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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 떠나버린 빈 껍질
활활 불태워
한 점 재라도 남기기 싫은 심정이지만
이 세상 어디에라도
쓰일 데가 있다면
꼭 쓰일 데가 있다면
주저없이 바치리라
먼 젊음이 이미 다짐해둔
마음의 약속이었느니
- 이효정, <약속>
경성트로이카의 유일한 생존자였던 이효정의 시로 시작되는 이 책은, 상당히 재미있었다.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시간이 지루할 것 같아 샀는데. 단숨에 읽었다. 이전에 여러 사회주의 매체에서 평론을 써놓은 것을 제목만 보았는데, (영화든 책이든 평론을 미리 읽으면 재미가 뚝 떨어진다) 다시 찾아서 어떤 부분을 지적하고 있는지 한 번 봐야겠다. 나름대로 몇 가지 흥미로웠던 부분들만 메모 해두어야지. 발췌는 포기다. (세계를 뒤흔든 열흘은 아직도 발췌 중이다;;)
- 첫번째로는 이재유를 비롯한 혁명가의 삶에 대해서. 특히 박진홍, 이순금, 이효정 등의 여성혁명가들의 삶에 많은 관심이 갔다. 일제 시대 끊임없는 감시와 체포,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규율을 지키고 동지를 지키려고 한 그들의 삶에 한없는 존경심을 느꼈다. 자살하려고 독약을 마신 사람을 위세척까지 시켜서 고문하는 일제의 잔혹함이란. 그리고 계속해서 조직이 와해되는 데도 혁명운동에 조직운동이 없어도 되는 시기가 어디있느냐며, 제 2의 경성트로이카,,,경성 꼼그룹까지 끈질기게 다시 처음부터 운동을 시작하는 혁명가의 태도를 보았다.
- 현장에 기반한 조직이 없는 조선의 노동운동 상황과 지금의 현실의 유사성. 이재유의 말이뼈 속 깊이 와닿는다.
"지금 조선 땅에는 사회주의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사회주의자가 아니면 지식인 축에도 끼지도 못하는 형편이지요. 일본에 유학 갔다 오면 누구나 사회주의자요. 마르크스나 레닌의 저서 한 두권만 읽으면 누구나 사회주의자를 자처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회주의자는 머릿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철저한 자기 희생과 불굴의 의지를 통한 실천 속에서 완성 됩니다. 백수건달처럼 놀고 먹으며 관념적이고 교조적인 이론이나 떠볼리는 얼치기 사회주의자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조선의 사상운동은 그런 관념적 인텔리를 중심으로 한 파벌 운동에 불과했기 때문에 완전한 조직이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조선의 사상운동이 바로 일어서려면 러시아처럼 노동자와 농민을 기초로 해야 합니다. 다만 현재 조선의 노동자 농민의 의식 수준은 낮기 때문에 혁명적 의식과 실천 의지가 있는 지식인들이 전국적으로 널리 퍼져갈때 비로소 조선의 당조직은 진정한 혁명 조직으로 세워질 것입니다"
- 해방 그리고 이어진 분단 상황에서. 북한의 김일성 정권으로부터 숙청당하는 박헌영 등 조선공산당의 주역들. 그리고 남한에서 대중으로부터 외면받은 사회주의자들과, 남에서도 북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던 마지막 빨치산 이현상. 오래 전 읽었던 손석춘의 <<아름다운 집>>이 다시 한 번 생각났다.
- 이재유의 일생에, 빈틈이 있었던 적이 몇 차례 있었는데. 특히 박진홍과 결혼하면서 자신의 아이를 갖게 된 후 흔들리는 개인적 감정이, 결국 문제를 낳았다. 결혼과 아이는 역시 무섭고도 경계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순금과의 삼각관계에서, 물론 그들은 혁명가답게 치정관계로 완전히 틀어지진 않았지만, 어쨌든 그런 깔끔하지 못한 관계를 만든건 이재유의 잘못이다.
아, 그리고 한편으로 당시 조선의 혁명가들은 자유 연애 사상을 상당히 실천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재유의 아이까지 낳은 박진홍과 그리고 이재유가 죽고 난 후에 다시 김태준과 결혼하는 모습이라던가. 다양한 여성의 모습들이,,봉건적 인습에 찌들어있던 당시로서는 혁명적이었음이 분명하다.
음, 이재유 그룹과 국제선의 관계라던가. 당시 그룹들 간의 논쟁이라던가 그런 것들이 궁금한데, 언제 시간나면 <<이재유 연구>>도 한 번 읽어봐야겠다. 정말이지, 맨날 러시아 혁명에 대한 건 읽어도 조선 노동운동사를 너무 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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