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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평택 시청 앞에서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의 주민증 반납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 평택 시민이길 포기하겠다는 것을 선포한 것입니다.
마을 곳곳에 제단체나 개인들이 와서 지킴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대추 분교, 농협 창고에 벽화 작업이 한창이고, 최근에는 마을 공동 식당과 법률 사무소가 문을 열었습니다.
머잖아 PC방도 문을 열 예정입니다.
벌써 다가오는 일요일에 3차 평화 대행진이 열리네요...
평화 대행진도 중요합니다만, 그 이후에 대한 준비도 조금씩 논의되어야 할 때인듯 합니다.
강제 철거에 투입될 용역업체 선정 작업이 진행되고 있고, 인근 용인대 체육학부 학생들을 철거반원으로 섭외하는 중이라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대보름 이후에는 가장 먼저 마을 입구에 있는 찻집이나 지킴이네 집부터 강제철거가 시작될 거라는 이야기가 돌고 있구요.
지킴이네 집으로 포크레인이 들어오면 어떻게 막을까.
"쇠파이프로 포크레인을 부숴야지, 운전석부터!"
기껏 이런 소리를 입밖에 꺼냈다가 스스로도 흠칫 놀랐습니다.
평화를, 생명을 사랑한다는 말이 순 사기였구나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앞으로...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비폭력 평화 운동으로써 이 땅을 지켜가야한다는 대원칙에 따라 투쟁을 이어갈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곳을 지키러 온 이상 경찰에 연행되거나 구속을 당하는 것은 피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국유재산법 위반', '공무집행 방해죄'로 현장에서 투쟁하는 사람들은 가장 먼저 연행될테니까요.
그래서, 그 이후가 걱정입니다.
일선에 있는 사람들이 사라진 빈자리를 누군가가 와서 채워주지 않는다면, 이 싸움은 이길수가 없습니다.
농민들은 얼마전부터 고추 모종을 키울 흙을 상자에 담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봄에는 전국에서 농민들이 트렉터를 몰고 팽성 들판의 285만평에 모를 심으러 올거랍니다.
평택에서 기다릴게요.
국적을 포기한 평택주민들 | ||||||||||||
평택주민들 주민등록증 반납하던 날 이야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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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리에서의 첫 아침. 눈이 가득 내렸다. ‘니가 이사온 걸 환영하는 눈 인가보다’ 평화바람 오두희 언니가 앞마당 눈을 쓸며 말했다. 나도 이제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주민이 되었다는 생각에 조금은 설레는 아침이었다.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길을 조심조심 걸어 마을회관 앞으로 모였고, 주민들과 함께 평택시청으로 갔다. 오늘은 팽성주민들이 대한민국정부에 주민등록증을 반납하는 날이다. 주민등록증을 반납하고 이제 더 이상 대한민국 국민이 아님을 선언하러 가는 것이다.
평택시청앞에 사람들이 모였다.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해주신 평택시장님께 감사드립니다” 김지태 위원장님의 농담 섞인 말씀으로 기자회견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위원장님의 표정은 침통해 보였다. 주민등록증을 반납하기로 한 오늘, 주민들은 평택시장과의 면담을 요청했었다. 갯벌을 일구어 만든 농토를 주민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모두 국방부에게 내어준 평택시장과의 만남을 요청한 것이었다. 평택시장은 면담을 거부했다. 주민들과 할말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는 김지태위원장님 말씀대로 평택시장이 만든 자리이기도 했다. 평택시와 대한민국 정부는 주민들이 이렇게 싸울 수 밖에 없도록 끝간 데 없이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맛좋기로 이름난 평택쌀을 자랑하고 다닌다는 평택시장은 거친 바다가 기름진 옥토로 변하기까지 주민들의 대안 없는 노동을 상상이나 하고 있는 걸까. 그 땅에서 올해도 내년에도 농사짓고 살고 싶다는 주민들은 평택시장에게 ‘평택시민’이 아니었다. 주민들은 스스로 포기했다. 스스로 거부했다. 이제 더 이상 평택시민도 아니고 대한민국 국민도 아니다. 이제 대추리 주민들은 독립을 선언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주민들은 시청으로 들어가 주민등록증을 반납하려고 했다. 하지만 평택시는 그것조차 막아섰다. 평택시 직원과 경찰들은 문을 막고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시장실로 들어가기 위해 1시간동안 직원들에게 요구하고 몸싸움을 했지만 결국 주민등록증을 반납하지 못했다. 성난 주민들은 자신의 주민등록증을 불태웠다. 백성들을 짓밟고 제국주의 군대에게 땅을 내 주어 전쟁기지를 만드는 나라의 국민이기를 단호하게 거부했다. 주민등록증을 태우고 다시 한번 시장실로 들어가려 했지만 평택시청은 끝내 주민들의 의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같은 차에 타신 방승률 할아버지는 ‘서글프지만 어쩌겠어. 이제 정부나 시의 간섭 안 받고 살 수 있게 된 거지. 참다운 인생을 살려면 고향을 지켜야지’라고 말씀하셨다. 오늘도 어김없이 비닐하우스로 모여 525일째 촛불을 밝힌 마을주민들은 이제 독립선언을 했음을 확인했다. 이제 정부도 미군도 팽성주민들을 내쫓을 수 없다. 경찰이든 미군이든 마을에 들어오는 것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대추리는 춥다. 눈이 와서 더 추운걸까. 마을회관에는 ‘입춘대길’이 나붙었는데 눈이 하얗게 덮힌 황새울 들녘은 아직도 겨울이구나 싶었다. 내 마음을 아셨는지 이민강 할아버지가 한 마디 하신다. ‘봄눈은 빨리 녹는겨...’ 봄눈. 그래 봄눈이었다. 대추리에는 이미 봄이 왔고 황새울 들녘은 포근한 봄눈이 감싸고 있었다. 촛불집회에서 김지태위원장님이 말씀하셨다. ‘주민등록증 없어도 사는 데 하나도 지장 없어요. 동요하지 말고 불안해하지 말고 그냥 평온하게 살아가요’ 평온하게 살아가는 게 쉽지 않은 대추리에서 이렇게 살아가다 보면, 촛불 꺼뜨리지 않고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승리하는 봄이 올 것이다. 그리고 그 봄을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이 대추리로, 도두리로 모여야 한다. | ||||||||||||
* 진재연님은 사회진보연대 집행위원으로 지난 2월 6일부터 미군기지 이전을 막는 투쟁에 함께 하기 위해 평택 대추리 주민이 되었습니다. 진재연님은 이후에도 대추리 소식을 일기 형식으로 참세상에 꾸준히 알려올 예정입니다. | ||||||||||||
2006년02월08일 11:16:57 |
낮에 민변의 '법률 상담소' 개소식이 있었다.
주민들은 노인정에서 삼계탕을 끓여 점심밥을 대접하고, 풍물을 치면서 환영해주었다. 민변에서는 팥시루떡과 막걸리잔을 돌렸다. 상담소 안쪽은 청소도 채 끝나지 않았는데, 입구에서는 현판이 걸리고 플래쉬가 터지고 사람들은 다같이 박수를 쳤다. 어쨌든 중요한 건 간판이라는 사실이, 나라에 버림 받은 땅 대추리에서도 상식으로 통했다.
까짓거 내부 정리가 덜 끝나면 어떼?
오늘부터 변호사분들이 주말마다 대추리에 와서 주민들과 함께 한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닌가... 떡조각을 들고 가벼운 마음으로 동네 잔치를 구경하는데, 옆에 서있는 이장님댁 할머니의 말씀이 귀에 날카롭게 꽂혔다.
"......춤은 무슨 춤! 이기고 나면은 얼마든지 몽둥이춤이라도 추겠지만서두 지금은 춤 출 기분이 아녀..."
그래도 한쪽에서는 흥이 오른 할머니들이 춤을 추고 있었고, 떡 접시를 들고서 사람들에게 시루떡을 건네고 다니셨다.
며칠전에는 협의 매수를 한 사람이 포크레인을 동원해서 창고 하나를 통째로 뜯어 부수었다. 쇠로된 손처럼 생긴 기계가 양철판을 비롯한 고물들을 집어다가 트럭에 옮겨 실었다. '증거 자료 확보'를 위해서 그저 나는 사진만 찍었다. 건물 하나가 없어진 자리에 고물상도 포기한 쓰레기들만 남았다. 바로 앞집에 사시는 아주머니에게 그걸 보는 심경을 물었더니, '처참하지뭐'하고 대꾸하셨다.
음, 그렇지, 처참한거지.
'처참'이라는 단어를 듣고나니까, 비로소 처참하게 보인다. '굳은살이 박힌 가슴'에 '처참'이라는 단어를 새기고 돌아섰다. 그건 분명히 심각한 일이지만, 심각한 일들이 여기서는 평범한 일이란걸 이제는 대충 파악하고 있으니까. 창고 하나가 사라지는 것쯤이야 어쩌면 대수로운 일도 아니다. 설을 쇠고 돌아와 보니, 지킴이가 사는 집의 보일러 파이프가 모두 잘려져 있었다. 보일러를 통해서 데워진 물이 방바닥으로 흘러들도록 연결한 관을 누군가가 와서는 잘라놓고 간 것이다. 나날이 이런 더럽고 처참한 광경을 목도하면서 정신을 단련하고 있다.
대추리에 빈집이 또 하나 고쳐졌다.
발을 들이기도, 들여다 보는 것도 싫었던 집이 '아늑하고 따뜻한 공간'으로 바뀌어 가는 중이다. 사람들의 손길이 닿아 깨끗하고 밝은 기운이 밀려들고, 온기가 깃드는 걸 느낀다. 이장님댁 할머니 말씀을 듣기 전에는 사실 나도 춤을 추었다.
오늘은 기쁜 날이다.
찻집에 놀러오실 때 찻집에 오시는 분들과 같이 할 수 있는 꺼리를 가지고 오시면 좋을 듯해요...
대안생리대 만들기도 있고, 옷감 만들기도 있고, 다도라던가....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면 같이 이야기 해도 좋고 영화를 볼 수 있는 방도 있으니 같이 보고 싶은 영
화가 있다면 가지고 오셔도 좋아요...(6미리나 비디오에 한에서)
같이 읽고 싶은 책을 가져오셔서 책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인터넷으로) 감상을 서로 공유 할 수
도 있을 거 같구요...^0^
제가 미쳐 생각하지 못한 많은 것들이 있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꺼리를 준비하는 데 재료비가 든다면 찻집운영하는 사람과 연락을 해서 조율을 해도 좋아요...
(대신 찻집사정도 감안하셔야 합니다...)
꺼리를 준비해서 오신다면 미리 언지를 주시는 게 좋겠죠...
제 메일은 kjoom99@jinbo.net입니다. 이곳에 답글을 달아주셔도 됩니다...
다른 제안을 해주셔도 좋구요...
올해도 농사지어 보세~ 평화바람식솔들이 직접 짜 준 소중한 장식품입니다. 오디오도 생겼으니 이제 노래도 찻집에서 들을 수 있어요. 듣고 싶은 노래가 있다면, 나누고 싶은 노래가 있으면 찻집에 오실 때 시디도 함께... 옆에 따듯한 연탄난로도 있어요...
주전자를 난로위에 끓이니 가스비도 아낄 수 있어서 좋아요. 어제는 감자도 삶아먹고 오징어도 구워먹었어요...^0^ 집에 아껴 놓고 있는 먹을것들은 얼렁얼렁 찻집에 가져와서 같이 나눠먹었으면 좋겠어요.
찻집개업에는 찻집을 들린 사람들의 작품으로 가득합니다. 이 곳 대추리에 살고 있는 아이들이 만든것들도 있답니다. 아이들이 '미군기지 막아내요.'라는 말을 쓴 걸 보니 가슴 한 구석은 착찹했어요. 여느때는 정말 장난꾸러기가 따로없을 정도예요...가끔와서 차 한잔 마시고 설거지도 하고 청소도 하는 걸 보면 너무나 기특하답니다.
작은 화분은 인생의 별 사장님이 주신 거예요. 찻집에 세심한 배려에 항상 감사를 드립니다. 저 식탁보는 대안생리대 겉감입니다. 설날 지나고 대안생리대 만들기 교실을 한 번 열까 합니다. 찻집에는 피자매 연대 돕헤드도 단골손님이니까요...^0^
미군기지 확장반대 전등이 환하게 찻집을 밝히고 있네요...
찻집에 오면 이런 마실거리가 있습니다. (국화차, 장미차, 녹차, 메밀차)
이외에 보이차, 감잎차, 허브차, 홍차도 있어요...
커피는 지금 어떻게 계속 팔아야 하나 고민중이고요...ㅠㅠ
제가 손수 끓이고 있는 생강꿀차도 있습니다...
정성이 많이 들어갔는지 많이들 맛있다고 하네요...어제는 하루종일 생강꿀차를 달이느라 찻집에는 생강냄새가 가득했어요...
표지모델은 대추리에 살고 있는 자두입니다.
새로 생긴 하루일과는 찻집 열고 닫을 때 연탄 가는 일이예요. 처음에는 연탄갈다가 찻집바닥도 태워먹고 연탄을 몇 장 깨먹기도 했어요. 첫날은 연탄가스를 심하게 마셔서 목이랑 머리가 아프더라고요...연탄가스가 그렇게 독할 줄이야...ㅠㅠ
그나저나 이 위에다 양은도시락 올려놓고 밥먹으면 정말 맛있겠다...쩝쩝
“아줌마가 세계 최고 요리사에요?”
아이들에게는 그저 칼질을 잘하는 아줌마로 비쳤지만, 그는 바로 민주노동당 전 대표인 김혜경이었다. 이날 김혜경 전 대표는 강제철거를 앞둔 대추리에 ‘1일 지킴이’로 방문했다. 지킴이 안내소의 찻집에서 장미차를 마신 후, ‘유빈이네’의 집들이 소식을 듣고서 찾아 온 것이다. 거리낌없이 음식 준비를 거드는 그의 모습은 대추리의 여느 이웃집 아주머니와 다름없는 인상이었다.
여섯시가 조금 넘은 시각. 넓은 상도 없이 바닥에 명태전과 김치, 홍합탕과 마늘 장아찌, 오징어회가 차려졌다. 여기에 평택쌀로 지은 따뜻한 밥이 놓였다. 김혜경 전 대표와 평화바람 식구들과 노을이네, 마을주민들이 옹기종기 거실에 모여 앉아서 밥을 먹었다. 이유빈씨는 ‘차린 음식은 부족하지만 많이 와주셔서 기쁘다. 빈집마다 이렇게 사람들이 꽉꽉 찼으면 좋겠다.’고 수줍게 웃으면서 말했다.
촛불행사는 매일 저녁 일곱 시에 대추분교 앞 비닐하우스에서 열린다. 촛불행사장에 들어가보니 대책위에서 나눠준 초록색 담요를 허리에 두른 마을 주민들이 불 밝힌 초를 하나씩 앞에 두고 앉아 있다. 기름 난로를 켜두었지만 비닐 장판을 깐 바닥이 싸늘했다.
오백십일 일 째 행사가 시작되고 가장 먼저 문정현 신부가 나와서 발언을 했다. ‘대추리를 반미반전의 성지로 만들자, 끝까지 꿋꿋하게 싸우자, 이 싸움을 이겨서 기쁘게 소를 잡는 날을 기다리자’는 말에 주민들이 박수를 쳤다.
까만 모자를 쓰고 검정색 수도복을 입은 수녀님의 발언이 이어졌다. “1년동안 인터넷으로 평택 소식을 접했다. 수녀원에 오기전에 이사를 두 번 했었는데, 이사후에 늘 옛집이 그리웠고 그 동네에 가보고 싶었다. 지금 여러분은 하늘이 무너지고 세상이 캄캄한 마음이 아닐까.” 일일 지킴이로 대추리에 온 오영숙 수녀가 말문을 열었다. 그는 ‘미국이 우리나라에서 막강한 힘을 쓰는 걸 두고봐선 안된다. 평택 땅을 꼭 지켜내야 한다. 여러분의 힘이 결코 작은 힘이 아니다. 세상을 바꾸는 큰 힘이다. 무서운 일, 험한일이 앞으로 닥치더라도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이 땅을 꼭 지켜내자.’고 말했다.
주민들을 기쁘게 한 '손님’은 김혜경 민주노동당 전 대표였다. <평택 지킴이네>의 첫 번째 순례객인 그가 ‘음식 솜씨는 별로 없지만 대추리에 밥집을 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을 때, 주민들 모두가 환호했다.
촛불행사가 끝나고 주민들은 서리가 내리는 밤길을 걸어 집으로 향했다. <평택 지킴이네>로 가기 전에 평화바람은 오영숙 수녀, 김혜경 전 대표와 대추분교 정문 맞은편에 있는 찻집에 들러서 국화차를 마시며 짧은 대화를 나눴다. 연탄 난롯불을 쬐면서 이뤄진 인터뷰를 요약해서 덧붙인다.
- 3월 경에 강제 토지수용이 예상된다. 민노당에서는 이것을 막아낼 대책을 갖고있는가?
김혜경: 평택 문제가 중요하지만 실제로, 우선 사안으로 두지 못했다. 그러다 WTO에 참가한 이후에 정말 미국 문제에 전국민이 대응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의식을 갖게 되었다. 중앙에서 그런 분위기를 만들 필요가 있고, 여의도 쪽으로 이슈를 가져와서 정치 쟁점화할 계획이다.
-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싸움에 어떤 조언을 하고 싶은가?
오영숙: 지금 여기 군부대가 들어서면 주민들은 당장 땅을 빼앗기게 된다. 주위에서 살아가는 주민들도 소음피해나 미군 범제같은 문제를 겪을 것이다. 이것을 평택 주민들에게 알려야 한다. 새만금 반대 운동을 할 때, 3보 1배가 큰 힘이 되었다. 문화 예술인들이 관심을 갖는 것도 좋은데 일단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뭔가가 필요한 것같다.
김혜경: 어차피 미국 정부와의 싸움이고 미국과의 싸움이다. 아시아에서 미국주의를 반대하는 단위들과의 연대가 필요하다. 왜 한반도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가? 대만과 중국이 영토 문제로 싸울 때, 미국은 대만을 인정할 것이다. 미국이 그 싸움을 부추기고 군대를 파견하면 우리 군대도 뒤따르게 될것이다. 중국과 대만, 일본을 잇는 미국을 반대하는 평화활동가들과의 연대가 필요하다. 이라크에서 전개되는 반미평화 운동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아시아 민중세력들이 대화를 나눠야 한다. 여기 주민들만의 힘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 대추리에 와서 첫 느낌이 어뗐나? 촛불행사에 참여한 소감은?
오영숙: 전에 대추리에 처음 왔을때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학교 운동장은 어수선하고 플랜카드가 걸려 있고 전투현장같은 모습이었다. 오늘 촛불행사장에 가보니까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았다. 참여하는 분위기가 진지했다. ‘올해도 농사짓고 내년에도 농사짓자’는 그 구호가 너무 좋았다.
김혜경: 촛불행사장에 오니까 진지함과 활기가 느껴졌다.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고. 아는 사람들을 만날때는 반갑고.
- 여자분들이 오실 때랑 남자분들이 대추리에 오실 때는 확실히 뭔가 다른점이 있다. 김혜경 전 대표님은 사골을 가져오시고, 오수녀님은 김을 주셨다. 정말 감사하다. 앞으로도 자주 대추리에 와주셨으면 한다.
연탄난로도 생겼겠다...우리 연탄난로와 함께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답글을 달아봅시다...
그래서 자기가 하고 싶은 거 갖고 와서 같이 해요...^^
예를 들어 쥐포를 구워먹고 싶음 쥐포를 가져와서 같이 나눠먹는 거라던지...
많이 있자나요...^0^;; 홋홋
연탄난로가 대추분교 앞에 도착했다. 자전거를 몰고 부랴부랴 달려가 연탄난로를 찬찬히 살펴보며 살며시 웃었다. '드뎌 찻집에 연탄난로가...ㅠㅠ' 기자회견에 맞춰 부랴부랴 석유난로를 낑낑대며 찻집에 갖다 두었다가 다시 촛불집회장소에 갔다둔지 어언 일주일정도가 지나서였다.
훈훈해질 찻집을 생각하며 서둘러 연탄난로공사를 시작했다...사실을 거의 해x이 하는 것을 바라봤지만...연통을 끼우고 철사로 고정시키고 연탄을 넣어 불을 짚이기 시작했다.
연탄이 눅눅해서일까? 창고에 오래동안 방치해둔 습기 찬 연탄이라 그런지 번개탄에도 불은 쉽게 붙지 않았다. 그런 와중 벽화를 그리러 왔다 잠깐 들러 장미차를 마시던 분이 연탄을 보면서 하던 말이 "이거 꺼지겠다..." 흠~그래서 해x은 번개탄이 없는 관계로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나무를 줏어모아 장작을 피고 그 위에 연탄을 놓아 연탄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20여분이 지났을까 드뎌 불붙은 연탄을 집게에 꽂고서 부리나케 연탄을 집어넣기 시작했다..헤헤
해x은 연탄가스를 많이 마셔서 머리가 어지럽고 귀가 멍멍하다고 한다...아무래도 찻집에 연탄가스중독을 대비해서 동치미 국물을 갖다놓을까?
생각해보니 대추리와서 처음 한 게 너무 많은 거 같다...장작을 줏어나르고, 연탄을 연탄구멍에 집어넣고, 리어카에 사람도 끌고, 빈집에서 옷도 줏어입고 물건도 줍고...뭐니뭐니 해도 똥물튀는 푸세식화장실이 압권이다...ㅡㅡ;; 그 찝찝함이란...
공탄을 밑에 깔고 새연탄을 위에 얹으면서 연탄가스를 심심치 않게 마셨다...집게나 손을 통해서 방을 따듯하게 하는 물체와 접촉을 하는 것은 왠지 모르는 인간미가 있다.
자고 일어나 오전에 찻집을 가도, 촛불집회 끝나고 가도 찻집은 언제나 따듯하다...
난로 주위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수다는 시작된다...바느질이 이어진다...한잔의 차와 함께 오늘 하루도 이렀게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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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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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집이라고 하니 뭔가 좀 이상하네요.. 그만큼 세속적 때가 많이 묻었다는 뜻이겠죠. 찻집이 어느새 카페니 커피숍으로 불리더니 어느새 스타벅스라는 이름의 브랜드가 그것을 대신하는 세상에 이르렀으니..오..그때 그 시절 찻집을 되돌려주오..찻집은 우리네 정서가 고스란히 담긴 보통명사인걸 찻집을 찻집이라 부르지 않는 현실 세태.. 참 안타깝죠.쩝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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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리에 찻집에 생긴이후 대추리를 오고가는 젊은 양반들의 아지트?가 되었짐.. 계속 수고하시겡.. 주인양반.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