들 수 있다. 미국 정보기구의 심장인 FBI는 클린턴이 국가안보의 기본적인 법규들에 어긋나게 사적인 이메일 서버를 사용한 점을 더 조사한 뒤 그녀가 이후에 형사소송에 관여될지도 모른다고 선언함으로써 그녀의 당선 기회를 심각하게 손상시켰다. 그 일주일 정도 뒤 코메이(Comey)는 FBI가 점검한 모든 자료에서 그 어떤 불리한 점도 없었다고 선언함으로써 후퇴를 시도했다. 그러나 피해는 이미 돌이킬 수 없었고 '그녀를 감옥에'라고 집회에서 끊임없이 반복해서 주장해 온 트럼프 캠페인에 FBI는 주요한 기여를 했다. 그런데 FBI의 그 기념비적인 실수는 국가기구가 중심에서 정치적 통제력을 점점 더 잃어가는 것을 나타내는 또 하나의 상징이었다.

 

코뮤니스트들은 차악을 위해 싸우지 않는다.

 

'트럼프 대 클린턴(Trump v. Clinton)' 기사는 역사의 현시기에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선거는 노동자계급에 어떤 선택도 제공하지 않는 거대한 사기극이라는, 그것들에 대한 코뮤니스트의 견해를 선명하게 재 언급하면서 시작한다. 이렇게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점은 아마도 이번 선거에서 가장 심했던 것 같은데, 이는 명백하게 인종차별적이고 여성 혐오적인 사안을 가진 오만한 쇼맨 트럼프와 지난 30년 동안 국가자본주의의 지배적인 형식인 '신자유주의'를 체화한 클린턴 사이에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두 가지 악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유권자들의 상당 부분은 미국선거에서 늘 그렇듯이 아예 투표하지 않았다. 초기의 추정투표율은 57% 이하로서, 투표하러 가라는 그 모든 압력에도 불구하고 2012년의 투표율보다 낮았다. 동시에 두 진영 모두에 비판적이지만 특히 트럼프에 비판적인 많은 이들은 결국 차악으로서의 클린턴에 투표했다. 우리는 부르주아가 제공하는 것에 대한 환상이 깨짐으로 인해 부르주아 선거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기껏해야 (또 다른 사회조직방식을 위한)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안다. 비록 노동자계급이 계급으로서 행동하지 않을 때 극도로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자본주의 국가의 해체를 관통하게 될 또 다른 사회조직방식이 존재함을 보여주는 것은 본질적이다. 그리고 선거 이후의 시기에, 기존의 정치사회질서를 이렇게 거부하는 것, 부르주아 국가라는 감옥의 밖에서 그리고 그것에 대항하여 노동자계급이 그 자신의 이해를 위해 투쟁할 필요성을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그만큼 적절하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이 단순한 트럼프 반대주의, 일종의 개편된 반파시즘2) 쪽으로 이끌려가게 될 것이고 이것은 다시 부르주아의 좀 더 '민주적인' 분파들, 가장 그럴듯하게는 민주당 대선후보지명전에서 버니 샌더스3)가 그랬던 것처럼 노동자계급과 사회주의의 언어를 말하는 그런 분파들의 견해를 취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트럼프주의의 사회적 기초

 

이글은 트럼프에 투표한 사람들의 동기와 사회적 구성을 자세하게 분석하는 자리가 아니다. 트럼프 캠페인에 그렇게 결정적인 여성반대 수사법(레토릭), 여성혐오주의는 자체의 역할을 했음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이점은 특히 지난 몇십 년 동안 성별 관계에 나타난 사회적 이데올로기적 변화들에 대항한 훨씬 더 세계적인 '남성의 반격'의 일부이기에 그 자체로 연구될 필요가 있다. 마찬가지로, 모든 중심부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인종차별주의와 외국인 혐오증이 불길하게 성장해 왔고 이점은 트럼프 캠페인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다. 아메리카의 인종차별주의에는 이해할 필요가 있는 그 특유한 요소들이 또한 존재한다. 즉, 단기적으로는, 오바마의 대통령직과 미국판 '이민자 위기'에 대한 반응,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노예제와 차별의 유산 전체가 그러한 요소들이다. 초기의 통계로 볼 때, 대략 88%의 흑인 유권자들이 클린턴진영을 선택했지만 친트럼프 표는 압도적으로 백인들(비록 상당수의 '히스패닉'들을 동원하긴 했지만)에 의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미국 인종 분리의 긴 역사를 극명하게 볼 수 있다. 우리는 앞으로 작성될 기사들에서 이 문제들을 다시 다룰 것이다.

 

그러나 포퓰리즘에 관한 우리의 기사에서 주장하듯이 트럼프의 승리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대다수를 희생하여 특히 오래된 제조 및 채굴산업의 노동자계급을 희생하여 작은 소수만을 부유하게 하는 거시경제적인 과정들인 경제세계화와 금융화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 '엘리트'에 대한 분노였다고 생각된다. '세계화(Globalisation)'는 자동차와 철강 같은 산업들이 대대적으로 분해되어 노동력이 더 값싸고 이윤이 훨씬 더 높은 중국과 같은 나라들로 이전되는 것을 의미했다. 그것은 또한,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을 의미했는데, 이는 자본주의에 있어 '빈곤한' 나라에서 '부유한' 나라로의 이주를 통해 노동력을 값싸게 만드는 또 다른 수단이었다. 금융화는 대다수에게는 경제생활을 점점 더 신비스런 시장의 법칙들이 지배하게 되는 것을 의미했다. 더 구체적으로는 다수의 소액투자자와 주택소유자들을 파산하게 하였던 2008년의 대폭락을 의미했다.

 

다시 말하자면, 앞으로 좀 더 자세한 통계적 연구들이 필요하겠지만, 트럼프 캠페인의 핵심적 강점은 대학교육을 받지 않은 백인들로부터, 특히 소위 '대도시의 자유주의 엘리트' 안에 체화된 기존의 정치 질서에 반대하는 저항의 하나로 트럼프에게 투표한 새로운 산업 황무지들인 '러스트 벨트(사양화된 공업지대)'의 노동자들로부터 받은 지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바로 이 노동자들이나 이 지역들의 다수는 이전의 대선에서 오바마에게 투표했고 몇몇은 민주당의 대선후보 경선에서 버니 샌더스를 지지했다. 그들의 표는 무엇보다도 부의 점점 더 커지는 불평등에 대항한, 그들 자신과 자식들에서 어떤 미래도 보장받지 않는다고 느껴지는 그 체제에 대항한 그러한 반대의 표였다. 그러나 진정한 노동자계급 운동의 완전한 부재라는 틀 안에 결국 이러한 반대는 엘리트가 외국 투자자들에게 나라를 팔아먹는다고, '순진한' 노동자계급을 대가로 이민자와 난민들과 소수자들에게, 남성노동자들을 대가로 여성노동자들에게 특별한 이권들을 준다고 비난하는 포퓰리즘적 세계관에 자양분을 제공했다. 트럼프주의의 인종차별적 여성 혐오적인 요소들은 '엘리트'에 대한 수사적인 공격과 연관되어 있다.

 

트럼프의 집권 : 평탄하지 않은 주행

 

우리는 트럼프의 대통령직이 어떨지 그가 어떤 정책들을 구현하려 할지 추측할 생각은 없다. 트럼프에게 무엇보다도 특징적인 것이 바로 예측 불가능성이라서 그의 통치의 결과들을 예언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트럼프는 아침밥도 먹기 전에 벌써 몇십 개의 모순적인 말들을 할 수 있지만, 이점이 선거 캠페인에서 그의 지지도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사실도 있다. 하지만 캠페인에서 그랬다고 해서 재임 기간에도 그렇게 잘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예를 들어 트럼프는 전형적인 자수성가한 기업가로 자신을 소개하고 미국 기업인들을 관료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해 말하지만, 그는 또한 내륙 도시들에서의 인프라 구조를 회복하고 도로와 학교와 병원을 건설하며 환경 보호를 위한 개발 제한들의 폐지로 화석 연료산업을 다시 활성화하는 등 대대적인 프로그램에 관해 이야기하는데 이 모두는 경제에 대한 중대한 국가자본주의적 개입을 뜻한다. 그는 수백만의 불법 이민자들을 추방하겠다고 맹세하지만, 미국 경제의 많은 부분이 그들의 값싼 노동에 의존하고 있다. 외교정책에서 그는 고립주의와 철수(나토에서의 미국의 참여 규모를 축소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에서 보이듯이)의 언어를, 군비 예산증가를 약속하며 'IS에 폭탄을 퍼붓는 것' 같은 허세에서 개입주의 언어와 만난다.

 

확실해 보이는 것은 트럼프의 대통령직 특징이 지배계급 내부 그리고 국가와 사회 이 둘 모두에서 충돌로 드러날 것이라는 점이다. 사실 트럼프의 승리연설이 화해의 전형이었고 그는 '모든 미국인의 대통령'이 되고 싶어 한다. 그리고 트럼프를 백악관에서 맞이하기 전 오바마는 가능한 한 원만한 이행기를 보장하고 싶다고 말했다. 게다가, 상원과 하원에서 공화당이 대다수를 차지한다는 사실은, 만약 공화당 기존 세력의 트럼프에 대한 반감을 극복한다면 그는 더 선동적인 정책들을 미뤄 놓더라도 많은 정책에 대한 지지를 확보할 것을 의미할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 긴장과 충돌의 징후들은 어렵지 않게 발견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트럼프가 나토에 관한 회의감을 유지한다면 또는 강력한 지도자로서 푸틴에 대한 그의 존경이 동유럽과 중동에서 러시아 제국주의의 위험스런 재활에 맞서는 미국의 시도들이 약해지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군 위계질서의 일부는 그의 몇몇 대외정책에 아마도 매우 적대적일 것이다. 그의 몇몇 국내정책들에 대한 반대는 또한 정보기구, 연방 관료와 대자본관계자들의 내부로부터도 발생할 수 있을 테고 이때 이들은 트럼프가 마구 날뛰지 못하게 하는 것을 보장하는 것이 자신들의 역할이라 여길지도 모른다. 한편, 아마도 민주당 내부에서는 '클린턴 왕조'의 정치적 소멸로 새로운 반대파들이 출현하고 심지어는 분열을 일으켜서, 버니 샌더스와 같은 이들 주변에 좌익이 출현해서 경제적 정치적인 기존 세력들에 대한 적대 기운을 이용하길 희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회의 수준에서, 브렉시트 이후의 영국과 비교하자면, 명백히 인종차별주의적 그룹들이 이제 그들의 폭력과 지배의 환상을 실현할 권한을 부여받은 듯이 느끼면서 '대중적인' 외국인 혐오증이 불길하게 꽃피는 것을 우리는 아마도 보게 될 것 같다. 그리고 만약 트럼프가 '불법 체류자들'의 억류와 추방 프로그램을 진지하게 시작한다면, 이 모든 발전은 지난 몇 년간 경찰에 의한 흑인살해 후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거리에서의 저항들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실제로, 선거결과가 발표된 바로 그 날부터 미국 전역의 도시들에서 일련의 매우 분노한 시위들이 있었는데, 전반적으로 이 시위들에는 트럼프가 이끄는 정부라는 전망에 역겨움을 느끼는 젊은이들이 참여하고 있다.

 

국제적인 영향

 

국제수준에서, 트럼프의 승리는 그 스스로가 말하는 것처럼 '브렉시트 플러스 플러스 플러스(Brexit plus plus plus)'가 될 것이다. 그것은 이미 서유럽의 우익 포퓰리즘적 정당들에, 특히 2017년 선거를 치르게 될 프랑스의 민족전선에 강력한 도움을 주었다. 이들은 다국적인 무역 기구로부터 탈퇴를 원하고 경제 보호주의를 선호하는 정당들이다. 트럼프의 가장 공격적인 선언들은 중국의 경제적 경쟁을 겨냥한 것이었는데, 이는 우리가 1930년대의 경우처럼 이미 포화한 세계 시장을 더 위축하게 될 무역 전쟁을 향해 가고 있음을 의미할 수 있을 것이다. 신자유주의 모델은 지난 20년간 세계자본주의에 기여했지만 이제 그 한계에 다가가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는 제국주의의 수준에서 우리가 목격해온 '각자 나 홀로' 경향을 지금까지는 그것이 더 단단히 억제되어 온 경제 영역으로 전파할 위험이 있다. 또한, 트럼프는 지구온난화가 단지 중국인들이 그들의 수출 추세를 지원하기 위해 고안해낸 장난이라고 선언했고, 기후변화에 대해 존재하는 모든 국제조약에서 철수하겠다고 말한다. 이러한 조약들이 이미 얼마나 제한적인지를 우리는 알지만, 그것들을 없애버리는 것은 우리를 산적한 세계적인 환경재앙들에 훨씬 더 깊이 빠뜨리는 것과 같다.

 

반복하자면, 트럼프는 사회운영에 대한 그 모든 전망을 완전히 잃어버린 부르주아지를 상징한다. 그 모든 허영과 자아도취주의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자신은 미치지 않았으나 점점 선택의 여지가 없어져 가는, 심지어 세계대전의 선택 여지마저 없어져 가는 체제의 광기를 그는 체화한다. 자본주의의 쇠퇴에도 불구하고 지배계급은 자체의 정치적 군사적 기구들을 이용하여, 달리 말해서 한 계급으로서의 의식적 개입을 통해 완전한 통제 상실, 즉 자본주의에 내재하는 카오스로의 충동이 최종적으로 발현되는 것을 거의 한 세기 동안 막아낼 수 있었다. 지금 우리는 이러한 통제의 한계들을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의 적들이 새로운 일시적 수리를 통해 살아남는 능력이 과소평가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계급의 문제는 경제적 정치적 윤리적으로 그 모든 수준에서 부르주아지의 명백한 파산이, 아주 작은 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체제에 대한 혁명적 비판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대열에서 그릇된 분노와 해로운 분열들을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미래에 자본주의를 하나의 인류사회로 대체할 가능성에 심각한 위협을 나타낸다.

 

한편 자본주의의 위기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세계대전이 오늘날 의제가 아닌 이유 중 하나는 노동자계급이 큰 전투에서 패배당하지 않고 여전히 마르지 않은 저항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를 들어 2006년의 프랑스 학생투쟁과 2011년 스페인의 분노한 자들(Indignados) 저항들처럼 지난 십 년 동안 나타난 다양하고 대대적인 운동에서 그것을 목격해왔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저항의 전조들은 경찰에 의한 살해에 반대하는 항의시위와 트럼프에 반대해 이뤄지는 선거 후 시위들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위들은 분명한 노동자계급 성격을 갖지는 않고, 좌익의 직업정치인들에 의해서 그리고 다양한 민족주의적이거나 민주주의적 이데올로기에 흡수될 수 있는 취약점을 갖고 있다. 노동자계급이 포퓰리즘의 위협과 자본의 좌익이 제공하는 잘못된 대안 이 두 가지 모두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훨씬 더 깊이 있는 무언가가 요구된다. 그것은 바로, 정치적으로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우리 계급의 코뮤니스트 전통들과 다시 접촉할 수 있는 프롤레타리아 자립을 위한 투쟁이다. 이것은 당장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혁명가들은 오늘날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만연한 연무(smog)를 특히 모든 가장된 형식들까지 관통해서 길을 비춰줄 수 있는 정치적이고 이론적인 명료성을 위해 투쟁함으로써 그러한 발전을 준비하는 역할을 갖는다.

 

Amos 11.11.2016

국제코뮤니스트흐름 (International Communist Current)

 

<주>

 

1) 트럼프에 대한 공화당의 반대가 얼마나 광범위했는지를 보여주는 한 예로, 그 당의 좌익의 일부로 여겨지기 어려운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트럼프에게 투표하느니 차라리 백지를 제출하겠다고 선언했다.

2) 지배계급의 한 부문에 대항해 다른 한 부문과 '반파시즘 '연합을 결정하는 정책을 우리가 거부하는 것은 특히 이탈리아 공산주의좌파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다. 이것은 반파시즘이 노동계급을 전쟁에 동원하려는 수단임을 정확히 인식했다. 우리의 국제평론(International Review) 101호에 재간행된 빌랑(Bilan)지의 기사, '반파시즘: 혼돈을 위한 공식(Anti-fascism: a formula for confusion)'을 참조하기 바란다.

3) 샌더스에 대해 더 자세한 것은 '트럼프 대 클린턴(Trump v Clinton)' 기사를 참조 바란다.

 

<원문 출처>

http://en.internationalism.org/icconline/201611/14175/president-trump-symbol-dying-social-sys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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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5호] 브렉시트, 트럼프 : 프롤레타리아에게 좋을 것 전혀 없는 지배계급을 위한 후퇴

  • 브렉시트, 트럼프 :

    프롤레타리아에게 좋을 것 전혀 없는 지배계급을 위한 후퇴

     

     TrumpBrexit3.jpg

     

    통제 불능에 이른 국민 투표

     

    우리는 30년 전에 "해체에 대한 테제(Theses on Decomposition)"1)를 통해 부르주아지가 그 자신의 정치 기관 중심에서 바깥으로 해체되어 가는 원심력 경향을 더욱 통제하기 힘들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이것의 구체적인 의미가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 투표와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 후보가 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배계급으로부터 나온 파렴치한 정치적 모험가들은 두 경우 모두에서 지난 30년 동안 경제적 대변동에 고통받아왔던 이들의 포퓰리즘적 저항을 자신들만의 자기-확장에 이용해왔다.

     

    국제공산주의흐름(ICC)은 포퓰리즘의 확장에 대해 인식하고 그 결과를 설명하는데 게을렀다. 이것이 우리가 왜 이제야 포퓰리즘에 대해 - 여전히 조직 내에서 토론이 진행되고 있지만2) - 전반적인 글을 출간하는 이유이다. 이 글은 토론에서 제기된 문제의식을 영국과 미국의 특수한 상황에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빠르게 진화하는 국제 상황에서 완벽한 분석을 내놓으려는 의도는 없지만, 우리는 이 글이 새로운 사상과 토론 심화를 위한 좋은 밑거름이 되길 희망한다.

     

    지배계급이 통제력을 상실한 것이 영국에서의 EU 국민투표와 그 이후의 일들로 나타난 전례 없는 혼잡과 무질서의 광경만큼 명백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때까지 영국의 자본가들은 민주주의 절차에 대한 통제를 놓쳐본 적이 없었고, 자신들의 매우 중요한 이해관계가 보리스 존슨(Boris Johnson)이나 나이젤 파라지(Nigel Farage)와 같은 모험가들 손에 좌지우지된 적도 없었다.

     

    모든 면에서 브렉시트 결과에 대한 준비의 실패는 영국 지배 계급 내부의 혼란을 보여준다. 결과가 발표되고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주요한 탈퇴 운동가들은 그들의 지지자들에게 그들이 약속했던, 그리고 탈퇴 캠페인 버스의 모든 벽에 붙어있었던, 브렉시트 투표가 가져다줄 NHS3)를 위한 매주 3억 5천만 파운드 추가 자금은 본질적으로 '오타'였음을 설명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파라지는 UKIP4)대표 자리에서 사임했고, 모든 브렉시트 쓰레기더미를 그를 따르던 탈퇴 찬성자들의 무릎에 던져버렸다. 보리스 존슨은, 전임 의사소통 담당국장(director of communications) 구토 하리(Guto Harri)는 존슨의 "심장은 브렉시트 운동에 있지 않았다"며, 존슨이 브렉시트를 지지한 대의는 순수하게 기회주의적인 것이며, 데이비드 캐머런(David Cameron)에 도전하는 그의 리더십을 부흥시키기 위해 고안된 자위적 조작이라는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국민투표의 모든 기간 존슨의 선전부장이었으며, 존슨이 영국 총리가 되기 위한 운동을 운영할 예정이었던(그러나 반복적으로 그 일에 관심이 없음을 선언해왔던) 마이클 고브(Michael Gove)는 그의 오랜 친구 존슨이 총리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근거로 후보자 등록 마감 고작 2시간 전에 스스로 총리 후보에 이름을 올리며 존슨의 등에 칼을 꽂았다. 앤드레아 리드섬(Andrea Leadsom)은 고작 3년 전에는 탈퇴가 영국에게 '재앙'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으면서 토리당 대표 경선에 확고한 탈퇴 지지자로 입후보했다. 거짓말, 위선, 말 바꾸기들 - 이 모든 것들은 지배계급의 정치에서 새로운 것은 아니다. 충격적인 것은 세계에서 가장 노련한 지배계급이 어떤 의미에서건 국가에 대한 개인의 야망이나 사소한 맞수들의 비판 너머에 있는 압도적인 역사적, 국가적 이해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영국 지배계급의 역사에서 이와 비견할만한 사건을 찾아보자면, 우리는 쇠퇴하는 중세 질서에 대한 마지막 갈망을 보여준 장미 전쟁(셰익스피어의 헨리 6세로 극화된)으로 되돌아가야 할 것이다.

     

    탈퇴 의견이 승리한 것에 대해 금융과 산업의 사장들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 역시 충격적이다. 결과에 대한 모든 징후가 "당신의 인생에서 보았던 가장 아슬아슬한 승부"(만약 이를 인용해도 된다면, 워털루 전쟁 이후의 웰링턴 대공)5)임을 보여주는 상황이었는데에도. 20%, 그 이후 30%로 달러에 대한 파운드화(Sterling)가 즉각적으로 붕괴했던 것은 브렉시트가 기대한 결과가 아님을 보여주는 징표이다. 파운드화의 가치는 국민 투표 이전에 반영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은행과 사업가들이 사무실을, 또는 사업체를 더블린이나 파리로 옮기는 것과 같이 탈출을 향해 질주하는 가감 없는 장관에 배가 부를 정도였다. 세계에서 해외 직접투자(Foreign Direct Investment, FDI) 의존도가 가장 높은 영국경제 상황에서 조지 오스본(George Osborne)이 즉각적으로 법인세를 15%로 내리기로 한 것은 영국에 기업들을 잡아두기 위한 명백한 긴급 비상조치였다.

     

    제국의 반격

     

    영국의 지배계급은 아직 쓰러지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분별력 있게 존속을 지지해왔던 확고하고 역량이 뛰어난 정치인인 테리사 메이(Theresa May)가 캐머런의 즉각적인 후임 총리가 되었고(애초에 9월 이전에는 그렇게 기대되지 않았다), 언론과 토리당의 국회의원들에 의해 그녀의 반대편인 앤드리아 리드섬과 마이클 고브가 직장을 잃은 것은 국가의 유력한 지배계급 일부에 대해 신속하고 통일된 반응을 할 수 있다는 그들의 진정한 역량을 보여준다.

     

    근본적으로 이 상황은 세계 자본주의의 진화와 계급 사이 힘의 균형에 의해 결정된다. 이것은 자본주의 쇠퇴기라는 현 단계에서 통일된 부르주아 정책이 분해되어가는 전반적인 움직임의 산물이다. 포퓰리즘으로 기울어지는 경향 너머의 추동력은 이 글의 주제가 아니다. 그것은 앞서 언급한 "포퓰리즘의 문제에 기여한 토론"에서 분석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반적인 국제 현상은 특정 국가의 역사와 특징들의 영향 아래에서 구체적인 모습을 띤다. 그래서 토리당은 항상 그 EU에서 영국의 구성원 자격을 실제로 허락한 적이 없는, "유럽연합에 대해 회의적인" 한 측면을 담당해 왔고, 그 근원은 우리가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1. 유럽의 해안에서 떨어져 있는 영국의 - 그리고 그 전에는 잉글랜드의 - 지리학적 위치는 영국이 대륙의 국가들이 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유럽의 경쟁으로부터 분리된 채로 남아있을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해 왔다. 상대적으로 작은 크기, 지주 권력의 부재 또한 프랑스가 19세기 이전, 또는 독일이 1870년 이후 그러했던 것처럼 유럽 지배를 바랄 수 없도록 했고, 오직 주요 강국들이 서로가 서로를 적대하도록 하고, 그들 중 어느 나라와도 연루되는 것을 회피함으로써 그들의 생존의 이해를 보호할 수밖에 없었다.

     

    2. 영국의 섬으로서의 지리학적 위치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산업화한 국가의 지위는 대항해시대, 세계 제국주의의 개막을 결정지었다. 적어도 17세기부터 영국의 지배계급들은 전 세계에 모양새를 갖추었고, 그것은 다시 그들에게 유럽 정치로부터 어느 정도의 거리감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이러한 상황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급격하게 변했다. 영국의 세계 강대국으로서의 지배적인 지위는 더는 유지 가능하지 않았고, 근대적 전쟁 기술들 - 공군, 장거리 미사일, 핵무기 – 로 인해 유럽 정치로부터의 고립이 더는 선택사항이 아님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의 변화를 가장 먼저 깨달은 사람 중 하나가 윈스턴 처칠(Winston Curchill)이다. 그는 1946년 "유럽 연방국(United States of Europe)"을 만들자고 요구하였으나 보수당 내에서 그의 견해는 전적으로 승인되지 못했다. <편집자 주 : 처칠의 구상에서 유럽연방국에 영국이 포함되는지는 명확하지 않아 논쟁이 되고 있다.> 특히 소련(USSR)의 몰락과 1990년대 독일 통일이 실질적으로 유럽에서 독일의 권력을 증가시킴에 따라 EU의 구성원이 되는 것에 대한 반대의견이 증가했다.6) 국민투표 운동 동안 보리스 존슨은 EU가 “히틀러” 독일 지배의 도구라고 이야기하는 중상모략을 하였으나, 이러한 사건은 그가 처음이 아니었다. 거의 똑같은 언어로, 그와 똑같은 감수성들을 이미 1990년에 니콜라스 리들리(Nicholas Ridley)가, 그 이후에는 대처 정부의 총리가 표현한 바 있다. 그것은 전후 정치 기관 내에서 권위와 규율의 상실을 의미하는 상징이었다. 다만 리들리는 정부로부터 즉각 사임할 수밖에 없었던 반면, 존슨의 반향은 새로운 내각의 구성원에게 영향을 주었다.

     

    영국이 세계의 가장 위대한 제국주의 국가로서 한때 누렸던 지위. 그 지위의 상실은 영국 국민(노동계급을 포함하여)의 심리적, 문화적 현상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에 대한 국가적 집착은 - 영국이 마지막으로 독립적인 세계 강대국으로서 행동할 수 있었던 - 이를 완벽하게 묘사한다. 영국 부르주아지의 일부와 더 많은 소부르주아지는 영국이 오늘날 오직 2등급, 또는 3등급의 강대국일 뿐이라는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탈퇴 운동가들의 다수가 EU의 "족쇄"로부터 영국이 자유로울 수만 있다면, 세계는 영국의 상품과 서비스를 사러 몰려들 것이라고 믿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영국 경제가 매우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할 가능성이 큰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제국주의 권력의 상실에 대해 바깥 세계로 향하는 분노와 적개심은 미국 국민이 자신들의 지위 일부를 잃었다고 인식한 결과(트럼프의 "다시 위대한 아메리카를 만들자"는 지속적인 테마)로서의 감성들, 그리고 냉전 시기 그들이 자신들의 법칙을 부여할 수 있었던 능력의 상실에서 비롯되는 감성들에 견주어볼 만하다.

     

    포퓰리즘에 대한 양보로서의 국민투표

     

    보리스 존슨의 포퓰리즘 광대 짓은 더욱 극적이었고, 더욱 많은 미디어로부터의 주목을 받았다. 그 후 데이비드 캐머런의 낡은, 최상위 계급의 "책임감 있는" 페르소나가 발휘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캐머런은 지배 계급 내에서 얼마나 부패가 진행되었는지를 더 잘 보여주는 지표이다. 하지만 지난 총선에서 이기려고 당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국민투표라는 카드를 이용한 무대를 만든 것은 캐머런이었다. 바로 그 성격으로 인해 국민투표는 의회 선거보다 통제하기 훨씬 어렵고, 그러하기에 언제나 도박을 의미한다.7) 카지노에 중독된 것처럼, 캐머런은 반복하여 스스로 도박사임을 드러내었는데, 처음에는 아슬아슬하게 그가 승리했던 스코틀랜드 독립에 대한 국민투표였고, 그다음이 브렉시트였다. 그의 보수당은 언제나 경제, 영국(연합 왕국)8), 그리고 국방의 최고의 보호자임을 자처해 왔는데 이번에는 이 세 가지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고 말았다.

     

    결과 조작이 어려운 상황에서, 국가 이해의 중요한 문제에 대한 국민투표는 지배계급에 있어서 대부분 결과를 보장할 수 없는 위험 요소이다. 의회 민주주의는 전통적, 이데올로기적 의미에서, 그리고 심지어 쇠퇴기의 그릇된 형식에서도 그러한 문제에 관한 결정은 전체 대중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문가들과 이해관계자 그룹들의 조언을 받은(로비를 받은) “선출된 대표자들”에 의해 내려지게 되어 있다. 부르주아지의 관점에 의하면, 이를테면 2004년 EU의 헌법 조약(Constitutional Treaty)과 같은 복잡한 문제에 대해, 대부분의 투표자들이 조약 문서를 읽으려고도 그리고 읽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물어서 결정하는 것은 완전히 미친 짓이다. 국민투표들에서 자주 “잘못된” 결과를 얻었던 지배계급이 이 조약을 연기시켰다는 것은 그다지 놀랍지도 않다(프랑스, 네덜란드, 최초에는 아일랜드에 대해).9)

     

    오늘날 영국 부르주아 정당 내부에 메이 정부가 프랑스와 아일랜드 정부가 헌법 조약에 대한 국민투표를 망친 뒤 했던 것과 같은 속임수를 쓰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 국민투표를 무시하거나 뒤집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적어도 단기간에 그렇게 될 가능성이 적다고 보는데, 그 이유는 영국 부르주아지가 그 추종자들보다 더 민주주의를 신뢰해서가 아니라, 정확하게는 “대중의 의지”의 “민주주의적 표현”을 무시하는 것이 오직 포퓰리즘 사상에 신뢰를 부여하고 그들을 보다 위험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의 테리사 메이의 전략은 EU로부터 탈퇴하게 된 영국을 조직할 책임을 떠맡은 채, 장관직에서 최대한 잘 해보려고 애쓰고, 가장 잘 알려진 탈퇴 찬성자 셋과 함께 브렉시트의 길을 멈추는 일을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광대인 존슨을 국제부 장관으로 임명하는 것 - 해외 인사들을 공포와 유쾌함과 불신이 뒤섞인 감정으로 환영하는 것 - 도 분명 이러한 폭넓은 전략의 일부이다. 존슨을 EU 탈퇴 협상이라는 논란이 많은 자리에 앉힘으로써, 메이는 탈퇴 운동가들의 주요한 발언들이 거의 확실하게 적대적인 언어로 가득할 대부분의 격렬한 비난 - 그리고 불신 - 에 직면할 것을, 그리고 이는 측면 저격에서 벗어나게 해 줄 것을 확신했다.

     

    특히 유럽이나 미국의 포퓰리즘 운동에 찬성하는 이들이 갖는, 엘리트가 단순히 그들에게 불편한 결과를 무시하기 때문에 모든 민주주의 과정은 협잡이라는 인식은 지배계급의 체계로서의 민주주의 효율성에 실질적인 위협이다. 정치에 대한 포퓰리즘 개념에서는 “사람들에 의한 직접적인 결정”이 기존의 정치 엘리트에 의한 선출된 대표자들의 부패를 피하도록 해 줄 것이다. 이것이 독일이 바이마르 공화국의 부정적 경험과 나치 독일이 국민투표를 이용했던 경험 이후 전후(post-war) 헌법에서 그러한 국민투표를 배제한 까닭이다.10)

     

    탈선한 선거

     

    만약 브렉시트가 통제에서 벗어난 국민투표였다면, 2016년 미 대선 후보로 트럼프가 당선된 것은 정도를 벗어난 선거이다. 트럼프가 후보가 되었다는 것이 처음 공언되었을 때에는 그 사실이 거의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선두는 부시 왕가, 공화국 귀족들의 선호하는 선택, 그리고 잠재적인 강력한 기금 조달자(언제나 미국 선거에서 결정적인 고려사항)는 젭 부시(Jeb Bush)였다. 그러나 모든 기대를 저버리고, 트럼프는 초반 프라이머리에서 승리했고, 그다음 주(state) 선거에서 계속 이겨나갔다. 부시는 ‘픽’ 소리를 내며 쓰러져 나갔고, 다른 후보들도 다르지 않았다. 공화당 대표자들은 트럼프를 이길 가능성이 있는 유일한 후보는 테드 크루즈(Ted Cruz)뿐이라는 불쾌한 전망에 직면해야 했다. 그는 자기네 상원 의원들로부터 완전히 신뢰할 수 없는, 그리고 트럼프보다 아주 조금 덜 자기중심적이고 자기만족적인 사람으로 여겨지는 인물이었다.

     

    트럼프가 클린턴을 이길 가능성은 그 자체로 정치적인 상황이 얼마나 비정상적으로 돌아가는지 보여주는 지표이다. 그러나 벌써 트럼프 후보는 제국주의 동맹들의 모든 시스템을 통해 충격을 선사하고 있다. 미국은 70년 동안 그 효과성이 상호 방어의 불가침 - 하나에 대한 공격은 모두에 대한 공격 - 에 의존하는 나토(NATO, 북대서양 조약기구) 동맹의 보증국이었다. 트럼프가 만약 러시아가 발트 해 국가들을 공격했을 때 “그들이 대가를 치렀는지”에 대한 그의 판단에 미국의 반응이 달려있을 것이라고 선언한 방식으로, 미래의 미국 대통령이 NATO 동맹과 그 조약의 의무를 존중할 준비가 되었음에 의문을 제기한다는 때가 온다는 것은, 푸틴의 마피아 국가에 직접 대면하고 있는 동유럽 지배계급의 등골을 오싹하게 할 것이며, 중국이라는 용으로부터 보호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일본, 대한민국, 베트남, 필리핀 등의 아시아 국가들은 말할 필요도 없이 그러할 것이다. 우크라이나에 러시아 군대는 없다는 트럼프의 최근의 발언(러시아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크리미아(크림 반도)가 우크라이나 일부라고 여긴다는 사실을 완전히 모르는 것)을 보았을 때, 트럼프가 단순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를 것이라는 가능성은 큰데 이것 역시 다른 이들에게 매우 위급한 상황임을 알려준다.

     

    그뿐만 아니라 트럼프는 러시아 정보국의 민주당 IT 시스템 해킹을 환영하고 푸틴을 초대하기까지 했다. 그것이 트럼프에 조금이라도 얼마나 피해를 줬는지는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1945년 이후 공화당이 극단적으로까지는 아니어도 격렬하게 반러시아적이었으며, 어떤 비용을 들여서라도 강력한 군대 조직과 세계 각지에 배치된 다수의 군대를 옹호하는 것(이것은 재정 적자 수준을 급등하게 한 레이건의 엄청난 군비 증강이었다)을 떠올려 볼 가치는 있을 것이다.

     

    공화당이 그 후보를 극단적으로 위험하게 취급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1964년, 프라이머리에서 종교적 우익과 “보수 연합”의 지지로 인해 승리한 배리 골드워터(Barry Goldwater)는 오늘날 “티 파티 운동”의 선구자였다. 그의 정책은 적어도 일관적이었다. 연방 정부 예산, 특히 사회 안전망에 대한 예산의 대대적인 감축, 군비 증강, 소련에 대항하는 핵무기의 사용 준비 등. 그것은 전통적인 극우 정책이었으나, 미국의 국가 자본주의의 필요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고, 골드워터는 선거에서 압도적으로 패배했는데, 이는 공화당의 지배층이 그를 지원하는 데 실패한 것에 부분적인 원인이 있었다.

     

    트럼프는 단지 골드워터 2.0 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리고 그 차이는 유익하다. 골드워터 후보는 그 시기 “티 파티 운동”에 의해 대표되는, 골드워터의 패배 이후 몇 년 동안 물러서야 했던 - 보수당의 권력 장악을 대표한다. 최근의 10~20년 동안 이러한 경향이 돌아왔으며, 이 경향이 GOP11) 권력을 다소간 성공적으로 차지해 왔음은 비밀도 아니다. 그러나 골드워터 지지자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보수 연합”이었다. 그들은 심각한 사회 변화(페미니즘, 시민권 운동, 베트남 전쟁 반대의 시작, 전통적인 가치의 몰락)를 경험하는 미국 내에서 진정으로 보수적인 경향을 대표했다. 비록 많은 티파티의 “원인”이 골드워터와 같을지라도, 맥락은 그렇지 않다. 그가 반대하는 사회적 변화는 이미 일어난 것이며, 이와 마찬가지로 티파티는 보수의 연합이라기보다 신경증적인 반응의 동맹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이러한 사회적 “문화적” 문제들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고 기본적으로 미국의 군사력과 이윤을 가져다주는 자유 무역에만 관심이 있는 대(大)부르주아지의 어려움을 증가시켰다. 공화당 프라이머리에 나서는 자가 스스로 다음과 같은 문제들에 대해 “완전무결함”을 증명해야 하는 것은 자명한 이치가 되었다: 낙태(당신은 “생명을 존중하는 이”가 되어야 한다), 총기 규제(총기에 저항하기 위해), 재정적 보수주의와 낮은 세금, “오바마케어”(사회주의, 이는 철폐되어야 한다. 실제로 테드 크루즈의 신용 일부는 상원에서 오바마케어에 저항하는 대중 호소 필리버스터를 한 것에 바탕을 뒀다), 결혼(신성한), 민주당(만약 사탄이 당을 만든다면, 그것은 민주당일 것이다). 자, 짧은 몇 달의 기간 트럼프는 효과적으로 당의 핵심 골자를 빼버렸다. 우리는 그 스스로 낙태, 총기 규제, 결혼(그 스스로 세 번이나 했다)에 대해 “신뢰할 수 없음”을 보여준 인물, 과거 스스로 악마 힐러리 클린턴에게 기부했던 인물이 후보가 되었음을 보게 되었다. 여기에 더하여, 그는 최저 임금의 인상,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오바마케어의 유지, 고립주의 해외 정책으로의 회귀, 재정 적자 폭의 증대, 그리고 미국 경제에 필수적인 저임금 노동을 제공해 온 천백만의 이민자들의 추방을 제안한다.

     

    브렉시트에서의 영국의 토리당처럼, 공화당과 잠재적인 미국의 모든 지배 계급은 자신들의 제국주의적인 입장과 경제적 계급의 이해관계에 대해 완전히 불합리한 정책을 가진 말안장 위에 스스로 올라탔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함의

     

    우리가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후보 당선이 경제적, 정치적, 그리고 제국주의적 수준에서 더욱 불안정한 시대로 안내할 것이라는 점이다. 경제적 수준에서 유럽 국가들 - 우리는 이들이 세계 경제의 중요한 부분이며 가장 큰 단일 시장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은 이미 허약한 상황에 부닥쳐있다. 그들은 2007/8년의 금융 위기와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위협을 경험하였으나, 그것을 극복하지는 못했다. 영국은 주요 유럽 경제권에 남아있지만, EU와의 연결을 끊어내는 오랜 과정은 예측할 수 없게 파탄 날 것이며, 이는 적어도 금융 수준에만 머물러 있지 않을 것이다. 이를테면 브렉시트가 유럽의 은행, 보험, 그리고 주식거래의 중심지인 런던에 어떠한 영향을 가져올지 아무도 모른다. 정치적으로 브렉시트의 성공은 유럽 대륙의 포퓰리즘 정당들만을 고취하고 그들에게 큰 힘을 실어줄 것이다. 내년 반유럽주의자이며 포퓰리스트인 마린 르 펜(Marine Le Pen)이 있는 국민 전선이 프랑스 대선에서는 가장 큰 단독 정당이다. 유럽 강대국들의 정부는 영국의 유럽으로부터의 분리를 가능한 부드럽고 마찰 없이 이뤄내려는 열망과 영국에 대한 어떤 양보(이를테면 인구의 이동은 제한한 채 시장에의 접근은 허락하는)도 다른 이들에게 – 지적하자면 폴란드와 헝가리와 같은 국가들에 - 같은 생각을 하게 할 수 있다는 실질적 두려움 사이에서 갈가리 찢겼다. 과거 유고슬라비아 국가들을 통합함으로써 유럽의 남동쪽 국경을 안정시키려는 시도는 완전히 중단될 것이다. 터키 에르도안(Erdogan)의 쿠데타와 시리아 난민들을 공갈·협박의 비열한 게임의 말로써 쓰는 것에 대해 EU는 통일된 반응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비록 EU 그 자체가 제국주의 동맹이었던 적은 없으나 그 구성원의 대부분은 NATO의 구성원이기도 하다. 따라서 유럽의 단합을 약화시키는 어떤 것도 러시아가 동유럽의 측면, 우크라이나와 발트 해 국가들을 무너뜨리는 압력에 반격하는 NATO의 능력에 도미노 효과를 불러올 것이다. 러시아가 가끔 프랑스의 국민 전선에 자금을 지원하고, 독일의 페기다(Pegida: Patriotische Europäer gegen die Islamisierung des Abendlandes, 서양의 이슬람화를 반대하는 애국 유럽인) 운동에는 자금을 지원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 브렉시트 국민투표의 유일한, 가장 뚜렷한 승자는 사실 블라디미르 푸틴이다.

     

    우리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트럼프 후보자는 이미 미국의 신뢰성에 한 방 펀치를 날렸다. 핵무기 버튼에 손가락을 얹은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생각은, 반드시 말해둬야겠는데, 매우 두려운 전망이다.12) 그러나 우리가 수차례 이야기한 것처럼, 오늘날 불안정과 전쟁의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그 지배적인 제국주의적 지위를 모든 이민자에 저항하여 유지하고자 하는 미국의 결의이며 이 상황은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기구에 대한 분노

     

    보리스 존슨과 도널드 트럼프는 수다쟁이라는 것 외에 다른 것도 공유하고 있다. 둘 다 정치적 모험주의자이며 국가의 이해를 넘어서는 어떤 원칙이나 감성도 결여하고 있다. 둘 다 자신들의 메시지를 왜곡시키든 바꾸든 그들의 청중이 듣고 싶어 하는 것을 들려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들의 익살은 그것들이 터무니없어 보일 때까지 미디어에 의해 부풀어 오른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은 완전히 하찮은 것들이며 세계화의 패배자들의 울부짖는 분노, 절망, 그리고 부유한 엘리트와 자신들의 비참함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민자들에 대한 증오를 쏟아내는 창구일 뿐이다. 그러므로 트럼프는 가장 무도하고 모순적인 발언을 대충 지껄여버린다. 그의 지지자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그가 이야기하는 것은 그들이 듣길 원하는 것이다.

     

    이것은 존슨과 트럼프가 똑같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차이는 개인적인 인격의 차이라기보다 그들이 속한 지배계급의 차이와 관계가 있다. 영국 부르주아지는 수 세기 동안 세계무대에서 중요한 지배적인 역할을 해 왔다. 이에 비해 미국의 거칠고 대담하며, 자기-몰입적인 국면은 제2차 세계대전에 진입하는, 루스벨트의 고립주의자들에 대한 승리와 더불어 끝났다. 미국 지배 계급의 중요한 분파는 여전히 바깥 세계에 대해 무지한 채로 남아있다. 어떤 이는 그들이 발달이 늦은 성인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선거의 결과는 우리에게 노동 계급의 상황에 대해 무엇인가를 이야기해 줄지언정 절대 계급의식의 표현은 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이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되었든 미국에서의 트럼프에 대한 지지가 되었든, 프랑스의 국민 전선의 마린 르 펜이 되었든, 또는 독일의 포퓰리즘인 페기다와 독일을 위한 대안(Alternative für Deutschland, AfD)이 되었든, 이러한 당과 운동이 노동자의 지지를 얻는 곳에는 지난 40년 동안 자본주의 경제 변화로부터 가장 고통받은 이들이 있음을, 그들의 삶의 조건에 대한 좌우익을 막론하고 정부로부터 끊임없이 공격을 받고 패배한 수년의 경험이 그들에게 지배 엘리트를 위협할 방법은 똑같은 엘리트에 대한 저주를 정책으로 하는 무책임한 정당을 향해 보란 듯이 투표하는 것일 뿐임을, 합리적으로 결론 내린 이들이 있는 곳임을 모든 투표 수치는 보여준다. 비극이라면, 이러한 노동자들이 정확히 1970년대 투쟁에 가장 대중적으로 참여했던 이들이라는 점이다.

     

    브렉시트와 트럼프 선전의 공통 주제는 “우리”는 “다시 통제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우리”가 무엇이 되었든 우리는 우리의 삶에 대해 실제로 통제해 본 적 없다. 보스턴 UK의 한 거주자가 “우리는 단지 모든 것들을 원래 있었던 자리로 되돌리고 싶을 뿐입니다”고 이야기한 것처럼. 그때란, 일자리가 있었을 때, 그 일자리가 적절한 임금을 보장해 줄 때, 노동 계급 공동체의 사회적 연대가 실업과 태만으로 무너지지 않았을 때, 변화가 뭔가 긍정적이고 조절 가능한 속도로 일어나는 것처럼 보였을 때이다.

     

    브렉시트 투표가 영국에 노골적인 인종차별주의자가 목조 뒤에서 기어 나오는 것이 더욱 자유롭다고 느끼는 새롭고 추악한 분위기를 조장했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이 진실이다. 그러나 브렉시트 또는 트럼프에 이민을 멈추라고 투표한 많은 - 아마도 절대다수 - 이들은 그렇게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니다. 그보다 그들은 외국인 혐오로부터 고통받고 있다. 외국인에 대한 공포, 알려지지 않은 자에 대한 공포. 그리고 이 ‘알려지지 않은 자’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경제 그 자체이다. 자본주의 경제는 생산의 과정에서 실제의 사회관계를 마치 자연적인 힘으로, 요소로, 마치 날씨와 같이 통제 불가능한 것으로, 그러나 노동자들의 생활에 영향력은 훨씬 파괴적일 수 있는 것으로 표현하여, 본질적으로 신비스럽고 이해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 시대와 같은 과학적 발견의 시대, 사람들이 더는 궂은 날씨를 마녀가 일으킨 것이라고 믿지 않는 시대에, 그들의 경제적인 비통함이 그들의 불행한 이민자 동료들에 의해 일어났다고 믿을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다는 사실은 매우 끔찍한 아이러니이다.

     

    우리가 직면한 위험

     

    우리는 이 글을 “해체에 대한 테제”를 언급하면서 시작했다. 해체에 대한 테제는 거의 30년 전인 1990년에 썼다. 우리는 그 테제를 인용하며 결론을 짓고자 한다.

     

    “우리는 특히 프롤레타리아가 스스로 그 역사적 책무의 수준에 도달하는 능력이 해체될 위험에 대해 명확히 해야 한다. (…) 노동계급의 힘을 구성하는 서로 다른 요소들은 바로 이 이데올로기 해체의 다양한 측면들에 직면한다.”

     

    ● 연대와 집단적 행동은 ‘자신의 이익을 찾는’ 원자화에 직면한다.

    ● 조직의 필요는 모든 사회적 삶의 기반이 되는 관계의 파괴, 사회적 해체에 직면한다.

     

    ● 프롤레타리아의 미래에 대한 신뢰와 그 자신의 힘은 지속해서 사회에 만연한 절망과 허무주의로 활력을 잃는다. 의식, 명석함, 일관되며 통일된 생각, 이론의 달콤함은 환상, 마약, 분파주의, 신비주의,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사상에 대한 거부 또는 파괴의 가운데로 곤두박질치는 어려운 시기를 겪을 것이다."

     

    그 위험은 바로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것들이다.

     

    포퓰리즘의 유행은 지배계급에 위험한데, 포퓰리즘이 지배계급의 정치 기관들을 통제할 능력을 위협하는 동시에, 지배계급의 사회적 지배를 지탱하는 기둥인 민주주의의 신비화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퓰리즘은 프롤레타리아에게 아무것도 제공하지 않는다. 반대로, 자본주의를 위협하는 혼란에 대해 어떤 대안적 전망도 제공하지 못하는 무능력이야말로 프롤레타리아의 허약함이며, 그것이 포퓰리즘의 유행을 가능하게 했다. 프롤레타리아만이 오늘날 사회가 직면한 막다른 길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스스로 유혹의 말 - 포퓰리스트 선동가들이 약속하는, 어떤 경우에라도 결코 존재할 수 없는 과거로의 회귀라는 불가능한 약속에 자신을 맡긴다면,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다.

     

    2016년 8월, Jens

    국제코뮤니스트흐름 (International Communist Current)

     

    <주>

    1) International Review 107, 2001년 출판

    2) International Review의 이 주제를 보라.

    3) 국가 의료 제도(National Health Service)

    4) 영국 독립당(United Kingdom Independence Party): 1991년 세워진 포퓰리즘 정당. 그 선전은 본질적으로 EU 탈퇴와 이민 반대이다. 역설적으로 유럽 의회에서 가장 거대한 단독 영국 정당을 구성하는 22명의 MEPs 를 보유하고 있다.

    5) EU와 영국 재무부가 탈퇴 캠프가 승리할 경우 상황에 대한 계획에 대해 일정정도 노력을 기울인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준비가 부적절하며 - 아마도 보다 적절하게는 - 아무도 탈퇴파가 국민투표에서 승리할 것이라도 진실로 기대하지 않았다는 것은 명백해 보인다. 이것은 탈퇴파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진실이었다. 명백히, 파라지는 국민투표 날 잔류파의 승리를 인정했으나, 잔류파가 패배한 다음 날이 되어서야 그 사실을 깨닫고 충격을 받았다.

    6) 1973년 보수당 정권 아래 영국은 유럽 경제 공동체(EEC)에 가입했다. 그 구성원 자격은 1975년 노동당 정부의 국민투표에 의해 승인되었다.

    7) 대처가 의회 선거에서 40% 이상의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10년 넘게 권력을 유지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8) 잉글랜드, 웨일즈, 스코틀랜드, 그리고 북아일랜드의 통합 왕국 연합이라고 이야기된다.

    9) 이러한 불편한 결과에 따르면, 유럽 정부들은 헌법 조약을 채택하지 않았고, 2009년 리스본 조약으로 기존의 협정을 단순히 수정함으로써 가장 본질적인 요인을 구했다.

    10) 스위스와 캘리포니아에서 있었던 국민투표와 구분해야 한다. 그들은 역사적으로 정립된 정치적인 과정의 일부였다.

    11) “Grand Old Party”, 1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사용된 공화당의 구어식 표현이다.

    12) 골드워터 패배의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전술적 핵무기를 사용할 준비가 되었다고 선언한 것이다. 존슨의 선전은 골드워터의 슬로건 “당신의 가슴 속에서 당신은 그가 옳음을 알고 있다”와 대비되게 “당신의 창자에서, 당신이 그가 괴짜임을 안다”라는 슬로건으로 맞받아쳤다.

     

    <원문출처>

    http://en.internationalism.org/international-review/201608/14087/brexit-trump-setbacks-ruling-class-nothing-good-proletari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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