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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8/14
    네번째 오이김치담구기(3)
    찌니
  2. 2008/08/17
    오키나와 평화행진 참가기 (4)
    찌니
  3. 2008/08/17
    오키나와 평화행진 참가기 (3)
    찌니

네번째 오이김치담구기

누구는 복(?)도 많아서 친정과 시댁에서 김치를 무한제공해주는 자가 있는 반면

나는 요리솜씨 별로 없는 두 엄마를 둔 덕에 (ㅎㅎ죄송 ^___^*)

김치구경은 거의 못하고 사는데,

안되면 말고, 있는 것으로 때우자는 주의를 갖고 있는 남편과 나는

복많은 후배네 어머님의 김치를 또 재분양 받아 얻어먹고 살았다.

뭐 주기로 한 날짜가 있는 것도 아니니 주면 고맙고, 한동안 안주면 ㅠㅠ 할수 없지.

 

혼자 집에서 점심 한끼는 반. 드. 시. 면으로 때우는 남편은

나보다 늘 더욱 김치 걱정이 태산이다.

그러던 어느 여름 오이김치는 좀 쉽겠다는 막연한 생각에

오이김치 담구기를 시도했다.

부추도 함께...(부추 씻는 일은 아주 큰 일이지만...)

 

굳이 레시피도 필요없고, 계량컵도 필요없고,

오이를 썰어서 절인다음 (기양 맛보고 좀 짜다 싶으면 씻어 헹군다)

대충 집에 있는 고추가루 (분가할 때 시어머니가 싸주신 건지, 누구한테 얻은 건지 불분명한)와

마늘 (찧은 마늘은 시어머니가 항상 제공해주신다)  파 등등에다가

살짝 카나리액젖 (이건 왜,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르겠다) 을 소심하게 뿌린 후

버무리고는 실온에서 하루는 놔둔 뒤에 냉장고에 넣었다. 

뿌듯하면서도 조마조마... 하게 하루를 더 기다렸다가 꺼내먹었더니 

우와~~~~ 대 성공!!! 우린 해냈어... 

 

첫번째 성공에 힘입어 한두달 후 다시 시도했다.

역시 대충 생각나는 대로 지난 번 기억을 살려 어찌구저찌구...

이번엔 부추 씻는 게 너무 구찮아서 오이만 담궜다.

이틀이 지난 후에 꺼냈더니 우엑~#$%^&!! 켁!!!

너무 짜다못해 쓰다... 지난 번 너무 소심했던 카나리 액젖을 너무 많이 부었다 싶었는데...

먹을 수 없는 오이김치를 바라보다 버리긴 너무 아까워서 고심하다

생각끝에 부추 두단을 사다가 (씻는데 목욕탕 전체가 부추들의 반란이었다) 넣었다.

그래도 들은 건 있어서 오래 묵히면 먹을만 하겠다는 생각에

한 일주일을 방치했다.

먹어볼까? 상의하다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김치통을 열었다.

잉? 오이들은 속이 다 삭아서 껍데기만 남아있고, 이건 오로지 아주 푹 익은 부추김치이다.

뭐 어쩔 것이여... 버릴 수는 없고 그래도 먹어야지. 내가 한건데...

아끼고 아껴서(???) 두달만에 겨우 먹고는 일단 포기.

일년쯤 지나 또 한번의 시도가 있었으나 너무 조심해서 그런지 

특별한 문제는 없었으나 참으로 별 맛은 없는 오이김치

 

요즘들어 그 후배의 김치도 가뭄에 콩나듯 쪼끔씩만 전해지고 ㅠㅠ

시장 반찬가게에서 그나마 달지 않은 김치를 찾아 두번 사다 먹었다.

그러다가 김치 없이 일주일을 보낸 남편이 참다못해 항의한다. 김치먹고 싶어!!!

무지하게 더웠던 지난 일요일, 큰맘먹고 시장에 가서 오이를 샀다

뭐... 늘 조금씩 담구긴 했지만  한두번의 실패에 더 소심해져서 (그리고 까먹었다. 얼마나 담궜었는지)

오이 12개를 사다가 3개는 무쳐먹으려고 두고 9개를 잘라서 절였다.

이번엔 붉은 고추도 사다가 양파, 마늘이랑 같이 갈고, 고추가루, 액젖등을 넣어

온 집안과 온몸에 고추가루 범벅을 하면서 부추, 쪽파 등과 같이 넣어버무렸다.

하루를 밖에 두었다 냉장고에 넣어놓고 하루 지나면 먹기로 했다.

근데... 사실 남편도 나도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아서 인지 깜빡... 한 것이다.

그렇게 4박 5일이 지나고는 오늘 아침을 먹으려다 갑자기,

아!! 오이김치 먹자!! 그러게... 먹어야 되는데...

꺼내서 기대반 의심반 딱 입에 넣었는데...

흠~~~ 이맛이야~~~ 처음 담궜던 바로 그맛... 성공,성공!!!

근데 좀 너무 익었다... 빨리 먹어치워야겠는데???

 

또다시 먹어치워야 되는 애물단지로 전락한 오이김치~~~ 우...우...우...

그래도 집에 김치가 있으니 걱정은 덜었다.  나는 이제 김치담구는 게 두렵지는 않아졌다... ㅎㅎㅎ

뭐... 또 담글라 치면 맛은 장담 못하겠지만, 룰루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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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평화행진 참가기 (4)

 4.  5月18日(平和行進3日目) 평화행진 3일째

     현민대회

 10시 출발하여 기노완시의 해변공원에 도착했다. 해변공원 야외 공연장 입구에 짐을 내려 놓고 오자와상, 요오꼬상, 박정숙 일행은 후발대를 마중하러 나하공항으로 떠났다.

시간이 많이 남아 이시카와가 바닷가에 가서 맥주나 먹자고 했다. 미영이는 피곤하다며 짐을 지키겠다고 했다.

나머지는 나가이 상, 메구미 상과 함께 바로 옆 해변으로 가서 맥주를 마시며 쉬었다. 바다색이 정말 예뻤다. 해변에는 천막을 쳐놓고 나무의자와 테이블이 쭉 있었다.

그 중 한 칸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 이런 자리에 예약이 되어 있지 않다면 아무나 써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예약한 사람이 있다면 비켜줘야 한다고... 옆에서는 바비큐를 하고 있었다. 여기는 신청하면 바비큐 장비를 빌려준다고 했다. 우리도 그럴 수 있었는데, 너무 힘드니까...

 바닷가 산책을 하는 사람, 사진도 찍고, 인터뷰를 하기도 하면서 자유로운 시간 가졌다.

 12시에 도시락을 먹고, 1시반부터 행사 진행 준비를 했다. 그 때 후발대가 도착 (민정연, 정윤경, 고명원, 박진영)했다. 서울에서 보는 것 보다 더 반가웠다.

 매대를 펼치고 인천노동문화제 티셔츠와 뺏지, 인천CD를 판매하면서 오키나와 투쟁에 연대와 지지를 보냈다. 티셔츠에 요오꼬 상이 오키나와 신기지건설 반대. 라고 써주었다.

 선봉형과 광배를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판매하면서 호객행위 했다. 선봉형은 어설픈 일본어지만 아주 열심이었다. “티셔츠를 뜨겁게 살고 있습니다” (티셔츠를 싸게 팔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잘못 함) 뺏지를 빤쓰라고 하는 등 아주 갖가지 말 장난으로 주위사람들을 뒤집어지게 했다. 우리만이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었나보다. 우리에게 인터뷰를 요청한 기자들이 많았다. 

 오후 3시부터 사전행사가 진행되었다.

오키나와 음악팀이 한 팀 나와서 공연한 후 더늠의 풍물공연 10분하고 꽃다지가 노래 2곡(반격과 사람꽃)을 불렀다.

 사전공연이다 보니 행진대오가 계속해서 입장을 하고 있었고, 대오가 들어올 때 노래 중간인데도 안내 멘트를 했다.  객석은 반 정도 차있었다. 비가 오기 시작했다. 4시가 되어서 집회는 시작했다.

 영택이와 내가 대회 공식 참가자(게스트)로 되어 연설을 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통역을 맡은 준꼬 씨와 단상에 올라가 미리 앉아 있었다. 참, 한국에서도 드문 이런 일이 오키나와에서 있다니. 한국에서 누가 문화단체들을 이런 귀빈 대접을 한단 말인가...

 연설이 줄줄이 이어졌지만 연설자 당 5분간 발언을 하기로 되어 있는지 행진 둘째날 사회를 본 야기상이 젤 앞 중앙에 앉아 ‘1분’, ‘종료’ 등의 팻말을 들어올리고 있었고, 별로 늘어지지 않고 진행되는 편이었다. 

  동경에서 온 노조 위원장, 실행위원들, 국회의원, 무슨 단체 대표자들이 연설을 했다.

 그런데 행사를 진행하는 동안 특이하게도 무대위에서는 행사와 약간 무관하게 고등학생정도로 보이는 두 학생이 사진촬영을 하고 있었다. 한 사람이 예전 현민대회 흑백 사진을 A3 사이즈로 뽑아 들고 단상 옆이나 뒤에 서고 한 사람이 계속 사진 촬영을 했다. 객석에도 가서 사진을 찍고. 이들은 고교생 사진 창작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팀인데 기술자로 인정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팀이고, 뭔가 창작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어쨌든 사진기자는 한 명도 무대에 올라오지 못하도록 통제를 하면서도 이들의 행위를 허용하는 것은 또 매우 특이했다.

 나과 영택의 연설은 약 5분정도 였다. 준꼬상이 통역을 해주었는데 인사말과 소감, 지지 발언, 광주에 대한 이야기, 돌아가서 열심히 투쟁하겠다는 다짐, 감사의 인사, 그리고 구호로 마무리했다. 외국의 공식 연설은 우리가 유일했고 TV에도 나왔다고 한다.

 비는 흩뿌리듯 계속 내렸다. 태풍때문인데 바람도 많이 불어 좀 추웠다. 마지막 아필(선언문) 낭독 시 오키나와 음악팀이 다시 나왔고, 청년 대표가 앞부분은 생략하고 뒷부분 한 문단만 읽는 센스를 보였다. 집회를 정리하면서 음악팀이 같이 연주를 하고 인터내셔날가를 합창했다.

 단상에서 내려오니 이미 매대를 다 정리해 놓았고, 야마시로 상과 인사를 나누고 남은 티셔츠등을 행사 자원봉사자들에게 기증했다.

 서둘러 버스로 다시 이동했고, 사람들이 더 왔기 때문에 오자와씨와 몇 명이 택시로 이동하고 나머지는 버스로 숙소 도착했다. 오면서 이시카와가 저녁 식사 할 수 있는 식당을 예약했고, 에리꼬도 오기로 했다고 한다.

 숙소에서 10분 정도 걸어 주점에 들어가 자리잡았다. 모두 28명정도 되었다. 1인당 3천엔(3만원 정도)에 술은 무한 리필, 음식은 코스로 나오고 모자란 것은 더 시키면 계속 준다는 약간 뷔페같은 곳이라고 진짜 좋아했으나 요리의 속도가 너무 늦어 거의 깡술을 마시는 기분이었다. 특히 더늠이 몰려앉은 테이블은 요리가 나오자마자 30초도 안되어 바닥을 보였고, 모두 배가 고파 화를 냈다. 어쨌든 10시 경에 식당을 나와 숙소에 돌아와서는 2차 할 사람들은 라면 끓여 먹고 술마시고 하면서 또 하루를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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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평화행진 참가기 (3)

3. 5月17日(平和行進2日目・西コース) 행진 2일째 서쪽코스

 요미탄에서 카데나까지 10Km 카데나에서 동쪽 코스와 합류

 

 오전 7시 출발. 오자와상과 히나타상이 일찍 숙소로 오셔서 방에 짐을 풀어놓고는 같이 출발했다. 오늘부터는 이곳에서 묵을 예정이시다. 

 요미탄손 시청 앞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어제 공연 시간을 제대로 예측못해 늘어졌다고 생각했는지 오늘은 사전 공연이란다. 부랴부랴 더늠 치배들은 옷을 갈아입고, 사민당 방송차 앞에서 풍물공연을 했다. 역시나 풍물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지 중간에 끊으라고 하여 또 약간의 당혹스런 상황이 발생하였다. 

 이후 꽃다지가 두곡을 불렀는데 하나(꽃)라고 오키나와 민요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하나라는 곡은 7,80년대 활동가들이 잘 아는 노래라 오자와씨와 치바나 쇼이치씨를 비롯한 활동가들이 따라 불렀다.

 야기 상의 사회로 집회가 시작되었는데 여러 사람이 나와 연설을 했다. 사민당 후보인 사토루씨와 오키나와 출신 국회의원 등.

 오자와씨는 20년 전에 오키나와에 한 번 온 적이 있었다고 하신다. 그러나 최근까지 동경에서 헤노꼬 투쟁 지지집회를 방위성 앞에서 매주 한 번씩 하는데 이 집회에 연대를 계속 해와서인지 자세히 알고 계셨고, 덕분에 많은 이야기를 해주시면서 이해를 도와주셨다. 

 요미탄 시청이 있는 자리는 예전에 미군기지였는데, 시장을 포함한 지역주민들이 열심히 싸워서 결국은 반환이 된 땅이라고 한다. 그 때 시장을 지내며 끝까지 투쟁한 분이 현재 국회의원인데, 이 날 연설을 하셨다고, 매우 재밌게 연설을 잘 하는 것 같았다. (정광훈 의장님과 비슷)


 

9시가 조금 넘어 행진을 시작했다. 대오 제일 앞에 별모양으로 큰 상징물을 만들고 거기에 반전평화라고 써서 수레로 끌고 갔고, 또 황소의 탈을 쓴 사람도 있었는데, 어떤 의미인지는 잘 알 수 없으나 사민당 후보인 사토루 씨가 그 소를 끌고 갔다.

어제와는 달리 아이들을 데리고 온 주민들도 많았고, 한적하고 벌판이 펼쳐져 있는 기분좋은 길로 행진을 시작했다. 아이들은 곧 엄마 아빠에게 안기거나 업혀서 갔는데, 그 엄마 아빠들이 끝까지 행진을 계속 했다. 정말 대단한 의지, 체력이다. 

 카데나 근처로 가면서 오키나와에서 가장 큰 카데나 미군기지 철망을 따라 계속 걸었는데, 정말 길게 계속되는 철망을 보며 걸어야 하는 것은 괴로웠다. 그러니 상점하나 보기도 힘들고, 맥주 한 캔을 못사먹었다는 거...


 역시 기차박수, 8박자 구호 등을 외치며 걷는데 오늘은 일본인들도 구호를 많이 외쳤다. 주로 오키나와의 신기지 건설 반대, 000 반대등의 구호가 많았는데 앞부분은 어쩌구저쩌구 하다가 뒷부분 한따이! 만 따라 할 수 있었다. 그래도 뭐, 같이 동참하는 의미이니까...

 히나타 상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구호를 외치자 많은 오키나와, 일본인들이 따라했다. 목소리가 정말 끝내준다.

 한참을 걷다보니 역시 우익이 출현했다. 우익은 항상 행진대오 우측에 출현한다. 어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차량(7~8대)이 정말 시끄럽게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정말 시끄러웠다. 하지만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우리만 또 씩씩거리고...

 오자와씨의 이야기에 따르면 동경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동경에서는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충돌이 일어나기 때문에 경찰이 우익을 통제한다고 했다. 이시카와에게 풍물을 치면서 가자고 했다. 우익들 소리가 안 들릴테니 신나게 풍물치며 가자고. 이시카와가 우리차의 기사아저씨께 전화를 했다. 차가 막혀서 그런지 금방 온다고 했는데 도통 나타나질 않는다. 11시쯤 휴식을 위해 어딘가 주차장으로 들어가자 우익 차들이 에워싸고 난리가 났다. 다시 출발하려 하는데 그 때서야 우리버스가 도착했다. 잽싸게 악기를 내려서 메고 풍물을 치면서 대오를 따라갔다. 이시카와는 “재밌다”고 한다. 우익들이 출현했지만 우리의 풍물소리가 더 컸고, 대오 앞쪽과 뒤쪽으로 인도를 따라 왔다갔다하면서 풍물을 치지 몇몇 사람들이 웃으면서 우리에게 박수를 보냈다.

우익들은 몇 번 왔다갔다 하더니 도저히 안되겠다고 판단했는지 사라졌다. 우리는 나름 의기양양해 하며 오후엔 더 신나게 쳐보자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쨌든 그 덕분인지 어제보다 걷는 게 힘들지 않았다.



 그러나 점심 식사를 하고 난 뒤 이시카와가 와서 주최측에서 우익에 대해서는 무시가 기본 입장이라고 하며 어떤 식으로든 대응을 하는 것은 안된다고 했다고 한다. 특히 인도로 올라가는 일은 충돌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절대 안된다고...

 점심 이후 출발할 때 잠깐 풍물 공연을 하고, 다시 행진 시작하면서는 악기를 차에 실었다. 지루한 오후 행진... 우익들은 다시 나타나 계속 떠들어 댔다.(유턴을 해서 왔다 갔다 하며 계속 방해함) 기지 입구에서 잠시 항의집회를 했다. 그냥 서서 구호만 열댓번 외쳤다. 

정리집회 장소인 아메리카 타운의 공원입구까지 거의 다 와서 행렬이 멈추었다.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지만 마침 가게가 있어서 맥주나 사자고 들어가려는데 이시카와가 우익들이 있기 때문에 따로 행렬과 떨어지면 안된다고 해서 포기하고 앞쪽으로 가봤다. 그랬더니 우익들이 흥분해서 차량들로 공원 입구를 막고 있었다. 경찰이 출동을 하고 우익 몇 명이 대오 쪽으로 달려들려 하자 자기네 일행들이 말리는 그런 모양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충돌이 생길 뻔 했던 거 같다. 

 우리일행은 무시라는 전술이 가장 힘든 전술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며 지쳐 있었지만, 오키나와인들과 행진 대오들은 익숙한 듯 보였다. 만약 문제가 생겼다면 36년을 지속해 오지 못했을 것이고, 충돌을 하거나 하면 바로 경찰이 출동하여 잡아간다고 했다. 어쨌든 5.15 평화행진을 해마다 계속 진행하는 것에 더 중점을 둔 방침일 것이다. 뭔가 끈질기게 버텨온 힘이 있긴 있는 듯도 하다.

 

공원에 들어서자 팥죽(?)과 음료, 사탕을 나눠준다. 동코스 (어제 헤노꼬부터 걸어 내려온) 사람들을 기다리는 동안 바닷가를 잠시 산책하며 산호를 줍기도 했다.

 그러다가 맥주라도 먹고있자는 제안에 더늠의 세움이와 정기가 사러갔다. 그런데 간지 삼사십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한참을 걱정하던 이찬영이 찾아다니고 했으나 못찾았다. 큰일이다 싶어 다시 몇 사람이 찾으러 가려는데 나타났다. 길을 잃고 헤맸으나 결국은 그래도 스스로 찾아온 것이 다행이다.

 뒷부분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정리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시카와상이 급하게 공연 팜플렛 원고를 보내줘야 한다고 먼저 출발하자고 하여 버스로 이동했다. 가까운 휴게소 피씨방 앞 공터에서 이시카와가 작업을 마칠 때까지 30분 가량 기다리면서 휴식을 취했다.

 숙소에 도착하니 7시. 메구미 언니와 나가이 상이 와 계셨다. 메구미언니는 일찍 도착했지만 어차피 행진대로에 결합할 수 없으니 몇군데 관광을 했다고 한다. 언니도 오키나와가 처음인데 건물도 경치도 전부 너무 이국적이라고, 여기는 확실히 일본이 아니라고 했다.  

 밤 9시 40분쯤에 빨래를 돌려놓고 (한 번 돌리는데 100엔이다) 조성일, 박미영, 이찬영, 김영택, 이은진, 메구미, 요오꼬 상이 함께 극장 답사 갔다. 극장은 숙소에서 시장길로 10분 정도만 걸으면 되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영화극장이기 때문에 조명도 별로 없고, 음향은 따로 셋팅을 한다고 했다. 예상대로 무대는 상당히 좁았다. 그러나 현장에 강한 우리 아니던가... 어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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