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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광장과 부르주아 대선

촛불광장과 부르주아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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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딱히 심상정을 좋아하지는 않아요. 정의당이요? 딱히 지지하지 않아요. 뭐랄까, 투표라는 행위는 매우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선택하는 거잖아요. 일상적인 지지와는 다르죠. 그럼에도 심상정을 찍은 이유는, 촛불 정국 이후 마치 문재인이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여겨지는 걸 경계하기 위해서였어요. 이번 대선은 대중적 성취를 토대로 했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달랐잖아요. 만약 문재인의 당선으로만 수렴이 되면 과거 대선과는 큰 차이가 없어지는 거죠. 누가 되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떤 정치세력이 지지 받는지도 중요하다고 봤어요. 진보정당이자 소수정당인 정의당이 존재를 좀 드러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어요.” (30대. 남), (「워커스」 31호)

   

그렇다. 부르주아 선거는 정당(정치)에 대한 일상적인 지지와 참여가 아니라 제한적인 선택을 강요한다. 이러한 선거제도는 자본주의 국가와 지배체제를 유지해주는 근간이다. 선거 메커니즘은 부르주아 정치와 적대적이어야 할 노동자 투쟁마저 포섭한 지 오래다. 대대적인 노동자 투쟁이 부르주아 선거 지형을 바꾸어 독자적 노동자 정치를 실현할 기반을 마련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적 투쟁’은 선거 결과로 수렴되어야만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환상이 투쟁을 교란하고 후퇴시키고 있다.

 

위의 면담자(interviewee)는 정의당을 진보정당으로 판단하고 있다. 우리는 정치세력의 성격을 계급적으로 판단한다. 정의당을 계급으로는 노동계급이 아닌 자본의 진영에 포함된 부르주아 정치 세력(자본의 좌파)으로, 정치적으로는 민족주의, 사회민주주의, 자유주의가 혼합한 개량주의 세력으로 규정한다. 대선이 끝나고 선거 결과를 분석하고 노동계급의 의식 흐름을 판단해야 하는 시점이다. 굳이 정의당을 먼저 언급한 것은 선거 거부/기권을 택한 소수를 제외하고 다수의 의식적 노동자와 이른바 사회주의 정치세력은 이번 대선에서 차악인 정의당 후보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심상정이 얻은 200만 표 중에 민주노총 조합원의 표가 얼마나 포함되어 있는지 정확히 판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노동자 밀집지역에서도 10%대의 저조한 득표를 한 것은 정의당과 민주노총 모두 서로에 아래로부터의 기반을 두고 있지 않다는 증거다.

 

정의당은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선택과는 별개로 자신의 계급적 성격에 맞게 평화적인 방법으로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 촛불 투쟁에 임했다. 조기 대선이 결정되자 다른 부르주아 정당들과 마찬가지로 득표게임에 뛰어들었다. 정권교체와 권력분점 사이에서 경쟁하고 때론 협력하면서 한편의 부르주아 정치 쇼를 흥행시키는 데 기여했다.

 

한편 노동계급은 촛불 투쟁과 대선에서 양적으로 다수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계급적인 행동과 자기 권력을 위한 투쟁이 없었기에 이른바 촛불 혁명과 정권교체의 들러리를 서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노동자들은 촛불 투쟁에서 ‘시민’이 되어 계급을 잊었고, 대선에서는 부르주아 정치세력의 ‘국민’이 되어 계급을 상실했다. 민주노총은 우여곡절 끝에 대선 방침으로 정의당과 민중연합당 후보를 지지했지만, 조합원들의 진보정치? 에 대한 지지는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의 정치를 실현하거나 대변할 노동자 정치가 부재하자 부르주아 정치세력의 정권교체에 힘을 실어주었다.

 

대대적인 촛불 투쟁과 그 성과물인 조기 대선에서 노동자들에게 ‘계급’과 ‘권력투쟁’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부르주아 정치세력은 노골적으로 자신의 계급성을 드러내며 권력 투쟁을 벌였다. 그들에게는 국회를 포함한 부르주아 정치 공간뿐 아니라 촛불 광장(태극기 광장), 언론(여론), SNS, 모든 사적-공적 조직들(풀뿌리 조직 포함) 모든 곳이 치열한 권력투쟁의 장이었다. 노동자들이 총파업은커녕 계급마저 잊은 채 수동적으로 촛불 집회에 수차례 또는 수십 차례 나가는 동안, 부르주아 정치세력은 자신들의 손이 미치는 모든 곳에서 ‘계급적’으로 ‘권력투쟁’을 벌였다. 이것이 촛불 투쟁과 대선의 결과인 정권교체로 나타난 것이다.

 

노동계급에게 선거와 권력투쟁에서 ‘계급적’이라는 것은 노동계급과 부르주아계급의 이해관계가 격렬하게 대립하고 그것을 반영한 정치가 적대적으로 분출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부르주아계급에게는 그 반대이다. 계급 간의 이해관계 대립과 적대적인 정치를 감추고 정당(정치세력) 간의 경쟁으로 돌리는 것이 ‘계급적’ 정치인 것이다. 그들은 소수의 지배계급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재벌개혁이나 노동 기본권 보장 등은 노동계급의 이해관계에 부합하지만, 자본가 계급에도 적대적인 정책은 아니다.

 

이번 대선에서 당선 가능성이 없었던 홍준표와 한국당 세력은 반()노동조합, 반공, 친자본 이미지를 부각시켰지만, 그것은 내부 결속을 위한 목적이었다. 실제 노동자들의 ‘계급적’ 행동을 억제시킨 것은 정권교체 세력이었다. 결국, 촛불 투쟁과 대선에서 ‘계급적’이지 못했던 민주노총과 노동자 정치세력은 부르주아계급에 스스로 무장해제를 해주었다. 선거 이후에도 노동자 운동의 전망은 일부 낙관론자들의 기대와는 반대로 매우 어둡다고 본다.

 

이른바 자본주의 체제 정상화? 인 ‘적폐청산’을 내걸고 ‘노동 친화적’이지는 않지만, 이전 정권과 같이 ‘노동(운동) 적대적’이지는 않을 거라는 기대 속에 문재인 정권이 들어섰다. 적폐청산에는 재벌개혁이 중요시되고 있지만, 노동에 대한 (자본주의적) 개혁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진보진영이 금기처럼 여겨 온 노동시장의 문제, 임금개혁의 문제 해결에 나서야한다." 문재인 정부 대통령 정책실장으로 임명된 장하성 고려대 교수가 2년 전 한 좌담회에서 강조했던 말이다. 옆에 있던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정규직 노동조합의 문제라고 정확하게 말씀하셔야 한다."고 거들었다. (2017. 5. 26), (「내일신문」)

 

촛불 투쟁과 대선 기간 나타난 정권교체 환상은 단순히 반(反)박근혜 정서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적폐청산이라는 촛불 광장의 요구가 구호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에게는 재벌개혁, 노동존중 등 추상적인 것에서부터 구체적인 비정규직 문제, 일자리 문제까지 파고들어 정권교체 열망으로 수렴된 것이다. 이렇듯 다양하고 구체적인 정권교체 환상이 걷히지 않는 한 당분간 노동자 운동은 선거기간에 포섭된 것보다 훨씬 크고 빠르게 정부의 품으로 흡수될 것이다. 그것을 제어할 ‘계급’과 ‘권력투쟁’이 없었기에 전면적인 내부 투쟁을 벌이지 않는다면 둑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어려울 것이다.

 

최초의 프롤레타리아혁명인 러시아혁명이 일어난 지 100년이 되었지만, 우리는 혁명의 기억마저 거의 잊혀 진 이곳에서 시작해야 한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지 얼마 안 되어 선언적인 정권과의 대립각 주장이나 이미 정권에 포섭된 노동자 운동 배신세력에게 남 탓하듯 비난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낡은 운동은 이미 민낯을 드러내다 못해 태생적 본질마저 보여주었다. 하지만 아직 새로운 것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소수의 발본적, 혁명 운동 세력은 자본주의 체제 위기와 계급 운동의 위기에 직면해 고군분투하고 있으나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하지만, 우리는 이보다 더 혹독하고 길었던 반혁명의 암흑기도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파시즘 아래에서도 소규모의 혁명가들은 반파시즘 민주주의 투쟁으로 후퇴하지 않고 “미래는 코뮤니스트의 것이다!”라고 당당하게 주장하며 코뮤니스트 혁명을 위한 실천을 벌여나갔다. 그들에게는 혁명(전통)에 대한 ‘기억’과 투쟁과 실천에서의 ‘인내’와 자기조직화에 대한 ‘전망’이 있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촛불 투쟁에서 대선까지의 노동계급

 

촛불 투쟁은 수많은 기록과 역사를 남기며 문재인 정권의 탄생과 함께 막을 내렸다. 촛불 투쟁이 이렇게 사상 초유의 규모로 분출한 계기는 박근혜 정권의 추악한 민낯이 밝혀지면서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자본주의 위기가 문제의 본질이었다. 1,000만 비정규직, 사상 최대의 가계부채, 급증하는 실업, 몰락하는 자영업, 생존권 위기에 몰린 빈민과 노인, 철저한 계급사회임을 증명하는 구조화된 빈부 격차, 그리고 이러한 불평등하고 불안정한 사회에서 희망을 품을 수 없는 수많은 사람의 분노가 촛불 투쟁의 배경이었다.

 

연인원 1,700만 명의 촛불 집회 참가가 다수는 조직적 참가자가 아닌 개별 단위로 자발적으로 참가한 사람들이다. 촛불 집회는 ‘퇴진행동’이 주최하고 조직노동자(민주노총)가 일부 역할을 했지만, 수십만 명을 넘는 인원이 지속해서 참가한 것은 단체의 조직력보다 자발적인 참가가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이다. 촛불 투쟁의 확산은 자본주의 위기 아래 박근혜 정부뿐 아니라 사회와 일상에서의 기득권세력, 지배계급에 분노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을 표출할 ‘광장’이 필요했고, ‘촛불 집회’가 일부 실현해 주었기 때문이다.

 

한편 조직노동자들은 예상치 않은 대대적인 촛불 투쟁에 자극받고 고무되기도 했지만, 노동조합 투쟁에서 그래왔듯이 자신의 이해관계와 직접 관련이 없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투쟁 물결에 자신들이 가진 노동자 고유의 무기로 투쟁에 힘을 싣기보다는 형식적으로 대응했다. 책임과 희생이 따르는 ‘계급적 투쟁’보다는 편하고 이익이 되는 ‘조직적 집회 참가자’의 길을 택했다. 조직노동자들은 대대적인 촛불 투쟁을 만나 박근혜 정권의 공범인 ‘재벌(대자본)에 맞선 직접 투쟁’에 전면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촛불이 100배로 커지는 동안 자신들의 동료인 ‘투쟁사업장 현안 해결을 위한 연대 투쟁’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대대적인 촛불 투쟁은 박근혜 정권의 반대편에서 정치 권력을 나누며 정파적 이해관계를 추구하던 국회를 압박해 탄핵소추를 이끌어냈다. 선출되지 않은 헌법기관인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결정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 촛불 투쟁이 만든 박근혜 파면 정세는 선거법에 따라 대선으로 이어졌다. 촛불 투쟁의 성과도 정권교체 민심(?)으로 표현되었다. 이러한 민심은 촛불 행동의 근본적인 원인과 열망의 온전한 표현이 아니라 촛불 투쟁의 한계가 만들어 낸 불가피한 결과였다.

 

박근혜 파면 이후 “탄핵은 끝이 아니라 촛불 혁명의 시작이어야 하고, 대통령 교체를 넘어 세상을 바꾸는 촛불로 타올라야 한다.”며 투쟁을 지속하자고 했던 민주노총은 대선 시기 “세상을 바꾸는 대선, 노동존중 평등사회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정의당과 민중연합당 후보를 지지했다. 하지만 이것은 형식적인 것이었다. 민주노총과 산하 조직들은 대선 시기 대통령 후보와 그들의 정당에 ‘정책 협약’이라는 부탁 또는 압력을 통해 약속을 받아내는 것에 집중했다. 민주노총과 이른바 좌파 세력들은 사회연대노동포럼과 같이 문재인을 노골적으로 지지하는 세력을 강하게 비난하면서도 부르주아 대선의 본질과 정권교체의 환상에 대해 정확하게 비판하지 않았다. 선거로는 절대 세상을 바꿀 수 없으니, 어려워도 ‘선거가 아닌 투쟁으로 노동자의 생존권을 지켜내자’고 호소하지 않았다. 선거를 넘어 투쟁으로 정세를 돌파하자고 고공농성에 돌입한 것은 가장 어렵고 끈질기게 싸워 온 소수의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이었다.

 

촛불 대선과 노동계급의 쟁점

 

 촛불 투쟁과 조기 대선에서 수많은 주장과 쟁점과 공약이 있었다. 하지만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현안은 주목받지 못하거나 ‘가공된’ 쟁점에 의해 가려졌다. 대선 기간 고공농성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의 절박한 현안은 대선의 쟁점이 되지 못하고 외면 당했다. 민주노총과 부르주아 야당이 함께 주장한 재벌개혁과 자칭 변혁세력이 주장한 사내유보금 문제는 유력 대선 후보들의 토론 주제로 자주 거론되었지만, 다수 비정규-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은 주목받지 못했다. 국가, 사회, 가족, 공동체에서 이중 삼중의 차별과 고통을 받고 있는 성소수자의 인권은 짓밟혔다. 상시적인 생존권 위기와 위험한 생활조건에 처한 빈곤층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대책은 시혜적 차원에서만 다루어졌다.

 

 대대적인 촛불 투쟁에서 노동자들의 요구는 현 위기와 모순의 근본 원인인 자본주의 체제 문제로 나아가지 못했다. 방어적인 노동자 기본권 요구에 머물렀던 노동자 운동 진영은 대선에서도 자신들의 현안과 쟁점을 계급투쟁-권력 투쟁으로 모아내지 못했다. 오히려 극우 친자본 세력의 ‘강성노조’ 공격이 쟁점이 되었을 때, 자본과의 전면전을 선언하지 못하고 억울함과 노동 존중을 호소하는 데 그쳤다. 촛불투쟁의 주역이었다는 민주노총과 이른바 좌파 세력은 대선에서 공세적이지 못했다. 노조 할 권리,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문제 해결 등 최소한의 방어적 요구도 '어느 정권이 들어서든 투쟁으로 쟁취하겠다.'는 계급적 요구가 아니라 '투쟁과 정책협약'을 병행하는 애매모호한 시민적 요구에 그쳤다. 

 

 노동계급은 대통령 선거에서 정권교체냐, 노동존중이냐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를 죽이고 생존권을 파탄 낸  ‘부르주아계급의 대리-협력세력에게 권력을 바치는 선거냐, 노동자를 살리고 스스로 생존권을 지키는 투쟁이냐’를 선택해야 한다고 당당하게 주장하지 못했다. 오히려 대선으로 세상을 바꾸자면서, 대선이 ‘노동존중 평등사회’를 가져올 거라는 환상을 유포했다. 하지만 ‘노동존중’은 노동자 투쟁과 단결의 힘이 자본가 권력과 맞설 수 있을 때 가능하다. ‘평등사회’는 선거가 아니라 노동자 투쟁과 혁명으로 노동계급이 자기 권력을 가질 때 가능하다.

 

 후보전술을 주장하는 이들이 진정으로 선거가 노동계급에 중요하거나 선거 공간을 반드시 계급투쟁(권력투쟁)의 무대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비록 부르주아 선거라도 계급적으로 할 수 있는 최대치를 요구하고 선거법을 넘어서 투쟁해야 한다. 선거법에 얽매인 선거 유세나 소극적인 투쟁현장 지지방문을 넘어 대중집회, 점거투쟁, 자본의 상징 및 노동권/인권/생존권 탄압 현장 타격, 국가보안법을 무력화하는 선전선동 등 득표를 위한 선거운동이 아닌 실제 투쟁을 해야한다. 물론 선거주의자들과 현재의 후보전술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부르주아 정치를 흉내내는 공약 발표가 아니라 완전한 파업권, 정치사상의 자유, 노동자 통제(생산수단 몰수), 자본주의 전복 , 노동자혁명-노동자 권력의 필요성을 당당하게 주장해야 한다. 그것이 비록 당장은 실현할 수 없는 주장이더라도 ‘권력’과 ‘국가’의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는 시기에는 끊임없이 구체적인 노동자의 언어로 설명하고 주장해야 한다. 하지만, 민주노총과 이른바 좌파 세력은 자신들의 조합원들에게조차 계급의 강령적 요구를 꺼내놓지 못했다.

 

 이른바 좌파 정치세력 중에는 ‘계급의식’ 발전에 도움이 된다며 정의당 후보를 지지하는 곳이 있었고, 지지할 후보가 없다면서 노동자혁명당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곳도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계급정당-노동자혁명당이 부르주아 선거에서 노동자들에게 선택지를 하나 더 주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노동계급에게는 자본가 정권-체제에 맞서 싸우고 노동자혁명-노동자 권력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노동자혁명당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은 부르주아 권력을 전복하는 목적을 갖기 때문에 부르주아 정치로부터 독립적이고 적대적이어야 한다. 따라서 노동자혁명당이 존재한다 할지라도 부르주아 선거 참여는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 극히 제한적이고 예외적이어야 한다. 문제는 매번 반복되는 선거에 대한 전술과 입장이 노동자 투쟁과 노동자 의식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후퇴시키는 역할만을 해왔다는 점이다.

 

 앞으로도 상당 기간 요원한 혁명당 건설 전망 속에서 선거 때마다 당위로 주장하는 당 건설 주장은 더는 의미가 없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부르주아 정치로부터 독립적이고 적대적인 선거대응을 하는 일이다. 그것은 초기에는 당 없는 선거 대응, 당 건설로 향하는 선거 대응, 소수가 할 수 있는 선거 대응, 선거를 넘어서는 투쟁 창출, 선거를 거부하며 투쟁과 의식을 발전시킬 수 있는 실천과 자기조직화 전망이 될 것이다.

 

 아무리 노동자 운동이 후퇴하고 투쟁의 힘이 지속해서 약해졌어도, 노동계급은 자신의 고유한 방식으로 투쟁해야만, 부르주아계급에 밀려있는 교착상태를 깨고 정세의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의 첫걸음은 선거가 아닌 대중의 직접행동이다. 대리인과 우상을 내세우지 말고 투쟁하는 노동자가 주체가 되어, 부르주아 정치를 거부하고 노동계급의 방식으로 직접 정치를 실현하는 것이다.

 

선거에서 노동계급의 쟁점은 선거공약과 후보검증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에만 존재한다.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을 담아내고 분출하게 하는 노동자 정치는 부르주아 정치판이 아닌 노동자의 자리에서만 가능하다. 자신의 자리도 지키지 못하면서 부르주아 정치를 흉내 내지 말자. 이제는 더 이상 선거주의자들에 속지 말고, 선거를 투쟁으로 둔갑시키는 사기 집단을 용납하지 말자.

 

2017년 6월

국제코뮤니스트전망 l 이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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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2호] 어제 우리를 속인 낡은 정치가 오늘도 여전히 노동자의 발목을 잡고 있다

[대선평가와 정치운동 전망]

 

어제 우리를 속인 낡은 정치가 오늘도 여전히 노동자의 발목을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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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2012년 겨울,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국가적 행사이지만, 프롤레타리아트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부르주아 대선이 끝났다. 지금은 한 편의 대형 정치쇼가 마무리되고 새로운 통치를 위한 준비가 시작되고 있다. 이러한 준비에는 늘 수많은 잡음과 새로울 것 하나 없는 이슈들이 생산된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부르주아 권력 재편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된다. 또한, 선거에서 패배한 쪽에는 정비 기간을 주어 부르주아 민주주의(선거)에 대한 환상을 지속하게 한다.

 

이번 대선에서 노동자 정치는 어떤 식으로 표현되었나? 노동자 독자후보에서 비판적 지지까지 늘 반복되는 선거전술의 재탕과 이합집산 속에서 두 명의 노동자후보, 민주노총의 무능, 저조한 득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실패, 사회주의 정치의 실종 등 최악의 선거 결과를 초래했다. 결국, 부르주아 선거 국면을 노동자정치로 돌파하기는커녕, 노동자운동 전체의 쇠락을 가속하는 역할을 했다.

 

선거에 익숙한 대중들에게 부르주아 선거의 기억은 오래가지 못한다. 문재인은 1,000만 표 이상을 획득했음에도 승자만이 살아남는 정치쇼에서 어느새 잊힌 사람이 되었고, 이번 대선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안철수의 화려한 복귀의 그 빛 역시 바래고 있다. 노동자 투쟁의 기억은 역사가 되고 전통이 되어 계급투쟁에 도움이 되지만, 부르주아 정치에 참여한 노동자 후보의 흔적은 금새 지워진다. 이미 부르주아 정치 시스템에 편입된 부르주아 정치 세력들은 자체 정비 기간을 거쳐 의회 활동, 보궐선거, 각종 사회적 이슈 등을 통해 자연스레 정치무대에 등장하겠지만, 노동자정치는 더욱 잊혀 가거나 부르주아 정치세력에 계급 고유의 과제마저 넘겨줄 가능성이 커졌다. 이미 지난 대선에서 민주노총 상층 관료 상당수는 문재인과 안철수 캠프에 합류했고, 조합원들은 압도적으로 부르주아 정치인을 지지했다. 이것이 2013년 한국 노동자계급의 현실이며, 노동자정치의 출발선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운동진영 내부는 어떠한가? 노동자계급에 대한 최소한의 반성은 있었는가, 내부모순을 타파하기 위한 투쟁은 벌어지고 있는가? 이제야말로 낡은 운동과 과감히 단절하고 새로운 운동을 모색할 때가 되지 않았나? 답은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반성하지 않는 세력들의 기득권은 여전히 방어되고 있다.


노동자민중 운동 진영 안에서 아래로부터의 내부혁명이 가능하게 하려면 기존세력이 기득권을 내려놓던가, 전면적인 내부투쟁으로 기득권을 몰수해야 한다. 비정규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의 모든 단위에서 동등하게 의사결정기구 참여를 보장받아야 한다. 소수 혁명적 정치세력은 모든 대중조직에서 완전한 정치활동을 보장받아야 한다. 막강한 부르주아 정치권력에 맞서 주요 생산수단의 사회화(국유화)와 노동자통제를 주장하던 세력들이 왜 노동계급 내부의 문제에는 소극적이거나 부르주아 방식에 머물고 있는가.

 

이에 우리는 낡은 운동과 철저히 단절하고 새로운 운동의 창출을 위해, 부르주아 정치제도(선거) 자체에 적대하는 입장에서 대선을 평가하고 현실 운동의 전망을 제시하려 한다. 아직 우리는 모든 것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역량과 운동의 방향에 대한 정답을 담보하고 있지 못하다. 하지만 우리는 진리의 담지자가 아니므로 실천 속에서 모든 것을 열어 놓고 토론하고 검증받으면서 새로운 운동 원칙과 조건을 창출해 나갈 것이다.

 


1. 부르주아 선거 평가에 대한 코뮤니스트 관점

 

우리는 작년 부르주아 대선을 맞이하여 '사회주의의 정치의 실종'과 ' 부르주아 선거 자체에 대한 거부'를 주장했었다.

 

“고통당하고 억압받는 노동계급과 투쟁하며 그들을 정치의 주체로 함께 내세우고 있는가? 부르주아 정치판에 ‘진보’ 정당이라는 이름으로 끼어들어 노동계급을 배신하고 부르주아의 한 분파로 행세했음을 반성하고 있는가? 일부에서 ‘노동자 민중후보’를 내세우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이 후보전술을 쓸 때인가? 제발 좀 반성하자. 부르주아 정치를 흉내 내지 말자. 선거가 아닌 대중의 직접행동으로 맞서자.

 

노동자 대중의 열망과 사회주의 정치의 무능력의 틈을 파고드는 것이 파시즘이다. 사회주의/코뮤니스트 정치의 진정한 복원만이 파시즘을 이기는 길이다."

 

(오세철, 국제코뮤니스트전망, 『코뮤니스트』, 창간호, [사회주의 정치의 실종], 11쪽)

 

 

“부르주아 선거의 본질은 지배계급의 위기를 평화롭게 넘기는 것이며, 격화되는 대중 투쟁을 잠재우고 대중의 불만표출을 잠시 멈추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선거에 휩쓸리지 말고 투쟁의 동력을 유지해 선거 이후 더욱 강력한 투쟁으로 지배계급에 맞서야 한다.

선거는 짧다. 두 개의 노선은 대립하고 있다. 사민주의와 동거, 선거정치 몰입이냐, 계급적 대중행동 투쟁 촉구냐?

이제라도 부르주아 잔치판에서 뛰쳐나와 노동계급의 자리에서 자본주의가 인류 참상의 원인이고, 이를 넘어서는 코뮤니스트 사회만이 대안이라고 대중적・공개적으로 말하고 싸워야 한다. 고통당하고 억압받는 노동계급과 함께 투쟁하고 그들을 정치의 주체로 내세워야 한다. "

 

(국제코뮤니스트전망, [2012 부르주아 대선에 맞선 코뮤니스트노동자의 입장], 2012년 11월)

 

 

이 주장은 단순히 후보전술에 대한 비판만이 아니라, 부르주아 정치 자체를 거부하는 코뮤니스트 관점에서 선거를 판단하고, 노동계급 고유의 영역에서 사회주의/코뮤니스트 정치를 복원시켜야 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코뮤니스트 관점의 선거 평가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기존의 선거평가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의 모든 선거 평가는 표 분석(계층, 계급, 나이, 성별, 지역 등)과 표를 얻기 위한 선거운동 전반(후보자와 정책 포함)에 대한 사회학적, 통계적 분석이 주류를 이루었다. 하지만 이러한 분석 자체가 부르주아 선거제도에 포함된 선거 메커니즘의 일부기 때문에, 계급의식 측면에서 노동자 정치의식에 대한 분석은 불가능하다. 부르주아 정치의 선택지 안에서의 투표행위는 계급의식을 왜곡해서 반영하기 때문에 득표수를 근거로 노동자 정치의식을 판단할 수는 없다. 또한, 계급의 불만을 체제 내로 흡수하고 지배 권력을 재편하는 것이 본질인 부르주아 선거를 지배계급 대 피지배계급의 계급투쟁 관점에서 평가해서는 안 된다. 이는 이미 부르주아 선거가 모든 대립 구도를 흡수하는 시스템으로 굳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단순한 표 분석이 아닌 장기적으로 선거 이전과 선거 이후 계급의식 변화에 대한 총체적 분석과 선거 국면에서 정치세력들이 계급의식에 미친 영향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부르주아 선거제도가 일반화되어, 체제 위기 극복의 필수 요소가 된 지금이 바로 부르주아 정치 자체를 거부하는 관점에서 선거 평가를 해야 할 시점이다.

 

그렇다면 코뮤니스트 관점에서 선거 평가를 어떻게 할 것인가?

 

첫째, 선거 시기 부르주아 민주주의(선거) 환상에 대한 계급의식 수준을 분석해야 한다.

 

둘째, 선거 시기 노동자 대중의 열망이 어떻게 선거에 흡수되는지, 사회주의 정치 세력을 포함한 선거 참여가 대중투쟁과 정치운동을 어떻게 왜곡시키는지 평가해야 한다.
 
셋째, 선거 이후 선거 환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책과 새로운 계급투쟁 창출을 위한 전망을 제시해야 한다.

 

아쉽게도 이번 대선평가에서는 계급의식 분석에 대한 사전준비가 부족하여. 문제 제기 수준에서 머물렀다. 앞으로 계급의식에 관한 조사와 연구는 장기적인 계획으로 진행될 것이며, 혁명 주체 문제를 푸는 단서를 제공할 것을 기대한다.

 


2. 부르주아 선거에 대한 정치 노선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첫째, 부르주아 정치에 이미 편입되어 있거나 전문적인 선거(의회)주의 세력을 우리는 '부르주아 정치의 좌파'라 부른다. 과거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에 뿌리를 둔 진보정당들이 여기에 해당하며, 그들과 연합했던 다함께와 같은 정파들이 이에 포함된다. 이들의 일부는 특별히 선거 국면에서는 부르주아 정파와 연합하거나 비판적 지지를 보내기 때문에, 넓은 의미에서 부르주아 정치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둘째, 의회주의, 수권주의를 거부하는 사회주의 강령을 내걸고도 선거 시기에 부르주아 정치에 참여했던 사노위와 같은 세력을 사회주의 정치에서 후퇴한 기회주의 정치로 판단한다. 이들은 선거(연합)를 통해 대중투쟁 확산과 정치세력화를 주장했지만, 결국 계급투쟁과 무관하게 선거운동만 한 셈이 되었다.

 

셋째, 노동자(사회주의) 후보를 세워 선거에 참여하려 했으나 현실 조건이 되지 않아 선거에 참여하지 않은 세력들이다. 이들은 본질에서 후보전술 자체에 대해서 부정하지 않기 때문에 둘째 세력과 유사하다. 다만 현실에서는 부르주아 선거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후보전술에 대해 제한적인지, 적극적인지 판단을 보류할 수밖에 없다.

 

넷째, 부르주아 정치와 단절하거나 선거전술을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사회주의/코뮤니스트 그룹과 혁명적 사회주의자 개인들인데, 이번 선거에서 모두 후보전술 자체를 반대했다.

 


3. 정치 노선별 대선 참여와 거부의 이유

 

위의 정치세력들이 이번 대선에 참여하거나 거부한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서는 부르주아 정치인 문재인을 지지하거나 비판적 지지한 세력은 제외한다.)

 

첫째, 변혁모임, 사노위 등은 대선 시기 정세개입(야권연대 반대)을 통해 대중투쟁을 촉진하고 이후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의 기반을 마련한다는 기조하에 후보전술을 구사했다.

 

“‘대선기획단’의 “반자본주의 반신자유주의, 야권연대 반대, 완주하는 노동자민중 독자후보, 당 건설 및 대선 대응 분리”라는 정치적 기조와 ‘변혁모임’의 “야권연대가 아닌 노동자 대통령 독자 후보 출마와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통해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제안에 따라, 이러한 정치적 기조에 동의하는 세력을 중심으로 ‘노동자대통령 선거투쟁본부’를 결성했다. 선투본은 논의를 거쳐 2012년 대선투쟁의 기조를 ‘투쟁하는 노동자 대통령 / 탐욕의 자본주의 체제를 변혁하는 대선투쟁 / 야권연대가 아닌 노동자 계급정치 강화’로 결정하여 2012년 대선투쟁에 임했다.”

(‘노동자대통령 선거투쟁본부’보고 및 평가(안), 2013년 1월 25일)


하지만 이러한 정세적인 당위성과는 다르게 현실적으로는 사회주의 노동자당 건설 노선의 후퇴와 변경, 그리고 변혁모임으로 표현되는 전투적 노조운동의 위기 상황에서 정세개입과 당 건설 당위의 압박이 작용한 결과 무리한 선거전술을 사용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즉, 주체역량의 문제를 계급투쟁의 성과로 해결 하려 하지 않고, 통진당 사태 이후 공백이 생긴 진보정당 영역을 선거의 매개로 차지하려 했던 것이 오류의 핵심이다.

 

둘째, 노건투, 해방연대, 사회주의 유기적 지식인 등은 역량 부족, 후보전술 절차와 선거 강령상의 문제, 그리고 진보신당 참여에 대한 반대를 주장하며 노동자후보 캠프에 참여하지 않았다.

 

“우리는 변혁모임의 선거논의 과정에서 독자후보투쟁에 대한 반대 이유를 밝혔고 김소연 후보 선거투쟁에 함께 하지 않았다. 변혁모임은 아직 후보투쟁을 감당할 수 있는 정치적·조직적 능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정치적으로 정돈해야 할 것들을 제대로 정돈하지도 않고, 조직의 실력을 냉정히 따져 보지도 않은 채 선거에 뛰어드는 것은 선거주의의 또 다른 모습일 뿐이며 정치적 투기라고 판단했다.”

(이용덕, 노건투, 정세초점, [2012년 대선/ 노동자후보투쟁이 남긴 것], 2012년 12월)

 

“노동자 후보를 내세워 대선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자 역시 선거로는 안 된다는 식의 반응, 대중운동이 바로서야 한다는 진지하지만 상투적인 반응 등 여러 이야기가 떠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확인한 것은 사회주의 노동운동의 역량부족 자체였고 그것 이상의 한계는 없다. 선거로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선거투쟁을 위해서는 사회주의 후보가 필요했고, 대중운동이 바로 서지 못해서가 아니라 사회주의 노동운동이 제대로 서지 못해 대중운동이 지리멸렬한 탓이다.”

 

(김광수, 해방연대, 해방 75호, [낡은 것, 뒤쳐진 것과 단절하고 사회주의 정당 건설하자])

 

 

이들의 후보전술에 대한 비판은 일면 타당성을 갖고 있지만, 아쉽게도 부르주아 선거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은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부르주아 선거참여를 전술의 하나로 판단하는 낡은 사고를 보여주었다. 또한, 강령에 입각한 당 건설이라는 원칙과 낮은 차원의 공동전선 형태인 변혁모임 참여 사이에서 정치적으로 후퇴하거나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선거전술' 문제는 일찍이 코민테른 시절부터 볼셰비키와 코뮤니스트 좌파 사이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레닌과 호르터의 논쟁, 트로츠키와 보르디가의 '혁명적 의회전술' 과 '보이콧 전술' 등으로 알려진 선거전술 문제는, 흔히 알려진 대로 ‘부르주아 의회를 통한 혁명 전략의 부정’이나 ‘부르주아 의회(선거)의 이용 가능성’에 대한 논쟁이 본질이 아니다.


이것의 본질은 러시아의 후진적 정치상황에 적합한 볼셰비키의 의회전술을 일반화하여 유럽 국가들에도 적용하려는 코민테른과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일정 수준에 오르고 노동자평의회가 현실화되어 의회의 이용 자체가 혁명운동에 걸림돌이 된 유럽의 혁명적 코뮤니스트들의 반()의회적 혁명 전략이 대립한 결과이다. 당시의 유럽은 이미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부르주아계급 일부가 되어 버렸고, 이들이 진출한 의회가 오히려 노동계급을 학살하는 역할을 하는 상황에서, 혁명적 코뮤니스트들은 의회를 이용하기보다는 의회를 타도할 목적으로 반의회적 노동자평의회 운동을 광범위하게 전개하고 있었다. 현재에도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혁명) 조직들은 반의회주의와 선거 거부에 대한 원칙을 강령에 정확히 명시하고, 그에 복무하는 전술을 펼치고 있다. 즉, 부르주아 선거는 전략의 문제이고, 현실적으로는 '부르주아 정치 참여(선거전술)'와 '부르주아 정치 전복(선거거부)'이라는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따라서 혁명당 건설을 목표로 하는 조직은 '선거전술' 문제를 강령으로 명확히 정립해야 한다. 일반적인 정세에서 선거전술을 사용하면서 아주 특별한 경우에 선거거부(보이콧)을 검토하는 것이 아니라, 선거거부와 부르주아 정치/국가 전복을 기본 목표로 하면서 아주 특별한 경우에도 선거개입은 제한적으로만 검토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셋째, 국제코뮤니스트전망(ICP)은 부르주아 선거와 후보전술 자체를 반대하였다. 즉, 부르주아 선거에 대한 원칙을 강령 수준으로 판단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노동계급은 그들 자신의 방식으로 하는 투쟁으로만 계급 간의 교착상태를 깨고 정세의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는 세력을 만들 수 있다. 선거가 아닌 대중의 직접행동으로, 대리인과 우상을 내세우지 말고 투쟁하는 노동자가 주체가 되어, 부르주아 정치를 거부하고 노동자의 방식으로 직접정치를 실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형로, 국제코뮤니스트전망, 『코뮤니스트』, 창간호, [코뮤니스트조직의 정치원칙을 세우며], 44쪽)

 

마지막으로 대선에 참여한 70%의 프롤레타리아트가 부르주아 선거제도를 자신의 삶으로 완전히 받아들였는가! 이다. 한국에도 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25년간 부르주아 선거제도가 확실히 정착되었다. 즉, 모든 정치가 선거를 통해서만 결실을 보며, 선거 메커니즘 자체가 삶의 일부가 되었고, 대중들을 자연스럽게 투표소로 향하게 하는 것이다. 특별히 이번 선거에 투표율이 높은 것은 계급의식 측면에서 계급적 열망이 부르주아 민주주의로 전면적으로 흡수된 결과이기도 하다.

 


4. 후보전술의 실패와 계급의식의 왜곡

 

지난 대선에서 노동자 후보를 내세운 세력은 왜 실패하였는가?

 

한마디로 기획단계에서부터 모든 과정이 총체적으로 실패한 결과였다. 노동자 민주주의와 상관없는 자신들만의 후보선출과정에서부터 선거운동 기간 동안 선거투쟁이라는 목적에 맞는 전술은 부재했다. 특히 짧은 준비 기간은 후보등록 자체를 목표로 만들었고, 선거운동을 치를 역량조차 부족하여 처음부터 (선거 전문) 진보신당의 직간접적 도움이 필요했다. 말로는 ‘구속되는 후보’, ‘투쟁하는 노동자 집단후보군’을 내세웠지만, 현실에서는 철저히 선거법의 테두리 안에 갇힌 채 선거 유세에 전념해야 했다. 대중 집회, 광장 점거, 자본의 상징 타격 등과 같은 투쟁은 벌이지 못했고, 이들이 공격적으로 타격해야 했던 선거법은 오히려 삼성, 현대차 등 자본가들이 아무렇지 않게 무시하며 이들의 선거 유세를 방해하는 데 사용되었다.

 

“후보를 내세워 노동자 투쟁을 촉진할 수 있다는 환상과 조급성이 후보중심의 전술을 강제하고, 위로부터의 공동전선, 심지어 사민주의 세력과의 선거연합을 허용하고, 나아가 부르주아 정치를 흉내 내게 되어, 결국 선거 개입은 항상 대리주의와 선거주의로 귀결되고 만다. 더욱이 국가보안법의 탄압에도 공개적이고 대중적인 사회주의 정치활동이 본격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10여 년 전으로 후퇴하여, 사민주의자들도 상당수 수용하는 경제 요구를 노동계급의 행동강령이라고 내걸고, 사민주의 세력과도 기꺼이 연합하면서, 대중투쟁과 직접행동에 기반을 두지 않은 채, 부르주아 정치 공간에서 벌이는 선거 개입이야말로, 사회주의운동을 급격하게 퇴보시키는 정치적 타락행위이다.”

 (이형로, 국제코뮤니스트전망, 『코뮤니스트』, 창간호, [코뮤니스트조직의 정치원칙을 세우며], 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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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정치적 퇴행의 근본 원인은 사실은 사회주의 노동자당 건설이라는 당면과제가 난관에 봉착하자 이에 대한 해결책을 선거 개입과 노동자계급정당 건설로 후퇴시켰기 때문이다.

 


여전히 철저한 강령 원칙과 실천 검증에 따른 혁명적 사회주의/코뮤니스트 세력의 재구성을 통한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새로운 주체들과 코뮤니스트 운동이 계급투쟁 속에서 직접 만나, 계급 안에서 혁명적 주체를 세우고 자기 조직화를 이루는 것을 통한 당 건설을 해나가는 원칙은 전혀 변하지 않았음을 명심해야 한다. 계급투쟁과 계급의식의 발전 없이 혁명당 건설은 불가능하다. 당 건설의 주체와 강령을 포기한 당 건설이야말로 주체의 조건이 아닌 진보 정당류와 노동조합과 같은 주변 변수에 흔들리는 당 건설 노선일 수밖에 없다.

 

김소연 선본은 선거 이후 다음과 같이 자체적인 선거 평가를 하고 있다.

 

“많은 노동자들이 진보정당의 위기에 절망하여 독자적 노동정치 자체를 포기해 버리려 한 현실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얼마 안 되는 좌파 정치 역량으로 2012년 대선을 치러낼 수 있을까 회의하고 우려하는 현실에서!

그래서 노동조합의 일부 상층 지도자들이 문재인과 안철수 등 자유주의진영에 투항해 버리고, 현장 활동가들이 좌절하여 노동조합‘만’으로 후퇴해 버리거나, 좌파 정치 활동가들이 역량 부재를 탓하며 서클정치에 안주해 버린 척박한 노동정치의 현실에서!

그 얼마 안 되는 역량을 가지고, 노동자대통령 선투본은 2012년 대선투쟁을 역동적으로 완주함으로써, 독자적 노동자계급정치의 가능성을, 그 꺼져 가는 불꽃을 다시 살려냈다.”

 (‘노동자대통령 선거투쟁본부’ 보고 및 평가(안), 2013년 1월 25일)


이러한 평가는 한마디로 총체적인 왜곡과 자기만족형 평가다. 김소연 선본 평가서에서 주장하는 “많은 노동자들이 진보정당의 위기에 절망하여 독자적 노동정치 자체를 포기해 버리려 한 현실”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았다. 실제로 많은 노동자들은 진보정당의 위기에 절망한 것이 아니라, 이미 민노당 시절부터 노동자 직접정치와 노동자 민주주의가 실종된 대리주의 정치무대를 떠난 상태였다. 과거 노동자들이 민노당을 지지한 것도 노동자정치 환상과 의회주의 환상이 결합하였기 때문이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성과로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이루어졌으나 ‘독자적 노동정치’는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았다. 민노당은 처음부터 독자정치가 아닌 민족주의와 연합하여 부르주아 정치에 참여하는 의회주의의 길을 걸었다.

 

김소연 선본을 주도한 사노위 또한 8차 총회에서 다음과 같은 평가를 하고 있다.

 

“97년 이후 노동자정치세력화와 관련해 노동자·진보정치진영 내에서 형성된 양자택일적이고 왜곡된 대립구도인 ‘선거냐-대중투쟁이냐’의 논쟁을 극복할 수 있는 실천적 근거를 갖게 되었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사노위 8차 총회 결과, 2013년 1월 12일)


사노위에서 말하는 선거냐-대중투쟁이냐의 논쟁은 왜곡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논쟁을 제대로 하지 못한 운동진영의 미숙함. 즉 그 동안 부르주아 선거에 대한 근본적인 노선의 차이를 드러내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한편, 현장 투쟁, 현장 복원 등을 주장하고 있는 사회주의 세력은, 여전히 전투적 조합주의와 낡은 정치노선(공동전선, 행동강령)을 버리지 못해 계속된 운동의 축소와 한정된 현장을 둘러싼 쟁탈전이 예상된다.

 

“이러한 한계와 약점에도 불구하고 노동자후보들의 선거투쟁은 자본가정당들에게는 어떤 기대도 할 수 없으며 노동자계급의 독립적인 조직과 투쟁이 필요하다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의 의지와 희망을 대변했다. 이 의지와 희망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소중한 거름이다.”

 

(이용덕, 노건투, 정세초점, [2012년 대선] 노동자후보투쟁이 남긴 것, 2012년 12월)

 

 

특별히 대선을 지나면서 옛사노련 주축 세력이 혁명당 건설 시기 상조론을, 일부는 노동자계급정당 흐름(변혁모임) 참여 결정으로 당 건설 운동 흐름을 사노련 이전으로 후퇴시킨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제는 사회주의당 건설을 폐기한 세력에 파산을 선고하고 새로운 틀에서 혁명당 건설에 대한 논쟁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노동자 후보전술과 무관하게 부르주아 정치인에게 투표한 70%의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계급의식은 어떻게 왜곡되었는가?

 

우선 다수의 프롤레타리아 대중은 앞서 말한 대로 부르주아 선거 메커니즘에 의해 각자의 정치의식에 따라 유리한 후보에게 투표하였다. 부르주아 선거공간에서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반정부 의식, 반자본주의 열망은 대중행동이나 선거 거부로 표출되지 못하고, 사람들을 투표소로 향하게 하였다. 선거 국면에서는 모든 열망이 정치적 요구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투표행위라는 제한된 여과장치 속에서 모든 것은 가장 큰 이슈나 정권교체라는 목표로 흡수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중의 열망을 부르주아 정치세력이 야권연대로 왜곡시켰다면, 노자후보는 선거에 제한당한 노동자정치로 왜곡시켰다. 노동자정치를 주장하면서도 부르주아 정치를 흉내 내는 세력들은 노동자정치를 노동계급 고유의 영역인 투쟁의 장에서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선거공간에서 할 수 있다면서 부르주아 서커스 쇼에서 선전선동과 조직화를 꿈꾸며 선거운동을 선거투쟁으로 미화시켰다. 하지만 선출된 사람에 대한 통제권과 소환권을 갖지 않는 모든 선거는 부르주아 정치를 강화시킨다. 이러한 선거는 정치와 일상을 철저히 분리시킨다. 투쟁의 공간에서 대중을 정치의 주체로 세우고 자기 조직화를 통해 투쟁을 발전시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고, 수많은 실패 속에서 계급이 단련되어 스스로 전망을 가질 때 가능한 일이다. 더욱이 비정규, 미조직 노동자 투쟁에서의 자기 조직화와 직접정치는 더욱더 어렵다. 따라서 정치조직은 정세에 따라 원칙을 바꾸면서 노동자에 대한 조직화 자체에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의식 자체에 장기적으로 개입하여 계급 고유의 공간에서 직접정치를 실현해야 한다.

 


5. 부르주아 선거에 대한 거부 입장

 

그렇다면 부르주아 선거 자체를 거부한 국제코뮤니스트전망과 같은 세력은 왜 보이콧에 대한 행동을 기획, 실현하지 못했는가를 해명해야 한다.

 

선거 유세용 집회나 이벤트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대중총회를 건설하자. 아래로부터의 파업/투쟁위원회, 대중집회를 통해 노동자들이 정치적 의사 표현과 투쟁 의지를 제한 없이 표출하는 ‘수평적 노동자 직접행동’, ‘노동자 직접정치’의 토대를 만들자!

 

선거 시기에는 더욱더 모든 것에서 소외되었던 비정규/중소 영세 사업장 노동자, 장기투쟁 사업장, 장애인, 소수자, 빈민, 실업자, 이주노동자 등 미조직 프롤레타리아트 투쟁에 집중하자. 노동자투쟁과 미조직 프롤레타리아트들의 직접행동이 결합하는 ‘아래로부터의 프롤레타리아 연대’을 실현하자!"

(국제코뮤니스트전망, [2012 부르주아 대선에 맞선 코뮤니스트노동자의 입장],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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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정책반대, 인물 반대를 위한 보이콧이 아닌 계급투쟁과 연관된 선거 거부는 대중의 불만과 욕구가 기존 질서를 거부하는 것으로까지 표출되었을 때 가능하다. 여기에는 선거 거부 투쟁의 경험과 장기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아직 한국에서는 단 한 번도 장기적 계급의식 관점에서 부르주아 선거에 대한 이데올로기 투쟁과 대중행동을 준비한 적이 없다.


그래서 이번에는 우리의 입장이 행동을 전제로 할 수 없었다. 대선에 대한 코뮤니스트 노동자의 견해를 밝히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다. 왜냐하면, 우리의 역량이 실제 부르주아 선거에 개입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었고, 선거 거부라는 행동 자체가 아직 대중에게 낯설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선거 거부 행동을 위해서는 선거 환상에 대한 이데올로기 투쟁, 노동자 직접정치에 대한 열망, 노동자 민주주의의 수많은 경험이 전제되어야 한다.


따라서 선거 거부를 구호로만 외치는 것은 정치에 대한 기권이 아니라 장기적인 개입조건 창출을 위한 선전활동, 정치원칙 정립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부르주아 선거 환상에 대한 전면적인 이데올로기 투쟁과 대중행동을 위한 준비를 시작해야만, 다음의 선거 국면에서 진정한 노동자 정치의 공간을 아주 작게라도 열릴 것이다.

 


6. 선거 환상의 지속과 ‘노동중심’ 진보정당 건설의 허구성

 

앞서 우리가 부르주아 정치의 좌파라고 부르는 전문적인 선거(의회)주의 세력은 선거 이후 왜 이합집산하고, 어떻게 선거 환상을 지속시키는가?

 

이들은 본질에서 ‘선거’가 모든 정치의 중심이기 때문에, 선거 주기에 따라 발 빠르게 재편되는 속성이 있다. 더욱이 의회에 진출하지 못한 정당이거나 소수 의석의 정당은 경쟁력 확보와 최대의 시너지 효과를 얻기 위해 선거를 염두에 둔 이합집산이 필수적이다. 이들 모두는 선거에 지든 이기든 즉시 다음 선거를 위해 선거 환상을 지속시켜야 한다. 2012~13년 이른바 ‘노동중심 정치’가 유행처럼 번지는 현상은 본질에서 노동자정치 고유의 계급성과 전투력을 복원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통진당 사태 이후 혼란에 빠진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지지를 다시 한번 끌어내겠다는 발상에 불과하다. 이것이 상층부 중심의 지지세력 확장으로 이어지던 아래로부터의 정치세력화로 이어지던 결국 의회주의와 조합주의의 결합이기 때문에 낡은 운동의 반복일 수밖에 없다.

 

한편, 지난해 11월 구성된 ‘노동정치연석회의’는 넉 달에 걸친 논의 끝에 노동포럼, 노동자정당추진회의, 노동자연대다함께, 혁신네트워크가 새로운 노동 중심의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구체적 노력을 시작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기존 노동자 정당들의 분열ㆍ분화로 말미암아 조직 노동계급 내에서 정치적 공백이 생겨나고 있다. 노동계급의 여러 정치 경향들이 연합해 이 공백을 메우자는 것이 ‘노동정치연석회의’의 취지였다.”

 

“새로운 노동 중심의 진보정당이라는 구상은 통합진보당 분당 이후 발생한 스탈린주의와 개혁주의의 분화에서 개혁주의의 정치 공간을 메우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부르주아 양당이 제도권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한국 정치 맥락에서 이런 프로젝트는 여전히 필요하다.(그렇더라도 통합진보당이 노동자 정당이므로 특정 쟁점을 놓고 사안별 연대를 해야 한다.)”

(김인식, <레프트21> 99호, 2013년 3월 4일, [분열을 넘어설 진보정치 재편, 어떻게 할 것인가])


이들 또한 부르주아 정치의 좌파인 이른바 개혁주의 정치의 공간을 메우려는 사고만 있을 뿐, 파산한 낡은 진보정치와 단절하고 새로운 계급정치를 실현할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이들에게만 특별히 높은 평가를 받는 개혁주의자들의 본질은 노동계급의 주변에서 현 자본주의 위기 상황을 일시적이거나 주기적 현상으로 이해하면서 자본주의 개혁과 보완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세력들이다. 이들은 노동정치, 진보정치로 포장되어 계급에 환상을 심어주고 있지만, 사실은 이미 오래전에 자본주의에 포섭된 세력이다. 자본주의 위기 상황에서 가장 큰 고통을 받는 프롤레타리아트에 법 제도 개혁을 통해 자본주의를 고칠 수 있다면서, 벼랑 끝에 내몰린 이들에게 조금 더 고통을 견뎌 내라고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자본주의 회생은 불가능하다. 오로지 혁명을 통해 낡은 체제를 철폐하고, 프롤레타리아계급이 직접 사회를 운영하는 것만이 기나긴 고통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다. 이러한 진실을 감추고 오히려 자본주의 회생의 가능성과 환상을 그럴듯하게 유포시키는 이들은 자본주의의 진정한 수호자이다.

 

“개혁주의자들은 반드시 배신할 거라며 추상적이고 종파적으로 비난하는 자세는 틀렸을 뿐 아니라, 변화하는 노동계급의 의식과 운동에 전혀 개입할 수가 없다. 따라서 사회주의자들은 좌파적 개혁주의 운동과 그것의 성공적 활동을 지지해야 한다.”

(김인식, <레프트21> 99호, 2013년 3월 4일, [분열을 넘어설 진보정치 재편, 어떻게 할 것인가])


자본주의 수호자인 개혁주의자들을 노동계급의 주변에서 추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들의 빈자리에 조합주의와 선거주의를 결합한 낡은 노동중심의 진보정당을 앉히려는 행위야말로 기회주의의 전형이라 하겠다. 우리는 1920년대 제3 인터내셔널 내부의 기회주의에 맞섰던 호르터의 경고를 오늘날 다시 반복해야 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 이른바 ‘노동중심의 진보정당’을 주장하는 모든 세력에게 오늘날 더욱 강조해야 할 것은, 노동자의 계급의식을 황폐화하고 노동계급을 오염시키는 기회주의야말로 우리가 급진적으로 되는 것보다 수만 배 나쁘다는 경고를!

 

“다시 코뮤니스트들은 지도자가 되기 위해 의회로 들어갈 것입니다. 노동조합과 노동자 정당들은 선거에서의 투표를 위해 옹호될 것입니다. 코뮤니즘을 위해 건설하는 당 대신, 관성적으로 정당들을 조직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사회 애국주의자들 및 부르주아 분자들과의 의회주의적 타협이 다시금 등장할 것이며, 그로 인해 결국 서유럽에서 모든 혁명은 점진적인 과정이 될 것입니다. 연설의 자유는 억압당할 것이고, 훌륭한 코뮤니스트들은 모두 추방당하게 될 것입니다. 한 마디로, 제2 인터내셔널에서 발생했던 모든 관행이 다시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기회주의야말로 우리의 가장 큰 적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얘기했던 것처럼 우리 대열 외부에서뿐 아니라, 내부에서도 그렇기 때문입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신과 힘을 황폐화하는 기회주의가 다시 섞여 들어오는 것은 좌익이 너무 급진적으로 되는 것보다 수천 배 더 나쁠 것입니다.”

 

(헤르만 호르터, 레닌동지에게 보내는 공개편지, 1920년) 

 

 

 

 

결론

 

이상과 같은 대선평가는 참담한 결과만을 보여주었다. 낡은 것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낡은 것뿐 아니라 운동을 과거로 돌리려는 세력도 있다. 어제 우리를 속인 낡은 정치가 오늘도 여전히 노동자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낡은 것과의 단절 속에서 새로운 것을 창출시켜야 한다. 내부모순의 극복을 위한 기반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 무엇을 할 것인가?


하나, 사상투쟁의 전면화

 

계급의식의 발전은 노동자의식을 파괴하는 조건들에 반대하는 투쟁으로 이루어진다.

 

“혁명은 오직 노동계급의 절대다수의 의식적인 행동을 통해서만이 실현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계급의식의 발전은 사회에서의 노동계급의 조건에 반대하여, 즉 그들의 역사적 혁명적 과업을 생각하는 노동자들의 의식을 방해하고 끊임없이 파괴하는 조건에 반대하여 이루어진다.”

(‘당의 본질과 기능에 대하여’, [국제주의] (Internationalisme) 38권, 1948년)


낡은 운동과의 단절을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사상투쟁이다.  

 

그 이유는 

 

첫째, 노동자 운동이 전체적으로 퇴조하는 현상은 낡은 운동의 몰락과정이지만, 그 과정에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가 운동 내부까지 침식시켰기 때문이다.

 

둘째, 자본주의 쇠퇴의 시기,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지배가 전면화된 시기에 노동자 계급의식을 방어할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셋째, 낡은 운동과 단절하기 위해서는 잘못된 사회주의 운동의 유산을 극복하고 과거 운동에 대한 철저한 평가와 반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면전인 사상투쟁을 위해서는 계급투쟁의 열쇠인 계급의식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장기적이고 총체적인 계급의식 발전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또한, 모든 대중투쟁 공간에서 자유롭고 제한 없는 정치토론을 보장받고 확장시켜야 하며, 새로운 노동자 토론문화와 토론 능력 발전을 위한 혁명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둘, 계급투쟁의 새로운 전형 창출

 

“미국 즉 노동력의 88%가 노동조합에 속해 있지 않고, 20%가 실직상태이거나 혹은 할 일이 충분치 않아 매일매일 점점 더 많은 집 없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으며, 거의 노동조합원에 맞먹을 정도의 많은 프롤레타리아 혹은 후보 프롤레타리아가 감옥에 있는 국가에서, “노동조합을 혁명 전략의 기반으로 삼는다”는 발상 즉 혁명을 위해서는 “노동조합을 차지한다”는 식의 오늘날 아직도 다양한 그리고 잡다한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선전하는 발상들은 우스갯소리에 불과하다.”

(로렌 골드너.Andy Stern 종말과 현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조합 문제, <반란자노트> 2호, 2010년 10월)


로렌 골드너가 말한 미국의 상황이 한국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기나긴 계급투쟁의 침체기를 지나 아큐파이 운동으로 대중투쟁이 부활하기 시작했다. 낡은 운동은 저물었고 새로운 운동이 소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낡은 노동조합, 진보정치를 붙잡고 새로운 운동 창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사상투쟁과 함께 계급투쟁의 새로운 전형을 창출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새로운 계급투쟁은 계급 스스로 창출해야 하지만, 낡은 것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창조적 노력이 필요하다. 새로운 계급투쟁은 과거 투쟁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현재의 정세에서 새로운 시도가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노동조합 자체를 넘어서려는 의식적인 투쟁만이 조합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임을 인식하고, 노조 집행부를 장악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을 넘어서는 직접행동을 제안하고, 실제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행동그룹이 출현하도록 해야 한다.

 

둘째, 노동자 투쟁이 한국이라는 지역에 갇히지 않고 국제주의 관점에서 국제적 계급투쟁의 흐름과 새로운 운동의 경험을 받아들일 수 있는 토대를 조성해야 한다. 세계적인 계급투쟁은 다시 한번 혁명의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새롭게 분출되는 프롤레타리아트 투쟁이 보여준 용기와 결단, 그리고 깊은 연대 의식은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세계가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적인 계급투쟁의 경험으로부터 아래로부터의 계급투쟁을 확산시키는 비공인파업, 점령 운동 등 새로운 노동자연대의 전형을 창출해야 한다. 지역, 국경을 넘어 노동자 국제주의 원칙을 실현하는 국제적 공동행동을 조직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위의 모든 조직 형식은 노동자 민주주의가 철저히 관철되고 수평적인 계급 연대에 기반을 둔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파업위원회, 대중총회, 지역 투쟁평의회와 같은 평의회 형식이어야 한다. 모든 노동자 대중조직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위계질서 없고 선출자를 즉시 소환할 수 있는 수평적 자기 조직화를 이루어 내야 한다. 


셋, 코뮤니스트 운동의 전면화

 

오늘날 자본주의는 역사적인 파산이 명백해졌고, 코뮤니즘의 전망은 노동자들의 투쟁에 점점 더 필요로 다가오고 있다. 이제 코뮤니즘은 인류의 단순한 희망과 꿈이 아니라 역사발전의 물질적 필요성이며, 노동계급이 스스로 실현해야 할 역사적 과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첫째, 사회주의 당 건설 노선의 파산선언과 새로운 조건에서의 코뮤니스트당 건설 노선 제시할 것이다. 새롭게 건설될 코뮤니스트당은 세계혁명당 건설에 복무하는 국제적 혁명조직이어야 한다.

 

둘째, 중단되었던 강령투쟁을 심화 시켜 국제적 수준의 강령원칙을 정립하고, 국제적 차원에서 혁명세력을 재조직화할 것이다.

 

셋째, 코뮤니스트 좌파의 전통과 교훈을 계승한 세계의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진영과 교류 연대를 활성화할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에서 국제대회를 개최하고, 국제주의 행동을 실천해 나갈 것이다.

 

계급투쟁의 새로운 조건은 프롤레타리아계급이 자신의 운동 속에서 그동안 투쟁을 패배로 이끈 낡은 것들과 단절하고 새로운 운동을 창출해 내라고 요구하고 있다. 지금은 아래로부터의 직접행동 분출과 코뮤니스트 노동자들의 집합적 존재 여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선거주의, 민족주의, 조합주의 등 낡은 운동과 철저히 단절하고, 코뮤니스트 정치와 노동자 투쟁이 직접 만나 자본주의의 혁명적 전복이라는 목표를 분명히 세우자! 모든 것은 노동계급 자신의 힘으로 이루어야만 하며, 그 목표에 이르는 것은 코뮤니스트와 노동계급의 의식적인 투쟁에 달렸다.

 

우리가 천천히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갈 길이 먼 것이다!

코뮤니즘은 실현할 수 있다!

노동계급의 의식적인 투쟁과 코뮤니스트 전망이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 있다!

 

 

2013년 4월

국제코뮤니스트전망 ㅣ 이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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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부르주아 선거에 맞선 코뮤니스트 입장 1 - 과거를 반복하는 선거주의자들에 경종을 울리며 -

2012 부르주아 대선에 맞선 코뮤니스트노동자의 입장

-변혁모임과 대선 공동기구노동자 후보 전술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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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공동기구태생적 한계와 선거주의

 

연출이 시작됐다.

 

변혁모임이 전국활동가대회를 통해 노동자대통령 공동선거투쟁본부를 제안하면서반자본주의반신자유주의야권연대 반대노동자 민중후보 완주’ 기조로 한 이른바 진보좌파·사회주의 그룹 간의 대선 공동기구는 형식적으로 현실화됐다물론 진보신당의 선거용 임시(가설)정당’ 정치옵션에 대한 태도를 둘러싸고여전히 전망은 불투명하다.

 

그동안 대선을 앞두고 일군의 사회주의 그룹은대선 공동기구를 구성하기 전부터, ‘답안을 준비해놓고 있었다그 첫 번째가 진보정의당통진당과의 분별 정립이며두 번째는 야권연대 비판공동전선 촉구다여기에 수식어가 첨가되는데다름 아닌 대중투쟁과 선거운동의 결합이다.

 

이 답안은 처음부터 가짜였다.

 

첫째진보신당은 총선정국에서 야권연대에 자신을 넣어주지 않는다고 항의하던 세력이 아닌가더구나 진보신당 내 주요 지도부 발언과 상당수 평당원 흐름이 진보정의당 정치 철새인 노회찬심상정류와 통합을 원한다는 것은 운동가 사이에서 공공연한 사실이다다른 한 축으로 구()사회당 계열은 과거 10여 년간 조직 정체성을 선거주의로 일관해왔는데이번 대선 과정을 통해 그 체질이 바뀐다게다가 97년 대선 시기 국민승리21의 페이퍼 정당과 다를 바 없는 진보신당 가설정당에 대해사회주의 그룹은 공개적인 반대조차 밝히지 못하고 있다더 나아가일부 사회주의 그룹은 동상이몽적인 일괄타결(대선 기조강령투쟁운운하면서가설정당까지 진지하게 검토할 수 있다고 한다이쯤 되면 이들이 말하는 노동자 후보 전술은 기껏해야 정치적 수사를 동원한 전형적인 선거주의다.

 

둘째과연 야권연대를 반대하는 대중투쟁이 선거공간에서 후보를 내세워 인위적으로 창출할 수 있는가이들은 대중투쟁이 일군의 사회주의자들의 필요에 따라 호출하면 되는 요술 방망이쯤으로 생각한다야권연대 정권교체 열망 현상은 현 권력에 대한 뿌리 깊은 불만의 결과이자동시에 부르주아 선거에 대한 환상의 표현이다따라서 야권연대를 근본적으로 반대하기 위해서는 후보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 선거 환상 자체에 대한 폭로와 비판을 전개해야 한다.

 

투쟁의 공간에서 대중을 정치의 주체로 세우고 자기조직화를 통해 투쟁을 발전시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고 수많은 실패 속에서 계급이 단련되고 스스로 전망을 가질 때 가능한 일이다더욱이 비정규미조직 노동자 투쟁에서의 자기조직화와 직접정치는 더욱 어렵다그래서 정치조직의 역할이 더욱더 중요하다그런데 이렇게 어려운 정치투쟁과 강령실천은 소홀히 하면서 손쉬운 선거 개입으로 조직화를 이루려는 세력들이 많다선거철만 되면 바빠지고 활동력이 높아지는 정치조직이 여기에 속한다투쟁은 회피한 채 선거에서는 최대의 능력을 발휘하는 노동자 조직도 여기에 해당한다투쟁을 조직하는 것은 어렵지만조직동원과 자금모금으로 표현되는 선거의 조직은 더 수월하기 때문이다더욱이 국가보안법의 탄압에도 공개적이고 대중적인 사회주의 정치활동이 본격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사민주의자들도 상당수 수용하는 경제 요구를 노동자계급의 행동강령이라고 내걸고그들과 기꺼이 연합하면서 부르주아 정치 공간에서 벌이는 선거 개입이야말로 사회주의운동을 급격하게 퇴보시키는 정치적 타락행위이다.

 

 

변혁모임계급정당 건설?

 

그간 진행된 변혁모임을 보면통진당에 대한 반정립 슬로건만 있을 뿐노동자계급정당 실체’ 논의는 사라지고보통명사인 계급정당만 외치고 있다자신의 전략적 과제와 정치적 전망인 당에 대한 최소한의 강령적 원칙 내용에 대한 토론은 고사하고선거 참여를 해야 한다는 선당위론만이 팽배하다그리고 그들은 선거 절차와 기술적인 문제로 이동하면서대선후보군을 확정했다노동자계급정당의 그간의 정치적 성과와 정치적 강령을 전체 계급에 제출하는 문제의식은 실종되고대선후보군 상층 지도부의 순교자적’ 투쟁만이 요구된다내용 없는 현장변혁계급정당 선거를 역순 한 일정 박기 투쟁선거용 희망버스를 호소한다결국선거정치 희망버스에 동원되는 대중은 자신의 현장 정파적 이해에 맞는 조합원으로 한정될 것이다.

 

변혁모임 내부에는 당에 대한 다양한 이질적 흐름이 존재하는데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차이조차 스스로 밝히지 않은 채뭉뚱그려 노동자후보만을 얘기하고 있다이들은 단순한 대선 통일전선 이상을 뛰어넘기 어렵다.

 

강령에 입각하지 않고 우파에 대한 상대적 반정립으로 자신들을 규정한 좌파 노동조합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활동가 당을 만들겠다는 발상은계급정치를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정당의 이름으로 조합주의를 보호해줄 뿐이다이들이 활동가 당을 만들겠다고 하는 순간강령에 입각한 실천을 통해 노동조합 배후정치와 확실한 단절을 이뤄내겠다는 선언은 공문구가 되어 버렸다혁명당의 역할은 코뮤니스트 정치와 노동자계급을 직접 만나게 하는 것이지중간에서 활동가(조직)를 통해 배후조종하거나 대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현재의 계급투쟁과 코뮤니스트 혁명의 최종목표 사이에 어떠한 중간단계나 대리과정도 존재하지 않는다모든 것은 노동자계급 자신의 힘으로 이루어야만 하며그 목표에 이르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의식적인 투쟁에 달려있다.

 

혁명당 건설은 철저한 강령 원칙과 실천 검증에 따른 혁명적 사회주의/코뮤니스트 세력의 재구성을 통해그리고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새로운 주체들과 코뮤니스트 운동이 계급투쟁 속에서 직접 만나계급 안에서 혁명적 주체를 세우고 자기 조직화를 이루는 것을 통해 가능하다그런데 운동을 과거로 돌리고 있는 사노위 등은 강령적 실천과 혁명적 주체의 자기 조직화라는 본질을 망각한 채조급한 정세 대응으로 일관하거나아니면 자기 조직 유지와 양적 확산만을 위해 강령원칙을 폐기하면서 당 건설 운동을 후퇴시켜왔다이들은 진공상태에서 당 건설을 할 수 없다면서변혁모임의 이른바 노동자계급정당 흐름에 영합하고 있다하지만자본주의 착취체제가 지속하는 한 계급투쟁에 진공상태는 없으며오히려 계급투쟁과 혁명적 계급의식을 담아낼 그릇이 부족할 뿐이다계급투쟁과 계급의식의 발전 없이 혁명당 건설은 불가능하다계급투쟁의 깊이는 당 건설의 주체를 담보해주고계급의식의 발전은 강령으로 표현된다당 건설의 주체와 강령을 포기한 당 건설이야말로 진공상태의 당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른바 전술 문제에 대해

 

노동조합(민주노총)이 정치방침으로 결정했던 노동자 정치세력화진보정당 운동은 파탄 났다이러한 결과가 초래한 근본적 원인은 노동자 해방으로서 이념 부재소위 80년대 소부르주아 이념인 NL(민족해방노선 추구개혁적 사민주의와 선거·의회를 주축으로 한 활동이었다따라서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 논의는 기존의 구도를 반복한다는 점에서 공허한 주장이다결국새로운 조직적 대안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이와 관련한 우리의 입장은 코뮤니스트 정치조직을 제안하며」 참고)

 

몇 년 전부터이른바 사회주의자 내부에서는 전술적 문제를 놓고 대립하기 시작했는데이 전술적 운용의 실천적인 대립은 선거 시기 진보신당과 같은 의회주의 좌파를 포함하는 공동전선(통일전선문제였다.

 

우리는 여기서 원칙 중심의 전술과 기회주의적 전술을 구분한다한마디로 기회주의 전술의 특징은 단기 목표의 강조현재 시점 이외에는 어떠한 것도 고려하지 않는다기회주의의 모든 전술은미래의 격동을 준비하면서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을 발전시키는 대신주로 특정 시기만을 위한 정파적 이해와 실천 운동 역량에만 관심을 둔다반대로 원칙 중심의 전술은 혁명 운동 발전의 총체적 과정을 염두에 두면서운동의 근본적 임무와 계급투쟁의 방향미래를 향한 장기적 실천을 전개한다.

 

2008년 이후 현재까지 정세를 관통하는 핵심은 자본주의 쇠퇴와 위기새롭게 올라오는 대중행동 투쟁이었다전 세계적으로 사민주의 세력은 자본주의 재구축을 위해 나서고 있다한국 또한 마찬가지다이들은 자본주의 생산의 문제는 도외시한 채 오직 분배 정의만을 외치고 있다노동자계급이 생산을 직접 통제해야 한다는 어떠한 언급도 없다오늘날 자본주의는 역사적인 파산이 명백해졌고코뮤니스트 사회의 전망은 노동자들의 투쟁에 점점 더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이제 코뮤니즘이라는 대안 사회가 인류의 단순한 희망과 꿈이 아니라 역사발전의 물질적 필요성이며우리가 실현해야 할 역사적 과제임을 일깨워 주고 있다세계적인 계급투쟁은 다시 한번 혁명의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새롭게 분출되는 프롤레타리아트 투쟁이 보여준 용기와 결단그리고 깊은 연대의식은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세계가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다코뮤니즘은 실현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부르주아 선거판에 진보정당’ ‘노동자 후보의 이름으로 끼어들어 노동계급을 배신하고 부르주아의 한 분파로 행세하는 세력들이 여전히 다수파로 활개를 치고 있다이보다 왼편에는 노동자정치를 주장하면서도 부르주아 정치를 흉내 내는 세력들이 소수파로 존재하고 있다이들은 노동자정치를 노동자계급 고유의 영역인 투쟁의 장에서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부르주아 선거공간에서 할 수 있다면서 그 속에서 선전선동과 조직화를 꿈꾸며 선거운동을 선거투쟁으로 미화시키고 있다하지만 노동자 계급을 위한 어떠한 성과도 선거나 그 과정을 통해 얻을 수 없다.

 

현시기 대선 정국을 둘러싼 사민주의와 동거의회 선거정치 몰입은 계급적 대중행동을 저해할 뿐이다대중에게 선거는 자신의 삶과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여러 선택지(후보중 하나를 고르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또한선거 결과가 마치 계급 대중 의지가 실제 실현되는 것 같은 환상을 만든다이것이 부르주아 선거제도의 핵심 기제가 아니었던가!

 

그동안 선거에 개입했던 노동자정당진보정당들은 완전한 의회주의 정당으로 자리 잡았고이들을 지지했던 민주노총의 정치는 파산상태에 이르렀다이 과정에서 노동자계급에 대한 수많은 배신과 운동권 출세주의를 양산했다통진당진보정의당류와 진보신당의 차이는 백지 한 장 차이다또한이들과의 정치적 공동전선이나 입당전술을 사용하는 자칭 사회주의 세력들도 마찬가지다그런데도 아무도 반성하지 않는다.

 

말로는 선거주의를 비판하면서 자신들이 참여하는 선거는 훌륭한 전술로 둔갑한다선거에 휩쓸리지 않고 대중투쟁을 중심으로 선거 이후를 준비하는 운동의 흐름은 아직도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오히려 선거주의자들이 선거에 참여하지 않는 건강한 노동자와 혁명세력을 대기주의기권주의로 몰아가면서 모든 운동을 대선 블랙홀에 밀어 넣으려 하고 있다이것이 운동마저 삼키는 부르주아 선거다부르주아 선거의 본질은 지배계급의 위기를 평화롭게 넘기는 것이며격화되는 대중 투쟁을 잠재우고 대중의 불만표출을 잠시 멈추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그래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선거에 휩쓸리지 말고 투쟁의 동력을 유지해 선거 이후 더욱 강력한 투쟁으로 지배계급에 맞서야 한다.

 

선거는 짧다두 개의 노선은 대립하고 있다사민주의와 동거선거정치 몰입이냐계급적 대중행동 투쟁 촉구냐?

 

이제라도 부르주아 잔치판에서 뛰쳐나와 노동자계급의 자리에서 자본주의가 인류 참상의 원인이고이를 넘어서는 코뮤니스트 사회만이 대안이라고 대중적으로 공개적으로 말하고 싸워야 한다노동자계급이 자기해방(자본주의 전복과 노동자 권력)의 전망으로 정치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선거유세용 집회나 이벤트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대중총회를 건설하자. 아래로부터의 파업/투쟁위원회대중집회를 통해 노동자들이 정치적 의사표현과 투쟁의지를 제한 없이 표출하는 수평적 노동자 직접행동’, ‘노동자 직접정치’의 토대를 만들!

 

선거 시기에는 더욱더 모든 것에서 소외되었던 비정규/중소 영세 사업장 노동자, 장기투쟁 사업장, 장애인소수자빈민실업자이주노동자 등 미조직 프롤레타리아트 투쟁에 집중하자노동자투쟁과 미조직 프롤레타리아트들의 직접행동이 결합하는 아래로부터의 프롤레타리아 연대을 실현하자!

 

선거에 참여하는 대선투쟁이 아니라 부르주아 대선(정치) 자체에 맞선 분노한 노동자들의 직접행동을 조직하자. 노동자의 주머니에서 부르주아 정치 참여(대선)자금을 모금하지 말고 선거 이후 계급전쟁 준비를 위한 물리력을 조직하자!

 

 

2012년 12월

국제코뮤니스트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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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판네쿡] 노동조합주의

노동조합주의

 

  노조1.jpg

<사진> 비정규직 대 정규직이 아니라 '노동자투쟁' 대 '조합주의 걸림돌'

 

 

<편집자 주>

자본뿐만 아니라 노동자 운동 내부의 걸림돌인 노동조합주의 세력과도 싸우면서, 투쟁의 원칙을 지키고 연대와 단결을 정신을 실천하는 모든 노동자를 지지한다. "노동조합 투쟁의 좁은 영역이 계급 투쟁의 넓은 영역으로 확대되는" 노동자 운동의 미래를 전망하며 이글을 소개한다.

 

 

노동계급은 자본주의를 전복하기 위해 어떻게 싸워야만 하는가이것은 노동자들이 매일 직면하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그들은 권력을 장악하고적들을 물리치기 위해 어떤 효율적인 투쟁 수단과 어떤 전략을 사용할 수 있는가그들이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줄 어떠한 학문도어떠한 이론도 존재하지 않는다그러나 노동자들은 감각으로 가능성을 느끼고자생적이며직관적으로 투쟁의 방법을 찾았다자본주의가 점점 확장되고지구를 정복하며그 힘을 키워갈수록노동자의 힘도 점점 커졌다더 넓고더 효율적인 새로운 투쟁 양식이 나타났다조건이 바뀌어 감에 따라 투쟁 형식과 계급투쟁 전술 또한 바뀌어야 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노동조합주의는 안정된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노동운동의 주요한 형태이다고립된 노동자는 자본가에 대항할 힘이 없다이런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노동자는 노동조합을 조직한다노동조합은 노동자를 공동 투쟁즉 무기로서의 파업으로 결집한다그럴 때 힘의 균형은 상대적으로 같아지거나때때로 노동자들 편으로 기울고고립된 소()자본가는 강력한 노동조합에 비해 약하게 된다따라서 발전한 자본주의에서 노동조합과 자본가들의 조합(협회트러스트주식회사 등)은 적대적으로 싸운다.

 

노동조합주의는 처음에 산업 자본주의가 최초로 발전한 영국에서 등장했다그것이 다른 나라로 널리 퍼진 후에자본주의 산업에 자연스럽게 경쟁자로서 기능하게 되었다미국에서 특별한 조건이 조성되었다초기에 풍부한 미개척지는 마을에서 노동력 부족 현상과 상대적인 고임금 및 좋은 조건을 만들었다미국 노동총동맹은 권력을 갖게 되었고점점 그 조합원들에게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생활 표준을 유지하게 해 줄 수 있었다.

 

명백히 그러한 조건 아래에서 자본주의를 전복한다는 생각이 노동자들의 마음에서 일어날 리는 없다자본주의는 그들에게 충분하고꽤 안정된 생활을 보장했다그들은 자신의 이익이 현재 존재하는 질서에 적대적인분할된 계급이라는 것을 느낄 수가 없었다그들은 신대륙에서 성장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가능한 모든 것에 참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거기에는 대부분이 유럽에서 건너온 수백만의 사람이 살 공간이 있었다이런 급속한 농업 인구의 증가로 인해에너지와 행운이 함께한 노동자들이 자유로운 기능공소상인심지어 부유한 자본가가 되는 일이 발생할 수 있었던급속히 성장하는 산업이 필요했다거기에서 진정한 자본주의 정신이 노동계급에 널리 유포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영국에서도 같은 경우가 발생했다여기서는 영국이 세계 상업과 대산업을 독점했고외국 시장에서 경쟁자가 없었으며영국에게 막대한 부를 가져다준 부유한 식민지를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자본가계급은 이익을 위해 싸울 필요가 없었으며노동자에게 합리적인 삶을 보장해 줄 수 있었다물론 우선그들에게 이 진실을 확신시키기 위해 싸움이 필요했다그러나그 후 그들은 산업 평화를 위해 조합과 고임금을 허락할 수 있었다그래서 여기서도 노동계급은 자본주의 정신에 물들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노동조합주의의 가장 핵심적 특징과 전적으로 부합한다노동조합주의는 자본주의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활동이다그 목표는 자본주의를 다른 생산 양식으로 교체하는 것에 있지 않고오히려 자본주의 내에서의 좋은 생활 조건을 보장하려는 데에 있다그것의 특성은 혁명성이 아니라 보수성이다.

 

물론노동조합 활동은 계급투쟁이다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자와 자본가는 상반되는 이해관계를 가지며적대적 계급으로 존재한다자본주의 보수성에 관한 물음뿐만 아니라자본주의 그 자체 내에도자본가는 임금을 삭감하고노동 강도를 강화하며그들의 이윤과 잉여가치를 최대한 증대시키려고 노력한다반면에 노동자는 임금 인상과 노동 시간 단축을 꾀한다.

 

비록 그것이 최소치는 넘어야 하지만노동력의 가격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그것은 그 자신의 자유의지를 가진 자본가에 의해 지급되지도 않는다따라서 이 적대는 진정한 계급투쟁의 대상이 된다이는 노동조합이 수행하는 기능이다.

 

노동조합주의는 프롤레타리아트 가치곧 조직한 투쟁 정신인 연대를 배우는 최초 학교였다그것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조직화한 힘의 최초 형태를 구현했다초기 영국과 미국의 노동조합에서 이러한 가치는 종종 경직되었으며진정한 자본주의 정신인 협소한 동업조합으로 전락했다그러나 노동자들이 그들의 진정한 존재를 위해 어디서 싸워야 할지그들 조합의 최대 노력이 생계 표준을 거의 유지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을강력하고공격적이고확장되고 있는 자본주의의 전면적인 힘이 어디서 그들을 공격할지를 알아야 했으며오직 혁명만이 그들을 완전하게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워야 했다.

 

그래서 노동계급과 노동조합주의 사이에는 불일치가 존재하게 된다노동계급은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전망을 해야 한다그러나 노동조합주의는 철저히 자본주의 안에서 존재하며그것을 극복하는 전망을 가질 수 없다노동조합주의는 계급투쟁에서 필요하긴 하나단지 협소한 일부분만을 표상할 수 있을 뿐이다그리고 그것은 노동계급의 더 큰 목표와 충돌하는 측면을 발전시킨다.

 

자본주의와 대산업의 성장에 따라 노동조합도 같이 성장한다노동조합은 모든 도시와 모든 공장에서 수천 명의 조합원을 확보하고나라 전체로 확장되며거대한 기업이 된다업무를 수행하고재정을 관리하기 위해지역과 중앙에서 관료들위원장사무총장재정담당이 임명된다그들은 자본가들과 협상하고이런 일을 통해 특별한 기술을 갖추는 지도자가 된다노동조합 위원장은 자본가만큼이나 큰 힘을 갖게 되고자신과 그리고 동등하게자기 조합원 이익을 논의한다관료들은 노동조합이라는 직업에서 전문가가 되며공장 일에 전적으로 몰두해 있는 조합원들은 그들이 하는 일을 판단하거나 그들을 지시할 수가 없다.

 

노동조합으로서 거대한 기업은 단순한 개별 노동자들의 집합체가 아니다그것은 살아 있는 유기체와 같은그래서 자신의 정책특성정신전통그리고 기능을 갖는 조직체가 된다그것은 노동계급 이익과 괴리된 그 자신의 이익을 갖는 신체가 되며자기 실존을 위해 살고싸우려는 의지를 갖는다만약 노동조합이 노동자를 위해 더는 필요 없다는 것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해도그것은 순순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그들의 자금조합원그리고 관료들이 모든 것은 즉시 사라지지 않고오히려 조직체 구성요소로서 그들의 실체를 계속 유지할 존재이기 때문이다.

 

노동조합 관료들지도자들은 특별한 노동조합 이익의 담지자들이다시초에 공장 노동자였던 그들은 조직 지도자로서 오랜 실무를 통해 새로운 사회적 특성을 획득한다일단 특별한 그룹을 형성하기에 충분히 커지기만 한다면각각의 사회적 그룹에서그 작업 본성은 그것의 사회적 특성사고와 행위의 양식을 주조하고결정한다노동조합 관료 기능은 노동자들의 기능과 철저히 다르다그들은 공장에서 일하지 않고자본가들에 의해 착취당하지 않으며그들의 존재는 계속된 실업 위협을 당하지 않는다그들은 사무실에 앉아서꽤 안정된 지위를 누린다그들은 노동조합 일을 처리하며노동자들과 회의를 준비하며기업가들과 협상을 해야 한다물론그들은 노동자 편에 서서 이익을 방어하고자본가들에 반대해야 한다그러나 이것은 어떤 조직에서 임명되어그 조직 구성원들을 대표하여모든 역량을 그들의 이익을 방어하는 데 사용하는 변호사의 위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한 가지 차이점은 있다많은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노동계급 출신이기 때문에그들은 임노동과 착취가 의미하는 것을 경험해본 적이 있다그들은 노동계급 일원으로 느끼고그들 내면의 프롤레타리아트 정신이 강한 전통으로 작용한다그러나 그들 삶의 새로운 현실은 계속해서 이 전통을 약화하는 경향이 있다경제적으로 그들은 더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아니다그들은 자본가 이익에 대항하여 노동자 이익을 챙기고임금과 노동 시간에 관해 협상하며 마치 반대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자본가들과 협상장에서 대립한다그들은 노동자 위치뿐만 아니라 자본가 위치도 이해하는 것을 배우고그들은 산업의 필요성에 관한 시각을 갖게 되며그것을 중재하는 것을 추구한다물론 개인적인 예외는 있으나대개 그들은 노동자들의 기초적 계급의식을 가지지 못하며그들의 적절한 이익을 위해 투쟁할 것이다따라서 그들은 노동자들과 갈등에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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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노동자 대표?들의 부르주아 정치 참여

 

선진 자본주의에서 노동조합 지도자 수는 특수한 계급적 특성과 이익을 가지는 특별한 그룹이나 계급이 될 만큼 충분하다노동조합 대표자와 지도자로서 그들은 조합 특성이나 이익을 구체화한다노동조합은 자본주의 필수 요소이며자본주의 사회 유용한 시민인 노동조합 지도자들도 그렇게 느낀다노동조합의 자본주의적 기능은 계급 갈등을 조절하고산업 평화를 보장하는 것이다그래서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시민들이 산업 평화를 위해 일하게 하는 것을 그들 의무로 여기고갈등을 중재한다노동조합에 대한 평가는 철저히 자본주의 안에서 이루어진다그래서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자본주의를 극복하고자 하지 않는다실존을 위해 애쓰는 노동조합 의지인자기 보존 본능은 노동조합 존재를 위해 싸우는 노동조합 지도자들 의지로 구체화한다그들의 존재는 노동조합 존재와 확고하게 연결되어 있다이것은 사소한 의미가 아닌데그들은 노동조합을 위해 싸울 때도 그들 개인적 직업만을 생각한다그들은 삶 전부를 노동조합에 집중하고여기서 그들 일을 찾는다그래서 그들에게 있어 사회의 가장 필수적 기관이자유일하게 안전과 권력 자원은 노동조합이 된다따라서 노동조합은 모든 가능한 수단들로 보존되고방어되어야만 한다심지어 자본주의 사회 현실이 노동조합의 이러한 지위를 침식할 때도 그렇다이는 자본주의 팽창과 계급투쟁이 점점 날카로워질 때 발생한다.

 

강력한 기업에 자본이 집중되고 거대 금융과 연계는 자본가 지위를 노동자보다 한층 더 강하게 만든다막강한 산업 거물(재벌)들은 거대한 노동자 대중을 지배하는 군주처럼 군림한다그들은 노동자들을 절대적 종속 상태로 유지되도록 하고, ‘그들의’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때때로극심하게 착취당하는 임금 노예들이 반역곧 거대한 파업을 일으킨다그들은 더 나은 조건짧은 노동 시간더 인간적인 조건단결권을 갖기를 희망한다노동조합 조직책들은 파업노동자들을 돕는다그러나 그때 자본주의 지배자들은 사회·정치 권력을 사용한다파업노동자들은 집으로 내쫓기고구사대나 용역 깡패들에게 폭행당하고그들의 대표자들은 감옥에 투옥되고파업에 대한 지지와 연대 투쟁은 법원 명령으로 금지된다자본가 언론은 파업노동자 주장을 무질서살인그리고 혁명이라며 비난하고여론도 노동자에 적대적으로 나타난다그러고 나서 비참함과 실망으로 지친 채몇 달 간의 인내와 고난을 겪은 후에철갑과 같은 자본주의 구조에 파열구를 만들지 못한 채파업노동자들은 굴복하고자신의 요구를 다음 기회로 미루게 된다.

 

노동조합이 강력한 조직체로 존재하는 산업에서노동자 지위는 이와 같은 자본 집중에 떨어진다노동자들이 파업을 위해 모은 대규모 기금은 그들의 적이 가진 금전적 힘과 비교했을 때 무의미하다두 번의 공장폐쇄는 그들을 완전히 고갈시킬 것이다자본주의 기업가들이 임금 삭감과 노동 시간 강화를 통해 아주 심하게 노동자들을 쥐어짜더라도노동조합은 투쟁할 수가 없다계약이 갱신되어야 할 때노동조합은 자신이 약한 존재임을 알게 된다노동조합은 자본가들이 제안하는 나쁜 조건을 수용해야 하고협상 가능한 기술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하지만이제 현장조합원과 관련된 근심이 시작된다조합원들은 투쟁을 원한다그들은 싸우기 전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며싸워서 잃을 것이 많지 않다하지만노동조합 지도자들은 노동조합 재정력과 아마도 노동조합 존재 자체 등 잃을 것이 많다그들은 투쟁을 피하려고 노력할 것이고그들은 희망을 고려하지 않을 것이다그들은 조합원에게 조건을 받아들이는 것이 더 낫다고 설득해야 한다그래서 결국그들은 자본가 조건을 노동자에게 강요하는 자본가 대변인처럼 행동해야만 한다노동자들이 노동조합 결정에 반대하며 투쟁을 주장할 때는 더 심해진다그러면 노동조합 힘은 노동자들을 진압하기 위한 무기처럼 사용된다.

 

그래서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산업 평화를 보장하는 자본주의적 과업의 노예가 된다 비록 그들은 최대한으로 노동자에게 기여하려 하지만이제는 노동자 비용으로 그 일을 한다그들은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가 없고자본주의 관점으로 자본주의 지평선 내에 존재하며투쟁은 쓸모없다는 생각이 옳다고 믿는다그들을 비판하는 것은 노동조합이 그 권력의 한계에 도달하였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그러면 대안은 있는가노동자들은 투쟁으로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는가아마도 그들은 직면한 투쟁 이슈를 잃을 것이나 다른 무엇인가를 얻을 것이다투쟁 없이 복종하지도 않으며노동자들은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투쟁 정신을 고무시킬 것이다노동자들은 새로운 이슈를 선언할 것이다그러나 전체 노동계급은 여기에 참가해야만 한다계급 전체와 그들의 동지 모두에게그들은 자본주의 체제에는 그들의 미래가 없고노동조합이 아닌단결된 계급으로 투쟁함으로써만 승리할 수 있음을 반드시 보여주어야 한다이것은 혁명 투쟁의 시작을 의미한다그들의 동지들이 이 교훈을 이해하고전면파업을 여러 산업에서 일으킬 때반역 물결이 나라 전체를 뒤덮을 때자본가들의 거만한 가슴에서는 그들의 전능에 대한 의심이 나타날 것이며양보할 의지가 생겨날 것이다.

 

노동조합 지도자는 이런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왜냐하면노동조합주의는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그들은 이런 성격 투쟁을 반대한다이런 방식의 반()자본주의 투쟁은 노동조합주의에 대한 반대를 동시에 의미한다노동조합 지도자는 노동자 반역에 대한 그들의 두려움으로 인해 자본가 옆에 선다.

 

노동조합이 노동자의 더 나은 노동조건을 위해 자본가계급과 투쟁을 벌일 때자본가계급은 그들을 증오하나그들의 힘을 완전히 파괴하지는 않는다만약 노동조합이 그들의 투쟁에서 계급 전체 힘을 동원해서 투쟁한다면자본가계급은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여 노동조합을 탄압할 것이다노동조합은 그들의 행동이 반역으로 탄압받는 장면그들의 사무실이 구사대에 의해 파괴되는 장면그들의 지도자들이 투옥되거나 벌금을 무는 장면그들의 투쟁기금이 몰수되는 장면을 보게 될 것이다그러나 반대로만약 노동조합이 그들의 조합원들을 투쟁하지 못하도록 한다면자본가계급은 그들이 살아남고보호되어야 할 가치가 있는 집단으로 여길 것이고지도자들을 대우받을 만한 시민으로 여길 것이다그래서 악마적인 것과 깊고 푸른 심해 사이에서 노동조합이 만약 현명하다면자본가계급은 거짓 투쟁이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대중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는 것을 인식할 것이다.

 

여기서 발생하는 갈등은 누구의 실수도 아니다그것은 자본주의 발전에 있어 불가결한 결과이다자본주의는 존재하는 한편으로붕괴하고 있다그것은 살아 있는 생명체이자동시에 유한한 것으로 여겨야 한다노동자들은 임금과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강고한 투쟁을 전개해야 하고동시에 코뮤니스트적 사고에다소간 분명하고의식적으로깨어있어야 한다그들은 이것이 여전히 필요함을 느끼고때때로 노동조합을 좀 더 투쟁적인 기구로 전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며노동조합을 유지해야 한다하지만 노동조합주의 정신은 원래 자본주의 정신이지 노동자의 것은 아니다자본주의와 계급투쟁에 있어서 이런 두 경향의 분기는 지금에 있어주요하게는 그 지도자들이 만든노동조합 정신과 그 조합원들의 성장하고 있는 혁명적 느낌 사이 균열로 나타난다이러한 균열은 더 분명해진다.

 

노동조합주의는 자본주의 영역 내에 존재한다노동조합은 자본주의가 번창할 때더 나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최상의 기회를 만난다그래서 불황기에 노동조합은 경기 회복을 꿈꾸고그것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계급으로서 노동자들에게 자본주의 번영은 전혀 의미를 갖지 않는다불황 위기로 자본주의가 약화할 때노동자들은 그것을 전복할 최상의 기회를 만나혁명의 기운을 높이며자유를 향한 일보를 내디딘다.

 

자본주의는 외국으로 그 지배권을 확장하고거대 이윤을 위해 그 나라 재화를 강탈한다그것은 식민 지배를 일삼으며원주민들을 종속시키고착취한다종종 끔찍한 대량 학살을 일으키기도 한다노동계급은 자본주의 식민 착취를 비난하고반대한다그러나 노동조합주의는 종종 자본주의 번영의 한 방편으로서의 식민 지배를 지원한다.

 

현대 자본의 거대한 성장에 따라식민지와 국외는 거대한 규모의 자본 투자처로 활용된다그것은 거대 산업 시장으로서원자재 공급지로서 가치 있는 소유물이 된다식민지 획득을 위한 경쟁세계 분할을 위한 이익에 관한 격렬한 갈등은 거대 자본주의 국가들 사이에서 발생한다이런 제국주의에서 중간계급은 국가의 위대함에 대한 일반적인 숭상을 따라 소용돌이친다노동조합은 자본가계급 편에 서는데왜냐하면그들은 자신 국가의 자본주의 번영이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 투쟁에서 승리하느냐 마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노동계급에 있어제국주의는 착취자들의 힘과 잔인성 증대를 의미할 뿐이다.

 

민족자본주의 사이 이익을 위한 이런 갈등은 전쟁으로 치닫는다세계 전쟁은 최상의 제국주의 정책이다노동자들에게 전쟁은 국제적 연대 의식의 파괴일 뿐만 아니라또한 자본가 이익을 위한 최상의 폭력적 수탈을 의미한다사회에서 가장 큰 규모이자가장 억압받는 계급인 노동계급은 모든 전쟁의 참사를 견뎌야 한다그들은 자신의 노동력뿐만 아니라그들의 건강과 생명을 바쳐야 한다.

 

그러나 전시에 노동조합은 자본가 편에 선다노동조합 이익은 민족자본주의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진심으로 자국의 승리를 기원한다그러므로 노동조합은 강력한 애국심과 타국에 대한 혐오감을 자극하는 것을 돕는다노동조합은 자본계급이 노동자들을 전쟁으로 몰아넣고모든 반대를 깨부수는 것을 돕는다.

 

노동조합주의는 코뮤니즘을 혐오한다코뮤니즘은 그것의 존재 근간을 제거해버린다코뮤니즘에서즉 자본가들이 부재한 상황에서노동조합과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더는 의미가 없다노동자 집단이 사회주의자들인강력한 사회주의 운동이 존재하는 나라에서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기원에서뿐만 아니라환경에 의해서 노동조합 지도자들 역시 사회주의자이어야 한다하지만 그들은 우파 사회주의자들이고그들의 사회주의는 욕심 많은 자본가를 대신해 정직한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산업 생산을 관리하는 복지 이념으로 제한된다.

 

노동조합주의는 혁명을 싫어한다혁명은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모든 일상적 관계를 뒤집어엎는다그 격렬한 충돌 속에서모든 세심한 규정은 쓸려 사라지고그 거대한 힘의 투쟁 중에 온건한 협상 기술을 가진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그 가치를 잃게 된다전력을 다해 노동조합주의는 혁명과 코뮤니즘 사상에 반대한다.

 

이런 반대는 의미가 없지 않다노동조합주의는 그 자체 힘이 있다노동조합은 자신의 처분권 내에 상당한 자금을 확보하고 있고그것은 힘의 물질적 요소를 이룬다노동조합은 또한 정신적 힘을 가지는데그것은 힘의 정신적 요소인 정기적인 신문을 통한 지지와 선전을 통해 이루어진다그런데그 권력은 지도자들의 손에 쥐어진다그들은 노동조합의 특수 이익이 노동계급의 혁명적 이익과 갈등을 일으킬 때는 언제든지 그것을 사용한다비록 노동자에 의해 만들어지고 구성되지만노동조합주의는정부가 민중을 지배하는 권력이 되듯노동자를 지배하는 권력으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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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노동자 운동에 깊숙이 자리잡은 '사회적 합의주의'

 

노동조합주의 양태는 자본주의 발달의 다른 양태로 인해국가마다 다르다그것은 국가마다 같은 양태로 항상 존재하지 않는다그것이 서서히 소멸해갈 때노동자들의 투쟁 정신은 때때로 그것을 변형시키거나새로운 조합주의 형식을 만들어낸다그래서 1880-90년대 영국에서 새로운 조합주의가 이전 직업별 노동조합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으며가난한 부두 노동자다른 저소득층미숙련공에 의해 시작되었다그것은 자본주의 발전의 산물이었으며새로운 산업의 발생과 기계력에 의한 숙련 노동 대체로 최악의 조건에서 생활하는 대규모의 미숙련공이 양산되었다마침내 거대한 반역의 물결과 강력한 파업을 앞두고서 그들은 단결과 계급의식의 길을 발견했다그들은 새로운 형태의 조합주의를 만들었고더욱 발전된 자본주의에 적응해 나갔다물론자본주의는 더욱 강력한 형태로 성장해나갔고새로운 조합주의는 모든 조합주의 운명을 피할 수는 없었으며그것은 이전과 같이 내적 모순에 처했다.

 

가장 두드러진 형태는 미국의 <세계 산업 노동자총연맹>(Industrial Workers of the World)로 생겨났다. IWW는 자본주의적 팽창의 두 형태에서 기원했다서구의 거대한 산림과 대초원에서자본주의는 맹렬하고 난폭한 착취를 서부 황야(wild west)의 방법을 통해 자연적 부를 획득했다그리고 노동자모험가들은 완강하고열정적인 방어 형태로 응답하였다그리고 동부에서는 새로운 산업이 수백만 명의 가난한 이주노동자들-그들은 저발전국 출신이었으며이제는 땀으로 찬 공장이나 다른 가장 비참한 형태의 노동조건에 종속되었다-에 대한 착취로 만들어졌다.

 

한 공장의 노동자를 여러 개의 개별 노조로 나눈 미국노동연맹(AFL)의 편협한 노조 정신에 맞서 IWW는 한 공장의 모든 노동자가 하나의 고용주에 반대하는 동지로서 하나의 노조를 만들어 고용주에 대항하는 강력한 노조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원칙을 내세웠다질투와 다툼을 일삼고 있는 수많은 노동조합에 맞서서, IWW는 – 모든 노동자를 위한 하나의 커다란 노조라는 구호 를 내걸었다한 집단의 투쟁이 모든 이유이다전 계급에 걸쳐서 연대는 확대된다조직화하지 않은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보수가 좋은 노련한 미국 숙련 노동자들의 거만한 경멸과 달리, IWW가 투쟁으로 이끈 것은 열악한 임금 프롤레타리아트였다그들은 너무 가난해서 높은 수수료를 내고 평범한 노동조합을 만들 수 없었다그러나 그들이 대규모 파업에 나서 저항했을 때그들에게 투쟁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전국에 걸쳐서 후원금을 모금했으며그들의 주장을 신문과 법정에서 변호한 사람은 바로 IWW였다영광스러운 일련의 대규모 투쟁은 이들 대중의 마음에 조직과 자립정신을 불어넣어 주었다옛 노조들의 거액 자금에 대한 신뢰와는 달리산업 노동자들은 뜨거운 열정으로 지탱되는 살아있는 연대와 인내의 힘을 신뢰한다낡은 노동조합의 무거운 석조 건물 대신조합원의 변동에 따라 평화 시기에 협상투쟁 자체로 팽창 및 성장하는 유연한 건설 원칙을 가지고 있다노동조합주의의 보수적인 자본주의 정신과는 달리산업 노동자들은 반()자본주의적이었으며 혁명을 상징했다따라서 그들은 자본주의 세계 전체로부터 극심한 증오와 함께 박해를 받았다그들은 감옥에 갇히고누명을 쓰고 고문을 당했다; ‘범죄 생디칼리즘이라는 새로운 범죄가 그들을 대신해서 발명되기까지 했다.

 

자본가계급과 투쟁하는 방법으로서 산업 노조주의만으로는 자본주의 사회를 타도하고 노동자 계급을 위한 세계 권력을 쟁취하는 것이 충분하지 않다그들은 경제 생산 분야에서 고용주로서 자본가들과 싸우지만그들의 정치적 거점인 국가 권력을 전복시킬 수 있는 수단이 없다그런데도 지금까지 IWW는 미국에서 가장 혁명적인 조직이었다무엇보다 계급의식과 통찰력연대와 단결을 일깨우고 코뮤니즘으로 눈을 돌리고 투쟁력을 갖추는 데 이바지했다.

 

이 모든 투쟁 교훈은 거대한 자본주의에 맞서서 노동조합이 승리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그리고 만약 때때로 승리한다면그러한 승리는 일시적인 안도감만을 줄 뿐이다그런데도 이 투쟁은 필요하고 반드시 해야만 한다마지막까지아니더 나은 최후까지

 

그 이유는 명백하다고립된 노동자 집단은 고립된 자본가 고용주에 대항하는 투쟁과 같을 수 있다그러나 전체 자본가계급이 지지하는 고용주에 대항하는 고립된 노동자 집단은 무력하다그리고 여기서도 마찬가지인데국가 권력자본주의 자금력자본주의 언론에 들뜬 중산층 여론이 모두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공격한다.

 

하지만 노동계급이 파업자들을 지지할까수백만 명의 다른 노동자들은 이 투쟁을 자신들의 명분으로 여기지 않는다확실히 그들은 파업자들을 동정하고 종종 돈을 모을 수 있으며판사의 명령에 분배가 금지되지 않는 한이것은 어느 정도 안도감을 줄 수 있다그러나 이러한 태평한 동정심으로 인해 진정한 투쟁은 파업 집단에게만 맡겨진다수백만의 사람들은 냉담하고 수동적이다따라서 노동계급은 분열되지 않은 하나의 단위로 싸우지 않기 때문에 (몇몇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자본가들이 사업상의 이유로 양보를 하는 것을 선호할 때투쟁에서 이길 수 없다.

 

물론 노동자 대중이 그러한 경쟁을 그들과 직접 관련된 것으로 생각할 때자신의 미래가 위태롭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문제는 달라질 것이다그들이 스스로 투쟁에 나서 파업을 다른 공장그리고 훨씬 더 많은 산업 분야로 확대한다면자본주의 권력인 국가 권력은 분열하며분리된 노동자 집단에 전적으로 대항할 수 없다노동계급의 집단적인 힘에 직면해야 한다.

 

파업을 더욱 광범위하게 확대하여 마침내 이루어낸 총파업은 종종 패배를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제안해 왔다그러나 확실히 이것은 우연히 얻어걸려 승리를 보장받는진정으로 편리한 패턴으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만약 그렇다면노동조합은 분명히 그것을 반복하여 일상적인 전술로 사용했을 것이다그것은 단순한 전술적 조치로서 노조 지도부가 마음대로 선언할 수는 없다그것은 대중들의 아주 깊은 감정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인 표현이어야 하며이는 한 집단의 단순한 임금경쟁보다 투쟁 쟁점이 더 성장하거나 커져야만 일어난다그래야만 노동자들이 모든 힘과 열정연대인내심을 여기에 쏟아부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힘이 필요할 것이다왜냐하면 자본주의는 또한 이전보다 더 강력한 세력을 현장에 불러들일 것이기 때문이다그들은 예상치 못한 프롤레타리아 세력의 시위로 인해 패배하고 놀라서 양보했을지도 모른다그러나 그 후에 그들은 권력의 가장 깊은 뿌리로부터 새로운 세력을 모아 다시 그 지위를 되찾기 위해 나아갈 것이다그래서 노동자들의 승리는 지속적이지도 않고 확실하지도 않다승리로 가는 분명하고 열려있는 길은 없다그 길은 엄청난 노력의 대가로 자본주의 정글을 헤쳐나가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그것은 커다란 발전을 의미할 것이다연대 물결이 대중을 휩쓸었다그리고 그들은 계급적 단결의 엄청난 힘을 느꼈다그리고 자신감 또한 높아졌으며협소한 집단 이기주의를 떨쳐버렸다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통해서자본주의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며 자본가계급에 대항하는 계급으로 우뚝 설 방법이라는새로운 지혜를 얻었다그들은 자유를 향한 길을 얼핏 보았다.

 

따라서 노동조합 투쟁의 좁은 영역은 계급 투쟁의 넓은 영역으로 확대된다하지만 이제 노동자 스스로가 변해야만 한다그들은 세상을 더 넓게 봐야 한다그들의 노동조합공장 내의 일에서그들의 마음은 사회 전체를 포괄할 수 있도록 넓어져야 한다그들의 정신은 주변 사소한 것들보다 더 높아야 한다그들은 국가를 마주해야 한다그들은 정치의 영역으로 들어간다혁명의 문제가 다루어져야만 한다.

 

 

1936년

 

안톤 판네쿡 (Anton Pannekoek)

 

 

 

 

"인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입니다. 

저는 노동자 혁명 운동이 다시금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혁명을 꿈꾸고 시도해야 한다고 봅니다. 

 

건강한 자본주의를 위한 투쟁이 아닌, 

이제 공산주의를 위한 투쟁에 이제 나서야 합니다."  (2010년, 남궁원)

 

 

 

<출처https://www.marxists.org/archive/pannekoe/1936/union.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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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3호] 하찮은 자본수익률과 막대한 부채가 세계경제를 무릎 꿇게 하고 있다.

하찮은 자본수익률과 막대한 부채가 세계경제를 무릎 꿇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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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상황에서 주목받는 경제의 붕괴와 의료 서비스의 결핍 외에도팬데믹 위기는 자본주의 언론과 주류 정치에 의해 의도적으로 분리되었던 두 가지 요소를 밀접하게 연결시켰다첫 번째는 이 위기가 이전(2008)의 위기에 극적으로 추가되면서 2차 세계대전 이후로 볼 수 없었던 규모의 재난이 발생했다는 점이다그렇게 함으로써 이 위기의 진짜 핵심은 붕괴하는 자본주의이며 첫 번째 위기(2008)가 끝났다는 주장이 사기라는 것을 드러내었다.

 

팬데믹 위기는 이미 위태로운 세계 자본주의의 건강 상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위기는 자본이 생산적인 투자를 찾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을 특별히 보여주고 있다즉 자본가들의 투자 지출을 가치 있게 하는 수익률(맑스적인 표현으로는 잉여가치율)을 획득하는 것이 어려워졌다중앙은행이 투입한 막대한 자금에도 불구하고이 자금의 대부분이 생산적 투자로부터 이탈하여 투기적 투자로 갔다한편국가 부채는 지속 불가능한 수준으로 증가했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은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증가즉 노동력(변동자본)의 원가와 비교해 기계 및 장비(고정자본원가의 점진적 상승으로 평균 이윤율의 하락이 느리지만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변동자본과 비교해 고정자본이 증가함에 따라 기업은 추가적 자본 투자가 가능하게 하는 충분한 이익을 실현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이는 결국 자본의 실제 생산의 투자에서 투기적 투자로의 이동을 부추기어 전체 생산 시스템의 기능 장애를 악화시킬 뿐이다이런 대규모 위기는 주로 금융시장에서 터지기 때문에 '금융 위기'라고 잘못 불리지만 실제로는 생산적 투자의 수익성 저하에 따른 구조적 위기이다중요한 생산기지를 이탈한 막대한 자금이 독을 품은 버블이 터질 때까지 계속 금융 투기의 영역으로 몰려가고 있다이 시점에서 국가권력(정부)은 노동계급으로부터 잉여가치를 계속 착취하기 위한 자본주의라는 기계 전체의 작동 질서를 복구하기 위해 개입할 수밖에 없다따라서 중앙은행은 금융 시스템에 유동성을 투입하기 위해 국채를 사들이고 '대마불사'의 금융기관을 살리고 있다결론은 자본주의 건물의 지붕은 수선될 수 있지만기초는 앞에서 든 이유 때문에 '구조조정'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에 그저 썩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부채 그리고 또 부채

 

여기서 우리는 이 쟁점들의 오직 하나만 고려할 것이다부채 문제는 위기를 치유하기 위한 수많은 처방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모순을 다룰 수 없는 병든 경제 시스템의 결과이다.

 

우리는 구대륙의 가장 발전된 자본주의를 가진 유럽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한다컨설팅업체 맥킨지에 따르면 2020년 1~3분기 독일이 취한 경제 조치는 유럽에서 가장 컸다독일은 대략 현재 GDP의 33%를 사용했다이는 2008년 금융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 GDP의 3.5%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비교된다마크롱의 프랑스에서는 2008년에는 GDP의 1.46%를 사용했고 2020년에는 10배로 증가했다영국도 비슷하다이런 현상은 다른 주요 국가들에서도 양적 차이는 있지만 같았다예를 들어 일본의 경우 GDP의 22%를 썼으며미국의 지출은 GDP의 14%에 달했는데이는 2008년 위기 때의 4.9%와 비교된다이전의 부채까지 고려한다면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가 부채가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통계에 따르면팬데믹 위기의 전체 비용은 12조 달러 이하가 될 것이다 (이 수치는 더 심각한 경제적재정적 부담을 가져올 3차 유행이 없다는 것을 가정한 것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이는 세계 GDP의 12%에 해당하며모든 국가들의 국가부채 총액을 100% 더 늘리는 것과 같다게다가, 2020년 1분기의 총부채 증가에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가계기업 및 정부의 총부채는 이미 이전의 경고 수준을 넘어 세계 GDP의 331%에 도달했다주요 선진국의 총부채는 2020년 1분기부터 세계 GDP의 380%에서 392%로 증가했다한편 전년도에 국내총생산(GDP)의 220%에 달했던 신흥국 부채는 팬데믹 몇 달 만에 230%로 늘어났다. GDP가 매우 소폭 증가한 중국이 가장 먼저 위기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이지만 2020년 1분기에는 총부채가 335% 안팎으로 다시 급증했다.

 

두 번의 위기 이전에 미국 연준은 1조 달러 미만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2008년 위기 이후 이것은 1조 달러 이상의 적자로 바뀌었고, 2020년 2분기에는 5조 달러 적자에 달했다유럽의 사정도 나아지지 않았다유럽중앙은행의 대차대조표는 2008년 1조 유로화의 자본잠식에서 현재 7조 유로화의 자본잠식으로 바뀌었고이 수치는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피할 수 없는 결론은 팬데믹 위기로 악화되는 이윤율 위기의 파괴적인 결과로 인해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부채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증가했고 붕괴 직전까지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그리고 이 모든 것은 통제할 수 없는 쓰나미의 힘으로 사회 구조를 강타하고 있다그리고 모든 생산 영역대기업부터 서비스 기업까지중견기업부터 호텔까지소기업부터 자영업까지 부채 증가에 따른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크건 작건 간에 자본가들이 느끼는 공포는 3차 대유행에 따른 위기가 전체 자본주의 체제를 바로 그 밑바닥부터 시작해 전체를 뒤흔들 것이라는 점이다유럽미국 등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의 정치지도자들은 두려움에 떨며 독일 메르켈 총리가 자국 노동자들에게 죽어가는 자본주의를 되살리기 위해 임금 인상을 요구하거나 기업과 체결한 계약을 어기지 말고 계속 일하라는 요구를 서둘러 따라 하고 있다.

 

노동계급

계속해서 지불할 건가 아니면 그들만의 해결책을 찾을 것인가?

 

따라서 비록 분명하게 언급되지는 않았지만노동자들은 최악의 작업 안전 조건에서도 계속 일해야 하고심지어 코로나로 죽는 궁극적인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있다그러나 팬더믹에서 자본을 위해 죽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보상받지 못하는 희생일 뿐이다사실 이것은 이윤을 추구하는 사멸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유일한 목적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자본주의는 노동계급에 대한 점점 더 강화되는 착취를 통해 항상 자본주의 체제의 붕괴를 늦추려고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대단한 통찰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지금은 노동계급이 최근의 역사에서 전례가 없었던 '대규모 경제 감염'을 겪으리라는 현실적이고 암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러한 전망에 대하여 직장에서의 "안전"과 노동의 필요성을 맞바꾸는 것을 거부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모을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해 싸워야 한다유럽중앙은행의 대출에서 더 많은 몫이 정리해고 연기와 금지와 같은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데 쓰여야 한다노동자들의 필요가 자본주의 생산의 필요 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그러나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노동계급과 생산자의 요구심지어 가장 정당한 요구조차도 자본주의 체제를 작동하는 데 방해가 된다면 심각하게 고려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말자따라서 자본주의 체제 그 자체가 당연히 우리 투쟁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즉 자본에 대한 계급 전체의 투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이를 위해서는 급진적 개혁(부유세모두를 위한 일자리동일 임금에서의 노동 단축경영자의 위기 부담 요구 등)에 대한 요구를 할 수 있는 전투력이 필요하다그러나 이런 개혁에 대한 요구가 자본주의에서의 개혁 가능성에 대한 환상을 불러일으키거나심지어 더 나쁘게는 노동계급에게 자본주의 체제를 밑바닥부터 해체할 필요가 없이 개혁이 가능하다는 환상을 노동계급 내부에 점진적으로 심어 주어 노동계급이 또 다른 패배를 하도록 이끌 수도 있다.

 

오늘날 가장 지배적 요구는 자본주의에 대한 혁명적인 사회 대안이어야 한다자본의 법칙에서 벗어나 사회와 개인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사회적으로 생산되는 부를 재분배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필수적인 조건이다나머지는 모두 무기력한 이상주의의 뿌연 연기일 뿐이며이를 제안하는 사람들은 정치적 상처를 입히고그것을 받아들이는 노동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며계급투쟁의 재개에는 치명적이다.

 

2021년 1월 25

국제코뮤니스트경향(ICT)

옮긴이 ┃ 우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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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출처>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21-01-25/paltry-returns-on-capital-and-an-enormous-debt-pile-are-bringing-the-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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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주의 코뮤니스트 포럼 <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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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주의 코뮤니스트 포럼  <1회>
Internationalist Communist Forum


■토론주제 : 코뮤니스트 좌파 진영 최근 내부 논쟁 (발제ㅣ오세철)

■일시 : 2021년 10월 8일(금) 오후 7시 

■포럼참가 문의 : communistlef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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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 미국과 동맹국의 철수

아프가니스탄 미국과 동맹국의 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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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0월 7조지 W. 부시가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발표한 지 거의 20년이 지났다탈레반이 미국 9/11 테러의 설계자 오사마 빈 라덴의 인도를 거부한 뒤그의 "대국민 연설"은 다음과 같은 말로 끝났다:

 

그 전투는 현재 여러 전선에서 합류하고 있다우리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지치지 않을 것이다비틀거리지 않을 것이다그리고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평화와 자유가 승리할 것이다.”

 

오늘 그 미사여구가 얼마나 공허해 보이는지그리고 미 제국주의의 이 중대한 패배를 해명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공허한가...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는 것에 대해 되풀이되는 유명한 이야기는 미국이 세계 경찰 역할을 하면서세계 곳곳에서 자국 군인들이 살해되고나토 작전 자금 조달을 위해 수조 달러를 지출하는 것에 지쳤다는 바로 그 이야기다그 어떤 것도 이보다 더 진실일 수는 없다미국이 철수하는 것은바이든의 말대로목표를 달성했기 때문이 아니라그들이 패배했기 때문이다. 20년간의 전쟁, 2,000명의 사망자와 2,000억 달러의 군사비 지출로 제국주의의 최소한의 이익도 얻지 못한 채국내 전선에서는 탈레반에국제무대에서는 중국러시아터키에 자유로운 마당을 남겨두고 철수했다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의 "출구 전략계획을 포함하여 "정당한미국의 철수가 중국에 대한 전술적 해결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크게 착각하고 있다중국이 당장과 미래를 위한 전략적 목표 1순위를 상징하는 것은 사실이지만미 국방부는 더는 수십 년 전과 같은 힘을 갖고 있지 못하다미국 경제는 더는 예전처럼 세계 시장을 지배하지 못하며무역수지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이윤율 저하 위기또는 생산에 투자된 자본의 가치증식은 금융 투기를 부추기고실물 경제를 침체시켰다그래서 세계의 경찰이 되는 비용또는 계속해서 세계에서 제국주의 제1의 국가가 되는 비용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해지기 시작했다따라서 패배가 유일한 결과일 수 있는 위험지역(이라크시리아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는 것이 더 제한적이지만전략적으로 더 중요한 중국과 같은 목표에 집중하는 것이다이것은 이전의 민담(民譚)과는 상당히 다르다그러나 미국이 떠나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수는 중국이 탈레반과 다음과 같은 합의를 할 수 있게 해주었다: 30년간의 전쟁 끝에 아프가니스탄 재건을 위한 정치적 인정과 "후한자금 지원의 대가로 그들은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무슬림과의 싸움에 더는 간섭하지 않을 것이다또한 러시아 에너지 제품은 이제 중국과 인도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고터키는 이스탄불에서 탈레반과 그들의 적들과 회의를 개최함으로써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협상 강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되었다아프간 국민들특히 여성들에게 일어날 일에 대해 바이든은 관심이 없다동맹국이자 꼭두각시 정부를 지원하는 데 실패한 미국 대통령은 이 수치스러운 마지막 아프간 캠페인에 수천 명의 군인을 동원하면서 도망가라는 명령을 내렸다."

(아프가니스탄 비인간적인 탈레반 민족주의와 야만적인 미 제국주의 사이의 아프가니스탄 비극)

 

카불 함락 직전에 코뮤니스트 투사( Battaglia Comunista)의 이탈리아 동지들도 위와 같이 썼다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는 완전히 동의한다여기서 우리의 목적은 그 이후로 떠도는 모든 논평과 선전 속에서 최신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특히 미국의 언론은 바이든의 역할을 강조해 왔다트럼프는 그동안 바이든의 능력을 공격하기 위해 카불 공항의 혼란에 대해 소란스럽게 선전을 해왔지만이것은 핵심에서 벗어난 것이다우리가 10여 년 전 아프가니스탄 제국주의 야망의 묘지에서 언급했듯이, "자유를 지속시키는 작전프로젝트는 이미 끝났다(오바마는 그것이 분명히 실패했기 때문에 2014년에 끝났다고 발표했다). 그 무렵 미국의 침공은 단지 여러 부족의 파벌들로 이루어진 일련의 부패한 정부를 탄생시켰을 뿐이라는 것이 이미 분명해졌다그들은 탈레반에 저항하기 위한 군대를 증강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으로 갔어야 할 돈으로 바쁘게 자신들의 부를 축적하고 있다탈레반은 현재 마자리샤리프카불 등 도시 외곽에 있는 고급 주택(주인들이 도망간 곳)의 내부 동영상을 올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부패가 아프간 군대의 규모를 크게 과장했다는 사실이다관리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이른바 "유령 병사" 10만 명의 급여를 요구했다.

 

이것은 1975년 사이공 철수의 반복이 아니다당시 미군은 이미 2년 전에 그 나라를 떠난 상태였다이 후퇴는 훨씬 더 절망적이고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다미군은 이달 말까지 완전히 철수할 예정이었지만탈레반의 접수 속도에 압도되고 또한 깜짝 놀랐다그러나 현재 그의 모든 소란스러운 허풍에도 불구하고병든 꼭두각시 정권을 지탱하지 못한 미국의 두 번째 수치스러운 실패로 가는 길은 트럼프와 함께 시작되었다트럼프 행정부는 2018년 많은 탈레반 수감자(2010년 이후 억류된 탈레반 4인방 중 한 명인 압둘 가니 바라다르(Abdul Ghani Baradur)처럼)를 석방했을 뿐만 아니라그들과의 '거래'를 촉진하기 위해서 주도면밀하게 진행했다이것은 2020년 2월 마이크 폼페이오(Mike Pompeo) 미국 국무장관과 물라 압둘 하킴(Mullah Abdul Hakeem) 그리고 압둘 가니 바라다르가 이끄는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에미리트(일명 탈레반)가 체결한 도하(카타르협정의 형태로 이루어졌다협정에는 세 가지 필수 조건이 있었다우리는 그 내용을 그대로 다시 소개한다:

 

“1. 미국은 이 협정 발표 이후 14개월 이내에 모든 비외교 민간 인력민간 보안 계약자교관자문관과 지원 서비스 요원 등 미국 동맹국과 연합군의 모든 군대를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할 것을 약속한다.

2. 미국과 (미국이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탈레반으로 알려진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에미리트는 서로 긍정적인 관계를 추구하며아프가니스탄 내 대화와 협상으로 결정되는 미국과 새로운 이슬람 에미리트 정부 간의 관계를 기대한다.

3.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내부 대화와 협상에서 결정된 바와 같이 아프가니스탄의 새로운 정착 후 이슬람 정부와 재건을 위한 경제 협력을 모색할 것이며자국의 내정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아프가니스탄 문제에 발언권을 가질 수 있는 미국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당시 가니 대통령의 카불 정부가 사후(포스트-미국아프가니스탄 정착에서 많은 역할을 할 것이라는 생각조차 포기한 것이 분명하다다른 모든 조건은 그저 희망 사항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탈레반이 인수하는 것은 백지 수표였다바이든과 트럼프는 미국이 '영원한 전쟁'을 중단해야 한다는 데 사실상 동의했고이에 바이든은 이전 행정부의 정책을 흔쾌히 따랐다그는 실제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이 협정보다 두 달 더 버텼지만철수 방식은 거의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무능했다미군은 아프간 동맹국들을 모욕하여 아무런 경고도 없이 바그람 공군기지를 포기했다아프간 정부군이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그곳은 약탈당했고탈레반은 그곳과 다른 곳에서 강력하고 정교한 무기를 물려받았다

 

한편탈레반은 카타르에서 이 협정이 체결된 이후 지난 18개월 동안 현지 협상을 통해 가능한 한 적은 전투로 인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주요 동맹국에 의해 버림받은 아프간 군대는 부패한 정권(과거에 탈레반을 저지했지만가니 대통령이 경멸했던 여러 부족 군벌을 끌어들이려는 시도는 거의 하지 않았다)을 위해 싸우다가 죽게 내버려 두었다그들은 자신에게 미래가 없는 합의를 지지하라는 요청을 받았고따라서 간단히 무너져 내렸다싸울 일이 없었다.

 

아프가니스탄 자체에 관한 한주요 추측은 탈레반 통치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운명과 시아파 하자라(Shia Hazara)와 같은 여성과 "소수자"의 미래에 대한 것이다이들의 주요 시민은 20년 동안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 탈레반과 다른 살라피스트들(Salafists)에 의해서 정기적으로 살해되었다탈레반은 파슈툰어(Pashtun) 사용자가 지배하지만파슈툰어는 인구의 절반 미만이 사용하고 있으며, 2001년 이전에 탈레반은 (아프간 역사상 누구라도 그랬던 것처럼국가 전체를 완전히 장악한 적이 없었다그들은 지난번 카불에서 통치했을 때보다 더 기민한 홍보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 같다그들은 이전의 적들에게 사면이 제공될 것이라고 주장하고정부 관리들에게 그들의 직책을 재개할 것을 촉구하고여성이 권리를 가질 것이라고 선언한다(불길하게 이슬람법과 지역 관습을 준수하는 사람들로 자격이 부여됨). 현지의 실상은 이것이 단지 세계 언론만을 위한 공허한 말일 뿐이라는 것을 암시한다탈레반 지도자들은 언론과 정부에 알려진 반대자들을 체포하라고 명령했고탈레반 전사들은 그들을 찾기 위해 집집마다 뒤지고 다니고 있다반대자들의 탈출이 발각되면 그들은 친척들을 죽인다마을 소녀들은 이미 탈레반 전사들과 "결혼"을 강요받았고일부 여성들은 단지 밖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미 채찍을 맞았다.

 

그러나 임박한 이 인도주의적 재앙을 한탄하기 전에 우리는 지난 20년 동안 일어난 일에 대해 기억해야 한다. "민주주의와 자유"(미국과 나토 동맹국의 제국주의 이익이라고도 함)의 이름으로:

 

“2001년 이후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전쟁 지역에서 약 241,000명이 사망했다사망자 중 71,000명 이상이 민간인이었다.”(1)

 

2019년에만 42,000명의 민간인이 사망했고(2) 아프가니스탄을 세계에서 가장 치명적인 분쟁지역으로 만들었다미국 브라운대 윗슨연구소의 발표를 인용한 이 보고서는민간인 사상자의 대규모 증가는 주로 2017년 아프가니스탄 공습에 대한 미국의 교전 규칙 완화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탈레반과 다른 살라피스트들이 설치한 급조폭발 장치도 한몫했지만). 동시에 그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했다.

 

“CIA는 심각한 인권 유린과 민간인 살해에 연루된 아프간 민병대를 무장시키고 자금을 지원해왔다.“

 

여기에는 아프간 지역 경찰이 포함된다.

 

미국이 동원한 3만 명의 강력한 친정부 민병대 민간인을 살해하고사기를 치고절도강간납치마약 밀매와 갈취에 가담했다.“ (3)

 

국제사면위원회는 아프가니스탄 2020년 보고서에서 훨씬 더 암울한 상황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민간인 사망자의 약 절반이 탈레반과 다른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에 기인할 수 있지만대부분의 아프간 사람들의 생활은 지난 20년 동안 악화되었다:

 

아이들은 전투를 위해 특히 무장 단체와 아프간 보안군(친정부 민병대와 지역 경찰)이 계속해서 모집했고그들은 성적 학대를 포함한 여러 가지 학대에 직면했다아프가니스탄은 계속해서... "아이들에는 세계에서 가장 치명적인 국가 중 하나"이며친정부와 반정부 세력 모두 각각 700명 이상의 어린이 사상자를 낸 것에 책임이 있다지난 10아므룰라 살레(Amrullah Saleh) 부통령은 12명의 어린이를 죽게 한 학교에 대한 아프간 정부의 공습으로 다친 민간인 사상자를 신고한 사람의 체포를 명령했다고 발표했다이후타카르(Takhar)주지사의 대변인은 아프간 보안군에 의한 아동 인명 피해를 보고했다는 이유로 직위에서 해임되었다고 발표했다.“(4)

 

보고서는 계속된다:

 

아동 성 학대가 널리 알려지고, 2018년에 바차 바지“(남성 아동이 나이 든 남성에게 성적 학대를 받는 일)라는 학대 행위가 범죄로 규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당국은 학대 종식과 가해자의 책임을 묻기 위한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성을 억압하는 것은 탈레반만이 아니다아프간 정부의 "진보적인국제적 얼굴은 실제로 의회의 60석 정도의 여성을 위한 의석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정부에서 소수의 여성은 협박과 괴롭힘그리고 차별을 당했다그들은 남성 동료들과 동등한 조건으로 사무자원에 접근할 수 없었고초과근무와 수당을 거부당하는 일이 많았다."

 

2백만 명의 소녀들이 여전히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있지만탈레반은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이들을 공격하는 유일한 세력이 아니다:

 

"인권운동가들은 협박폭력살인에 직면하면서 계속해서 공격을 받았다지난 3헬만드(Helmand)주의 정부 관계자들은 부패 혐의를 받는 인권운동가들을 물리적으로 폭행했다그들은 부상당해 병원 치료가 필요했다지난 5시민사회 공동실무단의 조력자 모하마드 이브라트(Mohammad Ibrait)는 자불주에서 정체불명의 무장괴한들의 공격으로 부상당했다그 후 그는 부상으로 사망했다지난 6아프가니스탄 독립인권위원회의 직원 파티마 칼릴(Fatima Khalil)과 자와드 폴라드(Jawad Folad) 두 명이 카불에서 차량 공격으로 사망했다."

 

전반적으로 전쟁은 아프가니스탄을 "불발탄으로 오염 시켜수만 명의 아프간인특히 어린이들이 일상적인 집안일을 하며 목숨을 잃고 다친다."고 말했다또한 빈곤영양실조열악한 위생보건의료에 대한 접근 부족환경악화가 아프간인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악화시켰다.(5)

 

서방세계가 약속했던 "자유"의 혜택은 이렇게 셀 수 없이 많다. 이제 탈레반이 총격을 가하는 상황에서 이 상황은 더 나아지지 않을 것이며카불 공항에서 미 수송기 아래에 매달리는 대부분의 사람은 그것을 알고 있고그 이상을 알고 있다미국과 나토 회원국들이 그들이 고용한 사람들의 안전조차 보장할 수 없다는 사실은 아마도 비참한 제국주의 모험에 대한 가장 부끄러운 결말일 것이다미국과 나토 회원국들은 아프가니스탄이 자신의 야망의 무덤이라는 것을 발견한 최초의 제국주의자는 아니다.

 

 

오래전 1857년에 엥겔스는 제1차 아프간 전쟁(1839-42)에서 영국이 통치권을 확립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것에 관해 썼다.(6) 레오니트 브레즈네프(Leonid Brezhnev)는 제국주의 세력으로서 소련의 쇠퇴를 강조하고 가속화시킨 붉은 군대의 점령(1979-89)에 착수하기 전에 그의 작품을 읽었어야 했다아이러니하게도 러시아의 통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파키스탄의 군사 정보기관인 ISI(Inter-Services Intelligence)를 통한 미국의 재정 및 군사적 지원이 결국 탈레반이 부상하게 되는 길을 열었다. (사담 후세인의 타도가 다에시(Daesh)나 ISIS의 중추가 된 수니파 저항 세력의 탄생으로 이어졌듯이), 추가된 모순은 탈레반이 당시 사우디아라비아의 이슬람 근본주의 와하비파(Wahhabist)의 영향을 받고 있던 파키스탄의 마드라사(madrassas)로부터 발생했다는 것이다사우디아라비아는 소련 철수 후 내전에서 탈레반을 무장시키고심지어 지원 병력까지 제공했다. 9/11 자살폭탄 테러범 대부분은(오사마 빈 라덴처럼사우디 시민이었지만미국은 1945년 사우디아라비아와 악마적 조약(미국 안보를 위한 석유)을 체결했기 때문에 그들의 역할은 경시되었다이것과 다른 많은 긴장에도 불구하고이러한 편의적인 동맹은 계속해서 유지된다석유는 필요하다면 자급자족할 수 있는 미국에는 덜 중요하다사우디-미국 관계의 공고함은 이제 이란에 대한 공동의 싸움이 되었다.

 

그것은 우리에게 미국과 나토 동맹국들의 최근 제국주의적 붕괴의 중요성을 알려준다파키스탄의 총리 임란 칸(Imran Khan)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해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그는 아프간 사람들이 노예제의 족쇄를 풀었다고 말했다임란 칸은 파키스탄 군대의 꼭두각시이며탈레반이 파키스탄에서 은신처를 찾고 사업을 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ISI(파키스탄 정보기관)가 (원래 CIA로부터 받은돈을 탈레반에게 흘려보낸 것은 비밀이 아니다하미드 굴(Hamid Gul) 전 ISI 국장은 2014년 TV에서 "역사가 기록될 때, ISI가 미국의 도움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을 물리쳤다고 진술할 것이라고 발표했다그렇다면 또 다른 문장이 나올 것이다. ISI는 미국의 도움으로 미국을 물리쳤다.”(7) 미래의 제국주의 노선에 대해 임란 칸은 미국이 (가니 정부 시절 카불에서 영향력이 커진모디(Modi)의 인도와 동맹을 맺었기 때문에 파키스탄의 중국과의 동맹 관계가 더욱 공고해졌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따라서 인도가 카슈미르와 히말라야에서 파키스탄과 중국과 국경 분쟁을 계속하고 있는 것을 고려할 때 중앙아시아에서의 투쟁은 더욱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그리고 이 모든 국가는 핵보유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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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8월 13일 파키스탄 퀘타에서 파키스탄 정당 지도자들이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주요 도시 점령을 축하하며 과자를 나눠주고 있다.

(Fayyaz Ahmad/EPA-EFE/Shutterstock)

 

이란의 입장은 더 모호하다이란의 지도자들은 미국의 최근의 굴욕에 기뻐하고 있지만탈레반의 시아파 무슬림에 대한 비()관용적인 태도로 수천 명의 사람이 이란으로 도망쳤고따라서 이미 절박한 경제 위기에 압박이 더해지고 있다지난해 이란은 70만 명의 난민을 아프가니스탄으로 돌려보냈지만현재는 중국 일대일로 전략의 일환인 만큼 최근 중국과 맺은 25년 조약(8)을 고려할 때 탈레반과 협력할 수 있는 카드가 있을 수도 있다이는 아프간 중앙은행의 자금이 뉴욕에 예치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가능성이 높다이것들(그리고 IMF 자금 지원 보류 가능성)은 탈레반에 대한 미국의 마지막 수단으로 남아 있다따라서 후자는 적어도 단기적으로는어딘가에서 재정적인 지원이 필요할 것이고재정 지원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은 중국이다우리 동지들(코뮤니스트 투사)이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탈레반은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공동종교인들에 대한 처우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중국은 거의 20년 동안 아프가니스탄의 희토류와 같은 리튬구리 및 기타 광물자원에 주목해 왔고 추출할 수단을 가지고 있다이것들은 풍부하게 존재하며 그들의 군사력과 산업 능력을 모두 증강시킬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하지만 탈레반의 경우 이에 대한 수익이 돌아오는 데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유라시아 전역에 걸쳐 중국이 발전할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이를 보여주는 한 가지 징후는 파키스탄중국러시아가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이후 카불에 대사관을 유지하는 유일한 국가라는 점이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할 날짜를 발표하기 전에 나토 동맹국들과 거의 상의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로 인해서 재난이 가중되고 있다이에 영국과 독일과 같은 다른 강대국들은 전적으로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고그들과 함께 갈 수밖에 없었다. “미국 우선주의가 동맹국에 후순위를 의미했던 트럼프 집권 4년 후 '서방 동맹'은 큰 피해를 보았다바이든은 집무실에 도착해 "미국이 돌아왔다"고 밝혔지만아프가니스탄에서의 그의 행동은 동맹국들에 이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납득시키는 데 실패했다제국주의 진영의 전개 방식에 비추어 볼 때 미국이 결코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은 그 자체의 불화이다.

 

한편중국은 미사일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이 대유행을 이용했으며탈레반이 장악한 주() 동안의도적으로 대만의 영공에 전투기를 띄웠다이것은 일련의 도발 행위 중 가장 최근의 것이었지만미국의 약점에 대한 인식에 힘입은 행동이었다이미 야만적인 갈등으로 가득 찬 세계는 더욱더 위험한 곳이 되었다노동계급은 어디에서나 분열되고 조직화되지 않는 한 희생자가 될 것이다맑스가 이야기한 것처럼 노동자에게 조국이 없다그들은 싸워서 지켜야할 부()가 없고확실히 지지해야 할 제국주의 세력도 없다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제국주의"에 대한 지지 선언을 자본주의 좌파와 우파의 다양한 파벌에 맡긴다유일하고도 진정한 반()제국주의 투쟁은 모든 형태의 자본주의를 끝내기 위한 노동계급의 투쟁이다이것이 구체화될 때까지 자본주의는 우리를 더 큰 갈등으로 이어지는 길고도 느린 길로 인도할 것이다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2021년 8월 22

조크(Jock)

국제코뮤니스트경향(I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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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atson.brown.edu 참조

 

(2) sipri.org 참조

 

(3) theguardian.com 참조

 

(4) amnesty.org 참조

 

(5) 이것과 앞의 인용문 : watson.brown.edu

 

(6) marxists.org. 참조엥겔스의 설명에서 놀라운 것은 그 침공과 후대의 침공 사이에 유사성이 많다는 것이다. 1857년에 쓴 글에서 그는 "아프간 사람들은 여러 족장이 봉건적 패권을 행사하는 씨족들로 나뉘어 있다통치에 대한 불굴의 증오와 개인의 독립에 대한 사랑만으로도 강대국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하지만 이러한 불규칙성과 불확실성은 그들을 위험한 이웃으로 만들고변덕의 바람에 날려버리거나그들의 열정을 교묘하게 자극하는 정치적 음모자들에 의해 선동되기 쉽다." 2차 아프간 전쟁 후에 영국은 아프간 사람들을 듀랜드 라인(Durand Line)으로또는 (영국령 인도 제국북서 국경으로 역사에 유명해질 수 있도록 하는 데 성공했고그 너머에 있는 아프간 사람들은 서로 싸우게 되었다.

 

(7) washingtonpost.com 참조

 

(8) 혁명적 전망」 18시리즈 4. leftcom.org의 최근 기사 "중국 -이란 협정실크로드와 여타의 제국주의 움직임"을 참조.

 

 

<원문 출처>http://www.leftcom.org/en/articles/2021-08-24/afghanistan-the-usa-and-its-allies-retr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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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주의 코뮤니스트 포럼 "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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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주의 코뮤니스트 포럼 "1회"


■토론주제 : 코뮤니스트 좌파 진영 최근 내부 논쟁 (발제ㅣ오세철)


■일시 : 2021년 10월 8일(금) 오후 7시 (장소는 추후 공지)

 

<포럼 자료>

「코뮤니스트」 10호, 107쪽~116쪽
「코뮤니스트」 11호, 145쪽~167쪽
「코뮤니스트」 12호, 172쪽~192쪽
「코뮤니스트」 13호, 238쪽~240쪽(요약)


*자료(PDF) 요청 및 포럼참가 문의 : communistlef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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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4호] 지구를 구하라 - 자본주의를 파괴하라!

지구를 구하라 자본주의를 파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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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캐나다 서부와 미국 상공의 열돔 현상그리고 독일과 중국에서의 홍수로 수백 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캘리포니아에서 그리스터키 그리고 시베리아까지 산불이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이러한 재앙들은 분명히 지구 온난화가 기후 패턴을 교란한 결과이다온실가스 배출이 현재와 같이 계속된다면이번 일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비해 어느 성직자의 다과회처럼 한가롭게 보일 것이다수백만 명이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인류는 이른바 기후 틈새(climate niche)라고 불리는 평균 기온(MAT)의 좁은 범위에서 생존해 왔다이 범위는 대략 11~15이며 농작물과 가축을 성공적으로 재배하기 위한 범위이기도 하다산업화 이전의 평균 온도는 약 13.75°C였으며 지금까지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 온도보다 1.1°C 상승하여 이미 인간 생존을 위한 최적 온도의 한계에 도달했다. 2010년 이후 평균 기온이 0.4°C가 증가한 이래로 금세기 말이 아니라향후 5~10년 이내에 파리 기후 회의에서 합의된 유명한 1.5°C에 도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2040년까지 2°C가 상승하면지구상 인구의 3분의 1이 기후 틈새 지역 밖에 놓이게 된다. 1.5도에도 불구하고 생산되는 식품이 크게 감소할 것이며, 2°C에서는 미국 중서부 및 인도와 같은 지역에서 수확량이 절반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기후 틈새 지역이 위도가 높은 곳으로 이동함에 따라 수백만어쩌면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이주해야 할 것이다이것은 사회적 붕괴와 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다.

 

많은 온난화 과정이 이미 인간의 행동으로 되돌릴 수 없는 임계점을 넘어섰다북극 얼음이 녹고남극 서부 대륙빙하가 녹고산호초가 백화(白化)되는 등 세 가지 중요한 임계점이 교차되어서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그린란드 대륙빙하가 녹고남극 동부 대륙빙하가 녹고멕시코만류의 붕괴 등 추가로 세 가지 과정이 임계점에 근접한 것으로 보인다우리가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동안 그것들을 흡수하는 자연의 능력 또한 파괴하고 있다보기를 들어 아마존 유역은 화재와 산림 벌채로 인해 이산화탄소의 순흡수체(純吸收體)에서 순배출체(純排出體)로 바뀌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파리 회의 목표인 2050년까지 순배출(純排出제로 달성을 위한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은 경우에만 이를 달성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개발 승인을 받은 새로운 유전 및 가스전이 없고 새로운 탄광이 없는

 

물론 우리의 지배자들은 이에 대해 조금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새로운 에너지 투자의 대부분은 화석 연료에 투입되고 있다. G7은 2020~2021년 석유가스 및 석탄을 지원하기 위해 총 1,890억 달러를 지출했는데이는 재생 에너지에 지출한 비용보다 29%나 많은 금액이며파리 회의 이후 6년 동안 G20은 화석 연료에 3조 3천억 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했다국제에너지기구는 대유행 복구에 할당된 16조 달러 중 2%만이 청정에너지로 전환될 것이며, 2023년까지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이 새로운 최고치로 치솟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했다.

 

왜 우리의 지배자들은 그들의 과학자들이 그들에게 말한 것과는 달리 정반대의 행동을 하는 것일까그 이유는 그들은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대로 하기 때문이다첫째자본주의 체제는 단지 이윤을 목적으로 생산하며화석 연료는 여전히 매우 수익성이 높고둘째자본주의 체제는 지속적인 자본 축적을 필요로 하며이는 에너지 성장으로 이어진다자본주의 체제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동안이윤과 성장의 필요성은 이것이 미래에 호모 사피엔스의 멸종으로 이어질지라도 우리의 지배자들은 그에 따라 무엇을 할지 결정할 것이다.

 

온실가스 생산과 밀접하게 관련된 것은 바로 지구를 약탈한다는 것이다자연의 재생 가능한 자원을 자본주의가 사용하는 것은 이제 매년 자연이 대체할 수 있는 것의 1.6배가 된다이것은 단순히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오늘날 우리는 두 가지 대안을 제시받고 있다()탄소화에 동의하는 세계 자본주의 지도자들의 세계 회의또는 정부의 탈()탄소화 강제를 위한 체제 교란 직접 행동이 그것이다둘 다 효과가 없을 것이다.

 

첫 번째는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을 중단하는 것을 동의하는 세계 자본주의 지도자들에게 의존한다유엔 기후변화 회의(COP)는 아마도 이것을 위한 포럼일 것이고, 최근의 COP26(당사국 총회 유엔기후변화협약의 최고 의사결정회의)은 11월에 글래스고에서 열릴 예정이다. COP회의는 1995년 이후 매년 열렸지만이전의 모든 COP회의에서는 아무것도 실현하지 못했다지구 온난화는 꾸준히 증가해왔다파리 회담은 법적 구속력을 갖기로 약속이 되었지만그러한 약속은 시행할 수 없었다분명히, 100여 개의 후진국이 그들이 참여하지 못했던 파리 COP21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선진국들로부터 돈을 요구하기 위해서 글래스고 회의에 올 것이다또 하나의 쓸모없는 결과가 도출될 것이고, 참가자들은 평소와 마찬가지로그들이 이행할 의도도 능력도 없는 약속을 한 것에 대해 자신을 다독거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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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대안은 세계 자본주의가 분열과 대중 불복종으로 경제를 탈탄소화시킬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이다이것은 멸종 반란(XR)과 그들의 분파인 버닝 핑크(Burning Pink)가 지지하는 전략이다그들은 국회에 선출된 의원들과 탈탄소화를 통제하는 시민 집회를 통한 "평화로운혁명을 제안한다탈탄소화 비용은 인구의 가장 부유한 10%의 자산의 90%를 몰수해서 지불해야 한다이 모든 환상에 대한 진정한 비판은 멸종 반란에 따르면이윤과 성장에 대한 지속적인 요구를 가진 자본주의 체제가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다시 말해서 우리를 재앙으로 이끄는 모든 세력은 온전하게 남아 있다는 것이다.

 

단순한 사실은 자본주의가 세계 생산 체제로 남아 있는 동안 환경 위기에 대한 해결책이 없다는 것이다자본주의가 지구상에 가한 끔찍한 피해를 되돌려 놓으려면 임금노동과 이윤을 위한 생산의 종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환경문제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필요를 위한 협력적 생산을 기반으로 하는 세계 체제가 구축되어야 한다.

 

 

2021년 9월 2

국제코뮤니스트경향(ICT)

 

 

(위 기사는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의 간행물 <오로라> 최신 호(56)에서 발췌한 것이다.)

 

<원문 출처>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21-09-02/save-the-planet-destroy-capit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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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하반기 투쟁 힘모으기 <아사히 수요문화제>

  • 분류
    계급투쟁
  • 등록일
    2021/09/23 18:54
  • 수정일
    2021/09/23 18:54
  • 글쓴이
    자유로운 영혼
  • 응답 R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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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하반기 투쟁 힘모으기
아사히 수요문화제

 

 

2021. 09. 29(수) 늦은 7시
구미 AGC화인테크노 코리아 아사히농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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