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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3번의 괴로운 즐거움

가스불이든 숯불이든 개의치 않는다. 후라이팬이든 솥뚜껑이든 거부하지 않는다. 동쪽으로는 버섯과 함께, 서쪽으로는 양파와 더불어, 남쪽으로는 마늘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북쪽으로는 신김치를 허락한다. 물기를 머금은 새파란 상추에 싸여서, 쓴 맛이 더욱 매력적인 소주와 함께 나의 오감을 만족시키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그 향기는 천 리 밖 멍멍이를 혼미하게 만들고, 그 맛은 이 땅의 사천만 민중의 혀를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그.이.름.영.원.하.라.삼! 겹! 살!!

 

나에게 하루 3끼를 먹어도 질리지 않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난 "소주와 삼겹살"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아니 말할 수 있.었.다.

난 삽겹살 마니아라고 스스로 자부한다. 아니 자부했.었.다.

느닷없이 이 문장을 접하기 전에는 말이다.

 

"채식은 저항할 수 없는 존재들에 대한 억압과 폭력을 거부하는 것의 실천이다"

 

무진장 고민되었다....

난 채식은 건강에 좋다는 웰빙 문화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었고, 좀 더 생각해 보았다고 치자면 죽임을 당하는 동물들에 대한 측은지심의 동정에서 나온 마지못한 선택 정도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나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것은 "내가 안 먹는다고 어차피 달라질 것도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렇잖은가?

정육점 진열대 위에 빨간색의 조명을 맘껏 받으며 놓여져 있는 고깃덩어리...그저 고깃덩어리일뿐 그것의 과거를 굳이 내가 알아야 할 이유도 없을 뿐더러 또 알아서 무엇하겠는가 말이다. 고기도 하나의 음식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고럼~~~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고 말하니 참 난감할 수밖에....

단지 인간의 식욕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태어나고 사육되어 도살되는 것이 운명인 존재들...

존재의 존엄함을 단 한 순간도 인정받지 못하고, 삶 자체가 죽음인 존재들...

자신의 삶, 생존권을 위해 단 한 번의 저항조차 허락되지 않는 망각의 존재들....

 

사실 그러한 존재가 동물들만의 이야기겠는가....존재를 억압하는 폭력, 그 앞에 노출되어 있는 또 다른 존재들.......

 

그 존재를 모른 척하면서 나의 식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참으로 애쓰는 나의 혓바닥과 이빨들 사이의 공조.......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머릿 속으로는 수없이 되뇌이면서....망각된 존재의 덩어리를 반복해서 잘게 으깨어 씹고 있는 식욕....이 모순은 무엇일까....

 

에라....그래....알고 있는 만큼만 실천하는 것도 얼마나 어려운 일이냐....모르면 모를까 알아 버린 이상 모른 척 할 수는 없잖아.....저항할 수 없는 존재들에 대한 억압과 폭력을 거부하는 것을 하루 3번만 실천하면 된다잖아......에구.....쉽진 않을텐데....ㅠㅠ

잘가거라...삼겹살아ㅠㅠ 이별의 아픔은 눈물이 되어 온 세상을 적시고, 찢어지는 마음은 공허함으로 바람이 숭숭 휘젓고 다니지만....어쩌랴....이것이 이 세상에서 너와의 운명인 것을...나를 탓하거라....나를 용서하거라....잘가라....삼겹살아...엉엉엉ㅠㅠㅠㅠ

 

어느덧 그를 잊은 지 3개월....매 끼니마다 하루 3번...그를 생각해 본다....나와 헤어져 다른 사람 만나서 자신을 불태우는 삼.겹.살.

지나가다 스치는 수많은 광고판의 그를 바라보며, 오늘도 하루 3번...괴로운 즐거움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덕분에 수많은 채소 친구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특히, 두부 친구와 청국장 친구와 더욱 두터워진 정을 새삼 고맙게 생각한다.....이별은 또 다른 만남을 위한 것이라던가....

 

후기) 아직 생선 친구들과 해산물 친구들과 이별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에궁...여기까지가 나의 한계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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