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등록증, 정보인권의 광우병

  • 분류
    잡기장
  • 등록일
    2008/06/18 14:27
  • 수정일
    2008/06/18 14:27
  • 글쓴이
    진보넷
  • 응답 RSS

지난 3월 줄기찬 문제제기 끝에 주민등록증 없이 여권 발급을 받은 김해의 청소년 지문날인 거부자 기억나시나요?

이분이 최근 광우병 논란을 바라보며 다음과 같은 글을 보내오셨습니다.

최근 200여명의 독립운동가들이 국적을 회복했다며 떠들썩했었습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 등 독립운동가들은 1912년 일제가 식민지 통치를 위해 호적제를 개편하자 일본의 호적에 이름을 올릴 수 없다며 거부했고 광복 후 정부는 일제시대 호적에 등재된 사람들에게만 대한민국 국적을 부여해 호적도 없는 무국적자가 됐다는 사연입니다.

그런데 국가가 국적을 인정하는 방식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출생증명이 되면 국적을 부여하는 방식처럼요.

하지만 오늘날 한국에서 국적 인정 여부는 사실상 "주민등록증" 발급 여부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주민등록제도는 "주민"등록이 아니라 위헌적이고 강제적인 "국민"등록제도입니다. 국가가 국민들의 신분을 증명하기 위해 국가신분증 발급을 의무화하고 강제적으로 번호를 부여하거나 지문날인(그것도 열손가락 모두!)을 받아야 할 필요는 없지요.

이번에 국적이 회복되신 독립운동가분들이 일제시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강제적인 국가신분증이나 지문날인제도, 그리고 오늘날 정보사회의 계륵이 되어버린 주민등록번호가 아직도 위세를 떨치고 있는 오늘날 현실에 대해 알게 된다면 무어라 하실까요?

 

주민등록증, 정보인권의 광우병

 
민 (지문날인 거부자)

 

나는 요즘 광우병소고기수입반대 촛불집회에 참가하고 있다. 민주시민들이 광우병을 전염시키려는 정부에 맞서 공연, 자유발언, 도로점거와 가두시위를 하면서 고시철회, 협상무효 등을 외치며 ‘시민의 불복종’을 실천하고 있기에 빠질 수 없는 축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참가하는 곳에서 광우병소고기 수입을 철회하고, 협상무효하고 20개월 미만의 소만 수입하거나, 한우먹자 등을 들을 때 참 답답하다. 문제는 절약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초식 동물인 소에게 뼈 등을 갈은 사료까지 먹여서 광우병을 발생시킨 소를 팔려는 자본가들, 그 배후에는 그렇게라도 이윤을 내면 성공하고 못 내면 망하게 하는 [자본주의]가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 한국인이라면 거의 모두 겪을 문제가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아직 별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지문날인, 주민등록번호 그리고 주민등록증이란 괴물이다.

올해 2월 어느 날 동사무소에서 만 18세이니 주민등록증을 발급하라는 통보서가 나왔다. 대게 사람들은 나도 이제 성인식(?)이 되었구나 싶어서 당연히 가서 찍는다고 하는데 (그래봤자 투표권 1년 후에 나오지만)... 나는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지문날인이 처음 시작된 곳은 일제의 꼭두각시 국가였던 [만주국]이였는데, 항일독립운동이 활발했기에 그것을 탄압하기 위해 생겨났고, 만주국장교로서 독립군을 때려잡았던 박정희는 63년 국회날치기 통과를 시키고 68년에 청와대공비침투사건을 계기로 만들었다고 한다. 결국에는 민중들을 군대처럼 반항하지 못하게 시키면 무조건 복종하는 ‘영혼 없는 인간’ 만들기 계획이었던 것 같다. 범죄예방을 이유로 세계에서 유일하게 모든 국민을 상대로 열손가락 지문과 주민번호로 모든 개인정보를 전산망으로 관리(?)하는 한국은 범죄율이 세계에서 가장 낮아야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수집된 개인정보들이 범죄를 부추기고 있지 않은가?

출생신고를 하는 순간부터 생겨난 [주민등록번호](이하 주민번호), 마법의 숫자인 주민번호만 입력하면 모든 개인정보를 알 수 있다. 한번 새겨진 번호는 바꿀 수도 없기에 유출되면 대책이 없다. 그리고 얼마나 정부가 허술하게 관리하는지 인터넷에서 주민등록번호생성기부터 관공서에서 수차례 노출시킨 사고들이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으며,  중국에서는 한국인의 주민등록번호를 가지고 장사를 한다고 한다. 주민번호의 70%는 유출되어 있다는 말이 들려서 불안한 마음에 혹시 내 번호도 유출되었는지 궁금해서 [주민번호유출확인서비스] 홈피에 가봤다. 그런데 돈 내야하고 [청소년증] 등은 안 되고 주민증, 운전면허증 등을 팩스로 보내라는 등의 까다로운 절차를 요구한다. 어휴... 이런 것도 기업한테 맡겨둬서 돈벌이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안타깝다. 남은 내 정보를 마음대로 보는데 내가 내 정보를 확인하는 것은 어렵다니... 이거야 소설[1984]에 나왔던 빅브라더의 한국판 아닌가? 지문날인도 마찬가지 아닐까? 수사할 때 찍고, 학교 갈 때도 찍고, 전화기 등에도 찍고 해서 내가 어디로 오고 가는지 감시하려 할 것이 아닌가? 그렇게 주민번호, 지문날인을 모아 둔 [주민증]을 찍는 것이 양심이 계속 찔렸다.

다행히 정보인권운동단체인 [진보네트워크]가 있었다. 이곳에서 꾸준히 정보인권침해의 근거에 대해서 설명을 들을 수가 있었다. 국내에서는 96년의 플라스틱 주민등록증으로 일제히 갱신하는 과정에서부터 수 백 이상의 사람들이 갱신을 거부하고, 대체신분증으로 자신을 증명하는 불복종을 해왔다고 한다. 2006년 평택평화대행진에 참가했던 청소년이었던 [김자현]씨는 경찰이 유치장에서 강제로 지문날인을 시도하려고 하자, 자해를 하면서까지 거부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은행, 교육기관, 관공서 등에서 주민증을 요구하는 곳이 참 많았다. 그래서 나는 정보인권활동단체 [진보네트워크]에 연락을 했다. 그래서 정보인권활동가들을 상담한 결과는, 대체신분증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법적으로 효력이 있는 신분증은 [여권]과 [운전면허증]이 있는데, 면허증은 쉽지 않으니 여권을 만드는 것으로 결정 났다. 그래서 설날 연휴 전날에 마치는 시간인 5시30분 경 시청여권담당 직원들한테 찾아가서 여권발급을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몇 번이고 찾아가고 전화를 하고 했음에도 되지 않아 서울에 비싼 차비(5~6만원)를 들여가며 진보네트워크를 찾아가기도 했다. 동사무소에서 어느 (공무원노조 조끼를 입은) 공무원한테도 따지고, 외교통상부에 질의를 하며 거의 한 달이 가까이 되어 그렇게도 그리웠던 [여권]을 발급 받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지문도 안 찍고, [주민증]도 없이 살아가고 있다. 열심히 지문날인거부운동을 했던 여러 활동가들이 있었기에 여러모로 가능했다.

그렇지만 아직 안심하진 못하고 있다. 몇 주 전 징병검사 때문에 병무청에 전화 상담 중에 주민등록증이 없다는 말을 하자 거의 협박 수준의 말을 했다. [주민등록법]을 들이대면서

“대한민국 국민이 주민등록증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라는 말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주민증으로 국민-非국민을 가르는데 그대로 전염되어 있는 사람들이 많았고. [대안학교]라는 고등학교에서도 저렇게 거의 협박수준의 말을 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는 기억이 났다. 교육이 끊임없이 두발, 체벌, 입시교육 등의 수 많은 복종을 가르쳐서 결국 이렇게 많은 ‘자발적 복종’을 하는 사람을 길러내는 모습에서 말이다.

그리고 운전면허시험장에 [안전교육] 받으러 갔는데, 대리출석 방지 등을 내세우며 의무적으로 본인증명을 위해 찍도록 했다. 당시 시작 시간에 거의 맞춰서 갔기에 겨를도 없어서 지문을 찍고 들어갔다. 하필 전화를 안 받으셔서 나올 때도 찍고야 말았다.

제기랄.. 기분이 나쁘다. 하지만 곧 흥분을 가라앉혔다. 이미 노출되어 악용되고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내 주민번호, 거의 매일 찍히는 CCTV 등이 있으니 말이다. 

도대체 한국에서는 언제쯤 지문날인이 폐지되고, 주민번호가 폐지되고 사회보장번호제도로 대체되어 아주 특수한 경우에만 최소한의 정보를 수집하는 것으로 쓰이는 날이 언제 쯤 올 것인가? 비교적 인권선진국들이라 불리는 나라처럼 결국 피해받고 있는 사람들이 오랜 저항을 통해서야 권리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정규직, 입시교육, 두발규제, 체벌, 광우병 소고기, 공공재를 사유화시키려 하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실시하려는 자본주의를 철폐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평화는 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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