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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회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길 건너편에 초등학교가 하나 있다.

요즘, 운동회 준비로 초등학교 운동장이 연일 떠들썩하다.

 

예전 국민학교(내가 다닐 때는 국민학교라고 불렸다) 때가 생각났다...

운동회날은 마냥 기다려지기만 하던, 가슴설레는 기쁜 날이었다...

 

신랑신부 춤..

부채춤..

반 대항 줄다리기...반 대항 계주(이어달리기)

50m달리기...

모래주머니로 박터뜨리기...

부모와 함께 달리기...

청군 vs 백군...대항전...

오전엔 저학년, 오후엔 고학년으로 나누어...6학년은 축구 결승전을 하고...

하늘엔 만국기...

점심엔 김밥이 최고, 끝나고 나면 자장면이 최고....통닭은 비싸서리...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운동회는 운동회가 아니라,

'경쟁'을 통해...'승리'하거나 '순위'가 결정되는....'대항'전일 뿐이었다...

남을 밟고 이겨야 하는 경쟁을 통해 '승리'하거나 '1등'을 하면, 학급의 자랑이요 부모의 자랑이었다.

더군다나

집단춤을 통해 집단의 질서에 순응하도록 하는 것이었고,

신랑신부춤을 통해 남자와 여자의 차별적 성역할을 자연스레 습득하는 것이었고,

여학생들은 부채춤 등의 집단춤으로 여성이어야 함을 강요받았고,

남학생들은 축구 경기를 통해 남성이어야 함을 강요받았고.....

여기에 장애인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끼어들 틈조차 없었고....

소위 '남녀로 구성된 정상 부모'가 있어야만이 참여할 수 있는....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성인비장애인남성중심의 이데올로기가 고스란히 묻어 있는...

 

놀라운 것은 

내가 근무하는 학교 앞의 초등학교 운동회가 그 때 그 모습을 고스란히 이어받고 있다는 것이다.

집단춤, 부채춤, 반 대항 달리기, 50m달리기 등등....

달라진 것이라면,

율동을 위해 운동장에 틀어 놓은 노래가 '가요'(나 때에는 동요였던 것 같은데)로 바뀌었고,

학급별로 소위 학급티셔츠를 맞추어 입기도 한다는 것(색깔만 다르지 군복과 그 의미가 다른 것 같지 않아 섬뜩하다)과.....그 외엔 별로 다른 게 없는 것 같다...

 

운동회 프로그램이나 기획 등은 다소 달라지겠지만,

국기에 대한 경례, 교장선생님 훈화, 집단 체조, 집단 춤, 대항전, 순위전 등에 숨어 있는, '경쟁'과 '차별적 성역할의 고정', '집단주의' 등등의 내면화는 여전히 그 속에 또아리를 틀고 있다는 것이다...

 

남녀가 아닌 '인간'으로...

집단이 아닌 '개인'간의 연대로...

장애와 비장애가 함께 어우러지는...

경쟁이 아닌 협력으로...

순위가 아닌 참여로....이루어지는 운동회를 생각해 본다...

 

요즘, 그런 시도도 꽤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저 초등학교만 저런가?

하여간 운동장에서 먼지 마시며 땀 흘리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마음 한 켠 착잡함이 스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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