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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의 지역신문 'San Jose Mercury News'의 2008.3.6.자 보도에 따르면, 미국 프로야구 '명예의 전당'이 베리 본즈의 756번째 홈런공에 '참고표시(*)'를 달아 전시키로 했다. 아래는 기사 원문 발췌.
SCOTTSDALE, Ariz. - The asterisk-branded baseball that Barry Bonds hit to break the career home run record is expected to go on display at the National Baseball Hall of Fame later this month, museum vice president Jeff Idelson said Wednesday..(중략)...Idelson said the ball will be displayed as-is, and in full historical context.
"It will be part of a complete and impartial display with text that explains what happened to the ball from the moment it was hit to how it arrived in Cooperstown, and all the steps in between," Idelson said. "It puts into context what the asterisk means. For a week in 2007, that's how the public felt. It doesn't mean that's they way they feel now or will in the future. . . . It also symbolizes for Barry the stigmatism he was under as he went after the all-time home run record."
베리 본즈는 지난 2008년 8월8일 홈구장인 AT&T Park에서 열린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경기에서 756호 홈런을 쏴올리며 행크 아론이 1976년 기록했던 메이져리그 홈런 신기록을 31년만에 갱신했다. 42살의 흑인 베리의 기록은 그야말로 '레전드급' 임에 분명했지만, 기록갱신 앞뒤로 벌어진 상황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메이져리그를 둘러싸고 있는 약물(스테로이드) 사용 의혹 파문 때문이다.
[사진] 본즈는 투수들에게 말 그대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2003년 플로리다 말린스와의 경기에서 상대편 포수가 본즈를 상대한 투수에게 고의사구를 주문하고 있다.
이후 문제의 756호 홈런공은 경매를 통해 752,467달러에 패션디자이너인 마크 에코의 소유가 됐다. 에코는 홈런공 구입 직후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이 공의 처리방법에 대해 설문을 벌였고, '*를 표시해 명예의 전당으로 보낸다'는 응답이 47%를 차지했다. (참고로 '그냥 명예의 전당에 보낸다'는 의견은 34%, '우주로 공을 떠나 보낸다'는 응답은 19%) 그리고 결국, 그 역사적인 공은 참고표시(*)가 매겨진 채 명예의 전당으로 향하게 됐다. 이를테면 스테로이드 시대를 상징하는 '주홍글씨'라고나 할까.
본즈는 실제로 스테로이드를 사용했을까
연방대배심 등 각종 법적 절차를 거치며 '본즈가 불법적으로 스테로이드(성장호르몬)를 사용했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더구나 메이저리그가 스테로이드를 '금지약물'로 지정하고, 복용선수 징계를 위한 검사를 시작한 2002년 이후에도 본즈는 단 한번도 약물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본즈 역시 '부상 후유증 극복을 위해 약물을 복용한 적은 있지만, 스테로이드 성분이 들어있는지도 모를 뿐만 아니라, 복용 당시에는 스테로이드가 금지약물이 아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본즈가 약물을 복용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1998년부터, 본즈의 체격이 '거대'해지고 기록 역시 발군의 성장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물론 본즈는 '약물의혹'을 받기 이전인 1998년까지도 훌륭한 타자였다. 그는 98년까지 모두 411개의 홈런을 쳐냈으며, 이는 16.1타수마다 한 개의 홈런을 쏘아올린 숫자다.
그러나 99년부터 몸이 불어나기 시작한 본즈는 이후 2년(1999-2000)간 매 10타수마다 담장을 넘기기 시작했으며, 이후 4년간은 '7.9타수 당 홈런 하나'라는 그야말로 경이로운 기록을 유지하게 된다.(물론 이는 이때부터 늘어나기 시작한 상대 투수의 '고의사구' - 본즈는 2004년 MLB 역대 최다인 232개의 고의사구를 얻었다 -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엄청난 '홈런공장'으로 변신한 것만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본즈는 유죄일까.
MLB의 백인 우월주의
"루스 이후로도 조 디마지오, 테드 윌리엄스, 윌리 메이스, 행크 애런, 배리 본즈, 알렉스 로드리게스 등 훌륭한 야구 선수들이 등장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루스만큼 멋진 인생과 카리스마를 창조하진 못했다. 그는 유니폼 가슴부분에 위스키가 그려진 산타 클로스였다. 그와 필적한 만한 사람은 없다. 그리고 본즈의 모든 홈런도 단 한가지 사실을 바꿀 수는 없다. 베이브 루스가 여전히 역사상 가장 훌륭한 야구 선수라는 사실 말이다."
'T.R. 설리반'이란 이름의 미국 프로야구 칼럼리스트는 지난 2006년 5월16일자 칼럼에서 이같이 썼다. 이 시기는 본즈가 713호 홈런을 터뜨리며 베이브 루스의 기록(714개)에 하나 차이로 바짝 뒤쫒았을 때다. 이 기사가 실린 날, 본즈는 휴스톤 애스트로스와의 경기에서 상대 투수로부터 머리와 허리에 빈볼을 맞아야 했고, 이로 인해 퇴장당한 러스 스프링어 투수에게 관중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나는 설리반의 글 속에 베이브 루스와 베리 본즈를 바라보는 미국인의 시각이 그대로 뭍어있다고 본다.
본즈 이전 최다홈런 기록을 보유했던 '흑인' 행크 아론은 기록갱신년이던 1976년 공공연한 암살위협에 시달리며 경기에 나서야 했다. 1998년마크 맥과이어(70개)에 의해 기록이 갱신되기 전 - 이후 이 기록 역시 본즈(73개, 2001년)에 의해 다시 갱신됐지만 - , 한 시즌 최다홈런 기록 보유자였던 로저 매리스(61개, 1961년)는 "베이브 루스가 60홈런을 기록했던 당시보다 경기수가 더 늘어났기 때문에 기록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홈런수 뒤에 꼬리표(역시 * 표시)를 달아야 했다. 로저 매리스의 기록이 '사면복권' 되기 까지는 30년이란 세월이 필요했다. 루스는 미국인과 (메이저리그를 움직이는) 미국 자본의 상징이자 아이콘이다. 아마도 백인들은 '버릇없고 오만한 흑인'이 자신들이 만든 우상이 놓여진 '신의 영역'에 침범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리라.
무엇이 '공정'한 것인가
본즈의 기록에 *표를 붙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공정성'을 이야기 한다. 약물 없이 714개의 홈런을 기록한 루스와 '스테로이드 덩어리' 본즈를 비교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 중 그 누구도 루스가 '코르크 배트'를 사용한 사실을 지적하지 않는다. 루스는 코르크 배트 사용이 전면적으로 금지된 1923년 이전에 이 배트를 사용해 197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그렇다면 루스의 기록 역시 '517+197*'로 표시해야 할까.
더구나 루스가 활동한 1914-1935 기간은 흑인의 메이저리그 입성이 '금지'됐던 이른바 '화이트리그' 시절이다. MLB에 흑인선수가 등장한 것은 1947년 잭키 로빈슨이 LA 다저스에서 플레이하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통산 '약' 962개의 홈런을 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조시 깁슨은 메이저리그 진입이 불가능해, 흑인들의 리그인 '니그로 리그'와 중남미 '멕시칸 리그' '도미니칸 리그' '윈터 리그(쿠바)' 등에서 활약했다.
운동경기에서 기준이 되는 '공정함'이란 무엇일까. 구장의 크기와 파울지역의 넓이, 야수의 글러브, 배트의 무게 등은 과거와 현재 뿐만 아니라, 현재 시점에서도 모두 제각각이다. 홈플레이트와 마운드의 거리는 물론, 기본적인 룰 역시 수차례에 걸쳐 바뀌어 왔으며, 각종 '홈 어드밴티지'가 허용되는 곳이 야구의 세계다.
'약물복용'을 권장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MLB 사무국이 금지약물 지정확대와 발본색원에 적극적으로 나서, 무한경쟁에 내몰리며 약물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 선수들에 대한 보호에 보다 힘써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다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본즈에 대한 부당한 대우다.
'절대적으로 동등한 조건'은 애초 형성된 적이 없다. 우리가 여기에서 이야기 할 수 있는 '공정함'은 '해당 시기 규칙이 허용한 한도의 준수여부' 뿐이다. 본즈가 2002년(스테로이드 복용이 금지된 시점) 이후 스테로이드를 복용한 사실이 밝혀진다면, 리그 규칙에 따라서 처벌하면 될 일이다. 본즈에게 '스테로이드'는 루스의 '코르크 배트'와 같다.
본즈의 800 홈런을 응원한다
자서전을 통해 MLB에 '약물파동'을 불러왔던 칸세코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미 수많은 선수들이 약물을 복용했고, 복용해 오고 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756개의 홈런을 쏘아올리진 못했다. 역시 약물복용 혐의로 곤란함을 겪고 있는 양키스의 지암비. '루스주의자'의 논리대로라면 그도 어서어서 756개의 홈런을 쏘아 올려야 '정상'이다.
오프시즌을 맞아 본즈는 오랫동안 몸담았던 '아버지의 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결별했지만, 아직까지도 새로운 팀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를 둘러싼 부정적인 시각도 여러 장애물 중 하나다. 부디 본즈가 새로운 팀을 만나 2008년 시즌에 800홈런 고지를 넘어주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그는 진정 우리 시대의 '레전드'다.
[사진] 756호 홈런을 기록한 뒤 홈플레이트에서 세레모니를 펼치고 있는 본즈. 뒤는 본즈의 대부이자 아버지의 팀동료였던 윌리 메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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