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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와 시력

  • 등록일
    2009/01/13 11:58
  • 수정일
    2009/01/13 11:58

일본 한신 타이거즈의 가네모토 도모아키(41) 선수가 동체시력 향상 훈련을 시작해 화제라고 한다. 지난해 타율 .307과 27홈런 108 타점을 기록해 올해 소속팀 한신과 연봉 5억5천만엔+@로 재계약을 마친 가네모토는 동체시력 향상을 위해 특수 제작된 기구를 사용키로 했다. 안티에이징(Anti Aging) 연구가인 요시카와 교수가 개발한 이 기구는 일종의 고글로, 안쪽에 화상 움직임을 눈으로 쫓는 구조다. 이렇게 하면 반복 동작을 통해 눈에서 뇌에 전달하는 스피드가 빨라져 동체 시력이 향상된다는 것이 요시카와 교수의 설명이라고 한다.

 

‘동체시력’이란 우리가 통상 측정하는 정지시력과 달리 움직이는 물체를 판별하는 능력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속도가 빠르면 동체시력이 저하된다. 일반적으로 정지 상태에서의 시력이 1.2인 경우 10㎞/h에서는 평균 1.0이고, 40㎞/h에서는 0.8, 80㎞/h에서는 0.7로 저하된다고 한다.
빠른 발과 강한 어깨, 튼튼한 하체 등은 야구선수에게 중요한 신체요소로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들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시력’이다. 좋은 공을 골라내는 ‘선구안’과 직결되며, 날아든 공을 배트의 히팅 포인트에 정확히 맞추는 능력도 ‘시력’과 매우 긴밀하기 때문이다.

 

[사진] 미구 야구의 아이콘 ‘베이브 루스’. 뛰어난 타격실력을 가능케 한 데에는 일반인에 비해 12%나 높았던 시력도 한 몫을 했다.

 

야구와 시력의 상관관계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21년부터다. 콜롬비아 대학 연구진은 당시 최고의 타자였던 베이브 루스의 동체시력을 검사한 결과, 일반인에 비해 12% 높은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시력훈련’을 야구훈련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은 이로부터 반세기가 지나서다. 1972년, 라구나 비치(Laguna Beach) 지역의 안과전문의 해리슨은 캔사스시티 로열스의 구단주인 유잉 카우프만을 방문한다. 해리슨은 카우프만에게 ‘야구선수에게 시력훈련의 중요성’을 설명했고, 카우프만은 20명의 마이너팀 유망주를 선정해 이 훈련에 참가시키기로 했다. 로열스는 이들 20명의 유망주가 성장했을 무렵, 리그 최강의 팀으로 떠올랐으며, 20명 중 하나였던 조지 브렛 선수(George Brett)는 세 번의 타격왕을 거머쥔 뒤 지금은 ‘명예의 전당’에 입성해 있다.

 

해리슨의 노력을 시작으로, 오늘날 야구선수에게 ‘시력훈련’은 더 이상 특별한 일도 아닐 정도로 일반화 됐다.
‘좋은 시력의 소유자’로 가장 잘 알려진 선수는 올해 오클랜드와 계약한 제이슨 지암비(Jason Giambi)다. 지암비는 수비 때 왼손에 글러브를 끼는 ‘오른손잡이’지만, 타격 때는 왼쪽 타석에 들어서는 ‘우투좌타’ 선수다. 오른쪽 눈의 시력이 더 좋기 때문이다. 지암비는 오른쪽에 비해 떨어지는 왼쪽 시력 보정을 위해 칼슘 침전 제거수술을 받기도 했다. 지암비는 오늘날까지도 뛰어난 시력을 바탕으로 놀라운 수준의 선구안을 확보하고 있다.
시애틀 마리너스의 이치로 스즈키(Ichiro Suzuki)와 뉴욕 매츠의 카를로스 벨트란(Carlos Beltran)은 동체시력 향상을 위해 고속으로 발사되는 테니스공에 적힌 번호를 체크하는 훈련법을 사용하고 있으며,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 소속 오가사와라 선수는 ‘절대 카메라 후레쉬를 쳐다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진] 공을 보다 선명하게 볼 수 있게 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황갈색(Amber Tinted) 콘텍트 렌즈

 

황갈색(Amber Tinted) 콘텍트렌즈를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브라이언 로버츠(Brian Roberts)와 다저스의 제임스 로니(James Loney),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A.J. 피어진스키(Pierzinski)가 대표적인 경우다. 이들은 특수 제작된 렌즈를 통해 반짝거림을 감소시키고 공을 보다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시력저하는 곧바로 성적저하로 이어진다.
이와 같은 사례는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 최근 들어 나타난 대표적인 사례는 댄 존슨(Dan Johnson) 이었다. 2006년 봄 선크림이 눈에 들어가는 사고로 존슨의 시력은 급속도로 저하됐고, 그는 더 이상 커브를 쳐낼 수가 없었다. 존슨은 심지어 타석에서 커브가 날아오면 아예 방망이를 휘두르지 않았다. “어차피 못 치니까, 그냥 받아들이는 거죠”라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타율은 4푼이 하락했으며, 다른 부상이 겹치며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지 못하다가 2008년 소속팀 오클랜드에서 탬파베이로 트레이드됐다.

 

전설적인 홈런왕 지미 팍스(Jimmie Foxx)도 시력저하 - 물론 고질병인 ‘음주벽’도 한 몫 했지만 - 로 선수생활을 접어야 했던 케이스다. 알렉스 로드리게스(32세8일)가 갱신하기 전까지 ‘최연소 500홈런 기록’을 보유하고 있던 팍스(32세338일)는 시력저하와 폭음으로 결국 만37세의 많지 않은 나이에 선수생활을 마쳤다.(영화 ‘그들만의 리그’에서 톰 행크스가 연기한 주정뱅이 감독의 실제 주인공이 바로 지미 팍스다)

 

[사진] 영화 ‘그들만의 리그’에서 톰 행크스가 열연한 여자야구팀 감독의 실제 모델은 지미 팍스로 알려져 있다. 영화에서처럼 그는 ‘과음’으로 선수생활을 접어야 했지만, 시력저하 역시 그 못지않게 악영향을 미쳤다.

 

2003년 플로리다 말린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한 몫하며 ‘좋은 외야수’로 통하던 후안 엔카르나시온(Juan Encarnacion)도 악화된 시력 때문에 선수생활을 접어야 했던 케이스다. 엔카르나시온이 속해있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존 모질리악 단장은 2007년 시즌 마감 뒤 “엔카르나시온의 시력이 더욱 악화돼 타격에 지장이 있다”면서 “특히 우타자인 엔카르나시온의 오른쪽 눈 상태가 더욱 나빠 장타 생산에 큰 장애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엔카르나시온은 2008년 시즌을 통째로 날린 뒤 방출됐다.

 

“공을 봐라, 그리고 공을 쳐라(See the ball, and Hit the ball)”
역대 메이저리그 최다안타 기록을 갖고 있는 피트 로즈(Pete Rose)는 ‘타격을 잘하는 방법’을 이와 같이 소개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보다 더 야구에서의 시각을 중요성을 잘 드러낸 말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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