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2024/02/22

선거주의-부르주아 선거연합은 노동자 투쟁과 자기조직화의 큰 걸림돌이다!

선거주의-부르주아 선거연합은 노동자 투쟁과 자기조직화의 큰 걸림돌이다!
 
photo_2019-01-11_12-10-51.jpg
 
부르주아 총선을 50여 일 앞두고 선거주의로 점철된 '진보정치세력'의 실체가 다시 한번 드러났다. 민주당이 주도하고 진보당, 새진보연합이 참여하는 비례대표 위성정당 '민주개혁진보연합'이 다음 달 3일 창당한다. 이들은 비례대표 나눠 먹기와 지역구 후보단일화를 결정했다. 
 
민주노총은 지난 9월 '노동자 직접정치', '윤석열정권 퇴진과 불평등체제 전환 투쟁 확대·강화', '진보정치세력의 연대연합 실현', '친자본 보수양당 지지를 위한 조직적 결정 금지 및 전·현직 간부의 친자본 보수양당 지지 행위 금지'를 총선방침으로 결정했다. 하지만, 조직 노동자 운동 내 다수파 세력인 진보당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민주당의 비례대표 위성정당에 참여하기로 했다. 그들은 윤석열 정권 심판을 명분으로 부르주아 선거연합(민주개혁진보연합)의 일원이 되었지만, 그것은 지난 수십 년간 진보-노동을 팔아가며 지속해 온 민주대연합-야권연대 사기극의 연장선일 뿐이다. 
 
이는 선거주의, 조합주의에 기반을 둔 민주노총 정치·총선방침의 한계이기도 하다. 그동안 여러 차례 파산선고를 받은 실패한 진보(좌파)정당 운동과 선거 전술에 대한 반성 없이, 야권연대/부르주아 정치로의 투항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없이, 정치세력 사이의 사상/노선 차이를 통일할 강령과 실천적 검증을 통한 정치적 신뢰 없이, 계급 정치의 광장이 아닌 부르주아 정치 서커스 판에 뛰어들어 연대연합 실현과 연합정당을 건설하겠다는 '선거주의' 폐해가 진보당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선거주의-부르주아 선거연합(위성정당, 후보연대-단일화) 참여는 노동자 투쟁과 자기조직화의 큰 걸림돌이다. 우리는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모든 선거주의 세력과 단절하고 생존권 투쟁 전면화를 통해 대대적인 반격에 나설 것을 호소한다.
 
우리는 민주노총의 정치·총선방침을 근본적으로 반대하며, 선거주의와 조합주의를 넘어선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투쟁 확산, 노동자 민주주의 실현, 계급적 연대 강화를 통한 노동계급 자기조직화를 호소한다.
 
지난 수십 년간 선거에서 민주노총 조합원조차 민주노총 지지 후보보다 부르주아 정당과 정치인에게 압도적으로 많이 투표했다. 이것이 부르주아 선거에 포섭된 계급의 현실이며, 그동안 민주노총과 이른바 진보정당들이 부르주아 정치에 참여한 선거주의-조합주의 중심 노동자 정치의 결과다. 이들의 곁에는 ‘계급의식’ 발전에 도움이 된다며 부르주아 선거에 참여하는 ‘선거주의 좌파’ 가 늘 함께하고 있다. 말로는 선거주의를 비판하면서 자신들이 참여하는 선거는 훌륭한 전술로 둔갑한다. 그들은 노동자 정치를 노동계급 고유의 영역인 투쟁의 장에서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선거 공간에서 할 수 있다면서 부르주아 잔치판에서 표 구걸하는 것을 ‘선거 투쟁’으로 미화해 왔다.
 
그동안 이러한 선택을 반복해 온 노동계급의 현실은 어떠한가? 여러 차례 정권이 바뀌고, 정치인이 바뀌고, 노동자 출신이 국회에 진출하기도 했지만, 노동자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후퇴했고, 누구도 안전하고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을 수 없는 위험한 사회에서 살게 되었다. 가짜 ‘노동 존중’을 표방했던 문재인 정부에서도, 노골적으로 친(親)자본 정책을 펼치는 윤석열 정부에서도 여전히 생존권 위협과 온갖 차별에 맞서 투쟁하는 것 말고는 어떠한 해결책도 없다. 정치인들의 약속은 지키지 못할 약속의 상징이 된 지 오래다. 또한, 선거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이른바 진보/좌파/노동 정당들이 자신에게 투표하고 집권할 때까지 기다려달라는 약속도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그들은 제대로 된 반성도 없이 선거철만 되면 선거연합, 독자 후보, 비판적 지지까지 반복되는 선거 전술의 재탕과 이합집산 속에서 노동자 운동 전체의 쇠락을 가속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낡은 운동과 철저히 단절하고 새로운 운동을 창출하기 위해 부르주아 선거 자체를 반대하면서 자본주의를 넘어선 노동계급 정치, 코뮤니스트 전망을 제시해 왔다.
 
부르주아 의회 제도는 자본주의 국가의 폭력적 통치를 은폐하여 상대적으로 덜 야만적인 폭력을 사용하고, 주기적인 선거제도를 통해 지배계급의 분파 사이에서 정권을 교체할 수 있게 한다. 선거와 의회제도는 노동계급에 자신을 다스릴 사람을 직접 선출하고 자신이 정치권력에 참여하고 있다는 환상에 빠지게 한다. 선거에 참여하는 순간 자신이 선출한 정치인에게 권력을 위임했다고 생각하고, 투표 행위로 자신도 권력의 일부로 참여한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부르주아 정당 사이 노선과 정체성이 점점 흐려지는 오늘날에도 다수 유권자는 지역/비례대표 후보의 당적에 따라 투표한다. 하지만 일단 당선되고 나면, 유권자의 직접 통제를 받지 않으며 표가 필요한 시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유권자와 분리되어 행동한다. 그들은 국회에서 자신을 선출해 준 유권자 뜻과는 상관없이 소속 정당과 자신을 위해 정치 활동을 할 뿐 유권자의 요구를 위한 진정한 활동은 하지 않는다. 이것이 대의제의 의미이다. 유권자들은 국회의원에게 유권자를 위해 일하도록 위임했지만, 그들이 일하지 않거나 반(反)하는 일을 해도 다음 선거까지 그들을 바꿀 힘이 전혀 없다. 물론 국회가 모든 유권자에게 발언권과 결정권을 갖게 하는 근본 변혁 방안을 내놓을 가능성도 전혀 없다. 부르주아 선거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지배 질서 유지를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넘어서 자본주의 지배 질서 자체를 바꾸거나 착취와 억압 제도를 폐지하는 것을 절대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실의 부르주아 선거에서도 주인공은 ‘유권자’가 아니라 ‘부르주아 정치세력’과 ‘자본’이고, 모든 선거 과정과 결과는 그들이 정한 규칙대로 작동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착취체제를 지키기 위해 노동 악법을 함께 만들고 국가보안법을 유지해 온 장본인들이다. 또한, 장애인, 빈민, 이주노동자,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배제하는 체제의 수호자이기도 하다.
 
부르주아 정치에서는 대중 투쟁의 성과조차도 전문 정치인들이 위임받아 정파적으로 이용한다. 우리는 그동안 부르주아 정치에 기댄 투쟁이 어떠한 참담한 결과를 가져왔는지, 투쟁으로 지켜내지 못한 권리가 어떻게 한순간에 무너지는지를 수없이 경험해 왔다. 따라서 노동계급은 노동자의 해방이 의회의 장악이나 다수파 선출을 통해 얻어질 수 있다는 환상을 가져서는 안 된다. 노동계급의 권력 장악과 완전한 정치참여는, 자본주의와 그 국가기구의 파괴를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
 
자본주의 쇠퇴기, 모든 부르주아 선거는 사기와 다름없다. 매일 세계 곳곳에서 수백 번 넘는 투쟁이 일어나고, 노동자들은 1년에만 수만 번의 투쟁을 벌인다. 하지만, 고작 몇 년에 한 번 치루는 선거만으로 노동계급은 자신이 누려야 할 권력을 빼앗기고, 대부분의 일상에 대한 지배를 지배받는다. 이것이 노동자들이 선거를 통해 노예가 되는 이른바 ‘민주적인 권리’의 실체다. 노동자들이 이러한 부르주아의 정치와 선거제도에 복종하는 한, 자본주의를 결코 넘어설 수 없다. 대의제와 반대로, 노동자 직접정치-노동자 민주주의는 국회의원이 아닌 평의회 대표자를 선출한다. 평의회는 그들을 선출한 단위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 한 번 국회의원을 선출하면 다음 선거 때까지 유권자가 통제할 수 없는 국회와는 다르다. 평의회의 대표들은 그들을 선출한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선출된 임무를 수행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소환할 수 있다. 노동계급의 역사는 진정한 노동자 민주주의가 대중 사회에서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평의회에서 조직된 노동계급은 1차 세계대전의 학살을 종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것은 '전쟁이냐 혁명이냐'의 시대에 '노동자 민주주의'가 필수적인 이유이다.
 
자본주의 쇠퇴기에 혁명의 과제는 노동계급이 부르주아 국가의 모든 기구와 제도(의회제도 포함)를 파괴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에 의회와 선거에 참여하는 것은 그 어떠한 혁명적 의도와는 무관하게 단지 죽어 가는 자본주의 껍데기인 의회에 한 줄기 생명을 불어넣는 일일 뿐이다. 비록 지금 소수이지만, 선거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다수가 사회를 통제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려는 노동자들이 우리의 희망이다. 자신의 삶을 위선과 불평등의 부르주아 정치에 맡기지 않고, 투쟁을 통해 스스로 민주주의를 창조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평등하고 모두가 참여하는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노동계급의 미래이다. 
 
노동계급은 4년, 5년마다 주기적으로 벌어지는 부르주아 선거 사기극에 맞서 선거 참여 방침이 아닌 계급적 입장에서 '선거 거부'를 전면적으로 제기하고 실행해야 한다. 이는 정치적 무관심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 현장과 거리에서 계급투쟁을 재개하고 노동자평의회와 혁명당 건설에 나서기 위해서이다. 진정한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계급의식을 갉아먹는 대의제와 수동성을 강요하는 부르주아 선거를 넘어 노동자 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노동계급 정치를 실현할 때 가능하다. 그것은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투쟁 확산과 계급적 연대를 통한 노동자 자기조직화(독립적인 파업위원회, 대중 집회, 노동자평의회 건설)에 달려있다.
 
노동계급의 정치는 투표소가 아니라 집단으로 저항하고 투쟁하는 곳에서만 가능하다, 노동자들이 살아 숨 쉬며 토론하고 행동하는 곳, 계급적으로 연대하고 단결하는 곳에서만 실현할 수 있다.
 
노동자 투쟁의 걸림돌! 선거주의 타파!
노동탄압 생존권 위협! 윤석열 자본가 정권 타도!
부르주아 선거를 넘어 자본가계급에 맞선 계급전쟁으로!
자본주의 위기 전가-노동자 희생을 거부하고 체제 전복을 향한 계급전쟁으로!
 
2024년 2월 21일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코뮤니스트 18호] 동서양의 위선적인 제국주의

동서양의 위선적인 제국주의

 

photo_2019-01-12_12-24-34.jpg

 

가자지구의 사망자 수가 늘어나고 희생자 중 상당수가 어린이인 가운데 제국주의 현실 정치의 양면성이 드러나고 있다지배계급에 어떤 생명은 다른 생명보다 더 가치가 있다어떤 잔학 행위가 어디에서 논의될지 결정하는 것은 경제적정치적군사적 동맹이다이는 최근 몇 가지 분쟁에 대한 유엔 결의안에서 투표권을 행사한 국가나 전 세계 주류 언론이 이를 어떻게 다루었는지만 비교해도 알 수 있다더 나아가다음과 같이 존경받는 세계 지도자 몇 명의 이중적인 반응을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전에 우크라이나 민간인 학살을 전쟁 범죄로 불렀지만, 7,500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사망자가 보고되자 그 숫자에 대해 신뢰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그의 정권은 이스라엘이 스스로 방어할 권리가 있다고 얘기한다.

•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가자지구에서 발생한 "재앙적인민간인 사망에 대해 언급했지만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단 한 건의 민간인 사망(공식적으로는 1만 명이지만, 훨씬 더 많을 수 있음)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이스라엘을 '점령자'로 규정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학살'을 비난했다한편 에르도안 정권은 이라크와 시리아의 쿠르드 지역을 정기적으로 폭격하고 있다.

• 자신의 나라에서 대규모 시위를 잔인하게 진압한 후(이 과정에서 최소 500명이 사망), 에브라힘 라이시(Ebrahim Raisi) 이란 대통령은 이제 이스라엘의 '전쟁 범죄'를 비난하고 '자위권'을 가진 것은 팔레스타인이라고 선언한다.

 

이러한 주장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자본주의의 도덕성은 홍보용에 불과하다전쟁에서는 공동의 적을 상대로 대중을 결집하는 데 사용된다양측은 상대방의 '전쟁 범죄'를 비난한다서방에서는 우크라이나 시민에 대한 물과 전력 공급 거부가 러시아의 '전쟁 범죄'이지만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의 전면전 정책은 정당화된다다양한 권리‘(자위권자결권 등)는 편리할 때 호출되고 필요할 때 거부된다이러한 '권리'는 국가 사이 제국주의 관계의 폭력적인 현실에 질서와 합리성이라는 외피를 씌우기 위한 것이다그러나 실제로 국제 정책을 좌우하는 것은 시장원자재기술토지이윤을 둘러싼 투쟁이다그리고 이러한 정치적 맥락에서 '인종 청소또는 심지어 '()인도적 범죄'와 '대량 학살'에 대한 상호 비난이 일어난다지난 3년 동안 다양한 경쟁 소식통에서 이러한 용어로 설명된 분쟁이 다음과 같이 최소 4건 이상 발생했다티그라이(Tigray), 우크라이나나고르노 카라바흐(Nagorno-Karabakh), 그리고 현재 가자 지구다민족을 표적으로 한 대량 학살과 추방 행위는 민족과 부족의 충성심에 기반을 둔 식민지 이후 정권의 자연스러운 산물이지만뒤틀린 체제 논리 속에서 이러한 사건은 제국주의 경쟁의 일부가 된다현대 전쟁에서는 인도주의적 관심조차도 자본주의 세력들이 피해자로 간주하는 국가에 대한 국제적 제재나 외국의 개입을 예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분쟁을 더욱 부추기는 정치적 무기가 된다.

 

국제주의 코뮤니스트들은 현재 가자지구바흐무트(Bakhmut), 나고르노 카라바흐 등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포의 책임은 썩어빠진 제국주의 자본주의 구조 전체에 있음을 알고 있다우리는 수십 년 동안 이윤에 굶주린 체제의 위기가 어떻게 군사적 대결을 증가시키게 될지에 대해서 경고해 왔다이제 우리는 로켓과 드론에 의해 파괴된 도시와 마을세계 공급망 붕괴징병과 시위 진압최전선에서 벌어지는 학살과 민간인 대량 이주 등 전쟁으로 치닫는 현실의 결과를 목격하고 있다. '자기국가를 위해 살인과 죽음을 강요당하는 피해자는 바로 전 세계 노동계급이다.

 

어느 한 자본주의 세력에 의해 좌우되는 외교적 해법은 피할 수 없는 것을 연기할 뿐이다적대적인 자본주의 국가 사이의 경제 및 군사적 경쟁에 기반을 둔 체제의 모순은 그 체제의 틀 안에서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국제주의 코뮤니스트들이 '휴전'을 요구하지 않고, '민주주의'나 국가의 '권리'에 호소하지 않는 것은 동정심이나 냉철함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체제의 본질을 직시하기 때문이다노동자들이 전쟁을 포기하고‘, 국경을 넘어 우정을 나누고같은 계급의 형제자매를 죽이고 장애인으로 만드는 것을 거부하고지구를 점차 불바다로 만드는 지배계급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길은 단 한 가지뿐이다실제 전투하는 사람들보다 더 높은 비율로 비전투원을 죽이는 제국주의적 전면 전쟁에 편승하는 대신우리의 임무는 이러한 전쟁이 우리를 어디로 이끌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결국그것은 더 큰 세계 분쟁으로 이어질 것이다.

 

가자지구이스라엘우크라이나나고르노 카라바흐 주민들이 '자신의정권을 지지하든 않든가까운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여러분과 가까운 곳에서 벌어지고 있다여기에는 부르주아지 사이의 냉소주의가 전면에 드러나고 있다잔학 행위위선자본을 대변하는 사람들의 이기적이고 거짓된 감정적 관심의 표출이 결합해 있다비디오와 사진희생자들의 증언폐허가 된 가자 지구는 소셜 미디어에서 누구나 볼 수 있다지금 당장 많은 사람의 시야가 팔레스타인 깃발에 가려져 있더라도이것은 모든 노동자가 각성해야 한다자본주의가 인류를 위해 준비한 미래이기 때문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분쟁은 자본주의의 야만성이 어떤 모습인지 보여주고 있다아무리 멀게 느껴지더라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사회주의다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을 통해 잔혹한 이 체제를 끝장내야 한다.

 

다이즈바스(Dyjbas)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2023년 10월 28

 

<출처>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3-10-30/imperialist-hypocrisy-in-the-east-and-west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국가적 해결책은 없다. 계급전쟁만이 해결책이다!

국가적 해결책은 없다계급전쟁만이 해결책이다!

 

 photo_2019-01-07_15-04-42.jpg

 

우리는 "노동자에게는 국가가 없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오직 국제주의적일 수밖에 없으며, 이를 위해서는 모든 노동자가 모든 지배계급을 적(敵)으로 삼아 연대해야 한다"는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의 국제주의 원칙을 지지하며 이 글을 공유한다. 우리는 국제주의 원칙의 방어와 국제주의자들의 연대를 위해 이 작업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10월 7이스라엘 남부는 하마스 군이 가자 지구 국경을 돌파한 무장 세력과 함께 놀랍고도 예상치 못하게 조직적으로 침공했고공습은 이스라엘 중부의 텔아비브까지 이르렀다많은 가자 주민들이 국경 철조망을 허물고 야외 감옥 밖으로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으며이스라엘군도 욤 키푸르 전쟁(Yom Kippur War) 이후 50년 만에 처음으로 후퇴했다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승리처럼 보였다그러나 하루 종일 천 명이 넘는 민간인이 무차별로 학살당했다한 키부츠(Kibbutz)는 10%의 사람들을 잃었다지금은 유명해진 사막 파티의 현장에서 200명에 가까운 이스라엘인이 발견되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4인 가족이 모두 사망한 사진이 공개되었고다른 사람들은 뉴스 영상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하마스가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을 석방하는 대가로 이스라엘 군인과 민간인으로 추정되는 약 150명이 가자지구에 인질로 잡혀 있다많은 친()팔레스타인이 학살을 옹호하는 데 뛰어들었고어린이난민의 후손심지어 점령 반대 운동가까지 포함한 일반 이스라엘인을 정착민-식민주의자로 간주했다설사 이것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고 해도 베두인네팔 학생태국 이주 노동자의 죽음은 정당한 살인이라고 믿기 어렵게 만든다이란과 헤즈볼라는 하루가 지나기 전에 하마스와 경쟁자 팔레스타인 이슬람 정파 이슬람 지하드에 대한 지지를 분명히 밝혔다.

 

이스라엘은 전쟁을 전쟁이라고 부르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안보 실패는 이스라엘의 주요 정치인과 군 관리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네타냐후와 리쿠드당우파의 성공은 일반적으로 국가 안보에 대한 자신감에 의존했다이스라엘의 자본주의 좌파가 끊임없이 고갈되고 있는 것은 경제 관리의 실패가 아니라 국경의 안보를 위협하면서까지 영토를 확보하려는 의지에 기인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하마스는 하루아침에 네타냐후가 통치하는 이스라엘은 안전하다는 이스라엘 국민의 신화를 무너뜨렸다네타냐후와 그의 장관들은 당연히 민족주의를 부추겼고팔레스타인 사람에 대해 복수를 해야 하며하마스는 완전히 제거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수만 명의 예비군이 군대에 징집되었고정치인들의 대량 학살에 대한 요구가 이어졌다.

 

국경 마을 주변에서 지상전이 계속되자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에 공습을 가해 병원과 난민 캠프를 공격하여 19명의 일가족과 45가구의 모든 세대를 살해했으며 마을 전체를 거의 초토화하는 등 매우 가혹한 폭력을 가했다또한전기식량연료 공급을 차단하는 봉쇄 조치가 취해졌고이는 유엔의 비난을 받았다인구 밀도가 높은 가자지구는 일반 시민들의 이동이나 대피가 거의 허용되지 않았고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이집트와 국경을 접하는 라파(Rafah) 국경이 파괴된 후 가자지구는 현재 완전히 포위된 상태이다이스라엘 당국이 가자지구 북쪽에 거주하는 110만 명의 주민들에게 이미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는 게토 지역 남쪽으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내리면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이주가 계속되고 있다유엔조차도 이러한 요구를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가자지구의 사상자는 현재 이스라엘의 약 두 배에 달하며카타르와 이란의 자금 지원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군사 기반이 하마스와 이슬람 지하드의 군사 기반을 압도하면서 팔레스타인 사망자 수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인종 청소는 오랫동안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을 정확하게 묘사해 왔지만이번 전쟁의 규모와 백린탄 사용 보고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대량 학살이다헤즈볼라와 이스라엘 사이의 레바논 국경에서 로켓포 사격이 확대되고 있다서안지구의 극우 및 종교적 근본주의 이스라엘인들의 일상적인 폭력 사태는 전쟁이 확산함에 따라 총기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더욱 격렬해지고 있다.

 

유혈 사태가 누적될수록 가장 비극적인 이야기는 노동계급인 이스라엘인팔레스타인인의 이야기다정치 및 군사 지도자들은 선거에서 인기를 얻기 위해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성급한 결정을 내린다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이스라엘에서 네타냐후 정부특히 사법 절차를 약화하려는 그의 이기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시도에 반대하는 지속적인 대규모 운동이 전개되고 있었다그의 캠페인과 지원은 국가 안보 문제에 집중적으로 의존해 왔기 때문에 초기 하마스 학살과 이후 인질 사태로 인해 불균형하게 많은 군사 기지가 서안 지구에 집중되어 있어 종교적 극우파가 팔레스타인을 도발하고 공격하고 폭력적인 대응으로부터 팔레스타인을 보호할 수 있다는 주장이 심각하게 약화했다남부에서는 하마스의 군사력이 과소평가 되어 도시 노동계급이민자 커뮤니티키부츠인들이 사선에 놓여 있다이는 골다 메이르(Golda Meir)의 임기를 끝낸 1973년 욤 키푸르 전쟁과 비교되기도 했다그러나 네타냐후는 이미 수년 동안 극우파를 점점 더 포용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서안지구 합병미국 대사관을 분쟁 지역인 동예루살렘으로 이전하기로 한 트럼프의 결정기본법 통과정착민 폭력에 대한 온건한 태도 등은 이스라엘의 우경화를 더욱 확고히 했다현재 이스라엘과 미국 모두 공식적으로 테러리스트로 간주할 정도로 극단적인 카하니스트(Kahanist) 출신의 장관들이 있다지금까지는 민족주의가 매우 우세하고 가자지구의 전멸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하마스 근절이라는 미명 아래 점점 더 커지고 있다그러나 텔아비브에서는 인질과 사상자 가족들이 국방부 청사 밖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고 집회를 열고 있다이들은 애국적인 시위 반전점령 반대경제적 요구가 아니라 군사적 실패와 인질 구출에 충분한 조처를 하지 않은 네타냐후 총리의 전체주의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있다.

 

가장 심각한 범죄는 네타냐후 자신이 최근 하마스에 대한 (냉소적인지원이다팔레스타인 자치정부로 대표되는 준()국가는 주로 서안 지구에서 활동하며 가자 지구를 장악하고 있는 하마스에 의해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파타(Fatah)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대표한다공식적으로 이스라엘과 PLO 사이에는 평화 조약이 존재하며, PLO는 두 국가 해법을 선호하고 테러리즘에 반대하는 반면하마스는 두 국가 해법과 이스라엘의 존재를 거부하고 무장 투쟁을 선호한다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대체로 세속적이며 정치적 성격을 띠고 있지만하마스는 극단적 이슬람주의자들이다제국주의의 기괴한 발전 속에서 네타냐후는 하마스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마흐무드 압바스가 이끄는 온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서방과 정치 협상에 나서고 1993년 오슬로 협정에서 약속한 좀 더 현실적인 두 국가 해법을 추구할 가능성이 더 컸기 때문이다하마스가 폭력이슬람주의단일 국가 해법을 고집하는 한 서방의 지원을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남부에서 거의 효과가 없는 로켓 공격은 IDF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네타냐후 정부는 가자지구 주민들을 달래고 간접적으로 더 많은 자금이 가자지구로 유입하기 위해 가자지구 노동자들에게 점점 더 많은 취업 허가를 내주고 있다가자지구로 들어오는 카타르의 현금이 수백만 달러에 달한다는 사실에 눈을 감고 있다이스라엘의 극우파 재무장관 베잘렐 스모트리치(Bezalel Smotrich)는 이를 한마디로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짐이고 하마스는 자산이다 [...] 아무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결의안을 제출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두 국가 해법은 이츠차크 라빈 총리(극우 극단주의자에 의해 암살되기 전)가 주장한 온건한 계획이었다이제 이스라엘은 두 국가 해법을 위한 정치적 협상의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이스라엘의 완전한 파멸을 원하는 세력과 동맹을 맺으려 한다.

 

하마스의 이번 공격은 자신이 팔레스타인 국민의 대표라고 주장하려는 시도이다파타(Fatah)는 서안지구에서 증가하는 파괴에 맞서 평화로운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시위교전개별 공격의 방식으로 저항하고 있다이번 대규모 공격을 통해 하마스는 군사 전략과 자금 지원은 물론 저항 세력으로서 주도적 면모를 보여주었다올해 7월에는 수천 명이 가자지구 전역에서 하마스에 반대하는 경제 시위를 벌이며 거리로 나섰다하마스가 가난한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지원되는 카타르의 기부금에 세금을 부과하자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이 하마스 깃발을 불태운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하마스는 경제 불안의 책임을 이스라엘에 돌리고 시위를 국경의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돌리는 데 성공하는 등 전술적인 면모를 보여 왔다가자지구의 또 다른 주요 권력 경쟁자는 하마스보다 더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팔레스타인 이슬람 지하드이다초기 침공으로 하마스가 다시 인기를 얻었을지 모르지만현재 이스라엘의 끔찍한 공격에 직면한 어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1,400명이 넘는 이스라엘 사상자가 새로운 상황을 감수할 가치가 있는지 의문을 품고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더 넓은 제국주의 망

 

자본주의 아래에서는 전쟁이 고립되지 않으며고대의 민족국가종교적 갈등이 제국주의적 경쟁을 벌이는 강대국에 의해 이용당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미국과 대부분의 유럽연합은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를 발표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고이란과 헤즈볼라의 하마스 지지도 마찬가지였다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복수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행동에 필적하는 인도주의적 비난을 받고 있지만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전쟁은 이란과 미국 간의 대리전이 일어날 수도 있음을 위협하고 있다애초에 제국주의 경제 조약이 이번 공격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 2020년 아브라함 협정에서 이스라엘은 아랍에미리트바레인모로코수단과 정상화 협정을 체결했는데주로 경제 무역 관계에 도움이 되는 협정이었다이 협정으로 아랍 국가들은 서방에 한 걸음 더 가까워졌지만다른 곳에서는 경쟁이 격화되었다보기를 들어모로코와 알제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각자의 제국주의 블록에 헌신하면서 관계를 단절했다한 해 동안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간의 수교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점점 더 커지면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서방과의 동맹은 더욱 공고해졌지만이슬람교도들의 주요 성지 순례지가 사우디아라비아에 있기 때문에 이슬람교도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전쟁이 계속되고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터키와 쿠르드족중국과 대만세르비아와 코소보/알바니아 간의 분쟁이 격화되면서 주요 제국주의 열강은 군사 전략과 경제 자원을 위해그리고 전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 작은 국가들을 채택하고 있다그 경계가 항상 명확한 것은 아니다이스라엘과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이란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러시아와 중국이 이 새로운 전쟁에 어떻게 대응할지는 아직 지켜봐야 한다터키는 평화를 추구하고 양측의 사상자를 애도하는 온건한 노선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강제 이주를 비난하면서 이스라엘과 하마스 모두와의 불안한 동맹을 당분간 달래려고 시도했다국가들은 정중하게 평화를 촉구할지 모르지만제국주의 논리에 따라 전쟁이 일반화될 수 있다종교와 이데올로기는 분쟁의 언어일지 모르지만실제로는 제국주의적 세계 분열에서 거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현재의 폭력적인 경쟁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경제 위기와 더 관련이 있다.

 

시온주의자들에게 이스라엘 유대인의 안전은 팔레스타인 민족주의에 의해 위협받고 있으며국가와 군대는 계속해서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우리는 자본주의 국가가 안전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국가는 지배계급의 부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군대는 조국의 이름으로 노동자들을 죽임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도록 내몰고지배층은 경제적 대외 조약을 체결하고 권력 탐욕에 사로잡혀 조국의 적을 이중으로 돕고 있다한 민족을 보호하고 다른 민족을 괴롭히는 정책으로는 건강하고 안전한 삶이 보장되지 않으며이러한 정책은 전쟁의 악순환을 심화시킬 뿐이다이스라엘의 대형 슈퍼마켓 체인인 라미 레비(Rami Levi)는 예비군이 군 복무를 위해 떠나고 이스라엘 국민들이 비상사태에 대비해 식료품을 비축하는 동안 전쟁을 돕기 위한 소매 보조원으로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고 있다수익성 있는 슈퍼마켓 체인에서 일하는 것은 무급 노동이지만민족주의 속에서 어떻게든 칭찬받을 만한 일이 된다이스라엘 프롤레타리아는 군인을 응원하는 동안에도 계속 착취당할 것이다라미 레비의 사례에서 이미 드러났듯이예비역피난사망 등으로 직원을 잃으면 노동은 더욱 힘들어질 것이고정부가 전쟁에 모든 재정을 투입하면 임금은 줄어들 것이다파업이나 경제 위기에 대항하는 집회는 국가적 대의를 배신한다는 죄목으로 즉시 진압될 것이다이스라엘 노동자의 적은 팔레스타인 노동자가 아니라 이스라엘 지배계급이다.

 

노동자에게는 국가가 없다.

 

프란츠 파농(Franz Fanon)의 말을 인용하면 팔레스타인 민족주의자들에게 탈식민지화는 필연적으로 폭력적이다팔레스타인이 점령을 종식하고 독립 국가를 세우려면 이스라엘인의 목숨이 희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시온주의자들과는 달리 영국 자본주의 좌파 내에서 가장 인기 많은 입장이기도 하다탈식민지화는 코뮤니스트들의 요구가 아니다애초에 식민주의는 이스라엘에는 적용되지 않는 특정 경제 조직 형태이다이스라엘은 팽창주의 국가이며 군사적 점령과 폭력을 사용하여 팔레스타인의 집을 파괴하고 이스라엘의 집으로 대체하는 것은 제국을 성장시키려는 시도에 해당하지 않는다게다가 알제리남아프리카공화국중국심지어 이스라엘에서 일어난 반()식민지 투쟁 중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이어진 것은 하나도 없으며단지 새로운 반동 세력이 노동자를 착취하고 제국주의 진영으로 끌어들이는 데 그쳤을 뿐이다민족 해방을 위해 싸워 알제리 초대 대통령이 된 벤 벨라(Ben Bella)는 훗날 민족 해방 운동은 "모두 실패했다"고 회고했다우리가 세계 자본주의 질서를 깨뜨리지 않는 한 우리는 여전히 상업 생산관계에 의해 착취당한다."1) 팔레스타인 국가가 어떻게든 탄생하더라도그것이 이슬람 국가든세속적 사회민주주의 국가든스탈린주의 정권이든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은 코뮤니스트 혁명에 더 가까이 갈 수 없을 것이다오직 더 강력한 팔레스타인 부르주아 계급이 등장하여 자신들을 착취하고 다른 사람을 억압할 것이다민족주의 운동은 노동자들이 계급투쟁을 제쳐두고 자본가들과 함께 국가를 위해 싸우라고 요구한다그것은 코뮤니즘의 전제 조건이 아니다이른바 사회주의자들이 모여 국기를 흔들고 최근 경제 위기에 대항하는 반()하마스 집회를 진압한 이슬람주의자들의 학살을 옹호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두 국가 해법을 주장하는 소수의 자유주의자는 자본주의 아래의 평화에 대한 순진한 낙관주의가 깔려있다두 개의 자본주의 착취 집단이 하나보다 나을 것이 없듯이 두 개의 국가는 하나보다 낫지 않다아파르트헤이트의 몰락은 남아공 백인 자본가들을 종식한 것이 아니라 동등한 대표성을 내세우며 노동자 착취를 지속할 수 있는 남아공 흑인 부르주아 계급이 하나 더 생겼을 뿐이다두 국가 해법은 상비군제국주의 경쟁그리고 궁극적으로 유혈 사태를 배가시킨다.

 

우리의 입장은 예외 없는 국제주의이며언제나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추상적 이상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와 그 제국주의적 생존 전략에 대해 일관된 유물론적 반대에서 예외는 없다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오직 국제주의적일 수밖에 없으며이를 위해서는 모든 노동자가 모든 지배계급을 적()으로 삼아 연대해야 한다자본주의 제국주의 시대에 어떠한 진정한 국제주의자도 노동 분업의 고유한 적()인 지배계급과 함께 싸우며 다시 한번 강탈당할 수 있는 '자신의새로운 국가를 세우기 위해 계급투쟁을 중단할 수 없다이제는 다른 지배계급이 아닌 자국의 지배계급에 의해 강탈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심지어 우리가 레닌과 결별한 레닌의 자결권 옹호조차도 식민지의 독립적인 노동계급 운동을 위해서는 민족 독립이 필수적이라는 믿음에 기초한 전술적 정책이었다항상 그래왔듯이우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이 서로에게 총을 겨누지 말고 실제 그들의 적()인 지배계급을 향해 총구를 돌리라고 촉구한다많은 사람이 이를 헛된 꿈이라고 비난하고 있으며현재 상황에서는 양쪽 모두에 대한 민족주의가 우세한 것이 사실이다우리의 정치는 기회주의적이 아니라 일관성이 있으며우리가 흡수될 때까지 대중운동에 쓸데없이 편승하기보다는 혁명적 노동자의 올바른 선택을 지지한다우리는 민족 해방을 우리 자신의 대의에 다시 적용하고 계급투쟁을 포기하기보다는 우리의 문헌을 번역하고 전파한다게다가그것은 그렇게 헛된 꿈이 아니다네타냐후에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는 일 년 내내 이어졌으며 줄어들지 않았었다이들은 자신의 깃발을 휘두르는 애국적 자유주의자들이었다그 깃발은 국수주의자들이 흔들던 것과 똑같은 깃발이었고지금 관을 덮는 것과 같은 깃발이었다그런데도 이스라엘 사회 내부에는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하마스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는 하마스의 통제와 경제적 착취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했다여기에는 민족주의자들도 포함되었지만이 역시 팔레스타인 사회 내부의 불만을 보여준다노동자들은 자신의 정치 지도자들에 반대한다이는 헛된 꿈이 아니라 현실이다.

 

우리는 진정한 국제주의의 목소리를 내는 보기 드문 존재이지만혁명적 전통을 따르고 있다. 1915년 초에 쓴 퍄타코프(Pyatakov), 보쉬(Bosch), 부하린(Bukharin)의 글을 살펴보자.2)

 

그러므로 제국주의에 맞선 투쟁을 통하지 않고서는 민족의 노예화에 맞서 투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제국주의에 맞선 투쟁은 곧 금융 자본에 맞선 투쟁이고금융자본에 맞선 투쟁은 곧 자본주의 일반에 맞선 투쟁이다어떤 식으로든 이 길에서 벗어나 자본주의 사회의 한계 안에서 "민족 해방"이라는 "부분적인과제를 진전시키는 것은 프롤레타리아 세력을 문제의 진정한 해결책에서 멀어지게 하고해당 민족 집단의 부르주아지 세력과 단결시키는 것이다. ...

따라서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어떤 상황에서도억압받는 민족의 반란이나 저항을 억압하는 강대국 정부를 지지하지 않는다동시에 우리는 "민족 자결권"이라는 구호 아래 프롤레타리아 세력을 동원하지 않는다이 경우 우리의 임무는 사회주의를 위한 내전계급전쟁이라는 구호 아래 양국의 프롤레타리아트 세력을 (다른 사람들과 공동으로모이게 하고, '민족 자결권'이라는 구호 아래 세력을 동원하는 것을 반대하는 선전을 하는 것이다.”

 

슈라가(Shraga)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2023년 10월 17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코뮤니스트 17호] 자본주의의 경제적 토대 (2부)

자본주의의 경제적 토대 (2)

 photo_2021-01-03_13-09-45.jpg

 

이전 호에서 설명한 것처럼이제는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이 된 혁명적 전망(Revolutionary Perspectives)은 50년 전 당시 맑스주의 정치 분석을 시작하고 있었는데그 첫 번째 시리즈 두 번째 판에만 실렸던 글을 다시 연재하고 개정판을 발행하기로 했다주로 추가된 부분은 몇몇을 제외하면현대 독자들의 우려에 주로 답하기 위한 것으로사실 원본 초안에서는 대부분 그 당시 지면의 제약으로 생략한 글을 다시 삽입한 것이다.

 

위기가 추동한 자본주의의 부상

 

우리가 지금까지 제시한 것은 맑스가 자본 3권과 다른 저작에서 발전시킨생산양식의 진정한 운동 법칙을 이해하기 위한 이론적 분석이다자본 1권이 출간되기 20년 전맑스는 이 확산하는 생산양식이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방식으로 생산력을 혁명화할 잠재력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이것이 그가 이 생산양식을 봉건제로부터의 진보로 본 이유이다그러나그는 자본주의의 기원이나 일상적인 공포에 대한 환상이 없었다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자본을 제공한 원시적 축적은 "그저 하나의 목가적인 것일 뿐"이었다.

 

실제 역사에서정복노예화약탈살인요컨대 폭력이 가장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은 잔혹한 사실이다.”(1)

 

대부분 농노를 자유롭고 가난한 노동자로 바꾸어버린 공유지의 약탈과 함께자본주의는 유럽 밖으로 터져나갈 수밖에 없었는데이는 지구의 나머지에 대한 약탈을 동반했다.

 

미국에서의 금과 은의 발견그 대륙의 광산에서 원주민에게 저지른 절멸노예화그리고 매장인도에 대한 정복의 시작과 약탈아프리카를 흑인 사냥을 위한 보존 구역으로 변화시킨 것은 모두 자본주의 생산 시대의 새벽을 특징짓는다.”(2)

 

최근의 연구는 전쟁을 통한 절멸”, 야만적인 착취그리고 미국으로 들여온 질병이 56백만의 인구 또는 1600년대 당시 인구의 90%를 죽였다고 보았다.(3) “자본은 (이 세상에머리에서 발까지 뚝뚝 떨어져 내린다모든 모공을 피와 먼지로 채우면서라는 맑스의 결론은 전혀 놀랍지 않다.(4)

 

이전 생산양식의 위기는 기본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재화의 부족이 원인이었던 반면자본주의의 주기적 위기는 이전 시대에는 부조리해 보였을” “만연한 과잉 생산의 산물이었다.(5)

 

1848년 코뮤니스트 선언」 이후에야 맑스는 왜 그런지 현상을 설명하기 시작했고그 과정에서 우리가 앞서 설명한 이윤율 하락 경향의 법칙을 발견했다이는 자본주의가 어떻게 그러한 역동적 생산양식인지 뿐만 아니라왜 자본 축적이 위기에 뒤따르는 호경기의 형태인지도 설명한다고전적 자본주의 아래에서는자본의 평가절하집중의 고도화집중되고 새로워진 더 높은 수준의 유기적 구성그러므로 위기의 속도와 강도가 모두 증가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낮은 수준의 일반 이윤율로 이윤율 하락 경향이 극복되었다따라서 자본주의의 재생산 과정은 단순히 평가절하와 새로운 축적이 순환하며 원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오히려 더 정확하게는 나선(sprial)이 점점 좁아져궁극적으로 더 이상의 축적이 불가능한 특정 시점에 이르는 것으로 묘사될 수 있다왜냐하면이윤율이 너무 낮아 불변 자본에의 재투자가 낮은 수준의 유기적 구성일 때보다 더 적은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시점에 유기적 구성이 도달하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처음에는 자본주의의 빠른 발전의 원동력이었던 바로 그 동일한 법칙이이제는 자본주의 붕괴의 추동력이 된다.”(6)

 

그러나축적이 그 궁극적 한계에 이르기 훨씬 이전부터 자본의 중앙 집중화(concentration and celtralisation)는 생산양식에 유의미한 변화를 가져온다(wealth)가 축적될수록과도할 정도의 자본의 통제력 역시 소수 또는 독점의 손에 들어가게 되는데이는 함께 번영해 왔으면서또한 그 아래에 있었던 생산양식에 족쇄가 된다.”(7)

 

이는 특정 시점까지 자본의 축적은 인류의 역사적 이해에 전반적으로 기여하지만그 속에서 더 수준 높은 생산양식의 물질적인 전제조건이 발전한다는 것을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한 것일 뿐이다그러나일단 자본이 세계적 수준에서 생산력을 발전시키게 되면더 높은 수준의 생산양식 – 상품 교환 없는 인간의 필요를 위한 생산 – 의 물질적 기반이 이제 존재하게 된다그리고 역사는 새로워진 축적과 경제적 확장이 여전히 발생해 왔다는 것도 보여주지만그러한 축적은 인류의 이해관계에 가장 좋은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 또한 보여주었다.

 

그러나이것은 예상한 것이다. 19세기봉건적 관계의 마지막 잔여물을 무너뜨리고 보편적인 삶의 질이 점진적으로 개선되는 등 자본의 축적은 여전히 진보적인 힘이었다이러한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확장과 기계화의 증가는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와 관련되어 있었는데대개 자본주의 생산 기술과 경쟁하는 것이 점점 불가능해진 가내수공업과 소규모 장인들의 점진적인 제거로 이뤄졌다보기를 들어영국에서는 1834년 면직물 산업에서 역직기(power-looms)보다 2배나 많은 베틀이 여전히 운용되고 있었다그러나 베틀 방직공은 점점 경쟁할 능력을 잃었고, 1846-48년의 위기 이후에는 이 산업에서 완전히 방출되어 공장 생산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여전히 상당한 정도의 수공업 생산이 존재하는 상황에서산업 영역에서부터 증가한 자본의 축적으로 인한 생산향상은, 19세기 중반 유럽뿐만 아니라 북아메리카의 다른 발전하는 자본주의 경제에서도 비슷한 그림으로 나타날 수 있었다그러나 1850년의 자본주의는 세계적 수준에서 보았을 때 여전히 지배적인 생산양식이라 할 수 없었다하지만 19세기 중반쯤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자본주의의 생산력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기반이 국내외적으로 공고해졌다소규모 수공업자들은 제거되었다농노 제도의 점진적인 폐지이에 동반한 인구의 증가와 농업의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은 자본이 확장을 촉진할 임금 노동자의 지속적인 공급을 확보했다는 것을 의미했다수송과 의사소통 영역에서의 개선자본의 회전 기간의 단축은 (원자재와 완제품의 운송 시간의 단축과 필수적인 재고의 규모를 축소함으로써결국 이윤율 하락에 역경향(counter-tendency)를 제공했고동시에 자본의 확장을 더 강화할 기술적 기반을 제공했다.

 

대규모 초기 자본 지출이 필요한 철도와 같은 영역에 대한 몇몇 국가의 경제 개입에도 불구하고자유방임주의(laissez-faire)를 향한 경향은 민간의 자본가들이 자본 축적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1815년에서 1835년까지 영국의 정부 지출은 실질적으로 감소한 것으로 추정되며, 1835년부터 1960년까지의 정부 지출 증가는 영국 국민소득의 약 10%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되었다경제 영역에서의 많은 정부 조치는 사실 생산과 자본의 움직임에 제한을 가한 봉건적 법적 규제를 제거하기 위해 설계되었다그러므로 영국에서보기를 들어 전통적인 기업들의 특권적 독점 정책이 19세기 초반폐기되었다국가의 조치는 투자자들의 위험을 낮춤으로써 투자를 촉진하는 경향을 보였고회사의 빚에 대한 이해관계자들의 책임을 그들이 투자한 양만큼으로 제한하는 1862년 법에서 최고조에 달했다동시에국가는 계급투쟁에 대한 반응으로 프롤레타리아트 노동과 삶의 수준을 개선하고 지원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보기를 들면, 1847년 10시간 법)

 

영국은 19세기 중반 가장 선진화된 자본주의 경제로서자유방임주의 조치를 외 무역 영역에까지 확장한 첫 번째 국가였다영국 식민지의 항구들은비록 그 속에서 영국 상품에 여전히 더 낮은 관세가 부과되었지만, 1822년에서 25년까지 해외 상품에 개방되었다. 1843년에는 기계류의 자유로운 수출이 허가되었고, 1842-45년의 관세 개혁이 이뤄졌는데이는 거의 모든 원자재가 무관세로 영국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곡물 조령(Corn Laws)은 1846, 17세기의 항해 조례는 1849년 마침내 폐지되었다우리는 낮은 수준의 유기적 구성을 가진 해외자본과 무역이 높은 수준의 유기적 구성을 가진 자본의 이윤율 하락을 상쇄시키는 방법 중 하나라는 것을 보여주었다따라서, 19세기 중반 영국 자본가들이 자유무역 정책의 첫 지지자가 된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그렇게 함으로써덜 발전한 자본(국가)의 가격을 낮추는 동안 영국 수출은 그들의 가치 이상에서 판매되었다따라서 영국 수출은 유럽과 미국의 다른 개발도상국 국가들에 주로 이뤄졌다따라서 수출은 영국의 국가 총생산에서 점점 더 중요한 부분이 되어, 1800년 1억 85백만 달러에서 1850년 3억 5천만 달러까지 증가했다.(9)

 

1815년경 이후영국은 투자 자본을 수출하기 시작했고, 19세기 중반에 이르러서는 자본 수출이 상품 수출을 뛰어넘었다. 1854년 총자본 수출은 21천만 파운드에 이른 것으로 추정한다.(10) 이 현상은 자본 수출이 이윤율 하락을 상쇄시키는 수단 중 하나라는 우리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추가 증거를 제공한다. 1850년 영국 산업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유기적 구성으로 이뤄져 있었고따라서 높은 수준의 이윤율은 영국 자본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유기적 구성으로 이루어진 해외 자본에 투자함으로써 달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11) 따라서영국 자본의 투자는 해외 자본의 축적그러므로 자본의 세계화에 기여했지만일단 해외 국가 자본의 축적 수준이 영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진행되자 각국의 자본가들은 자본을 가장 먼저 유럽과 그 외 지역의 덜 발달한 자본주의 국가로 수출하기 시작했다그러나 1850년까지는 아직 영국이 유일하게 영향력 있는 자본 수출국이었다.

 

그러므로자본주의의 그림은, 19세기 유럽과 미국에 존재했던 것처럼생산된 상품의 양과 다양성의 증가뿐만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의 숫자와 생활 수준의 증가로 이어지는가속하는 축적 중 하나였다실질 임금은 증가하고 있었고 이는 20세기 초까지 계속되었다(부록 표1을 보라). 비록 수출은 산출의 작은 비율을 차지했으나세계 무역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었고(12), 이는 자본의 세계적 확장을 반영했다그런데도 이 시점 자본주의 회사의 구조 대부분은 여전히 개인 기업가가 그 자신의 공장을 운영하는 방식이었다.

 

자본의 축적에는 자본의 집중이 필요했고자본의 집중은 19세기 하반기 회사 구조를 빠르게 변화시켰다개인 기업가가 자신의 사업을 경영하는 것으로 높은 수준의 유기적 구성이 필요한 양만큼의 자본을 모으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 첫 번째 신호는 합자 회사의 중요성이 커진 것이다합자 회사는 투자자가 아닌 이들에게서 이윤의 공유를 대가로 사업을 위한 자본 제공을 가능케 했다. 1872년 영국부터 프랑스까지, 1870-72년 사이의 독일에 퍼져있던 유한 책임의 주주들이 투자한 합자 회사들이 출범했다영국에서는 등록된 그런 회사들의 숫자가 1885년 8,692개에서 1914년 62,762개로 증가했다(13). 합자 회사의 등장은 세계의 모든 선진 국가들에서 더 높은 수준의 자본 집중을 가능케 했다.

 

19세기 후반 만들어진 대부분의 결합은 수평적 성격이었다(카르텔신디케이트트러스트지주 회사 등). 그 말은회사들끼리의 협정이나 실질적 결합으로 유사한 상품을 생산하여 경쟁을 제거하고 자신의 상품을 위한 독점적 시장을 만드는 시도였다는 것이다그러므로 20세기 초반 무렵이러한 나라들의 국가 생산의 많은 부분은 사실상 생산 독점을 이룬 몇몇 산업 연합체의 통제 아래 있었다미국 자본은 이 시기 유럽과는 달리 독점과 연합체 형성에 대한 아무런 법적 규제가 없었기 때문에빠른 속도로 집중되었다. 1897미국에는 약 10억 달러 규모 자본의 82개의 산업 연합체가 존재했다. 1904년에 이르러서 이 수치는 318개 산업 연합체, 70억 달러 이상의 자본그리고 5,300개의 개별 설립체로 증가했다.(14) 1910년쯤에는 산업 연합체는 미국에서 직물 생산의 50%, 유리 제품의 54%, 면직물과 인쇄 원단의 60%, 식품류의 62%, 음료류의 72%, 비철금속 생산의 77%, 화학제품의 81%, 철 금속의 84%를 책임지고 있었다더 높은 수준의 집중을 포함한 중앙 집중은미국의 이러한 주도적 회사들이 보유한 평균 자본 양의 증가로 뒷받침된다:

 

미국의 13개 선도 제조 산업에서 각 제조공장의 평균 자본 양은 1850년에서 1910년 사이 39배로 증가했고평균 생산 가치는 19배로 증가했다.”

 

1895년에서 고작 10년 후미국의 2,274개의 제조 회사가 이른바 대호황 시대”(Gilded Age)의 악덕 자본가들”(robber barrons)이 지배하는 고작 157개의 법인 기업으로 합병되었다대부분의 이 법인 기업들은 자신의 산업을 지배했으며존 록펠러(John D. Rockefeller)나 JP모건(J.P.Morgan)과 같은 이들의 재산을 불렸다그러나세기가 바뀔 때 즈음자본의 독점 조직으로 향하던 바로 그 경향이 다른 자본 국가들에서도 나타났다.

 

그리하여 1896년과 1901년 사이 영국에서는 재봉표백분포틀랜드 시멘트벽지담배그리고 대부분의 섬유가공 제조 부문에서 대규모 연합체들이 형성되었다. 1906년 독일에서는 생산의 다양한 부문에서 대규모 연합체들이 존재했고세기의 초반 무렵 프랑스에서는 금속설탕유리 등의 산업들에서 신디케이트가 있었다기타 등등세기초부하린은 F.라울(F.Laur)의 수치를 다음과 같이 인용했다:

 

전 세계 모든 국가의 산업 기업들에 투자된 5억 가운데, 2억 2천 5백만다시 말해 거의 절반이 카르텔과 트러스트로 조직된 생산에 투자되었다.”(18)

 

따라서세기가 바뀌는 즈음에대부분의 선진 자본주의 국가 경제의 많은 산업에서 경쟁은 사실상 제거되어 있었다이것은 독점자본이 통제하는 산업들에서 경쟁이 한꺼번에 모두 사라졌다는 것이 아니다반대로국가 사이 경쟁이 전에 없이 치열해졌다는 것을 이야기했다각 자본주의 국가의 범위 내 개별 기업 사이 경쟁이 대부분이었던 상황이 독점 자본 사이의 국제 경쟁이 대부분인 상황으로 변했고이는 가치 법칙 작동의 변화와 초국적 수준에서의 이윤율 균등화를 포함하는 움직임이었다다시 말해이는 세계 자본주의 경제의 존재를 암시했다:

 

가격의 수준은일반적으로 말하면지역이나 국가“ 생산에서처럼 생산 비용이 결정하지 않는다대개 국가“ 그리고 지역의 차이는 세계 가격의 일반적 결과로서 없어지고세계의 가격이 개별 생산자들개별 국가들개별 영역들에 압력을 행사한다.”(19)

 

부하린은 국제 수준에서의 가격의 균등화 경향을 세계 다양한 지역에서 옥수수 가격을 인용하며 묘사했는데옥수수 가격은 곡물 생산의 크게 다른 다양한 조건들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적은 범위의 가격 차이만을 보여주었다.

 

photo_2021-01-03_13-09-45 (2).jpg

 

다른 말로독점 자본간 국제 경쟁은 다양한 자본주의 국가들 사이의 일정한 상호의존성을 암시했고이는 세계 무역의 증가세계 시장의 존재그리고 이른바 세계 수준에서의 분업으로 표현되었다일단 세계 경제가 존재하고가치 법칙이 세계적 수준에서 작동하면세계 자본의 개념과 함께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개념이 현실이 된다.

 

다른 한 편자본의 입장에서 세계 경제의 성장과 국가별 독점자본 사이의 세계 경쟁은 제국주의의 등장을 의미한다여기서 제국주의는 일반적인 전쟁정복이나 영토 합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그러한 정의는 부하린이 그의 책제국주의와 세계 경제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모든 것을 설명한다.” -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 정책부터 베트남에서의 러시아와 영국의 정복까지제국주의 시대는 완전히 새로운 자본주의 발전 단계를 대표하는데무엇보다 자본의 가장 높은 수준의 구성을 이룬 국가 자본 간의 세계적 경쟁의 결과이다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19세기 후반부터 계속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정책과 전쟁정복그리고 영토 합병 등의 앞선 예시를 구분할 수 있다제국주의는 특수한 역사적 범주이며세계 경제의 발전과 연결되어 있다이제부터 우리가 살펴볼 것은 세계 경제의 발전이다.

 

세계 자본주의 경쟁의 발전을 이끌었던 19세기 중반부터 자본주의 국가들의 관계가 지속적인 세계화는 그 자체로 가속화된 자본 축적의 산물이었으며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고도화하면서 나타나는 이윤율 하락을 상쇄하려는 지속적인 시도였다부하린이 보기로 든 것을 보면아래의 표는 1860년 – 1914년 사이에 어떻게 일반 이윤율이 하락했는지를 보여준다.

 

 photo_2021-01-03_13-09-45 (3).jpg

 

 이윤율의 지속적 하락에 직면해 대부분 선진 국가의 자본은 하락을 상쇄하기 위한 수단으로 더욱 해외 수출(유기적 구성이 낮은 지역으로 공장 생산품을 수출하고값싼 원자재를 수입)과 자본 수출에 의존했다.

 

해외 무역에 투자된 자본은 높은 이윤율을 위한 역할이다왜냐하면그 자본은 상대적으로 열악한 생산 시설을 보유한 다른 국가들에서 생산된 상품과 경쟁하게 되는데이를 통해 선진 국가는 설령 경쟁국보다 더 싼 가격으로 상품을 판매해도그 가치보다 더 높은 수준에서 판매할 수 있다선진국의 노동이 더 중요하게 착취되는 만큼이윤율은 증가한다왜냐하면 높은 질적 수준의 대가로 지불되지 않은 노동이 판매되기 때문이다특정 국가와의 관계에서 – 상품이 수출되거나또는 상품이 수입되는 같은 조건이 갖춰질 수 있다이 나라는 상품에 그것이 받은 것보다 더 많이 물화된 노동을 제공할 수 있고그 대가로 이 나라가 생산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싼 가격에 상품을 받을 수도 있다같은 방식으로이러한 방식이 보편적으로 확산하기 전에 이를 맘껏 이용한 제조업자는 자신의 상품을 그의 경쟁자보다 싼 가격에그러나 그 개별 가치보다는 비싸게 판매한다다시 말해그는 그가 고용한 특별히 높은 수준의 생산력을 잉여가치로 착취한다이러한 방법으로 그는 잉여 이윤을 지키고다른 한 편식민지 등에 투자된 자본은 높은 이윤율을 누린다이것이 가능한 단순한 이유는 그곳이 후진적 발전 수준으로 인한 높은 이윤율을 갖고 있기 때문이며이유를 첨가하자면노예들저임금 미숙련 노동자 등의 존재가 더 심한 노동 착취를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우리는 특정하게 투자되고 그들에 의해 본국으로 회수된 자본이 현실화한 높은 이윤율이 평균 이윤율을 형성하는 한 요인으로 삼지 말아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다.”(20)

 

19세기 중반부터 제1차 세계대전 발발까지세계무역은 아래와 같이 성장했다.

 

photo_2021-01-03_13-09-45 (4).jpg

 

1914년에 이르면영국은 그 산업 생산의 25%, 독일은 약 20%를 수출했다.

 

처음에는영국 수출과 경쟁할 수 있는 지점까지의 유럽 자본의 발전은 자유 무역으로의 운동을 동반했다. 1860년대 동안유럽의 관세는 일반적으로 하락하고 있었다(비록 미국에서는 아니지만). 그러나국내 자본 중앙집중화 심화와 함께한 국제 경쟁의 심화는 유럽에서의 자유무역을 향한 운동의 역전보호주의의 증가로 나아갔다따라서,

 

“... 1870년대 미국과 오스트리아 밀의 경쟁 증가서구 유럽 국가들의 산업 설비의 엄청난 증가, 1873년에서 1896년의 불황으로보호주의의 물결이 대륙을 뒤덮었다오스트리아는 1878, 1882년 그리고 1888프랑스는 1881, 1885, 1887그리고 1892벨기에는 1887이탈리아는 1878, 1887그리고 1891그리고 러시아는 1877년과 1892년에 관세를 높였다.”(21)

 

1870년대 후반 이후 개별 국가 경제’, 즉 자국 시장을 해외 경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지속적 관세 장벽의 상승은 독점 자본으로 나아가는 발전 과정의 일부이며 자본 경쟁의 세계 시장으로서의 확장 과정 일부로 봐야 한다.

 

따라서 관세 장벽은 제국주의 발전의 한 측면이다왜냐하면독점자본의 이해관계 속에 있는 다른 국가들과의 국경 강화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더욱이관세 장벽은자국 시장에서 생산 비용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상품이 판매되도록세계 시장에 판매되는 상품에 대해서는 종종 생산 비용보다 낮은 가격에 판매(덤핑)되도록 함으로써세계 시장에서 해외자본 사이의 경쟁을 촉진했다이러한 관행들은 자본주의의 성격에 있어 유의미하며 영구적인 변화의 초기 징후였다덤핑이 발생한다는 것은 해외 무역이 더는 이윤율 하락을 상쇄하는 유효한 수단이 아니며자국 시장에서의 높은 가격은 노동력의 교환가치결국 자본가의 생산 비용을 상승시킬 뿐이란 의미가 된다. (이는 노동자들이 삶의 수준을 유지하는 것을 가정한 것이다사실, 20세기 초반실질임금은 감소하기 시작했다)

 

유럽의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의 농업을 희생한 대가로 이룬 산업 자본의 확장은 생산이 단일 작물이나 육류를 생산하는 지역으로부터 식료품(주로 곡물과 육류)을 수입하는데 점점 더 많이 의존한다는 의미였다자본 축적은 산업을 위해 덜 발전된또는 저개발 경제로부터 더 많은 양의 원자재 수입을 필요하게 했다더욱이이러한 원자재가 값싼 가격에 구해졌다면그들은 생산 비용을 낮추고따라서 이윤율 하락 경향을 뒤집을 수 있었을 것이다.

 

“1910전동기 타이어와 발전소에 필요한 고무의 수요가 엄청나게 증가한 덕에 고무 가격이 파운드당 2/9(14p)에서 12/6(62.5p)로 상승했다일부 고무 회사의 이윤이 결과적으로 연 200% 증가했다이는 자본가회사 후원자들의 관심을 끌었고곧 수백만의 자본이 남미중앙아프리카인도실론 등의 고무 재배 플랜테이션에 투여되었다이윽고 고무 생산이 증가하자가격이 이전 수준 또는 그 이하인 2/6(12.5p)까지 떨어졌다전동기 오일의 경우에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새로운 원자재를 향한 극한까지의 쇄도가 결국 현대 유럽에 정착한 과열된 비밀 외교를 불러온 많은 경제적 요인 중 하나였다는 것은 지적해 두어야 한다.”(22)

 

그러므로값싼 원자재 탐색은 유럽 국가 간의 과거 저개발 지역에 대한 통제합병을 위한 라이벌 경쟁의 증가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1870년 이후 중요한 광물의 매장지를 포함한 지역의 합병단일작물재배 농업 지역을 점령하고 개발 정도가 이를 뒷받침해 준다.

 

19세기 자본주의 생산양식 세계화의 또 다른 측면은자본의 이윤극대화와 이윤율 하락 상쇄 시도로부터 비롯되었는데가장 높은 수준의 유기적 구성을 이룬 국가들에서 낮은 수준의 유기적 구성을 이룬 국가들다시 말해높은 이윤율을 획득할 수 있는 지역으로 자본 수출 비중의 증가였다우리는 19세기 중반 가장 높은 수준의 유기적 구성을 이룬 영국이 프랑스와 미국으로 자본을 수출하기 시작했는지를 살펴보았다. 1875년 정도까지 영국의 자본 수출은 주로 수출된 지역 자본의 확장에 이바지하는 서유럽과 미국으로 이뤄졌다미국과 유럽 자본이 그 유기적 구성으로 인해 자본 수출국으로 바꾸는 지점에까지 축적됨에 따라영국 자본은 해외 투자로 더욱 이윤을 낼 수 있는 지역을 찾았는데이 지역은 명백히도 대영제국 식민지(Empire)과 라틴 아메리카였다. 1900년부터 1904년까지런던의 대규모 잠재 투자자는 채무자로부터 평균 수익률로 자국에서 3.18%, 식민지에서 3.33%, 그리고 해외 지역에서 5.39%의 이익을 거둬왔던 것으로 계산되었다.(23) 1913영국 해외 투자에서 대영제국 식민지가 47%, 미국이 20%,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가 20%를 차지했고영국은 단연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자본 수출국이었다. 1914영국의 총 수출은 약 37억 파운드를 초과했다(주요하게 철도 40%, 정부 및 지방정부 대출 30%, 원자재 생산 10%). 그런데도 19세기 후반기처음은 프랑스이후에는 독일 자본이 덜 개발된 국가들에 대한 보다 높은 이윤을 획득하기 위한 투자로 영국 자본과 주로 경쟁했다. 1880프랑스 해외 투자는 5억 95백만 파운드에 이르렀고이 수치는 1914년까지 세 배로 증가했다이 중 반이 유럽에 투자되었다 다시주로 덜 개발된 중앙동유럽의 국가들이었는데그 외 17%는 미국에 또 다른 17%는 라틴 아메리카에 투자되었다.(24)

 

따라서 해외 투자는 자본의 세계화와 세계 경제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그러나 부하린이 지적했듯이자본의 세계화는 자본의 이해관계의 세계화와 함께하지 않았다자본 수출 비율의 증가는해외 무역의 증가와 같이실질적잠재적 투자 지역에 대한 통제를 확대하려는 대부분 선진 강대국의 경쟁그리고 그로 인한 적대적 관계의 첨예화를 필연적으로 동반했다. “후진의 지역에서 투자자 이해는 군사적 위협 또는 군대의 사용으로 결국 지켜졌다(보기를 들면 채무 불이행 이후 프랑스의 튀니스 식민화또는 채무 불이행 이후 영국의 이집트 식민화).

 

이 간단한 개요는 세계 경제의 발전과 제국주의의 발전은 불가분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므로경제의 세계화자본의 세계화와 함께엄청난 결과로 가득한 자본의 국가적(자국중심주의적)” 결합 과정자본의 국가화(자국중심주의화)”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25)

 

고도로 집중된 자본의 이윤율 하락을 상쇄하기 위한 시도는자본주의가 세계적 체제가 되는 지점까지 자본 관계의 세계화로 이끌었지만또한 자본가들의 경쟁이 세계의 나머지 지역에 대한 통제를 확대하기 위한 선진국 간의 경쟁이 되는 지점까지자본의 국가화(자국중심주의)의 증가(보호무역주의 등의 증가)로도 이끌었다그러한 제국주의 국가 사이 경쟁에는 순수한 경제적 경쟁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군사력의 존재가 필요했는데이는 약한저개발 경제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가장 선진화된 강대국 사이의 직접적인 분쟁의 결과를 결정짓는 문제에 대해서도 그러했다. 1850년 이후 계속선진 자본 국가 사이의 경쟁이 증가함에 따라군무장 비용은 매년 증가했고, 1890년에서 1914년 사이의 군비경쟁으로 이어졌다이 시기모든 선진국에서 국방비 지출은 정부 지출 가운데 단일 항목으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다(그리고 계속 증가했다). 아래의 표는 1875년부터 1908년까지, 8개 선진국의 정부 군비 지출 증가현황이다.

photo_2021-01-03_13-09-46.jpg

 

1914총국방비 지출은 영국이 77,029,300파운드독일 97,845,960파운드프랑스 1,717,202,233프랑러시아 825,946,421루블미국 313,204,990달러로 추정된다.(26)

 

세계대전은 이러한 제국주의 간 경쟁의 피할 수 없는 결과이다.

 

욱일승천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우리의 분석이 매끄러운’, 간단한 확장의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보인다면우리는 축적이 잔혹한 경쟁과 호황-불황-회복의 이른바 경기 순환”(business cycle)의 맥락에서 일어났다는 것을 강조하겠다여기서 각 불황의 시기에는 가장 덜 경쟁적인 기업이 파산하고높은 유기적 구성의 경쟁자에게 인수된다자본의 평가절하(일반 가격 하락의 결과로)로 가능해지는뒤이은 회복기는 보다 더 집중되고 중앙화된 자본의 기반이 된다자본 확장에 따라 이윤율의 균등화 경향이 나타나면서자본의 주기적 위기는 세계적으로 균일해지고확산한다그러므로보기를 들어 영국과 프랑스는 1840년과 82년 사이같은 순환 단계를 공유한 것은 연 28%에 불과했으나, 1882년에서 1925년 사이에는 그것이 연 65%에 이르렀다세기가 바뀔 때 즈음분석한 17개국이 거의 같은 위기와 회복의 유형을 보여주었다.(27)

 

위기가 보다 값비싸지는 것과 같이각 연쇄는 체제에 더욱 깊은 상처를 남겼다왜냐하면우리가 위에서 설명했듯이각 위기는 더욱더 높은 수준의 자본의 집중화와 중앙화로 이끌었고각 순환 위기마다 더 적은 수의 파산시킬 경쟁자를 남겼다궁극적으로 이러한 자본의 중앙화는 각 국가 자본 내에서의 독점 자본의 이해가 국가의 이해와 엮일 때까지 진행되었다자본주의 경쟁은지금까지 인류에 풍요의 진정한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였지만각 국가가 그 자신의 국가 자본을 보호하려 함에 따라이제 생산력에 대한 제한적 억제로 이끌었다우리가 볼 수 있듯자본주의는 이제 쇠퇴하는 사회체제였으며그 존속은 오직 국가 사이 첫 국제 분쟁으로 세계를 밀어 넘어뜨려서만 가능했다.

 

 

부록

 

 photo_2021-01-03_13-09-46 (2).jpg

 

2023년 2월 28

ER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

(1) 자본, 1(Penguin Classics, 1990), 874

(2) 위의 책, 915

(3) H.W.French. Born in Blaqckness(Liveright, 2021), 175쪽을 보라.

(4) 자본, 1, 926

(5) 코뮤니스트 선언(1975, Peking Edition), 40

(6) 폴 매틱, The Permanent Crisis – Henryk Grossman’s Interpretation of Marx’s Theory Of Capitalist Accumulation, marxixst.org

(7) 자본, 1, 929

(8) W.Ashworth. A Short History of the International Economy, 1850-1950. 131-132

(9) The Fontana Economic History of Europe, 4, 670

(10) Ashworth, 앞의 책, 170

(11) 사실 이는 자본주의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유형이다영국은 보다 역동적인 생산 국가로 자본을 수출한 첫 번째 국가가 아니다자국의 소규모 생산경제에 직면한 네덜란드 상업 자본은 영국의 산업 혁명 대부분의 자본을 댔다영국이 미국 자본 축적에 자본을 댈 때, (미국자본이 지원한 (영국자본을 따라잡을 때까지똑같은 유형이 반복되었다. 1970년대 위기 이후 현시대에도 이와 유사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미국 자본이 상업적 경쟁자인 중국을 탄생시켰다후자와 다른 점은자본주의 맥락이 이제 변화했으며제국주의 시대에는 새로운 상황에 대한 이전의 평화로운 화해가 반복되는 일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12) 1800년 28천만 파운드에서 1830, 3억 8천만 파운드, 1850년 8억 파운드로 추정됨. Ashforth, 위의 책, 30.

(13) 위의 책, 94

(14) 위의 책, 96

(15) 위의 책, 68

(16) Timothy Wu, The Curse of Bigness(Columbia Global Reports, 2018), 24-5 

(17) Ashworth, 위의 책, 96

(18) 부하린제국주의와 세계 경제, 69

(19) 위의 책, 23

(20) 맑스자본」 3, 238(Larence and Wishart, 1974)

(21) D.B. Clough and C.W Cole, Economic History of Europe, 610-611

(22) John Maclean, The War after War, 8

(23) By A. Cairncross, Ashworth, 위의 책, 171쪽을 보라

(24) 수치는 Ashworth, 위의 책, 173-174그리고 Clough and Cole, 위의 책, 657-661쪽에서 가져옴

(25) 부하린위의 책, 80

(26) 앞의 인용에서, 126

(27) O. Schwarz, “Finanzen der Gegenwart” in Handworterbuch der Staatswissen에서 인용부하린은 “... 저자의 독일오스트리아 지출 수치는 부정확하다왜냐하면 특별 예산이 포함되지 않았고한 번만 책정되었기 때문이다미국 관련 수치는 개별 주의 지출을 포함하지 않았으며따라서 33.5-56.9 증가는 실제로 더 크다.”

 

 

 

<출처>
 
 
<이전 글>
자본주의의 경제적 토대 (1)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43645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