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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침이다. 교문지도를 해야 하니까 서둘러야겠다. 아참! 오늘은 학교 전체 운동장 조회가 있는 날이잖아.

   아침 7시에 학교에 도착했다. 오늘 수업자료가 들어 있는 가방을 내 책상에 내려놓고 교문으로 나간다. 난 학생생활지도 담당 교사이다. 내 손에는 이미 나에게 잘 길들여진 단단한 몽둥이가 들려져 있다. 교문에서부터 학교 건물로 이어지는 진입로 가운데에 자리를 잡았다. 제대로 봐야 한다. 등교하는 아이들의 머리 모양, 교복 상태, 운동화 종류, 왼쪽 가슴에 부착되어 있어야 하는 이름표, 남학생의 넥타이와 여학생의 리본 착용 여부 등등 이 모든 걸 한 눈에 확인하고, 지나가는 아이들 개개인을 모두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등교하는 아이들이 왼쪽으로 일렬을 지으며 들어온다. “너! 머리”, “너! 운동화”, “너! 야! 너말이야! 왜 못들은 척 하고 지나가!! 엉?”.....색출된 아이들은 진입로 오른쪽에 손들고 서 있게 한다.

   아침 7시 50분. 등교 시간이 끝났다. 이제부터는 모두 지각생이다. 지각생들은 진입로 오른쪽에 일렬로 “엎드려 뻗쳐”를 시킨다. “인문계 고등학생들이 제 정신이냐?” “넌 또 지각이야?” 지각생들은 엉덩이를 맞는다. 잘 부러지지 않게 다듬어 놓은 몽둥이로 초범과 재범 등을 가려내어 엉덩이를 때린다. 어쩔 수 없다. 이건 벌이니까. 지각했으니 정신을 차리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해서라도 아이들을 바로 잡는 것이 결국 아이들을 위한 것이다. 아직 아이들은 성인이 아니기 때문에 때려서라도 가르쳐야 한다. 이건 교사의 역할이자 의무이다.

   아침 9시. 학교 전체 운동장 조회가 시작된다. 국기에 대하여 경례!! 저 뒤에서 히히덕거리는 아이들이 눈에 보인다. 아이들 사이를 가로질러 가서 정강이를 냅다 걷어찬다. “지금 국기에 대한 경례하는 거 몰라?” 교장선생님의 훈화 말씀 중이다. 아이들의 줄이 흐트러지고 여기저기서 잡담이다. 아이들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며 정강이 차기, 뒤통수 치기, 꿀밤주기 등의 온갖 잡기를 동원해서 ‘질서’를 잡는다.

   수업이 시작되었다. “반장, 시작하자” “차렷! 선생님께 대하여 경례!”......

 

   교사 1년차 때 나의 모습이다. 덕분에 나는 1년 내내 1교시 수업이 시작하기 전에 컵라면으로 아침을 때울 수밖에 없었다.


   군대 시절에 많이 맞았다. 군기를 잡기 위해, 부대가 원할히 움직이게 하기 위해, 상명하복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 많이 맞았다. 그 때 난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라고 느꼈다. 인간으로서의 존중이 아니라 오로지 계급에 의해 명령과 복종만이 존재하는 그 곳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가하는 폭력을 보고 치를 떨었다. 난 결코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

   그러나 이미 나에게는 그 폭력이 내면화되어 있었다. 당연히 혹은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 각인시키면서 아이들에게 똑같은 폭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교사가 된 후 1년을 지나며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인간의 모습을 내가 닮아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내 손에서 몽둥이를 놓은 것은 그 1년 후 상당한 시간이 더 흐른 뒤였다. 손에서 몽둥이를 놓은 후에 내가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랐기 때문이다. 단지 ‘내’가 ‘불안’했기 때문이다.


   손에서 몽둥이를 놓은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나에게 하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몽둥이를 들지 않은 손과 입과 마음에서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또 다른 형태의 폭력들이 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나에게 말이다.

 

   여학생들에게 여자다움을, 남학생들에게 남자다움을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에서 남녀의 성별 역할을 고정시킴으로써 성적 차별을 당연하게 여기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많은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있는 교무실에서 꾸중을 듣고 있는 아이의 자존심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잘못을 해서 교무실에 불려와 교사 앞에서 무릎꿇고 이야기 듣는 아이의 수치심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프다는 아이에게 거짓말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되돌아가는 모습에서 신뢰가 무너지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똑같은 머리모양과 똑같은 복장에서 개인은 존재하지 않는 전체주의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교장선생님께 대하여 경례! 라고 힘있게 말하는 마이크 소리에서 군대식 복종 문화가 자리잡은 학교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만든 것도 아닌 학생두발규정에 의해 머리가 잘려 나가는 아이들의 인권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국기에 대한 경례라는 구호에 모두가 국기만을 바라보는 모습에서 무조건적 충성을 요구하는 국가주의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러한 폭력은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왜냐면 지금의 학교는 ‘이 사회’를 ‘그대로’ 가르치는 곳이기 때문이다. 가진 자, 남성, 성인, 이성애자, 비장애인 중심의 획일화된 가치관과 그 가치관이 반영된 제도가 ‘상식이고 정상’이라고 말하는, 단지 차이일 뿐인 것을 차별하는 이 사회를 그대로 가르치고 있다. 소외되어 있는 약자(없는 자, 여성, 청소년, 성적소수자, 장애인)의 권리는 사회 전체를 위해 희생될 수 있다는, 전체를 위한 개인의 희생이 ‘미덕’이고 ‘우선’이라고 말하는 이 사회를 그대로 가르치고 있다. 그렇기에 말로는 다양성을 말하지만 사실은 ‘획일화된 상식’이 교실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몽둥이만 들지 않았을 뿐, 획일화된 상식의 폭력이 이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 했던가. 아마 눈에 보이지 않았다면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학교장의 말 한마디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지금 학교 구조 속에서 일개 교사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몇 명의 학생이 남았는지가 교사의 학생지도 능력으로 이해되는, 입시지옥 학교 현실에서 일개 교사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아이들에게 인권은 사치가 되어버린, 학교의 몰인권적 문화 속에서 일개 교사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스스로에 대한 좌절과 무기력함이 부끄러운 시간들이었다.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내가 ‘그렇게 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출발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나는 무엇으로 아이들과 함께 할 것인가? 학교가 단순히 지식을 주입시키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하기에 나는 삶으로 아이들과 함께 해야 한다고 믿는다. 나의 삶에서 차이를 차별하지 않고, 나의 삶이 획일적 상식이 아니라 다양성 그 자체를 인정하고, 나의 말과 행동이 그 어떤 대상에게도 폭력적이지 않도록 하는 것으로부터 말이다.

 

   그래서 나는 하나만을 강요하는 모든 경향성을 반대한다. 그 경향성은 ‘전체주의’로 귀결될 것이다. 그 전체주의는 결국 모두에게 개인의 삶의 부정하는 억압과 폭력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 경향성은 ‘인간’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획일화된 문화와 규범에 반대한다.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개인과 존재의 다양성을 말살하기 때문이다. 또한 학교장의 지시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학교 구조에 반대한다. 그것은 일방적 복종만을 통해 이 사회를 그대로 재생산하기 때문이다. 또한 국기에 대한 경례(맹세)를 하지 않는다. 그것은 힘들 것 없는 동작과 몇 마디밖에 안되는 문장이 무조건적 충성만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다르다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람이 사람에게 폭력을 가할 수 있는 권리와 정당성은 과연 누구에게서 부여받은 것인가? 지금 이 획일화된 사회에서 내가 ‘인간’으로 존중받기 위해서 나는 내 삶에서 작은 것이라도 ‘획일화된 상식’을 거부하고 싶다.


   국기에 대한 경례(맹세)를 하지 않는다 등의 이유로 일부 학부모들은 나에 대해 경기도교육청에 민원을 접수시켰고, 학사모(학교를사랑하는학부모모임)는 나를 교단에서 영구퇴출할 것을 경기도교육청에 요구하고 있고, 조선일보는 나를 ‘편향된 가치관 교육’의 문제교사로 낙인찍었으며, 경기도교육청으로부터 중징계 의결 예정을 통보받은 상황이다.

   ‘획일화된 상식’의 벽이 아직 매우 높다는 생각에 마음이 우울하다. 앞으로 어찌 될 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상황이 나 스스로에 대한 시험장이 될 것 같다.

 

   과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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