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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05/02/01

교회 노조 설립 - "신앙공동체는 노동자 권리 더 보장해야" (뉴스엔조이)

"신앙공동체는 노동자 권리 더 보장해야"  


신앙공동체여서 노조가 불가하다는 주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신앙공동체라는 이유로 사람들의 권리가 침해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이유로 노동자들의 권리가 침해당할까봐 헌법에 노동자의 권리를 명시한 것이다. 다른 법도 아닌 헌법 33조에 노동자의 권리를 신성한 것으로 인정한 것이 그 이유에서다. 하나님을 앞세워 교인들을 바보로 만드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신앙공동체라는 것이 노동자들의 권리를 침해할 이유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신앙공동체이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권리를 더 보장해야 하는 것이다.

최초의 신앙공동체 모습이 무엇인지 기억해야 한다. 기독교는 출애굽부터 시작되었다. 최초로 기록된 성경은 다 알다시피 출애굽기이다. 애굽에서 수 백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하다가 거기서 탈출하면서 기독교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노예들이 노예 해방에서 승리하면서 자기 역사를 기록한 것이 성경의 시작이다. 가나안에서 만든 공동체 이름이 하나님이 다스린다는 의미의 '이스라엘'이었다. 왜 그런 이름이 지어졌겠나. 인간이 인간을 다스리는 사회를 수 백년 간 피눈물을 흘리며 겪었으니 다시는 그런 사회가 되지 않기 위해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지은 것이다.

이스라엘은 인간이 다른 인간의 권리를 빼앗는 것을 막기 위해 여러 가지 제도를 만들었다. 예를 들어 열 두 지파가 모여 재산을 분배하면서 제사장직을 맡은 레위인에게는 한 푼의 재산도 주지 않았다. 종교는 힘이기 때문에 종교를 가진 사람이 재산까지 가지면 또 하나의 특권층이 생기기 때문이다. 신앙공동체 원칙에 충실하려면 교회 목사님들은 재산이 없어야 한다. 그러나 보라, 얼마나 많은 대형교회 목사님들이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고, 그 교회에서 일하는 수많은 다른 직원들에 비해 얼마나 고임금을 받는가. 비성경적이고 비기독교적인 것이다. 신앙공동체를 내세우며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발상은 철저하게 비기독교적인 것이다.

교회 안에 노조가 생기면 갈등 요소가 늘어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노조에 대해 올바로 이해하도록 한번이라도 교육받은 일이 있는지 생각해 봐야한다. 우리 나라는 어떤 제도권 교육에서도 노조와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교육하지 않는다. 2년 전 비행기 조종사들의 파업을 모든 국민이 다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당시 언론에서 이들이 연봉 1억이 넘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이들 중 연봉 1억이 넘는 사람은 10% 정도였다. 국민들은 고연봉의 사람들이 파업을 해 항공대란으로 겪었다고 알고 있지만 왜 이들이 파업을 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이것이 우리 사회를 유지해온 교육 시스템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노동 문제를 올바로 보는 것이 불가능하다.

국민들은 노조를 수십 년 동안 권력과 자본을 가진 사람들이 훈련시키는 관점으로 보아왔다. 그러나 다른 나라는 노동자의 권리와 노조에 대해 다 가르친다. 우리 나라 국민의 대부분은 노동자이거나 그 가족이다. 국민의 대부분이 노동자인 사회에서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가르치지 않고 다만 노조가 우리 사회에 해롭다는 것만 가르칠 뿐이다.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이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이다. 단결권은 노동자가 자신의 유익을 위해 조직을 만들 권리이고 혼자가 아니라 단체로 사용자와 교섭할 권리가 단체교섭권이다. 단체행동권은 그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기업에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끼치고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면서 파업할 권리이다. 이는 헌법이 보장한 신성한 권리이다. 사실, 얼마나 살벌한 권리인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타인에게 손해를 끼칠 권리이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타인을 불행하게 만들 수도 있는 권리를 왜 헌법에 보장했는지 생각해 보라. 왜 이런 권리를 전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신성한 권리로 인정하겠는가? 이런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한 일이 있는가?

노조를 부정하는 시각이 교회에서는 한층 더 강한 것 같다. 이유가 무엇일까.

노조에 대한 몰이해와 교회의 보수적 성격이 결합해 문제를 한층 어렵게 몰아가는 것 같다. 성모병원을 보라. 200일 넘도록 노동자가 파업을 하는 동안, 한 번도 교섭이 되지 않았다. 신부·수녀님들은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사람들이니 우선 업무에 복귀하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다른 병원은 교섭이 이루어지는 데 가톨릭이 운영하는 병원에서 교섭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노조에 대한 몰이해가 보수적인 신앙과 결합하면서 상승 효과를 가져온 것이다.

병원 노동자들이 하도 답답해서 로마로 갔었다. 교황청의 담당자는 물론 유럽의 담당자와 인사들이 한결 같이 한 말이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자기 사회에서는 지금까지 노조와 가톨릭이 적대적인 관계가 된 적이 없었는데, 가톨릭은 언제나 약자의 편이었는데, 한국 사회에서는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 이해하지 못했다. 신부·수녀님들이 노동자들을 고발해서 잡혀가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노동자에 대한 왜곡된 교육을 받은 사람 중에 당연히 성직자도 포함되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는 편향된 기독교가 들어왔다. 기독교를 노예에서 출발한 종교로 보는 관점이 있고 이를 애써 무시하는 전통이 있다. 그러나 신약성경을 잘 보면 예수님은 편파적으로 노동자를 사랑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식민지와 분단을 겪으며 굳어진 노동자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와 기독교의 보수 정서가 결합하여 더욱 천박해진 것이다.

교회 안의 노조를 사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설득할 방법이 있다면.

쉽지 않다. 노동자 역시 노조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볼 것을 강요당하는 사회에서 살았다. 노동자가 자신들의 싸움을 먹고 살기 위한 치사한 싸움이 아니라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올바른 싸움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교인들에게는 더 오래 걸릴 것이다.

안식일을 보라. 남종이나 여종뿐만 아니라 주인에게도 쉬라고 명령하고 있다. 주인이 쉬어야 하인들도 쉴 수 있기 때문이다. 악덕기업주들의 공통점이 무언 줄 아는가. 자신의 헌신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대우 그룹의 김우중 회장을 보라. 그 사람이 한국 경제에 얼마나 큰 해악을 끼쳤는지는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뭐라고 말했나. 자신이 대우 그룹 전체에서 가장 적게 자고 열심히 일한다고 강조했다. 식사도 승용차에 한다고 했다. 김우중 식사법을 개발했을 정도로 열심히 살았다고 말했다. 나도 열심히 일하니 너희도 그렇게 하라는 논리다. 이런 일을 막기 위해 성경은 안식일에 반드시 주인이 쉬라고 한 것이다. 이런 의미를 신앙 생활을 통해 익혀야 하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이 엿새 동안 창조하시고 쉬셔서 안식일에 쉰다고만 가르치는 것은 사기이다. 목사님들이 공부를 해야 한다. 기독교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면 노동자의 권리를 이해하게 된다. 희년 제도를 왜 두었겠는가. 철저하게 노동자 권리를 보호하는 종교가 기독교였다.

교회 노조는 고용주가 누구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책임을 회피하려는 핑계다. 정부가 모든 결정권을 가지는 공기업 문제에 대해 정부가 책임을 지지 않는 논리와 비슷한 것이다. 공기업에서, 정부가 결정하지 않으면 사장은 아무 것도 결정하지 못한다. 노동자들은 정부 책임자가 나와서 협상할 것을 요구한다. 많은 경우, 정부 책임자가 나오지 않는다. 사용자가 누구인지는 아주 명백하다. 그 사람을 채용하고 내보낼 수 있는 권한을 행사하는 사람이 사용자인 것이다. 그 사람이 교섭에 나서면 되는 것이다. 노동자 권리를 회피하자고 하면 수많은 이유를 댈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비겁한 것이다.

줄 타는 광대가 있다고 치자. 남사당패의 광대는 보통 손에 부채를 들고 줄에 오른다. 부채는 언제나 몸이 기우는 반대 방향으로 펼쳐진다. 그래야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이 사람이 몸이 기울어지는 쪽으로 부채를 펼치면 바로 떨어질 것이다. 엄정·객관·합리를 유지하며 중립을 지키겠다는 사람은 바로 떨어진다. 교회 내에서 지위가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 중에 누구의 목소리가 더 큰가? 누구의 주장이 더 잘 관철되는가? 교회에서 지위가 낮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교회 운영에 지장이 될 정도로 지나치게 크다면 교회에서 힘있는 사람 방향으로 부채를 펼쳐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교회에서 목회자들의 목소리와 권한이 지나치게 크다면 부채를 어느 방향으로 펴야겠는가?

사람들이 이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이익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이 교회에서 힘없는 사람들의 편을 드는 것이 한 푼이라도 이익이 된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선교 사업을 유지하려면 힘있는 교회로부터 돈을 받아야하므로 그들에게 맞서는 행위를 절대 할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의 이익대로 선택을 한 것뿐이다. 경제적인 작은 유익 앞에 수십 년 쌓아온 이성이 쉽게 무너지는 것이다.

숲을 보면 키가 큰 나무도 있고 작은 나무도 있다. 키가 큰 나무는 아무리 인격이 훌륭하고 착해도 작은 나무의 햇볕을 가리게 되어 있다. 이는 인격·지식·교양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가 결정하는 것이다. 교회 내에 힘있는 목사들과 힘없는 일꾼들의 대립구도가 이와 같다. 키 작은 나무가 죽지 않고 살려면 자기 키를 키우든지 큰 나무의 가지를 걷어내야 한다. 키 작은 나무는 인격과 교양이 낮아도 숲의 구조가 평등한 방향으로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교회 목사님들은 교회 직원보다 일반적으로 더 많이 배운 사람이고 세련되고 매너도 훌륭하고 교양도 많고 문화적 소양도 높다. 낮은 직급의 일꾼들은 모든 면에서 뒤진다. 목사는 숲 속의 키 큰 나무다. 우리 사회와 교회는 이 구조를 그대로 둔 체, 키 작은 나무를 계속 인격적·신앙적으로 훈련해서 숲에 적응하도록 만드는 것만 가르쳤다. 긍정적 사고방식과 행복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을 자아발견이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수 천년 인류 역사는 숲의 구조가 평등해지는 방향으로 변해왔다. 가끔 후퇴는 했지만 진행 방향은 바뀌지 않았다. 교회 역시 이런 상황인데 누구 편을 들어야겠는가? 공정하고 중립적인 입장은 비겁한 짓이다. 바늘만큼이라도 옳은 편을 들어야 한다.

교회 안에서는 노조가 아닌 새로운 방식의 갈등 해결 방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다.

그럼 소유의 문제를 교회에서 먼저 해결하라. 교회를 보라. 하루에 수천만 원을 버는 부자와 한 달에 50만 원을 버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소유의 문제를 그대로 둔 체, 똑같이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한다. 이런 부분에 대해 아무런 고민도 없다. 먼저 소유의 문제를 해결하면 노조 문제를 다르게 해결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세계 어느 나라도 노조에 대한 권리를 말하면서 '단 이 조항은 신앙공동체에는 적용하지 않는다'라고 한 나라가 없다. 신앙공동체에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옳다면 법에 포함이 되었을 것이다. 모든 노동자는 노동기본권을 가지는 것이다.

교회 노조가 교회 개혁을 촉발할 수 있을까.

 

그것이 노조의 본질이다. 전교조가 10년 동안 교사 처우 개선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참교육과 민주화 문제를 말했다. 공무원이 노조를 만들었지만 아직 처우 개선 문제를 말하지 않는다. 공직 사회의 부정·부패 추방을 주장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어떤 곳에 문제가 있어서 이를 고발하는 사람은 혼자만 손해를 보고 해직되었다. 속된 말로 그런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선 정의로운 공무원만 개피를 보고 끝난 것이다. 그러나 노조가 결성되면 이를 해결할 수 있다. 앞으로 교회 부패를 도저히 보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이 모여서 노조를 만들어 교회에 대항하게 될 것이다. 조직의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하는 방법을 노조가 제공하는 것이다. 노조가 300년 역사 동안 수행한 역할이다.

신기하게도 노동자들은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지라도 그 행동이 불의에 맞서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그래서 노동자의 권리를 신성한 것으로 정한 것이다. 어느 나라도 '자신의 개인적인 유익이 아닌 공적인 유익을 위해 노동 3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단서를 가진 나라는 없다.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의 이익을 위해 권리를 사용하면 이것이 사회의 공익이 되기 때문이다. 교회에도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다. 목회자들이 직원들에게 존경을 받는다면 노조가 덜 만들어질 것이다. 교회에 노조가 생길 수밖에 없게 된 상황을 반성하는 것이 먼저다.  

노조 간부가 귀족화되는 문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존재한다.

노조가 가진 역기능이 있다. 그러나 역기능은 순기능에 비해 무시해도 적을 정도로 작다. 우리사회는 수십 년 동안 역기능만을 세뇌 당한 사회였다. 노조가 그렇게 나쁘다면, 그렇게 노조를 혐오하는 힘 있는 사람들이 법과 제도를 만듦에도 불구하고 왜 노조를 인정했겠는가? 노조를 불법으로 하지 못하는 이유는 노조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유익이 크기 때문이다.

교회 직원들이 지역노조를 만들 때 여러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큰 교회가 작은 교회를 지원하는 일이 생길 것이다. 노조는 본래가 산별 노조이고 지역 노조이다. 기업별 노조는 한국만의 특수한 현상이다. 필리핀과 우리 나라만 가진 기형적인 구조다. 지역 노조를 만들어도 교섭을 하면서 충분히 조정이 된다. 재정 여유가 있는 교회에서 가난한 교회를 지원하고 교회공동체에 복지의 개념이 들어올 것이다. 큰 교회로서는 반대할 것이다. 교회 노조를 반대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논리를 개발할 것이다. 그러나 교회 노조는 대세이므로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교회에 노조가 안 된다는 것은 한국에서나 통하는 아주 무식한 말이다. 교회 부교역자들에게도 언젠가는 노조 설립 움직임이 생길 것이다. 부교역자는 버스를 타고 다니고 담임목사는 벤츠를 타는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목회자는 가장 가난한 사람이어야 한다. 내가 목회의 길을 선택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가 지금보다 훨씬 가난하게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은 노동자 수준으로는 살아도 된다. 그러나 목회자는 굉장히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 왜 레위인에게 재산을 주지 않았겠는가? 하나님 권위를 등에 업은 사람이 재산까지 가지면 반드시 부패하기 때문이다. 교회가 사회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사기다. 모든 권력은 부패한다는 가정을 갖는 것이 부패를 막는 길이다.

권위를 가진 사람은 자칫 타락할 수 있으므로 이를 막는 제도를 가진 사회는 더 깨끗해질 수 있다. 교회 노동자들이 작게나마 그런 역할을 할 것이다. 불이익을 감수하고 하지 않아도 되는 고생을 하는 노동자들에 의해 교회가 변할 것이다. 이런 움직임을 교회는 일반 사기업체와 똑같이 막을 것이다. 구사대와 보수적인 교인들을 동원할 지도 모른다. 노조가 생기면 교회 돈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게 된다. 이는 교회에서 이권을 누리던 사람들에게 엄청난 불이익이다. 앞으로 교회의 추악한 모습을 많이 보게 될 것이다.

2003년 04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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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기독교인에게 고함 - "예수도 '국가보안법' 희생자"

극우 기독교인에게 고함 - "예수도 '국가보안법' 희생자"

당신들은 '불온한 반항자' 예수의 친구가 아니다.

나는 예수쟁이이다. 왜 “크리스찬”이라고 말하지 않고 우정 이런 식의 약간은 자기비하적인 용어를 사용하는지 헤아려주었으면 좋겠다. 한국 기독교는 너무나 가진 자들의 편에 서게 되었다는 생각, 따라서 진실로 예수라고 하는 한 팔레스타인의 지독한 주변인이었던 기독교의 창시자의 정신으로부터 너무나 멀어졌다는 생각이 나로 하여금 이렇게 주변성을 자기 정체성 안에 통합해 넣는 용어를 일부러 사용하게 만드는 것이다. 스스로를 비천한 자리에 가져다 놓을 줄 모르는 자는 크리스찬이 아니다.

나는 교회 안에서 성장했다. 아버지는 스스로의 결단에 의거하여 자신을 옭죄던 봉건성을 기독교라는 각성의 형식으로 극복했던 1세대 기독교도의 아들이다. 내 아버지는 대한민국 최대의 교회 중 하나인 영락교회를 창건하신 열 분 장로님 중의 한 분이시다. 그뿐이 아니다. 집안에는 순교자도 한 분 계시고, 어머니 쪽으로도 내 가족이 기독교와 가지는 관계는 그 연원이 깊고 특별하다. 나는 청소년기의 대부분을


영락 교회 뜨락에서 보냈다. 교회는 나의 영혼의 깊은 터였다. 요컨대 나는 기독교의 딸이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내가 여전히 예수쟁이라고 생각한다. 그 말은 내가 예수를 깊이 사랑하고 나의 어리석음과 죄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나의 진정한 구원자로 여기고 따른다는 의미이다. 교회 뜨락에서 보낸 유년이 지나간 후, 갈등은 내 영혼 깊은 곳에서 신음처럼 치고 올라왔다. 나의 내면에서는 비참한 사회의 현실에 진정으로 눈을 주지 않는 대형교회의 무책임한 복음주의에 대한 불만이 서서히 싹터 올랐다. 그러나 부모님은 당신들이 전생애를 투입해 넣은 교회를 떠나지 못하셨다. 정치 문제로 이따금 당회장 목사님과 충돌하곤 하시던 내 아버지는 결과적으로는 복음주의에 소극적으로 안주하셨다. 당신이 당회를 그만두시는 정도에서 소극적으로 저항하시고 말았던 것이다. 딸은 당신의 갈등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딸은 아버지가 당신의 정신 안에 설정하신 울타리 너머로 아버지가 전해주시는 종교의 메시지를 알아차렸다. 딸은 아버지의 울타리 너머로 아주 넓은 지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덕택에 딸의 기독교적 이상은 명확한 비전을 확립하고 형성되었다. 아버지는 그것을 아셨던 것같다. 딸이 무엇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느 지점에서 기독교의 울타리를 벗어나기 시작하고 있는지 모두 이해하셨던 것 같다. 종교문제를 둘러싼 어머니와의 충돌은 늘 거칠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사도 바오로의 성경구절을 적은 조그만 종이쪽지를 울고 있는 내 책상 위에 아무 말 없이 올려놓고 나가시고는 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그렇게 내 안에 형성된 기독교적 이상은 결코 지금 한국 기독교가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 아니다. 예수 대신 미국을 섬기는 크리스찬이라니, 수많은 죄없는 젊은이들을 체제의 유지를 위해 감옥에 보내고 고문하고 죽이는 데 사용되던 악법을 폐지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극우단체와 한 몸이 되어 시청 앞에 나와서 울고불고 법석을 떠는 크리스찬이라니. 사랑이 아니라 증오에 의거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구하는 자가 크리스찬이라니. 그들은 나에게 이미 크리스찬이 아니다. 그들은 사제계급의 사주를 받아 바라바를 풀어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아우성쳐댔던 어리석은 유태의 군중과 다르지 않다.

극우 기독교인들이여, 대답하라. 대체 예수가 누구였던가. 예수는, 비유적으로 말하면, 바로 당신들이 그토록 증오하는 “빨갱이”였다. 무슨 말이냐고? 예수는 기존의 질서에 전격적으로 반기를 들었던 불온하기 짝이 없는 반항자였다. 그는 당대의 국가보안법 위반자였다. 예수는 국가보안법 때문에 희생되었다. 그는 종교적 의미에서는 당대의 지배계급이었던 유태의 사제들이 설정해놓은 율법의, 그리고 정치적 의미에서는 로마의 위정자들이 지정해놓은 법의 울타리를 파괴한 자였다. 그리고 그 때문에 잡혀 죽었다.

그는 인간이 인간인 바가 체제와 제도에 의거하여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이 신과 막바로 맺는 관계 안에서 구성된다는 것을 가르쳤다. 나는 그가 “나는 신의 아들”이라고 말했을 때, 그가 가르치려고 했던 것은 바로 인간 각자가 “신의 아들”이라는 메시지였다고 생각한다. 그는 본질적 층위에서 전격적으로 제도가 설정한 존재의 개념에 저항할 것을 가르쳤다. 그는 바깥에서 인간을 규정하는 외적 관념과 싸울 것을 명령했다.

그는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서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깊은 부름 외의 그 무엇에게도 귀기울이지 말라고 가르쳤다. 그는 자신을 찾아와 “아들”이라고 부르는 마리아를 향해 “누가 당신의 아들이냐?”라고 되물었다. 그는 자신을 가리켜 “선지자”라고 “엘리야”라고 부르는 제자들의 명명을 거부하고 “인간의 아들”이라고 명확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선언한다. 그러나 그 정체성은 “신의 아들”이라는 정체성과 충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선언은, 인간 각자가 인간 각자의 자리를 떠나지 않으면서도 깊은 내면의 부름과의 관계 안에서 “신의 아들”로 격상될 것을 주문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인간의 아들의 자리에서 신의 아들이 되어야 하는 자들이다.

예수는 사제계급과 정치가들이 그어준 존재의 금 안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그는 안식일을 조롱했다. 그에게 존재의 가치는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세상의 왕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에게 존재의 가치를 분양해주는 자는 세속의 제일인자인 로마의 황제가 아니라, 우주의 왕, 우주인 바로 그분, 존재의 무한 허공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는 부자들과 권력자들과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 그는 문둥이들, 병자들, 창녀들, 세리들, 가난한 어부들과 함께 지냈다.

그는 세상의 거지들과 함께 지냈고, 그 거지들이 유태의 사제들과 로마의 고위 정치인들만큼, 어쩌면 그들보다 더 높은 존재의 가치를 가진 자라는 것을 일깨워주었기 때문에, 체제의 종교적/세속적 울타리를 부수고 존재의 이상을 가르쳤기 때문에, 힘센 부자 사제들과 정치 권력자들의 손에 잡혀 죽었다. 부자들과 독재자를 위해 기도하고, 신도들로 하여금 세상에서 복을 받기 위해 진정한 천국을 잊게 만들고, 그들을 형이상학적으로 협박하여 일년에 수십억씩 긁어모아 제 배를 기름지게 하는 대형교회 목사들은 예수의 친구가 아니다.

예수는 국가보안법의 희생자였다. 그는 체제가 허용하지 않은 사상을 지닌 죄로 죽었다. 예수는 당대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혁명적인 사상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상범으로 잡혀 죽었다. 부활의 도그마는, 나에게는, 예수가 육체적으로 부활했다는 의미보다는, 체제가, 국가보안법이 무서워 웅크리고 있던 비겁한 제자들이 스스로 몸을 일으켜 예수의 길을 따라가는 결단을 내린 전격적인 신앙의 내면화가 이루어진 영적인 기적으로 여겨진다. 예수를 따르던 자들이 스스로 예수가 되기로 한 사건, 인간의, 제도의 아들 딸들이었던 자들이 신의 아들 딸이 되기 위해 몸을 일으킨 것이 나에게는 부활의 기적이다.

이 해석은 예수의 육체적인 부활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제자들은 어느 날 정말로 부활한 예수의 비전을 보았을 것이다. 사람의 인식이 지극한 경지에 다다를 때, 상징은 진실로 육화된 모습으로 한 인간의 내면 안에서 현현한다. 나는 예수의 에피파니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신비 경험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내면적 혁명을 이끌어내었기 때문에 의미를 가진다. 진정으로 제자들이 세상을 향해 떠나기 시작했던 일은 오순절, 즉 성령이 바람처럼 임하여 제자들의 혀를 강타했던 언어의 도래와 함께 일어났다. 따라서 오순절의 기적은 제자들 각자가 내면 깊은 곳에서 자신의 언어를 발견한 사건이다. 그날 제자들은 예수의 말을 자신의 말로 내면화하면서 스스로 비겁한 겁쟁이의 위상을 극복하고 진정으로 부활했던 것이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면 적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예수가 살아 돌아온다면, 무엇이라고 말할까? 본디오 빌라도의 법정에 잡혀간 예수는 “네가 왕이냐?”라고 묻는 로마 총독에게 “그것은 네 말이다”라고 응수한다. 그리고 예수는 침묵한다. 채찍질을 당하면서 능멸과 조롱을 당하면서 예수는 그 혹독한 심문 동안 내내 입을 열지 않았다. 예수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네가 너의 진정한 말을 발견하지 못하는 한, 너는 나의 존재 원리를 결코 이해할 수 없다고. 따라서 나는 너를 너의 무지 안에 던져놓는다고. 깨달음은 네가 너의 진정한 언어를 발견하지 못하는 한, 결코 너를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시청 앞에 모여서 세상의 왕인 미국대통령을 향해 찬가를 불러대는 크리스찬들, 인공기를 태우며 사상이 다르다는 한 가지 이유로 동족을 증오하며 어떤 야만적 트랜스 상태에 빠져드는 소위 예수의 신도들을 향해 예수는 다시 그렇게 말할 것 같다.

“그것은 네 말이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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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제국주의 선교방식을 지양하여 협력선교의 시대로 가자

제목 : 이제는 제국주의 선교방식을 지양하여 협력선교의 시대로 가자
(부제 : 폭력과 대처하는 화해, 평화선교에 대한 한국교회의 전문성?)

장창원목사(다솜교회 협동목사)

(들어가는 말)

세계교회는 전쟁과 재난으로 패망하는 지구의 현실을 직시하고 "폭력극복 10년"의 주제를 발표하였다. 이것은 우리민족이 통일되기를 염원하며 기도하듯이 죽어 가는 지구를 살리는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인간의 이기심을 반성하며 어둠의 요소들을 반대하고, 생명을 살리며 죽어 가는 지구를 구원하고 부활하여 풍성케 하시려는 주님의 부르심에 화답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류를 파괴하고 우리들을 죽이는 전쟁과 폭력은 세계곳곳에서 오늘도 계속되고 개발의 명목으로 자본과 사상을 도구화하며 지구와 영혼이 황폐하게 파괴되고 있다.

지난 2001년 1년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PCK)는 종족의 화해와 평화를 만드는 협력선교를 위하여 아프리카 르완다장로교 총회(E.P.R)에 단기선교사를 파송하였다. 세계개혁교회 연맹(WARC)의 중계 역할로 전쟁의 기운이 가시지 않고 있는 중앙아프리카에서 협력선교사는 한국의 1950-3년 전쟁 후 산업화와 민주화과정의 특수한 상황에서 발전된 민중교회선교연합의 전문성을 연결하여 살릴 수 있는 역할의 모색을 위해서 이다. 1999년 선교사를 추천하였고 2년여의, 인선과정을 거쳐서 일하는예수회 노동목사를 단기선교사로 파송하였다. 그리고 1년간 세계개혁교회가 협력하여 계획하고 설립하려는 "평화교육센터"의 건립과 운영의 기초적 현지조사와 타당성을 검토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르완다는 물자와 식량이 부족한 반군들이 수시로 밀림 주변국도로 진출하여 지나가는 수송차량을 습격하여 강탈하고 반항하는 사람들을 죽이는 상황, 무장한 정부군이 도로에 배치되어 있지만 야간에는 역부족으로 그들이 활보한다. 결국 내전이 그친 상태가 아닌 중앙아프리카의 상황이다. 여러 가지의 복합적인 세계의 정치경제 흐름과 아프리카의 전통적인 문화의 독특성 이해 없이는 동양에서 가장 먼 나라에 살고있는 그들의 삶과 현실문제를 접근 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르완다의 모든 것을 배운다는 낮은 자세로 입국하여 생활하였다. 한국전쟁 후의 6-70년대 공비출현을 연상하게 하는 휴전선이 보이지 않는 분단과 갈등의 현장이었다.

지난 1년간 르완다의 키갈리와 부타레를 중심으로 살면서 한국 협력선교사의 역할과 전망을 돌아보며 선교의 타당성을 조사하였다. 한국의 1950년 전쟁경험과 분단 그후 민중선교의 경험이 세계사회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협력선교의 전문성으로 발전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몸 말)

르완다에는 아름다운 호수와 세계적인 산이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스위스라고 부르는 지리, 환경적인 것을 르완다의 삶과 발전의 계기로 삶을 수 없을까?

중앙아프리카 르완다와 콩고의 접경지역에는 아직 살아있는 2개의 활화산이 있다. 4.507M의 화산지역 깊은 산 속 밀림에는 94년 르완다의 시민전쟁(제노싸이드)의 패전한 군인들이 들어가서 게릴라전을 하며 살고 있는 곳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호수가 산 주변에 둘러 쌓여있고 다이아몬드 등의 희귀한 천연자원을 간직하고 세계적인 보호종으로 고릴라가 살고있는 깊은 산속, 콩고와 부른디 등 주변 국가의 반군들이 몰려있는 접경지역이다. 언제 게릴라전이 벌어질지 모르는 위험한 지역이다. 지난 2002년 1월17일 중앙 아프리카의 콩고 의 제2수도라는 고마지역에서는 화산이 폭팔 하여 많은 사람이 용암으로 화재가 나서 죽고 피난을 가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처음 출발은 상식적인 기초지식을 가지고 시작하니 여러 가지가 어렵게 생각되어 졌다. 르완다는 아프리카의 중앙오지 세계 최 극빈국, 인구밀도가 높고, 언어는 불어, 르완다어, 영어를 사용하며 일부다처제로 생활이 문란하고, 에이스 감열률이 세계에서 높은 나라. 미개하여 좋지 않은 여러 가지 상황을 듣고, 대비하였다.

짧은 1년의 단기협력선교 이지만, 여러 가지 계획하고 목표했던 선교사역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예수님의 가난한 민중에 대한 사랑의 열정이, 넉넉하게 르완다의 단기협력선교생활을 마치게 하셨다. 고국과 가족을 떠나서 혼자 살아간 1년 이제 세계가 한가족이라는 증거를 체감하는 생각하지 못한 꿈같은 여러 가지 축복을 덤으로 받고 돌아왔다.

낮에도 눈만 빛이 나는 온통 검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아프리카 대륙,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어느 곳 누구에게나 동일하시고, 생명을 살리고 풍성케 하신다는 복음으로 우리 인류를 구원하려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이웃사랑과 하나님사랑의 큰 계명의 실천의지로 갈급한 심령이 되어 르완다로 갔다.

오랜 세월 협력하는 한국교회의 외국선교사들은, 우리민족이 어려울 때 친구가 되신 예수님의 사랑이, 지구의 다른 친구가 어려움에 처할 때 함께 살아가며 돕는 것이 이웃사랑의 본질이다. 땅 끝까지 전파하며 증언하라 하신 복음의 말씀에 실천으로 여기고, 그 동안 우리도 너희에게 받은 사랑의 빚을 갚겠다는 기도를 이루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가 한국전쟁을 치르며 어려웠던 시절, 그리고 지금도 분단되어있는 조국의 현실을 통일하려는 우리들의 신앙이 세계 교회 앞에 평화와 화해의 전문적인 선교영역으로 쓰임 받는 계기가 되었다..

지구와 인류를 살리고 풍성케 하는 일은 천지창조 때 우리들에게 주신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이다. 물질, 명예, 권력의 욕심과 허황된 꿈에 사로잡혀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오늘도 지구를 부수고 파괴하며 홍수와 이상기온의 날씨를 만들고, 테러와 살인을 서슴지 않는 전쟁을 하고 있다. 이미 아름다운 자연과 세계환경을 허락하였고 지금도 무한한 자원과 자연환경은 무한하다. 바다를 비롯한 여러 환경들 욕심 없이 보존하며 하나님을 의지할 때, 우리는 평화의 낙원이 이루어지고 화해와 사랑의 사회가 가능하도록 하라하신 우리들에게 맡겨 주신 사명이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다시 되새겨 본다. 가난한자, 애통하는 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 아프리카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전쟁만 없으면 잘 살 수 있다.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행복을 찾으며 살아가려는 중심을 가진 여러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보면서 행복의 척도를 다시 돌아본다. 어렵고 가난한 아프리카의 현실이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과 행복을 자연환경 속에서 호수, 산, 들, 날씨, 인간성의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지구와 세계의 잠재력의 풍성함을 토대로 인류가 화해하고 사랑하면 미래를 희망과 축복이 넘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전국민의 70% 카토릭 10% 개신교 10% 무슬림 10% 무속자연신앙 기독교국가로서 20만명의 장로교회 총회본부에서 선교사무데스크를 마련하였다. 시내의 거리에서 할렐루야를 외치면 누구나 아멘 하며 웃음으로 회답하며 인사하는 기독교 국가이다. 1910년 독일장로교회 선교, 개척 전통을 이어받아서 현재 16개 노회 90명의 목사(10명 여성), 20만의 성도가 지교회를 중심으로 한 지역교회 개념의 아프리카의 독특한 열정적 신앙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일예배는 2-3시간의 찬송과 춤을 중심으로 한 예배이며 장로교의 전통을 지키려 한다.

지난해 5월에 장로교 목사들의 키갈리에 모여서 정책세미나를 하는 곳에 참석했습니다. 주된 논의사항이 장로교회는 르완다의 어려운 경제현실을 극복하는 일과 에이스, 과부, 고아 문제를 비롯한 보건 교육의 열악한 현실에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여 함께 대처하기로 결의하는 모습을 보았다. 르완다장로교회는 2001년 12월 10-13일까지 키부예호숫가의 아름다운 베다니홀에서 총대의원 약 200명이 모여서 "40차 총회를 열었다. 총회의 주제말씀은 요한 복음 10장 10절의 "도둑은 양을 훔쳐다가 죽여서 없애려고 오지만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케 하려고 왔다"이다. 총회에서는 새로운 총회장으로 부타레신학교의 학장을 선출하였고, 전임 총회장 안델슨 가라마가목사는 세계개혁교회 연맹의 부회장으로 아프리카를 대표하여 대외적인 업무를 발전시키며 키갈리에 장로교 종합대학을 설립하는 계획을 추진하기로 하였다.

이번 르완다의 단기선교를 통하여 선교현지의 상황에 맞는 전문적인 선교가 필요한 시기임을 확신하였다. 역사와 전통을 중시하여 기독교 국가의 현 상황이해와 문화를 이해하고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며 그 동안 물량공세를 앞세운 제국주의적인 문화 침탈방식의 선교는 중단하여야 한다. 세계개혁교회연맹은 남남협력선교로 양국교회의 파트너 쉽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선교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우리는 아프리카와 르완다의 어려운 역사현실에 동참하며 그들의 사회를 배우고 이해하고 앞으로 양 국가와 교회의 공동관심사를 프로젝트로 "평화, 화해, 통일교육과 청소년선교 센터"를 건설할 방향을 타진하고 의사를 전달하였다.

이제는 제국주의 선교방식을 지향하여 협력선교의 시대로 가야한다. 우리에게 알맞은 협력선교의 방법과 교훈으로 폭력에 대처하는 화해, 평화, 통일의 선교에 대한 한국교회의 전문성을 살려야 한다. 르완다 당신들이 종족간에 100만 명을 죽이는 전쟁을 하였다면, 우리 민족은 200만을 죽이고 지금도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다고 전하며, 예수의 생명과 부활의 역사를 우리가 함께 믿고 실천하며 살아간다면 희망과 평화를 만들고 누릴 수 있다는 말씀의 증거를 하였다.


간단한 르완다역사 이해

-아프리카는 고대 사회의 문명의 발상지 중 한군데로 오랜 역사적 뿌리
-기원전2000년전부터 트와(피그미)족 수렵/채취자 살림거주 하며 1%
-AD1.000년경 농경사회건설하며 삶 거주지에 후투족의 이동하여 살기시작하며
-AD1.500년경 유목민인 투치족이 이동과 추장족 후견과 피후견으로 삶
-1880년대 이후 독일의 통치로 신분, 대리통치
1920년대 이후 벨지움의 식민지국가로 소수족의 대리통치와 분화정책, 불란서 문화, 언어사용, 사회/신분제도 분리강화, 식민지체제 경제 국가
1960년대 국민투표정부의 사회주의국가 노선과 평등사회 추구 -토지공개념 등 사회문화형태. 이전 소수지배족의 비협조와 내전 4 -5차례, 30여 년 이상 유엔 난민 지원국으로 불안한 삶의 자리를 계속함. 중국과 제삼세계동맹관계참여
1991년 우루과이라운드로 주요산업 해체로 경제적 위기, 아이엠에프 통치 시작, 정치적인 투쟁
1994년 세계적인 참사, 제노사이드와 전쟁복구와 생존을 위한 노력들이 계속되고 있다.
2001년 7-80%의 국민들 교과서 없이 공부하는 학생들, 신발 없이 살아가는 자연인의 삶.
예장 목회자총회의 주제와 교단사업의 초점은 국가경제 회복과 보건사업
-한국과 교류는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들이 60년대 독립하고 제3세계 연대국가로 북한과 중국과의 밀접한 관계를 갖고있음. 70년대 남북한 공동수교, 그리고 80년대 북한군사고문단 파견으로 남한 대사관 철수, 90년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북한대사관 철수. 지역의 특성과


삶의 자리를 통하여 르완다의 현실을 돌아보면

-지역적 특성 : 르완다는 최근 화산 폭발한 콩고 고마지역(4.300m)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기세니와 루행게리 지역은 활화산과 키브예호가 인접해있는 한 중앙아프리카 적도부근의 고원지역입니다. 해발 평균 1000m이상의 고원지대에서 키갈리를 수도로 인접국 우간다, 케냐, 탄자니아, 부른디, 콩고 등의 나라들에 감싸여 어울려서 살아가는 인구 약 800만 명으로 우리 나라의 10/1에 면적의 작은 국가입니다. -농,목축업을 중심으로 하는 1차 산업과 도시를 중심으로 한 영세상업으로 생산된 제품보다 수입유통업이 많다. 노동조합에 가입되어있는 조직노동자는 8만 명이고 대다수의 국민이 농업에 치중한다.
-일용노동자의 하루임금이 500RF(노동법800프랑, 한국1,500원)입니다. 주요산업은 차와 커피 경작하여 수출하고 공업은 자동차 수리업, 소규모 건설과 제조업이며 인도를 비롯한 수입상들과 외국의 비정부협력기구들이 아직도 많이 들어와 활동을 하고 있다.
-통신, 전기, 수도는 도시지역을 중심으로 발달되어있고 70%농민들은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일반국민들은 라디오를 듣는다.
-한국인들은 어린이 포함하여 약 20여명으로 월드비젼에서 독립한 이웃사랑회와 선교사 한
가정 그리고 소규모 제조업체와 건설업체가 한군데씩 들어와 있으며, 약 15년 아프리카 생
활 속에 6년째 르완다에서 살고있는 한 가정이 기술학교를 시작하였다.
-중국도로공사 르완다 지사장 한가정과 미국대사관 직원으로 한국계 미국인 여성 한 가정
이 살고 있다. "키갈리 100만을 비롯하여 도시지역에 인구가 집중하고 실업자가 많아서 밥,
그릇을 덜며 가사노동을 돕는 사람이 많고 빈부격차가 심하여 도시 집에는 경비와 가사노동
자가 많다.
-날씨와 문화 : 평균 21-3도의 온도이며, 땀이 흘러도 기분이 상쾌한 고원지대 특유의 날
씨이며 한낮 2시간의 더위와 우리의 봄, 여름, 가을, 겨울처럼 대우기 -대건기-소우기-소건
기의 계절 변화 속에 2-3모작이 가능한 토지와 환경으로 사철 푸른 나무와 꽃이 만발하여
있고 새소리가 그침 없고 아침과 저녁, 그리고 밤하늘의 별이 아름다운 자연환경이다.
-전쟁만 없으면 굶어죽을 염려가 없는 하늘아래 낙원 같은 곳입니다. 보석을 돌처럼 알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원시적이지만 평화롭게 살아가는 르완다를 비롯한 중앙 아프리카에
1800년대부터 서구의 사람들이 들어오고 식민지를 하며 사람과 보석들을 빼앗아 가면서 비
극은 시작된다.
-총회에 보고서를 계속 보내서 기초적인 르완다의 아름다운 상황을 이해하시리라 생각하지
만, 총회의 간사는 르완다의 아름다움보다는 현실의 어려움에 대하여 집중하여 보고를 해야
교회의 많은 관심과 지원이 계속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


간단한 르완다 단기선교사의 생활 이야기

-4주 동안 가족을 떠나 르완다의 난민촌을 방문한 프랑스 봉사단체 여성이 물었습니다? 1
년은 길고 가족들에게 무리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우리가족의 사랑은 이야기, 우리민족의
분단이야기, 인류의 화해와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가족들 사랑이야기를 한다.

-몸무게 100kg으로 출국하여 하루 점심을 중심으로 먹고, 아침과 저녁은 간단히 차와 간식
을 하며 10개월만에 약 8kg가 빠졌습니다. 그러나 10개월만에 말라리아가 걸려서 2주간 치
료를 하며 한국기업체의 후원으로 한국음식을 먹으며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돌아와서 보
니 98kg입니다. 살 빼기는 힘들고 살찌기는 쉬운 것 같다.

-수도 키갈리 110만 유동인구와 세계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나라. 800만 르완다의 국가현실
과 역사는 아름다운 키부예호수와 활화산과 보석, 그리고 동물 등의 자원을 착취하는 강대
국의 식민정책으로 일관한다.

-중앙 아프리카의 대부분의 도로는 중국도로공사가 건설하였다. 세계 극빈국 중의 한곳으로
유엔의 교육 집중지원대상국 이다. 아프리카의 자동차는 일본제 중고자동차가 다수이다.

-주식은 감자. 콩, 바나나, 고구마, 야채스프, 카사바(마뇩),사탕수수, 고기(양,들소,닭 , 돼지)

-남아공 2주간 아프리카 선임 선교사와 생활하며 교육, 훈련을 받음: 1년은 탐색기간, 3년은
자리잡는 시기, 10년은 살아야 선교의 활동 영역 구축하고 20년이 되어야 목적했던 사업을
실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집은 르완다교회에서 제공하고 식사와 생활은 한국교회에서 제공한다는 약속에 따라서 부
임하여 먼저 키갈리에서 장로교회 교회본부 게스트하우스 1개월 생활하며 현지적응을 합니
다. 아침, 저녁으로 조깅과 산책하고 지리를 익힙니다.

-숙소로 수도 중심부의 카토릭 성바울 게스트 하우스 4개월을 생활하였다.

-7월 제7차 아프리카, 유럽 청소년 캠프를 키갈리와 키브예에서 1개월 보내며 봉사활동과
문화교류를 합니다.

-휴가철인 아프리카 케냐, 탄자니아, 우간다, 브른디, 콩고 선교지 방문여행 2주와 유럽(독
일, 영국, 노르웨이)선교사 집에서 2주간 보내며 8월을 보낸다.

-브타레 신학교 3개월은 교육과 문화의 중심 부타레지역의 개신교신학교에서 생활하며 아
프리카 그 지역에서 유명한 부타레 대학과 박물관, 왕궁 등을 방문하고 역사와 문화를 돌아
보며 묵상과 정리를 하며 지역교회를 순회하는 과학신학과 자연신학의 비교를 할 수 있는
기간입니다. 신학교에서는 6차례의 특강과 컴퓨터 교육을 했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교육환경은 인터넷 1시간 이용료는 노동자 하루 일당 500RF(한국1,500
원)이다.

-말라리아를 걸리고 한국인 건설업체의 모델하우스에서 핸드백 공장을 운영하는 한국인의
간호를 받으며 1개월을 살았다. 한국기업체의 르완다평가는 거리와 문화 등의 관계로 경제
성 없는 장사

-떠나오기 전 키갈리 이사노게스트하우스를 중심으로 생활하며 활동을 정리하고 총회 등,
여러 단체들과 아쉬운 석별의 정을 나누며 1개월을 살았다.


(나오는 말)

오랜 시간 세계개혁교회연맹은 힘을 합쳐서 분단된 한국의 통일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
그리고 창조질서보전과, 경건과 절제를 위해서, 에큐메니칼 선교를 위하여 등 등 의 기도제
목을 정하여 함께 기도하여 왔습니다. 최근 2001년부터는 앞으로의 10년간을 "폭력 극복"의
해로 정하고 구체적인 기도와 행동을 시작하였다. 지금 세계는 극심한 폭력으로 절대위기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군사적인 핵전쟁을 비롯한 종교, 종족, 경제, 전쟁 등 세계, 국가적인
폭력과 사회, 가정, 성폭력 등을 비롯하여 지구를 멸망에 이르게 하는 환경파괴의 폭력까지
위험한 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선교는 세계교회 선교사의 모델적인 협력선교의 시작이다. 세계적으
로 한국이 새롭게 부흥한 교회의 현실을 기반으로 하여 오늘도 폭력과 전쟁으로 죽음의 그
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웃들을 위하여 구원하고 살리며 풍성하게 하는 사역이다. 어려움
과 무거운 현실을 민중들이 협력하여서 민족화해, 평화와 통일을 위한 교회의 사명을 다하
는 것이다.

협력선교는 어려움에 처한 이들이 자립하고 자애하며 자주적으로 교회와 나라를 세우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현장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마음의 문을 열고 고난의 역사 한가운
데 마르지 않을 영혼의 우물을 파주는 일이다. 인류가 계속하여 함께 좋은 친구로 살아가며
한국의 분단과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 아직도 전쟁의 기운에 휩싸여있는 아프리카 르완다
의 평화협력 선교사를 파송하여 어려움에 처한 르완다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게 하시는 하나
님께 감사드린다.

1년간의 선교사역을 통하여 앞으로 한국 산업선교와 민중교회의 역사적 선교 교훈을 함
께 공유하고 르완다의 어려운 식민지, 내전 후 가난과 전쟁의 공포로부터 해방되는 영성을
갖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침탈과 전쟁으로 침체되어있는 르완다 민중들의 정신과 영혼을
살리고 자립심을 키울 수 있는 의식화의 교육을 통하여 기백을 살리며 고유한 전통과 문화
를 살리며 의식을 깨우쳐서 르완다교회가 추진하는 경제회복과 보건대책사업을 함께 할 수
있도록 하자. 구체적으로 최근 르완다교회가 추진하는 기독교 대학 설립사업에 참여하고 대
학 내에 평화, 화해, 통일 연구소를 함께 설립하며 운영하고, 그 동안 세계개혁교회연맹이
부타레 지역에 추진하였던 평화 청소년 교육쎈타를 함께 설립하여 운영하도록 기도하자.

(요한 10장 7- 10절) "도둑은 양을 훔쳐다가 죽여서 없애려고 오지만 나는 양들이 생명
을 얻고 더 얻어 풍성케 하려고 왔다"(1-10절 묵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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