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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민의식"과 "로마 패권주의" 사이

"선민의식"과 "로마 패권주의" 사이

                                                                   美 정체성모순 뒤 ‘예수의 탈정치화’ 있었다

‘예수와 제국’ 번역출간 화제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 

“미국의 보수적인 크리스천들은 예수의 반제국주의적 하나님의 나라를 포기하고 제국주의의 폭력적 지배를 선택함으로써, 로마제국처럼 신세계 무질서를 초래했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의 패권적 노선. 그 배경에는 미국인들이 스스로 ‘성서적 백성’이라고 자부하지만 탈정치화되고 왜곡된 예수의 생애에 대한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는 주장을 담은 ‘예수와 제국’(리처드 호슬리 지음·한국기독교연구소)이 번역출간됐다.

 

조지 W 부시정권의 재신임으로 미국의 보수적 개신교 교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출간된 이 책은 역사적 예수연구의 세계적 대가로 평가받는 리처드 호슬리(매사추세츠대 종교학 교수)가 9·11 테러와 미국의 이라크 침공 등을 지켜본 뒤 지난해에 펴냈다.



책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뉴잉글랜드에 처음 정착한 이래 자신들은 성서적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다. 미국혁명도 새로운 출애굽(a new exodus), 즉 조지 3세라는 새로운 파라오로부터 탈출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반면에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로마(Rome)로 인식하는 또 다른 측면도 있다. 자신들이 고대 로마를 모방해 공화국(Republic)을 건설했고, 원로원을 흉내내 상원(Senate)을 만들었다. 소비에트 붕괴 이후 초강대국 미국은 로마의 역사적 정체성과 비슷하다.

그러나 약소민족의 자유를 찾아 출애굽을 행한 성서적 백성과 제국주의 로마와 동일시하는 정체성은 자기모순을 갖는다. 그 모순은 오랫동안 예수와 그의 생애로부터 정치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나아가 로마에 대해서도 탈정치화해온 역사적·신학적 전통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지혜의 교사’로 자리잡은 탈정치화된 예수는 종교를 정치와 경제로부터 분리해낸 서구의 오랜 전통에 첫번째 원인이 있다. 즉 당시 로마의 지배를 받던 유대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선 정치경제적 요소를 분리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단지 예수를 뿌리 뽑힌 민중에게 히피족과 같은 대안적 생활방식을 가르친 견유학파(犬儒學派)의 한 지도자로 보려고 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또 ▲개인을 사회적 관계로부터 독립시키는 개인주의의 만연 ▲특히 현대종교학자들이 예수 생존시 문화전통을 무시해버린 자료의 통제된 선택 등을 예수의 탈정치화 원인으로 꼽는다.

 

저자는 “예수가 직면했던 상황은 로마인들의 제국적 질서에 맞선 유대민중의 노골적인 반란이 이어졌다”며 “이같은 사실을 무시한채 예수의 선교를 이해하는 것은, 오늘날 아랍인들의 폭넓은 불만과 테러조직과 같은 다양한 운동을 알지 못한채 중동지역의 이슬람 갱신운동을 이해하려는 것과 같다”고 주장한다. 이같은 잘못된 인식이 미국의 제국주의적 노선을 정당화하는 미국민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엄주엽기자 ejyeob@
기사 게재 일자 2004/11/24  
 


한기연 (2004-11-25 17:39:20)

제민일보 신간안내 2004/11/19

●예수와 제국:하느님 나라와 신세계 무질서(리처드 호슬리 지음·김준우
옮김)=9.11테러와 미국이 제국주의에 대한 신학적 반성으로서 예수가 가르
친 하느님 나라가 로마제국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을 선포한 반제국주의 공
동체 운동임을 규명한 예언자적 예수 연구서. 저자는 최근의 탈정치화된 예
수 연구의 오류들이 비판을 통해 예수가 반제국주의 운동의 지도였다고 결
론짓는다. 한국기독교연구소·1만2000원.   
 
 
한기연 (2004-11-26 00:08:47)

광주타임즈 신간안내 2004/11/22

▲예수와 제국(리처드 호슬리/ 한국기독교연구소刊/ 1만2천원)
9.11 테러의 원인이 된 미국 제국주의를 로마제국의 폭력성에 비유하며 신학적인 반성을 시도한 책. 그리스도교가 어떻게 예수의 반제국주의 운동에서 제국을 뒷받침하는 종교로 전락했는지 밝힌다. 상황적 접근방식을 통해 예수운동이 로마제국의 통치에 대한 저항운동들 속에서 어떻게 자리매김 했는지를 자세하게 소개하고, 로마제국의 통치가 팔레스타인 사회에 미친 영향 등을 분석한다.   
 
 
한기연 (2005-01-06 16:35:34)

예수와 제국
[매일신문 2004.11.26 14:45:23]

 

“예수는 반제국주의 지도자였다”예수와 제국/ 리처드 호슬리 지음·김준우 옮김/ 한국기독교연구소 펴냄마이클 무어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화씨 9/11''은 미국 내에서는 물론 한국 등 전세계 곳곳에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며 반(反) 부시 연대 결성에 큰 몫을 담당했다. 부시의 독선주의에 맞서 칸 영화제는 올해 마이클 무어에게 황금종려상의 영예를 안겨 주었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대통령 선거에서 합리주의자로 알려진 캐리 대신 다시 부시를 선택함으로써 세계인의 눈총을 사고 있다. 이 책은 ''화씨 9/11''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는 일종의 신학적 반성서다.

 

메사추세츠대학 종교학과 교수인 저자는 예수 연구의 세계적인 대가 중 한 사람. 사회정치적 관점에서 역사적 예수와 하느님의 나라를 해석해 왔던 저자는 9/11 테러 사건 이후 발표한 이 책을 통해 로마제국의 폭력성에 비추어 9/11 테러의 원인이 된 아메리카 제국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그는 부시 미 대통령이 거짓말에 근거하여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략했다는 사실이 의회 보고서를 통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선거와 상하원 선거에서 대다수의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이 부시와 공화당을 지지한 것은 로마제국에 맞서 대안적 공동체로서 하느님 나라를 가르친 예수를 왜곡하고 반 제국주의적인 예수 운동을 배반한 결과라고 말한다. 미국의 보수적인 크리스천들은 반제국주의적 하느님 나라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 폭력적 지배를 선택함으로써 로마제국처럼 무질서와 저항을 초래했다는 것.

 

저자는 최근의 탈정치화된 예수 연구의 오류들을 비판하고 복음서 전승들에 대한 상관적, 상황적 접근방식을 통해 예수 운동이 당시 로마제국 통치에 대한 저항운동들 속에서 어떻게 자리매김하는지를 밝히고 있다. 로마제국 통치가 팔레스타인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예수는 로마제국의 학살과 착취로 인한 공동체 해체에 맞서 어떤 선교활동들을 펼쳤는지 분석하고, 로마의 제국적 질서에 대한 대안적 질서로서 하느님의 나라를 어떻게 실행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저자는 “예수가 반제국주의 운동의 지도자였다”고 결론 짓는다.

 

로마제국과 오늘날 미국을 비교하면서 미국의 전횡에 비판도 가하고 있다. 미국이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을 앞세워 저개발국들에게 개발과 현대화를 강요, 전지구적 자본주의 체제를 확장시키며 세계 통제의 해게모니를 장악한 것은 로마제국이 정복 민족에게 조공을 부과한 뒤 그 것을 지불할 수 있도록 생산에 박차를 가한 것과 같으며 최근 미국에 대한 저항은 로마제국 통치에 맞선 대항 운동과 유사하다는 것. 로마제국 통치에 맞서서 단호하게 대항했던 유다와 갈릴래아 농민운동과 1970년대와 1980년대 니카라과와 엘살바도르 농민운동은 역사적 연장선상에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 어떻게 미국의 정체성이 로마제국의 정체성으로 변화되었는지 살펴보고 있다. 청교도들이 뉴잉글랜드에 정착할 당시 공동체와 교회가 분리되지 않았는데 미국 헌법이 탄생하면서 교회가 국가로부터 분리돼 교회보다는 국가가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하느님이 선택하신 백성이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요소가 ''로마는 정복한 세계에 구원과 문명을 가져다 주었다''는 믿음이 되어 미국 속에 각인돼 로마제국의 전철을 밟고 있다며 크리스 천들의 책임을 묻고 있다. 이경달기자 sar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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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현장]세계화에 맞서는 새로운 해방신학 모색

[브라질 현장]세계화에 맞서는 새로운 해방신학 모색
                                                       21일 제1차 세계해방신학포럼 개막 
                                          엄기호(getoutof) 기자

▲ 세계해방신학포럼개막식 장면

ⓒ2005 엄기호

제1차 세계해방신학포럼 개막-세계화에 맞선 해방신학의 재정립 시도

1월 21일 10시 브라질 포루투 알레그레에서 제1차 세계해방신학포럼(World Forum on Theology and Liberation, 이하 포럼)이 '다른 가능한 세상을 위한 신학'(Theology for Another Possible World)을 슬로건으로 개막했다.

포럼은 세계사회포럼의 성공과 성장에 고무되어 지난 2003년 대회 때 세계적으로 저명한 해방신학자인 레오나르도 보프가 주창한 지 2년만에 그 결실을 맺어, 2005년 세계사회포럼 사전 포럼의 형태로 열리게 되었다.


포럼은 교황청 인준 리오 그란드 도 술 가톨릭대학(Pontificia Universidade Catolica do Rio Grande do Sul)에서 브라질교회협의회, 브라질성공회, 라틴아메리카가톨릭수도자연합회 등이 주최하며, 레오나르도 보프, 스리랑카의 티사 발리수리아, 한국의 정현경 등 전 세계에서 300여명의 진보적 신학자들이 모여 해방신학의 과제와 미래를 토론하게 된다.

개막식에서 조직위원회는 포럼은 세계사회포럼의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정신에 전적으로 공감하였다. 특히 종교가 갈등과 전쟁의 원인이거나 정당화의 수단이어서는 안 되며, 억압받는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야 하며,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제국의 출현에 맞는 해방신학의 재정립을 위한 출발점으로 포럼으로 자리매김하였다.

특히 라틴아메리카 가톨릭수도자연합은 축하 메시지에서 '우리가 맞서야 할 드래곤은 크지 않으며, 희망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다'고 역설하며 이런 희망과 해방의 운동들과 함께 하는 해방신학으로 나아가자고 호소하였다.

이어 21일 첫날은 각 대륙의 진보적 신학의 상황에 대한 보고가 이어졌다. 먼저 아시아의 진보신학에 대한 보고에서는 한국의 민중신학과 인도의 불가촉천민신학 등 아시아의 진보적 신학은 억압받는 이들의 토착적 신학으로 출발하였다는 특색을 가진다는 점이 부각되었다. 이어 유럽과 아프리카 등의 상황이 보고되었다.

특히 흥미를 끈 것은 미국의 진보신학의 상황에 대한 보고였다. 시카고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치고 있는 드와이트(Dwight Hpkins)는 미국의 신학은 신보수주의 신학, 자유주의신학, 예언자적 신학 등으로 나누어진다고 지적하였다. 특히 부시의 재선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신보수주의 신학은 개별적인 신학이라고 하기보다는 일종의 집단적 운동 형태를 띠고 있다고 분석하였다.

신보수주의 신학의 가장 결정적인 특징은 미국은 하느님이 세운 나라라는 것에 대한 확신, 미국은 그저 다른 나라보다 더 나은 것이 아니라 최선이라는 것에 대한 확신, 미국이 결심한 것은 즉각적으로 실행되어야 한다는 확신, 이에 반대하는 것은 제거되어야 한다는 것에 대한 확신으로 뭉쳐 있는 신학이라고 비판하였다.

그는 이런 점에서 신보수주의자들이 전혀 자선도 하지 않는 몰인정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은 오해라며, 신보수주의신학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가진 문제점은 자선을 하지 않는다거나 자비롭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자선과 자비를 추구하는 방식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나 국가에 대해서 무자비하다는 점이라고 지적하였다.

이에 맞선 신학으로서의 자유주의 신학은 개인의 자유에 대해 절대적으로 신봉하며, 그것을 신장시키는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특히 자유와 관련하여 미국이 신에 의해 만들어졌고 상대적으로 우월한 국가라는 미국의 이미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신보수주의와 맥락을 같이 한다.

이에 더하여 자유주의 신학은 재산권을 개인의 자유에서 핵심적인 자유 중의 하나로 여김으로써 가난과 빈곤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취약하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그는 미국 진보신학의 미래를 작지만 지구적으로 네트워킹하며 경험과 언어를 공유하고 있는 예언자적 신학에서 찾고 있다.

1월 22일, 포럼의 둘째 날 오전은 현재 세계상황에 대한 점검으로 시작하였다. 포르투갈의 저명한 사회학자 보아벤투라(Voaventura de Sousa Santos)는 기조발제에서 세상은 현실과 기대 사이의 간극으로 존재한다고 규정하였다. 사람들은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오늘이라는 현실을 바라보고, 그 현실을 바꾸며 살아간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이후 현실과 기대는 역전되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오늘은 좋지 않으며 내일은 더 나쁘다!(Today is bad, but Tommorrow is worse!)'는 공감을 가지고 있다. 이 속에서 다른 세상은 전혀 가능하지 않다. 복지국가의 붕괴와 함께 사회적 협약은 개인적 협약으로 바뀌었으며, 사회적 안전망은 붕괴하고, 민주주의와 인권은 위기에 직면하였다. 민주주의는 이제 선거라는 일종의 정치적 의례로 전락하였고 삶과 유리되었다.

노동조건과 협약에서 국가는 후퇴하였고, 시장에 의해 사회는 파시즘적 상황에 떨어졌다. 국가는 사회적 시민권을 기반으로 구성되었지만, 국가는 사회에서의 시민권을 더 이상 방어하지도, 기반하지도 않는다. 결론적으로 그는 현재 사회를 정치적 민주주의와 사회적 파시즘으로 규정하였다.

이어 그는 현재 지구는 단일 문화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으며, 이것에 대항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하였다. 그가 말하는 단일 문화란 생산성의 문화, 단선적 진화의 문화, 위계화의 문화, 공학적 지식의 문화 등이 지구적으로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세계를 우월한 것과 열등한 것을 끊임없이 가르고, 생산적인 것과 비생산적인 것을 가르며, 열등하고 비생산적인 것을 침묵하게 한다.

그리하여 끊임없이 부재의 영역이 생긴다. 그는 그의 사회학을 부재의 사회학으로 명명하며, 그의 사회학은 새로운 사회적 포용을 위한 인권과 민주주의의 급진화를 지향한다고 이야기하였다. 즉 부재된 것의 인권과 민주주의로 새로운 연대와 생태(ecology)의 지구로 새로운 세계는 가능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1차 세계해방신학포럼은 1월 25일까지 5일간의 일정으로 전개되며 '또 다른 세상을 위한 하느님', '또 다른 세상을 위한 종교', '또 다른 세상을 향한 신학'이라는 세부주제를 가지고 진행된다. 한편 한국에서는 천주교평신도들의 신학연구운동단체인 우리신학연구소에서 소장 박영대와 연구위원 엄기호(팍스 로마나 동아시아 담당, 가 참석하고 있다.

"미국 신보수주의신학의 수장은 부시 대통령"
미국의 진보적 신학자 드와이트 인터뷰

▲ 미국의 진보적 신학자 드와이트(Dwight Hpkins)

-지난 미국대선에서 신보수주의 신학이 끼친 영향은 어느 정도였는가?
“당연히 신보수주의 신학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부시를 지지하였다. 그것도 지지하는 정도가 아니라 교회에서 투표에 관한 교육을 하고, 투표를 독려하고 조직하고 현수막을 거는 등 거의 군대와도 같은 방식으로 움직였다. 사실 신보수주의 신학 운동은 거의 군대나 다름없다. 이에 반해 자유주의 신학 진영은 ‘모든 사람은 말할 자유가 있다.’고 나이브하게 이야기하며 적극적으로 이에 대처하지는 않았다. 이들은 보다 더 느슨하고, 덜 조직적이다.”

-신보수주의 신학은 신학이라고 하기 보다는 운동이라고 당신은 이야기한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살실 다른 모든 신학처럼 신보수주의 신학에도 뚜렷하게 자기 선을 드러내는 신학자가 있다. 그러나 내가 신보수주의 신학을 어떤 학문적 실천이라고 하기보다는 운동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첫 번째로 신보수주의신학은 많은 신학교와, 신학대학, 그리고 교회를 가로지르면서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두 번째로 신보수주의 신학은 학문적이라기보다는 대중적인 측면이 아주 강하다. 이런 점에서 신보수주의 신학의 진정한 대표는 신학자가 아니라 부시라고 말할 수 있다. 이번에 부시의 취임연설을 들었는가? 전부가 다 하느님과 신앙과 종교에 대한 이야기이다. 대통령 취임식 연설라고 볼 수 없을 정도이다. 이런 점에서 신보수주의 신학은 신학이라기보다는 운동적 성격을 더 강하게 띈다.“

-체계적이지 않은데도 신보수주의신학이 이처럼 대중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가장 크게는 신보수주의신학이 대단히 애국적이라는 점이다. 발제에서도 말한 것처럼 신보수주의 신학은 미국이 하느님의 뜻에 의해 만들어진 최선의 국가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미국의 시민이 된다는 것은 곧 하느님의 나라의 백성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자부심과 자긍심의 고취가 대중들을 열광시킨다. 최선의 국가의 시민이고, 가장 강력한 국가의 국민임을 신보수주의신학은 계속 고취시키고 있으며, 실제 미국인들은 그렇게 느낀다.

따라서 이들은 세계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위치와 임무를 신보수주의 신학과 부시가 제대로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반해 자유주의 신학은 아주 나이브하다. 개인적이며. 물론 자유주의신학이 공헌한 바가 있다. 특히 개인의 자유, 여성과 흑인과 이주노동자들의 권리에 대해서 자유주의 신학은 많은 공헌을 하였다.

그러나 미국의 시스템 자체가 문제시되면 자유주의 신학 역시 신보수주의신학과 다르지 않다. 그들 역시 미국의 경제적, 정치적 시스템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이 최선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들이 ‘자유주의’ 신학이라고 불린다.“

-북한의 경우에도 탈북자들을 위한다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선교사들이다. 북한에 대한 이런 접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원래 그들이 하는 일이 그렇다. 미국은 백악관과 언론과 교회와 자본이 일종의 동맹체를 구성하고 있다. 맨 먼저 교회가 나서서 인도주의적 도움이라는 이름으로 선교에 나선다. 그것이 파견지 국가의 정부에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정부가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비난을 하기 시작하고, 언론이 이를 받아 적는다.

언론은 계속해서 북한이 인권탄압국이며, 독재적인 공산주의 국가이며, 그래서 미국에 의해 붕괴되어야하는 곳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문제는 북한이 독재적 공산주의 국가가 아니라거나 언론을 탄압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주장의 배후에는 미국의 말을 듣지 않는 북한은 붕괴되어야하고, 절대적 선인 미국식의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체제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결국 그들의 비난과 비판의 요점은 북한이 인권탄압국이고 독재적인 공산주의 국가라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 '선'인 미국의 지시와 모델을 북한이 따르지 않는다는데 있다.“

-한국의 보수적 그리스도교에서는 국가보안법 수호를 위한 시위에서 미국 국기를 흔든 적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눈이 동그래지며) 한국에서? (그렇다) 오 마이 갓.”

-어떻게 해서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나?
나는 사실 교회에서 태어나고 교회에서 자랐다. 청년기가 되었을 때 나는 사실 교회를 떠났다. 교회보다는 사회운동이 흑인의 정의를 위해서 더 확실하게 싸울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가운데 흑인 신학을 만났고 다시 교회로, 아니 신앙으로 돌아왔다.

왜냐하면 흑인신학을 통해서 나는 나의 그리스도인됨과 흑인으로서의 자긍심과 사회정의라는 세 가지 모두를 다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신학을 예언자적 신학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한국의 민중 신학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 (한국의 민중 신학은 요즘 과거처럼 그렇게 활동적이지 못하다.) 정말인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흑인 신학은 신학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예언자적 교회를 통해서 운동으로 존재하고 있다. 비록 예언자적 교회는 숫자나 규모에서도 아주 적지만 흑인 신학은 교회에 근거하고 교회를 통해서 운동하기 때문에 여전히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나는 아주 낙관주의적이다. “

-이런 상황에서 낙관적이라니 놀랍다. 그 근거가 무엇인가?
사실 미국이 미국식의 파시즘적 상황이 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나를 낙관적으로 만든다. 왜냐하면 부시와 신보수주의가 파시즘으로 갈 정도로 그렇게 절박하다는 것이다. 절박하지 않다면 왜 파시즘적 체계로 이행하겠는가? 경제며 사회적 안전망이며, 국민적 결속이며 모든 것이 끝장났다.

그러니 더욱 부시와 신보수주의자들은 더 절망적이지 않을 수 없고 절박해지는 것이다. 물론 나는 이 상황이 기쁘지는 않다. 그러나 나는 낙관적일 수 있다. (상황이 기쁘지는 않지만, 낙관적이라니 그것이 당신이 당신의 신학을 예언자적이라고 말하는 아주 상징적인 표현인 것 같다.) (웃으며) 그런가? 그렇다. 모든 사회적 안전망이 붕괴하여 고통 받는 사람들을 보면서 행복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낙관적일 수 있다. 맞다. 그래서 나는 내 신학을 예언자적이라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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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이주노동자센터 소식지를 발행하며

오산이주노동자센터 소식지를 발행사  

여러분 반갑습니다. 

평화를 위해 땀 흘려 일하는 사람, 다른 사람의 무거운 짐을 대신 하여 지는 이들은 이 땅과 하늘나라의 진정한 주인입니다. 원하지 않는 전쟁과 재해로 세계의 형제들이 죽어가서 고통스럽지만 바닥노동자들이 힘을 합하여 사랑으로 다시 일어나려 합니다. 새 힘을 내세요 동지들 사랑합니다.

오산에서 가까운 향남면의 공장에서 일하던 태국노동자가 심한 산업재해 직업병으로 사회의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그들이 오산보다 먼 안산까지 달려가서 상담과 치료를 받는 것을 보면 아직 사회속에 오산이주노동자센터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소식지 첫호를 이제 발행하게 되었습니다.

 

 



한 돌을 맞이한 오산노동문화센터는 지역의 노동자들과 함께 설립하였습니다. 걸음마를 하고 이제 말을 배우고 있습니다. 센터의 첫사업 이주노동자운동은 지역주민들과 어우러져서 함께 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이웃사랑의 국제연대와 한민족의 아름다운 역사의 사랑이 아시아 그리고  세계인들에게 연대하고 소통하는 오산의 상징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두 걸음 세 걸음 힘찬 발 돗음을 하려 합니다. 최근 우리사회는 써비스 산업과 향락산업의 발달로 힘든 공장일은 하지 않으려합니다. 힘들고 어렵고 더러운 일은 하지 않아서 생산현장의 노동력이 부족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로 돈 벌이 오는 다국가 사람들이 우리들 대신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과 오산에서 함께 어울려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산이주노동자센터에서 처음으로 모임을 결성한 오산지역 인도네시아모임은 지난해 친선체육대회, 여름수련회, 무료진료, 후원의밤 등 여러 가지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 동안 아시아태평양노동자연대의 틀속에서 지속되어온 인도네시아노동자와 한국노동자들이 서로의 삶의 지역과 노동현장을 방문하며 친교와 연대를 나누는 성과로 문화현장교류협약도 맺었습니다. 다른세상이 가능하다는 새로운 국제노동운동의 연대와 소통의 가능성을 찾고 있습니다.



90년대초반 한국에 들어오기 시작한 이주노동자들의 자주적인 조직은 이제 한국노동운동의 한축으로 세워지고 있습니다. 네팔, 핀리핀(카사마코)노동자들은 오래전부터  자체조직을 결성하여 교육, 연대, 협동체를 만들고 이국에서 공동체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노동자로서 기본적인 권리를 받지 못해서 억울한 일들을 당했던 사람들은 자기의 권리를 찾기 위해서 평등노조를 만들어서 노동운동의 한 축을 형성하고 1년간 명동성당에서 노동비자챙취를 위하여 열심히 투쟁도 하였습니다.



열심히 경제적인 활동을 하였지만 노동의 자유권을 제한하는 자본가들의 법으로 불법체류자가되어 고통받은 노동자가 약 20만명이 되었고 체포되어 비인간적인 대접을 받고 고국으로 돌아간 친구들도 있습니다.



우리민족과 세계 민중들은 악한 권력을 갖은자들의 횡포로 인하여 경제, 문화적으로 어려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형제들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열대 속 그리고 독일의 탄광과 병원노동자로 돈벌이 같던 일이 어저께 같습니다. 우리국민들이 지금도 일본, 미국의 관광,일용노동자로 돈벌이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격었던 침략전쟁의 처참한 아픈 역사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미군의 포화속 신음하는 이락크의 어린이를 비롯한 민중들이 있습니다. 자연 재해로 죽음과 가난의 피해지역이 발생하여 울부짖는 아시아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세계의 평화를 이루기위해 이락전쟁을 반대합니다. 우리의 작은 정성을 모아 사랑으로 재해를 극복하려 합니다.


세계와 한국사회는 급속도로 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근현대 민주사회의 과정을 신속하게 격으며 세계냉전의 한가운데 서는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급하게 발전을 하면 부작용이 따릅니다. 우리민족의 분단과 분열은 외래문화의 전례와 외세의 침략을 정확하게 대응하지 못함이 오늘의 결과입니다.



 우리는 자주적인 민족의 통일을 원합니다. 지난 분단의 역사를 거울삼아 천성적인 부지런함과 새로운 시대를 열기위한 자녀교육으로 세계사의 모범이 되기를 바램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의 노래를 부르며 자라나서 이제는 6.10 민주화운동과 6.15 공동선언으로 경제협력, 학문교류, 자주문화 확인을 하며 민주와 통일이 아주 가까이 왔습니다.



오산이주노동자센터는 세계평화와 민족통일을 열어가는 아시아, 태평양지역 민중들의 공동체입니다.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이주노동자들과 가난한 이들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피와 땀의 노동과 인류애를 바탕으로 하는 봉사와 헌신의 정신의 결과로 인류 후손들에게는 통일된 세상, 통일을 넘어서 평화의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 것입니다.



여럿이 함께 만들어가는 아름다운세상의 평화와 통일을 이루기 위한 노동자국제연대의 노래를 오산이주노동자센터. 노동자센터에서 힘차게 부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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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해미님의 [[노맨스랜드] 경쾌함이 잔인하다.] 에 관련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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