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5/17

from 일기 2010/05/17 01:23

집을 떠나 있었던 건 17일.. 

전주영화제에서 두리반으로, 두리반에서 청주로,

청주에서 머물렀던 건 11일쯤... 다시 청주에서 서울로,

미디액트 개관식에 갔다가 이틀을 더 놀고 오늘밤에야 돌아왔다.

보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전혀 실감나지 않는다.

특히 청주에서의 시간은 '어느새' 훌쩍 열흘을 넘기고 있었다.

 

그렇게 17일만에 열어본 블로그에서 낯선 글들이 보였다.

사진들도 마찬가지... 이해할 수 없는 슬픈 표정의 얼굴을 한 내가 사진 속에 있다.

사진을 찍으며 웃으려고 해도 잘 웃음이 안나오던 게 기억난다.

견디기 힘들 것 같았던 5월이 벌써 반 이상 지나가버렸다. 매일 매일 행복해하면서..

 

특별히 무언가를 결심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선택의 순간은 분명히 있다.

즐겁고 좋은 일을 선택하는 건 훨씬 쉽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걸 포기 혹은 거부하는 것에 대해 더 주목해야할 것 같긴 하다.

 

어제 읽었던 만화책 '매미소리가 그칠 무렵'에 보면 병에 걸린 아버지를 어린 스즈가 돌보는 동안

심약한 부인 요코는 가끔 병원에 와서 10분 남짓 시간을 보내다가 돌아갔을거라고 스즈의 이복언니..사치가 말한다. 저렇게 남의 눈치 안보면서 울 수 있는 사람은 스트레스 안받을 타입이라고. 

집에 돌아오는 동안 그 장면이 떠올랐다. 나는 요코같은 타입인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돌보는 엄마와 언니가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나는 더 못하겠다...이런 결론을 부여잡고 있다. '도망'이 이유 중 하나는 된다.

 

아니, 무엇이 이유인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도망'이 이유인건 변하지 않지만 문제는 내가 그것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는지이다.

함께 살기를 원한다면 내 삶을 변화시키는 것을 전제로 고민을 나누는 것이 맞겠지만 

지금의 난 그저 그정도는 내가 감당해버리고 싶다는 마음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것을 어떻게 감당할까... 구체적인 건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잘 버텨주기만을 바라고 있을 뿐이긴 하지만... 이건 좀 더 현실적인 해결이 필요하다.

 

두번째는 돈벌이와 자리잡기인데...이건 별로 그냥 조급하게 느껴지지가 않는다.

 

조금 다른 의미로는 관계맺기의 문제. 지금 이곳의 관계와 그 곳의 관계를 어떻게 할건지.

나는 어떤 자리에 서있으려고 하는지..

이건 사실 약간 나에겐 옵션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점이 중요하다.

이 것이 나에게 옵션처럼 느껴진다는 사실.

 

정리하자면 자기 중심적인 관계 맺기 정도일까.

흡수하고 나를 채우는 것, 그 과정에서 발생한 에너지로 자연스럽게 내 것을 나누어주는 것..

그 이상 중요했던 것은 별로 없었다.

한 때 목메던 '그 무엇'은 꽤나 실체가 없던 것으로 밝혀졌고... 이후론 계속 '나'에 집중해왔다.

삼십대 후반인 I는 이렇게 살아와보니 무언가를 선택할 때 늘 절대적인 기준에 의할 필요는 없다고 말해주었지만 좀 더 관계맺는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고 행동할 수는 없을지,

내가 하려고 하는게 구체적으로 무언지 정도는 알고 행동해야 하는 건 아닌지 하는 걱정은 여전하다.

 

어쨌든 내가 궁금한 것은 이런 나의 상황과 방식이 그들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이고

또 그것이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를 바란다.

하지만 나도 이미 알고 있는 것 처럼 함께하기엔 모순된 두 가지 개념이 있다.

나는 정주하지 않는다. 그들은 정주한다.

나는 조직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조직 안에서 고민하려 한다.

나는 내 삶의 조건을 단순화시키고 살짜쿵 도망가려 한다. 그들은 그들의 삶의 조건을 세분화하고 변화시키려한다.

 

외부자일 수 있던 것은 내 현장과 내 삶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이상 외부자로 있기엔 내 현장과 삶의 많은 부분을 그들에게 기대려고 하는 상황이고

그렇다고 내부자로 있을 수도 없다.

우린 어떤 관계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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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7 01:23 2010/05/17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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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넝쿨 2010/06/23 21:04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음.. 나도 요즘 고민하고 있는 어떤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