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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 / 2008년09월03일 14시01분
부자를 위한 감세선물로 무얼 할 수 있을까?[연속기고-팔려가는 공공부문](2)복지 확충에는 예산이 부족하다며?강동진(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 / 2008년09월02일 16시33분
노가다 출신답다는 소리가 저절로 나올 만큼 화끈하다. 불도저처럼 과감하게 밀어붙였다. 6개월 동안 절치부심하고, 청와대 뒷산에서 촛불을 보며 와신상담하더니 확실하게 챙겨줬다. 정부 스스로도 솔직하다 못해 노골적이다. ‘감세효과는 세금을 내는 소수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인정한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명박 정부의 부자를 위한 첫 번째 선물’이라고도 했다.
‘부자만을 위한 감세’라는 비판이 쏟아지니까 ‘근로자의 50%가 세금을 못 내고 있기 때문에 감세를 해줄 수 없는 것’이라고 ‘친절한 만수씨’가 되기도 한다. ‘재벌경제와 서민경제는 함께 가는 것’이라는 궤변도 쏟아낸다. 더불어 ‘저소득층은 세출을 통해 지원하게 될 것’임을 강조한다. 매번 거짓말을 숨 쉬듯 내뱉어 내는 정부이긴 하지만, 믿어 보자. 믿는 자에게 복이 있고, 구원이 기다린다고 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감세 규모가 ‘억...억..’이 아니라 ‘조, 조’로 넘어가니 숨이 막혀 뇌로 가는 혈액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까닭에 어느 정도인지 상상이 안 가니 한번 살펴보기로 하자. 그래야 ‘세출을 통해 지원한다’는 말의 진위를 나중에 검증이라도 할 터이니 말이다. 감세 2년차인 2010년 감세 규모는 2007년과 비교하여 17조9천억 원, 2012년에는 21조3천억 원에 이르게 된다. 연도별 감면액을 5년간 합산하면 무려 75조 원에 이른다. IMF가 터지고 나서 경제 살리기를 위해 투입된 공적 자금 150조의 절반에 이르는 액수이다. 이런 어마어마한 규모의 ‘에누리’는 대부분 1%도 안되는 기업과 소득이 상위 10% 정도의 부자들에게 집중된다고 한다.
17조, 21조, 75조 대체 어느 정도 크기인가? 감을 잡을 수 있게 비교할 수 있는 걸 찾아보았다.
하나, 2008년 1월부터 7월까지 건강보험재정으로 지출된 돈이 15조 8천억쯤 된다. 건강보험 재정 수입은 17조 3천억 정도 된다. 17조는 7개월 동안 5.08%정도 되는 보험료를 한 푼도 내지 않고도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돈이다. 10%의 국민만이 아니라 온 국민이 말이다. 17조를 건강보험 재정에 지원하면 보험료를 더 내지 않고도 모든 치료를 공짜로 받을 수 있다. 온 국민이 말이다. 그래도 돈이 남아돈다. 7조 정도에 해당하는 돈이 말이다. 저소득층에게 세출을 통해 지원하게 될 것이라고 했으니 두고 보자.
둘, 2008년 보건복지가족부에 배정된 예산이 16조 정도 된다. 이 예산으로 기초생활보장, 취약계층지원, 공공의료사업, 노인·가족·보육·여성·장애인정책, 공적연금 등을 운영하고, 지원하고 집행한다. 21조나 되는 돈은 보건복지가족부를 통째로 하나 더 만들고, 관련 사업과 정책을 지금보다 두 배로 더 해도 된다. 그러고도 남는 5조 원으로는 소위 ‘신용불량자’로 낙인찍혀 온갖 차별과 억압, 피해를 당하고 있는 금융피해자의 빚을 모두 탕감할 수 있다. 그런데 9월 2일 정부에서 밝힌 신용회복지원기금은 고작 2천억이다. ‘새발의 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복지를 확충하라는 요구에 항상 돌아오는 메아리는 똑 같다. ‘예산이 부족하다’고. 지금도 사회 곳곳, 전국 곳곳에서는 2009년도 ‘예산 배정’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전쟁이 전개되고 있다. 파이가 점점 줄어든다는 걱정 속에서 전쟁은 더욱 치열하다. 힘없는 자, 권력에서 먼 곳에 존재하는 이들은 배제된다.
셋, 전기, 가스, 교통 요금 등 공공요금 인상이 추석 이후 줄줄이 예고되어 있다. 지역난방요금은 이미 지난 8월에 10% 올랐다. 난방을 사용안하는 여름철에 요금을 올려 국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없게 하려는 얄팍한 술수를 쓰면서도 얼굴색 하나 안 변한다. 이러한 요금인상은 10%의 국민만 부담하는 게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그 부담이 돌아간다. 소득이 적은 이들에게 가는 부담은 더욱 크다. 그런데 올해 추가경정예산으로 한전과 가스공사에 1조2천억 원이 지원되었다고 한다. 이 돈으로 24% 요금인상요인을 12%로 감소시켰다는 얘기가 전해졌다. 감세로 인한 돈의 20%면 공공요금을 하나도 인상안하고도 남는다는 얘기가 된다. 공기업 적자는 정부 재정지원과 공공요금인상을 통해서 메워주고, 감세로 인해 줄어드는 세수는 공기업을 팔아서 메우고, 그렇게 해서 돈 버는 공기업은 감세선물을 듬뿍 받은 대기업에게 팔고, 모든 부담은 국민들이 진다. 아무리 ‘비즈니스 프렌들리’라지만,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공기업 노조는 민영화 반대 이전에 공공요금인상 반대 총파업을 해야 하지 않을까?)
이 정도 선에서 그치자. 얘기를 꺼내면 꺼낼수록 혈압만 높아지고, ‘소 귀에 경 읽기’이다. 21세기 초반 ‘좌파 바람’으로,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기 시작한 남미는 1980년대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잘 나가던 5,60년대를 뒤로 하고 국민의 절반 정도가 빈곤으로 내몰렸었다. 잘 사는 부자들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그들만의 도시’에서 안락한 생활을 누렸다. 한국사회는 땅덩어리가 좁은 탓인지, 아니면 천국을 향한 욕망에 기인해서인지 ‘담장 도시’가 아니라 하늘과 점점 가까이 하는 ‘도시 속의 도시’에서 부자들이 살아가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담장을 둘러치든, 오르지 못할 곳으로 올라가든, 사람들 사이에 벽과 차별을 만드는 사회는 비정상적인 사회이다. 거품은 아무리 부풀어 오르더라도 결국 어느 순간 꺼지게 마련이다.
우리 사회 빈곤층은 정부 통계로도 700만에 달한다. 이대로 가면 몇 년 안에 전체 인구의 30%를 넘는 계층이 빈곤층으로 떨어진다는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이들 빈곤층은 정치적이든, 사회적이든 스스로 자신의 목소리와 요구를 내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다만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지금은 많이 수그러들었지만 촛불집회에서 구속된 이들의 상당수가 실업자와 자영업자들이었다. 이들이 단지 다음 날 ‘출근’에서 자유로운 처지였기 때문에 밤늦도록 촛불을 들지는 않았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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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만 (진보전략회의 운영위원) / 2008년09월01일 18시28분
억센 풀을 베어내고 배추를 심다.
장마비를 흠뻑 머금고 자란 쇠 삐들기(?)는 억셌다. 이풀의 특징은 벼의 자람과 그 속도와 형태를 같이 한다는 것!
그러니, 처서가 지나고 추석을 앞둔 현재 그 자태가 어떠하겠는가?!
삼돌이 키만큼 자라서는 이리 저리 삐죽삐죽,
허연 꽃술을 마음껏 내뻗치고 있구나!
이리도 왕성한 발육상태를 어찌 볼 것인가!? 그건 여유 있을 때 감상이고!
추석 앞두고 밭 주인의 바쁜 심사에는 그져 흉측 맞을 뿐이다.
해서 강철 예취기로 베었다.
엄청난 양의 쇠삐들을 베어낸 텃밭은 그래도 풀밭!
베어낸 풀이 드러누워져 있을 뿐!
소한마리 풀어놓아서 먹여도 한 일주일 분량은 되것다.
베어낸 풀을 갈퀴고 긁어서 한쪽으로 모은다.
굳어진 풀밭을 삽으로 깊이 갈기를 한다.
쇠스랑으로 다시 풀끄트머리를 잘게 부수고!
이제야 맨땅의 텃밭모양을 갖추나?
배추심을 텃밭 한 세네평 만드는데 두시간 걸린다.
아! 거의 바닥에 가까운 생산성! 신석기 시대 원시성과 다른 점이 무엇이란 말인가!
날은 또 왜이리 더운 것인가?
땀이 비오듯하니 눈을 뜰수가 없네! 짠물에 눈이 시려! 아! 맨땅 삽질, 질린다.
이제 서너평 하우스 옆자리를 겨우 갈은 것인데!
열평 남짓 하우스 자리는 언제가나?
이때 번뜩이는 그 무엇!
그렇지!! 뭘라고 힘들게 땅을 가는가? 밭갈기 안하고 심기를 해야지!
번뜩이는 나의 판단은 이러했다.
첫째, 심겨질 배추는 뿌리 식물이 아니다. 그래서 배추뿌리는 많은 면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성한 풀밭이었기에 그리 강하게 굳어져 있는 맨땅이 아니다. 비교적 푸석푸석한 땅이기에 간거나 매한가지다.
둘째, 베어놓은 풀은 땅의 습도와 영양분을 제공하면서 햇빛을 차단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씨앗을 뿌려놓고 강한 햇빛을 차단 할려고 일부러 왕겨나 볕집을 덥기도 하지 않는가?
무성했던 풀의 공세를 역으로 활용해 보자!
셋째, 삽질할 기운이 남아있지 않았다.
실제로는 세 번째 이유가 크게 작용!
오전 11시, 현재시각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함께 삽질하던 친구! 그냥 심기를 하자는 나의 제안에 암묵적 동의를 한다. 왜 아니겠는가? 힘들어 죽것는데!
역시, 고통은 발명의 어머니다.
밭갈기 없는 그냥 심기는 잔꾀내지 합리화 아닌가!?
몰르는 사람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아니 현대 농법의 입장에서 본다면, 말도 안되겠다. 그리고, 실제로 경운을 안 하고 심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다.
실패할 확률도 크다.
허나 어쩌겠는가! 땡볕에 삽질할 기운이 남아있질 않은 걸!
'무경운' 방식!
이는 자연농법의 핵심이다.
'지속 가능한'(부르주아 이데올르그들에 의해서 자본의 영원한 착취를 위하여 환경을 파괴해도 된다는 의미로 악용 되어서 그렇지 용어 자체로는 훌륭하다.) 고,
'친 환경적'(이 용어 역시 용어자체는 훌륭하다. 서해 기름유출 혹은 백혈병 유발 등에서 확인되듯이 이윤추구를 위해서라면 인간의 생명위협과 환경파괴를 자행하면서도, 소비자들에게 친환경기업으로 이미지화 한다는 측면에서 대단히 역설적이어서 그렇지!) 이라는 측면에서 자체로 혁명적이다.
향후, 인류의 식량문제를 해결할 생산적 대안이기도 하다.
원리는 밭 갈기를 안 해도 문제없는 흙에 있다.
기름진 흙,
손가락을 찌르면 쑥 들어갈 정도로 푸석푸석한 상태의 땅!
이런 땅을 뭘 라고 경운 한단 말인가!
문제는 땅심이 살아있는 이런 땅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이다. 농약과 비료, 트랙터 깊이 갈기로 이미 맛이 가버릴대로 가버리고 오염될대로 오염되어 버린 상태가 '이땅'의 현실이다.
추석전에 일단 심기는 심었다.
무경운으로 심겨진 배추!
배추는 잘 자랄 것인가?! 땅심이 턱없이 부족한 곳에서?
들판에 부는 바람에 맡길 뿐이다.
가끔 쏟아지는 비와 아직 뜨거운 햇빛에 노출된 채로 ------.
주인이 할 일은 뿌리내리기 전까지 물주기만 할 뿐!
비온뒤 무서운 속도로 올라오는 풀!
끈 예취로 풀베기 하고 나서는 한 일주일만에 다시 텃밭을 찾았다.
이사이에 큰비, 작은비 해서는 3일정도 내렸고, 3일 정도는 엄청나게 더웠던 것인데-----.
무지하게 풀이 자라있다.
끈 예취기이라서는 가장 밑퉁을 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풀베기한 티는 분명했거늘,
일주일전 풀베기한 텃밭이라고 누가 믿겠는가?!
놀라운 속도로 자란 것임에 틀림없다.
여름의 풀!
특히, 장마속에서 자라는 풀!
일주일 간격으로 풀베기를 한 나의 결론은, 풀의 일생에서 가장 왕성한 성장의 시기는 바로 여름 장마철이라고 단정을 내릴수 밖에 없다.
사춘기 애덜로 치면 지난해 옷이 작아져서는 입을수 없을 정도로 쑥쑥자라는 모양이라고나 할까!
적절치 않네! 눈뜨고 나면 길어져 버린 콩나물 같다고나 할까! 이 표현도 별로 적절치 않군!
비온뒤 솟아나는 죽순! 그러네, 우후죽순!
왜 이렇게 잘 자라는 것인가!
이유는 간단하다.
우선은 식물이 자라는데 적절한 온도와 수분이 제공되는 계절이다.
그리고,
자랄대로 자란 뿌리,
광합성을 하기에 충분히 커진 잎,
뿌리의 영양분을 쫙쫙 빨아올려서는 잎끝까지 공급해줄정도로 튼튼하게 자란 줄기가 삼박자를 이룬다.
쑥쑥 안자라면 그게 이상한 것이다.
여름의 풀을 이대로 놔둔다면, 즉, 자연에 맡긴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풀과 나무를 자연적 상태에서 자라게 한다면 말이다.
그렇다. 무성하게 들풀로 뒤덮힌 들과 조화롭게 우거진 숲이다.
조금더 나가볼까?!
자연과 어우러진 인간의 이상적 모습은 무엇인가?
그렇다. 우거진 숲, 푸르른 자연위에 동물 처럼 뛰어노는 인간의 모습 일거다.
빨리 달리고 때로는 날기도 하겠으나, 들과 숲을 크게 거슬르지 않는 그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여름의 풀은 사람으로 따진다면 가장 왕성하게 자라는 청년기에 비교 되겠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가장 강렬한 에너지가 발산하는 시기다.
돌멩이도 씹어삼켜 소화 시킬때니까,
주변 환경만 잘 조성 해준다면 훌륭한 성인으로 자라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겠다.
왕성하게 자라서는 훌륭하게 수확을 준비하는 여름의 작물처럼 말이다.
문제는 자연이나 인간사회 동일하게 워낙 주변환경이 좋지 않다는 점이다.
자연이나 청소년들이나 그 성장과 기세가 워낙 신비롭고 왕성하여, 티가 잘 안날뿐 !
무성해진 텃밭의 풀을 강철 예취기로 모두 베었다.
밭뚝과 논두렁에 무성해진 잡초까지!
잘 베었는가?! 일단 시원은 하다.
김성구(편집위원장, 한신대) / 2008년07월15일 9시39분
우리나라도 상황은 마찬가지여서 이를 배경으로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 간의 정책논쟁이 벌어졌다. 긴축과 물가안정이냐, 수출과 성장이냐를 놓고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 간의 논쟁은 시민단체 등 여론의 지지를 업은 한국은행의 승리로 일단락되었고,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책 실패에 대한 혹독한 책임공방 속에서 장관 경질만큼은 피해 나갔다. 그러나 한국은행의 긴축과 물가안정은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인바, 한국은행 식 신자유주의 물가정책이 스태그플레이션을 극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기획재정부 식 신자유주의 성장정책도 스태그플레이션을 극복하지는 못한다.
스태그플레이션은 말 그대로 경기침체(스태그네이션)와 인플레이션의 합성어로서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의 동반현상을 지칭한다. 주지하다시피 이 용어의 유행은 1970년대 중반 이래 케인스주의의 확장정책에도 불구하고 경기침체가 심화하였던 역사(1974/75년 공황과 1980/82년 공황), 즉 케인스주의의 파산을 배경으로 하였다. 케인스주의는 확장정책(개입주의)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감수하더라도 완전고용을 달성할 수 있다는 이론에 입각해 있었고, 이 정책 처방은 2차대전 후 1970년대 초까지 나름대로 작동하였으나, 1970년대 이래 구조위기의 표출 속에서 파산하였다.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현상 이전에 케인스주의에 따르면 물가와 실업은 역상관관계(상충적)이어서 물가를 안정시키려면 실업의 증대가 불가피하고, 반대로 실업을 감소시키려면 물가 등귀가 불가피하다. 물가 안정과 실업 감소(완전고용)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목표의 희생 하에 다른 한 가지 목표는 달성 가능했다. 케인스주의는 물가 등귀를 감수하더라도 실업 감소를 추구하였다. 그런데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인해 이제 두 가지 목표가 모두 달성할 수 없게 되었고, 결국 케인스주의는 파산하였다.
신자유주의자들은 긴축과 물가안정 그리고 규제철폐를 통해 스태그플레이션을 극복할 수 있다고 선전하였다. 물가안정과 완전고용 두 가지 목표를 모두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통화주의나 새고전파 같은 신자유주의에 따르면, 국가개입과 확장정책으로는 실업을 줄일 수 없고 인플레이션만 심화시킬 뿐이다. 따라서 스태그플레이션은 케인스주의가 가져온 불가피한 결과가 된다. 확장정책과 개입주의가 아니라 긴축과, 규제철폐를 통한 시장규율의 강화만이 물가안정과 완전고용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거의 30년에 이르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과를 보면, 이들의 이론과 정책은 케인스주의 못지않게 실패하였음을 알 수 있다. 신자유주의 긴축정책의 결과 선진자본주의 경제는 1980년대 이래 1970년대 중반과 1980년대 초반의 스태그플레이션의 상황으로부터 실로 두자릿수의 물가상승률을 진정시켰지만, 그 대가는 케인스주의 시대를 훨씬 능가하는 성장둔화와 대량실업의 구조화였다. 좋게 말해도 신자유주의는 물가 안정과 완전고용이라는 두 가지 상충적인 목표를 케인스주의와 상반된 방식으로 해결했을 뿐이었다. 즉 물가 등귀와 완전고용(케인스주의) 대신 물가안정과 대량실업을 가져왔을 뿐이었다. 그것은 필연적인 결과였는데, 신자유주의 기획이란 원래부터 긴축을 통해 성장둔화와 대량실업을 유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시장규율을 강화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신자유주의 이론에 따르면, 이들은 물가안정과 완전고용을 주장하는데, 그것은 현실에 존재하는 대량실업을 케인스주의처럼 비자발적 실업(유효수요 부족으로 일하고자 하지만 일자리가 없는 상태)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단지 구인 및 구직과정에서의 정보 제한으로 발생한 일시적 실업으로 보기 때문이다. 조만간 일자리를 찾을 일시적 실업자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실업(비자발적 실업)이 아니며, 따라서 완전고용을 주장해도 무방한 것이다. 구조화되고 있는 현실의 대량실업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자들이 완전고용을 주장하는 것은 이런 이론적 논거 때문이다.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황당하게 들릴 궤변 같은 이런 주장을 신자유주의자들도 사실 대중들에게 터놓고 말하지 못한다. 시장에서 일자리를 뒤지다 보면 취업하게 되니까 당신들의 실업은 별로 문제가 아니라고 저널리즘의 어디에서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들이 강단에서 아카데미즘의 이름으로 그렇게 학생들에게 강의하고 있다는 것을 어떤 대중이 알고 있을까?
현재의 경기 사이클은 2001년 미국 공황으로부터 시작된 것으로서 정확하게 언제 새로운 공황으로 종료할 것인가는 아직도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대량실업이 구조화되어 있는 상황 속에서 새로운 물가 충격이 실로 새로운 공황으로 귀결된다면, 스태그플레이션의 재발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신자유주의의 파산을 의미한다는 것도 명명백백할 것이다.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이 케인스주의의 파산을 가져왔다면, 2000년대 말의 새로운 스태그플레이션은 분명 신자유주의의 파산을 가져올 것이다. 그럼에도 중앙은행의 긴축정책으로 이에 대처한다는 것은 썩은 무기 자루를 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니 그것보다 더 나쁜 것이어서 경제침체와 실업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자본주의 역사에서 스태그플레이션은 분명 2차대전 종료 이후 현대자본주의의 현상이고, 이는 자본주의가 국가독점자본주의 단계로 발전한 것과 관련되어 있다. 독점가격의 지배와 국가개입에 따른 경기순환의 변형, 특히 공황 시에 감가와 자본파괴를 막기 위한 자금 지원과 유동성 투입으로 인플레이션은 만성화되었고, 그럼에도 주기적인 공황과, 이윤율의 장기적 저하에 따른 침체경향이라는 자본주의의 고유한 축적의 모순은 심화되었는 바, 이런 주기적 위기와 구조적 위기의 결합 위에서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했던 것이다. 이는 신자유주의 하에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긴축을 주장하는 신자유주의 정부들조차 지난 공황 때마다 막대한 유동성을 투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르주아 경제학과 저널리즘이 스태그플레이션을 과학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지만, 이런 현상조차도 부정확하게만 표현할 뿐이다. 저널리즘에서 스태그플레이션이란 두자릿수 정도의 과도한 물가상승과 낮은 성장률의 동반 현상으로 이해되는 데, 과학적으로 정의한다면, 스태그플레이션은 (공황 시에도) 지속적인 물가상승과 (공황 시의) 마이너스 성장률이 결합한 현상을 말한다. 따라서 이런 정의에 따르면, 스태그플레이션은 오늘날의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 공황 때마다 나타난 전후 자본주의의 일반적 현상이며, 다만 1970년대 이래 구조위기 속에서 그 현상이 보다 극적인 형태로 전개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스태그플레이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를 폐기해야 하고, 또 그렇다고 케인스주의로 돌아가서도 안 되며, 근본적으로 국가독점자본주의를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국가독점자본주의 안에서 스태그플레이션을 극복하는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스태그플레이션이란 국가독점자본주의의 모순들의 고유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국가독점자본주의 안에서 그래도 스태그플레이션을 완화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다음 두 가지 정책이 필수불가결하다. 첫째, 다가오는 새로운 공황 앞에서 확장정책으로의 전환은 불가피하게 필요하다. 둘째, 독점자본의 이윤과 가격을 강력하게 통제하고, 재정을 비롯한 국가독점에 대한 대중 통제를 강화하며, 사유화를 저지하고 국유화와 공공투자 등 사회화 프로그램을 적극 동원해야 한다.
스태그플레이션을 완화시킬 이런 정책조차도 국가독점자본주의 내에서 독점과 국가독점에 대항한 강력한 투쟁을 전제하는 것이다. 이런 투쟁 속에서 국가독점자본주의와 스태그플레이션을 근본적으로 극복하는 역사적 길이 열릴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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