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명박이 때려잡으러 간다고 집결해 가장 많은 연행자들이 나온 날,
우리는 이 척박하디 척박한 땅에서
이주노동자들과 집회 참여를 결정하고, 이것저것 준비를 했다.
토르나가 잡혀갔을 때를 떠올리니
아..아무리 대중적 집회라지만
캠페인하고, 모금 돌리고, 이주노동자 현실을 알려내는 발언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겠구나 싶었다.
다행이라 말해서는 안 되겠지..
그 날은, 연행자가 없었다.
곁에 있던 활동가 동지들은 대부분, "에이 뭐 이래~땡땡" 하면서
집회 장을 떠났다. 지역 집회를 주도 하고 있는(주도라 해봤자 집회 일정 잡고 프로그램 대강 짜고 집회 신고 하는 것이 전부이겠으나)측근이 경찰과 쇼부를 쳐서 인도로 행진했다는 후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발적으로 거리로 나가자 말하고
자발적으로 발언하겠다 말하는 이주 친구들
"강하게 싸우고 있으니 연대투쟁해주십시오 동지들!"이 아닌,
"우리 이주노동자 힘들게 살고 있으니 도와달라"는 것 정도가 전부였지만
너무 좋았다고...
사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악선동들이 워낙 팽배해 있어 걱정했는데,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이 올라가 투쟁지지 발언을 하니
대중들이 제일 큰 환호와 박수를 보내주었다.
덧붙여, 발언한 친구는 무슬림이기 때문에 소고기를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ㅎㅎ
피부색으로 사람 구별하지 않는 분위기, 함께 신나라 싸울 수 있는 동지애..
이주 친구들은 이 기억을, 참여하지 못한 친구들에게 알려내느라 야단이다.
광우병, 교육탄압, 노동자탄압,..등등
극우 파시스트들이 각종 생존권을 뒤흔드는 정세,
전투적이지 못한 촛불집회라고 욕하는 것도 좋지만
투쟁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혹은 투쟁이라면 넌덜머리 났다던 사람들이
스스로 참여하고 조직되고 좋은 기억을 남기고,
이 과정을 통해 성장한다면 그만한 정치적 성장이 있겠는가.
누구도 마음 놓고 광우병 대중 투쟁에 참여하지 않고 있었다.
마음 놓고 참여할 수 없었던 것은 활동가로서의 나의 오만이었다.
여름이다. 끈질기게 싸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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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도 사람이 하는 일인데, 정치에 사람이 빠지면 반드시 관료주의로 전화되죠. '반관료투쟁'을 전면적으로 통과함으로써 동지는 새로운 정치적 삶에 도착하리라 생각해요. 함께 가지요.
타로는 통계학이 아니라 제 경험으로는 '의학'에 가까워요.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을 스스로 갖는 것. 풍경을 오래도록 응시하면 그 곳에서도 치유의 힘을 발견하곤 하지요. 예를 들어 전 야트막한 저음의 저물녁을 참 좋아해요. 그 '때'를 오래도록 걷고 싶지요
글고 나르시스트가 뭔겨, 난 결코 나른하지 않습니다. 동지의 놀랍도록 강력한 체력에 존경을 표하면서 앞으론 마니 먹지 맙시다. 죽는 줄 알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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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뭔가 동지에게 할 말이 있는데.. 요기에 쓰기는 그렇고... 만나서 하는게 좋을 듯한 이야기들이 쌓여가요.-_-;; X
바람숲님 나른하단 이야기가 아니지여. 크크.
쌩~ 당신만 울산으로 오이소! 쌩~하니!크크. X
네 저만 내려가서 동지가 만든 피자토스트를 먹어야죠ㅋㅋ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