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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4/28
    부처의 도-물 자체
    곰탱이
  2. 2016/04/21
    곰탱이
  3. 2016/04/21
    백성
    곰탱이
  4. 2016/04/20
    산은 산인가?
    곰탱이
  5. 2016/04/12
    좋은 대가리와 나쁜 대가리..
    곰탱이

부처의 도-물 자체

<매월당 김시습>(이문구 지음, 문이당, 1993)에서 발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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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부처의 도는 굳건한 마음을 펴고 결단성 있고 열렬한 뜻을 일으켜서, 뜨거운 자비심으로 몸을 닦고 실상(實相)으로써 물(物)을 맞이하여, 삶과 죽음을 영영 끊어버리고도 항상 살고 죽는 마당에 처해 있으며, 이미 번뇌를 버리고도 항상 번뇌의 울안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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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쪽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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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소설 <매월당 김시습>에서 발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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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 객이었다. 손, 길에서 살아온 길손이었다. 길에서 살면서도 길에서조차 주인일 수가 없었던 덧없는 나그네. 자리가 없어서 떠돈 나그네였고, 그것도 여느 나그네와 달리 갓쓰고 헤매는 중이었다.

길, 길도 가까운 데서부터 쳐서 먼 편이 되거나 먼 데서부터 쳐서 가까운 편이 되는 길이 아니라, 가면 갈수록 길이 저절로 붇는 아득한 후미길이었다.

그 길을 걷고 걸었다. 그리하여 속절없이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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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쪽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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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

역사 소설 <매월당 김시습>에서 발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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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 떼가 소리로 점을 찍어 가며 건너간 하늘에 노송 한 그루가 빈자리를 메웠다. 솔은 제물에 삭아서 떨어진 삭정이의 마들가리에 곰이 피도록 늙더라도 머리는 언제나 청솔이어서, 반쯤 취하여 먼발치기로 건너다보면 마치 금방 단장을 마치고 일어나 울짱너머로 밖을 엿보는 앳된 기녀의 운계(雲髻)가 아닌가 싶을 때도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취안에 얼비친 객기의 잔재에 불과한 것일 뿐이었다. 솔은 노송일수록 청운(靑雲)을 형용할 때가 많았다. 송라(松蘿)가 켜켜로 뒤덮은 노송은 송운(松韻)이 길었고, 송운이 긴 노송은 송도(松濤)도 또한 힘졌다. 그러나 청운이란 것도 객기의 잔재에 지나지 않았다. 송홧가루가 안개처럼 자욱하고 는개처럼 휘날려 흩어지고 나면, 한 덩이의 청운도 신록을 빌어서 치장한 한 그루의 청송으로 돌아가 있게 마련이었다. 매양 두고 보아 왔기에 알지만, 사람이란 대저 미욱스럽기가 한량이 없어서 비록 저도 모르게 미혹에 빠지기를 동짓달 야삼경에 물마시듯 하더라도, 솔은 소담하고 아리따운 운계라거나, 일찍이 시들어서 못내 가슴이 저린 지난날의 청운으로 착각할 만큼 그리 신기한 물건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노송은 또 그 허다한 산지일모(山之一毛, 초목)의 한가지로 가벼이 치부하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하다가 못다한 듯한 느낌이 접히는 것도 일쑤 겪어 본 감정이었다.

매월당의 망막을 차지하고 있던 노송이 율을 자아내기 시작했다. 곧 <영마루의 노송(嶺上老松)>으로 제영(題詠)하였다.

 

모든 초목이 겨울을 타는데                                   歲寒百初彫零後(세한백초조령후)

영마루의 솔 하나 그대로구나                                只有嶺上松獨秀(지유령상송독수)

줄기는 비바람에 늙을수록 굳세고                          幹排風雨老逾壯(간배풍우노유장)

너럭바위에 뿌리내려 기운 채로 견딘다                    根盤石上偃不仆(근반석상언불복)

혹이 있으니 먹줄은 맞지 않을 터                            臃腫不中繩與墨(옹종부중승여묵)

생김새가 그런 것도 신령의 보호라                          奇怪怡受鬼神祐(기괴이수귀신우)

그대 보지 않았던가 봄을 다투던 것들                    君不見春前桃李競嬋姸(군불견춘전도이경선연)  

봄바람에 며칠 안 가 지고 말던 것을                        不日又被春風瘦(불일우피춘풍수)

보굿마다 터져서 이끼는 끼었지만                           紫鱗慘裂襯莓苔(자린참열친매태)

굵은 가지 흰 것으로 장수할 걸 알겠구나.                  大枝輪囷知汝壽(대지륜균지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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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151쪽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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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산인가?

역사소설 <매월당 김시습>(이문구 지음, 문이당, 1992)에서 마음을 머물게 하는 글월이 있어 발췌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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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으로 가는 길은 산이 산처럼 있고 바다는 바다처럼 있어서 예나 한가지로 풍광이 명미한 편이었다. 그러나 산수와 뜬구름만으로 일러서는 아니 될 것이 또한 풍광이기도 하였다.

풍광은 모름지기 민생과 더불어서 이야기되어야 마땅한 것이었다.

풍광이란 것이야말로 민생이 피폐하고 암담한 다음에는 비록 금강산의 만물상이라고 하더라도 천하제일 강산은커녕 한갓 꿈자리 사나운 바위츠렁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삼척으로 가는 길이 바로 그러하였다. 바다는 사납고 산은 거칠었다. 갯가난 산기슭에 잔뜩 웅송그리고 있는 인가들의 꼴이 그만큼 볼썽사납고 너절한 탓이었다. 그런가 하면 후미진 변방답게 사납고 거친 것이 제격이라 할 길바닥은 영판 딴판이었다. 말 그대로 탄탄대로가 그것이었다. 길이 훤하고 판판한 정도로 인가가 찌부러들고 우그러져서 대낮에도 어스름녘처럼 어둑할 뿐이었다. 그 동안 삼척에서 금강산까지 중앙의 대소 관원들과 고량자제들의 관광행각이 여북이나 잦았으며, 외방의 수령방백과 토반호족들의 유람 행렬이 오죽이나 질탕하였으면 길이 나도 이렇게 났겠는가 싶은 것이었다. 길이 이렇게 되기까지는 얼마나 호된 부역으로 민력(民力)을 쥐어짰을까. 고을 아전들은 그를 기화로 하여 또 얼마나 바삐 뛰어다니며 민생을 주장질하여 제몫을 여투기에 급급했을 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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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쪽)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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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대가리와 나쁜 대가리..

일요일에 학회의 노선배 모친상 문상을 갔다.

거기서 아주 오랜만에 선배 한 분을 반갑게 만났다.

그 선배가 수염도 안 깎은 내 몰골을 보더니만 한마디 하셨다.

- 옛것을 좋아하는가?

- 네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이 선배께서 가방에서 무엇을 하나 꺼내어 나에게 건네신다.

책이다.

그러고선

- 너를 보자마자 너와 이 책이 참으로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준다.

알라딘에서 일천 원 주고 산 책인데, 소장하려고 산 책이었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있었는데...

책 이름은 <매월당 김시습>이다. 이문구 선생께서 1992년에 쓰신 역사소설이다.

처음 부분을 읽었는데, 통쾌한 부분이 있어서 옮겨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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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은 소주 두 종발을 거푸 들이켰다. 안주는 정인지의 소식(정인지가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 좋은 대가리를 좋지 않게 굴리는 것은, 나쁜 대가리를 나쁘게 굴리는 것보다 훨씬 흉악한 법.

선행이 조심성 있는 어조로 곁다리를 들었다.

- 그이는 그래도 다소의 독서와 저작은 있지 않습니까.

매월당은 웃으면서 되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 광에 추수를 모두 쟁여 놓았는데 쥐란 놈이 벽에 구멍을 내고 드나들면, 그 쥐구멍이 광의 통풍을 돕게 되니 다소의 득도 없지 않다는 말이것다.

선행은 점직스러운지 입을 다물었다.

매월당은 따라 놓은 잔을 비우고 나서 애써 성미를 누그려가지고 말했다.

- 인지는 그 다소의 독서와 저작으로 인하여 그 동안 쌓아올린 악이 더욱 돋보이게 될 것이니, 광에 뚫어 놓은 쥐구멍도 공덕이 전혀 없다고는 못하겠구나.

매월당은 취기가 오른 뒤에도 어조에는 높낮이를 두지 않았다.

- 대저 사람이 산에 오르면 먼저 그 높은 것을 배우려고 할 줄 알아야 하느니. 또 물을 만나면 그 맑음을 배울 걸 먼저 생각하고, 돌에 않으면 그 굳음을 배울 걸 생각하며, 소나무를 보게 되면 그 푸름을 배울 걸 생각하고, 달과 마주하게 되면 그 밝음을 먼저 배울 걸 생각하는 태도가 바로 대가리를 제대로 굴릴 줄 아는 자의 모습이니라. 허나 장차는 저 인지를 따라가서 대가리를 제대로 굴리려는 자가 매우 드물 터인즉, 두고 보면 알려니와 필경 산에 오르면 먼저 그 편한 길부터 알고자 기웃거리게 되리. 또 물을 만나면 그 흐름에 얹힐 꾀를 궁리하게 되고, 돌에 앉으면 그 차가움부터 생각하게 되며, 소나무를 보면 그 오래 사는 수를 생각하게 되고, 달을 마주하면 그 은밀함을 생각하게 되어, 좋은 대가리를 좋지 않게 굴리려는 자가 비온 물꼬에 송사리 몰리듯이 꿇을 터이니, 이것이 무엇인고. 이것이 장차 이 백성들에게 뿌리 내릴 불운의 싹이 아니겠느냐.

선행은 저만치에서도 들리게끔 숨을 내리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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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 김시습>>, 이문구 씀, 문이당, 1992, 30~1쪽에서 발췌

 

나는 좋은 대가리일까... 아니면 나쁜 대가리일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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