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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당평가와 사회주의정당(해방연대)

[발제2] 민주노동당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그 대안으로서의 사회주의정당 건설
31호
2008/02/02
민주노동당은 2007년 대선투쟁에서 참패하였다. 5년 전 2002년에 비해 당원 수와 당조직은 급격히 확대되었음에도 권영길 후보는 2002년보다도 낮은 3.0%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낮은 득표율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민주노동당은 2002년과 달리, 사회의 향후 발전방향을 둘러싸고 의미 있는 논란거리를 제기하는 데에서도 실패하였다.

더욱 심각한 것은 대선에서의 참패 이후, 민주노동당이 보인 모습이다. 권영길후보와 당내경선과정에서 권영길후보를 지지한 자주파와 개인들, 그리고 선대위와 최고위원회는 진심으로 반성하고 책임지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임기를 얼마 남겨놓지 않은 최고위원회의 사퇴와 심상정비대위의 구성으로 사태를 수습하는 데에만 몰두하였다. 대선이 참패로 끝난 지 이미 한 달이 지났지만, 명확하게 구체적으로 대선참패의 정치적 책임을 진 사람은 사실상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한편에서는 의견그룹 전진을 중심으로 대선투쟁의 참패에 대한 철저한 평가는 진행하지 않은 채 “종북주의 때문에 대선투쟁에서 패배하였다, 종북주의 때문에 당이 망했다”는 정치적 공세만이 난무하고 있다. 그 결과 당은 대선에서의 참패에 이어 제2의 추락을 경험 중에 있으며, 어렵게 비대위가 구성되었지만 대선참패이후 한 달이 다 된 시점에서도 평가는 아직 시작조차 되지 않고 있고, 당의 모습에 실망한 당원들의 탈당행렬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대선에서의 참패 이후에도 진정성 있는 반성과 평가가 실종된 채 정파 간 정치공세만 난무하는 민주노동당에 과연 미래가 존재하는 것인지 심각한 의문이 드는 시기이다. 냉정하게 말해 이미 민주노동당은 진정성 있는 반성과 평가가 불가능한 정치조직으로 전락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조차 든다. 필자가 이러한 의문을 갖는 것은 이런 상태가 이미 오래전부터 반복되어 왔고 대선참패 이후의 당의 모습이 이를 더욱더 명확하게 확인해주고 있기 때문이다(미주).

민주노동당이 대선에서 참패한 핵심적인 이유를 밝히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관점에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민주노동당이 참패한 핵심적인 이유는, 한국 자본주의의 모순 악화와 사회의 양극화, 이에 따른 노동자, 민중의 삶의 악화, 파탄에 민주노동당이 급진적인 반자본주의적 노동자정치의 강화로 대응하지 않고, 오히려 우경화하여 자유주의정치세력과 독립적인 정치세력으로 노동자, 민중들에게 전혀 인식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민주노동당은 열우당 2중대, 대통합민주신당 2중대의 위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자유주의정치세력과 함께 ‘민생파탄을 초래한 한 묶음의 무능한 세력’으로밖에 인식되지 못해 동반 몰락했다.

이 자명한 사실조차 민주노동당, 보다 구체적으로 민주노동당내 정파들은 분명하게 정치적으로 정식화하지 못할 만큼 현실인식과 현실과의 소통에서 실패하고 있으며 대신 민족주의세력과 사민주의적 개량주의세력사이에는 사태의 핵심을 완전히 놓친 지루한 정치공세만이 반복되고 있다. 주인(노동자, 민중, 당원)의 마음은 급속히 떠나가고 있는데 객들(정파들)의 내부정치만이 횡행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에서 활동해온 사회주의자들에게 지금만큼 당의 현실을 냉정히 평가하고 그 대안을 단호히 실천해야 하는 시기도 없었다.

민주노동당을 통한 노동자정치세력화는 어떠한 역할을 하였고 앞으로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민주노동당은 과연 앞으로 혁신되어 반자본주의적 정치투쟁에 적극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당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인가? 민주노동당이 노동자정치세력화의 발전에서 할 수 있는 긍정적 역할이 다해간다면 사회주의자들은 어떤 대안을 강구해야 하는가? 정파연합당이 사실상 해체되고 있는데 원하든 아니든 더 이상 정파연합당이 유효한 시기는 지난 것이 아닌가? 사회주의정당을 건설해야 한다면 우리가 건설할 사회주의정당이 핵심적으로 담아야 할 내용은 무엇인가? 등등 사회주의자들이 지금 스스로에게 제기해야 하는 질문들은 어느 것 하나 가벼운 것들이 아니다.

오늘 토론회에서 우리는 이 모든 질문에 완벽한 답을 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기대하며 토론회에 참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민주노동당으로 표현되는 노동자정치세력화의 한 시도가 역사적으로 마감되어가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는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겸허한 태도일 것이다. 오늘 토론회가 민주노동당에서 활동해온 사회주의자들이 서로 간에 고민과 대안을 소통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1. 민주노동당에 대한 역사적 평가

1) 2000년 창당에서 2004년 4.15총선까지

민주노동당의 2000년 창당은 노동자정치세력화를 주요과제로 설정한 민주노총의 주도하에 다양한 정파가 결합하면서 창당되었다(민주노총의 주도 + 정파연합당). 96, 97 총파업이 창당의 주요 동력이 되었다. 민주노총이 창당을 주도한 점이 이전에 실패를 반복하던 진보정당 추진 움직임과 달리 민주노동당이 대중적 토대를 빠른 시기 안에 구축할 수 있었던 가장 커다란 이유였다.

민주노동당 창당에 참여하지 않은 일부 좌파들이 당시부터 민주노동당 창당이 민주노총 내 개량주의세력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다는 것을 이유로 민주노동당의 창당을 개량주의세력의 정치세력화 시도 정도로 축소하여 평가하고 있지만, 이는 민주노동당 창당의 의의를 지극히 일면적으로만 규정하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대로 민주노동당이 민주노총 내 개량주의세력의 주도하에 창당된 것은 사실이지만, 민주노동당의 창당은 ‘노동자도 정치세력화’를 해야 한다는 대중적 열망을 기본 동력으로 한 것이었고, 민주노동당의 창당에는 개량주의적 세력만이 아니라 변혁적인 세력 역시 참여하였던 것이다. 당시 민주노동당 창당에 참여하지 않은 세력들이 이후 실천에서 민주노동당에 대당하는 자립적인 대중적 정당을 창당하는 데서 실패한 것은 이들이 노동자정치세력화라는 과제에 정면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기권한 채 좌익분파주의적으로 대응하였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은 창당 주체의 한계를 그대로 반영하여 출발부터 의회주의적 경향과 대리주의적 경향, 개량주의적 경향이 우세하였지만 창당 이후 격화된 한국사회의 모순과 이에 따른, 기존보수정당과 다른 대안에 대한 노동자, 민중의 열망고조, ‘무상의료, 무상교육, 부유세’로 상징되는 급진적인 주장을 배경으로 2004년 총선에서 10명의 국회의원을 당선시키는 성과를 내었다. 이 시기가 민주노동당의 ‘한계 속에서의 성장’시기였다. 비록 많은 한계를 안고 있었지만 그리고 비례대표제라는 제도의 덕도 보았지만 이 시기에 민주노동당은 진보불모의 한국정치지형에 돌파구를 내는 데 성공하였고 그 결과 노동자, 민중의 새로운 기대를 받게 되었다. 2004년 총선직후의 메이데이 전야제와 집회가 어느 해보다 활기에 찼던 것과 총선이후 대규모 당원입당이 이루어진 것은 이러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2) 2004년 4.15총선 이후 당 혁신의 실패와 ‘당의 한계가 오류로 전환된 퇴보의 시기’

그러나 2004년 총선이후 민주노동당은 자신을 혁신함으로써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는 데에서 실패하였고 변화된 정세에 지속적으로 적응하지 못하는 상태를 노출시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이유의 대부분은 불리한 객관적 조건이 아니라 주체적 한계와 오류였다.

객관적 조건은 민주노동당의 발전에 매우 유리한 조건이었다(이는 민주노총에게도 똑같았다). 사회의 모순 심화는 인간다운 삶을 갈구하는 노동자, 민중의 열망을 고조시켰다. 자본주의체제의 모순이 곪아 터지고 있었고 객관적 조건은 급진적인 노동자정치의 본격적인 전개에 극히 유리한 조건이었다. 무상의료, 무상교육 주장이 대중적 호응을 얻은 것은 이 주장이 자본 위주의 사회질서에 대해 급진적으로 도전하는 것으로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졌고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이 점을 잘 읽고 당은 2004년 총선 이후 본격적으로 자본주의와 기존질서에 도전하는 행동을 전개했어야 했고, 원내진출을 의회활동과 대중투쟁을 효과적으로 결합시키는 토대로 적극 활용하여야 했다. 그리고 이것은 당연히 열린우리당 등 자본가정당과는 정치적으로 완전히 독립된 노동자정치의 실천과 결합되어야 했다.

그러나 당은 이러한 방향과는 반대방향으로 나아갔다. 반자본주의정당으로서의 성격 강화는 실천되지 않았고, 2004년 너무나도 당연한 비정규직관련 투쟁의 전면화와 비정규직철폐운동본부의 건설이 당시 당내에서 논란이 될 정도로 당은 상황에 전혀 대응하지 못하는 한계를 노출하였다. 2005년 불파투쟁을 당은 사실상 방치하였다. 당 정치사업에서 민족주의적, 개량주의적 기조가 갈수록 강화되었다. 또한 당은 노동자계급의 요구를 의회에서 대신 해결해주는 고루한 의회주의, 대리주의정당의 성격을 온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의회활동과 대중투쟁이 분리되는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하였으며, 열린우리당 2중대 논란이 끊임없이 반복될 정도로 독자적인 노동자정치의 실천에 실패하였다. 당원들 특히 노동자당원들의 주체적 당활동 참여 확대를 위한 조치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은 사회적 모순의 격화되는 조건에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체제에 안주하며 우경화하는 상황을 연출하였고 이는 당연히 당의 침체와 위기로 연결되었다.

2005년 울산북구재선거에서의 패배는 이를 반영하는 것이었고, 선거 패배 이후 최고위원회가 총사퇴하고 비대위가 구성되었지만 당은 그 후에도 아무런 혁신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2기 최고위원회에서도 이전의 민족주의적, 개량주의적 정치기조가 그대로 반복되었고, 2006년 지자체선거에서도 민주노동당은 울산북구, 동구 구청장선거에서 패배했으며 전국적으로도 패배했다.

2004년 이후 당이 보인 모습은 발전이 아니라 정반대로 퇴보였다. 당의 급진화가 아닌 우경화는 당의 침체를 가져오고 이 침체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당은 다시 우경화로 향하고 이것이 다시 침체를 더 악화시키는 악순환의 고리는 계속 확대 재생산되어 왔고, 2007년 대선후보 당내경선에서 자주파의 종파적인 이해로 세 후보 중 가장 우경화한 권영길후보가 당의 대선후보로 당선된 이후에는 현충원 방문, 친기업정당 선언으로 우경화의 속도가 급속히 빨라지더니, 급기야는 당대표의 한국노총 사과사태까지 발생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결말은 정치적 몰락위기를 가져온 대선에서의 참패였다.

창당 이후 2004년까지의 시기가 ‘당의 한계 속의 성장 시기’였다면 2004년 이후는 ‘당의 한계가 오류로 전환된 퇴보의 시기’였다.

3) 민주노동당의 퇴보추세는 역전될 수 없을 정도로 이미 구조화되어 있다

그러면 민주노동당은 과연 앞으로 혁신되어 퇴보를 멈추고 반자본주의적 정치투쟁에 적극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당으로, 노동자들을 당의 주체로 세우는 당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다’이다.

그 첫번째 이유는 몇 가지 혁신조치로 달라질 수 없을 정도로, 자본주의적 모순악화, 사회양극화 정세에 대해 민주노동당이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는 이미 구조화되어있기 때문이다. 현재 당에는 크게 보아 민족주의경향, 사회주의경향, 사민주의경향이 존재한다. 이 중 다수파를 형성하고 있는 민족주의경향은 당이 반자본주의적 정치투쟁기조를 채택하는 것을 완강히 반대하고 있으며 시대착오적인 민족민주적인 정치투쟁기조에 당의 정치투쟁기조를 여전히 가두어두려 하고 있다. 코리아연방공화국의 국가비전채택은 이 경향의 돌발적인 시도가 아니라 일관된 기조의 산물이다. 이들은 이 기조를 조만간에 더욱더 밀어붙일 것이다. 사민주의경향은 공공연한 형태로 자신을 표현하지 않아서 그렇지 사회주의로 위장된 사민주의경향까지 합하면 당내 두 번째 규모의 경향으로서, 이 경향은 반자본주의적인 기조의 예각화를 민족주의자들과는 다른 방향에서 방해하고 있다(반자본주의적 기조 반대에서 민족주의자들과 사민주의자들은 공조하고 있다). 이들 두 경향을 합치면 민주노동당은 60%이상의 다수가 반자본주의적 기조를 당의 기조로 채택하고 투쟁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두 번째 이유는 당이 노동자대중의 투쟁흐름과 분리되어 이미 관료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당은 창당시기부터 민주노총 상층 중심으로 조직되었고 이후 일반 노동자들이 다수 입당하였지만, 일반노동자들이 당에 영향력을 행사할 통로가 봉쇄되어(가령 앞에서 예를 든 현장분회의 약화, 계선조직에서의 현장라인의 누락 등) 당은 노동자대중의 투쟁과 분리되어 있다. 그 결과 당원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건강한 흐름이 당에 영향을 미치거나 당사업과 연결되지 않고 상층관료의 통제아래 관리되고 있다. 이로 인해 당은 노동자대중의 분노, 열망, 투쟁과 분리되어 있다.

세 번째 이유는 당의 잘못된 정치노선, 패권주의적 운영, 출세주의자들 사이의 권력투쟁 등에 실망하여 건강한 선진노동자들과 변혁적 세력들이 새로이 입당하지 않고, 오히려 건강한 기존당원들이 개별적으로 탈당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선패배 이후 당이 보인 극히 실망스러운 모습은 이 추세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회주의자들은 민주노동당의 퇴보추세가 역전될 수 없을 정도로 이미 구조화되어 있다는 점을 인식하여야 한다. 2003년 이후 사회주의자들은 민주노동당이 발전하도록 민주노동당의 사회주의정당화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2008년 현재의 시점에서 당전반의 사회주의정당화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현실을 냉정히 인정해야 한다. 이 정도가 아니라 사태는 더욱 심각하다는 것, 사회주의정당화 가능성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당이 퇴보하여 당이 창당당시 내걸었던 노동자정치세력화와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의 계승 발전조차 공문구가 되어가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하여야 한다.

4) 민주노동당이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전진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긍정적 역할은 주체적 한계와 오류로 인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민주노동당이 실제로 하고 있는 역할은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에 기대어 노동자정치세력화의 대표체로 행세하며 노동자정치의 발전을 방해하는 것이다. 이제 민주노동당은 노동자정치세력화의 발전에서 걸림돌이 되고 있으며 그 역사적 생명을 다해가고 있다. 노동자정치세력화의 발전을 위해서는 민주노동당이 아니라 새로운 대안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진정성을 갖는 사회주의자라면 이 점을 철저히 인식하고 역사적 한계에 이른 민주노동당을 대중적으로 폭로하고 노동자정치세력화의 발전을 가져올 대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실천해야 한다. 민주노동당에 대해서는 언제 어떻게 분화할 것인가의 문제만이 사회주의자들에게 남아 있을 뿐이다.

5) 노동자정치세력화가 온전히 발전하기 위해서는 사회주의정당이 건설되어야 한다

만약 민주노동당이 2004년 이후 올바른 궤도에 올랐다면 민주노동당은 지금 사회주의정당에 근접한 정당으로 발전해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었다면 민주노동당은 한국자본주의의 모순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창당초기 이상으로 발전하는 당으로 자리 잡게 되었을 것이고, 사회주의자들은 분화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 정치활동의 풍부화를 고민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자들의 역량부족과 대응 실패, 그리고 기회주의자들의 시대착오적인 정치투쟁기조 때문에 민주노동당은 이러한 방향으로 발전하지 못하였다. 발전해야 할 때 발전하지 못하는 모든 존재가 정반대로 퇴보하듯이 민주노동당은 발전해야 할 때 발전하지 못함으로써 자신의 위치를 올바로 찾지 못하고 퇴보하여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온전한 발전에 걸림돌이 된 정당이 되어버렸다.

이제 사회주의자들은 노동자정치세력화와 노동자정당만을 말할 것이 아니라 올바른 노동자정치세력화는 사회주의노동자정당을 통해서만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당당하게 주장하고 이를 실천해야 한다.


2. 민주노동당의 한계와 오류를 극복할 사회주의정당을 건설하자!

1) 그다지 아름답지 못한 모습으로 다가온 민주노동당의 분화 - 정파연합당이 유효한 시기는 지나갔다

앞에서 지적하였듯이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의 주도하에 다양한 정파가 결합하면서 창당되었다. 어느 정파도 자체의 역량만으로는 대중적인 진보정당을 창당할 수 없는 조건이 역설적으로 정파연합당을 가능하게 했고, 2004년까지 민주노동당 내의 정파들은 서로 갈등하면서도 동거체제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이 원내로 진출한 2004년을 경과하면서 정파동거체제는 본격적으로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가장 대표적으로 문제가 불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북핵에 대한 태도문제를 둘러싸고였다. 민주노동당은 이미 2003년 이후 북미간의 공방이 격화될 때마다 정파간 이견으로 신속하게 당론을 결정하고 실천하는 데에서 실패해왔다. 통일된 정치적 입장의 결여로 당은 능동적으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선도자로 나서는 데에서 실패하였다. 여타 문제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졌고 이것이 해결불능의 지경에까지 이른 것은 대선후보 당내경선 과정에서였다. 자주파의 종파적 행동으로 발생한 당내경선 후유증으로 민주노동당 내의 정파동거체제는 이미 대선참패 이전에 사실상 붕괴된 상태였다. 대선참패는 이를 표면으로 들어나게 하였다.

원래 정파동거체제는 장기간 계속될 수 없는 것으로 언젠가 분화될 운명이었다. 그러나 매우 불리한 조건에서 분화의 시기가 찾아왔다. 대선 참패로 민주노동당 전체가 정치적 몰락위기에 처한 시기가 분화에 유리한 시기가 아님은 주관적 생각에 빠진 사람이 아니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보다 좋은 조건에서 분화가 이루어지게 되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분명한 것은 이미 동거체제는 불가능해졌다는 점이고 그다지 아름답지 못한 모습이지만 이미 분화는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이것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정파연합당으로서의 민주노동당은 각각의 주체가 원하든 아니든 이미 해체되기 시작하였고 이는 이미 다시 봉합될 수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면 선택의 문제가 남는다. 정파연합당이 해체되기 시작하는데 정파 간 이합집산을 통해 새롭게 정파연합당을 재조직할 것인가, 아니면 정파연합당이 유효한 시기가 끝났음을 인정하고 이념적으로 특징이 분명한 당을 건설하고 새로운 활로를 각각 찾아 갈 것인가가 선택지점이다.

사회주의자로서 필자는 후자가 장기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사회주의세력들이 총선에 연연해 한다거나, 내용도 불명확하고 오래 가지도 못할 새로운 정파연합당에 매달리지 말고 긴 호흡으로 사회주의 지향점을 분명히 하는 길, 사회주의정당 건설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이 길을 통해 대중들과 새로운 내용과 자세로 만나는 것이 대중들에게 보다 정치적으로 책임지는 태도이고 당장은 힘들겠지만 앞으로 힘 있게 성장할 수 있는 방도라고 생각한다. 이는 민족주의세력, 사민주의세력에게도 권유해보고 싶은 제안이기도 하다. 물론 선택은 그들의 자유이지만.

2) 우리가 사회주의정당을 건설할 때 핵심적으로 담아야 할 내용은 무엇인가?

글의 1.항목에서 필자는 민주노동당이 앞으로 노동자정치세력화의 발전에서 긍정적으로 할 수 있는 역할은 당의 구조적 한계로 더 이상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이 주장이 민주노동당으로부터 계승할 성과가 전혀 없다거나 민주노동당을 통한 노동자정치세력화의 경험에서 끌어낼 수 있는 반면교사적인 교훈이 없다는 것으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이러한 태도는 변증법을 공부한 사회주의자의 태도가 아니다. 실제로 민주노동당의 경험 속에서는 주요 회의내용의 공개와 직선제 등처럼 외국의 진보정당과 비교하여 매우 선진적인 내용들이 다수 있다(물론 이 모두는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 당원들의 투쟁으로 쟁취된 것들이다). 이 모두는 향후 건설될 사회주의정당이 계승해야 할 내용이다. 다른 한편 민주노동당은 진보정당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당원교육이 극히 부족하였다. 특히 새로이 입당한 당원들을 당 활동으로 이끄는 초보적인 교육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점은 민주노동당의 경험이 제공하는 대표적인 반면교사적인 교훈이다. 공과가 어떠하든 민주노동당의 경험은 향후 사회주의정당의 건설과 발전과정에서 소중한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또한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시도는 민주노동당만이 있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들 경험도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자신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여기에 타국의 역사적 경험도 중요한 참고자료가 되어야 한다.

앞으로 사회주의자들이 이들 교훈을 실천적으로 반영하여 건설될 당의 내용으로 최대한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이를 전제로 오늘 토론회의 발제문에서는 우리가 건설할 사회주의정당이 핵심적으로 담아야 한다고 필자가 생각하는 것을 밝혀 보겠다.

(1) 명목상이 아니라 실제로 사회주의가 이념, 강령, 전술, 조직운영에서 구현되는 사회주의정당

- 우리가 건설할 당은, 명목상으로만 사회주의를 표방할 뿐 실제의 활동은 경험주의적이고 조합주의적인 활동을 벗어나지 못하는 당이 되어서는 안된다. 또한 행세식 사회주의자들의 집합소가 되어서도 안된다.

- 우리가 건설해야 할 정당은 실제로 사회주의가 이념, 강령, 전술, 조직운영에서 구현되는 사회주의정당, 사회주의 활동이 충만한 당이 되어야 한다.

(2) 현실사회주의 실패 경험의 교훈을 반영하고, 인류가 새롭게 축적한 물질적, 문화적 성과와 새로운 삶의 양식에 대한 문제의식을 능동적으로 수용한 새로운 사회주의를 목표로 하는 당

- 또한 건설할 사회주의정당은 자신의 이념으로 내거는 사회주의를 추상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사회주의 실패 경험의 교훈을 반영하고, 인류가 새롭게 축적한 물질적, 문화적 성과와 새로운 삶의 양식에 대한 문제의식을 능동적으로 수용한 새로운 사회주의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여야 한다. 새로운 사회주의의 내용을 제시하지 못하는 사회주의정당은 변화된 역사적 지형 속에서 대중적인 사회주의정당으로 성장하기 어렵다. 지금까지 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 축적된 대안적 사회주의에 대한 논의의 성과를 모아, 건설될 사회주의정당은 자신의 사회주의의 내용을 분명하게 대중적으로 제시하여야 한다.

(3) 노동자계급이 투쟁과 조직의 주체가 되는 당 - 대리주의정당의 배격

- 민주노동당은 노동자계급의 정당임을 자처하였지만 실제로 민주노동당에서 노동자계급은 주체로서 참여할 수도, 당에 영향력을 행사하지도 못하였다. 실제의 모습은 민주노총 전현직 관료 중심의 당이었다.

- 또한 민주노동당은 당의 주체로 노동자계급을 세우지 못하고 노동자계급의 선두에서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요구 일부를 의회활동을 통해 대신 해결해주려는 대리주의정당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 앞으로 건설할 당은 철저히 노동자계급을 투쟁과 조직의 주체로 세우는 당이 되어야 하며 대리주의를 철저히 배격하여야 한다.

(4) 대중투쟁을 중심으로 선거투쟁과 의회활동을 결합하는 당

- 의회주의적 실천은 결코 계급투쟁을 발전시키지도 계급해방을 실현하지도 못한다.

- 민주노동당이 무기력한 당이 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당이 의회주의적 한계에 갇혀 조로증에 걸려 짧은 기간 동안에 무기력한 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 의회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선거투쟁과 의회활동를 소극적으로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투쟁을 중심으로 선거투쟁과 의회활동을 올바로 결합해야 한다.

(5) 노동현장에 기반을 두고 현장의 투쟁과 밀접히 결합하는 당

- 민주노동당은 의회주의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창당 이후 노동현장에 기반을 두고 현장의 투쟁과 밀접히 결합하는 당으로 발전하는 데에서 실패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창당 이후 당의 주류를 형성한 세력은 이를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은 이를 방해하였다. 이는 당의 현장분회가 창당 이후 의도적이라고 할 정도로 배격된 데에서도 잘 나타난다.

- 이러한 민주노동당의 한계는 곧바로 의회주의적 실천, 해결사적 대리주의적 실천을 고착화하는 주요 요인이 되었다.

- 우리가 건설할 사회주의정당은 이러한 반면교사적인 교훈을 철저히 반영하여 노동현장에 기반을 두고 현장의 투쟁과 밀접히 결합하는 당이 되어야 한다.

- 이를 위해서 조직구조도 현장단위조직을 기반으로 한다.

(6) 노동자계급의 선진적 부대로서의 당 + 대중적 당

- 우리가 건설할 당은 노동자계급의 선진적 부대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전위정당이다. 전위정당하면 비합직업적 혁명가조직을 연상하는 경향이 있는데 전위정당의 본질은 비합직업적 혁명가조직이 아니라 당이 노동자계급의 선진적 부대라는 데에 있다. 이를 위해 당원들의 교육, 투쟁에서의 단련을 일상적으로 실천한다.

- 전위정당의 성격을 갖는 것과 동시에 대중정당을 지향하여야 한다. 전위정당과 대중정당은 서로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 대중정당에 대비되는 것은 전위정당이 아니라 직업적 혁명가조직이다. 당은 최대한 대중정당을 지향하여야 한다.

(7) 당원이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당

- 당원은 당조직 중 하나에 참여하여 활동해야 한다. 이러한 조건에 맞지 않는 경우는 후원당원으로 조직한다. 이러한 방식이 당원들의 주체적 참여를 담보할 수 있다.

- 민주노동당의 경험을 교훈으로 당원들의 교육과 훈련에 당역량을 집중적으로 배치한다.

(8) 민주집중제가 말로서가 아니라 실제로 구현되는 당

- 민주집중제는 매우 훌륭한 조직운영원리이다. 특별히 사회주의정당만의 조직 운영원리인 것도 아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민주집중제는 구호로서만 남고 민주주의는 실종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스탈린주의정당이 그러했고 북한의 조선노동당이 그러하다.

- 현실에서 존재했던 것은 민주집중제를 구실로 특정종파, 특정종파의 수령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이를 내려 먹이는 반민주주의정당이었다. 말로서가 아니라 토론과 비판의 자유, 행동의 통일이 실제로 살아 숨 쉬는 생동감 있는 당을 건설하여야 한다.


3.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1) 가장 먼저 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 토론을 통해 문제의식을 공유하자!

- 민주노동당이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전진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긍정적 역할은 주체적 한계와 오류로 인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대안으로서 사회주의정당 건설이 필요하다는 것을 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 토론하고 문제의식을 공유하자.

- 민주노동당의 분화 시기, 사회주의 정당 건설의 구체적 경로 등은 향후 토론심화과정에서 구체화해가자. 임시 당대회 후에 민주노동당에 대한 사회주의자들의 태도를 보다 구체적으로 토론하고 결정하자.

2) 전국순회토론을 통해 사회주의당원들과 현장당원들 사이의 소통을 확대하고 의지를 모아가자!

3) 사회주의자로서 구체적인 사회주의활동을 실천하자!

- 거창한 것이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사회주의활동부터 실천하자.

- 우선 사회주의자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학습활동부터 실천하자.

- 노동현장 단위조직 건설을 실천하자.

- 당 안팎의 사회주의자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사회주의적 정치투쟁전선을 형성하자

4) 대선투쟁 평가와 당사업 및 운영 평가에 적극적으로 임하자!


맺으며

오늘 토론회의 핵심주제는 토론회 제목처럼 민주노동당에 대해 역사적 평가를 내리고 그 대안으로서 사회주의정당을 건설해가자는 것이다.

지금까지 사회주의자들은 원칙적인 입장에서 당을 비판하고 그 대안을 제시해왔다. 비정규직 철폐투쟁을 당이 자기의 것으로 안고 투쟁할 것, 의회주의를 배격할 것(당직공직 겸직금지를 지속할 것 등), 사회적 모순의 격화에 맞추어 반자본주의적 정치투쟁기조를 실천할 것 등을 주장해왔다. 그리고 만약 당이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심각한 정치적 위기에 처할 것임을 이미 2005년부터 지적해왔다. 2007년에 들어서서는 당원으로서는 가장 강력한 표현 ‘만약 당이 반자본주의적 정치투쟁기조를 확립하지 못할 경우 당은 정치적 몰락의 길로 들어설 것이라는’ 표현을 써가면서 당의 심각한 상태를 경고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경고를 당은 전혀 수용하지 않았다. 그 결과는 경고한 대로 참담한 패배와 정치적 몰락이었다. 참담한 패배 이후에도 당은 진솔한 반성과 평가와는 너무나 거리 먼 행보를 하며 한달여를 보내왔고, 실망한 당원들의 탈당사태가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자멸하였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자신이 기초하는 노동자계급과 갈수록 멀어지고 노동자계급과 소통하는 데서 철저히 실패했기 때문이다.

오늘 발제문에서 필자는 이미 민주노동당은 혁신될 수 있는 시기를 놓쳤고 더 이상 혁신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당의 창당 때부터 함께 했던 당원으로서 이런 주장을 할 수밖에 없게 퇴보한 당의 현실이 매우 안타깝다. 그러나 이것이 냉엄한 현실이다.

이제 사회주의자들은 솔직히 이를 인정하고 사회주의정당 건설이라는 대안을 실천해가야 한다. 아직 우리들은 이를 가능케 하는 구체적 경로를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지향이 올바르고 역사의 방향과 일치하며 노동자계급의 열망과 함께 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충분히 이를 찾아내고 실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오히려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당장 구체적 경로를 밝혀내는 것이 아니라 왜 지난 10년의 민주노동당을 통한 노동자정치세력화가 실패했는가를, 민주노동당 뿐만 아니라 노동운동, 민중운동 전반이 왜 침체와 무기력을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를 겸허히 반성, 성찰하는 것일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참패 이후 벌어지고 있는 당내 움직임은 매우 실망스럽다. 그것은 그 주체들에게서 운동에 대한 겸허한 반성과 성찰의 기운을 전혀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만큼 감동도 없다. 당 밖의 좌파 움직임도 아직은 그다지 고무적이지 않다. 민주노동당에 대한 평가는 넘쳐나는데 관료주의적 변질 등 주체에 대한 평가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자세에서는 제대로 된 대안이 나오기 어렵다.1

오늘 발제에서는 토론회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기대할 만한 내용 - 당에서의 분화시기, 사회주의정당 건설의 구체적 경로는 다루지 않았다. 이 주제는 앞으로 순차적으로 다루어야 할 내용들이다.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긴 호흡으로 갔으면 좋겠다. 오늘 토론회가 향후 토론과 실천에 하나의 자극제가 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으면서 발제를 마친다.
성두현 (해방연대(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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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3일 민노당사태 논평글(노힘)

[논평] ‘침몰하는 타이타닉’과 ‘구명대’, 그리고 ‘새로운 정치 주체’의 형성을 위해


2월 3일, 민주노동당 비대위의 혁신안이 소위 ‘자주파’의 집단적인 반대에 부딪혀 부결됐다. 이어 2월 4일, 심상정 비대위 위원장을 비롯한 비대위원 전원이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이로서 지난 17대 대선의 패배를 둘러 싼 민주노동당 내부의 논란은 한 매듭이 지어졌다. 그러나 2월 3일 매듭지어진 것은 ‘17대 대선을 둘러 싼 평가’만이 아니다. 87년 이후 “한국민주주의의 최대의 ‘제도적’ 성과”였다고 평가되는,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한 대중적 진보정당운동도 역사적인 한 매듭이 지어졌다. 그런데 그 역사적인 매듭은 노동자민중운동의 ‘새로운 가능성’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의원이 표현한 “침몰하는 타이타닉”처럼 그렇게 지어지고 있다.


“자주파로 보이는 대다수 대의원들이 환호성과 함께 혁신안 부결을 ‘자축’했다”고 한다. 비대위 혁신안이 “‘종북’과 일방적 책임전가식의 내용이며, 사실상 ‘반북정당화’, ‘자주통일운동 전면부정’, ‘자주대오 불인정’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판단한 소위 자주파는 당 대회를 통해 조직적인 응집력을 보여주었으며, ‘민주노동당 내 최대 세력’임을 현실에서 다시 한 번 입증해 줬다. 그러나 딱 그 지점까지다. 비대위를 내세워 대선 참패의 책임을 모면하고, 또 그 비대위의 혁신안을 부결시킴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실력으로 입증해서 “분열분파주의 세력을 준엄하게 심판”했지만, 바로 그 심판의 결과로 그들은 침몰하는 민주노동당과 함께 역사의 심연 속으로 가라앉거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더 이상 그들이 정치적이든 조직적이든 다수이기 때문에 노동자민중진영을 배타적으로 대표하는 시대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누구를 탓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그들 노선의 현실적인 결과이다.


‘혁신안’의 부결로 전원 사퇴하게 된 비대위는 “민주노동당에 여전히 낡은 질서가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고, “변화는 과거 대신 미래를 선택할 때 가능”하다며, 그 ‘미래’의 모습이 “국민들 생활 속에 푸른 진보를 실현”하는 것이라 했다. 또 일부는 “지금 할 일은 침몰하는 배에서 탈출하려는 승객을 구조하는 일”이라고 하면서 ‘새로운 진보신당’이라는 구명대를 자처하며 나서고 있다. 침몰하는 민주노동당이 일으킬 거센 파장을 진보신당이라는 구명대를 통해 벗어날 수 있는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하지만, 그 구명대가 노동자민중진영을 ‘새로운’  미래로 안내하기는 힘들 것이다. 비대위든 ‘진보신당’이든 민주노동당의 실패 혹은 대선에서 참패의 원인을 ‘데모당’, ‘민주노총당’, ‘친북당’이라는 우익적 비판을 전면적으로 수용해서 평가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경화와 개량주의화를 ‘새로운 미래’로 포장하고 있을 뿐이다. ‘제2의 창당’이든 ‘독자 신당’이든, 그 구명대에 오른 것은 노동자민중들이 아니라, 일부 사민주의 정치세력들 뿐이다. 그들이 신자유주의 세계화라고 하는 거대한 자본의 공세를 헤쳐 나갈 수 있을 지, 아니면 ‘국민들의 신뢰’라는 이름으로 자본 운동의 하위 파트너로 편승해 나갈 지는 역시 그들의 몫이다.


이제 소위 ‘87년 체제’는 이명박 정권의 등장과 민주노동당이라는 개량주의적 진보정당운동의 파탄으로 한 매듭을 짓게 됐다. 노동자민중운동 진영 그 누구도 그 책임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다. 그러나 다음 두 가지 점은 이제 분명한 현실이 됐다.

먼저 민주노동당은 지난 대선 이후 당대회에 이르기까지 보여준 모습과 태도를 통해 확연히 드러난 바와 같이 더 이상 노동자민중의 정치적 대표성을 말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민주노동당은 물론 민주노동당 바깥의 일부 논자들이 오늘의 민주노동당이 처한 사태를 대하면서도 여전히 민주노동당을 노동자민중이 지키고 유지해 나가야 할 소중한 자산이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이는 완전히 시대착오적인 것이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일 뿐이다. 민주노동당은 최소한 자신들 내부의 문제조차 절차적, 형식적으로나마 처리해 나갈 능력이나 의지가 없음을 만천하에 그대로 드러냈다.

다음으로 이제 노동자민중운동 진영은 민족주의 진영, 사민주의 진영, 반자본 사회주의진영으로의 조직적 재편이 불가피하게 됐다는 점이다. 당분간 각각은 스스로의 입장과 노선을 정비하고, 조직을 세우고, 나아가 대중적인 검증을 받아 나갈 수밖에 없다. 더 이상 막연한 ‘진보’라는 이름으로 이러한 정치노선의 차이를 흐트려서는 안된다. 노동자민중진영의 ‘단결’이라는 명분으로 패권적인 연대 질서가 강요되서는 안된다. 이제 자신들의 분명한 정치적 전망을 전제로 서로 논쟁하고 경쟁하고, 또 새롭게 연대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 결과로 향후 10년~20년의 노동자민중운동을 정치적으로 책임질 새로운 정치적 주체가 형성돼야 한다.


노동자의힘도 이 과정에서 반자본 사회주의 한 정치주체로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2008. 02.05.

노동자의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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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평가와 진보운동(lk)

 


대선 평가를 둘러싼 몇 가지 숙고와 진보운동

이광일(성공회대) 



이번 대선에서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는 48.7%를 득표하였고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는 26.2%의 지지율을 얻었다. 진보를 자임한 민주노동당은 3%, 사회당은 언급하기 민망할 정도의 득표를 기록했다. 이러한 선거결과에 근거하여 권력의 행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다수 언론들과 정치평론가들은 한나라당의 압도적 승리를 전제로 선거 의미에 대한 촌평과 향후 전망을 제출하고 있다. ‘이명박특검법’에 대한 한나라당의 연이은 거부권행사 요구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진정 이것이 전부인가. 한나라당의 승리는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에 대한 평가를 포함하여 몇 가지 문제에 대해 재고해 볼 필요는 있다. 그저 ‘그들의 말’에 휩쓸릴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압도적 승리’에 가려진 것


첫째, 투표율과 득표율에 대한 해석의 문제이다. 이번 선거의 전체투표율은 62.9%로 37.1%의 유권자가 투표를 하지 않았다. 대선 중 역대 최저의 투표율이다. 이를 고려해 산술적으로 추산해 보면, 이명박 후보는 전체유권자 가운데 약 30.8% 정도의 지지를 받아 당선되었다. 이런 측면에서 ‘압도적 지지’에 의한 당선이라는 평가는 상대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향후 전망과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오히려 투표하지 않은 부분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이번 선거에서 정권교체의 열망이 높았던 보수정치세력 지지자들의 결속력은 매우 높았다.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에 무소속 이회창 후보의 15.1%를 합하면 63.8% 정도가 보수파를 지지하였고 이것은 전체유권자의 40% 정도이다. 투표할 만큼 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유추할 때, 기권표에는 항존하는 정치적 무관심층 이외에 개혁적이거나 진보적인 성향의 표가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선거 결과가 진즉에 결정되었기에, 혹은 기존 진보정당들의 퇴영적인 모습과 새로운 의제(agenda)가 빈곤한 상황에서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투표와 연결시키지 않은 층이다. 민주노동당 지지자 가운데 적지 않은 부분이 ‘반한나라당’이라는 방침 아래 열린우리당 후보를 찍었을 것이고 또 다른 적지 않은 부분은 퇴영적인 민노당에 실망하면서 기권했을 것이다. 사회당의 지지율이 당원수에도 훨씬 못 미쳤다는 점을 감안할 때, 거기에도 다수의 기권표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지난 선거에서 “그래도 진보정당인데’라며 민주노동당에 표를 주었던 진보, 급진지향의 대중 가운데 다수가 투표장에 나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상정하는 것이 비현실적일까.


물론 투표율과 득표율에 대한 평가는 다양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 기권표의 성격을 무시한 채, 이번 선거를 한나라당의 ‘압도적 승리’라고 평가하며 향후 정치지형을 점치는 것은 눈에 보이는 현상을 너무 과잉 평가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 그것이 지니는 한계는 이미 나타나고 있는데, 한나라당의 ‘이명박특검 철회요구’가 그것이다. 이러한 압박은 최소한 특검의 행보를 미리 제한하려는 정치적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국 이 침묵한 사람들의 자존심을 더욱 자극하는 요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보진영의 경우, 최소한 내년 총선의 향배와 대책, 그리고 노무현정권보다 더 강한 신자유주의 공세가 예상되는 지금, 이 드러나지 않은 부분에 대한 좀 더 객관적인 접근이 필요한 것은 아닌가. 이들 가운데 최소 10-15% 정도가 어떤 의제를 매개로 어떤 정치적 행보를 보이느냐가 향후 정치지형과 관련하여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진보정치세력의 재구성 여부와 밀접한 연관을 지니고 있지만 말이다. 진보의 덕목이 무엇인가. 현상을 무시해서도 안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간과해서도 안된다는 사실이다.


‘이념과 실용의 대비’, 현실을 가리는 이데올로기


둘째, 대부분의 언론이 합창하는, 이념이 탈각되고 실용이 압도한 선거라는 해석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이러한 평가는 보수의 언어로 현실을 가리고자 하는 반지성적인 평가이다. 지금 지구적, 일국적 수준에서 전개되는 정치는 신자유주의라는 이념, 발상에 의해 압도적으로 지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97년 IMF위기 이후 한국정치의 궤적 또한 이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이번 선거 또한 예외가 아니다. 이와 관련하여 이명박 후보에 대한 20-30대의 지지를 두고 ‘젊은 세대=진보’라는 등식이 깨졌다고 부산을 떨고 그것을 근거로 ‘실용주의’가 승리하였다는 평가가 무반성적으로 제출되고 있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자사의 기사에 대한 대중적 관심제고가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일부 언론, 시장에 지배받는 여론조사기관과 정치컨설턴트 등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자극적 평가가 필요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들은 그 근거가 견고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적실한 것도 아니다. 사실 이들 세대의 거의 다수는 신자유주의 이외에 어떤 이념과 발상, 대안들이 존재하는지, 그리고 신자유주의가 어떤 사회관계와 권력관계 위에서 작동하고 있는지조차 잘 알지 못한다. 아니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집권 대통합민주신당과 야당인 한나라당이 공유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이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는 정치세력인지 여부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한다. 다수의 일반 대중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바로 그렇기에 이들은 내용을 따져보지도 않은 채 ‘경제성장, 일자리 창출’이라는 신자유주의정치세력들의 선동적인 말 한마디와 자신의 미래를 기꺼이 바꾸는 대담함을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 이들 세대에 “당신은 스스로를 진보적 이라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보수적이라고 생각합니까?”라고 물어 그 응답률로 이들의 진보성 여부를 규정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가. 또한 젊은 세대의 특성상 이들 가운데 스스로를 보수적이라고 응답할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연구자적 입장에서 말하면, 이런 이유로 인해 ‘양적 조사방법’이 아닌 ‘질적 조사방법’이 존재하는 것 아닌가.


흔히 평가하듯 ‘이념의 탈각’과 ‘실용주의의 부각, 압도’는 서로 대립시켜 비교, 설명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신자유주의라는 하나의 이념, 발상이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비대칭적인 현실 때문에 그 안에서 실용주의가 팽배하게 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개혁, 심지어 진보를 자처하는 일부 언론들조차 비판 없이 추종하는, 즉 새로이 출범할 이명박정권을 ‘이념을 넘어서는 실용정권’ 등으로 묘사하는 평가는 피상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그 인식, 인정 여부와 무관하게 마치 이념과는 관계없는 듯 행세하면서 현실을 지배하는 신자유주의 권력의지에 스스로를 복속시키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집권 자유주의정치세력의 운명과 활로


셋째, 기존의 집권 자유주의정치세력의 향후 위상과 관련된 평가이다. 이번 선거에서 이들이 얻은 득표율은 26.2%로 지난해 5.31지방선거의 광역의회 비례대표 득표율에서 열린우리당이 얻은 21.2%보다는 높다. 하지만 지자체선거와 달리 이번 선거가 대통령선거라는 점, 투표율이 당시 투표율보다 10% 이상 높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거의 대동소이한 득표율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다 이들 세력이 신자유주의 정치세력으로 전화한 이후 한나라당과의 차별성이 거의 사라진 점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득표율은 자유주의정치세력이 독자적으로 얻을 수 있는 최대의 득표라 할 수도 있다. 집권을 위해 과거 이들이 3당합당, DJP연합 등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그리고 이번 선거에서 이들이 왜 그토록 ‘반한나라당의 단일화’에 목메었는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이들이 다시 살아날 수는 있을까. 곧 다가올 내년 4월의 총선거에서 그것은 가능할까. 다수의 언론과 평론가들은 ‘친노파’와의 단절 실패와 ‘도로 열린당’으로의 회귀 등을 참패의 핵심 요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이른바 ‘노무현프레임’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해법은 탈노무현이다. 그런데 진정 이들이 탈노무현프레임을 구축할 수 있을까. 애석하지만 이번 선거 과정은 그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었다.


그렇다면 왜 불가능할까? 그것은 한마디로 노무현프레임의 핵심이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정책이기 때문이다. 97년 IMF위기를 계기로 등장한 김대중정권 이후 자유주의정치세력에게 주어진 역할은 신자유주의를 국가사회의 운영원리로 정착시키는 것이었는데, 그렇다면 ‘탈노무현프레임’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것은 김대중정권과 노무현정권을 거치며 심화된 신자유주의에 대한 제동을 의미하는 것 아닌가. 과연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이번 대선에서 나타났듯 자유주의정치세력은 그것에 제동을 걸기보다 오히려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신자유주의정책에 더욱 더 밀착하는, 따라서 한나라당과 더욱 유사한 정책을 제출하기 일쑤였다.


사정이 이러하기에 이들 자유주의정치세력은 자신들의 차별성을 이른바 ‘평화.개혁세력’이라는 언술에서 찾고자 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호소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87년 식 ‘민주 대 반민주’의 구호로 한나라당을 반평화, 전쟁수구세력으로 몰았지만, 대중은 거기에 호응하지 않았다. DJ가 ‘한나라당의 집권’이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역설하며 이들을 돕고자 하였으나 그것 또한 찻잔 속의 미풍도 되지 못하였다. 그것은 한나라당이 ‘신대북정책’으로 맞불을 놓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본질적 이유는 이른바 평화.개혁을 상징하는 개성공단이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 그 프레임 안에 존재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의 핵심은 신자유주의 분업체제에 북한을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가의 문제 아니었던가. 즉 대북정책은 신자유주의체제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하위정책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평화.개혁 담론은 대중에게 주변적, 부차적이었다. 상대적으로 안온한 삶을 사는 대중은 그나마 무엇인가 새로운 가치들을 자기화하고자 하는 욕망을 지닐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 삶 그 자체에 등이 휘어 고통 받는 대중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다. 그들은 그 고통을 강제한 가시적 정치권력을 가장 중요한 비판의 대상으로 설정하는 반면, 그 고통을 해소시켜주겠다는 선전과 선동에는 강하게 이끌린다. 더군다나 ‘신자유주의의 길’만이 실현가능한 활로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이라면, 즉 ‘진보적 대안’이 의미 있는 대중적 영향력을 지니고 있지 못한 상태이라면 그들이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는 명약관화한 것 아닌가.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자유주의 정치세력들은 다시 살아남을 수 있는가. 그들에게 주어진 길은 두 가지인데, 그 하나는 이번 대선과정에서 이미 그들 가운데 일부가 그랬던 것처럼 커다란 줄기에서 차이가 없는 한나라당, 이회창의 흐름에 동참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신자유주의에 반대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것이 야기하는 문제의 심각성을 자기화하면서 그러한 문제를 완화, 해소하는 방향으로 선명히 이동하는 것이다. 이 후자의 길은 이번 대선에서 범여권으로 분류된 창조한국당의 정책 내용과 통할 것이다. 기우에서이지만 어떤 정치세력, 어떤 당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내세우는 내용이 중요하다. 결국 대통합민주신당으로 대표되는 현 집권 자유주의정치세력은 이 두 가지 길을 중심으로 하여 재구성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만에 하나 혹시 그들이 진보정치세력과 연대할 가능성은 없는가. 이 질문과 관련하여 이 지점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그것은 집권 자유주의정치세력들이 스스로를 신자유주의자라고 말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항상 그들은 자신들을 개혁주의자, 민주주의자로 포장해 대중에게 소개해 왔다. 어떤 이는 그들이 ‘좌파신자유주의’라고 스스로를 규정하지 않았느냐고 말할지 모르겠으나, 거기에서 중요한 것은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좌파’였고 그것은 단지 개혁, 민주주의의 또 다른 이름이었을 뿐이다. 여전히 다수의 대중은 그것이 신자유주의 개혁, 신자유주의에 근거한 민주주의라는 점을 알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삶에 고통 받는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성장과 번영을 약속하는 신자유주의’를 ‘좌파의 사슬’로부터, 즉 혐오스러운 ‘개혁주의자, 민주주의자’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현실의 고통은 해결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좌파 아닌 자유주의정치세력이 한편으로 좌파를 조롱, 희화화시키면서 다른 한편 그것을 통해 신자유주의의 대중적 영향력을 더욱 강화시켰다는 점이다. 바로 이것이 노무현정부가 이명박정권을 탄생시킨 일등공신이라는 세간의 평가로부터 진보가 끄집어 내야하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정치적 교훈이다. 이런 그들이 어떻게 진보와 연대할 수 있겠는가.


자유주의정치세력이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자신들의 주장이 옳았고 대중들이 그것을 알아주지 못한 것이 억울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 한나라당이 남북관계를 경색시켜 줄 것을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미리 예단할 수는 없지만, 어디 그것도 한나라당 마음대로 되겠는가.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은 그리 간단치 않다.


진보의 완패와 진보정치세력의 재구성


마지막으로 진보정치세력의 현재, 향후 전망과 관련된 것이다. 민주노동당, 사회당에 대한 피판은 이미 많은 것들이 제기되어 왔고 지금 이 순간에도 제기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것은 아니다.


비판이 전혀 먹히지 않는 화석화된 정당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에 바라는 것은 최소한 진보정당에 부합되는 행보를 걸으라는 것이다. 굳이 “제도정당은 어쩔 수 없어!”라는 낡은 비판에 기대고 싶지 않다. 또 그 제도의 경계를 넘어서라고 말하지도 않겠다. 그것은 민주노동당, 혹은 사회당의 몫이라기보다 ‘더 많은 진보, 더 많은 민주주의’를 목표로 제도/비제도의 경계를 헐어야 하는 ‘운동정치들’의 몫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신대북정책 한방에 끝난 완고한 민족주의, 코리아연방, 그리고 말의 성찬뿐인 환경 및 생태문제에 대한 언급, 소수자 차별에 대한 무지와 감수성 빈곤 등은 그 지지자들, 우호자들에게 민주노동당을 진보정당으로 호명하는 것을 망설이게 만들었다. ‘비정규직노동자의 당’이라고 외쳤지만, 비정규직법의 통과 과정에서 보인 비일관성과 동요 이후 민주노동당의 그러한 외침은 의구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혹시 민주노동당의 정파들이 과거에 뿌렸던 땀과 눈물로 현재 자신들이 진보라는 점을 증명하고자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시대착오적이다. 굳이 ‘87년 체제’의 종말을 언급할 필요도 없다. 민주주의와 진보는 과거를 묻지 않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그것들은 오직 지금 이 순간 어디에 서 있는가를 그 판단의 유일한 준거로 삼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민주노동당은 지금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가.


다른 한편 사회당은 어떤가. 그 대선후보는 어떤 과정을 거쳐 선출되었는가. 그것이 내세운 ‘사회적 공화주의’는 또 어떻게 해서 탄생했는가. 그에 대해 대중은 물론 그 당원조차 잘 알지 못한다. 이 사회에 공화주의를 부정하는 세력은 없다. 문제는 그 ‘사회적’이라는 수식인데, 그것은 결코 새로운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다양한 사회관계들에 내재한 차별과 배제를 제거하자는 ‘급진민주주의’의 또 다른 정치적 판본으로 독해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사회당이 환호한 창조한국당의 ‘사람중심 진짜경제’가, 그에 근거한 경제정책들이 ‘사회적 공화주의’와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알고 싶다. ‘사람중심의 진짜경제’에 대해 보였던 공감과 환호는 자유이지만, 여전히 중요한 것은 인간일반이 아니라 분열된 역사적 사회관계들이다. 그 안에 내재된 권력관계들이며 정치들이다. ‘사람중심의 진짜경제’가 사회당의 급진민주주의와 무언가 상통한다고 생각하며 거기에 환호하였다면, 지금 사회당이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선거가 끝난 지금, 사회당은 민주노동당에 대한 비판을 잠시 접어두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사회당의 몫이 아니다. 지금 사회당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이번 대선과정에서 자신들이 보인 정책과 정치적 행보에 대한 냉철한 성찰이기 때문이다. 지금 대중은 사회당이 무엇을 하는 정당인지 알지 못한다. 자신들의 당원수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는 0.07%의 지지율이 사회당의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주는 것은 아니겠지만, 지금 공당으로서의 사회당의 존재가 어떠한가를 반증하는 증거로서는 충분한 수치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대선의 진짜 패배자는 ‘개혁진보세력’이 아니라 진보정치세력이다. 이번 선거의 판세는 63.8% : 26.2%+3%+0.07%가 아니다. 63.8%+26.2% : 3%+0.07%, 즉 90% : 3.07%인 것이다. 여기에 만일 창조한국당을 친신자유주의 정치세력으로 규정할 경우, 그 패배의 골은 더욱 깊다. 범신자유주의세력이 투표자의 96%를 획득한 것이다. 이 초라한 3.07%를 가지고 진보정치세력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아직도 좌고우면할 일이 남아 있는가. 진정 대중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면 이제 남은 것은 자신을 버리는 길밖에 없다.


첫째, 그 방법이 어떠하든 민주노동당은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 계급적이지도, 급진민주주의적이지도 않은 ‘완고한 자주파’들과 단절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그 재편의 과정에서 사회당 등과 통합할 필요가 있다. 변화를 전제로 한 민노당과 사회당의 강령은 내용상 서로 함께 하지 못할 정도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생각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 제도정당 외부의 계급적, 급진민주주의적인 정치세력들, 혹은 ‘계급좌파’와 ‘비계급좌파’ 또한 이러한 움직임을 외면하지 말고 직간접적으로 개입, 결합할 필요가 있다. 과거와 같은 ‘제도정치=개량주의’라는 낡은 혐오는 금물이다. 이미 언급했지만, 그 한계는 제도/비제도의 경계를 끊임없이 재구성하고자 하는 운동정치들의 과제로 계속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넷째,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의 현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가 재검토, 철회되어야 한다. 지금 배타적 지지는 오히려 진보정치의 보수화를 조장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 이러한 변화에 기존 진보정당의 대중적 명망성과 영향력을 지닌 리더들이 동참하도록 최대한 요구할 필요는 있지만, 결코 그들에게 연연해서는 안 된다. ‘낡은 틀’에서 비상할 수 없다는 것을 그들도 잘 알고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더욱 중요한 것은 인물보다는 바로 그 낡은 틀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번 대선이 진보정치세력에게 준 기회를 어떻게 잡을 것인가. 시간은 진보정치세력을 마냥 기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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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당 재구성(sk)

 

진보정당 운동의 전면적인 재구성이 필요하다!

김세균 (서울대 교수, 정치학)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압승을 가져온 2007년 대선은 그간 한국정치를 주도해온 자유주의세력의 정치적 결집체였던 통합민주신당만이 아니라 노동자-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의 열망을 안고 출현한 민주노동당의 참패를 가져왔다. 민주노동당 운동은 그간 한국의 진보정당운동을 대표해 왔다. 그런 만큼, 민주노동당의 참패는 민주노동당 운동의 위기만이 아니라, 진보정당 운동 전체의 위기를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위기는 진보정당 운동이 지금과 같은 내용과 방식으로 전개되는 한 앞으로도 희망이 없음을, 새로운 희망을 창출하려면 무엇보다 과감한 자기혁신과 재구성이 있어야 함을 지시한다.



민주노동당이 해소되어야 할 이유


민주노동당은 새로운 진보정당에게 진보정치의 바턴을 넘기고 역사 속에서 사라져야할 조직이 되어버렸다. 왜 그런가? 그 가장 중요한 이유는 민주노동당이 크게 보면 ‘민주개혁세력’, ‘평화애호세력’ 등으로 자처해온 자유주의세력의 제2중대 이상의 정치조직이 되지 못한 데에, 이로 인해 자유주의세력이 성장할 때 동반성장하다 자유주의세력이 추락할 때 동반추락해야 하는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었던 데에 있다. 민주노동당은 민주개혁세력과 구분되는 ‘급진적’ 진보세력이 아니라, ‘민주개혁세력 내부의 좌파’ 이상의 조직이 되지 못했다. 이렇게 된 것은 민주노동당이 애초부터 장기적으로 당을 함께 할 수 없는 정파들의 연합에 기초하여, 그것도 (사회주의 경향의 계급적 진보세력 일부가 참가하긴 했지만) ‘자주파’로 불리는 좌파 민족주의세력과 ‘평등파’의 주류를 형성하는 사민주의 경향의 계급적 진보세력의 연합에 기초하여 조직된 데에 기인한다.

주지하다시피, ‘자주파’ 내지 ‘민족해방파(NL파)’는 민족통일의 달성과 같은 민족문제의 해결을 계급문제를 포함한 다른 모든 문제들의 해결 보다 우선시하고, 반제문제 등을 일차적으로 ‘민족해방’의 관점에서 파악하는 좌파민족주의세력을 가리킨다. 이와는 달리, ‘계급적 진보세력’이란 계급문제의 해결을 민족문제를 포함한 다른 모든 문제들의 해결 보다 우선시하고, 민족문제는 물론 반제문제 등을 계급문제의 해결의 관점에서 파악하는 정치세력을 가리킨다. 그런데 원래 ‘민중민주파(PD파)’로 불린 계급적 진보세력은 애초에는 사회주의적 지향성을 지닌 단일한 세력으로 출현했지만, 이후 크게 보아 체제 내적 개혁을 추구하는 사민주의세력과 자본주의 극복을 추구하는 사회주의세력으로 분화되었다. - 유럽에서는 사민주의자도 대체로 자신을 사회주의자로 동일시여기지만, 여기서는 혼돈을 피하기 위하여 사민주의와 사회주의를 구분한다.-  때문에 오늘날에는 더 이상 ‘단일의 계급적 진보세력’, ‘단일의 PD파’, ‘단일의 평등파’ 등에 대해 말할 수 없다. 오히려 (혁신자유주의 세력을 포함한 자유주의세력과 구분되는) 진보세력은 크게 보아 ‘좌파민족주의세력’과 ‘사민주의세력’ 및 ‘사회주의세력’으로 삼분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들 세력들은 추구하는 운동의 궁극적 목표와 목표 실현의 수단과 경로 등에 대해 상이한 견해들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계급문제와 민족문제 등이 중첩적으로 뒤얽혀 있고, 신자유주의 반대,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 반전반제의 과제 등이 절박한 당면과제가 되어 있는 오늘날의 조건 속에서 이러한 당면 과제들의 해결을 위해 차이를 넘어 서로 힘을 합쳐 투쟁해야 할 진보세력 내부의 주요한 3대 분파이다. 이들 세력들은 서로 공통적으로 인식하는 당면과제의 해결을 위해 차이를 넘어 함께 투쟁해 나가야 할 책무를 지닌다. 그렇지만, 이들 세력들이 당을 함께 할 수 있는 세력들이 아니라는 점을 우리는 옳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당면과제들의 해결을 위한 연대는 추구하는 궁극적 목표 등에서 차이를 지닐지라도 그 과제들의 해결을 위해 연대하는 제 세력들의 전선운동체나 공동투쟁체에 의해 확보될 일이다. 이와는 달리, 당이란 전선운동체 등과는 달리 무엇보다 자신들의 궁극적인 정치적 목표의 달성을 위해 노력하는 동일한 세력의 정치적 결집체여야 할 것이다. 실제로 당의 목표 등이 전선운동체와 같은 조직의 그것들과 같은 것이라고 한다면, 전선운동체 등과 구분되는 당과 같은 정치조직이 왜 별도로 필요한 지를 옳게 설명할 길이 없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은 ‘노동자-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라는 대중적 요구가 증대된 것을 배경으로 좌파민족주의세력과 사민주의세력 중심의 계급적 진보세력이라는 애초부터 당을 함께 할 수 없는 양대 정파가 중심이 되어 만든 전선운동체적 성격의 정파연합당으로 출범했다. 이런 당이란 잘 운영될 때에도 전선운동체가 행할 수 있는 것 이상을 행할 수 없다. 게다가 이런 당은 현재 민주노동당에서 일어나고 있는 ‘종북주의’ 논쟁이 보여주다시피 공통의 당면과제 이상의 문제와 관련해서는 ‘봉합’ 이외에는 다른 해결의 길이 없는 끊임없는 노선 분쟁에 휩쓸리지 않을 수 없고, 평등파가 자주파의 ‘패권주의’를 문제 삼고 있는 데에서 드러나다시피 특정 정파의 패권이 관철될 경우 당 운영 문제 등과 관련하여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좌파민족주의세력은 계급문제의 해결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민족문제의 해결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남북한의 화해-협력과 민족문제 해결을 위한 자유주의세력과의 연대나 진보대연합의 형성 등을 중시한다. 그리고 사민주의세력은 개혁의 진전 그 자체만을 중시하기 때문에 사민주의와 혁신자유주의 내지 개혁적 자유주의의 차이란 실제로는 그다지 큰 것이 아니다.

이처럼, 민주노동당은 전선운동체 등을 통해 연대하거나, 필요하다면 ‘선거연합’ 등을 행할 수 있지만 당을 함께 할 수 없는 세력들이 진보운동의 당면과제에 대한 공동 대응을 우선시함으로써 생겨난 당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출현한 당이다. 또한 민주노동당은 노동자-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의 열망을 안고 출현한 당이긴 하지만 자유주의세력의 제2중대 역할 이상을 하기 어려운 세력들이 주도하는 당이 됨으로써 노동자-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에 기초하여 우리 사회의 발본적인 변혁을 추구하는 당과는 거리가 먼 당,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의 진정한 의의를 왜곡하고 퇴색시키는 당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의회 진출’ 이라는 당시 진보세력의 당면과제를 최우선시함으로써 창당된 당이기 때문에 의회주의와 합법주의, 대리주의와 관료주의 흐름이 지배적이 된 당, 의원 활동에 대한 당적 통제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는 당, 명망가된 의원들에게 갈수록 의존하는 당, 누가 당선가능한 비례대표 후보가 되는가가 정파들의 사활적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로 되는 당이 되어버렸다. 거기서 더 나아가 오늘날에는 자주파의 패권까지 관철됨으로써 실질적으로는 계급노선이 민족주의노선과 계급연합노선 등에 종속되어 있는 ‘무늬만의 노동자계급정당’으로 전락해 버렸다. 이처럼, 지금까지의 민주노동당은 민족주의와 사민주의의 불행한 결혼이 탄생시킨 정당이며, 사회적 관계의 근본적인 변혁을 바라는 많은 평당원의 사회주의적이거나 사회주의 지향적 열망을 민족주의적, 사민주의적, 의회주의적 전망 속에 가두는 정당이었다.

또한 민주노동당은 그간 민주노총과 전농과 같은 대중조직의 배타적 지지에 크게 의존하는 정당이었다. 그런데 이런 배타적 지지-대변 관계 형성은 민주노동당을 진보정당을 대표하는 정당으로 만들고 민주노동당의 양적 성장 등에 기여했지만, 실질적으로는 당과 대중조직들 모두에게 치명적인 손실을 안겨주는 것이었다. 진보정당은 무엇보다 사회적 관계의 총체적 인 변혁을 위해 투쟁하는 조직이어야 하는 반면, 대중조직은 무엇보다 대중들이 직면한 절실한 당면과제의 해결을 위해 투쟁하는 조직이어야 한다. 그러나 민주노동당과 대중조직들 간의 그런 배타적 지지-대변 관계의 형성은 민주노동당을 대중조직의 볼모로 만드는 동시에 대중조직을 민주노동당의 볼모로 만들어 버렸다. 그 결과 민주노동당은 대중조직의 한계를 넘어서는 당다운 당으로 활동하는 데에 방해를 받았고, 대중조직은 민주노동당 정치에 종속된 채 대중조직다운 대중조직으로서 활동하는 데에 방해를 받아 왔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새로운 진보정당의 상


위에서의 논의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민주노동당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위기가 민주노동당이라는 조직 틀을 유지시키는 선상에서 제기되는 ‘내부 혁신’이나 ‘제2창당 운동’ 등을 통해 극복될 수 있는 위기가 아니라, 참으로 진보정당 운동의 전면적인 재구성의 절실함과 시급함을 알리는 위기라는 점이다. 그런데 진보정당 운동의 재구성은 민족주의와 결별한 새로운 사민주의 정당을 건설하기 위한 것도, 당을 현재의 민주노동당 보다 더 우경화시키고 진보정치를 결국 자유주의적, 민족주의적 정치의 아류로 전락시키는 데에 기여할 따름인, 혁신자유주의세력들까지 포괄하는 진보대연합 정당을 건설하기 위한 것도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기는커녕 진보정당 운동의 재구성은 그와는 정반대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어야 한다. 그 방향은 기본적으로 진보정당 운동을 더욱 급진화시키는 방향, 자본주의의 극복을 공개적으로 천명하며, 그 극복을 위해 투쟁하는 사회주의적 노동자계급정당이라는 새로운 진보정당을 건설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자본주의사회의 발본적인 변혁을 추구하는 진보정당다운 진보정당은 사회주의적 계급정당 이외에는 없기 때문이며, 또 그런 정당만이 노동자-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의 열망을 올곧게 대변하고, 그 참다운 대의를 실현시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늘날 축적위기에 갈수록 더 깊숙이 빠져들고 있는 자본주의는 노동자대중에게 갈수록 더 많은 고통을 강요하고, 이들을 위한 사소한 개혁조차 불허하는 지극히 야만적인 체제로 변모하고 있다. 이는 오늘날 혁신자유주의적-사민주의적 개혁을 통한 자본주의의 전반적인 쇄신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졌음을, 또 이로 인해 인류가 오늘날 더 한층의 야만이냐, 아니면 사회주의적 변혁이냐의 기로에 처해 있음을 가리킨다. 이런 정세에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도 오늘날 우리에게 요구되는 진보정당은 다름 아닌 사회주의적 노동자계급정당이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사회주의적 노동자계급정당은 그러나 거대한 역사적 비극을 경험한 이전의 사회주의정당 운동의 과오와 한계를 넘어서는 정당이어야 한다. 그 정당은 무엇보다 대중정치의 활성화에 기여하는 정당, 대중들의 투쟁과 일상적으로 결합하는 가운데 대중들을 신자유주의-자본주의 이데올로기로부터 해방시키기고 정치의 진정한 주체로 상승시키는 데에 기여하는 정당, 국가권력을 대중권력으로 대체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정당, 철저히 민주적인 사회주의체제의 건설을 추구하는 정당, 생태주의적-여성주의적 관점을 적극 수용하고 계급적 억압 등으로 남김없이 환원되지 않는 모든 형태의 사회적 억압과 차별에 반대하며 사회적 소수자들의 권리를 유보 없이 옹호하는 21세기형의 새로운 사회주의적 계급정당이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이 정당은 이 시대의 주요한 당면과제의 해결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신자유주의 등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들과  연대하면서도 그 연대가 사회주의적 변혁에 기여하는 것이 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정당이 되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진보정당,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


누가 새로운 진보정당의 건설에 앞장서야 할 것인가? 그 건설에 일차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부분은 말할 필요도 없이 민주노동당 내외의 모든 계급적 좌파세력들이다. 이들에게 시급하게 요구되는 것은 새로운 진보정당을 건설하기 위해 분산되어 있고, 분열되어 있는 지금의 상태에서 벗어나 현재의 조직적 소속과 노선상의 차이 등을 넘어 한시바삐 힘을 합치는 일이다. 이는 현 시기에 계급적 좌파세력들에게 요구되는 지고의 과제이다. 이 과제를 회피하거나 이 과제에 분파적, 타성적으로 대처하지 말라! 그리고 이런 노력에 기초해 노동현장과 사회운동의 제 영역에서 활동하는 선진노동자들과 선진적 활동가들을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에 적극 동참시키고, 바로 이들이 새로운 당의 중추가 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그런 노력을 통해 건설되는 새로운 진보정당은 사회변혁을 추구하는 진정한 노동자대중정당으로 자신을 계속 성장-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위기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의 호기로 전환시키자!


민주노동당 운동의 위기는 진보정치 전체를 위기로 내몰고 있지만, 미래를 담보할 수 없는 낡은 수구적 진보정치를 노동해방, 사회해방의 미래를 담보하는 새로운 급진적 진보정치로 대체할 수 있는, 참으로 소중한 호기도 제공해 주고 있다. 위기의 호기로의 전환은 그러나 어디까지나 위기를 호기로 전환시키기 위한 많은 이들의 집합적 의지의 결집과 이들의 과감하면서도 책임 있는 행동의 전개를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는 일이다. 우리 사회의 발본적인 변화와 진보정치 다운 진보정치의 전개를 염원하는 모든 이들은 이 시기 진보세력의 가장  절박한 정치적 과제가 된 진보정당 운동의 전면적인 재구성을 위해 함께 힘을 합쳐 나갈 과제 앞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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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계급정치이다(jh)

 

이제는 계급, 그리고 계급정치이다!

- 진보정당운동의 위기와 변혁적 정당운동의 전망


이종회(진보전략회의(준))



한국에서 자유주의 정치가 한껏 풍미하던 시대는 지나가는 것으로 보인다. 지역의 영향은 아직 여전하다손 치더라도 민주개혁의 문제를 기준으로 나뉘었던 투표행태는 2007년 대선을 기점으로 무너져 내린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년간의 자유주의 정치가 반공과 분단이 만들어 낸 억압적, 병영적 체제에 대한 역사적, 사회적 부담을 덜어낸 데 기인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로서 자유주의 정치의 역사적 소임은 김대중, 노무현과 함께 뒷전으로 물러나고 있다.


자유주의 정치의 가장 주요한 역사적 소임은, 국가가 주도하고 재벌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발전전략을 해체하고 지구적으로 전면화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손’을 불러들이고 전일화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청년실업, 비정규직으로부터 실업이라는 불안정노동을 일상화하고 빈곤과 양극화를 낳았다. 결과적으로 자유주의 정치는 형식적, 절차적 민주주의의 문제를 일정하게 해소했지만 무엇보다 노동자대중의 생존권 문제가 중심을 이루는 사회적 민주주의의 문제를 부각시키면서 퇴장하고 있다. ‘민주화’의 문제는 부차적 문제로 되고 이제는 ‘계급’과 계급문제와 뒤얽혀 있는 제반 사회적 억압-차별의 문제가 중심적인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진보정당운동 10년의 평가, 민주노동당의 파산


87년 민중항쟁, 노동자대투쟁의 도도한 흐름을 정치적으로 모아냈던 백기완 선본 이후, 새로이 시작한 지금까지의 한국사회 노동자 정치세력화, 진보정당운동은 96,7년 노동법 안기부법 총파업투쟁의 성과와 한계를 안고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87년 노동자대투쟁의 성과로서 전노협, 민주노총을 세워냄으로서 가능했던 노동자의 전국적인 투쟁과 강고한 파업투쟁의 성과가 있었기에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이 출현할 수 있었다. 동시에 투쟁의 물꼬를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으로 전화시키면서 ‘국회에서 우리를 대변하는 세력’을 만들어내기 위해 시작함으로써 진보정당운동의 한계 역시 출발과 더불어 고스란히 나타났다.


자본은 97년 외환위기를 호기로 하여 축적체제를 완전히 바꾸는데 성공했다. 그간 한 시대를 구가하던 재벌은 초국적 자본으로 몸을 바꾸는 데 성공했다. 세계시장과 연동되면서 수출과 내수는 분리되었고, 비정규직으로부터 실업에 이르기까지 불안정노동이 만연한 사회가 되었다. 급기야 세계금융체제에 편입하기 위한 절차를 밟아나가고 있으며, 이로 인해 빈곤과 양극화는 더 극단화될 것으로 보인다.


자본은 이미 새로운 축적체제로의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뤄냈을 뿐 만 아니라 노동자에 대한 분할 통제에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 한국노총이야 두말할 나위도 없지만, 소속 넥타이부대 노동자는 말할 것도 없고 이미 소득이 상위 20%안에 속하는 대공장, 남성, 정규직 노동자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 민주노총조차도 자본의 갈 길에 걸림돌이 되고 있지 못하다. 이미 초토화되어버린 유럽의 계급타협체제를 모방한, 자본운동이 양산했지만 결국은 자본에게 비수를 갖다 댈 비정규직과 실업을 진정으로 포괄하지 못하는 시대착오적인 산별체제 구축에 집중하는 한 그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2003년 말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노동자들의 자살정국을 거치고 최근에는 노동자들의 분신 자결이 발생하는 상황에서도 민주노총이 현장대장정 이후 산별대장정에 돌입하고 있는 것은 민주노총이 현 시기에 요구되는 민주노조운동의 방향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배타적 지지로 민주노동당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어온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에게 부담이 되고 있음이 민주노동당 내에서도 내놓고 거론되고 있다. 선거 전에는 비례대표 2번을 비정규직에 할당하는 것을 부랴부랴 결정하더니 이제는 노동부문 중앙위원을 민주노총에만 할당할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으로 넓혀야 한다는 얘기를 던지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민주노동당이 자기 한계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을 포괄하지 못하는 민주노총의 산별과 이에 조응한 민주노동당의 전략을 바꾸고 폐기하지 않는 이상 발본적인 해결책은 못된다. 비정규직 철폐를 아무리 소리 높여 외쳐도 정규직의 소득을 비정규직과 나누어가짐으로써 해결되지 않음을 누구나 알고 있기에 그러하다.


진보정당운동은 애초에 대중적으로 많은 공감을 일으켰다. 지난 총선에서 예상치도 않게 1석의 지역구와 8석의 비례대표를 획득하여 제 3당이 되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오히려 운동을 뒷걸음치게 했다. 국회의원 사무실은 고충처리실이 되었고 국회가 열릴라치면 그나마 양치기 파업조차 없이 이러저러한 요구를 내 건 천막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이제는 투쟁 없이 청원에 매달려 국회의원 개인적인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어느 의원의 하소연 그대로 의회주의, 대리주의는 체계적으로 그리고 대중적으로 자리 잡았다. 의회주의가 체제화된 속에서의 배타적 지지야말로 노동조합운동, 농민운동의 지도자가 국회로 가는 안정적 길목의 역할을 할 것이며 동시에 의회주의를 더욱 강화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다.


아무리 배타적 지지라는 굴레를 쳐도 조합원에게는 위계로 작동할지언정 노동조합 간부들에게는 더 이상 굴레가 되지 않음은 지난 대선에서 극명하게 보였다. 민주노조진영 내부에서손학규, 이해찬, 정동영 지지선언은 둘째라 치더라도 이명박 지지선언까지 나왔다. 노동자 밀집지구에서 당선되어 그 상징성만으로도 민주노동당의 중심이 되어야 할 자가 손학규를 지지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그 개인적 한계로 치부하기에는 상처가 너무나 크다. 노동자대투쟁의 상징이고 전노협의 사무총장을 했던 자는 뉴라이트 노동운동으로 이명박의 핵심부대가 되었고, 배타적 지지를 소리 높여 외치며 민주노총의 사무총장을 하던 이는 통합신당의 의원 뱃지를 달고 있다. 한국노총만이 아니라 민주노총를 포함하여 노동조합 간부직이 재수좋으면 뱃지를 달 수 있는 자리가 되고 있음을 반증한다. 관료주의는 여기에 아주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그리고 지난 총선에 “길 지나가다 지갑을 주웠다”는 어느 의원의 표현 그대로 지갑 주우려고 줄을 서는 자가 늘어날수록 관료주의와 패권주의는 극에 달할 것이다. 민주노동당에서의 작금의 패권주의 논쟁도 이와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97년 외환위기를 맞이할 당시의 대선에서, ‘일어나라 코리아’라는 애국주의, 민족주의적 구호로 내홍을 맞이한 것을 시작으로 ‘코리아연방공화국’이라는 또 다른 민족주의, 아니 그들의 표현대로 종북주의적 구호로 내홍을 거친 것이야말로 가장 상징적이다. 궁극적으로 경제위기를 이데올로기로 하여 IMF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받아들이고 이를 통하여 위기를 돌파하고자 하는 자본을 도와주는, 당시 할머니의 금비녀 애들의 돌 반지를 뽑아낸 실업극복 국민운동과 다르지 않은 국민동원 이데올로기를 스스로의 구호로 내걸려다 내홍에 빠졌던 것이다. 북한은 이윤율 저하를 넘어서기 위한, 과잉자본의 해소를 위한 공간으로 남한 자본에 하위 배치되고 있다. 이는 분단의 벽을 허문 자유주의 정치의 역할이었다. ‘코리아연방공화국’으로 내홍을 거친 민주노동당이 그야말로 자유주의 정치와 운명을 같이 한 배경이 아닌가.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가속화되는 세계화의 경쟁체제에서 민족의 이름으로 애국의 이름으로 국민을 동원하는 기제가 되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다.


딱따구리가 제 죽을 줄 모르고 자기 나무를 쪼아댄다고 했던가. 정치적 자유주의자들은 그들이 놓은 덧에 스스로 걸려 넘어졌다. 그들이 그토록 염원하던 자본의 무한 자유주의가 창궐하면서 더 이상 그들의 자리가 없어졌다. 시대적 소명을 다한 것이다. 민주노동당 역시 정치적 자유주의와 함께 수명을 다했다. 자본의 무한 자유주의로부터 비롯된 비정규직으로부터 실업에 이르기까지 고통 받는 자들에게 정치세력화의 바통을 넘겨야 할 때다. 이제는 노동자계급정당이다. 이것이 시대적 요청이다.


다가오는 시련의 시절 그리고 노동자계급운동의 과제


소위 이명박시대. 항상 찬바람을 맞아온 비정규직은 두말할 것도 없고 금융부문, 공공부문 노동자들 그리고 공무원에게도 시련의 시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정권이 의도하는 바 노무현정권의 작품에 기초한다. 한미FTA로 드라이브를 건 노무현정권이 임기 말에 내놓은 자본시장통합법은 한국사회를 금융화체제로 변화시키는 회심작이었다. 이에 이명박정권은 그 후속으로 자본의 상호출자를 허용하여 자본을 강화시키는 한편 금산분리법을 완화하여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지배를 허용하려고 한다. 그리고 산업은행, 우리은행의 민영화, 심지어는 우체국의 민영화까지 들먹이면서 투자은행을 주도적으로 창설하고 거대금융자본을 구축하기 위한 은행, 보험, 증권회사 등의 자본통합을 부채질하면서 금융적 재편을 서두를 것으로 판단된다. 소위 연금개혁으로 금융화에 자금을 조달하고 공공부문을 민영화함으로금융화를 위한 시장을 확장하려고 하고 있다. 한편 기업에 대한 규제를 축소 또는 폐지함으로서 정부 기능을 축소할 것을 의도하고 있다. 아울러 그나마 있었던 부동산투기에 대한 규제를 축소하고, 고등학교 입시조차도 경쟁으로 몰아넣음으로서 사교육을 확대하고, MBC를 민영화하고 신문과 방송 겸업을 허용함으로서 언론의 공공성으로서 사회견제기능을 말살하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비정규법안에 대한 또 한 차례의 개악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 결과 재벌지배는 강화되고 금융 및 불로소득자가 늘어나는 반면 빈곤과 양극화는 심화될 것은 자명하다. 한편 이중의 고통에 시달리는 여성은 외면당하고, 대운하를 둘러싼 논쟁이 환경의 이름으로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른 사회 불안정성에 대처하기 위하여 집회, 시위 및 표현의 자유를 극도로 제한하고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억압할 것이다.


작년 비정규법안 통과 이후 이랜드 뉴코아노동자들의 투쟁은 해고반대, 정규직쟁취라는 그들만의 투쟁 그 이상이었다. 감히 투쟁의 초점을 단순히 이랜드 자본에 한정하고자 해도 다른 자본들이 해고를 하는데 눈치를 보게 만들었고, 비정규법안이 지닌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제기로 이어졌다. 여기에 더하여 올해 7월 1일이면 100인 이하 사업장에도 비정규법안이 적용되게 된다. 7월 이전에 수많은 비정규노동자들이 해고될 것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러한 환경으로 정권과 자본은 내년 또 다른 7월이 돌아오기 이전 계약기간을 연장하든 어찌되었든 비정규법안을 손보고자 할 것이다. 이제는 암묵적 묵인도, 양치기 파업도 아닌 실질적인 대응과 투쟁이 이루어져야 할 때다. 아울러 이러한 투쟁의 성과가 2010년으로 미루어진 기업단위 수준에서의 복수노조 허용을 요구하는 투쟁으로 이어져야 한다. 비정규, 실업과 같은 불안정 노동의 투쟁과 조직화가 최소수준이라도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함을 의미하고, 어디에도 막혀있는 그들의 조직을 건설할 단결권을 보장받아야 함을 의미한다. 한국노총이 차단막을 치고 민주노총은 어쩔 수없이 인정해 온 지난 두 차례의 사례를 이제는 넘어야 한다. 이제는 민주노총이 앞장서서 복수노조를 허용하는 운동으로 나아가야 하고 그 한가운데서 민주노총은 거듭나야 한다.


지난 대선은 노동조합운동이 이념적 운동으로 재편될 가능성을 가장 뚜렷이 보였다. 선거 이전부터 한나라당의 정책과 조직동원체계를 형성해 왔던 뉴라이트 노동운동이 그러했고, 한국노총의 이명박 지지와 정책연대 선언이 그러했다. 이제 민주노총이 단순히 혁신을 넘어 계급성을 회복하고 재정립되는 것이야말로 향후 계급운동의 주요한 관건이 될 것이다. 지난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에서 이미 업종산별이냐 지역산별이냐가 쟁점이 되었다. 이에 따라 사회연대전략 및 민주노동당과 한국진보연대와의 관계 정립 문제가 동시에 핵심적 쟁점이었다. 민주노조운동의 진로에 관련되는 주요 이슈들이 민주노총 내부에서 문제된 것이다. 비정규직과 실업을 포괄하는 산별과 계급정당의 이름으로 그리고 사회화의 깃발아래, 대중적인 공론의 장을 형성하고 계급적으로 재정립하는 것이야말로 계급정치의 중요한 토양이 될 것이다.


변혁적 정치운동, 노동자계급정당 건설로 나아가자!


민주노동당은 파산선고를 받았다. 미봉책을 동원하여 다시 숨 쉰다 해도, 심지어는 총선에서는 대선보다 더 나은 표수를 받는다 해도 노동자대중의 계급적 이해를 대변하지 못한다. 대선의 평가를 아무리 종북주의, 패권주의로 눈을 돌린다 해도 그들은 현실 자본주의를 넘어서려는 계급적 전망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에 그러하다. 지난 10년간의 실패한 진보정당운동을 넘어서 노동자 계급정당 운동을 새로이 시작할 때이다. 이는 민주노동당의 내홍을 틈타서 제기하는 것도 아니고 종북주의와 패권주의와의 투쟁으로 민주노동당을 탈당하는 그들을 쳐다보고 제기하는 것도 아니다. 신자유주의와 자본의 모순과 한계를 넘어설 정당을 건설하는 것은 더 이상 늦춰져서는 안 되기에 그러하다. 


노동자계급정당은 삶의 기로에 놓인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을 통하여 건설해 나가야 할 것이다. 공적기금을 투여하여 살려놓은 우리은행은 물론 산업은행, 기업은행 등을 민영화하겠다는, 그리고 금산분리정책을 허물겠다는 이명박의 정책에 대해, 기존의 국유은행은 유지하고 민영화된 은행조차 국유화해서 산업을 통제하고 시장중심체제를 바꾸지 않고서야 금융노동자는 물론 전체 노동자계급의 미래는 없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등으로 어느 누구나 문제가 있음을 알고 있는 투기적 금융자본과 다국적 기업의 권리를 제한하자는 제안은 투쟁에서 자연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제반연금이 금융부문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반대하고 연금개혁을 가로막고 서야한다.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제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이, 물, 전기, 통신, 도로, 철도와 같은 국가의 필수서비스를 국가가 유지하는 것은 단지 공무원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 아닌 노동자 민중이 숨 쉴 수 있는 토양이다. 그리고 경쟁이 아닌 호혜와 연대에 기반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비정규직을 포함한 불안정노동을 철폐하는 것만이 현실의 모순을 넘어서는 길이라는 점은 누구나 알고 있다. 사회화, 사회적 통제를 무기로 억압의 현실을, 아니 자본주의를 넘어서기 위해 계급정당이 요구받고 있는 시점이다.  나아가 이 새로운 계급정당은 동시에 환경 문제는 물론 계급문제로 모두 환원되지 않은 제반 사회적 억압과 차별을 없애기 위해 앞장서서 투쟁하는 정당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노동자계급정당은 활동가, 지식인의 테두리를 넘어 대중적으로 제기되고 있으며, 따라서 노동자계급 대중 그들이 중심이 되어 나서야 한다. 따라서 지역과 부문을 포괄하는 노동자들에게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에 나설 것을 호명하는 것으로 시작하자. 아울러 노동자계급과 연대하는 사회운동과 지식인 운동의 진보적 부분들에게 새로운 변혁적 계급정당의 주체로 나설 것을 호소하자. 사회주의적 변혁을 염원하는 모든 이들이 함께 할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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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정당의 상

 

 

변혁적 진보정당의 기본상과 강령 

         

I. 새로운 변혁적 진보정당의 기본상


(1) 사민주의를 넘어 자본주의의 발본적인 변혁을 추구하는 사회주의적 계급정당이어야 한다.

- 자본주의는 오직 사회주의적 변혁을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

-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이외의 어떤 자본주의도 성립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오직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사회주의적 변혁을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고, 그 외에는 대안이 없다.

- 신자유주의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기존의 다양한 대안사회론 중  체제내적 개혁을 추진하는 가장 진보적인 대안론은 사민주의적 복지국가론이다. 그러나 복지와 분배는 기본적으로 생산의 율동에 종속된다. 노동에 대한 반동적 공격을 필연화시키고 있는 오늘날의 자본주의체제 하에서는 그런 사회복지체제의 구축이란 불가능하며, 전면적인 복지체제의 구축을 위해서도 사회주의적 변혁이 불가피하다

-  이명박 정부의 출범에 의해 한국에서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가 막바지로 나아가고 있고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헤게모니 하에 조직되었던 세계자본주의가 임박해진 세계적 대공황으로 최종적 위기국면에 접어들고 있는 정세 속에서 신자유주의의 반동성-야만성은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이에 따라 노동자대중의 저항 역시 고양되지 않을 수 없다. 저항에 나선 노동자대중을 다시 좌절과 절망으로 떨어뜨리지 말고 정치와 변혁의 주체로 우뚝 세우기 위해 사회주의적 계급정당의 건설은 정세 상으로도 절실하고도 시급하다.


(2) 민족주의를 넘어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와 대안적 세계화를 추구하는 정당이어야 한다.

- 민족주의는 인류의 민족적 분할을 가장 중시하며, 계급적 분할을 민족 구성원 내부의 분할로 간주한다. 그러나 계급적 분할은 민족적 분할 보다 더욱 중요한 분할이다. 한국의 부르주아지는 한국의 노동자보다 미국의 부르주아지와 더욱 가깝고, 한국의 노동자는 한국의 부르주아지 보다 미국의 노동자와 더욱 가까운 사회적 존재인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관점에서 민족적 이익이 아니라 민족적 분할을 넘어서는 노동자계급의 전지구적인 보편적 이익을 옹호해야 한다. 이는 동시에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형태로 전개되는 자본주의적 세계화에 대항하는 대안적 세계화의 관점에서만 그런 보편적 이익을 옹호해야 함을 가리킨다.

- 민족국가들은 자기완결적인 패쇄적 단위들이 아니라 제국주의적 국가군들이 지배력을 행사하는 ‘국가간체계’에 의해 이미 연관되어 있으며, 자본의 세계화가 진척됨에 따라 그 연관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때문에 계급문제의 ‘온전한’ 해결이란 일국적 수준에서가 아니라 오직 전지구적 수준에서만 가능하다. 때문에 우리 사회의 계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노동자-민중의 국제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다른 한편, 그런 연관성의 심화 때문에 오늘날에는 더욱 더 일국에서의 변혁은 일국에서의 변혁으로만 끝나지 않고, 타국에서의 변혁과 함께 진행되거나 그 변혁을 불러일으키는 조건이 된다. 한국에서의 사회변혁은 한국에서만의 사회변혁으로  끝나지 않는다. 

- 오늘날의 민족국가들은 자본주의 이후의 세계질서 속에서도 장기간 인류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공동체의 기본단위들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나아가 계급의 민족적 분할에 따라 오늘날 노동자대중은 국가들간 의 불균형 발전과 발전 격차로 인해 자신의 국가적 소속의 차이에 따라 생활  수준과 사회적 권리의 향유 수준 등에서 많은 격차를 지니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와 대안적 세계화의 관점에서 민족국가들 간의 관계를 수평적인 호혜적 협력관계로 만드는 동시에 국가적 소속의 차이에 따라 존재하는 대중의 제반 사회적 격차들을 해소시켜 나갈 과제를 안고 있다. 나아가 장기적 과제로 민족국가적으로 구분된 정치적 공동체들을 전 인류적인 하나의 정치적 공동체로 통합시켜 나갈  과제도 지니고 있다. 

- 한국은 분단, 주한미군의 존재,  미국자본 중심의 초국적 자본에 의한 한국경제의 종속성 심화 등과 같은 민족문제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한국이 그간의 자본주의적 발전을 통해 오늘날 세계적 수준에서는 준(準)제국주의 국가 내지 아(亞)제국주의국가의 지위를 누리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이는 우리가 한국자본이 진출한 나라들에서 한국자본에 의한 자본주의적 착취를, 나아가 남북관계의 개선과 더불어 갈수록 더욱 가속화될 남한자본의 북한 진출이 가져올 남한자본에 의한 북한의 노동자-민중 착취를 한국이 직면하고 있는 민족문제 보다 더욱 중시해야 함을 가리킨다.


(3) 의회주의, 대리주의를 넘어 대중정치의 활성화에 주력하는 비제도적, 사회운동적 투쟁정당이어야 한다.

- 역사를 만드는 힘은 궁극적으로 대중으로부터 나온다. 나아가 대중이 사회 전 과정을 통제하는 정치의 진정한 주체가 되기 위해서도 변혁정당은 ‘대중정치의 활성화’를 자신의 활동의 가장 중요한 임무로 삼아야 한다. 의회정치에의 참여도 그것이 활성화된 대중정치의 표현인 경우에만, 그리고 그것이 다시 역으로 대중정치의 활성화에 기여하는 한에서만 의의를 지닌다. 의회정치에의 참여가 대중정치를 약화시키거나 의회정치에 의해 대중정치를 대체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그러한 한 대중은 정치의 진정한 주체로 상승하기는커녕 정치적으로 수동적인 존재로 떨어지지 않을 수 없다. 변혁을 저지하려는 지배계급의 모든 반동 역시 주요하게는 조직화된 대중의 힘에 의거해 극복해 나가야 한다.

- 대중정치의 활성화를 우선하는 한, 당은 기본적으로 선거 참여와 의회활동을 우선시하는 의회주의 정당이 아니라 ‘비제도적-사회운동적 투쟁정당’이어야 한다. 당이 기본적으로 비제도적-사회운동적 투쟁정당으로 발전해야 한다면, 당을 건설했다고 해서 반드시 정당법에 따라 등록할 필요는 없다.

- 정치적 민주주의가 진척된 조건 속에서도 일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국가에 대항하는 정치’이다. 그러나 정치적 민주주의가 진척될수록 ‘국가 속에서의 투쟁’ 역시 중요해 지며, ‘선거를 통한 집권’ 역시 노동자-민중권력의 창출과 사회변혁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매개 고리가 된다. 그러므로 당이 대중에 뿌리내리면 선거 참여와 의회 진출 역시 적극 모색해야 한다. 그러나 의회 진출에 성공할 경우에도 대중정치로부터의 의회정치의 자립화와 대중정치의 의회정치에의 종속을 막을 수 있는 확고한 당적 견제장치가 마련되어야 하며, 의회활동에 대한 철저한 당적 통제가 이뤄져야 한다.


(4) 노동자계급의 보편적 이익을 옹호하고, 노동자들의 조합주의적-경제주의적 이익을 넘어 노동자계급을 사회의 보편적 이익을 대변하는 계급으로 상승시키는 데에 기여하는 정당이어야 한다.

 - 노동자 내부의 분할을 넘어 노동자계급의 보편적 이익을 옹호함으로써 노동자들을 하나의 계급으로 단결시키는 당이어야 한다.

- 노동자들의 하나의 계급으로의 단결은 노동자들의 조합주의적-경제주의적 이익이 아니라 오직 노동자계급을 노동해방, 사회해방이라는 사회의 보편적 이익을 대변하는 계급으로 상승시킴으로써만 가능하다.


(5) 노동현장에서의 활동을 중심으로 삼되, 노동현장 운동과 제반 주민운동을 결합시키고 투쟁과 노동자-민중의 일상적 삶을 연결시키는 지역수준의 노동자-민중공동체 형성에 앞장서는 풀뿌리 민주주의 정당이어야 한다.

 - 노동현장은 노동자들이 집결하여 함께 노동하는 장소이자 자본이 이윤의 형태로 전유하는 잉여가치 생산의 산실이다. 그러므로 당은 무엇보다 노동자들의 현장투쟁과 긴밀하게 결합하면서 노동자들의 현장권력의 강화에 주력해야 한다.

- 노동자들은 노동현장 외부에서 다른 지역주민들과 함께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에 직면하면서 삶을 영위하는 사회적 존재이다. 그러므로 노동운동과 제반 주민운동들과의 결합 및  투쟁과 일상적 삶의 연결을 담보하는 지역수준의 노동자-민중공동체의 형성과 확산은 자본지배로부터 벗어나는 지역적 거점과 노동자-민중권력의 지역적 기반의 형성을 위해 반드시 성취해 내야 할 사업이다. 


(6) 기층 민중운동과의 연대를 우선시하는 가운데 신자유주의 반대, 민주주의의 후퇴 저지와 더 많은 민주화,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 반전반제 등 이 시대의 주요한 당면과제의 해결을 위해 투쟁하는 모든 세력들과 연대하는 정당이어야 한다.

- 기층 민중운동과의 연대가 우선시되어야 한다.

- 아래로부터의 연대를 우선시하는 가운데 위로부터의 연대도 추진해야 한다.

- 당면과제의 해결을 위해 좌파민족주의, 혁신자유주의, 사민주의 세력과도 연대해야 한다. 그러나 연대투쟁에서 대중의 진정한 벗임을 몸으로 입증하는 것을 통해, 그리고 당면과제의 진정한 해결 역시 사회주의적 변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설득하는 것을 통해 연대운동의 혁신과 사회주의적인 대중적 저항주체 형성에 기여해야 한다.


(7) 교육, 문화, 보건의료, 부동산관련, 금융 관련, 재벌규제 관련, 학술, 문예 운동 등 제반 부문 사회운동들의 활성화에 기여하면서 이들 운동이 총체적 사회변혁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되도록 노력하는 정당이어야 한다.

- 제 부문운동은 ‘진지전’의 성격을 지닌 운동들이다. 당은 이들 부문운동에 강력히 뿌리내려야 한다.

- 부문운동들과의 관계에서 당 운동의 의의는 부문운동들을 서로 결합시키고, 부문운동들이 총체적 사회변혁 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되도록 하는 것이다.


(8) 환경, 여성, 평화, 인권 등의 문제의식을 능동적으로 수용하고 이들 사회운동들과 적극 연대하는 정당, 계급적 억압과 착취로 남김없이 환원되지 않는 모든 형태의 사회적 억압과 차별에 반대하며 사회적 소수자들의 권리를 유보 없이 옹호하는 정당이어야 한다.

-  환경, 여성, 평화, 인권 등의 가치들의 능동적인 수용을 통한 계급운동의 쇄신이 필요하다.

- 환경운동, 여성운동, 평화운동, 인권운동 등에 연대하면서 그 운동들이 제기하는 문제들의 해결에 적극 기여하는 동시에 이들 운동들이 반자본 운동에 적극 참여시켜야 한다.

- 장애인, 이주노동자 , 성적 소수자 등 모든 사회적 소수자들의 권리를 유보 없이 옹호해야 한다.


(9) 사회주의적 활동가들과 지식인들을 결집시키고, 선진노동자들과 선진적 활동가들을 당의 중심으로 삼으면서 비정규직 노동자, 여성노동자, 예비 비정규직 노동자층에 뿌리내리는 정당이어야 한다.

- 사회주의운동은 정치운동이자 지적 운동이다. 그러므로 사회주의적 활동가들과 지식인들의 참여 없이 사회주의운동은 없다.

-사회주의 운동의 중추는 선진노동자들과 제 부문영역에서 활동하는 선진적 활동가들이다.

- 사회주의 운동은 동시에 대중운동이다. 그러므로 사회주의운동은 무엇보다 다양한 부문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에게 뿌리를 내려야 하며, 오늘날의 상황에서는 정규직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 여성노동자, 예비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결집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10) 당원의 능동적 활동을 확보하는 가운데 관료주의, 엘리트주의를 넘어 최대한 직접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운영되는 철저히 민주적인 정당이어야 한다.

-당원은 적어도 당 조직의 어느 하나에 참여해 활동해야 한다. 당의 활동을 지지하지만  당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인자들은 후원당원으로 배치하는 것이 옳다. 당은  동시에 당원들의 교육과 훈련을 위한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 당의 기본 의결단위로 지역-부문 총회들을 구축하고, 이 총회에서도 당의 모든 주요 사항들이 논의되고 의결되어야 한다.

- 대의원회의는 지역-부문 총회의 대표들로 구성하되, 대의원으로의 권한 위임이 최소화되어야 한다.

- 지역-부문 총회와 대의원회의는 당의 모든 공식적 활동에 대해 확고한 통제권을 행사해야 한다. 집행기구 임원의 추천, 선출, 해임 권한은 지역-부문 집행기구 임원의 경우에는 해당 지역-부문 총회가, 전국 집행기구 임원의 경우는 대의원회의가 갖는다.

- 모든 회의내용은  평당원에게 공개되어야 하고,  당 활동에 대한 평당원의 일상적인 참여를 가능케 하는 기제가 마련되어야 한다.



II. 변혁을 위한 핵심 투쟁강령의 기조와 내용


1. 강령의 기조


- 우리가 추구하는 사회주의는 이전의 사회주의가 경시한 생태, 여성, 평화, 인권 등의 가치들과 새로운 삶의 양식에 대한 문제의식을 능동적으로 수용하고, 모든 문제를 계급문제로 환원시키거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쟁취한 민주주의 운동의 성과를 무시한 이전의 사회주의적 실천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어야 한다.

- 그러나 사회주의적 변혁을 가능케 하는 가장 기본적인 동력은 생존권 쟁취를 위한 노동자대중의 투쟁이다.

- 사회변혁을 위한 강령이 사회주의적 변혁을 담보하는 것인지를 판별하는 최소기준은 ①  사회주의적 변혁의 물질적 토대를 제공해 줄 수 있는 독점자본 부문의 사회화를 인정하는지의 여부와, ② 제반 사회주의적 변혁의 추진을 가능케 하는 노동자-민중권력의 창출을 인정하는 지의 여부에 있다.

- 사회주의적 변혁이란 일회적인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직-간접적으로 노동을 분담하는 가운데 “각인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노동자들의 자유로운 연합체인 인민의 직접적인 자기통치체제로의 발전을 담보하는 것이어야 한다.



2. 변혁을 위한 핵심 투쟁강령

 

1. 노동관련 강령

- 비정규직 철폐

- 완전고용

- 노동시간의 대폭적인 단축(1차적으로 주 30시간으로)

- 동일노동-동일임금 및 생활임금 보장

- 성별분업 철폐

- 노동현장에서 지식노동과 육체노동 및 구상과 실행의 재결합 추진

- 임노동제의 전면적인 소멸 추구


2. 경제관련 강령

- 재벌대기업들의 사회화 (대주주 지분의 경우 무상몰수를 원칙으로, 소액주주 지분의 유상몰수)

- 모든 불로소득자 척결, 투기자본 몰수, 기간산업의 사회화, 금융-투자의 사회화

- 오직 인민주권기구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는, 사회화된 부문에 대한 노동자들의 직접적인 산업통제체제 내지 자주관리체제 구축

- 관리자층의 대폭적인 축소와 점진적 소멸 추구

- 중소자본 부문에 대한 민주적-사회적 통제체제 구축과 점진적인 사회화 추구

- 농업과 자영업 등의 협업화 추진

- 민주적 계획경제 중심의 경제체제 구축과 시장경제 부문의 점진적 해소 추구

- 수도권과 지방 및 도시와 농촌의 격차 해소와 조화로운 발전 추구

- 반제적인 연대적 무역체제의 구축과 확장 및 연대적 무역체제의 사회주의적 국제경제체제로의 전환 추구


3. 생활관련 강령

- 주거, 의료, 물, 에너지, 교통, 통신 등에 대한 전면적인 사회적 공급체제 구축

- 모든 택지의 국유화와 토지 사용의 사회화 추진

-  기본소득 보장과 연대적 사회복지서비스체제 구축

- 입시철폐, 전면적인 무상교육과 교육평준화, 평생교육체제 구축 및 사회구성원 모두의 ‘사회적 개인’으로의 전면적인 발전을 돕는 교육 시행

- 사회구성원 모두의 문화 향유권의 전면적 보장과 사회주의적 연대문화의 창달

- 여성권의 전면적인 보장

- 모든 사회적 소수자들의 권리의 보장, 모든 형태의 사회적 억압-차별 해소


4. 생태관련 강령

- 생태친화적 삶을 향유할 권리 보장

- 자연환경의 보존, 개발, 이용 및 관리에 대한 전면적인 생태친화적 통제체제 구축

- 생태친화적 기술 개발에 대한 적극적 지원과 생태친화적 산업생산체제 및 농업체제 구축

- 생태친화적 도시계획과 생태친화적 교통, 에너지, 주거 체제의 구축

- 생태친화적 소비규범 시행과 생태교육의 강화 


5. 정치관련 강령

 - 변혁정당의 집권을 매개로 하여, 국가장치의 혁명적 개조와 노동자계급의 전사회적인 헤게모니 확보 및 인민주권기구에서 당의 민주적 설득력과 지도력 확보를 통해 국가권력을 노동자-민중권력으로 전화시킨다.

- 직접민주주의 우위의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체제 구축: 평의회민주주의가 중심이 되고 최대한 직접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조직되는 여러 수준의 인민주권기구를 창설한다. 모든 권력을 인민주권기구로 집중시킨다. 국가관료들의 권한과 수를 대폭적으로 축소하고, 국가집행기구에 대한 인민주권기구의 확고한 통제체제를 구축한다. 모든 공직자들의 추천, 선출, 파면권 등은 인민주권기구가 갖는다. 반인권적 정당 이외의 모든 정당들의 자유로운 정치활동을 보장하며, 인민주권기구 속에서 활동할 권한을 갖는다. 그러나 당원의 공직 수행을 금지한다.

- 사회의 전 영역에서 철저히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대중들의 직접적인 자기 조직들을 무한히 발전시키고, 이들 조직들에게로 국가권한을 지속적으로 이전시켜 나간다. 이를 통해 국가관료제를 점차적으로 소멸시키고 국가권력을 대중권력으로 전화시킴으로써 ‘인민의 직접적인 자기통치체제’ 내지 ‘인민의 전면적인 자치체제’를 완성시켜 나간다.

-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체제를 지닌 통일국가를 수립한다. (이를 가능케 하는 전제로서 한반도 평화군축체제와 통일국가 수립을 지향하는 남북연합체제의 구축 및 남북한의 노동자-민중연대의 강화가 요구된다)



*.  당면투쟁을 위한 강령: 변혁을 위한 투쟁 강령의 많은 부분은 당면투쟁을 위한 강령이 될 수 있다. 그 외

- 비정규직 법의 전면적인 개정

- 교육 시장화 반대, 부실-비리 사립교육기관의 국-공립화

- 공공부문의 민영화 반대, 사유화된 공공부문의 재 국-공립화, 공공부문의 수익성 위지 운영 반대

- 한반도 대운하 건설 등 반환경적, 친자본적인 시장주의적 개발정책 반대

- 토지 공개념의 전면적 적용과 토지수익의 전면적인 사회적 회수,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

- 기업이윤의 일정 부분의 사회적 공적 기금으로의 강제징수 및 부유세 도입

- 외국자본과 재벌대기업에 대한 민주적-사회적 규제 강화 ( 이 주장은 그러나 이들 자본에 대한 사회화만이 진정한 해결책이라는 주장과 함께 이뤄질 때에만 의의를 지닌다)

- 노동자-민중운동, 변혁운동 등에 대한 모든 법적-공안적 탄압 및 ‘구사대폭력’과 같은 자본의 사적 폭력 저지 

-  국가보안법 철폐, 국정원, 기무사, 보안수사대 등 폭압기구 해체

-  민주주의 후퇴 저지와 사회 전영역의 더 많은 민주화

- 조, 중, 동 등 시민사회의 반동적인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해체와 방송-미디어 등에 대한 전면적인 사회적-민중적 통제체제 구축

- 인종적 차별 옹호 등  모든 반인권적 운동 금지

- 주한미군 철수, 한미동맹 폐기, 한반도 비핵화, 한반도 평화군축체제 및 통일을 지향하는 남북연합체제 구축, 반전반제 반자본을 위한 남북한 노동자-민중 연대

- 한미자유무역협정 체결 반대, 모든 자유무역협정 폐기

- 반전 반제, 반자본 등을 위한 세계 노동자-민중운동과의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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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정세요약 (nk)

 

2008년도 경제전망 1 


대선 후보들이 저마다 자신을 경제살리기의 주역이라고 떠벌리고 있다. 그러나 2008년 경제전망은 낙관하기 어려우며, 오히려 암울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특히 미국경제의 불안정성이 세계경제 전체로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아래에서는 관련기사들을 종합하여 2008년 경제전망에 대해 1차 정리하고자 한다.


☞ 미국경제성장률 둔화될 것


파이낸셜뉴스1)는 CNN머니 등 주요외신을 인용하여,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가 내년도 미국 국내총생산 GDP가 2.7% 성장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고 소개하였다. 이는 당초 예상치였던 3.1%에서 2%대로 하향 조정한 것이다. 이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주택시장 침체와 금융권의 신용경색이 지속될 것, 여기에 실업률 역시 당초 예상치 4.7%보다 0.2%포인트 높아진 4.9%에 달할 것이라는 진단이 작동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도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의 경제성장률을 이전 전망치인 2.5%∼2.75%에서 1.8%∼2.5%로 낮췄다. 2009년 경제성장률 역시 2.7%에서 2.3%로 하향 조정했다. 백악관이 제시한 2.7%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실업률 4.8%로 백악관의 전망보다 낮았다.


골드만삭스도 내년도 ‘경기침체’ 가능성을 40∼45%로 높게 잡고 있다. 채권투자의 귀재인 핌코의 빌 그로스도 미국 경제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인한 여진으로 대공황 정도로 위축되지는 않겠지만 제로 성장을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민간부문의 침체는 더욱 커지고 있다. 미 상무부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발표한 지난 9월 신규주택판매의 수정치는 71만6000건으로 급격하게 줄어들어 1996년 1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고 8월의 77만건보다도 적었다.


10월 신규주택판매는 1.7% 증가했지만 9월의 신규주택판매가 급격한 하향조정의 결과라고 밝혔다. 10월 신규주택판매는 1.7% 늘어난 연간기준으로 72만8000으로 집계됐다. 이에 따라 주택건설업자들이 주택재고물량을 해소하기 위해 주택가격을 내릴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와 함께 10월의 신규주택 중간가격은 지난 9월보다 8.6% 하락했고 작년 10월보다는 13% 떨어진 21만7800달러로 조사됐다.


☞ 세계경제 성장도 둔화될 것


미국경제의 성장둔화 예상은 세계경제 성장률 예상과도 연동되어 나타나고 있다. 지난 30일 국제통화기금(IMF)은 유가폭등과 국제금융시장의 신용경색 사태가 내년 세계 경제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2)


마수드 아메드 IMF 대변인은 이날 정기 브리핑에서 최근 유가폭등 및 금융시장의 혼란과 관련, “당초 예측했던 것보다도 위험도가 훨씬 높다”며 “내년 세계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조정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메드 대변인은 정확한 수치는 공개하지 않았다.


IMF는 지난달에도 내년 세계 경제성장 전망치를 종전 5.2%에서 4.8%로 하향조정한 바 있다. 다만 그는 일부 선진국과 신흥시장의 활발한 3분기 경제활동에 힘입어 올해 경제성장률은 당초 전망치인 5.2%를 상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미국발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촉발된 국제 금융시장의 신용경색사태에 대해 “전세계 주가가 하락하는 가운데 미국과 유럽의 은행들은 수십억달러의 손실을 보고 있다”며 “이번 사태의 여파가 심각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서브프라임모기지의 부실이 주택시장의 불안과 소비지출 둔화, 경기둔화를 불러오는 연쇄효과를 일으킬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신흥시장의 경우 이번 모기지 사태에 별다른 피해를 보지는 않았지만,국제 신용시장의 경색으로 인해 향후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의 여파


한편 세계경제 둔화와 관련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를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하기도 한다.3)


'주택경기 침체'는 바로 '신용 위기의 지속'을 뜻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는 미국에서 신용등급이 낮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고금리로 주택마련 자금을 빌려 주는 대출을 의미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채권으로 만들어져 전 세계 금융회사와 연기금 등이 보유하고 있다. 때문에 모기지 부실이 늘어날수록 이들 채권의 부실도 커질 수밖에 없다. 지난 3분기(7~9월)에만 씨티그룹,메릴린치 등 금융회사들이 손실 처리한 금액은 500억달러(약 46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도이체방크는 이 금액 규모가 내년엔 1300억달러(약 121조원)로 불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 술 더 떠 3000억달러(약 279조원)에 이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문제는 금융회사의 피해가 미국 회사에 국한된 게 아니라는 것이다. HSBC와 바클레이즈,스위스리 등 내로라하는 유럽 금융회사들도 이미 상당액을 손실 처리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유럽 금융회사들의 피해는 더 커질 것이란 전망도 있다. 유럽중앙은행(ECB)도 대규모 유동성을 추가 공급해야 할 상황이다. 영국 주택 소유자 수십만명이 모기지 부담으로 집을 내놓아야 할지 모를 '시한폭탄'이 작동하고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일본 금융회사들도 3분기에 상당 부분의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주택경기 침체와 신용 위기는 지금도 미국 경제를 옥죄는 요인이다. 내년에 두 가지 상황이 더욱 나빠지면 미국 경제의 연착륙(경기 과열이 완만하게 진정되는 것)은 장담하기 어렵다.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지지 않고 둔화되더라도 세계 경제는 몸살을 앓을 수밖에 없다. 당장 달러화가 더욱 약세를 보일 건 뻔하다. 달러화 자산(미국 주식,채권 등)에서 빠져 나온 돈이 원유 등 원자재로 몰리면서 유가는 상승 압력을 받게 된다.


☞ 국부펀드 논란


일부에서는 서부프라임 모기지론의 충격을 흡수할 대안으로 국부펀드를 언급하기도 한다.


국부 펀드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정부가 공적 외환보유액과 별도로 재정 흑자 등의 잉여 자금을 재원으로 조성해 수익성 위주로 운용하는 투자 기구를 의미한다. 공적 외환보유액은 환투기 공격 등 유사시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현금으로 바꾸기 쉽고 안전한 선진국 정부 채권 의 형태로 가지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이와 달리 국부 펀드 는 좀 더 장기간 돈이 묶이더라도 보다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는 고수익 채권,주식,부동산 등 다양한 자산에 투자한다. 쿠웨이트가 1953년 석유 판매 수입을 재원으로 쿠웨이트 투자위원회를 설립하고 런던에 투자사무소를 개설한 것이 국부 펀드의 시작이다. 현재 세계 최대 국부 펀드는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투자공사(ADIA)로 8700억달러를 굴리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100억달러(약 10조원) 이상의 자산 규모를 가진 국부 펀드만 20개 정도에 이르고 있다. 외환보유액 세계 1위를 자랑하는 중국도 지난 9월 2000억달러 규모의 국부 펀드인 외환투자공사를 발족시켰다. 모건스탠리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국부 펀드의 총 규모는 2조5000억달러로 추정된다. 이는 전 세계 외환 보유액 5조1000억달러의 절반에 달하는 규모다. 헤지펀드 운용액인 1조5000억달러보다도 많은 데다 5년 후에는 공적 외환보유액보다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한국경제4)에 따르면 국부펀드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충격으로 위기를 맞은 세계 최대 금융회사 씨티그룹의 구세주로 나섰다는 것이다. 씨티그룹은 75억달러(약 7조원)의 자금을 아랍에미리트(UAE)의 아부다비 투자청(ADIA)으로부터 긴급 수혈받기로 합의했다고 지난달 27일 발표했다. ADIA는 75억달러를 투입하는 대신 씨티그룹의 지분 4.9%에 해당하는 전환사채를 받기로 했다. 시티가 지급해야할 전환사채 이자는 무려 연 11%에 달한다. 이는 쓰레기 채권이라는 정크본드(연 9%)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전환사채(CB·Convertible Bond)는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채권이어서 이를 인수하면 주식을 사들이는 것과 같은 효과가 생긴다. 로이터통신은 "ADIA가 전환사채를 모두 주식으로 바꿀 경우 알왈리드 빈 탈랄 사우디아라비아 왕자를 제치고 씨티그룹의 최대주주로 부상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씨티그룹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인해 최근 110억달러(약 10조원)에 달하는 자산을 손실 처리해야 했다.


한편 유럽과 미국 등에는 국부펀드에 대한 경계론이 널리 퍼져 있는 상태다. 선진국들은 개도국이 국부펀드를 이용해 전략적인 목적으로 선진국의 통신, 에너지, 금융산업 등에 대한 투자를 확대할 경우 국가안보 저해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또 개도국이 국부펀드의 막대한 자금력을 이용해 환율개입, 공정경쟁 저해 등 국제경제 여건을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하는 데 이용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IMF는 유가 등 국제원자재 가격이 하락할 경우 산유국 등 원자재 생산국이 국부펀드를 이용해 가격 흐름을 바꿀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은 IMF와 세계은행이 국부펀드의 자산운용에 관한 국제적인 행동규범(code of conduct)을 제정할 것을 제안했고, 국부펀드에 의한 자국기업 인수를 견제하기 위해 Exon-Florio법을 개정하여 외국정부 또는 대리인의 투자도 외국인투자관련 필수조사대상에 포함하고 있다. 독일도 미국의 외국인투자위원회(CFIUS)와 같이 국부펀드의 자국 기업 투자를 감시·제어할 수 있는 기구설립을 추진하는 한편 프랑스와 공동으로 EU 및 G7 차원에서 국부펀드에 대한 대응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프랑스의 파이낸셜 타임즈지는 “프랑스의 한 당국자가 유럽은 특정한 전략산업부문에서 국부펀드의 투자활동을 직접 규제할 수도 있다고 언급했고, 그동안 다른 유럽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본자유화를 강조해 온 영국도 J. Hutton 기업부장관이 국부펀드관련 추가조치가 필요할 경우 다른 EU국가와 협력할 것이라고 언급했다”고 보도했다. 알뮤니아 EU 집행위원 또한 “투자대상, 운용기준, 투자구성 등의 측면에서 투명성을 제고하지 않을 경우 국부펀드들의 선진국 전략산업 투자 시도에 대해 적절한 대응조치를 강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국부펀드 논란은 실상 신자유주의세계화 특히 금융세계화에 따른 자본블럭간의 경쟁 및 대립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실제로 언론보도에 따르면 개도국 국부펀드 성장세가 지속되면서 국부펀드의 운용을 둘러싼 선진국과 개도국 간 갈등이 확대될 우려되고 있다고 한다. 개도국들은 그동안 자본자유화를 추진해 오면서 시장규율을 강조하였던 선진국의 국부펀드 규제강화 움직임에 반발해 왔다. 국부펀드를 통해 선진국 주요산업에 대한 투자, 인수를 확대하려고 하는 개도국과 자국의 기간산업을 보호하려는 선진국 간 마찰이 빈번해지면서 보호주의가 확산될 우려도 있다. 한편 해외 대형 국부펀드들이 신흥시장국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어 국내투자 확대 가능성에 대비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실제 쿠웨이트, 카타르 등 중동 국부펀드들은 고성장 등으로 상대적으로 투자수익률이 높은 중국 등 아시아국가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카타르 투자청 최고책임자를 겸직하고 있는 쉐이크 하마드 총리는 최근 “아시아지역에 대한 포트폴리오 비중을 40%까지 높일 계획”이라며 “쿠웨이트 투자공사도 미국과 유럽 투자 비중을 90%에서 70%로 줄이는 대신 중국, 인도 등 아시아지역의 부동산, 사모펀드 등에 대한 투자확대를 추진 중이다”고 말했다.5)


결론적으로 볼때 세계경제의 불안정성에 대한 경고는 계속되고 있다.


무엇보다 부실규모가 날로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메릴린치는 3분기에 22억4000만달러의 적자를 봤고 UBS도 7억4000만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은행 실적 악화는 미국계 뿐만 아니라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일본 등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문제는 앞으로 부실상각이 더 많아지고 손실액도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서브프라임과 관련된 자산가격 하락으로 4분기 부실상각 규모가 큰 폭으로 확대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주요 투자은행들이 예상하는 서브프라임 관련 총손실 추정액이 빠르게 늘고 있다.


OECD는 내년에만 3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으며 도이치뱅크와 골드만삭스는 총손실 추정액을 3000억~4000억달러로 내놓았다. UBS는 4800억달러, RBS는 5000억달러로 전망했다. 또 전세계의 부채담보부증권(CDOㆍCollaterized Debt Obligation) 손실규모 역시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JP모건이 CDO손실규모를 2600억달러로 예상했다. 이는 UBS증권의 전망치인 850억달러의 3배에 달하는 규모다. 부채담보부증권은 빚을 담보로 발행되는 자산담보부증권(ABS)의 일종이다.


여기에 미국의 주택가격 하락은 모기지 연체율 증가와 담보주택의 유질 처분 증가, 기존 주택의 공급 확대로 주택가격을 다시 떨어뜨리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서브프라임모기지론 부실로 금융기관들의 대출조건이 강화되고 있다. 이는 연체율을 올리고 다시 주택경기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분위기다. 모기지대출 연체율은 2005년 하반기부터 상승하기 시작했다. 올 2분기 서브프라임 연체율은 14.82%까지 올라섰다. 프라임 연체율은 2.73%였다. 3분기 은행들의 전체 주택대출 연체율은 2.74%로 1년만에 1%포인트 올랐다. 주택가격 하락과 연체율 증가는 결국 원리금을 못 갚은 상황을 만들어 주택이 경매 등으로 다시 시장으로 나오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주택공급이 확대되면서 가격이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주택가격이 떨어지면 구매자들도 매입 시기를 늦춰 수요는 더 줄게 된다.


문제는 주택경기 침체가 경기 하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다.6)


☞ 아시아경제의 불안정성


상황이 이렇게 되니, 미국경제의 어려움을 아시아나 유럽이 보완할 것이라는 주장대신 전세계적인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확대되고 있다.7) 이는 중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일예로 중국 경제가 세계의 공장임을 자처하지만 선진국 원청기업의 하청공장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ㆍ유럽의 경기가 후퇴하면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전망이 그것이다.8) 최근 한달여 사이 상하이증시는 20.04% 급락해 베어마켓(bear market)에 진입했으며 중국 부동산 열풍의 진원지인 광둥성 선전의 신규주택 거래량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중국 증시와 부동산에서 거품 붕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30일 베이징상보(北京商報)에 따르면 저우샤오촨(周小川) 인민은행장은 중국 공상은행과 HSBC은행이 공동 주최한 포럼에서 중국 경제의 경착륙 가능성을 이례적으로 거론했다. 저우 행장은 “지금 전세계 범위에서 경제가 서로 영향을 받게 돼 있다”면서 “중국 은행들이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에 따른 경기 파동에 경각심을 갖고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미국 씨티은행은 중국 경제가 구조적인 조정에 따른 ‘진통기’에 진입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했다. 선밍가오(沈明高) 씨티은행 수석분석가는 “중국 통계국에 따르면 중국 경제는 지난 10월에도 공업생산지수는 물론 도시민 가처분소득과 소비자물가지수(CPI) 등 주요 지수가 과열상황을 나타내면서 다시 ‘경고등’이 켜졌다”면서 “재정수입이 6개월 연속 ‘경고지대’를 벗어나지 못한 상황 등에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 증시와 부동산의 버블 붕괴 가능성도 제기된다. 청쓰웨이(成思危)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부위원장도 최근 “증시와 부동산이 동시에 비정상적인 과속성장을 지속하고 있다”며 부동산 거품 붕괴 가능성을 제기했다.


실제로 중국정부는 내년 경제 운용의 방향을 경기과열과 통화팽창 억제에 두겠다고 밝혔다.


이는 중국 경제가 막대한 외자 유입과 고정자본 투자 과열 등으로 고성장을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에 따른 것이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은 27일 내년도 경제 정책 방향을 정하는 정치국 회의를 열어 통화팽창과 과열경기를 억제하는 양방(兩防) 정책을 결정했다고 중국 언론들이 28일 보도했다. 올들어 고공행진중인 중국 물가는 10월 6.5%의 상승률을 기록, 10년래 최고치를 경신했다. 하지만 10월 이후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유가인상으로 공공교통요금 등 서민 물가가 들썩이고 있다. 중국 지도부는 이 같은 물가상승이 저소득계층의 생활에 영향을 미쳐 사회안정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펑싱윈(彭興?) 중국 사회과학원 금융연구소 주임은 “통화 팽창을 막기위한 조치는 과감하게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9)


☞ 2008년 한국경제 전망은?


2008년도 한국경제 전망과 관련하여서는 다소간에 차이가 존재한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비교적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10) 이들은 20일 `2008년 한국경제 전망`을 통해 대외여건 악화에도 불구하고 내년 경제성장률을 당초 예상치인 5.0%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올해 경성장률은 4.8%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상반기 수출과 설비투자 호조, 하반기 소비회복 등의 요인에 힘입어 경기상승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내년의 경우 한국경제는 `상고하저`의 형태를 보일 것으로 전망됐다. 상반기중 전년동기대비 5.2%, 하반기는 4.6%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연구소는 "서브프라임 부실이 확대되고 있지만 당초 예상을 넘어서는 미국 경제의 하강세를 확인하긴 어렵다"고 진단했다. 또 "세계경제나 한국경제 모두 유가상승에 대한 면역성이 커져 고유가의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경제 둔화에도 불구, 신흥국가의 성장은 지속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들도 다만 미국 주택시장 침체가 소비부진으로 이어질 경우 한국경제도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단서를 달고 있다. 즉 미국경제가 1%미만으로 성장한다면 내년 수출증가율이 한자릿수로 하락할 것이란 설명이다. 또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으로 주식시장 호황을 바탕으로 한 소비회복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만일 이같은 상황이 일어날 경우 내년 성장률은 올해보다 낮은 수준을 기록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한국경제 전망과 관련 주요언론 연구소들의 입장은 비관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11) 무엇보다도 체감경기가 문제라고 지적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전국 2407개 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제조업체의 11월 업황전망 실사지수(BSI)는 90으로 전월보다 3포인트 하락했다. 3개월 연속 하락세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조사한 내년 1분기 BSI 전망치는 99로, 전분기에 비해 6포인트 하락하면서 4분기 만에 처음으로 기준치(100) 밑으로 떨어졌다. 내년 1분기 경기가 전분기보다 악화될 것으로 예상한 업체는 28.9%로 경기상승을 예상한 업체(27.7%)보다 많았다. 주택담보대출의 기준금리로 적용되는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는 6년 반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주식시장은 조정과 반등을 반복하며 해외발 변수에 출렁거리고 있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미국 서브프라임 부실과 고유가 , 중국발 인플레이션 등 크게 세가지 대외악재가 아직까지는 실물경제로 전이되지 않았다"면서도 "내년이후에는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시각이 우세하다"고 우려했다. 그는 "미국 경기가 연착륙된다면 디커플링이 가능하겠지만 침체로 빠진다면 수출 등 우리 경제도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다"며 "최근 경기회복의 든든한 버팀목인 소비 회복도 금융시장 불안심리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BSI가 뚝뚝 떨어지고 있고 금융시장 불안이 주식시장에 반영되면서 기업과 투자자들의 심리불안이 나타나고 있다"며 "그렇게 되면 내수의 큰 축인 투자와 소비에 영향을 주게된다"고 분석했다.


그는 "미국을 따라 유럽이 불안해지고 투자자금이 아시아권에서 이탈되면 우리도 전염효과에 들어갈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내년 성장률을 5%로 전망했지만 내달 중순까지 조정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008년 경제전망 관련 기사정리 2


작성: TJ


지난 경제전망 1에서 다루었던 것처럼, 200년 경제전망의 주요변수는 미국발 서브프라임모기론사태로 인한 여파, 중국경제의 긴축정책이 가져올 변화이다. 이번주 경제동향에서도 이를 중심으로 경제전망관련 각종 기사를 정리요약하고자 한다.


제목: 서브프라임사태 어디로 가나?


세계경제 비동조화론자들의 주장, 일부 경제연구소가 08년 한국경제 성장률이 5%를 유지할 것이라는 진단에도 불구하고 주요언론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여파를 우려하는 기사를 계속 싣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한국정부 당국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문제에 대해 공공연히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지난 10일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에 따르면 부시 미 대통령이 앞으로 5년간 일부 서브프라임 모기지 금리 동결을 추진하겠다고 지난주 발표했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 연체율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분석됐다.

재경부 관계자는 “만기 30년짜리 서브프라임 모기지 금리는 대출 초기 몇 년간은 연 2∼3%로 낮지만 그 이후엔 훨씬 높아지는 구조”라면서 “2005년 이후 모기지 대출자는 내년 1월부터 금리가 재조정돼 치솟기 때문에 국내 금융시장에 미칠 충격이 내년초부터 더 커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걱정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내년과 2009년 중 금리 재조정 대상자는 18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미국은 2005년부터 지난 7월 사이 이뤄진 모기지 대출 가운데 투기자가 아닌 주택의 실거주자로 60일 이상 연체가 없는 등의 조건을 충족하면 금리를 동결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대책이 제대로 추진된다고 해도 120만가구만 혜택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더욱 중요하게 부시정부의 이번 서브프라임 모기지 금리동결 조치가 단지 실효성을 갖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실상은 투자자를 위한 조치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즉,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에 대한 금리동결 계획은 다가올 몇 달 동안 그들의 집을 잃게 될 수많은 가정들의 압류(foreclosure)을 막는 데에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며, 미국의 주택시장 붕괴와 이에 따른 신용위기로 인해 금융거인들이 감수해야 하는 손실을 축소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부시행정부의 계획에 따르면 모기지 대출기관이 자발적으로 소수의 서브프라임 변동금리 차입자 들에게 최초차입 수준의 금리로 - 이미 통상적인 주택대출(conventional home loans)보다도 몇 퍼센트 더 높은 수준 - 5년 동안 금리를 동결해주게 될 것이다. 오직 그들의 대출을 상환할 능력이 있는 이들과 “최초” 차입 금리를 간신히 낼 수 있을만한 이들만 이 동결조치에 해당하고 더 높은 금리를 지불하지 못할 이들은 다가올 몇 달 동안 축출 명단에 오를 것이다. 이렇게되면 최초의 낮은 금리나 더 높은 갱신된 금리를 갚지 못할 서브프라임 차입자들은 제외될 것이다. 이는 저소득 또는 중산층의 절대 다수의 주택 소유자들이 모기지 상환을 위해 고통을 겪고 그들의 주택은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됨을 의미한다.

목요일 기자회견에서 폴슨 재무장관은 한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부시 행정부의 계획이 실패한 주택대출로부터 그들의 손실을 줄이고자 하는 모기지 대출자들이 이미 시행하고 있는 모기지 조정 과정을 “조율”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이 계획은 2005년 1월 초에서 2007년 7월 말까지 이루어진 대출에 적용되며 2008년 1월 초와 2010년 7월 말 사이에 조정될 예정이다. 이는 자동적으로 2007년 4분기에 조정될 예정인 모기지 850억 달러는 제외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그들의 주택을 위해 자본을 충당했던 서브프라임 차입자 들을 위해 연방주택사업국을 통한 자금재조달(refinancing)의 촉진, 그리고 중앙과 지방정부가 리파이낸싱을 조달하기 위한 비과세 채권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제완화도 포함한다.

이 계획은 결국 노동계급 가정, 빈 집으로 메말라갈 커뮤니티, 부동산세 감면에 시달릴 중앙과 지방정부 등이 직면한 사회적 재앙을 줄이는 데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반면, 정치인들과 금융인들은 이 계획이 신용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부식하는 것을 막고 월스트리트가 재앙적인 붕괴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데 충분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는 당장 은행과 투자자들이 수백만 달러의 악성투자를 상각 처리하는 것을 지연시키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세계경제 동조화론으로 돌아서는 것은 거대 금융자본도 마찬가지이다. 세계경제가 미국경제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디커플링(decoupling)’을 일찌감치 예견한 골드만삭스도 서브프라임 부실사태를 계기로 예전의 시각을 180도로 수정했다. 피터 베레진 골드만삭스 이코노미스트는 “세계경제가 일제히 미국발 악재에 충격을 받고 있다”며 “오는 2008년은 동조화 현상이 다시 찾아오는 ‘리커플링(recoupling)’의 해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골드만삭스는 내년도에 거시경제 분석 대상 38개국 가운데 26개국의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고 불과 12개국만 전년보다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세계경제 성장률도 당초 4.7%에서 4%로 하향조정했다. ‘브릭스’라는 신조어를 만든 짐 오닐(사진)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유럽과 일본은 수많은 리스크가 잠복해 있어 미국보다 빠른 속도로 경기가 둔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과 캐나다 중앙은행은 미국발 금융 충격에 따른 자국 경제의 침체 가능성에 대비해 지난주 금리인하를 단행했으며 유럽중앙은행(ECB) 역시 조만간 금리인하 추세에 동참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미국경제와의 동조화를 부른 최대 요인은 역시 미국 부동산발 소비 침체다. 스티븐 로치(사진) 모건스탠리 아시아태평양부문 회장은 “미국 소비자들은 세계경제를 뒷받침하는 초대형 고릴라”라며 “미국의 주택경기 침체가 소비 둔화로 연결되면서 세계경제가 미국과 탈동조화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게 됐다”고 분석했다.

대미 수출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역시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타이 휘 스탠다드차타드은행 동남아시아 책임자는 “미국 소비 침체로 홍콩ㆍ대만ㆍ말레이시아ㆍ싱가포르의 수출이 감소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국 역시 미국의 소비 둔화로 적지않은 고통이 예상된다. 후쿠이 도시히코 일본은행 총재도 이달 3일 기자회견에서 “해외발 경기하강 위험이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오토론 문제까지 겹쳐질 경우 상황은 더욱 나빠질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7일 보도자료에서 리먼브라더스를 인용, 지난 2006년 오토론 신청자 중 신용등급이 최상위이면서도 30일이상 자동차 할부금 상환을 연체한 차입자의 비율은 9월말 현재 4.5%를 나타내 직전월인 8월의 2.9%를 크게 웃돌았다며 이는 월간 기준으로 8년래 최대 상승폭을 기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지난 9월말 현재 신용등급이 좋지 않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차입자 중 12%가 오토론 연체자에도 포함된 것으로 나타나 8월의 11.1%에서 크게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신문은 오토론 시장의 상황이 모기지 시장과 같은 재앙 수준으로 발전하지 않을것으로 업계에서는 전망되고 있다며 그러나 주택차입자들이 주택대출을 상환하지 못하듯이 자동차 할부금을 상환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모기지 시장과 오토론 시장은 연결돼 있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미국의 자동차 판매가 올 들어 2.5% 감소했고 내년에도 추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오토론 금리도 지난 2004년말 6.5% 수준에서 8%로 급등했다며 이는 미국의 소비지출을 비롯한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주장했다.

오토론이 모기지 채권과 마찬가지로 증권화가 활발히 이루어졌던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에 따르면 지난 2006년 오토론을 기초로 발행된 자산유동화증권(ABS)은 890억달러에 달해 모기지와 신용카드 계정에 이어 3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도이체방크에 따르면 오토론을 기초로 발행한 ABS는 올 들어 11월까지 690억달러를 기록해 작년동기보다 19%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신문은 오토론 연체율이 보다 광범위한 경제의 건전성과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오토론 시장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신호는 신용위기 상황이 미 경제 전반에 보다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덧붙였다.



제목: 제목: 중국경제의 경기과열 억제정책과 한국경제와의 관계


지난 경제전망 1에서도 언급했듯이 중국당국은 경기과열 억제정책의 필요성을 공공연히 언급한바 있다. 문제는 이것이 세계경제와 한국경제에 가져올 여파이다. 관련된 기사들에 근거하면 매우 부정적인 효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견해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먼저 사실관계부터 확인해보자.

중국의 중앙은행인 중궈런민(中國人民)은행은 25일자로 시중은행의 지급준비율을 현행 13.5%에서 14.5%로 1%포인트 인상한다고 8일 발표했다. 이 같은 지준율은 1985년 이후 22년 만에 최고 수치다. 이번 조치는 5일 폐막한 내년도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중국 정부가 ‘통화정책의 기조를 안정에서 긴축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한 뒤 사흘 만에 나온 것으로, 경기 과열과 물가 앙등을 강력하게 억제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특히 지준율을 0.5%포인트씩 올리던 데서 벗어나 일거에 1%포인트를 올린 것은 그만큼 정부와 중앙은행의 긴축 의지가 강력하다는 점을 보여 준다.

중국 정부가 1998년 이후 10년간 지속해 온 ‘안정’ 위주의 통화정책을 ‘긴축’으로 바꾼 것은 5년째 계속되는 두 자릿수의 과열 성장과 통화팽창에 따른 물가 폭등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2003년부터 경기가 과열 조짐을 보이자 지준율을 14차례 올리는 외에 금리도 8차례 올렸지만 과열 경기는 식을 줄 몰랐다.

올해 중국의 예상 성장률은 11.6%로 1994년 이래 14년 만에 최고치를 나타낼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 성장률 예상치도 11.0%에 이른다. 10월 말 현재 도시의 고정자산 투자증가율 역시 26.9%로 지난해 24.3%보다 올랐다. 학자들은 고정자산 투자증가율이 25%를 넘으면 ‘경기 과열’로 진단한다. 통화량도 올해 10월 말 현재 39조4200억 위안(약 4897조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47%나 늘었다. 10월 말 현재 신규 대출 증가액은 3조5050억 위안(약 435조 원)으로 지난해 전체보다 많다. 이에 따라 물가도 올해 들어 최고 6.5%나 올라 최근 10년간 ―1.4∼3.9% 선이었던 물가 안정추세가 완전히 무너졌다.

그러나 이번 조치로 중국의 과열 경기가 수그러들지는 불확실하다. 중국사회과학원 금융연구소 화폐이론 및 화폐정책 연구실 펑싱윈(彭興韻) 주임은 “경제지표의 변화에 따라 금리와 지준율이 재조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추가 조치가 나올 수 있음을 암시했다.


다음, 이러한 중국의 경제상황이 한국에 어떤 효과를 가져올지 살펴보자.

무엇보다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이 신규 대출을 받지 못해 자금난에 봉착할 가능성이 커진 데다, 수출에도 상당한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특히 중국 증시 하락이 본격화될 경우 국내 증시에도 큰 파장을 미치게 돼 이번 중국의 정책 전환이 자칫 '중국발 쇼크'로 확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박순양 부산은행 전략기획부 금융경제조사팀장은 "중국의 이번 정책 전환은 경기 안정을 위한 긴축이 아니라 경기 과열을 억제하기 위한 긴축이라는 점에서 그 강도가 아주 높을 것"이라며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이나 중국에 수출하는 기업들 입장에선 상당한 부정적 영향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더욱 문제는 中 인플레가 서민경제 압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저물가 덕분에 국민들은 지난 10년을 장바구니 부담없이 보낼 수 있었다. 이는 저가의 중국제품 덕이었다. 이른 바 ‘차이나프리(China Free. 중국(제품)없이 살아가기 힘든 현실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말)’로 불리는 중국 경제의 슈퍼 파워가 그것이다. 그런데 최근 물가는 지난 10월 위험수위인 3%로 오르더니 11월에는 3년 만에 처음으로 3.5%까지 뛰었다.

기간 국내 경제가 지난해 5%의 안정적 성장을 하고도 얼어붙은 체감경기를 제대로 녹이지 못했던 이유는 소득 증가율이 줄곧 생산증가율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지난 3분기에 와서야 5년 만에 처음으로 국민총소득 증가율(5.4%)이 국내총생산 증가율(5.2%)을 추월했다. 이는 전체 해외펀드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차이나펀드 특수로 해외펀드 투자를 통한 이자와 배당수익이 1조원 가까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중국 증시의 상승세가 이웃 나라인 우리 국민의 지갑을 채워준 셈이다.

여기에 56개월 흑자행진 이어간 수출도 중국경제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산업자원부는 올해 하반기 수출 전망을 할 때마다 “고유가와 환율하락의 어려움이 있다”고 우려해 왔지만, 실상은 달랐다. 11월 수출은 359억5000만달러로 두 달 연속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며 상승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오정규 산자부 무역투자진흥관은 “불안정한 대외여건 속에서도 중국 등 신흥공업국으로의 수출호조로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즉, 재정경제부가 어려운 대외여건에도 불구하고 내년도 경제성장률 전망치(5%)를 고수하고 있는 것은 글로벌 생산공장에서 세계 최대 소비시장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중국이라는 버팀목 때문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아직은 물가관리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유가와 곡물가가 동시에 오르고 원자재가격 부담까지 가중돼 물가 상승세가 쉽게 꺾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멈추지 않는 물가, 이곳에도 중국 효과가 녹아 있는 셈이다.

장재철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올 들어 중국의 소비자물가가 가파른 상승세를 지속하면서 경제 전반에 인플레이션이 확산되고 있으며 그 영향으로 고유가와 과잉 유동성 등에 따른 기존의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을 더욱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더욱이 전체 수입 중 대중국 비중이 18%에 달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직접적인 영향권 안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제목: 한국경제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들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 중국발 경기억제 정책 말고도 한국경제의 적신호를 경고하는 여러 기사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세계경제 전체의 불안정성을 들 수 있다.

일예로 국제금융시장의 금리가 3일 9년래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에 따라 외화차입이 많은 한국경제에도 충격파가 우려된다. 국제금융시장의 중심지인 영국 런던에서 우량은행끼리 단기자금을 거래할 때 적용할 금리인 리보(LIBOR)금리가 3일 직전거래일인 지난달 30일에 비해 6.10%에 0.61%포인트 6.71%까지 치솟았다.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국제시장이 요동치기 시작한 지 불과 4개월만에 리보금리가 1.0%포인트나 급등한 것이다.

이 같은 리보금리 수준은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 부도 사태로 국제금융시장이 큰 혼란을 겪었던 1998년 12월이후 가장 높은 것이다. 이에 따라 국내 금융시장에서 국채를 비롯한 채권금리 상승이 예상되고 이어 외화차입을 많은 기업들에게 신규 외화차입 비용의 증가 뿐만 아니라 기존의 외채에 대한 상환부담을 증가시킬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이후 일어나고 있던 국내증시에서의 외국인 투자자금의 이탈을 가속화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국제금리급등과 외국인투자자금 이탈에 이어 국제유가의 급등과 돌출적인 정치 경제적인 악재까지 겹친다면 국제금융시장의 신용경색이 외부적인 요인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국내경제도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게 경제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편 세계경제의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기사들도 나오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3일 경기 둔화를 막기 위해 각국의 금리 인하가 필요한 시점이지만 식품과 에너지 가격의 고공행진으로 인한 물가상승 우려 때문에 통화당국이 딜레마에 빠졌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주요국 물가지수도 하반기 들어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지난달 유로존(유로화를 통용하는 유럽 13개국 경제권)의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3%(이하 전 분기 대비,연율 기준)로 목표치인 2%를 크게 웃돌았다. 물가상승률이 3%대로 올라선 것은 6년여 만에 처음이다. 독일이 13년 만에 최고치인 3%를 기록했다. 영국 물가는 지난 10월 2.1% 상승했다. 미국 물가도 지난 10월 3.5% 올랐으며 중국은 6.5%로 8월 수준으로 다시 치솟았다.

FT는 비싸지는 식품과 에너지 가격이 물가 수준을 장기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통적 시각에선 식품과 에너지 가격이 장기 물가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으로 본다. 변동성이 크기 때문이다.그래서 인플레이션 판단 기준이 되는 근원(core) 소비자물가지수에서 식품과 에너지 가격을 뺀다. 하지만 이런 전통적 접근 방식을 바꿔야 할 정도로 식품과 에너지 가격의 상승세가 강력하다는 것이다.

케네스 로고프 미 하버드대 교수는 "상품(commodity) 가격과 전체 물가의 관계에 구조적인 변화가 일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 각국 중앙은행들의 물가관리가 최근 수년간 신통찮았던 것도 이런 구조적 변화를 가속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FT는 각국 통화당국이 스태그플레이션에 대처하려면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발 신용위기가 글로벌 성장과 각국 경제의 성장세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주의깊게 들여다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흥경제국들은 신용위기의 초기 충격에서 대체로 벗어났기 때문에 인플레이션 억제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주문했다.

HSBC의 스티븐 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지금으로선 신흥경제국 사람들은 전적으로 물가상승과 경기과열,과잉 유동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선진국 통화당국은 그러나 성장세를 살려나가는 게 중요하고 이를 위해 어느 정도까지 금리를 인하할 수 있는지 잘 따져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경우 글로벌 투자자들과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당국의 시각차가 있다. 투자자들은 미국 경제의 침체를 걱정하는 반면 FRB는 내년에 성장세가 회복되고 실업은 크게 늘어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오히려 공격적으로 금리를 인하할 경우 달러 약세를 가속화하고 유가 상승과 미국 내 물가상승이라는 부작용을 낳을 것으로 염려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한국경제의 적신호는 여러요인이 충첩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주택대출 금리 인상도 그 요인 중 하나이다.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가 8%대로 치솟은 가운데 주택담보대출 고정금리도 9%대를 돌파했다. 채권시장 약세로 변동형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결정하는 양도성 예금증서(CD)금리뿐만 아니라 고정 금리형 주택담보대출의 금리를 결정하는 은행채나 국고채 등 장기채권의 금리가 급등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올해 은행채 발행이 급증하면서 은행채 금리가 CD금리보다 휠씬 큰 폭으로 상승했다. 고정 금리마저 급등하면서 변동 금리 대출자들이 고정 금리 대출로 갈아타기도 어려워졌다. 고정금리로 3년 거치기간을 거쳐 변동금리나 고정금리로 갈아타야 할 대출자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소비심리도 움추러 들었다. 경기 전망을 나타내는 심리지표인 소비자기대지수가 8개월만에 하락세로 돌아섰다. 통계청이 6일 발표한 11월 소비자전망조사 결과에 따르면 6개월 뒤 경기, 생활형편, 소비지출에 대한 경기 기대심리를 나타내는 소비자기대지수는 102.0으로 10월 103.3에 비해 1.3포인트 떨어졌다. 그동안 소비자기대지수는 7개월 연속 오름세를 보였지만, 지난달에는 상승세가 한풀 꺾였다.

생활형편 기대지수와 소비지출 기대지수는 각각 101.4,106.8로 10월보다 1포인트,1.3포인트씩 하락했다. 게다가 모든 소득계층에서 소비자기대지수가 하락했다. 월 400만원 이상 고소득 계층은 108.0에서 106.5로,300만원대 계층은 106.1에서 104.7로 떨어졌다. 월 소득 100만원대 계층은 100.5에서 99.0으로,100만원 미만은 95.6에서 95.4로 하락했다. 연령별로도 전 연령층에서 소비자기대지수가 하락세를 보였다.6개월 전과 비교해 현재의 경기, 생활형편 등을 평가하는 소비자평가지수는 지난달 88.0으로 10월 92.5에 비해 4.5포인트나 급락했다. 지난 4월 87.4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소비심리가 최근 7개월새 최고로 꽁꽁 얼어붙은 셈이다. 현재 자산 가치에 대한 소비자 평가를 나타내는 자산평가지수는 주식·채권의 경우 금융시장의 불안정 등 여파로 97.1을 기록,10월보다 9.7포인트 추락했다.

정부와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일제히 “우리경제의 하방위험이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고유가 등의 여파로 물가가 내년 1·4분기까지 3%대 중반의 높은 상승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가격 상승률이 높은 기초 원자재와 농축수산물 등에는 할당관세를 적용, 세율을 낮출 방침이다.

재정경제부는 6일 경제동향 보고서인 ‘그린북’을 통해 “유가 상승과 미국 경기 둔화, 중국의 추가 긴축 가능성 등 하방위험이 확대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경기불안 요인이 상존하고 있다.”는 중립적 진단보다 경고의 수위가 높아졌다.

KDI도 이날 발표한 ‘12월 경제동향’에서 “우리 경기가 호조세를 유지하고 있으나 세계 경기의 둔화 가능성과 물가상승 압력의 증가 등 위험요인들이 점증하는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내년 1·4분기까지 높은 물가 상승률이 지속될 가능성이 있으며 고유가에 따른 교역조건 악화로 실질 국내총소득(GDI) 증가세가 4·4분기 이후 둔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경제의 위기를 진단하는 또 하나의 경고는 외국투자자들부터도 나왔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4일 국내 외국 대사관의 상무관과 외국기업인 100명(응답 8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한국주재 외국 경제인들의 우리나라 대외경쟁력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39.3%는 5~6년 내 한국 경제가 어려운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견해에 “그럴 수 있다”고 응답했다.

한국 경제를 위협할 요인으로는 36.0%가 ‘중국ㆍ인도 등 후발국의 추격’을, 21.3%가 석유 등 원자재 가격 상승 및 확보 곤란을, 2.2%가 북핵에 따른 안보 불안을 꼽았다. 전체의 59.5%가 외부 경제 여건이 한국 경제의 진로를 좌우할 것으로 전망한 셈이다.

한국 경제의 대외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응답자의 29.8%가 ‘글로벌 수준의 제도 정비’를, 19.4%가 ‘선진 기업을 따라잡기 위한 한국 기업의 기술개발 노력’을 제시했고, 15.3%는 ‘고지가ㆍ고임금 등 고비용 구조개선’을 지적했다.

주한 외국 경제인들은 그러나 한국 경제에 대한 이 같은 우려 섞인 전망에도 불구하고 주력 수출업종의 경쟁력은 크게 나빠지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 주요 산업의 5년간 경쟁력 전망과 관련해서 조선ㆍ이동통신기기ㆍ디지털 가전 등은 50% 이상이 ‘강화될 것’으로 내다봤고 석유화학ㆍ철강ㆍ기계ㆍ자동차 등은 ‘현재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는 응답이 50% 안팎이었다. 다만 섬유업종의 경우 응답자의 60% 정도가 ‘5년 내 경쟁력이 약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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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정세글 - 강내희

 

변혁적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정세분석1)

                                                            강내희           


1. 2007년 대선 이후의 정세


지난 10년간 정권을 잡아온 개혁적 자유주의 세력이 몰락하고 (신)보수적 자유주의 세력이 압도적 승리를 거두었다. 이명박의 승리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급증, 사회양극화의 심화, 민생경제의 파탄 등을 빚어낸 노무현 정권이 심판을 받았음을 말해준다. 이는 개혁적 자유주의를 자신의 이념으로 삼은 노무현 정권이 시행해온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민중의 분노와 울분이 표출된 결과일 것이다. 노 정권의 실정에 대한 민중의 심판이 (신)보수적 자유주의에 대한 지지로 이어진 것은 아이러니라 하겠지만, 최근 국내 정치세력들의 지형을 놓고 보면 그것은 필연적인 결과이기도 하다. 대선 전까지 노무현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 노선에 대한 대안, 무엇보다 진보적, 변혁적, 좌파적 정치세력의 구심점이 형성되어 있지 못했다. 민생파탄, 사회적 양극화, 비정규직 급증 등은 신자유주의가 자아낸 폐해라는 점에서 노무현 정권만이 아니라 보수 세력 전반이 떠안아야 할 책임인데도 진보적 대안이 부재했던 탓에 ‘경제 살리기’를 내세운 이명박에 대한 민중적 지지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지난 대선을 통해 범 보수=자유주의 진영 내부에는 대대적인 세력 교체가 이루어졌다. 이 진영은 크게 보면 개혁적 성향과 보수적 성향으로 양분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지난 10년간 정권을 장악해온 개혁적 자유주의는 대선에서 패배했고, 2008년 4월에 실시될 총선에서도 참패가 예상되는 반면 보수적 자유주의가 새로운 집권세력으로 부상했다.2) 세력 교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수구보수’ 박근혜와 ‘실용보수/신보수’ 이명박의 경쟁에서, 대선에서는 박근혜의 패배가 가져온 빈틈을 이용해서 다시 등장한 ‘정통보수’ 이회창과 이명박의 경쟁에서 후자가 승리함으로써 보수 진영 내부에서도 세력 교체가 일어났다. 이로 인해 보수 진영 내부에서는 ‘실용보수’, ‘신보수’의 시대가 개막되었다고 하겠는데, 넓게 보면 자유주의 진영은 개혁적 자유주의 세력의 전반적 후퇴 속에 보수적, 특히 신보수적 자유주의가 전면에 나서는 구도가 만들어진 셈이다.

(신)보수적 자유주의의 승리는 어떤 사회적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일단 근본적인 변화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차기 정권이 개혁적 자유주의에서 보수적 자유주의로 입장 선회가 이루어진 점만 본다면 이런 전망이 가능하다고 본다. 두 자유주의 세력 간의 근본적 차이는―양자의 차이를 강조하며 전자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보내며 지난 10년 넘게 국내 사회운동 흐름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시민운동 진영의 지배적 관점과는 달리―사실상 없었다. 두 세력은 정치적으로는 서로 적대적이었으나 1997년 IMF 위기 이후 부쩍 강화되었고 그동안 한국 사회의 근간을 지배해온 신자유주의 정책 노선을 적극 지지한 점에서는 ‘초록이 동색’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크게 보면 동일한 세력 내부에 일어난 것일지라도 이번의 (자유주의에서 자유주의로의) 권력 이동이 눈여겨봐야 할 새로운 정치적 국면을 만들어낸 것 또한 부인할 수는 없다. 당연한 일이지만 (신)보수적 자유주의의 승리는 우선 그동안 ‘민주개혁’을 외치며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쳐온 개혁적 자유주의 세력 내부에 커다란 동요를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개혁적 자유주의 세력은 지난 대선에서 보수적 자유주의와의 경쟁에서 자신이 밀렸다고 보고 통합신당의 경우 과거 한나라당 소속인 손학규를 당 대표로 선출한 데서 드러나듯이 더 많은 우경화-보수화의 길을 걷는 모습이다. 물론 이런 모습은 한국 자유주의 진영의 양대 경향들 간에는 차이가 거의 소멸하고 있음을, 또는 양자의 차이가 원래 그리 크지 않았음을 확인해줄 뿐이다.

하나의 자유주의에서 다른 하나의 자유주의로의 권력 이동이 국내 정치지형에 가져온 파장은 진보진영에서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 개혁적 자유주의의 몰락은 그동안 제도권 정치에 진입하여 진보세력을 대변해온 정치세력의 몰락도 동반했다. 민노당과 한국사회당이 지난 대선에서 각각 3.01퍼센트, 0.07퍼센트밖에 득표하지 못한 것이다. 12월 19일의 대선이 끝난 이후 지금까지 민노당 내부, 안팎에서 당내 최대 정파인 ‘자주파’와 ‘평등파’ 사이에 종북주의 논쟁이 일고, 이 과정에서 당의 혁신, 제2창당, 신당 건설 등을 둘러싼 다양하고 첨예한 입장 차이가 드러나고 있는 것은 그동안 합법정당 운동을 해온 진보정치 세력의 패배가 가져온 충격의 파장이다. 이런 점은 한편으로는 민노당의 그간 정치적 행태가 근본적 위기를 맞았다는 점과 이제 진보정당운동의 재구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동시에 보여준다.

지난 대선의 특징 하나는 기권율이 크게 증대했다는 것이다. 이는 한나라당, 통합신당 등 자유주의적 제도권 정치에 대한 불신과 함께 민노당 중심의 진보정치에 대한 불신도 동시에 크게 증대했다는 증거이다. 특히 지난 대선에서 민노당은 당원들까지도 기권율이 높았고, 자당 후보에 대한 투표율도 낮아서 진보정치에서의 급진적 변화에 대한 열망이 저변에 누적되어 있음을 짐작케 한다.



2. 이명박 시대의 전망


이명박 정권은 자유주의 세력 가운데서도 보수적 자유주의 세력이며, 보수적 자유주의 세력 가운데서도 실용노선 또는 신보수의 길을 걷는 세력이 창출한 정권이다. 이에 따라 이명박 정권은 1997년 이후 개혁적 자유주의 세력에 의해 추진되어온 신자유주의 정책을 더 강력하고 노골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은 ‘경제 살리기’ 약속을 통해 대선 승리를 거두었다. 여기서 확인해야 할 점은 이명박이 회생시키고자 하는 ‘경제’는 자본주의 경제, 그것도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경제라는 사실이다. 이명박 식 ‘경제 살리기’의 목적과 성격은 17대 대통령직 인수위가 밝힌 차기 정부 구성 방향과 정책 방향을 통해 이미 드러났다. 인수위는 규제가 심한 정부부처일수록 공무원 감원을 더 많이 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한 바 있다. 각종 규제 완화가 기업, 특히 대기업의 요구를 전면 수용하는 조치임을 다시 언급할 필요가 있겠는가. 총액출자제도, 금산분리, 수도권 개발 등 그간 있었던 기업 활동 규제는 사회적 총자본의 이익과 기업운영의 투명성 제고, 국토의 균현적 발전 등을 위해 대기업 활동에 가했던 일정한 규제들이다. 이명박 인수위는 경제 성장 즉 자본 축적을 위해 투자 활성화 등을 추진할 것임을 밝힘으로써 이들 규제를 전면 완화하거나 제거할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 이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이 이전 정권이 보여준 친독점자본적 정책을 더욱 노골화, 전면화할 것이라는 분명한 신호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경제 살리기가 과연 효과를 볼는지는 의문이다. 기업의 투자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근본 이유는 규제보다는 적합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투자 부분이 적다는 데 있다. 산업부분에서 투자처를 찾지 못한 기업자금을 금융부문, 투기부문 등에 투자하도록 길을 터면 일시적으로는 금융자본 운동의 활성화 등을 가져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조치는 현재 미국의 경우가 보여주다시피 거대한 금융공황을 만들어내고 이는 다시 산업공황을 더 한층 파국적인 것으로 만들 공산이 크다. 나아가 과잉축적 시기 기업의 공격적인 산업투자는 (IMF위기 발생 2-3년 전의 경우가 보여준 대로) 곧바로 산업공황, 과잉생산위기를 촉발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식 ‘경제 살리기’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면 사회적 공공성의 극단적 파괴가 예상된다. 이명박 시대에는 공기업의 민영화가 다시 본격화할 것이다. 공기업의 민영화는 김대중 정권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나 노무현 정권에서는 일시 중단된 상태였다. 물론 이것은 노 정권이 민영화에 반대하여 생긴 현상인 것은 아니다. 철도공사가 KTX 여승무원의 정규직화를 거부하며 수익사업에 전념하여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한 예에서 볼 수 있듯이 공기업으로 남아 있는 경우에도 민영화라는 형식을 띠지는 않았어도 이미 광범위하게 민간 기업을 본 딴 운영체계를 수용해온 터이다. 민영화 없는 민영화가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시대에는 공공부문 전반에서 더욱 강력한 민영화 드라이브가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교육, 의료, 물=에너지, 주거 등 사회적 공공성을 구성하는 주요 공공 분야에서 더 강화된 시장화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점은 앞서 언급한 대로 이명박 인수위가 규제가 심한 정부부처의 인원을 더 감축하겠다고 밝힌 데서도 짐작할 수 있다. 이명박 시대에는 국가독점을 대신하는 민간독점이 강화되고, 노동유연화를 위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빈발하고, 사회적 공공성이 극단적으로 파괴될 것임을, 이 결과 필연적으로 대중의 삶이 더욱 피폐해질 것임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공공부문에 대한 사적 자본의 더 전면적인 침투가 허용되면 사회적 자원의 불균등 배분이 극대화되고, 대중의 삶에 불리한 소득재분배가 촉진될 것이다. 하지만 규제의 완화나 해제를 통한 경제 살리기는 사회적 자원의 파괴를 낳으면서 실제로는 사회적 비용을 추가로 증대시킬 수밖에 없다.

이명박 시대에는 금융자본주의가 더욱 강화될 것이 분명하다. 이명박 인수위는 금산분리 정책의 완화를 차기 정부의 입장으로 내놓았다. 이는 금융자본주의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자세는 미국에서 발생한 ‘비우량신용대출’ 부실 사태로 전 세계 금융시장이 위기를 맞은 점에 비추어 볼 때, 그리고 이제는 다보스포럼에서도 자본의 금융화에 대한 반성이 제기되기 시작했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3) 대세를 거스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자본주의적 발전을 추구하면 예상되는 금융공황 발생 시 금융소득자 층이 일차적 희생자들이 될 것이다.

이명박 시대의 또 다른 특징은 신자유주의적 개발정책을 강화할 것이라는 점이다. 한국의 국토는 노무현 정권의 ‘국토균형발전’ 정책에 의해 그러잖아도 각 지방 자치체의 무분별한 개발에 노출되어 있었으나 평생 ‘개발업자’로 살아온 이명박의 당선은 개발 드라이브를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이명박 식 개발은 과거 박정희 식의 개발과 동일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전에는 개발이 국가 재정에 의해 주도되는 발전주의적 성격이었다면, 이명박 식의 개발은 민자 유치 중심으로, 기업이 주도하는 방식으로 전환될 공산이 크다. 이런 점은 이미 첨예한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른 경부운하에 대해 이명박이 민간자본으로 건설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데서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민자 개발은 국가 주도의 개발보다 더 큰 문제들을 야기할 것으로 전망된다. 민자로 개발한다는 것은 기업 이윤을 보장해주겠다는 것인데, 이는 사회적 부담의 증대를 전제하는 개방 방침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심각한 생태환경 파괴가 우려된다는 데 있다.

이명박 정권의 경제 살리기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흐름의 지속과 강화로 이어질 것이다. 2월 말에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2007년 4월에 타결된 한미FTA 비준 안을 통과시키기로 한나라당과 통합신당 사이에 이미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 한미FTA의 발동은 1997년 IMF 위기를 계기로 한 층 더 강화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새로운 강화를 의미한다. 이번의 자유무역협정은 자본주의 국가들 가운데 가장 노골적인 신자유주의적 사회운영을 해온 미국과 체결한 것이라는 점에서 이는 미국의 신자유주의 사회 제도의 국내 도입을 의미하며, 한국사회의 미국화를 의미한다. 문제는 이 미국화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데 있다. 지금 미국은 이미 파산상태로 들어가 있을뿐더러 자국민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권리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이명박 정권이 한미FTA 비준을 통해 한국경제가 미국경제로 더 깊이 편입하여 미국식 신자유주의체제를 전면화하려는 것은 국내외의 독점자본 지배체제를 강화하기 위함 이외에는 목적이 없다. 그러나 이 조치는 국내 중소자본, 영세자본의 더 한 층의 몰락을 초래하며 한국 민중의 삶을 나락으로 빠뜨릴 것이다.

이명박 정권의 ‘경제 살리기’는 새로운 인구정책과 연동될 수밖에 없다. 이명박의 경제정책은 친 기업, 친 재벌, 친 자본의 성격을 띠기 때문에 설령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그 효과로 예컨대 일자리가 확대되더라도 비정규직의 한 층 더 높은 양산과 전면화를 동반하게 된다. 이미 심각해진 사회적 양극화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말이다. 한편으로는 명품시장이 확대된다 하더라도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을 계속해도 빈곤상태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인구가 증가하게 된다. 갈수록 많은 대중이 더욱 궁핍한 삶을 영위하게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노동 운동, 기층민중 운동의 활성화는 필연적이다. 운동의 증대와 급진화가 예상될 경우 정권 초기에 펼칠 것으로 예상되는 포퓰리즘적 정책의 자원은 곧 바닥을 드러내고, ‘엄정한 법 집행’을 내세우며 운동에 대한 억압적 정책을 강구하게 될 것이다. 지금 세계적으로나 국내적으로 공황의 위기가 닥치고 있다는 점에서 이명박 정권에서의 민중 탄압은 이전보다 한 층 더 강화된 파시즘적이고 공안적인 형태를 띨 공산이 높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등이 추진해온 신자유주의적, 시장주의적 정책을 끝장까지 밀고 나가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넘어지지 않기 위해 비탈길에서 자전거 페달을 계속 밟는 격이다. 신자유주의 체제의 위기를 신자유주의의 전면화를 통해 돌파하려는 자살 전략인 것이다. 그러나 임박한 미국발 세계공황이 금융적 축적의 위기를 몰고 오고 있고, 이 위기는 미국경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한국과 중국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며, 세계적 대공황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공황은 애초 미국헤게모니 하에서 조직된 전후 세계자본주의체제의 자본의 과잉축적이 가져온 장기적인 구조적 불황기의 최종국면에서 나타나는 파국적인 과잉생산위기가 될 것이다.

이 와중에 이명박 정권이 경제 살리기를 위한 출자총액제한제도의 폐지, 금산분리 완화를 통한 투자활성화 정책, 경부운하 건설 등의 개발 정책 등을 펴려는 것은 공황 출현을 부채질하는 셈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이명박 정권의 정책은 얼마 지나지 않아 파산 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임기 내에 신자유주의 지배체제가 지닌 제 모순들의 거대한 폭발이 있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 대해 현재 국민의 기대가 높을수록 모순의 폭발이 가져올 파장은 더 클 것이다. 높은 기대는 오래지 않아, 아마 2년 이내에, 거대한 실망과 분노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는 한국의 정치적 지형이 극도의 불안정에 빠질 것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높아가는 불만과 거세지는 저항을 제도정치권으로 흡수할 가능성은 더욱 낮아지는 조건 속에서 저항의 증대와 억압의 강화(신자유주의 경찰국가의 전면화), 즉 거대한 사회적 적대가 형성될 것으로 판단된다.



3. 진보정치 운동의 새로운 지형


17대 대선의 결과로 한국의 정치지형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이명박 정권하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의 강화에 따른 사회적 제 모순의 폭발과 첨예한 사회적 적대의 형성이 예상되는 가운데, 진보운동에도 새로운 과제들이 제기되고 있다.

그동안 한국의 진보운동은 민족해방(NL) 대 민중민주(PD) 노선의 경쟁 속에 NL파의 패권이 관철되는 구도 속에 놓여 있었다. 현재 민주노총, 전공 등 주요 대중조직, 민주노동당, 한국진보연대를 주도하는 것은 민족주의 진영이다. 민족주의, 또는 자주파의 패권이 정점을 형성한 것은 대선 직전이었고, 이 정세가 민노당의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민주노동당의 참패는 NL파의 패권 구도에 파열구를 내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민노당의 지도부가 비상대책위 체제로 바뀐 것은 NL파가 대선 후보 경선에서 거의 절대적 결정권을 행사한 것이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 NL파를 강타함으로써 그 세력을 일단 약화시켰기 때문이다.4) 이에 따라 민노당의 현재 당권은 비상대책위를 구성한 PD 계열의 ‘평등파’가 잡고 있고 평등파의 일부는 “보다 적색으로, 보다 녹색으로”라는 기치를 내걸고 지난 선거에서 민노당과 비슷하게 참패한 한국사회당과 지금 막 건설이 추진되고 있는 녹색당과 공동으로 당을 만들지 못하면 총선에서의 선거연대를 기대하며 진보신당을 구성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진보운동 내부에서 지금 한창 혁신과 재구성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정황이라 하겠다.

그러나 과연 이런 흐름이 한국의 진보운동에서 새로운 위력적인 흐름을 만들어낼는지는 미지수이다. NL과의 분명한 거리 두기를 시도하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없지 않지만 현재 민노당 내부에서나 외부에서 혁신이나 제2창당, 또는 신당을 건설하려고 나선 세력을 보면 대체로 PD 계열, 평등파이지만 이들의 입장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민주의 성격이 지배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지적은 현재 비대위를 구성하며 민노당에 남아 있는 평등파 세력에게 더 적합한 것이겠지만 민노당의 대선 패배를 계기로 민노당에서 나와 지금 신당을 건설하고자 하는 평등파 세력도 사민주의 성격의 강령을 채택한 당에 오래 속해 있었다는 점에서 쉽게 비껴갈 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실은 현재까지 진보정당 운동을 전개해온 세력 대부분이 충분한 변혁적인 자세로 당 건설 운동에 임하고 있는 것은 아님을 말해준다. 과연 사민주의적 입장을 통해 오늘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흐름에 포획되어 있는 한국사회의 새로운 대안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인가?

신자유주의 시기의 자본주의 발전 단계에서 사민주의는 비판적 세력으로서의 역할이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사민주의는 신자유주의의 발호로 인하여 파괴되고 있는 사회적 공공성의 수호자로서의 역할을 어느 정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구에서 사민주의가 후퇴한 것이 신자유주의의 상승기였다는 점을 곰곰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사민주의는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극복보다는 일정한 통제를 통해 복지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그 정치적 목적으로 삼는다. 하지만 사민주의가 약속하는, 그리고 한때 스스로 일정하게 구현했다고 본 복지국가는 신자유주의에 의해 무너졌으며, 세계적으로 사민주의를 내세우는 정당들은 더 이상 오늘날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사민주의는 자신을 새로운 진보의 대안으로 내세우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런 정황은 지금까지 언급한 진보정당 운동의 흐름을 넘어서는 새로운 운동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한국의 진보운동에 전반적인 혁신과 재구성이 필요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이 혁신과 재구성의 방향을 새롭게 설정해야 한다. 그것은 진보운동의 급진화이고 사회주의적 변혁이라는 분명한 좌파적 전망을 지닌 운동으로 만드는 것이다.

한국에서 사회주의적 변혁 운동은 사실 음지에서 이루어졌던 편이다. 국내 진보세력 가운데 사민주의와는 구분되는 사회주의 노선은 대체로 민노당과도 거리를 두고 있었다. 좌파 세력은 노동운동, 여성운동, 인권운동, 평화운동, 생태운동, 문화운동 등 사회운동 곳곳에서, 비정규직 투쟁, 평택미군기지반대투쟁, 한미FTA저지 투쟁 등 한국에서 계속 제기되는 현안들에 대해 어려운 개입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좌파 세력은 아직 정치세력으로서 통합된 전선을 형성한 적이 없으며, 사회주의를 정확하게 표방한 정당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한 적도 없었다. 물론 노동자의힘이나 사회주의노동자연합과 같은 정치조직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이들 조직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공개적인 정당운동을 추진한 것이 아니다.

2008년 초 현재 형성된 새로운 정치적 국면에서 이제 좌파 세력은 새로운 정당운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이는 무엇보다도 2008년 1월 현재 한국의 진보진영은 새로운 희망의 국면을 맞았기 때문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모처럼 맞은 기회이다. 이 기회는 우선 현 단계 한국사회의 진보적 과제는 ‘민주개혁’에 있음을 주장하며 가까이로는 지난 10년간 정권을 장악해왔고, 좀 더 멀리는 지난 20년 넘게 진보운동의 헤게모니를 장악해온 개혁적 자유주의 세력의 붕괴로부터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개혁적 자유주의는 특히 지난 10년 정권을 잡아오면서 민주개혁의 대의에 동의하는 시민운동 진영의 ‘비판적 지지’ 등에 의해 한국사회의 진보를 박정희 시대 이후 정권을 장악해온 보수우파 세력과의 적대와 경쟁을 통해서만, 그리고 형식적 민주주의의 완성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고 주장하면서 실질적으로는 보수우파 또는 보수적 자유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를 바 없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쳐 왔다. 이 개혁적 자유주의는 자신이 펼친 신자유주의 정책의 희생자가 된 민중의 분노에 의해 심판을 받아 이제는 거의 지리멸렬해졌다. 진보진영이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된 것은 개혁적 자유주의 세력의 파탄으로 인해 자신과 경쟁할 세력의 약화에서 나온다.

둘째, 진보진영의 기회는 민노당의 패배를 계기로 온 측면도 있다. 그동안 민노당은 개혁적 자유주의 세력과 경합하면서 후자를 ‘개혁세력’으로 보게 하고 자신을 진보진영의 대표로 만들어왔으나 진보에 대한 자신의 해석에 따른 행보로 인해 대선에서 참패함으로써 진보진영의 대표를 자임하는 데 어려움을 맞게 되었다. 이는 무엇보다 민노당 내부에 NL파의 헤게모니가 구축되어 끊임없이 제기되는 진보적 의제들을 민족주의 노선으로 축소시킨 데 따른 결과이다.

국내 좌파 세력은 개혁적 자유주의의 몰락, 그에 동반된 민족주의+사민주의 세력의 패퇴를 통해 열린 새로운 정치적 국면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 이 국면에 좌파는 과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현재의 국면은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 국면은 장기적 구조에 해당하기보다는 단기 지속할 분기점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기점인 만큼 그것은 한국 좌파세력의 중장기적 모습을 결정지을 공산이 크다. 어떻게 이 국면을 맞이하고 보내느냐에 따라서 좌파는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맞을 수도, 그동안의 관성처럼 모처럼 찾아온 희망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여기서 ‘희망’은 남한에서는 처음으로 좌파세력이 변혁적 진보정당, 다시 말해 자본주의 극복을 자신의 분명한 목표로 삼는 정당을 건설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리킨다.

한국에서 좌파세력은 정당을 만들만큼 힘을 가진 적이 없다. 국내 정치지형에서 지금까지 한 번도 헤게모니를 갖지 못한 것이다. 특히 지난 10여년 좌파는 자신의 입지가 극도로 위축되는 것을 경험했다. 사회의 근본적 변혁을 지향하는 세력, 현재의 상태로서의 자본주의를 지양하고, 대안적 사회를 위한 코뮌주의를 실천하려는 좌파가 힘을 발휘하려면 정치지형의 일정한 파열이 발생해야 하나 그동안 이 지형은 견고한 구조적 한계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넓게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으로 대변되는 자유주의 헤게모니가, 좁게는 민노당으로 대변되는 민족주의+사민주의가 한국정치의 민주적 대안임을 참칭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조가 지배하는 상황에서는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구조는 지배와 피지배의 구도를 재생산하고, 그로부터의 이탈을, 그것의 변혁을 꾀하려는 사회적 흐름을 변수 아닌 변수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지난 기간 좌파는 자유주의 세력과 그 종속 세력인 민족주의 및 사민주의 세력이 대안적 정치지형을 장악한 상황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도 어려웠다. 지난 대선에서 좌파들이 아무런 선거 전략을 세울 수 없었던 것도 한국정치의 구조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만큼 힘을 갖지 못한 탓이다.

대선 이후 좌파가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된 것은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좌파는 솔직해야 한다. 지금의 희망은 자신의 능력으로 획득한 성과가 아니다. 자유주의 세력의 몰락, 그에 동반한 민족주의+사민주의 세력의 몰락에 뒤따라 그저 얻은 선물이니 그것은 어디까지나 어부지리에 해당한다. 지금 좌파 가운데 현 국면을 희망의 그것으로 보면서도 그 속에 선뜻 뛰어들기를 주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도 스스로 그 희망을 쟁취한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리라.

그렇다고 좌파가 희망을 갖지 말 일은 아닐 터이다. 아니 오히려 현재 국면에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세적 국면은 구조의 견고함을 드러낼 수도, 탈구조화의 징후를 보일 수도 있다. 지금은 (맑스의 말을 맥락을 바꾸어 말하면) “모든 견고한 것이 허공으로 사라지는” 시점이다. 좌파는 이에 따라 자신의 입지를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비록 자유주의 세력과 민족주의+사민주의 세력의 붕괴로 만들어졌다고 하더라도 이 국면을 놓칠 수 없다. 이번 기회를 놓쳐버리면 언제 다시 좌파에게 비슷한 기회가 올는지 모를 일이다.

세력들의 관계는 구조화되어 있으면 좀체 변화를 허락하지 않는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의 정치세력 판도는 너무나 뻔했다. 정치 구도의 예측가능성도 너무 높았다. 그러나 대선을 거치며 기존의 세력 구도는 와해되기 시작했다. 이 와해는 향후 정치지형의 예측불가능성을 높인다. 이 예측불가능성이야말로 변화, 자본주의 구조의 변혁을 추구하는 좌파에게는 새로운 가능성이고 기회이다.

물론 판도 전체가 깨진 것은 아니다. 자유주의 헤게모니도 완전히 무너지진 않았다.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의 당선은 정치권력의 이동 아닌 이동, 즉 하나의 자유주의에서 또 하나의 자유주의로의 이동을 의미할 뿐이다. 그러나 이런 변화만으로도 한국 범 진보세력의 구도는 격변이 일어난 듯하고, 진보와 개혁을 내세우며 좌파들을 뒷전으로 밀어 넣은 제 세력은 와해의 위기를 맞은 듯하다. 통합신당, 민노당은 이제 다시 세력을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이명박 정권의 출범은 이전의 정권들이 시행해온 신자유주의 정책을 더욱 강화할 것이고 이로 인해 사회적 배제를 당하는 인구의 수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한국에서 신자유주의는 지난 10년 같은 자유주의이면서도 개혁을 자칭하는 세력에 의해 관리되어 왔으나 이들이 지난 대선에서 정치적 심판을 받아 패배함으로써 보수적 자유주의 세력의 관리 체계 속에 들어가게 되었다. 개혁적 자유주의가 대선에서 패배한 것은, 그리고 이 세력의 2중대 역할밖에는 하지 못해 민족주의+사민주의 세력이 덩달아 패배한 것은 일단 남한 민중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이 반대가 왜 더 강한 신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지지로 이어졌는지는 좌파가 풀어야 할 숙제이지만―를 의미한다.

좌파에게 현 국면이 희망인 것은 개혁적 자유주의, 민족주의, 사민주의 세력의 전면적 위기 속에 보수적 자유주의가 집권하면서 좌와 우가 과거 어느 때보다 확연하게 구분될 수 있는, 좌파가 우파에 맞서서 한국사회의 미래를 짊어질 대안으로 떠오를 구도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물론 이 가능성은 어느 틈엔가 불가능성으로 바뀔 수도 있고, 희망도 아지랑이로 사라질 수 있다.

지금 한국 정치는 혼돈에 빠진 상태이다. 보수적 자유주의 또는 보수우파 세력은 현재 이명박+박근혜와 이회창 세력으로 나뉘어져 있으나 한나라당에서 박근혜가 뛰쳐나올 가능성이 전혀 없지 않고, 개혁적 자유주의는 통합신당과 창조한국당으로 나뉘어져 있고, 그동안 민노당에서 한솥밥을 먹던 민족주의와 사민주의도 분리 직전에 이르렀다. 바야흐로 정치적 분열의 시대이다. 정치세력들이 이런 이합집산을 보이는 것은 사회 제 세력의 정치적 관계를 규정하는 구조가 더 이상 이전의 지배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구조의 변동, 그것은 새로운 구조로의 전환이 일어남을 의미한다.

이는 또한 역사의 분기점이 생긴다는 말이다. 분기점에 가까워지면 구조 속에서 서로 대립하던 극들이 비평행 상태에 이르게 되고, 구조 전체는 극들 간의 긴장에 따른 동요를 겪게 된다. 러시아의 기호학자 유리 로트만의 설명에 따르면 이런 순간에는 “개인과 집단의 행위는 자동 예측이 불가능해지고, 결정성이 뒷전으로 물러난다.” 예측 불가능한 행동, 선택, 결정들이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분기점이 분기점인 것은 그 지점에서 운동의 요인들이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서로 교점을 만들어내고 그 결과 운동의 새로운 벡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요인들의 교점을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한 시점, 그것은 “혁명의 시대, 또는 다른 극적인 역사적 변화의 시기이다.” 앞에서 “2008년 1월 현재 한국의 좌파 세력은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되었다고 한 것은 바로 이런 예측 불가능성의 국면이 전개되고 있다고 느낀 때문이다.

희망은 분수처럼 솟구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것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포말(泡沫)이다. 구조가 변동의 분기점에 이르면 그 다음에 어떤 형태의 구조가 만들어질는지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다만 변화를 유발하려면 구조를 동요시키는, 그리하여 구조가 더 이상 재생산되지 않고 변화를 향한 분기점으로 나아가게 하는 조건들이 갖추어져야 한다. 역사적 구조의 변화에서 특히 중요한 것이 주체들의 능동적 행위이다. 오늘의 지배적 구조를 변혁하기 위해서는 좌파의 의지, 선택, 실천, 참여가 중요한 것이다.

물론 이런 행위로 구조 변동의 방향 전체를 통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변동이 일어나는 시점에 변화를 촉발하는 행동들이 집적되면 주체들의 행위에도 변화가 발생하는 법이다. 사회적 구조가 평행상태에 있을 때에는 사회적 주체들의 행위는 늘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이루어지지만 구조가 변동을 겪는 순간 그 행위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움직일 수도 있다. 지극히 보수적이던 개인이 갑자기 진보적 행위의 주체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변화가 지금 한국사회에 일어나고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전에 없던 변화의 조짐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정치적 세력의 판도가 새롭게 짜이고 있다는 것, 보수진영 안에서도, 진보진영 안에서도, 자유주의 세력 내부에서도, 민족주의와 사민주의의 연대 틀 안에서도 동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구조적 변동이 시작되는 조짐인지도 모른다.

좌파는 이 조짐을 기회로 포착해야 한다. 모처럼 찾아온 이 기회가 어떤 미래를 가져올는지 예측할 수는 없지만 지금 좌파가 할 일은 역사의 흐름이 구조적 평행상태에서 비평행의 분기점에 도달하도록 구조를 동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지금의 분기점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 어떤 행동을 하느냐, 어떤 꿈을 꾸느냐에 따라서 좌파는 역사의 새로운 벡터를 만들 수도 있지만 지금의 정치적 구도, 구조가 재생산되는 흐름의 지속 저 뒤안길로 사라질 수도 있다.


4. 변혁적 진보정당의 건설


오늘 좌파에게 주어진 과제, 좌파가 취해야 할 행위는 무엇인가? 나는 한국 좌파의 당면 과제는 변혁적 진보정당을 건설하는 일이라고 본다. 정당 건설이 필요한 이유는 너무나 많다. 좌파가 역사의 주체로 서려면 대중과 만나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좌파는 지금까지 한 번도 제대로 대중과 만난 적이 없다. 좌파가 결집되어 있지 못했기 때문이고, 뒷목에만 앉아 있었기 때문이고, 특히 정당 형태로 대중에게 다가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미 변혁적 진보정당 건설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정당 건설에 나서려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변혁적 정당을 건설하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정당 건설은 많은 에너지,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요구한다. 힘의 결집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정당 건설을 위한 범 좌파 또는 범 진보 세력의 연대를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민노당에서 활동하다가 지난 대선에서의 패배 원인을 민족주의 세력의 종북주의에서 찾으며 당의 새로운 활로를 찾으려는 제2 창당파 또는 민노당 밖에서 새로운 당을 만들고자 하는 신당파, 지난 대선에서 민노당 못지않게 죽을 쑨 사회당, 그 밖의 많은 다양한 정파와 세력을 포함하는, 범진보 범좌파 세력들의 연대를 강조하는 것이다.

좌파들 간의 연대가 필요함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연대의 방식이다. 일각에서는 좌파는 수가 적기 때문에 세를 불리기 위해 연대를 하자고 한다. 좌파가 소수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좌파가 언제 다수였던 적이 있던가. 좌파는 숫자라기보다는 입장이다. 이론적, 정치적 입장은 정확함, 분명함, 열정, 용기 등에 의해 가늠되는 것이지 숫자 크기에 의해 가늠되는 것이 아니다. 오늘 좌파는 블랙홀 같아야 한다. 블랙홀은 커서 우주를 빨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좌파도 블랙홀 같은 흡수력을 가지려면 크기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

연대를 하더라도 새로운 연대가 필요하다. 좌파 간의 연대가 그것이다. 좌우 합작이 아니라 좌-좌 연대이다. 좌우 합작의 통상적인 모습은 진보진영에서의 사회주의, 사민주의, 민족주의의 연대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연대와 합작의 결과가 무엇인지 민노당의 실패를 통해 이미 확인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좌우로 가는 것이 아닌 좌파들을 가로지르는 좌-좌 연대이다. 좌파는 이 새로운 연대를 통해 변혁적 진보정당을 만들어내야 한다.

통상 변혁 정당은 맑스주의 지식인과 선진노동자의 결합인 것으로 간주된다. 이들 지식인과 노동자의 결합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런 필요조건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한국의 좌파가 만들어야 할 정당은 변혁적 계급정당이어야 할 것이지만 성차와 성애, 인종/민족, 생태, 인권, 평화 문제를 다루는 운동들의 변혁적인 분파와도 함께할 수 있는 포용성이 있어야 한다. 이는 변혁정당 건설 운동이 지향할 좌-좌 연대가 좌파적 정치조직들의 연대와 함께 사회운동 내부의 다양한 좌파들과의 연대까지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좌-좌 연대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 10년 좌파 정치조직들이 연대를 모색했으면서도 아직 뚜렷한 성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 단적인 증거이다. 게다가 지금 요구되는 좌-좌 연대는 정치조직들 외부에 있는 운동단체들―그 일부는 정당운동에 대해 적잖은 회의를 지닌―과 나아가서 다양한 성향을 지닌 개인들까지 포괄할 필요가 있다. 변혁 정당 건설에 대해 기대가 많은 만큼 의문이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라 하겠다.

그래도 지금은 정당 건설에 대한 의문이나 회의보다는 기대가 더 크게 지배하는 국면으로 보인다. 물론 그동안 서로 다른 입장들, 행태들 때문에 쌓인 불만, 불신을 없던 것처럼 털어 버릴 수는 없다. 좌파운동 내부에는 계급문제, 성문제, 생태문제 등을 놓고 적잖은 갈등이 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면 당 건설 과정에서, 강령의 채택 과정에서 토론을 통해 제기되어야 한다고 본다. 물론 이 과정을 얼마나 민주적으로 전개하느냐가 여전히 문제로 남겠지만, 동시에 그것은 당 건설 과정의 역동성을 만들어내고 변혁 정당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한국의 좌파는 역사상 처음으로 변혁적 진보정당 건설의 기회를 맞았다. 그동안 좌파의 정치적 활동에 장애로 작용하던 구조가 처음으로 허물어지는 징조가 나타났다. 오래 지속되지 않을 절호의 이 기회를 구조 변동의 분기점 형성 국면으로 만들어야 한다. 희망의 이 국면을 열정적으로 끌어안고, 좌파적 민주주의를 실천해야 한다. 그래야만 역사의 새로운 벡터를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변혁적 진보정당의 건설! 그것이 지금 좌파에게 주어진 정세적 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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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흐름4

 


7. 활동가들의 임무


가. 정체 속에 놓인 활동가들의 상태


 대중조직의 활동가들의 상태에 대한 지적들은 많다.

 활동가들이 이제는 노동운동에 대한 전망을 잃고 노조권력을 중심으로 사고한다는 지적들은 계속되어 왔다. 일상적인 실천은 없고 노조 선거 때만 되면 왕창 모이는 모습들을 수없이 지적한다.  이는 구조조정을 경과하면서 조합원들이 과거의 악몽을 안고 미래도 불투명한 상태에서 실리를 쫒는 것과 동일한 이치다. ‘조합원은 실리를 쫓고 활동가들은 권력을 쫓는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문제는 활동가들이 이미 확보한 노조 집행부라는 권력을 놓고 경쟁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다른 목표를 분명히 찾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현장활동은 관성적인 작업장협상들에 얽매여 있고 작업장에 대한 새로운 전략적 목표를 세우지 못하고 있으며 노동운동의 전망을 상실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러다 보니 자꾸 노동조합 집행부와 지방자치제, 민주노동당과 같은 정치적 진출을 꿈꾸게 된다. 물론 이 자체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전략과 목표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권력경쟁이 노조에서 지자체와 정당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자계급의 선봉부대로서 운동을 열어 온 견인차들이 이제는 노조나 정당에서 한자리 차지하기 위해서 ‘정쟁’을 일삼는 ‘그놈이 그놈’인 제도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염증을 만들어 내는 것과 비슷한 상황으로 나가고 있다.  

 이러한 경향이 지속된다면 활동가들은 운동을 열어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운동을 퇴보시키고 발전을 가로막는 대상이 될 것이다.


나. 활동가들의 발전과 재생산을 위한 선순환 구조를 만들자


 활동가들의 본질은 무엇인가?

 물고기는 물 없이는 살 수 없다. 활동가들은 대중없이는 활동가가 될 수 없다. 바로 이점에서 활동가들은 이제 신자유주의 공격과 후퇴속에 조합원들의 객관적인 상태와 심리적 변화, 사고방식의 변화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그러나 많은 활동가들이 조합원의 상태와 요구를 관성적으로 판단하고 그에 기초하여 ‘노조상집간부되기’를 꿈꾼다면 대중과 더욱 분리될 것이다. 결국 그 결과는 물이 말라버린 어항 속의 물고기와 같다. 이점에서 이제 활동가들은 작업장에 대한 구체적인 진단을 통해 문제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물론 활동가들이 조합원 속에서 다시 선다는 것이 조합원들의 실리주의에 영합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조합원들은 전망이 없기 때문에 현실에서 실리에 집착하지만 그 저변에서는 상시적 구조조정 속에서 상시적 고용불안의 심리가 있다. 더 이상 현재의 노동조합의 실력으로는 미래의 삶을 보장해 줄 것이라 믿지 않는다. 따라서 노조를 도구적으로 활용할 뿐이다.

 활동가들이 구체적인 대안 제시 능력 없이 얼마나 자주 새로운 조직을 만들고 또 합치는 것인지는 대공장들의 현실에서 무수히 발견되고 있다. 이미 조합원들은 그러한 이합집산이 새로운 전망을 열어주는 것이 아니라 노조선거 등 활동가들의 권력싸움에 불과하다고 판단한다.

 이점에서 활동가들은 문제를 파악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전반적인 내용의 정체 속에서 권력게임만 남게되자 현장조직원들의 상당수가 권력게임을 쫓는 무능한 정치적 활동만을 일삼고 있다.  관성적으로 되풀이되는 당위적 구호에 불과한 ‘투쟁성’은 결국 선명성 경쟁에 불과하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 과연 나는 노동운동을 어떻게 진단하고 있으며 어떤 전망을 갖고 있는가? ’

‘ 상시적으로 진행되는 구조조정에 대해 어떤 대안을 가지고 있는가? ’

‘ 담합적 노사관계를 넘어설 어떤 대책을 가지고 있는가? ’

‘ 확대되는 실리주의적 경향을 넘어서 나는 과연 작업장 혁신을 위한 어떤 전략을 갖고 있는가?’  


 ‘고참활동가들의 위로부터의 권력게임, 아래로부터 확대 재생산되지 않는 활동가’ 이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특히 단위노조 - 상급단체 - 지자체 - 국회의원으로까지 이제 가능한 현실의 권력게임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왠만한 고참활동가들, 특히 노동조합의 임원 출신들은 누구나 ‘한 자리’ 노리는 상태가 되었다.

 그렇다면 고참활동가들은 다시 현장에 돌아가서 예전에 그랬듯이 박박 기어야 하는 것일까? 물론 이는 퇴보다. 그것은 노동운동 전체의 운동역량의 손실이다. 전진적으로 배치되어야 한다. 어떤 전진적인 배치가 가능한 것인가? 바로 단위노조에서 임단협교섭을 하는 수준의 활동을 넘어서 한 단계 높은 산업적 의제를 다루는 위치, 지역사회의 의제들을 다루는 지역활동 등을 활발하게 전개하여야 한다.

 차곡차곡 실력을 쌓지 않고 국회의원이 된들 기껏 조합활동밖에 않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국회에 앉아서 어떻게 한국사회의 정치, 경제, 산업, 사회의 문제들을 가지고 실력을 보일 수 있을 것인가 ! 국민들의 진보정당에 대한 상당한 기대는 단지 기대에 불과할 것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민주노동당 의원도도 결국은 똑같은 기존 국회의원과 같이 평가될 것이다. 

 고참활동가들이 허황된 ‘국회의원되기’와 같은 야망이 아니라 노동운동의 미래를 열어가기 위한 적절한 전진배치는 곧 후배 활동가들에게 역할을 부여하면서 또한 보다 폭넓은 활동으로 인도할 것이다.

 

 신참활동가들의 재생산은 결코 낡은 사상학습으로만 이뤄질 수 없다. 이미 현장의 노동자들은 전투에 투입된 야전병 들이다. 따라서 야전 속에서 훈련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이 야전의 전투들 속에서 배우는 것이 뭔가? 권력게임들, 정치적인 행동들만 가득하다.

 구체적인 의제들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들을 제시하고 이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활동가들이 탄생한다. 결코 집행부 흡집내기나 대의원대회에 대한 대응방침을 논의하고 발언하는 것을 통해서 재생산 될 수 없다.

 제대로 된 야전의 전투과정에서 새롭게 기초소양교육의 필요성이 탄생하며 그 필요성을 느낄 때 노동운동에 대한 기본학습도 의미 있는 활동이 될 것이다.


다. 활동가 조직의 발전 방향 


 첫째로 활동가 조직들의 재편을 더 이상 ‘자신들만의 잔치’로 반복해선 안된다.

 유수한 대공장들을 보라. 현장조직이라고 하기에는 말도 안되는 수많은 조직들이 이름을 내걸고 ‘현장제조직’ 중의 하나를 차지한다. 과거의 ‘민주파’는 수많은 이합집산을 통해서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제는 현장조직들이 난무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현실을 근거로 ‘민주파 재결집’을 내세운다. 근본적인 혁신이 없는 상황에서 아무리 재편을 외친들 뻔하다. 이제 더 이상 반복되어선 안된다.


 둘째로 파벌이 아닌 의제를 중심으로 한 소통의 장이 필요하다.

 전략적 전망의 부재 속에서 기존의 조직들이 아무리 그럴듯한 주장을 한들 결국은 그게 그거다. 현장에 있을 때는 거침없이 집행부를 비판하다가 막상 집행부가 되면 정반대의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또 다른 현장조직이 집행부를 하면 ‘껀수를 찾아서 씹어댄다’. 작업장내에서 복잡한 현장조직들의 이해관계는 의견일치를 어렵게 한다.

 이제 이런 식의 파벌을 중심으로 한 조직활동은 과감히 혁파되어야 한다. 이제는 수많은 작업장의 의제들을 중심으로 열린 의사소통의 장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구체적인 문제에 대하여 가장 구체적이고 정확한 대안을 만들어 내는 활동가와 조직만이 인정되는 체제로 변화되어야 한다.

 이점에서 현장조직은 ‘무슨파’ 인가를 중심으로 뭉치는 것이 아니라 작업장 혁신을 둘러싼 논의와 실천으로 집중되어야 하고 재편되어야 한다.

 

 셋째로는 산업적, 사회적 의제를 다루는 선봉대로서 기업을 뛰어 넘는 재편이 이뤄져야 한다.

 특히 대공장의 활동가 조직이 개별 노사관계 속에서 적절히 사측과 관계를 유지하면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단합적 노사관계’를  강화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 집행부를 장악하려는 행위는 결국은 아무리 전투적인 구호를 내건다 해도 그것은 구호에 불과하고 이미 정착된 구조속에서 조합원의 실리챙기기를 통해 인기를 얻고자 하는 수준에 머물게 된다.

 이제 활동가조직은 스스로 노동운동에 대한 전략적 대안을 제출하고 그에 기초하여 산업적, 전국적 차원으로 먼저 자신을 해소 재편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도 제발 반복되는 ‘정파만들기’가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을 중심으로 ‘실천단위’로 자신을 조직해야 할 것이다. 



8. 현 단계 한국노동운동의 발전 전략으로서 ‘사회적 노동운동’


가. ‘사회적 노동운동’은 현 단계 노동운동의 발전 전략이다.


 현 단계에서 노동운동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모든 위의 내용을 담아 ‘사회적 노동운동’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사회적 노동운동’이라는 용어에 대해서 오해들이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용어가 아니다. 어떤 실천을 하는가의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사회적 노동운동’이 ‘사회적 조합주의’와 혼동된다고 한다. 또 반대로 ‘사회주의적 노동운동’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자본주의에 맞선 노동운동의 큰 흐름은 소련 등 동구의 사회주의국가도 있었지만 망했다. 유럽의 사민주의도 있지만 우경화 되어 신자유주의를 수용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사회주의’를 아무리 외친들 의미가 없다. 또한 그것은 천재가 나타나서 갑자기 멋지게 내놓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직 ‘자본주의가 있는 곳에 계급이 있고, 계급이 있는 곳에 수탈이 있으며, 수탈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다.’ 따라서 노동운동은 지속적으로 진행될 것이고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발전해 나갈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새로운 사회적 대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이상과 관념이 아니라 현재의 노동운동을 진단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대안으로 ‘사회적 노동운동을 제기하는 것이다. 

 한국사회를 아주 단순화 시켜서 전망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생산력의 유지여부와 노동운동의 발전 여부에 따라서 크게는 네 가지의 경우가 발생할 것이다.

 

 첫째로 미국류의 사회다. (신자유주의 사회의 고착화)

 우선 한국이 세계화, 중국의 등장 등 변화하는 세계자본주의 속에서 지속적으로 발전한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에 노동운동이 원하는 방향으로 발전하지 못한 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할, 정규직의 일부가 이권을 중심으로 간다면 우리는 아마도 미국 류의 사회가 될 것이다.  

 작업장에는 고령화된 정규직이 수명의 비정규직위에 관리자처럼 군림하고, 전체노동자로 보면 잘 나가는 대기업의 노동자들은 중소하청업체 노동자와 비정규직, 외국인 노동자들 위에 새로운 계층으로 자리잡아 상층의 노동자가 기득권을 가진 지배세력과 함께 하층노동자를 수탈하는 사회다.

 

 둘째로는 노동계급의 통제권이 전 사회로 확장되는 사회

 한국이 생산력을 유지하면서 또한 노동자계급이 분화를 극복, 노동자계급을 강력히 단결시킨다면 자본에 대한 강력한 통제능력을 발휘할 것이다. 그것은 곧 노동자계급이 강력한 사회적 힘을 가지고 국가까지 좌우할 정도로 성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공장의 노동자들이 자신만을 위한 투쟁을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과 중소하청노동자완 튼튼한 연대를 이루고 그 힘으로서 국민적인 동의를 얻어 간다면 우리는 유럽의 좌파가 한참 잘나가던 시절의 복지국가를 넘어서 역사적으로 더 진전된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셋째로는 노동계급이 주도권을 상실한 우익 파시즘적의 사회이다.

 생산력이 유지되지 못한 채 휘청거리고 국민의 다수가 주변부 층으로 밀려나 사회적 불만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노동계급 또한 스스로 계급으로 단결하지 못한 채 정규직의 대기업 노동자들은 자신만을 위해 지배계급과 타협하고 수많은 주변부 노동자들이 사회적 불만을 토론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 경우에 한국 사회는 우익 파시즘적인 국가가 될 것이다.

 한때 한국보다 훨씬 잘 나가던 아르헨티나 등의 남미의 국가들과 비슷한 상태로 빠지는 것이며 왜곡된 중동지역의 국가들, 끝없는 내전 속에 시달리는 아프리카의 국가들과 비슷한 상황이 될 것이다. 


 넷째로는 강력한 사회적 불만을 노동계급이 조직함으로서 새로운 사회로 나가는 것이다.

 신자유의의 세계화 속에서 한국경제가 초국적 자본에 의하여 처참하게 유린된다고 해도 만약 노동자계급이 스스로를 단결시키고 끊임없이 연대를 확대해 나간다면 사회적 불만을 노동자를 중심으로 조직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에 더 이상 한국사회를 지탱할 수 없는 지배계급에 맞선 불만은 조직된 투쟁으로 발전할 것이며 이 투쟁은 사회변혁을 선도하는 노동자를 중심으로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힘이 될 것이다.


 한국사회의 미래를 단순히 전망 할 수는 없다. 신자유주의의 세계화, 복잡한 동북아시아의 정세, 남북관계의 영향 등 매우 복잡한 변수가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네 가지의 경우와 관련해서 볼 때 노동자계급이 한국 사회의 경제를 좌우할 힘이 없기 때문에 만대로 미래를 만들 수 없다. 다만 노동자 계급은 적어도 스스로 노동운동을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문제는 한국의 노동운동이 과연 스스로 노동자의 분할을 넘어서 자신을 계급으로 단결시킬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분할되는 상태를 넘어서지 못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정규직 대공장이 앞장서서 연대를 실천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조직적 발전을 한다면 우리는 최소한 둘째와 넷째의 길을 갈 것이다. 

 현재의 상황은 이 네 가지 길이 확실하게 결정되는 순간에 이른 것이 아니다. 조만간 이러한 선택에 다가설 것이며 바로 이점에서 현재의 노동운동은 이런 가능성을 생각하면서 현재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바로 이런 현 단계에서의 노동운동의 발전전략으로 ‘사회적 노동운동’을 제출한다. 

 

나. 계급해체에 맞서 계급단결(계급형성)을 최우선에 두는 전략이다.


 일반적으로 얘기한다면 ‘신자유주의’는 시장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사회다. 시장이 결정하는 사회는 경쟁을 법칙으로 하며 경쟁은 철저히 분열을 생명으로 한다. 이 분열은 노동자들을 산업, 기업, 고용형태로 갈갈이 찢어 놓는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투쟁은 ‘시장’에 맞서는 투쟁이고 ‘분열’에 맞서는 투쟁이다.  

 외적의 침입은 내부를 단결시킨다. 전선이 분명하게 되기 때문에 내부의 작은 갈등은 밑으로 가라앉는다. 이 때문에 역사적으로 내부가 혼란스러우면 전쟁을 한다. 내부문제를 해소하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을 강제적으로 단결시키는 정략으로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지금은 반대의 상황이다. 외적이 침입하면 내부가 단결해서 싸워야 하는데 외적이 공격할수록 내부는 분열되는 상황인 것이다. 자본의 공격이 강할수록 내부가 단결되는 것이 아니라 분열되고 있다.

 자본은 비정규직을 만들어 내놓고 ‘정규직의 임금을 깎아서 비정규직을 주자’ ‘정규직 때문에 비정규직이 피해를 본다’는 식으로 주장한다. 병법에 나오는 대로 ‘적을 서로 싸우게 하여 물리치는’ 이이제이(以夷制夷)의 분할전술인 셈이다.

 문제는 자본의 공격이 거셀수록, 그리하여 정규직의 고용이 불안할수록 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만의 고용안정을 위하여 비정규직을 인정하고 향후에 자신들의 방패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미래에 자신의 고용이 불안할수록 당장에 실리를 챙긴다. 그러면 그럴수록 정규직 대공장에 대한 집중적인 여론공격이 진행되고 노동자 내부의 격차는 증가한다.

 여기에 대한 대응은 어떻게 되어야 할 것인가?

 정규직의 임금이 많지 않다는 식의 수세적인 대응으로는 돌파하기 어렵다. 공세적으로 사회전체의 빈부격차를 제기하고 사회보장을 치고 들어가야 한다. 동시에 노동자 내부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노동자 내부의 연대정신에 기초한 노력들을 기울여야 한다.

  바로 이 때문에 사회적 의제로 나가야 하는 것이고 또한 노동자 내부의 분할을 막기 위한 ‘노동자 내부평등’을 위한 피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곧 노동자의 분할을 막고 계급적으로 단결함으로서 해체되려는 다시 계급으로 만드는 것(계급형성)이다.


다. 작업장 혁신과 산업․사회적 의제를 중심요구로 노동계급의 단결을 추구하는 노선이다.


 앞의 글에서 왜 작업장 혁신이 중요한가를 얘기했다. 특히 계급분할의 불씨는 정규직 내부의 불평등에서부터 시작하여 대공장과 중소사업장의 차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에서 정규직 대공장 노동자들이 ‘담합적 노사관계’의 틀 안에 머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작업장’ 이라는 노동자의 삶의 터전에 대한 혁신이 중요하다.

 내부의 혁신과 함께 산업적 연대, 사회적 연대를 위하여 그에 해당하는 요구를 중심으로 투쟁함으로서 노동자들이 이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한 투쟁을 전개하는 실천적 모습을 보여 나가야 한다. 이는 곧 노동자계급의 개입과 통제권이 작업장, 산업, 사회전체로 확장되는 것을 의미한다.    


라. 우경적 투항과 좌경적 소아병에 맞서 노동운동의 혁신을 추구하는 노선이다 . 

 

 노동운동을 단순히 정파적 파벌의 관점에서 본다면 노동운동의 혁신은 이룰 수 없다. 소위 그간 노동운동과정에서 NL과 PD의 대립이라든지, 우파에 맞선 범좌파의 결집이라는 사고방식은 매우 뿌리가 깊은 사고법이다.

 이러한 양진영으로의 구분은 두 패로 내부를 갈라놓고 ‘내 눈의 대들보는 못보고 상대진영의 티클만 보인다’는 격언이 지적하는 사고방식을 만연시킨다. 이는 곧 상대의 모든 것은 비판의 대상이고 내편의 모든 것은 무조건 옹호하는 행태를 통해서 혁신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올바로 구분하지 못하게 만드는 중요한 원인이다.

 노동운동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이미 양 진영으로 구분해서는 해석되지 않는 현실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민주노총의 4기 선거는 이런 낡은 사고방식을 더 강화시키고 있다. 이는 심지어 민주노동당내의 내부투쟁으로 훨씬 확대 강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다.     



글을 마치며


 노동운동의 전략을 체계적으로 논의하고자 한다면 매우 광범위한 조사와 객관적 기초들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글은 이론적인 근거들을 밝히기 위한 것이 아니다. 노동운동의 한 실천가로서 당면한 노동운동, 특히 오랜 노동조합운동의 시대를 거친 상황인 만큼 노동조합운동의 현실에 비중을 두고 있다. 특히 민주노조운동의 핵심역할을 담당해왔고 아직은 조직력이 비교적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는 금속의 자동차활동가를 염두에 두고 쓴 글이기 때문에 자동차산업의 사례들을 비중에 놓고 있다. 따라서 이 글은 변혁운동의 이론서가 아니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동북아 정세 등등 의 논의들은 포함하지 않았다. 그런 만큼 한계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특히 최근의 상황에서 수많은 정세분석보다 중요한 것은 신자유주의라는 자본의 역공세의 결과 처한 노동운동 내부의 상태를 냉정히 평가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점과 운동은 결코 활동가들의 관념에서 전진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노동자 대중의 사고와 행동의 변화를 통해서만 전진한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이 글에서 다루지 못한 아쉬운 내용은 상시적으로 진행되는 구조조정의 문제들에 대한 대응이다. 글로벌 경쟁체제는 과거 국가-재벌 중심의 한국사회와는 전혀 다른 상황을 만들고 있다. 과거에는 <세계적인 상황 → 국가,재벌 → 한국노동자>라는 구조 즉,  세개의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던 상황이었다면 지금은 <세계적 상황(초국적 자본운동) → 노동자>라는 구조를 갖고 있다. 중간의 톱니바퀴가 빠지고 국제적 자본운동이라는 톱니바퀴에 바로 한국의 민중들이 맞물려 돌아가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산업공동화니 자유무역협정이니 하는 수많은 의제들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마지막으로 비정규직 노동운동에 대한 문제를 다루지 못한 점이다. 신자유주의, 유연생산체제 아래에서 일반적 노동자는 더 이상 대량생산체제의 근대공업프롤레타리아가 아니다. 비정규직이 일반적인 노동자이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처음부터 없고 기업에 대한 귀속력도 없다. 노동자계급의 가장 말단에 위치하면서 이 사회의 모든 문제를 모두 떠 안고 있기에 비정규직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세상이야  말로 모든 구조를 보는 것이다.

 비정규직의 조직화 방식은 애초에 존재방식이 다른 정규직의 노동조합 따라하기로 결코 해결될 수 없다. 이점에서 전혀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 요컨대 한국의 노동운동은 비정규직의 관점에서 완전히 재편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글은 아직까지 한국노동운동의 움직일 수 있는 조직된 세력으로서 정규직 노동운동의 혁신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에 비정규직 운동을 별도로 다루지 않았다.

 움직이는 타켓, 국제적 수준에서 급격한 변동들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그 타켓을 쏘아 떨어뜨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함께 움직이면서 조준하는 것이다. 목표물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같은 속도로 움직인다면 우리는 그 목표물이 정지해 있는 것과 같은 조건에서 조준함으로서 명중시킬 수 있다.

 핵심은 변화다. 운동은 곧 변화다. 전진하고자 한다면 변해야 한다. 낡은 사고와 행동 속에서는 결코 전진하지 못한다. 다만 구태를 반복할 수 있을 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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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흐름3

 

5. 노동자의 주도권(통제권) 확장으로서 산업과 사회적 의제로의 발전


가. 산업적․사회적 의제로 나아갈 필요성은 무엇인가?


 첫째로 내적인 필요성이다.

 제조업이 공동화된다. 공장이 중국으로 빠져나간다. 이미 중국에 공장을 짓고 한국에서 생산을 폐쇄하는데 이것을 막기 위해 중소사업장 노조에게 투쟁하라고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무책임하기까지 하다. 매각을 둘러싸고 치열한 쟁점이 붙는다. 정부는 해외매각방침을 가지고 있다. 채권단은 요지부동이다. 이 문제는 결코 채권단의 하수인에 불과한 사측과 싸워서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들이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조건으로 펼쳐지는 상시적 구조조정시대에 대응하는데 있어서 산업적, 사회적인 의제로 나가는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다만 아직 우리는 계기적으로만 산업적 사회적 의제에 대응해 왔을 뿐이다. .


 둘째로 단기이익 추구와 실리주의의 극복을 위한 매우 중요한 해결 방안이다.

 조합원들이 미래에 대한 전망이 없으면 현실에 한푼을 챙긴다. 그 전망이란 무엇인가? 이미 기업단위를 넘어선 문제들이 다가오는데 산업적 연대와 사회적인 연대를 통해 대안을 만들지 못한다면 조합원들은 전투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떠날 준비를 할 수 밖에 없다. 바로 이점에서 산업적, 사회적 의제에 대한 대응력을 높이는 것은 조합원의 개별화를 막고 대안을 향해 단결시키는 중요한 문제이다.


 셋째로 노조의 사회적인 고립화의 위기에 대응하는 문제이다.

 노동조합에 대한 최근의 공격들은 특히 대공장노조들을 ‘이권집단’으로 매도함으로서 국민과 분리시켜 내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넷째로 노동운동의 전략적인 발전을 위해서다.

 노동운동은 이제 조합주의적인 국면을 넘어서 무너진 조직력을 다시 세움으로서 사회적인 주도권을 확장해 나가야 한다. 이점에서 노동자들이 사회적 주도계급으로 나가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노동자들이 산업과 사회적인 의제롤 나아간다는 것은 곧 낡은 임단협이라는 더 이상 배울게 없는 학교를 졸업하고 새로운 노동자의 학교를 세우는 것이다. 


나. 사회적인 의제로 나아가려는 경향과 사례


 과거에 우리는 특수한 경우에만 의제를 확대하였다. 다행히도 2004년 들어서 각 산별연맹은 발전적으로 자신의 요구를 사회적인 의제로 확대하고 있다.

 민주노총에서 최근 몇 년간 강조해온 ‘사회공공성’의 확대를 위한 노력도 그 사례이다.  택시노조가  “속도보다 안전을” 이라는 구호를 내세운 것 또한 일단은 발전이다.  보건의료노조가 “돈보다 생명을” 주장하는 것 또한 중대한 발전이다.  괘도노동자들이 “ 이윤보다 안전을” 외치면서 인원증대를 요구한다. 자동차노조들이 “사회적 책무”를 앞세우고 “사회기금”을 주장하는 것 또한 발전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는 매우 서투른 것들도 있다. 문제들도 안고 있다. 그러나 큰 흐름에서 본다면 노동조합이 의제를 확대해 나가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또한 의제들의 확장은 투쟁전술에서도 많은 변화를 요구한다. 이미 페턴화된 임단협에서 처럼 언제 요구안을 제출하고 언제 교섭집중기고 쟁점을 추려서 얼마간 때려 박고 그래서 막판 타결하는 류의 전술로는 턱도 없는 문제들이다. 의제의 확장은 투쟁방법과 전술의 확대를 필요로 한다. 그것은 동시에 새로운 간부와 지도력을 요구한다.


다. 사회적 의제로 나가기 위한 전제


 사회적 의제를 향해 나가려는 경향은 특히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도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사회적 의제로 나가는데 있어 꿈틀거리는 위험요소들을 반드시 짚지 않으면 안된다. 그 위험요소들은 노동운동의 상시적인 경향으로 작동하는 사고법에서 비롯된다.

 

 첫째는 우경적인 사고방식으로부터 파생하는 위험요소이다.

계급적 요구를 사회적 차원으로 확장해 나가는 관점이 아니라 거꾸로 노동운동을 국민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든지 혹은 노동운동에 가해지는 자본과 정권의 공격 때문에 노동운동이 자신의 중심을 잃어버린다면 노동운동은 더 이상 계급운동이 아니라 ‘눈치보는 운동’으로서 결국은 탈 계급화된 운동으로 전락할 것이다. 특히 이점에서 사회적 의제를 전면에 내걸고 나가는 것이 노동운동의 대중적 기초가 취약한 상태에서 이를 방치하고 진행된다면 그 결과는 뻔할 것이다.


 둘째는 협소한 계급주의로부터 발생하는 문제다.

 이런 문제는 이미 지난 노동운동의 과정에서도 끊임없이 발생하여 온 문제들이다. 예를 들면 기아차나 대우차, 그리고 쌍용자동차의 매각과정에서도 협소한 계급주의를 주장하는 경우, 극단적으로 ‘어떤 자본에게 매각되든 상관없다. 노동자의 고용과 생존만 보장되면 된다’는 식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결국 매각과정에서 노동조합이 고용과 단협만 보장되면 된다는 식으로 수세적 대응을 하게 만들어 매각투쟁과정에서 노동자들이 공장의 주인으로서 매각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이후 회사의 장기적인 발전전망을 고민하는 것을 차단한다.

 다른 사례도 있다. 금속의 자동차분과에서는 ‘산업정책에의 개입’을 주장한다. 그런데 ‘노동조합이 무슨 산업정책을 논의하는 것인가?’는 반론을 제기한다.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관점에 근거하여 산업적 대안을 제출하는 것을 거부하고 자본의 산업정책에 대한 단순한 문제제기와 책임을 묻는 방식을 고집한다면 그것은 사후적 반대운동을 벗어나지 못한다. 여기에는 숨겨진 노예의 논리가 도사리고 있다. 노예는 주인이 경영하는 것에 상관하지 않고 따르고 주인이 주는 대로 받아먹으면 된다. 진정 주인이고자 한다면 경영, 산업정책 더 나아가서는 사회적 대안을 제출하고자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오른쪽으로부터 국민주의적 위험이 사회적의제로 나가는 노동운동의 방향을 탈 계급화 할 우려가 있다면 왼쪽으로부터 발생하는 협소한 계급주의적 오류는 노동운동의 발전 자체를 가로막고 노동운동을 소아적인 정체와 퇴보 속에 가두는 것이다.

 이점에서 한국의 노동운동은 그 발전과정에서 끊임없이 좌우 양 편향에 맞서 싸우는 내부투쟁을 거치게 될 것이다. 다만 정세의 변화에 따라서 때로는 우익적 요소에 맞선 내부투쟁이 중요해 질 것이고 또한 다른 상황에서는 좌익소아병적 요소들에 맞선 투쟁이 중요해 질 것이다.         

    

라. 산업과 사회적 의제로 나갈수록 산업․사회적 교섭이 요구된다.


 노동조합이 조직을 결성하면 반드시 교섭으로 나가는 것이 필연적이다. 마찬가지로 노동조합이 산업적 혹은 전국적 차원에서 산업의제나 사회적 의제를 전면화 해 나갈 경우 필연적으로 사회적 교섭에 부딪치게 된다. 이점에서 노동운동이 산업적, 사회적 의제를 향해 나가는 과정에서 부딪칠 산업적, 사회적 교섭에 대한 분명한 대비를 해야 한다. 우리는 이 문제와 관련해서도 좌우편향과 부딪치게 될 것이다.


 좌익소아병적 견해들은 이런 교섭 자체를 금기로 여긴다.

 금속연맹의 자동차분과는 산업정책에 대한 개입을 주장하면서 자동차공업협회와 노사간 상시적인 논의기구를 제안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아직 전략적인 계획을 갖지 못한 소아병적인 견해들은 우스꽝스럽게도 이것이 노사협조주의가 아니냐는 우려를 한다. 이것은 그야말로 넌센스다. 이런 소아병적인 견해들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우리는 이미 경험하고 있다. 교섭에 대한 준비가 없는 상황에서는 전투적 구호들이 요란한 투쟁을 전개하였다가 결국은 교섭과정에서 그야말로 어이없는 실패를 통해서 완전히 무너지는 꼴들을 보아왔다. 수많은 노동조합들의 구조조정투쟁과정이 그러했다. 발전산업의 구조조정에 맞선 연대투쟁도 그러한 사례였다.


 우익적 견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적 교섭자체를 목적시 한다.

 계급적 노선이 불분명한 친정부적인 인사들은 드러내지 않지만 사실상 의도적으로 노사정교섭구조를 신성시한다. 또한 대중투쟁을 만들지 못하는 상황에서 교섭테이블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고방식들이 만연하여 겉으로는 아니지만 실제로는 정부와 자본과 경쟁적으로 창구를 개설한다. 소위 ‘사회적 조합주의’로 표현된 바, ‘코포라티즘’을 전략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노사정위원회와 같은 구조자체를 전략적인 목적으로 사고한다.


 문제는 현실이다.

 현실에서 과연 산업적 사회적 교섭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현재 노사정위원회에 대하여 대중의 생각은 뭘까? 2004년 현대차의 조합원 설문결과에 따르면 70%가 넘는 조합원들이 무조건적으로 노사정위에 들어가는 것을 지지한다. 여기에 민주노총의 지도부는 노사정위 가입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적어도 민주노총의 지도부는 이런 사정을 알기에 노사정위 참가를 자신 있게(?) 추진한다.

 그러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또 다시 노사정위원회 불참을 주장하면서 대립각을 세울 것인가? 대단히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에 이 자체로 꼼꼼히 따져야 할 문제다. 다만 단순하게 결론을 제시한다면 우리는 아무런 대책 없이 노사정위 불참을 주장하는 대안 없는 반대를 반복해선 안된다.

 적어도 우리 스스로의 전략적인 계획 아래에 산업적 사회적인 교섭형태를 능동적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이대로 간다면 노사정위 참가는 뻔하다. 노무현정권이 새롭게 ‘사회경제위원회’(?)같은 방식 또는 노사정대표자회의를 주장하고 있으나 결과적으로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기에 반대를 아무리 외친들 마치 민주노총이 국고보조금을 받는 문제가 동일하게 현실화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계획 하에 산업적 차원의 교섭테이블을 능동적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기본적으로는 산별노조들이 추진하는 산별교섭구조도 있다. 금속의 자동차분과가 주장하는 ‘자동차산업차원의 노사공동기구’도 그 중의 하나가 될 것이며 공공부분은 교섭구조 자체가 정부를 포괄한다.

  민주노총이 노사정 위원회에 어떤 목적으로 어떤 방식을 통해서 임하게 되는가를 따져 나가야 할 것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설혹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원회에 들어간다고 할지라도 그리하여 아무리 난리를 떤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전략적인 목적 하에 주도적인 교섭틀을 만들어 간다면 그것으로부터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불필요하지만 한가지만 덧붙이자.

 산업적차원이든 사회적 차원이든 교섭테이블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그것은 때로는 전술적인 측면에서 노동조합의 산업적 의제로의 집중을 이뤄내기 위해서도 우리가 주동적으로 교섭테이블을 주장하고 만들어 갈 수도 있다. 또한 그러한 교섭테이블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 결렬선언 후 파업을 하는 것처럼 탈퇴를 조직할 수도 있다. 문제는 우리의 계획 하에 교섭테이블을 먼저 주장하고 혹은 스스로 박차고 나올 수도 있기에 교섭테이블은 우리의 계획과 실력에 따라서 활용되는 것일 뿐 우익적 견해처럼 그 자체가 전략적인 목표이거나 혹은 좌익적 견해처럼 그런 구조에 들어가는 것이 노동운동의 종말을 의미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마. 산업적, 사회적 의제들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노동자의 계급적 요구를 산업적 사회적 의제로 만들어 가는 방향이 있다. 주 5일 근무제와 비정규직의 문제 등이 그것이다. 또한 고용불안의 원인인 제조업의 공동화, 투기자본에 대한 통제, 각 산업에 영향을 미치는 자유무역협정도 중요한 의제들이다. 

 노동자들이 준비하지 않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의제들도 있다. 예를 들면 ‘탄핵정국’처럼 국민적 쟁점으로 떠오른 의제들은 노동자의 참가여부와 참여방향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어난다.

 반전평화투쟁이나 통일운동의 경우도 대중적으로 준비된 의제들은 결코 아니다. 이러한 의제들은 당위적인 의제들로서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계몽적인 접근을 불가피하게 한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의제들에 노동자들의 개입능력에 따라서 판단해야한다. 그러지 않고 과도하게 이를 주장한다면 어거지에 불과한 관념으로 전락할 것이다.

 노동자들이 산업적 사회적인 의제를 만들어 내고 주도권을 발휘하는 문제는 임단협수준이 아닌 운동전략을 가지지 않는다면 불가능하거나 왜곡될 것이다. 전략적인 계획이 분명하지 않으면 그저 주어진 쟁점들을 따라다니고 엉뚱하게 개입하여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향후의 노동운동은 단순히 쪽수에 기초하여 힘을 보여줌으로서 주도권을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의제설정의 선점능력에 달려 있기도 하다.   


6. 노동조합의 조직발전에 대한 재검토


가. 계급적 단결의 형태로서 대중조직의 발전방향은 ‘한국노동자단일노조’다.


 노동자계급이 완전한 계급으로서 조직된다는 것은 지역과 업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고용형태를 넘어서 동일한 의무와 동일한 권리를 갖는 동등한 조직원으로서 하나의 조직원리에 통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원리를 실현하는 가장 이상적인 조직형태는 한국의 노동자계급이 단일한 노조로 조직되는 것이다.  물론 ‘한국노동자단일노조’라는 단일조직의 원리에 조직된다고 해도 지역과 업종 및 산업 등 다양한 조건에 따른 다양한 활동들이 보장되는 내부의 조직체계를 가질 것이다. 

 현재 민주노조운동의 전국조직으로서 민주노총은 사실은 노동계급에 대한 대표성을 온전하게 갖고 있지 못하다. 조직률이 턱없이 낮을 뿐만 아니라 한국노총의 완전히 재편 흡수하지 못하고 있다. 대공장 중심이며 아직 비정규직과 여성, 외국인 노동자들은 정규직 대공장의 노동자에 비하여 규모는 물론 임금과 노동조건 및 민주노총에서의 의사결정과정의 실질적인 권리에서 동등한 위치에 있지 않다. 

 하지만 지역과 업종, 성별, 국적을 불문하고 동일한 권리로 조직된 ‘전국노동자단일노조’를 현재의 대중조직 방침으로 곧바로 내 놓는다고 하면 참으로 가당치 않게 여길 것이다. 


 문제는 전국의 노동자를 계급으로서 통일시켜 나가는 과정에서의 현실에 맞는 조직발전의 방침이다. 지금까지 노동조합의 조직발전 경로는 ‘기업별노조 → 대산별’ 이라는 것이 주된 방침이었다. 그러나 대산별노조 방침은 현재 시점에 과연 유효한 것인가?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대산별 방침은 유효하지 않다. 오히려 조직형태의 발전에 대해서 새로운 발상이 필요하다. 대산별 방침을 재검토하고 업종 산별, 지역노조, 비정규직의 새로운 대중조직(노조)형태를 만들어 나가면서 궁극적으로는 노동계급의 단일노조를 지향해야 한다.  

 

나. 신자유주의시대, 한국에서의 산별노조 건설의 특수한 조건.


 그간 우리는 산별노조 건설을 지향하면서 많은 경우 유럽식 산별노조의 사례들을 참고로 해 왔으며 특히 독일식 산별노조를 모범으로 배워 왔다. 그러나 한국은 유럽의 조건과 전혀 다른 역사와 정치 경제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정작 우리는 이런 차이보다는 ‘산별노조로 가야한다’는 당위 때문에 산별노조의 긍정적 요소들을 강조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이제 현재의 시점에서는 보다 더 심도 깊은 문제들로 나가야 한다..

    

 첫째, 경제구조의 근본적인 차이로부터 발생하는 산업적 통일성에 차이가 있다.

 유럽의 산별노조 모형은 적어도 자본주의의 출현과 함께 근대적인 생산력의 발전과정에서 경제가 재편되고 이런 산업의 일정한 발전과정에서 탄생하였다. 비록 기업규모의 차이가 있다고 해도 규모의 차이가 곧 수직적인 불평등 구조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국의 경제는 국가-재벌이라는 두 축에 의하여 발전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재벌을 중심으로 한 하청수직계열화를 산업구조의 특징으로 한다. 재벌기업(대공장)과 하청(중소영세사업장)이라는 중층적인 수직계열화가 한국 경제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산업적 연관성과 통일성보다는 오히려 재벌기업을 중심으로 통합성이 더 높은 경제였다. 이 때문에 현총련과 같은 그룹조직이 활동할 기반이 있었고 자동차연맹 또한 사실상은 기아그룹의 노동조합이 중심을 차지했다.

 때문에 설혹 같은 산업의 노동자라고 하더라도 유럽에 비하여 한국의 경우 이해의 통일성은 확실한 차이가 난다.


 둘째, 노동조합 출발의 역사적 차이가 있다.

 유럽의 산별노조라는 모형은 장인이나 길드 등 기업과 상관없이 숙련노동자들의 연대로부터 시작한 역사적 기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노동운동은 이와 전혀 다른 역사적인 기반을 가지고 있다. 즉 6.25라는 엄청난 투쟁과정에서 남한의 노동운동이 바닥에 떨어진 상황에서 노동자의 연대는 완전히 차단된 기업별 노조구조가 정착된 경험 위에 서 있다.


 셋째, 노동운동 발전의 조직적 구심에 차이가 있다.

 서구의 산별노조가 강력한 계급투쟁의 전통, 그리고 전후 파시즘 등을 청산하는 과정에서 좌파적인 정치세력의 일정한 주도권에 기초하여 적어도 강력한 기획력을 가진 사회적인 집단(좌파 정당 등)의 주도성이 발휘되면서 만들어 졌다고 한다. 물론 노조와 정당 중 어떤 것이 더 주도적인 역할을 했는가는 국가별로 편차가 있지만 시민운동, 좌파정당운동, 노동운동 등 각 영역에서 일정한 발전들이 균형을 이뤘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이러한 사회적인 조건이 존재하지 않았다. 6.25 전쟁 후 반공국가라는 독재체제 아래에서 좌익적 요소들은 모조리 청소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나마 80년대에 레닌주의적인 전위당 모델 또한 실패하였고 사회주의의 몰락이라는 세계사적인 충격은 사회적으로 좌파적인 활동을 발전시키는데 장애로 작용하였다. 때문에 직접적인 노동자들의 분노가 모아지는 현장의 투쟁을 통해, 현장의 활동가를 중심으로 어용노조를 무너뜨리고 군사적인 노동통제에 맞서 민주노조운동으로 발전해 왔다.

 이점에서 한국에서 산별노조의 건설이 노동운동의 핵심적인 현장조직을 포괄, 발전, 재편시키지 못한채 위로부터 기획된 산별운동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넷째, 자본주의 발전단계의 차이다.

 서구의 현재 산별노조운동은 전후 자본주의의 확대를 불러 온 대량생산체제(포디즘)가 정착되면서 소위 말하는 근대공업프롤레타리아에 근거하여, 사민주의 정당과 자본가계급의 일종의 타협을 성립시키는 과정에서 안정되었다. 서구의 산별노조는 대량생산 - 근대공업프롤레타리아 - 산별노조 - 사민주의 - 계급타협(코포라티즘) - 복지국가 모델이라는 시스템과 구분하기 어렵다.

 그러나 현재의 자본주의는 세계화와 유연생산으로 특징지어지는 상황이다. 복지국가모델이 공격받고 있으며 계급타협은 ‘제 3의 길’을 주장한 영국노동당 류의 사민주의 정당의 우경화를 통해 신자유주의 확대로 이어진다. 신자유주의 앞에서 독일의 금속노조 등 산별노조는 새로운 공격에 시달리고 있다. 유럽과 캐나다 등에서 나타나듯 기존의 산별노조들은 이 공격에 맞서 산업의 경계를 넘어서 통합을 하기도 한다. 이는 새로운 조직형태의 출현이 아니라 공격받는 조직체제의 자기방어 노력의 결과다.

 과거의 근대공업프롤레타리아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노동 유연화의 결과, 비정규직이 보다 일반적인 노동자의 형태로 등장하고 있다. 대공장은 유연생산체제에 따라 분산된 생산체재로 재편되고 있다.

 한국에서 산별노조 운동은 재벌이 유지되면서 초국적 자본이 새로 등장하고 여기에 유연생산체제가 결합된 상황이라는 전혀 다른 조건 위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수직 계열화된 경제, 기업별노조, 현장조직중심구조, 유연생산체제라는 특수한 조건을 가진 상황에서 산별노조의 건설은 근본적으로 유럽과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조건의 차이들 속에서 어떻게 조직을 발전 시켜야 할 것인지를 따지지 않고 산별노조를 만들고자 한다면 그야말로 원하는 것과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다. 흔들리는 대산별의 실험


 대산별의 지향을 가장 분명히 한 산업은 금속이다.  물론 금속노동자들의 경우 애초부터 대산별을 지향한 것이 아니다. 자동차연맹의 소산별, 현총련의 그룹단일노조, 민주금속의 대산별론등 금속연맹의 창립 이전에 각각 주장은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산별의 지향에 동의, 금속연맹의 창립을 통해 대산별론으로 전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제조업노동운동의 강력한 전투적 기풍, 그 힘이 대단결을 강제하는 당위적 요구를 현실화 할 수 있는 기초였다. 특히 현장조직들은 전국적 차원에서 관계를 맺고 현총련, 자총련, 민주금속을 뛰어 넘어서 횡적인 관계를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그 힘은 연맹의 창립 후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결정적인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다. 대공장의 현장조직들의 후퇴, 조합원들의 후퇴, 그리고 물러선 자리에 분명히 드러난 것은 이 사회의 구조다.

 즉, 대공장노동자 - 중소기업노동자 - 비정규직노동자의 분할된 모습으로 각자의 생존을 지키는 수준으로 후퇴한 것이다.

 여기에 무너진 재벌회사들은 거대 외국자본에 흡수되고 남은 재벌그룹들은 경쟁대열에 끼어 들고 있다. 재벌중심의 체제는 일부는 무너지고 일부는 유지되지만 그러나 예전의 재벌회사의 모습은 아니다.   세계화는 한 산업 안에서 외국자본이든 재벌회사든 비슷한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경쟁을 하도록 만든다. 이제 한 산업이 흘러가는 모습은 더 이상 재벌그룹사간의 지원체제에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세계적 경쟁구조에서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한 산업에서 나타나는 경향들은 비슷하다. 따라서 한 업종내에서 겪는 노동자들의 문제는 비슷하다.

 그렇다고 한 업종내에서 노동자들이 단결할 기초가 단순하게 강화된 것만은 아니다. 분명 해당 업종내에서도 재벌구조 아래에 수직계열화 되었던 모습이 남아있다.

 자동차산업의 경우를 보면 이런 현실이 보인다. 현대-기아의 경우는 하나의 재벌그룹속에 속하면서도 국제경쟁속에서 세계 5위의 자동차회사를 목표로 글로벌 생산체제를 갖추기 위해 외국공장을 늘린다. 현대-기아도 이젠 더 이상 국내에 머무는 재벌이 아니라 지엠, 포드. 다임러, 도요타 등의 세계적 자동차회사와 경쟁하는 체제를 갖추기 시작한다. 부품체제도 마찬가지로 모비스를 중심으로 모듈업체를 키워나간다. 지엠의 델파이, 포드의 비스테온, 도요타의 덴소와 같이 부품사를 키워 나가며 그 아래에 모든 기아-현대의 부품계열사들은 모비스라는 회사의 밑에 2차 납품사로 전락한다. 외국자본에 흡수된 삼성과 대우는 세계적인 생산체제의 한 부분으로 흡수되었으며 굴지의 외국부품회사에 흡수된 한국의 상당수 부품사들도 세계적인 부품생산체제의 한 부분으로 흡수되었다.

 이제 완성차든 부품사든 세계적인 생산체제속에 흡수되면서 내부적으로는 모듈화니 플렛폼 통합이니 하는 지속적인 유연생산체제의 구축문제를 똑같이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산별노조를 건설하기 위한 노력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현실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대산별노조로 나가기 위한 금속연맹의 모습이 분명히 심각한 정체상태에 빠져 있음을 보여준다. 금속노조는 아직 금속연맹의 조합원 중 1/3도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 조선업종은 뚜렷하게 노동조합의 약화를 보여주고 있다. 자동차산업의 경우 거의 유사한 구조조정속에 휘둘리고 있으면서 자동차분과를 중심으로 사업들을 추진하지만 아직은 완성차 중심의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부품사의 경우 모비스를 중심으로 2-3차 하청업체들로 전락한 기업들은 점차 그 지위가 약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것이 과연 단순하게 대공장의 이기주의 때문에 발생한 문제이거나 혹은 금속노동운동의 후퇴에 따른 조직력이 약화된 현상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아니면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변화되고 있는 한국 사회, 한국의 경제구조, 산업재편을 반영하는 구조적 결과인지를 냉정히 따져 보아야 할 것이다.

 

 대산별의 사례는 아직 없다. 오히려 현실에서는 업종산별만이 존재한다. 보건의료노조, 증권노조, 과기노조, 건설엔지니어노조, 대학노조 등과 전교조나 공무원노조도 마찬가지로 대산별은 아니다. 한국노총의 금융노조 또한 업종산별이다. 물론 아주 작은 규모들이지만 지역노조들도 있다.

 우리는 아직 소규모의 업종수준에서 산별노조를 만들고 있거나 혹은 비정규직이나 영세업체를 포괄하는 지역노조와 같은 수준에서 기업별노조를 뛰어넘고 있는 정도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대산별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과연 성공 가능한 계획인가? 당위성을 떠나서 현실성을 냉정히 따져보아야 한다.  구조조정이후 조직력의 일정한 후퇴 속에서 기업은 물론 업종까지 뛰어넘는 대산별의 건설은 벅차 보인다. 그것은 단지 현실의 사례들이 그렇다는 수준이 아니라 완환위기와 경제재편을 거치면서 변화된 한국경제와 산업재편의 결과를 반영하는 구조조적인 변화가 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될 것이다.      


라. 실천단위, 내용적 통일성을 담는 조직형태로서 업종(지역)노조의 필요성


 조직발전 전망을 논의하는데 있어 분명히 해야할 문제가 있다. 아무리 조직형태에 대한 명쾌한 그림을 그린다고 해서 조직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조직형태의 발전을 얘기할 때는 조직의 ‘형태’ 그 자체를 가지고는 풀릴 문제가 없다.


 첫째로 조직은 구체적인 실천적 단위이다.

 조직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따라서 조직은 ‘네모인가? 세모인가?’하는 꼴을 가지고 논의하는 것 보다 구체적인 실천단위로서 기능을 해야 한다. 이점에서 볼 때에 과연 현재의 금속연맹은 실천단위로서 의미를 갖고 있는가를 심각하게 재고해야 한다. 물론 금속연맹만이 그런 상태는 아니다. 공공연맹의 경우도 당위적 측면에서는 공공서비스를 주장하지만 현실에서 공무원노조와 같은 경우는 독립적인 조직체계이다. 철도, 도시철도, 각 시의 지하철노조의 경우도 사실은 공공연맹이라는 조직 속에서 실천단위로서 기능하기보다는 독립적인 괘도연대와 같은 방식은 실천단위를 만들고 있다.

 금속연맹의 경우 이미 실천적인 단위는 3원화 되었다. 금속노조와 자동차분과, 조선분과 그리고 최근에는 철강분과의 독립적인 구축도 진행된다.  

 과연 현실에서 실천적 단위로서 기능하는 하는 구체적인 모습이 무엇인가에 기초하여 조직발전전망을 세울 필요가 있다.


 둘째로 조직은 내용과 별개로 형식으로서만 발전할 수 없다.

 산별노조로의 발전을 추진하는 것은 종업원 의식을 만드는 기업의 울타리를 벗어나 노동자계급으로 단결하기 위한 방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실천적, 내용적인 근거가 부족한 상황에서는 당위이고 욕망이고 이상일 수는 있어도 현실이 될 수는 없다. 가장 기초적으로 임금체계의 통일성, 작업장협약의 통일적 기반, 그에 기초한 산업적인 의제들에 대한 공동의 실천능력이 없다면 조직은 단지 그림에 불과하다.

 이점에서 우리는 금속산별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당위에 기초하여 산별노조를 추진한 것은 아닌지를 냉정히 되돌아보아야 한다. 즉 구조조정의 시대에 기업별 투쟁으로는 이길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산별로 가자고 했다. 그것은 구조조정이 벌어지는 현실에서는 절박한 외침으로 들린다. 하지만 구조조정과정에서 투쟁을 통한 실천적인 근거들을 축적하지 못했다. 따라서 결국은 산별로 가자는 구호는 사실상 단결의 기반이 취약해지는 과정에서 외친 ‘필요성’이긴 했지만 산별노조를 건설하기 위한 ‘충분조건’은 갖추지 못한 것이다.

 필요하지만 충분한 기초는 없는 상황에서 금속노조는 비교적인 조직력이 높은 노조들이 결합하여  소수노조로 출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냉정히 평가하지 못한 채 아무리 산별로 전환하자고 외친들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설혹 그런 당위에 근거하여 산별로 전환했다고 해도 금속노조에 속한 대공장들이 산별교섭체제 밖에 놓여 있는 현실이 보여주는 것은 무엇인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지원투쟁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는 상태의 금속노조의 현실은 여전히 우리가 비정규직문제에 한참 먼 상태를 벗지 못함을 보여준다.

 우리는 단지 똑같은 물을 네모진 그릇(기업별노조)에서 둥근그릇(금속노조)에 담아 놓고 있을 뿐이다. 물은 여전히 물이다. 우리가 마셔야 할 것은 사각형이든 원형이든 그릇이 아니라 물이다. 


 따라서 아주 단순하게 말한다면,

 산업적 의제들에 대한 대응력을 갖추는 과정에서 산별노조의 탄생이 가능하며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적 발전과 함께 전체 노동자계급이 사회적인 의제를 중심으로 전면적인 투쟁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나가는 과정에서 비로소 ‘한국노동자단일노조’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된다.

 이점에서 볼 때에 금속의 산별노조 건설과정에서 진행된 주장한 계급적 산별노조, 투쟁을 통한 산별노조, 아래로부터의 산별노조라는 주장은 부분적인 지적을 넘어서지 못했으며 또한 노동운동의 발전전략에 대한 대안을 분명히 하지 못함으로 인해서 ‘산별반대론’으로 비판받을 수밖에 없었다.

 

마. 다시 제출되어야 할 노동조합 조직발전전략


 이상을 종합하여 볼 때에 노동조합의 발전 전략은 재검토되어야 한다.

 첫째로는 그간의 산별운동에 대한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

 둘째로는 당면 조직발전의 단계로서 대산별지향은 폐기되어야 한다.

 셋째로는 실천적 단위이자 내용을 만들어 가는 과정으로서 과도적인 단계를 설정해야 한다. 그것은 업종별 실천과 지역별 실천을 중심으로 업종과 지역노조를 만드는 노력들을 개방적으로 시도하는 것이다.

 넷째로는 일반적인 노동자로 등장하는 비정규직의 투쟁과 조직화가 진전되어야 한다.

 다섯째로는 업종, 지역, 비정규직의 조직발전에 기초하여 산업적 의제와 사회적인 의제를 전면에 내건 노동자들의 전국적 실천력을 기반으로 궁극적으로는 ‘한국노동자단일조직’을 건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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