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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없다

나는 5살짜리 남자 아이와 살고 있다. 나와 아들...부자가정이다...이혼 후 부자가정이 된 지 얼마 안되었다.

 

아이에게 엄마의 빈자리라는 것을 어떻게 채워줘야 하나...고민이 많았다...아이에게 많이 미안했다....잠든 아이를 껴안고, 잠든 아이를 바라다보며 미안함에 안타까움에 많이 괴로워했다.

 

아이에게 아빠도 필요하고 엄마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아이에게 아빠의 역할과 엄마의 역할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아이에게 아빠든 엄마든 한 쪽이 없다는 것은 결손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5살짜리 아들은 항상 무언가 결핍이 있을 것이고, 그래서 아이에게 어떻게든, 무엇이든 해주어야 한다는 강박에 나 자신을 많이 괴롭혔다.

 

그러다가....글을 접하게 되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근대적 인권 개념과, 인간의 범주에서 여성을 제외하려는 가부장제 사이의 모순은, 모성의 발명으로 극복되었다. '아동기'와 '모성'의 창조는 남성 가장 노동자를 개인으로 상정한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전개를 위해서도 필수적인 것이었다. 서구에서 존 로크 이전 바로 1세기 전까지만 해도 세상에 태어난 아이는 원죄에 의해 오명되어 있다고 믿었다. 오늘날과 같은 모성이데올로기는 '아이들은 어머니가 어떤 것이라도 쓸 수 있는 백지 상태'라는 관점과 함께 탄생한 것이다. 이후 어머니는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아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엄청난 부담감과 죄의식에 시달리게 되었다" [페미니즘의 도전 중]

 

모성이데올로기는 여성에 대한 통제와 억압의 기제로 활용된 것뿐만 아니라, '남성 아빠와 여성 엄마'로 구성된 가족만이 정상이라는 가부장적 가족 제도를 유지, 강화, 재생산하는데 결정적인 것이었다. 기존의 모성이데올로기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오히려 '결손'을 양산하고 재생산하고 강화함으로써 여성에 대한 통제와 억압을 통해 기존 사회의 유지와 재생산에 기여하고 있을 뿐이다.

 

동성애자 부부의 가정은 필연적으로 결손 가정인가?

'여성'인 엄마만을 통해 '모성'이라는 것이 가능하고 그것이 그토록 중요한 것이라면, 지금 문화적, 경제적으로 배제되고 있는 가사노동에 이 사회는 최고의 가치를 부여해야 할 것이다. 이 사회와 남성들은 가사노동을 가장 우선에 두고 가사노동에 전적으로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실상 가사노동은 남성 가장을 위한 부차적 노동, 보조적 노동으로 치부되고 있지 않은가.

 [결손 가정은 없다. 정상 가정이 궁극적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아빠와 엄마의 역할이 다르다고 생각했던 것은 그래서 아이에게는 결핍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결국 가정에서의 남녀 성역할을 인정하고 '부재'한 '엄마'의 역할을 다시 채우지 못한다라고 하는 나의 발상일 뿐이었다. 내 안의 남성가부장 이데올로기에 내가 푹 젖어 있는 것이었다.

 

'아빠'와 '엄마'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세계를 접해나가는 아이에게는 자신과 관계를 만들어 가는 대상이 존재할 뿐이지 않을까. 아이에게는 '남성'으로서의 아빠와 '여성'으로서의 엄마가 필수적인 것이 아니라, 어린 생명으로서 사랑받고 보호받고 존중받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상호 교감의 관계와 그 관계의 대상이 필수이지 않을까.

 

나는 아이에게 '여성으로서의 엄마'라는 역할을 제공하지 못함을 미안해 했던 것이다. 그것은 아이에게 남녀성역할의 고착이라는 정상가족이데올로기를 그대로 투영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사실은 아이가 힘든 것이 아니라, 그러한 남녀성역할 고착과 정상가족 제도 속에서 기득권을 가지고 있던 남성인 '내'가 힘들었던 것이다. 소위 정상가족 내의 여성노동의 부재로 인해 내가 '힘들어 지는 것'이 '힘들었던 것'이다. 그것이 감정투영을 통해서, 아이가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고 아이에게 미안함으로 나타났고, 아이에게 미안해함으로써 사실은 나의 힘듦을 스스로 위로하려고 했던 것이다.

 

나와 아이는 아빠와 아들이라는 가족 틀거리가 아니라, 서로 사랑하고 서로 존중하고 서로 필요로 하는, 인간과 인간이라는 가족 틀거리가 필요하다. '여성으로서 엄마'의 부재가 결손이 아니다. 아빠라는 나와 아들이라는 아이가 어떤 관계를 맺어가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이 '남성'임을 포기하고, 남성가부장적 자본주의에서의 남성으로서의 모든 기득권을 거부하고,  전적으로 생활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엄마'는 없다. '아빠'도 없다. '인간'과 '인간'이 있을 뿐이다.

 

이젠 모성이데올로기를 내 속에서 놓아버리고, 나는 아들과, 인간과 인간으로서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며, 나 스스로 생활인이 되어, 행복하고 즐겁게 살아 가려고 한다. 앞으로도 더 많은 시행착오와 어려움이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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