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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9/25
    일본 법원-국가제창 강요 위헌 판결(2)
    초보좌파
  2. 2006/09/13
    차별철폐대행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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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6/09/07
    '엄마'는 없다(5)
    초보좌파
  4. 2006/09/03
    탁아방을!!!
    초보좌파

일본 법원-국가제창 강요 위헌 판결

일본 법원에서 교사에 대한 국가제창 강요와 국기에 대한 경례 강요는 위헌이자 위법이라고 판결했군요...

 

도쿄지법은 21일 기립이나 국가제창을 거부했다가 도쿄도 교육위로부터 징계처분을 받은 도쿄 도립교 전직, 현직 교직원 401명이 도와 도교위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이런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국가체장과 기립지시를 위반하면 처분하도록 규정한 2003년 도교위의 '통달'과 관련해..."교직원을 징계하면서까지 기립, 제창과 피아노 반주를 의무로 부과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나는, 지나친 조처" 라며... "도교위의 통달과 학교장의 직무 명령은 위헌이자 위법"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교사 등은 기립, 제창의 의무가 없고, *기립, 제창, 피아노반주를 거부해도 처분을 해서는 안되며, *도는 원고들에게 1명당 3만엔의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저는 지난 9월 12일 교육부소청심사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했습니다.

이제 노무현 정부와 교육부는 어떤 결정을 내릴지 지켜봅니다.

저에 대한 징계는 저에게만 내려진 징계가 아니라, 이 땅의 '사상과 양심의 자유'에 대해 내려진 징계이기에 끝까지 싸우렵니다. 과연 이 땅에 사상과 양심의 자유가 있는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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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철폐대행진

오늘 부천에서는 차별철폐대행진이 있었다.

 

민주노총 경기본부에서 매년 진행하는 사업이다. 올해가 3년째다. 오늘이 부천에서 진행하는 날이다.

난 민주노총 경기본부 부천시흥김포지구협의회 부의장 일을 하고 있다.

이번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게 되었다.

 

차별철폐대행진을 준비하며....안타까웠다....

차별철폐대행진에서 '주체'들이 함께 하지 못했다.

 

여성차별 철폐!

장애인차별 철폐!

비정규직 철폐!

교육차별 철폐!

이주노동자 차별 철폐!

건설노조 공안탄압 분쇄!

한미FTA 저지!

평택미군기지확장 저지!

특수고용직노동자 기본권쟁취!

......

 

준비된 밥상에 나오라는 행태는 내 스스로 여전했다.

각 주체들, 그들의 몸짓으로 행동하고, 그들의 언어로 표현하는 행사가 아니라 당위와 의의로 밥상을 준비해 놓고 그네들 보고는 그냥 나오라고만 했다. 그러니 나오는 것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은 당연했고, 나와서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네들의 이야기인 것같지만 다른 입으로 하는 이야기를 그네들은 듣고 있어야 했다.

 

행진은 말 그대로 '행진'일 뿐이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정해진 일정과 떨어진 사업이기에, 나의 역할 중 하나이기에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했지만...이런 행사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지에 대한 회의가 계속 밀려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나마 해야 하지 않나"라는 일말의 책임감(?)으로 준비하고 진행했다.

 

3시간 남짓한 행진에 참가자들은 지치고 힘들어했다. 그것이 단순히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는 건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나 스스로도 안다.

 

즐겁거나 흥겹거나, 아님 처절하거나 분노하는 자리여야 하는데 이 자리는 그저 단어로 된 구호를 하늘에 대고 외치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참여했던 대부분의 집회 성격의 행사는 그러했었고 난 그것에 대해 비판했었다. 참가자들의 대상화시키는 행사는 행사가 아니라 설득이고 강요일 뿐이다. 삶의 이야기가 없고, 공허한 구호만 난무하는....

 

준비와 진행 모두 내가 비판했던 그대로였다. 관례나 관행에 익숙해져 있는 내용과 진행....

생각과 실천이 이렇게 다른, 이번의 나를 보고 사실 힘빠지고 맥빠진다...누굴 탓하랴...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겠지만, 하고 나서 이렇게 맥빠지면 몸만 힘든게 아니라 마음도 힘들다...

 

차별철폐대행진은 22일까지 경기도내 각 지구협에서 매일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다른 지구협대행진에는 내가 주체가 되어 참가하련다. 그것부터가 시작이다 싶다....

 

그래도 오늘 참가한 동지들은 열심히 외쳤다.

차! 별! 쳘! 폐!

 

그네들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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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없다

나는 5살짜리 남자 아이와 살고 있다. 나와 아들...부자가정이다...이혼 후 부자가정이 된 지 얼마 안되었다.

 

아이에게 엄마의 빈자리라는 것을 어떻게 채워줘야 하나...고민이 많았다...아이에게 많이 미안했다....잠든 아이를 껴안고, 잠든 아이를 바라다보며 미안함에 안타까움에 많이 괴로워했다.

 

아이에게 아빠도 필요하고 엄마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아이에게 아빠의 역할과 엄마의 역할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아이에게 아빠든 엄마든 한 쪽이 없다는 것은 결손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5살짜리 아들은 항상 무언가 결핍이 있을 것이고, 그래서 아이에게 어떻게든, 무엇이든 해주어야 한다는 강박에 나 자신을 많이 괴롭혔다.

 

그러다가....글을 접하게 되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근대적 인권 개념과, 인간의 범주에서 여성을 제외하려는 가부장제 사이의 모순은, 모성의 발명으로 극복되었다. '아동기'와 '모성'의 창조는 남성 가장 노동자를 개인으로 상정한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전개를 위해서도 필수적인 것이었다. 서구에서 존 로크 이전 바로 1세기 전까지만 해도 세상에 태어난 아이는 원죄에 의해 오명되어 있다고 믿었다. 오늘날과 같은 모성이데올로기는 '아이들은 어머니가 어떤 것이라도 쓸 수 있는 백지 상태'라는 관점과 함께 탄생한 것이다. 이후 어머니는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아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엄청난 부담감과 죄의식에 시달리게 되었다" [페미니즘의 도전 중]

 

모성이데올로기는 여성에 대한 통제와 억압의 기제로 활용된 것뿐만 아니라, '남성 아빠와 여성 엄마'로 구성된 가족만이 정상이라는 가부장적 가족 제도를 유지, 강화, 재생산하는데 결정적인 것이었다. 기존의 모성이데올로기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오히려 '결손'을 양산하고 재생산하고 강화함으로써 여성에 대한 통제와 억압을 통해 기존 사회의 유지와 재생산에 기여하고 있을 뿐이다.

 

동성애자 부부의 가정은 필연적으로 결손 가정인가?

'여성'인 엄마만을 통해 '모성'이라는 것이 가능하고 그것이 그토록 중요한 것이라면, 지금 문화적, 경제적으로 배제되고 있는 가사노동에 이 사회는 최고의 가치를 부여해야 할 것이다. 이 사회와 남성들은 가사노동을 가장 우선에 두고 가사노동에 전적으로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실상 가사노동은 남성 가장을 위한 부차적 노동, 보조적 노동으로 치부되고 있지 않은가.

 [결손 가정은 없다. 정상 가정이 궁극적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아빠와 엄마의 역할이 다르다고 생각했던 것은 그래서 아이에게는 결핍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결국 가정에서의 남녀 성역할을 인정하고 '부재'한 '엄마'의 역할을 다시 채우지 못한다라고 하는 나의 발상일 뿐이었다. 내 안의 남성가부장 이데올로기에 내가 푹 젖어 있는 것이었다.

 

'아빠'와 '엄마'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세계를 접해나가는 아이에게는 자신과 관계를 만들어 가는 대상이 존재할 뿐이지 않을까. 아이에게는 '남성'으로서의 아빠와 '여성'으로서의 엄마가 필수적인 것이 아니라, 어린 생명으로서 사랑받고 보호받고 존중받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상호 교감의 관계와 그 관계의 대상이 필수이지 않을까.

 

나는 아이에게 '여성으로서의 엄마'라는 역할을 제공하지 못함을 미안해 했던 것이다. 그것은 아이에게 남녀성역할의 고착이라는 정상가족이데올로기를 그대로 투영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사실은 아이가 힘든 것이 아니라, 그러한 남녀성역할 고착과 정상가족 제도 속에서 기득권을 가지고 있던 남성인 '내'가 힘들었던 것이다. 소위 정상가족 내의 여성노동의 부재로 인해 내가 '힘들어 지는 것'이 '힘들었던 것'이다. 그것이 감정투영을 통해서, 아이가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고 아이에게 미안함으로 나타났고, 아이에게 미안해함으로써 사실은 나의 힘듦을 스스로 위로하려고 했던 것이다.

 

나와 아이는 아빠와 아들이라는 가족 틀거리가 아니라, 서로 사랑하고 서로 존중하고 서로 필요로 하는, 인간과 인간이라는 가족 틀거리가 필요하다. '여성으로서 엄마'의 부재가 결손이 아니다. 아빠라는 나와 아들이라는 아이가 어떤 관계를 맺어가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이 '남성'임을 포기하고, 남성가부장적 자본주의에서의 남성으로서의 모든 기득권을 거부하고,  전적으로 생활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엄마'는 없다. '아빠'도 없다. '인간'과 '인간'이 있을 뿐이다.

 

이젠 모성이데올로기를 내 속에서 놓아버리고, 나는 아들과, 인간과 인간으로서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며, 나 스스로 생활인이 되어, 행복하고 즐겁게 살아 가려고 한다. 앞으로도 더 많은 시행착오와 어려움이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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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아방을!!!

오늘 제 3회 복사골 청소년 예술제에 청소년 포럼이 있다길래 갔다.

한 꼭지를 맡아서 발제를 하기로 했기 때문에...포럼 주제는 '우리는 학교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에겐 애가 하나 있다. 5살짜리 남자 아이다. 오늘 데리고 갈 수밖에 없어서 아이의 손을 잡고 포럼에 참여했다.

가면서...사실 청소년 대상의 행사들이기에 크게 생각한 바가 없었지만...데리고 가는 '아이'가 은근히 걱정되었다. '그래도 누군가가 좀 돌봐 주겠지'라고 위안하면서...

다행히 행사진행측에서 아이를 흔쾌히 잘 돌봐주겠다고 해서...

 

포럼이 끝나고...아이를 다시 만나고...그러면서 문득 드는 생각이...

 

청소년 대상의 행사라고 하더라도...청소년 중에서 행사에 참여하고 싶지만 나이어린 동생 때문에 참여하지 못하는 청소년은 없을까? 예를 들자면 한부모 가정의 경우든, 소녀소년가장이든 말이다....

탁아방은 보통 어른이 데리고 오는 아이들을 돌봐주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이것 역시 이 사회에서 청소년이 배제되고 소외되고 있는 또 다른 모습이 아니겠는가. 청소년 행사라고 해서, 청소년이라고 해서 탁아방이 왜 필요하지 않겠는가. 설혹 단 한 명의 청소년이 탁아방을 필요로 하더라도 말이다.

 

모든 청소년 행사에 탁아방을!!!!

모든 행사에, 모오든 행사에 반드시 탁아방을!!!

 

나오면서 포럼 평가서에 자취를 남겼다....제 4회 복사골 청소년 예술제부터는 탁아방이 설치되기를 희망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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