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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통행로

「일방통행로」- 발터 벤야민

 

 

 

I 회고

 

 

  새삼 ‘문학’이라는 것을 안본지 오래 됐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최근에 읽은 소설 제목이 무엇인지 이름도 가물가물하다. 고등학교 때는 시집도 사고 그랬었는데, 심지어 군대에 있을 때는 매일같이 잡시나 잡소설을 쓰면서 보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마치 나를 지키려는 듯 그런식으로 발악 했던 것 같다.

  “단 한줄이라도 글을 쓰지않고 보내는 날이 없도록 할 것”이 희미해져 버린지 오래라는 것을 알게 됐다. 군대를 제대하고 나를 억압하는 것들이 구체성을 잃어버려서 그런 거라고 술자리에서 떠들었던 기억이 난다.

계속 나를 관념으로 무장하는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경험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일련의 독립 다큐멘터리를 보고 감동 받은 척 했는지 모른다.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만든 영상은 독립애니메이션에 관한 것이었다. 별로였다.

  추상에서 보편을 이끌려고 했다. 바라보는 척하고 알 수 있는 척 했다.

 

 

  요즘에는 아무 펜이나 집고서 메모를 한다. 펜에 집착하는 것은 웃기는 일이라고 20대 중반을 넘으면서, 그 것이 일종의 사소한 깨달음이라고 생각 했다.

편리하고 합리적이며 효율적이고 직관적인 사고를 하길 원했다. 아니 그런 줄 알고 있었다.

 

벤야민의 삶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 불행한 삶. 그런 수사들 속에 침전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

 

 

Ⅱ 감상

 

 

  수년전에 우리나라 대중음악계의 조그만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거리의 시인들’이라는 그룹이 있었다. 댄스음악계와 우리사회를 조롱하는 내용과 거친욕들의 가사로 대중들의 이목을 끌었던 이 그룹은 제 자신들이 조롱하던 대중음악계의 시스템에 휘말리며 어느 샌가 관심에서 멀어졌다.

이 책을 보고 나서 ‘거리의 시인들’이 왜 거리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지 아쉽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거리의 시인들’을 떠올리니 나도 그랬던 것 같다. 대중음악과 대중문화 대한 부정과 무시 뭔가 저급하다고 치부했던 적이 있었다. 그럼 지금은 그러하지 않은가 자신하기는 어렵지만 그저 내가 좋아하는 장르가 다르다고 생각할 뿐이다.

 

  따뜻한 시선을 갖고 거리를 걸어본게 언제 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머리가 굵어질 수록 차가움만 더해지는 것 같다.

「일방통행로」의 전체적인 느낌은 따뜻함이다.

 

 

 

Ⅲ 바람

 

 

  내가 살아가고 있는 공간을 훑으며 지나가면서 다큐멘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막연하게 생각하기 시작한지 얼마 안됐다. 「일방통행로」를 읽으면서 그 막연함은 피상적인 관심이 낳을 수밖에 없는 당연함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물론 나의 관심이 피상적이고 막연하다고 말하는 것이 뻔하다 수사일지도 모르지만 상상력의 부재와 경험의 빈곤을 반성하는 것은 이후에 나의 다큐멘터리 작업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리라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거리의 지표와 소리를 엮어 나가는 글쓰기 같은 다큐멘터리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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