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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죽이기

모기할아버지가 산책을 나가려고 한다.

모기아들이 말한다.

"아버지, 너무 늦지 않게 오세요."

그러자 모기할아버지 왈 

"모진 놈 만나면 얻어터져 저 세상 사람이 될 거이고, 그렇지 않으면 한 상 푸짐히 받고 일찍 오것제"

 

그저께 밤에 내 방에서 잠들려고 하는데, 모기 한 마리가 귓가에서 자꾸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이미 닫혀버린 눈꺼풀이 너무 무거워서 한 손으로 휙휙 내저어 보았다. 잠시 잠잠해지는 듯 하더만은, 영락없이 모기는 다시 나의 오만가지 신경을 건드린다. 단지 한 마리일 뿐인데 이다지 날 괴롭게 한단 말인가.

피곤에 푹 빠진 몸뚱아리의 마지막 저항이었다! 닫혀버린 눈꺼풀의 마지막 소망이었다! 벌떡 일어나서 형광등을 켜고는 뿌리는 모기약을 집어 들고 사정없이 허공을 향해 무차별 살포를 시작했다. 혹 요리조리 빠져나갔을까봐 방 구석구석, 형광등 주변, 심지어 커텐 뒤에까지 철저히 색출하여 살포했다.

이제 난 이 세상 최고의 잠자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흐뭇하기 그지 없었다. 적과의 전쟁을 한바탕 치르고 난 후, 승자의 갈증을 풀기 위해서 부엌으로 가서 냉장고 속의 시원한 물을 벌컥벌컥 들이 마시고서는 내 방으로 돌아왔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서 이부자리에 들어가면서 확인해 보았다...방바닥에 추락하여 생을 마감한 모기 한 마리...결국 내가 해냈구나 ㅎㅎㅎ....라는 자부심은 잠깐뿐....

방바닥에는 좁쌀만한 까만 것들이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는 것이 아닌가. 가만히 가까이 들여다보니, 아까 나의 무차별 살포 속에서 희생당한 하루살이들이었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네 마리....내 방에 하루살이가 이렇게 있었나라는 생각은 잠깐 스쳐지나갈 뿐,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했는가하는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모기 한 마리 잡자고 아무 피해도 끼치지 않는 하루살이까지 내가 몰살을 시킨 것이 아닌가...이 세상에 하나의 생명으로 태어나 스스로 열심히 살아가는 곤충계의 민중들을 아무 이유없이 죽여 버린 것이다....

오직 모기에게 한 방 물리지 않기 위하여....

더더욱 모기를 죽이려는 나의 행동은 무엇인가? 모기를 내쫓는 것이 아니라 모기를 굳이 '죽여'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에궁....인간 이외에 모든 것을 '하등'으로 취급하는 발상이 스스럼없이 '인간'인 나를 위해 저들을 죽이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도록 한 것은 아닌지...

인간중심의 사고 방식....또 다른 종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내 방에 있다가 억압의 폭력 속에 비명횡사한 "고 곤충계의 민중"들을 진심으로 애도하며, 그네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 위하여 내 손가락 끝의 폭력까지 털어버리겠다라고...생각한다....

올 여름은 그래서 쉽지 않게 넘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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