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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평화행진 참가기 (3)

3. 5月17日(平和行進2日目・西コース) 행진 2일째 서쪽코스

 요미탄에서 카데나까지 10Km 카데나에서 동쪽 코스와 합류

 

 오전 7시 출발. 오자와상과 히나타상이 일찍 숙소로 오셔서 방에 짐을 풀어놓고는 같이 출발했다. 오늘부터는 이곳에서 묵을 예정이시다. 

 요미탄손 시청 앞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어제 공연 시간을 제대로 예측못해 늘어졌다고 생각했는지 오늘은 사전 공연이란다. 부랴부랴 더늠 치배들은 옷을 갈아입고, 사민당 방송차 앞에서 풍물공연을 했다. 역시나 풍물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지 중간에 끊으라고 하여 또 약간의 당혹스런 상황이 발생하였다. 

 이후 꽃다지가 두곡을 불렀는데 하나(꽃)라고 오키나와 민요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하나라는 곡은 7,80년대 활동가들이 잘 아는 노래라 오자와씨와 치바나 쇼이치씨를 비롯한 활동가들이 따라 불렀다.

 야기 상의 사회로 집회가 시작되었는데 여러 사람이 나와 연설을 했다. 사민당 후보인 사토루씨와 오키나와 출신 국회의원 등.

 오자와씨는 20년 전에 오키나와에 한 번 온 적이 있었다고 하신다. 그러나 최근까지 동경에서 헤노꼬 투쟁 지지집회를 방위성 앞에서 매주 한 번씩 하는데 이 집회에 연대를 계속 해와서인지 자세히 알고 계셨고, 덕분에 많은 이야기를 해주시면서 이해를 도와주셨다. 

 요미탄 시청이 있는 자리는 예전에 미군기지였는데, 시장을 포함한 지역주민들이 열심히 싸워서 결국은 반환이 된 땅이라고 한다. 그 때 시장을 지내며 끝까지 투쟁한 분이 현재 국회의원인데, 이 날 연설을 하셨다고, 매우 재밌게 연설을 잘 하는 것 같았다. (정광훈 의장님과 비슷)


 

9시가 조금 넘어 행진을 시작했다. 대오 제일 앞에 별모양으로 큰 상징물을 만들고 거기에 반전평화라고 써서 수레로 끌고 갔고, 또 황소의 탈을 쓴 사람도 있었는데, 어떤 의미인지는 잘 알 수 없으나 사민당 후보인 사토루 씨가 그 소를 끌고 갔다.

어제와는 달리 아이들을 데리고 온 주민들도 많았고, 한적하고 벌판이 펼쳐져 있는 기분좋은 길로 행진을 시작했다. 아이들은 곧 엄마 아빠에게 안기거나 업혀서 갔는데, 그 엄마 아빠들이 끝까지 행진을 계속 했다. 정말 대단한 의지, 체력이다. 

 카데나 근처로 가면서 오키나와에서 가장 큰 카데나 미군기지 철망을 따라 계속 걸었는데, 정말 길게 계속되는 철망을 보며 걸어야 하는 것은 괴로웠다. 그러니 상점하나 보기도 힘들고, 맥주 한 캔을 못사먹었다는 거...


 역시 기차박수, 8박자 구호 등을 외치며 걷는데 오늘은 일본인들도 구호를 많이 외쳤다. 주로 오키나와의 신기지 건설 반대, 000 반대등의 구호가 많았는데 앞부분은 어쩌구저쩌구 하다가 뒷부분 한따이! 만 따라 할 수 있었다. 그래도 뭐, 같이 동참하는 의미이니까...

 히나타 상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구호를 외치자 많은 오키나와, 일본인들이 따라했다. 목소리가 정말 끝내준다.

 한참을 걷다보니 역시 우익이 출현했다. 우익은 항상 행진대오 우측에 출현한다. 어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차량(7~8대)이 정말 시끄럽게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정말 시끄러웠다. 하지만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우리만 또 씩씩거리고...

 오자와씨의 이야기에 따르면 동경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동경에서는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충돌이 일어나기 때문에 경찰이 우익을 통제한다고 했다. 이시카와에게 풍물을 치면서 가자고 했다. 우익들 소리가 안 들릴테니 신나게 풍물치며 가자고. 이시카와가 우리차의 기사아저씨께 전화를 했다. 차가 막혀서 그런지 금방 온다고 했는데 도통 나타나질 않는다. 11시쯤 휴식을 위해 어딘가 주차장으로 들어가자 우익 차들이 에워싸고 난리가 났다. 다시 출발하려 하는데 그 때서야 우리버스가 도착했다. 잽싸게 악기를 내려서 메고 풍물을 치면서 대오를 따라갔다. 이시카와는 “재밌다”고 한다. 우익들이 출현했지만 우리의 풍물소리가 더 컸고, 대오 앞쪽과 뒤쪽으로 인도를 따라 왔다갔다하면서 풍물을 치지 몇몇 사람들이 웃으면서 우리에게 박수를 보냈다.

우익들은 몇 번 왔다갔다 하더니 도저히 안되겠다고 판단했는지 사라졌다. 우리는 나름 의기양양해 하며 오후엔 더 신나게 쳐보자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쨌든 그 덕분인지 어제보다 걷는 게 힘들지 않았다.



 그러나 점심 식사를 하고 난 뒤 이시카와가 와서 주최측에서 우익에 대해서는 무시가 기본 입장이라고 하며 어떤 식으로든 대응을 하는 것은 안된다고 했다고 한다. 특히 인도로 올라가는 일은 충돌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절대 안된다고...

 점심 이후 출발할 때 잠깐 풍물 공연을 하고, 다시 행진 시작하면서는 악기를 차에 실었다. 지루한 오후 행진... 우익들은 다시 나타나 계속 떠들어 댔다.(유턴을 해서 왔다 갔다 하며 계속 방해함) 기지 입구에서 잠시 항의집회를 했다. 그냥 서서 구호만 열댓번 외쳤다. 

정리집회 장소인 아메리카 타운의 공원입구까지 거의 다 와서 행렬이 멈추었다.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지만 마침 가게가 있어서 맥주나 사자고 들어가려는데 이시카와가 우익들이 있기 때문에 따로 행렬과 떨어지면 안된다고 해서 포기하고 앞쪽으로 가봤다. 그랬더니 우익들이 흥분해서 차량들로 공원 입구를 막고 있었다. 경찰이 출동을 하고 우익 몇 명이 대오 쪽으로 달려들려 하자 자기네 일행들이 말리는 그런 모양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충돌이 생길 뻔 했던 거 같다. 

 우리일행은 무시라는 전술이 가장 힘든 전술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며 지쳐 있었지만, 오키나와인들과 행진 대오들은 익숙한 듯 보였다. 만약 문제가 생겼다면 36년을 지속해 오지 못했을 것이고, 충돌을 하거나 하면 바로 경찰이 출동하여 잡아간다고 했다. 어쨌든 5.15 평화행진을 해마다 계속 진행하는 것에 더 중점을 둔 방침일 것이다. 뭔가 끈질기게 버텨온 힘이 있긴 있는 듯도 하다.

 

공원에 들어서자 팥죽(?)과 음료, 사탕을 나눠준다. 동코스 (어제 헤노꼬부터 걸어 내려온) 사람들을 기다리는 동안 바닷가를 잠시 산책하며 산호를 줍기도 했다.

 그러다가 맥주라도 먹고있자는 제안에 더늠의 세움이와 정기가 사러갔다. 그런데 간지 삼사십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한참을 걱정하던 이찬영이 찾아다니고 했으나 못찾았다. 큰일이다 싶어 다시 몇 사람이 찾으러 가려는데 나타났다. 길을 잃고 헤맸으나 결국은 그래도 스스로 찾아온 것이 다행이다.

 뒷부분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정리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시카와상이 급하게 공연 팜플렛 원고를 보내줘야 한다고 먼저 출발하자고 하여 버스로 이동했다. 가까운 휴게소 피씨방 앞 공터에서 이시카와가 작업을 마칠 때까지 30분 가량 기다리면서 휴식을 취했다.

 숙소에 도착하니 7시. 메구미 언니와 나가이 상이 와 계셨다. 메구미언니는 일찍 도착했지만 어차피 행진대로에 결합할 수 없으니 몇군데 관광을 했다고 한다. 언니도 오키나와가 처음인데 건물도 경치도 전부 너무 이국적이라고, 여기는 확실히 일본이 아니라고 했다.  

 밤 9시 40분쯤에 빨래를 돌려놓고 (한 번 돌리는데 100엔이다) 조성일, 박미영, 이찬영, 김영택, 이은진, 메구미, 요오꼬 상이 함께 극장 답사 갔다. 극장은 숙소에서 시장길로 10분 정도만 걸으면 되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영화극장이기 때문에 조명도 별로 없고, 음향은 따로 셋팅을 한다고 했다. 예상대로 무대는 상당히 좁았다. 그러나 현장에 강한 우리 아니던가... 어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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