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일, 정부는 2008년 세제개편안을 발표했다. 어떤 내용인지에 앞서 먼저 확인할 것은 재정흑자규모가 사상최대가 될 전망이라는 점이다. 8월29일 기획재정부 통합재정통계에 따르면, 2008년 6월까지 통합재정수지(누계)는 21조 4000억 원 흑자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것은 각종 연금 등 사회보장성 기금 흑자 17조7천억을 제외하고도 3조6천억 이상 흑자이며, 지난해 상반기 11조 3300억 원 보다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재정흑자는 세금이 많이 걷혔기 때문이다. 세입이 주 항목을 차지하는 경상수입은 140조 정도로 작년 같은 기간 124조원보다 16조원 넘게 늘었다. 물가 상승 특히 유가 인상에 따른 관세와 세수증대로 세금이 늘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올해 말까지 사상최대의 재정흑자가 예상된다.
두 번째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사상최대의 경상수지 적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초 10년 만에 경상수지 적자가 시작되었고 7월 중에는 경상수지가 24억 5천만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누적 적자는 78억 달러에 달한다. 7월 중 자본수지도 57억 3천만 달러 적자를 기록해서 외국인들의 주식과 채권 매도가 러쉬를 이루고 있다. 환율은 정부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오늘 9월1일 1,100원대를 넘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올해 320억 달러 이상의 보유주식을 매도한 것으로 추정된다.
말 그대로 재정은 사상최대 흑자고 경상수지와 자본수지는 사상최대 적자다. 산수를 할 줄 알면 경상수지 적자를 정부 재정으로 메워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렇듯 감세정책의 배경은 부자이웃돕기라는 점도 있지만 경상수지 적자를 메워야 하는 이유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몇 가지 의문이 든다. 정부 재정으로 적자를 메우더라도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가, 재정지원을 누구에게 해 줄 것인가 하는 점 등이다. 먼저 정부는 감세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감세와 경기부양
이번 세제개편은 소득세. 법인세. 부동산세 등의 대대적 감면을 통해 향후 5년간 25조 원대의 세금을 깎아주는 대대적 감세를 단행한다고 정부가 발표했다. 이에 따라 연간 20조 7천억 원의 감세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법인세가 9조 2천650억 원, 소득세 5조 7천670억 원, 증여세 8천840억 원, 관세 7천510억 원, 개별소비세 6천530억 원, 기타 3조 4천260억 원 등으로 추정된다.
이번 정부의 세제개편은 주로 중산층 이상의 집단에 대한 세금감면 효과를 집중시켰다. 소득세의 정률 인하도 문제지만 양도소득세 과세기준을 높였고, 상속 증여세를 대폭 낮추었다. 여기에 종합부동산세 부담도 낮추었다. 그에 비해 서민이나 자영업자들에 대한 지원은 소득세 정률인하 수준으로 그쳤다. 이처럼 정부의 세제개편 방안은 현재의 재정 흑자 분을 ‘부자이웃돕기’를 통해 재벌과 부자들에게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어찌되었건 감세의 대상과 효과를 이렇게 집중시킨 것은 다름이 아니라 투자와 소비 진작에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의 재정운영이 얼마나 투자와 소비를 일으킬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이미 100대 기업의 사내유보자금이 500조를 넘었다. 유보자금 500조에서 내야 할 법인세 9조가 더 남아서 509조가 되었다고 한들 기업이 투자를 할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소비가 늘 것인가? 우리나라 가계대출의 66% 이상이 주택담보대출이다. 문제는 이 주택담보대출의 원리금 연체가 증가하고 있고 이자율도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다. 이번 세제개편으로 연간 총급여가 4천만 원인 4인 가족의 경우 소득세는 현행 169만 원에서 내년 133만 원으로, 2010년에는 115만 원으로 올해에 비해 53만 원(31.7%) 가량 줄게 된다. 하지만 년초 7%대를 왔다갔다하던 이자율이 이제는 10%를 넘어선 곳도 있다. 1억 원을 대출했다면 연간 300만 원의 추가 이자를 부담해야 한다. 여기에 중소기업의 54%가 지난 금통위의 금리 인상으로 부도위기에 직면해 있다. 다시 말해, 이번 개편은 높아진 이자율을 상쇄시킬 정도의 세금감면 효과도 되지 못한다. 세금감면으로 발생한 돈들이 어디로 갈 것인지는 매우 분명하다. 이번 세제개편이 서민층 지원이 아니라 ‘은행지원방안’인 이유도 여기 있다.
감세, 그 이상의 정책이 나온다
보다 큰 문제는 현재 경제상황이 스태그플레이션에 접어들었다는 점이다. 성장은 지체 축소되고 물가는 계속 오르고 있다. 감세효과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먹혀들지 않는 상황이다. 환율과 국외 여건을 고려해 보면 더 암울하다. 미국은 올해 들어 2천600억 달러에 달하는 감세와 세금환급을 단행했다. 그럼에도 경기가 나아질 전망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반면 미국은 올해 경기부양책에 따른 세금환급과 경제성장 둔화로 인한 세수 감소로 2009년 재정 적자가 4천820억 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 높은 물가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이 더 둔화한다면 말할 것도 없이 세수가 감소할 것이다. 정부는 지속적인 유동성 공급외에는 별다른 대책을 내놓고 있지 못하다. 감세에도 불구하고 효과가 나지 않는다면 다음은 세금환급이다. 그리고 직접적인 현금보조를 단행할 가능성도 있다. 경상수지는 적자이고 재정지출 수요는 증가할 태세다. 자본시장의 적자도 대부분 정부의 외환보유고에서 채워 넣는 방식이 될 것이다. 그럼 그 돈 많은 돈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미국정부는 소비위축을 우려해서 지난 수십 년 동안 경상수지 적자를 재정으로 때웠다. 그 때문에 엄청난 재정 적자에 시달려왔다. 이 재정 적자를 감당하기 위해 미국은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를 찍어서 적자를 메워 왔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달러를 찍을 수는 없지 않은가? 재정이 없으면 해외에서 차입해 와야 한다. 그러나 이도 만만치 않다. 9월 위기설이 주로 외국인들의 투자자금 회수 및 재투자의 기피로부터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자본 차입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결국, 해법은 공기업 매각과 공공요금 인상으로 가게 된다. 최근 민영화 방침이 확정된 산업은행 하나만 하더라도 자산총액이 145조에 달한다. 2012년까지 단계적으로 민영화를 추진한다는 것인데, 산술적으로 매년 30조 원의 수입이 발생한다. 여기에 대우조선해양, 현대건설 등 공적자금 투입기업의 매각대금만 수십 조에 달할 전망이어서 공적자금을 회수하고도 남는다. 이렇게 따지고 보니 돈은 넘쳐나지 않는가!
여기서 이 같은 공공기관과 공기업의 민영화가 공공성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노동자 서민의 삶이 어떻게 파괴되는지 하는 얘기는 하지 않겠다. 다만 지적하고 싶은 점은 이렇게 팔려나간 공공부문 때문에라도 다시 물가가 오를 것이라는 점이다. 은행 민영화와 초대형투자은행의 등장으로 주택담보대출 조건은 완화되면서도 쉽게 돈을 빌릴 수 있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위험부담이 큰 만큼 이자율 또한 지속적으로 올라가게 된다. 더 이상 정부 재정에서 도움을 받지 못하는 공기업들은 불가피하게 공공요금을 인상해야 한다. 국내시장과는 무관하게 환율은 또 오른다. 하지만, 성장은 멈춰있다. 그래도 파국을 막기 위해 정부는 유동성 공급을 계속해야 한다. 돈? 걱정 마시라. 공기업 또 팔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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