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음악감상

"부르디외는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데에 반감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 그 이유가 재미있다. 음악에 관한 담론은 가장 인기 있는 지적 과시의 기회 가운데 하나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음악에 관해 말하는 것은 자신의 교양의 폭과 해박성을 표현하는 훌륭한 기회인데, 그는 그것이 못마땅하다는 것이다. 음악에 대한 기호만큼 그 사람의 ‘계급'을 확인시켜 주는 것도 없으며, 또한 그것만큼 확실한 분류 기준도 없다고 하는 그의 주장은 귀담아 들을 만 하다. 한 개인의 기호 또는 취향이 그토록 많은 것을 폭로할 수 있는 것인지 의아하게 생각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부르디외는 미적으로 편협하다는 것은 가공할 폭력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기호는 혐오와 분리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다른 삶의 양식에 대한 혐오는 계급 사이의 가장 두터운 장벽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부르디외가 보기에, 우리가 예술작품에 대해 취하는 태도는 미학적 느낌의 자발적 결과가 아니라, 교육과정의 사회적 산물이다. 거기서 미적 판단은 계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강준만, 선샤인뉴스에서.

http://sunshinenews.co.kr/detail.php?number=475&thread=30r01r02r01

 

피에르 부르디외가 취향이 독특한 건 알지만 나름대로 통찰력있는 시각을 가진 이이므로 그의 판단이 전적으로 동감가는 대목이다.

사실 음악이라는 원래 목적은 감상에 있는 것이 아니다. 연주하는 이는 연주하는 곡을 나름의 사고체계에서 해석하여 출력하고, 듣는 이는 그 해석에 충실해서 듣고 평가하는 일이다. 그러나 주저리 주저리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몇 번 결혼했고, 하는 등의 일들은 사실 그의 음악을 이해하는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회사에서 음악감상하자고 덤비는 사람이 있어 한탄스러워 글을 옮겨봤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