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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운 자들

고농축 먹물스.

 

많이 배웠다는 얘들은 세상살이의 역경을 스스로 돌파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 보다 학벌이나 조건이 좋지 않은 자와의 단결을 꾀하지 않는다. 그래서 공통의 문제라고 하여도, 먼저 자기가 정면승부할 수 있는지, 승산은 얼마나 있는지, 자신에게 어떤 손해가 있을 것인지, 그 손해의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퇴로는 확보되어 있는지 등 손익계산과 결산을 통해 자신의 거취를 결정한다. 그들은 결투는 해도 전투는 하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이들은 우리 시대 우리 사회의 일자리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 또한 다르다. 열심히만 하면 잘 될 수 있는데, 왜 비실비실하느냐, 왜 성실하지 못하냐, 왜 독하지 않느냐, 라는 비난을 쏟아낸다. 근데 이렇게 말하는 연유와 논리에는 아리까리한 장치들이 숨어 있다. 이 양반들은 자기들도 눈에 먹물빠지게 노력했다, 그래서 여기까지 왔다, 이러신다. 니들 처럼 열심히 안사는 사람없고, 니들 처럼 박터지게 살아볼려고 노력안해 본 사람은 없다. 근데, 왜 니들처럼 안될까.

 

이 양반들의 오해는 모든 사람들에게 기회의 평등이 주어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잘난 기회, 그 문턱까지도 가보기 어렵고 그런 사람, 수두룩 빽빽하다. 예전에야 돈없고 머리 있는 놈들이 사법시험에 도전하여 당당히 금희환향하는 역전 스토리가 있었지만, 지금은 돈 없으면 신림동 월세는 커녕 월식도 못 끊는다.

 

합격률? 장기적으로 화폐가 충전될 수 있는 놈의 합격율이 높다. 물론 안되는 놈은 안된다. 왜? 역시 열심히 안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뇌세포 수가 절대적으로 많은 자가 당연히 합격할 확률이 높다. 내가 만나본 머리 좋은 사람들은, 암기력과 머리 회전이 빨라, 보자 마자, 급좌절하며, 생래적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사회계약의 본좌, 루쏘께서도 그랬고.

 

여튼 돈과 뇌세포. 이걸 극복하기란 쉽지 않다. 결국 뭐냐, 돈과 뇌세포의 절대적 우위에 있는 자들은 기본적으로 불평등, 차별, 이 따위 것들을 겪어보지 못한 탓에, 그저 이 세상 능력과 성실함이 있다면 다 해결되는냥 얘기하고 다니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더 웃기는 것이 열심히 하면 된다, 된다, 하시면서도, 자기들도 안하는 경우가 종종 발견된다. 치사한 것들은 제쳐두더라도, 아래 기사 같은 경우에 먹물들이 임하시는 태도가 그렇다. 소개만 하고 지들은 안한다.

 

http://news.hankyung.com/200905/2009052997181.html

 

이 기사의 제목은 "임시직이라고 얕보지 마세요, 독기 품었더니 억대 연봉자 됐어요"다. 포커스는 임시직, 독기, 억대 연봉. 교수 연봉이 정교수를 제외하고 억대로 넘어가는 예가 거의 없다(아, 여기서 시간강사, 한 번 건드려주고 싶지만, 입술을 깨문다.).

 

그러면 당신들도 그렇게 해봐, 해보고 얘기해야지, 그냥 우리가 열심히 안살아서 저 양반 처럼 안된건가. 열심히 해서 되는 일이라면, 많이 배우신 양반들이 독기 뿜어가면서 도전하면 억대가 아니라 조, 경대 연봉자도 될 수 있겠네. 그러나, 아쉽게도 독기 품고 억대 연봉자 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되면 다되지, 안되는 사람이 있는 건 필시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아는 양반들이 많이 배우신 분들이다. 아무나 안되는 거니, 당연히 그 양반들이 하겠나.

 

또 하나. 많이 배운 양반들이 작금의 불황과 일자리 문제에 ‘열심히 하라’고 교지를 내리시는 이유는 사실 뭘 몰라서 그러는 측면도 있다. 니뮈, 모르는데 뭔가 말을 해야겠고. 그러니 지가 한 경험을 내어 놓지만 그걸 주워가는 사람은 없다. 왜, 버전이 안맞으니깐. 아니, 운영체계가 다르니깐.

 

이 양반들이 많이 배워서 벌이는 경쟁판과 우리들이 경쟁하고 있는 판은 근본 자체가 다르다. 지네들이 벌이는 경쟁이 우리들이 벌이고 있는 경쟁사회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사실 돈 있고, 많이 배운 놈들이 벌이는 경쟁에 우리같은 천한 신분의 사람들은 발톱마저 올려둘 수 없다. 게다가 나는 안다, 다르다는 것을.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그 곳은 몇 개의 실력이 공존하는 경쟁의 장이다. 학벌, 인맥, 돈 아니면 공부. 그러나 우리들이 아웅다웅하는 경쟁의 장은 학벌, 인맥, 돈, 공부, 실력 등등이 고만고만하여 사장님께 쉽게 영혼을 내주며 몸값을 흥정하는 그런 경쟁의 장이다. 그렇게 다른 경쟁의 장에, 우리같은 사람들이 온 몸에 이력서를 문신으로 파가도 낄 수 없는 그런 곳에서, 우리 보고 '열심히 하라'고 소리친다. 니뮈.



대학교수 연봉에 관한 기사.

 

http://blog.naver.com/cselee59?Redirect=Log&logNo=100056664778

(난 이런 곳에서 이런 자료를 즐겁게 구원받는 기분으로 얻으니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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