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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에서 이기고도 남는 상처

현현님의 [건조한 예의가 필요해] 에 관련된 글.

 

서성거렸다.

내 심장이 펄떡거리고, 머리가 뱅글뱅글 돌고 있는데도

그저 딸막딸막 손가락을 어쩔 줄 몰라하다가,

몇줄 욱~ 하여 쓰고는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서 지웠다. 내 손으로...

다시 보니, 내 짧은 덧글이라는 것이 도대체 뭘 하자는 것인지 모를 글이었다.

반박하고 싶은 이에게는 흥분하지 않으면서도,

촌철살인의 언어로 정확히 그 얕은 논리를 깨주고 싶었고, 

위로하고 힘보태고 싶은 이에게는,

그것으로 힘이 되고 연대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런 내 마음은 어느쪽으로도 가지 못하고 이상하게 떠도는 글이었다.

심장으로 써야 글을 이성으로 쓸려고 했던지,

이성으로 써야 한다면서도 심장의 자극을 어쩌지 못했던지...

 

지우고나서 다시 써보려고 했다.

말을 고르고 골라서...그런데, 나는 결국 헛기침을 하며 슬며시 돌아서 나와버렸다. 

왠지 모를, 두려움? 공포같은 것이 살아왔다.

내가 반박하고 싶은 논리를 들이대는 사람의 태도가

너무 익숙했기 때문에, 그와 연동된 사건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이후 내가 생각하고 만들게 된 내 태도들이...

 

논쟁이라는 것에 익숙했다.

반박이라는 것이 일상이었다.

논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주 중요한 투쟁이었던 적도 있었다.

아니 그렇다고 믿었던 적이 있었다.

당장, 조직의 노선과 입장이 옳으냐 그르냐를 가름하는 것이고

그것으로 내 정체성의 정당성이 확보되는 것이었으며,

그것은 곧 조직의 힘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활동가, 나의 능력의 척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논쟁에서 졌다고 판단될 때는 그럴 수 없는 낭패감이 시달리곤 했다.

정치적 무능력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반대로, 논쟁에서 이겼다고 판단들 땐,

정치적 올바름이 증명되었다고도 생각했다. 그게 힘이라고도...

그래서, 때론 2박 3일씩 목숨걸고 논쟁했던 때도 있었다.

아니 몇달을 그랬던 적도 있었다.

일상이 논쟁이고 일상이 반박이었다.

 

이런 일상의 습관은 아주 가까운 이들과의 개인적인 관계에서도 여전했다.

소위, 말빨...그것으로 나는 줄곧 친구나 지인들을

바로 잡으려 했고, 개심시키려 했다.

그리고, 주로 내 말빨이 먹히기도 했다.

나는 그것을 내가 가진 의견이 지인들에게 받아들여져

우리가 소통했다고도 생각해왔다.

 

그런데, 그거 아니었다.

그거 소통아니었다.

조직간의 관계든, 개인간의 관계든...

어느날 갑자기 보니,

그들중 누군가가 내게

'그렇게 말을 하니 나는 아무 말을 할 수 없다.주눅든다.무섭다'고 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함께 해온 모임에서 뭔가 휑허니

공감이니 소통이니 하는 말이 저멀리 도망을 가버리는 듯했다.

 

일상에서 말하기가 이러했다.

논리의 우위를 점하므로써 소통된다고 믿게 되는 ....

그런데, 인터넷공간이 실재하는 공간만큼 넓어지고 깊어지면서

얼굴도 없이 말에 꼬리를 달고 무한질주하는 현상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어지러움 그 자체였다.

내가 사는 이 동네, 노동자의 도시,

노동자 부대들은 일상의 말하기 보다 더 거친 말꼬리들을 주고 받고 있었다.

도대체, 얼굴이 화끈거려 볼 수 없을 만큼...

그게, 익명의 자유라고도 생각해봤다.

그 자유를 막아서는 안된다고도 생각한다.

가끔, 노동조합들이 게시판을 닫아걸 때, 나는 분명히 반대한다.

그렇지만, 그 문화를 보고 있는 건 두려움이었다.

그냥 당분간 그 게시판을 피해다니게 되는...

내가 가고자 했던 진보니 인간다운 삶이라는 것, 꿈.

그런데, 꿈으로 가는 현실은  인간적이지도 진보적이지도 않다는 건,

괴로움이었다.

 

어쩌다가, 어쩔 수 없이 논쟁에 끼여야 할 때도 있었다.

언젠가, 사이버 성폭력 대책위를 자임하고서,

가해자 소통담당자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사이버 성폭력이었으므로,

일단, 어떤 사이버 공간이 싸움의 공간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가해자의 일관되게 뻔뻔한 태도들,

보란듯이 가해성 발언을 계속하는 가해자,

처음에 그러지 말라고, 점쟎게 그리고 그가 비정규직 노동자이며

투쟁하려는 자라는 것을 고려해서

이렇게 저렇게 제대로 사과하게 하려고 했다.

그런데, 날이 가도 자신의 행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피해자를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은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고

핏발 선 발언들이 오고 갔다.

그러자, 가해자와 같은 모임을 하던

여성운동을 하겠다던 여성들이

피해자의 입장에서 가해자에게 쓴소리를 하는 사람들을 향해

공격을 했다.

그 글은 같은 여성이라는 조건으로 인해

피해자에겐 더할 수 없는 상처를 주는 지독한 2차 가해로 나아갔다.

 

어지러웠다.

제발~ 호흡을 크게 하고 잠깐 쉬자고 했다.

정말, 이건 아니다 싶어서 였다.

그들과 몇년이 지난 지금도 어쩔 수 없이 보게 되더라도

서로에게 호감은 아니다.

그들은 그들대로

나를 포함한 우리들에게 질렸다.

'어쩜 그렇게 총탄같은 말들을 잘 하는지'라며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말잘하는 사람들....'

말이 아니었는데, 정말 심장 그 자체였는데...

여성간에도 그 심장이 뒤틀린다는 사실이 주었던 충격은

내내 못이 박혀 있다.

 

결국, 올바름이 승리(?)했다고 해야 할까?

가해자가 속한 조직, 노조에서 공식사과문을 게시하고

조합원 성폭력 예방교육을 실시하고...

사이버상에서도 그들은 나가버렸다.

말하기 무서워서 말못하겠다고...2차 가해니 뭐니 ...어디 무서워서 말하겠냐면서...

가해자는 나중에야 이상한 사과문을 보내왔다.

그리고, 교육을 받으러 갔다.

 

그러는 동안 나는 가해자를 만나면서

2중 3중의 고통을 느껴야 했고

피해자는 그 사건이 정치적으로 해결되는 동안 방치되었다.

그가 가진 에너지가 손상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그가 겪은 심리적 손상을 충분히 돌보아 줄 프로그램를 고민하고

그의 상태에 대해서 가장 크게 애를 썼어야 했는데,

그걸 방치하고

논쟁에서 이기고, 가해자의 어설픈 사과를 받고, 정치적 해결이 났다.

 

괴로움이었다.

내게 내내 상처였고, 괴로움이었다.

대책위를 함께 했던 사람들, 인터넷에서 덧글로 목소리를 높혀주었던

고마운 동지들,

그러나 나는 그들 에게서 조차도 위로받지 못할 상처를 받았다.

실제로 가해자를 만나고 가해자 소속 조직을 만나야 하는...

내가 구체적으로 겪어야 했던 상처를

인터넷에서 목소리를 높혔던 그들은 몰라주었다.

날마다, 밤마다 그 사건을 안고 악몽을 꾸고

가해자 얼굴에 가위 눌리고

내 지난 상처까지 떠올려야 했던 것을...

 

그런 만큼, 정말 피해자의 상처도 온전히 몰라주었다.

당당히 맞서기를 바라는 마음에, 안아주기 보다

투사가 되라고 했던, 지인들.

 

고맙기도 했지만, 섭섭하고 속상했던 그때가,

다시 떠올라서, 그렇게 서성거렸다.

논쟁에서 이겨도 상처가 남는다는 것,

소통은 논리에서 우위를 점한다고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말을 하는 이유는 아픔에 대한 공감을 이루고 싶은 것이면서도

하나도 이루지 못하더라는....상처 때문에...

그래도, 싸울 때는 싸워야 하는데...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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