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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01/25
    독립-2편,독립아닌 독립
    조이
  2. 2008/01/25
    독립-1편,독립전
    조이

독립-2편,독립아닌 독립

화장실 다녀와서 2편,

원래 1주일에 2번 정도밖에 안가는 화장실을

이번주는 매일 간듯하다-_- 그것도 매일 후 4시쯤.

아무래도 맨날 점심 과식한게 원인인가-

마구 밀려 나온다.

덕분에 몸이 가뿐해져서 저녁도 많이 먹게 되니 악순환-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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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얘길 이어서 좀 하면,

가끔씩 서울에서 하는 집회나 교육에 갔다가 뒷풀이라도 할라치면 당연히 집에 못가고,

방학 때는 현장활동 준비한다고 오히려 외박이 더 잦아지니

이제 집에선 아얘 포기하고 내가 들어오는지 안들어오는지 별로 안궁금하게 되었는데,

문제는 나,,였다.

집에 갈/ 갈 수 있는 날도 있는데 집이 너무 멀다고 느껴서 집에 안가는 날이 증가하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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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좋게 1학년 2학기에 기숙사에 퇴실자가 생겨서 기숫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때부턴 서울에서 뒷풀이를 하면 당연히 수원에 안갔고,

학교앞에서 뒷풀이를 하면 새벽에 기어들어가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학교는 같은 방 아이들의 도움으로 어찌어찌 출석은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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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이 되어서 성적이 모자라서 기숙사에서 나오게 되었는데,

뭐 1학년 2학기도 자리가 비어서 운좋게 들어간 것이지 성적이 좋아서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그리하여 통학 못하겠다고 완전 버티면서 집에서 투쟁,,(?!)을 시작했는데,

아빠는 나가 사는건 허락할 수 없다며 왠걸, 덜컥 차를 사주셨다.

집에 좀 들어오라는 뜻으로....였을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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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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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부르주아의 자식이었던 것이다.

그깟 차 한대 쉽게 사줄 수 있는!! 그런 형편은 아니었지만,

할부금 갚을 만큼은 되셨나보다...음...

그 이후 내 차는 학교 행사와 나의 활동에 꽤나 유용하게 쓰였다.

아, 연애에도 유용하게 쓰였구나-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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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 학기를 마치고 03년 여름을 보내고 나는 덜컥 휴학과 함꼐 어학연수를 갔고,

1년이 지나 돌아와서는 04년 가을에 무릎 연골이 찢어져 수술을 하는 대형 사고를 쳤는데,

엄마는 허벅지에서 발목까지 기브스를 한 나를 맨날맨날 나를 차 뒷자석에 가로로 싣고

아침에 학교 데려다 주고 저녁에 집에 데려오고 했어야 했다-

엄마는 슬슬 귀찮아서 짜증이 났고-_-나는 슬금 학교 앞에 집을 구해 나가살겠다 했고,

이듬해 본과에 진입하면 어차피 나가살게 되리라 생각하던것이 단지 몇달 당겨질 뿐이란 생각에서

부모님은 학교 앞에 13평 아파트를 구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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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듬해 난 진급하지 못했다-_-

그리하여 어영부영 집도 얻고 차도 얻은 것이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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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혼자 나가살게는 되었는데,

집을 사주신 것도 부모님이고, 생활비의 절반이상을 부모님께 얻어쓰는 입장에서

그것은 독립이 아니다.

게다가 난 나가 살게 된 그당시에 선배의 자살과 본과 진입 실패로 매우 unstable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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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1월에서 2006년 12월까지 약 2년간 나는 그집에 혼자 살았다.

청소는 커녕 쓰레기도 자주 비우지 않고 설거지도 제때 안해서

나는 종종 다른 생물, 미생물들과 동거하는 상태였다.

혼자 있는게 힘들거나 버거울 때 나는 부모님 집에 가거나 애인을 불러들였다.

연애하는 동안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집에 혼자 있는 동안 나는 완전하게 우울했다.

조울증도 좀 있었고 약을 먹기도 했으며 담배는 날로 늘었다.

내 생활은 전혀 독립한 성숙한 홀로 선 누군가의 것이 아니었다.

혼자 산다고 독립은 아니다.

나는 혼자 지내는 것이 힘들었다.

나는 그저 학교 앞에 살고 싶은 것 뿐이었다.

부모님이 수원으로 이사 오신다면 다시 부모님집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는 생각도 했다.(진짜?)

지금도 수원집을 떠올리면 내 자신이 짠하다.

다신 그렇게 살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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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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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1편,독립전

진보넷으로 블로그를 옮긴 이후로

블로그 홈 첫 페이지에 왼쪽 위부터 주르륵 있는 새 글을 눌러보곤 하는데,

그러다가 글이 재밌어서 그 사람 블로그의 글을 주르륵 읽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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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왠지 성격이 그게 아닌지라 덧글 같은 건 안 달고 그냥 눈팅만 하는데-_-

다른 사람들도 내 글을 눈팅만 하고 가는지도 모른다.

방문자 수는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올라가지만 정작 덧글은 하나도 없는 지금의 상태로는,

진짜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본 것처럼 방문자 수 기록이 진보 블로그의 음모일지도-_-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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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를 둘러보다가 몇몇군데에서 화두는 '독립'인 것 같은데,

나도 독립''을 좀 생각해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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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고를 모두 학교에서 10분이내 거리에 살았던 나로서는,

(심지어 수원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분당으로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

부모님은 당연히'' 분당으로의 이사를 감행하셨더랬다, 동생이 불만이 많았지..)

대학에 왔는데, 버스 두번 갈아타고 1시간 넘게 걸리는 통학거리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었다.

내친구 중엔 대학 4년을 꼬박 우리동네(용인)에서 태릉까지 통학한 애도 있으니,

난 좀 반성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원체 아침잠도 너무 많은 올빼미 라이프 스타일의 나에겐 진정 통학은 고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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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학교를 자주 지각하고 가끔은 아얘 안갔다-_-

엄마한테는 수업이 없다고 거짓말을 했지;;;

의대 특성상 시간표는 짜여져서 나오기 때문에 거의 늘 9시 수업이 있었고

덕분에 난 가끔 수업일수가 간당간당할 정도로 학교를 안갔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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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박에 대해선 참, 우리집은 특이해서-

나는 종종 밤늦게 집에 아얘 안가도 되었다.

술먹고 친구네서 자고, 술먹고 선배네서 자고,

암튼 대충 술만 먹으면 안들어갔나보다;;

늦게 들어가는 날도 엄마는 안자고 기다리는 법이 없었다.

자기전에 전화해서는 내가 열쇠를 가져갔는지 확인하고

당신이 내가 늦게 들어오는데 문을 직접 열어주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안도하고는

그냥 주무셨다-_-

동아리 뒷풀이가 있는 날은 거의 늘 외박을 했다.

1학년 1학기에는 고정적으로 자는 선배네 집도 있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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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화장실이 급해지는 관계로 1편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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