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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같은 소리 하고 있네


1945년의 8월 15일은 일본 제국주의가 미국과의 전쟁에서 전면적으로 패배하였던 날이며, 따라서 해당 시기 한반도에서의 철수를 강요당할 수 밖에 없었던 날이다. 바로 이 시점을 한반도의 민중들은 해방이라고 불렀으며, 억압의 직접적 기제였던 일본 제국주의의 패망을 토대로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노력들을 시작할 수"는" 있었다.


따라서 이 날을 광복절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여러 과정들을 거쳐서 속칭 “민주주의 공화국” 인 남한이 건국되었다. 이 과정에서의 역사적 비극들은 문제가 있으나, 새롭게 건설된 나라는 여하튼 말 뿐이긴 하지만 “민주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나라였다. 민주주의란 말 그대로 민중들이 자기 스스로 주인 노릇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광복이란 일본 제국주의의 패망과 더불어서 민주주의를 전면화 하는 새로운 나라가 이 땅에 세워진 것을 동시에 의미하기도 한다. 한데 2007년의 광복절, 8월 15일은 이러한 광복의 의미가 충만했던 날이 되었는가?


바로 오늘인 8월 15일, 이랜드 홈에버의 노동자들은 회사 측의 불성실한 협상과 정권의 탄압 등의 여러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인간답게 살기 위한 투쟁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 절박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랜드 면목점에 모인 홈에버의 여성 노동자들은 갑작스럽게 떨어지는 폭우와 용역들의 폭력, 경찰력의 폭력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투쟁을 전개해 나아갔다.


면목점에 도착했을 때 이미 입구는 덩치 큰 용역깡패들에 의해서 길이 가로막혀 있었고, 직원도 아닌 이들이 도대체 왜 이 입구를 막고 있느냐고 질문하는 여러 시민들에게 용역들은 “너 이리 와봐” "이 새끼 죽고 싶냐“ 등의 언사와 함께 물리적인 폭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러한 용역들의 폭력적인 행위 그 자체도 이미 상식적으로 폭력에 관련한 여러 법률에 관해서는 분명히 위반이다.


한데 파업 중인 사업장에서 노동자들이 집회를 벌일 때 이러한 집회가 집회 시위에 관한 법률과 무관하며 따라서 처벌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적인 것이다. 즉 이랜드 자본은 노동자들의 파업을 불법으로 매도하지만 이러한 파업은 지극히 합법적으로 상식적인 것이며, 따라서 오히려 자신들의 돈을 이용해서 용역을 동원하여 노동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비상식적인 불법을 저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민중이 주인이 되는 나라가 아니라 돈을 이용해서 온갖 위법, 각종 노동 착취와 부당 노동행위 등의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노동법 위반에도 불구하고 경찰력에게 단 하나의 처벌도 받지 않은 채 오히려 보호받고 있는 이랜드 자본과 박성수가 버젓이 존재하고 있는 나라, 이 대한민국. 이 나라가 과연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호칭 할 수 있는가?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각종 폭력을 조장하고 각종 경제위기를 노동자 민중에 대한 책임 전가를 통해서 민중들의 주인됨을 박탈하는 대한민국은 이미 광복의 의미를 상실한 국가이다.


이랜드 그룹의 박성수는 이미 주식 배당금으로 부인과 함께 183억의 돈을 벌어들였다. 동시에 교회에는 130억의 십일조를 내면서 노동자들은 79만원으로 부려먹는다. 노동자들의 노동력이 저임금으로 장시간 착취를 받을 수록, 그리고 노동력이 점점 유연해짐으로써 사측의 비용이 절감된다는 것은 주식 가치의 상승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식 가치의 상승이라는 일견 화려해 보이는 금융화의 과정 뒤에는 노동자들에게 점점 전가되는 희생과 삶의 위기, 그리고 극단적인 폭력이 도사리고 있다.


2007년 8월 15일 8시 경, 갑작스레 내리는 비를 맞으면서 전경들과, 그리고 용역들과 대치했다. 방패로 밀어붙이는 그들에게 “우리 어머니 같은 사람들이 깔려죽는다” 라고 절규하며 나는,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외쳤다. 비에 젖고 땀에 젖어 온 몸이 엉망이 되었을 때, 잠시 극단적인 폭력적 상황이 중단되었을 때, 이미 많은 학생들과 시민들이 연행된 이후의 상황에서, 눈물을 훔치는 아주머니를 볼 수 있었다. 아주머니는 이제껏 함께 해 왔던 내 얼굴을 안다고 했고, 학생들이 무슨 고생이냐고 눈시울을 붉혔다. 나 역시 순간 감상적이 되었는지, 잠시 노동자들의 그간의 고생과 서러움이 내 가슴에 그대로 전달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얼굴 모를 깡패들에게 두들겨 맞으면서도 전혀 서럽지 않았는데,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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